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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벌
작품등록일 :
2019.01.02 21:31
최근연재일 :
2022.05.2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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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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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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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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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 갈라드식 접대(2)

DUMMY

“푸하핫! 그러게 내가 뭐랬습니까? 거기 함부로 찾아가지 말라니깐! 푸하하하!”


“지금 하나도 안 웃기거든요!”


론달이 뒤바뀐 둘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자. 캐트시가 평소처럼 정중한 말투로 화를 냈다. 하지만 중년 남성의 걸걸한 목소리와 소녀 같은 제스처로 화를 내는 것을 보고선 론달이 더 크게 웃어댔다.


“난 형님이 이렇게 발랄한 소녀처럼 구는 모습을 볼 거라곤 생각도 해본 적 없는데!”


“으으,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주위 사람들한테 다 들릴 거 아니에요?”


아니나 다를까 여관에 있는 사람들은 캐트시를 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당연히 몸만 아빌라드의 것이고 그 안에서 날뛰는 것은 캐트시의 정신이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냥 중년 남성이 기분 나쁘게 여자아이 흉내를 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앉아 있어 캐트시. 그리고 론달 너도 그만 웃어라. 심각한 일이니까.”


결국 아빌라드가 둘을 말렸다. 캐트시의 고운 목소리는 본래 그녀의 말투에도 잘 어울렸지만, 아빌라드의 딱딱한 말투와도 꽤 잘 어우러졌다. 고압적인 그의 말에 론달과 캐트시가 얌전해졌다.


“도브카는 캐트시의 이런 냉정한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네.”


“아무튼 웃고만 있을 일이 아닙니다. 그나저나 캐트시와 저는 어떻게 여관으로 돌아온 겁니까?”


“중간에 론달이 지갑을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었네. 자네들이 먼저 가버린 것을 알고 빨리 데리러 가야 한다고 날뛰는 바람에 도브카가 직접 나갔지. 도브카가 자네들에게 갔을 땐 이미 둘은 정신을 잃고 집 앞에 쓰러져 있었어.”


“족장님도 그럼 그 마법사를 만나지 못한 겁니까?”


“만나보진 못했다네. 집 안에서 빨리 자네들을 데려가라고 소리만 치더군.”


아빌라드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가웨나의 기억에 관한 일이라고 너무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캐트시와 몸이 뒤바뀐 일 역시 큰일이지만, 집에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내쫓긴 꼴이 되었다. 이대로는 피터 갈라드에게 다시 찾아간다 하더라도 가웨나의 기억을 봐주지 않을 게 눈에 선했다.


“그러니까 제 말 들으라고 했잖아요. 왜 그렇게 급하게 굴어서 긁어부스럼을 만들어요?”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군. 미안하다.”


“론달 씨!”


캐트시는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마법사라는 분한테 다시 고쳐달라고 할 수는 없어요?”


“가서 얘기는 해보겠지만, 억지로 문 부수고 들어갔다면서? 그 양반이 화내기 시작하면 나도 말 걸기 참 곤란한데.”


“어, 어떻게 해요 그럼?”


“어쩌긴.”


론달은 아빌라드의 허리춤에 매달린 성검을 쳐다보았다. 몸이 뒤바뀐 상태였지만 성검은 여전히 자신의 주인을 알아봤고, 지금은 캐트시의 몸이 되어버린 아빌라드가 지니고 있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야지.”


론달의 생각은 이랬다. 피터 갈라드는 희귀한 연구재료들을 좋아하는데, 성검 정도라면 그의 이목을 충분히 끌 수 있다는 것. 확실히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아무리 한 나라의 왕이라 하더라도 교단이 보관하고 있는 성물에 손을 댈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성물에게 선택받은 인간에게서 억지로 뺏으려 들어도 반드시 천벌을 받게 된다. 결국 탐구욕이 왕성한 마법사에게 있어서 성검만큼 군침이 도는 연구재료는 없다는 것.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문제라면 그 양반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성검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건데, 그 정도는 감수하세요. 원래는 내 부탁을 듣고도 심드렁할까봐 생각만 해두었던 계획이니까.”


“좋아. 그럼 당장 출발하도록 하지.”


