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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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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벌
작품등록일 :
2019.01.02 21:31
최근연재일 :
2022.05.2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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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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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글자수 :
17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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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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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8. 드래곤킵(2)

DUMMY

시엘라가 건넨 포도주를 들이마신 아빌라드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술 같은 건 땀내 난다며 질색하던 어린 공주는 어느새 성숙하고 위엄 있는 여왕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애써 공주 시절의 말투를 흉내 내고 있었지만, 아빌라드는 계속해서 왕을 대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폐하, 아무리 저와 안면이 있다고는 해도 친위기사들을 모두 물리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머, 그 말은 아저씨가 날 해칠 거라는 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시엘라는 작게 웃었다.


“그나저나 빨리도 눈치챘네. 내가 유적으로 가지 못하게 막은 이유. 교단의 마물사냥꾼으로서 날 찾았다면 계속 내쫓아낼 생각이었는데.”

“제 기억 속의 폐하라면 그러실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검술교습은 따분하다고 매번 숨어 계셔서 숨바꼭질을 해야 했잖습니까. 폐하께선 시종들에게 단서를 알려줬지만, 제가 검술교사로서 찾으려고 하면 입을 다물게 만드셨죠.”

“그리고 아저씨는 항상 날 찾아냈지. 그러고 보니 그때 시종들에게 아저씨를 뭐라고 소개한 거야?”

“그때마다 달랐죠. 화가, 음악가, 학자, 마법사. 어떤 날은 광대라고 둘러댄 적도 있습니다.”

“푸흡, 광대? 아저씨에겐 절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매번 다른 정체를 생각해내려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빌라드가 광대를 자처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시엘라는 여왕의 위엄은 생각지도 않고 크게 웃어댔다.


아빌라드는 웃음이 많던 그녀의 공주 시절을 떠올렸다. 어찌나 웃어댔는지 그녀는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아저씨에게 검술교습 받던 시절이 그립네.”

“실제로는 검을 휘둘러보신 적도 없잖습니까.”

“당연하지. 왕이 그런 걸 휘두를 것 같으면 병사와 가신들이 있을 필요가 없잖아.”

“때로는 군주의 검이 전황을 바꾸기도 하죠.”

“아아, 검술교습은 그립지만 아저씨의 그런 따분한 잔소리는 그립지 않은걸.”

“제가 무례했습니다. 황송합니다.”

“아니야. 어차피 여긴 아저씨랑 나랑 둘밖에 없는걸.”

“글쎄요. 천장에 있는 폐하의 친구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빌라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여왕의 말을 부정한 찰나.


천장에서 지목받은 검은 그림자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에 내려앉았다.


검은 옷에 검은 두건, 눈동자 말고는 몸 전체를 꽁꽁 싸맨 사내들이 흉흉하게 눈을 빛냈다.


그들이 쥔 칼은 이미 아빌라드의 목을 겨누고 있었고, 천진난만한 공주처럼 웃고 있던 시엘라 역시 싸늘하게 아빌라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전히 눈치가 빠른걸.”

“그렇지 않았다면 여태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코웃음을 치며 시엘라가 고갯짓으로 사내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들은 친위기사가 그리 했듯이 여왕의 명을 지체 없이 수행했다.


“그래. 그게 내가 마음에 들어 하던 부분이기도 했지. 어쩔 땐 싫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빌라드가 검술교사로 있던 때를 회상하며 공주 시절의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아빌라드는 지금 눈앞에 있는 여왕이 어떻게 왕위에 올랐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전 국왕의 막내딸. 왕위계승권 역시 제일 낮은 위치였다.


그런 그녀가 왕위에 올라가는 데에는 정세를 파악하는 눈과 감각이 큰 도움이 됐지만, 일부 왕자나 공주들이 누구의 사주인지도 모를 암살을 당한 일이 컸다.


이렇다 할 확증만 없었을 뿐이지 정황 상 그게 누구의 짓인지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고, 겁이 없거나 입이 근질근질한 호사가들은 그녀를 두고 독사 같은 여자라고 평하곤 했다.


말마따나, 반가운 사람을 만난 공주의 가면을 벗은 시엘라의 분위기는 아빌라드마저도 등줄기가 오싹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마음에 안 드나 보지?”