“좀 나중에요.”


“왜?”


“그렇게 화를 돋궈놨는데, 후식이라도 만들어 가야 할 거 아닙니까?”


론달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하고 여관을 나섰다.



&



“점박아, 착한 아이로 있었니?”


“밥이나 내놔!”


“아이고, 착하지. 앉아!”


“내가”


“손!”


“매 끼니마다”


“기다려!”


“이 지랄을 해야겠냐?”


“좋아, 먹어.”


“염병할 거.”


여관주인이 여관 뒤뜰에 묶어놓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평소라면 평범하게 자기 개를 귀여워하는 주인의 모습으로 보였겠지만, 개의 말이 들리는 지금의 입장에서 보니 주인의 비위를 맞추려고 재롱을 부리는 애완동물의 애환이 느껴졌다.


캐트시와 몸이 바뀌고, 아빌라드는 갑작스럽게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생겨 고생 중이었다. 캐트시는 애써 그 능력을 멈추는 법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아빌라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숨 쉬고 걷는 당연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동물과 말이 통한다는 것도 그리 유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군.”


“저도 필요할 때만 듣는 편이에요.”


“그나저나 온몸이 간지러운데. 항상 이런 건가?”


“아, 가끔씩 벼룩한테 물릴 때가 있거든요. 벼룩을 쫓는 약이 있는데 제가 가지고 올게요!”


캐트시가 자신의 방으로 가버리고, 아빌라드는 간지러운 부분을 긁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팔뚝은 그렇다 치더라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부위 때문이었다. 몸이 바뀌긴 했어도 아빌라드는 남성. 아무렇지도 않게 캐트시의 온몸을 만져대기는 조금 그랬던 것이다. 잠에서 깨 늦은 아침을 먹고 있던 가웨나는 멈칫한 아빌라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니. 아니, 아저씨. 괜찮으세요?”


“난 괜찮단다. 신경 쓰지 마렴.”


캐트시가 가지고 온 약을 뿌렸지만 간지럼은 멈추지 않았다. 벼룩이 물어서 그런 것인지 도통 가라앉질 않는 바람에 아빌라드는 빨리 머리를 굴렸다.


일단 몸이 바뀐 채니까 지금 긁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빌라드의 이성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거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캐트시 본인에게 긁어달라고 하는 것은? 하지만 그럴 경우엔 아빌라드 본인이 긁어주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어쨌든 지금 캐트시는 아빌라드의 몸에 있었으니까.


제 3자에게 부탁한다면? 도브카는 분명히 거절할 것이고, 론달은 디저트를 만들겠다며 떠난 상태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가웨나.”


“네?”


“...아무것도 아니란다.”


“...?”


순진무구한 가웨나의 표정을 본 아빌라드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고 관두기로 했다. 아빌라드의 낌새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캐트시가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빌라드 씨, 뭔가 문제라도 있으세요?”


“온 몸이 간지러워서.”


“아, 방금 뿌린 약은 벼룩이 더 달라붙지 않게 하는 용도에요. 남아있는 건 긁어서 털어내야죠.”


“아니, 캐트시. 내 말은, ‘온 몸’이 간지럽다고.”


캐트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윽고 아빌라드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안돼요!”


“난 아직 아무 짓도 안했는데.”


“아무튼 안돼요! 그, 그냥 참아보시는 건 어때요? 아니면 제가 긁어드릴까요?”


“그래준다면 고맙겠지만, 지금 그 상태로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건가?”


“어, 음...”


캐트시 역시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결국 고개를 저었다. 간지럼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참는다고 해도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아빌라드가 묘안을 생각해냈다.


“캐트시, 혹시 빗을 가지고 다니나?”


“네.”


“빗으로 빚어주는 정도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아빌라드는 이거라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빗으로 긁는다면 직접 손이 닿을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옷을 모두 벗어야 하는데요?”


“안대를 쓰고 있도록 하지. 너 역시 직접 손 댈 필요 없이 빗으로 빚어주기만 하면 돼.”


“으으, 그렇긴 하지만...”


캐트시는 그것마저도 꺼려하는 눈치였지만 아빌라드는 그녀를 나무랄 수 없었다. 본래 자신의 몸을 발가벗기고 빗질을 해준다니,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긴 했으니까.