“제가 어찌 감히 폐하의 친구 분들을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뭐 상관은 없어. 내 친구들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는데 아저씨가 먼저 눈치챌 줄이야.”

“황송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아빌라드를 노려보던 여왕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포도주가 든 병을 아빌라드에게 내밀었다.


“그러면 벌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술 상대나 해줘. 왕의 심기를 거스른 죄로 목이 떨어지는 편보단 낫잖아?”


그래도 오랜만의 재회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여왕의 분위기는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아빌라드는 빠르게 의중을 파악하고 그녀가 내리는 술을 공손하게 받아들었다.


“폐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그 반응에 여왕이 미소를 지으며 아빌라드의 잔에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이제야 물어보는데, 어쩌다가 마물사냥꾼이 된 거야? 난 아저씨 정도 되는 인물이면 어느 왕국에서든 영지라도 내려서 신하로 삼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얘기가 많이 길어질 것 같군요.“

“괜찮아. 오늘 아저씨랑 독대하려고 밀린 정무들도 끝내놨으니까. 어서 얘기해줘.”


반응으로 보아하니 얼버무릴 수 없으리라 판단한 아빌라드는 결국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떠나보낸 가족을 떠올리는 건 착잡한 일이었지만, 여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




아빌라드가 여왕과 독대하러 떠난 사이, 남은 일행은 애매하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기다릴지 궁리 중이었다. 도브카와 가웨나는 웅장한 도시 안을 둘러보고 싶어 했지만, 론달은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드래곤킵까지 왔으면 당연히 포도주부터 맛을 봐야지. 대륙 어디에서나 최고급품으로 쳐줄 정도라고.”

“잠깐, 언제 다시 유적에 돌아갈지도 모르는데 술 마실 생각이 들어요?”


캐트시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지만, 론달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지갑의 돈을 세고 있었다.


“못 마실 건 뭐람? 알몬트 왕국에선 전투 중인 병사들에게도 보급한다고. 싸우기 전 마시는 한두 잔 정도는 긴장 푸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들 하는데.”


론달의 말대로 드래곤킵의 포도주는 대륙 각지에서 최고급품으로 선호되는 상품이었다.


이곳의 교단은 재정을 위해 옛날부터 포도 농장을 운영해왔다. 성직자들은 여신에게 바칠 포도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고 그 지식은 계속 후대로 전해져왔다.


축복받은 기후 덕에 좋은 포도까지 열리니 포도주의 품질로는 이곳을 따라잡을 곳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교단 본부마저 드래곤킵 지부에서 포도주를 사 올 정도였으니까.


캐트시 역시 그 명성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때와 장소라는 게 있는 법이다.

“한두 잔만 마실 것 같지 않으니까 그러죠! 술에 헤롱헤롱 취해서 갔다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려구요?”

“어차피 내 수중의 돈으로는 한 병도 무리거든. 고급지게 마시려면 한 잔도 간당간당하겠다. 그래도 마시러 갈 만한 가치는 있지. 암.”


교단의 중요한 일을 맡고 왔다는 사실은 이미 다 잊어버린 것일까, 술이나 찾는 론달의 모습에 캐트시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왜 아빌라드가 이런 인간을 데려가겠다고 굳이 찾아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발 긴장이란 걸 좀 하면 어때요? 매사에 능글거리면서 장난칠 생각만 하지 마시고! 족장님도 좀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도브카가 말인가?”


갑자기 지목당한 도브카가 수염을 긁적였다. 어째선지 가웨나까지 지긋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산맥을 내려오기 전엔 족장으로서, 어른으로서 어린 동족들에게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고 사냥법을 알려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산맥으로 애써 돌아가지 않고 아빌라드를 따라가기로 한 이유.


도브카 역시 산맥 바깥의 세상이 궁금해 세상을 돌아 다녀보고 싶을 뿐.


이왕 이렇게 번창한 도시에 왔는데, 삭막하게 맡은 일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론달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아빌라드가 돌아와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터이니 지금은 마냥 기다리기보단 각자 원하는 대로 흩어져서 기다리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인 것 같군.”

“역시 족장님. 최연장자다운 좋은 말씀입니다.”

“족장님!”


꼬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로 소리를 질러대는 캐트시.


론달은 그런 그녀를 보며 얄밉게 비웃으려 했지만, 자기 머리 위에 거대하고 묵직한 손이 얹어지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캐트시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네. 다시 합류했을 때 술에 취한 꼴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론달.”