“그럼 제가 해드릴게요.”


선뜻 나선 것은 가웨나였다. 아빌라드는 가웨나에게 자기 몸 구석구석을 만지게 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빗질이라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의를 구하려는 심산으로 캐트시를 쳐다보니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빌라드는 가웨나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서 끊이지 않는 간지럼을 해소할 수 있었다. 가슴 같은 민감한 부위에 빗질을 할 때는 그 생소한 감각에 소름이 끼치며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가웨나의 도움으로 가려움은 모두 가셨다.


옷을 벗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입는 것은 더했다. 특히 속옷 같은 경우에는 전혀 입어본 적이 없다보니 입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 입고나선 가슴 쪽이 묘하게 불편했지만, 아빌라드는 그냥 무시하기로 하고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선 캐트시가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서있자 도브카가 헛기침을 하며 설명해주었다.


“방금 소변을 보고 온 참이네.”


그의 설명을 들은 아빌라드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몸이 바뀐 일로 아빌라드 역시 고초를 겪었지만, 그건 캐트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캐트시가 여전히 얼굴을 파묻은 채로 말을 꺼냈다.


“아빌라드 씨.”


“왜 그러지?”


“빨리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나도 그래.”



&



다행히 론달이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일행은 다함께 마법사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시장을 지나갈 때는 웬 닭들이 론달을 보고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물론 닭이 울어대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론달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저놈이야! 저놈! 저 마귀 같은 놈이 죽였어!”


“빌어먹을 도살자 자식! 밤에 잠은 잘 오냐?”


아무래도 마법사를 위해 준비한 식사에는 닭고기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뜬금없이 닭들이 욕을 해댈 리가 없었으니까. 론달은 태연하게 아빌라드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형님이랑 캐트시는 둘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표정들이 왜 그래요?”


“그건 도브카가 설명해주겠네.”


차마 자기 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정이었기 때문에 도브카가 나섰다. 도브카는 둘의 체면을 위해 론달에게 귓속말로 전말을 알려줬지만, 론달이 그것을 듣고 폭소를 터뜨리는 바람에 배려한 보람이 없어지고 말았다.


“지금 하나도 안 웃기거든요!”


“아닌데. 되게 웃긴 상황인데?”


“으으, 제발 그 입 좀 다물어요. 제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캐트시와 웃음이 터진 론달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일행은 마법사의 집에 도착했다. 안면도 없이 들이댔다가 큰 코가 다친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론달이 나서서 문을 두드렸다.


“꺼져!”


아니나 다를까 집안에서 상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저 론달입니다.”


“론달?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난 밥 같은 거 시킨 적 없는데?”


노인의 거침없던 말투가 조금 잠잠해졌다.


“어르신 생각나서 요리 좀 해왔어요. 무화과로 후식까지 만들어왔습니다. 아직 식사 안하셨죠?”


“네가 웬일로? 잠깐 기다려라.”


이윽고 문이 덜컹거리더니 노인이 문을 열고 론달을 반겼다. 늙은 마법사, 피터 갈라드는 백발이 성성하고 삐쩍 말랐지만, 눈빛만큼은 총명해보였다.


“아침부터 웬 머저리들 때문에 속이 터지는 줄 알았는데, 네가 만든 음식이라면 환영이지.”


“하하, 사실은 일행이 있습니다.”


론달은 살며시 손가락으로 일행을 가리켰다. 아빌라드와 캐트시를 본 피터는 곧바로 사람이 돌변해서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왜 네가 저 연놈들이랑 같이 온 거냐! 저 머저리들 때문에 아침부터 얼마나 열이 받은 줄 알아! 글도 못 읽고 말도 못 알아먹어서 남의 문고리를 박살내놓지를 않나!”


“어르신, 그게 다 사정이...”


“그래, 거기 네놈들! 아침댓바람부터 남의 집에 쳐들어오라고 가르친 게 누구냐? 애미애비가 그리 가르치더냐!”


아빌라드와 캐트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론달은 피터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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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logue. 약초꾼과 사냥꾼 +5 19.01.02 391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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