“옙. 당연합지요.”


도브카가 인자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기 딴에는 친밀함의 표시였겠지만 손에 움직임에 따라 자기 머리가 힘없이 끌려다니는 경험은 론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캐트시와 같이 있게나. 나는 가웨나를 데리고 이 도시를 돌아보겠네.”

“네에? 저도 족장님이랑 같이 갈래요.”


이런 인간이랑 같이 다니기 싫어요. 라는 말을 겨우 참은 캐트시.


“혹여나 론달이 막 나가지 않게 옆에서 봐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리고 포도주 얘기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만.”


캐트시가 약간 뜨끔한 듯이 몸을 움츠렸다. 론달에게서 포도주 얘기를 들을 때 그녀의 꼬리가 살랑거리던 것을, 도브카는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평소에도 술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걸 봐왔으니 알아채지 못할 리가.


“알았어요. 론달 씨랑 같이 갈게요.”

“으흠. 그럼 그렇게 알고 도브카도 이만 가보겠네.”


도브카는 화려한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한 왕성 쪽으로 향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던 가웨나도 눈을 번쩍이며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럼 가볼까?”

“어디로 갈지 벌써 정해놓은 거예요? 머릿속에 그 생각밖에 없었죠?”

“뭐, 그냥 이 근처 아무 데나 들어가면 되는데. 어딜 가나 최고급 포도주는 가지고 있을걸?”


이 인간은 정말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캐트시는 궁금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보면 대책이 없달까 생각이 없달까. 그 와중에 론달이 자신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캐트시였다.


‘술집에서도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몰라.’


가장 가까이 있던 여관 겸 술집에 들어갔더니 론달의 말대로 온갖 포도주들이 즐비해 있었고, 둘이 눈독을 들일만한 최고급 포도주도 진열되어 있었다. 얘기를 나눌 새도 없이 론달은 주인장 앞에 앉아서 포도주 두 잔을 주문했다.


“너도 마실 거지? 미리 말해두지만 네 것까지 사줄 돈은 없다.”

“저도 한 잔 사서 마실 돈은 있거든요?”


주문한 포도주 두 잔이 나오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잔에 무려 은화 20개나 받는 고급 포도주. 나름 비싼 술이라고 신경을 쓴 모양인지 포도주는 은으로 된 잔에 담겨 있었고, 곁들여 먹을 잘게 썬 치즈도 같이 나왔다.


“건배나 할까?”

“...”

“응.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그냥 마시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아.”


머쓱해져서 혼자 포도주를 홀짝이는 론달.


캐트시도 조용히 한 모금을 들이켰다.


“우와아...”


포도주는 그녀의 고향에서도 많이 마셔봤지만, 이렇게 만족스러운 포도주는 마셔본 적이 없었다. 처음 입에 머금었을 땐 달콤하면서도 적당한 산미가 느껴지고, 목구멍을 넘기면서 남기는 그 산뜻한 향은 또 어떤가. 론달이 그렇게 마시러 가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던 것도 이해가 갔다.


기분 좋게 파닥거리는 그녀의 귀를 본 론달이 다시 은근슬쩍 말을 걸어왔다.


“어때? 마시러 안 왔으면 평생 후회했을 맛이지?”

“무, 무슨! 이 정도 포도주는 우리 마을에서도 많이 마셔봤거든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괜히 론달에게 찬동하기 싫었던 그녀의 억지 부리기에 지나지 않았다.


“거짓말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이거든. 그나저나 왜 이리 심술이 났어? 아까 장난쳤던 것 때문에 아직도 화가 났나?”

“신경 쓰지 마시고 포도주나 마저 드시죠.”

“킥, 정말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모양인데.”


옆에서 뭐라고 떠들든 말든 치즈를 집어 먹는 캐트시.


‘아빌라드 씨는 정말 이런 사람을 왜 일행으로 데려왔을까.’

“아빌라드 형님이 왜 나 같은 놈을 데려왔나 생각하고 있지?”


하마터면 먹고 있던 치즈를 뿜어낼 뻔했다.


“굳이 내 입으로 밝히고 싶진 않지만, 네 기분도 풀어줄 겸 비밀 하나 알려줄게. 형님이 날 왜 데려왔는지도 바로 이해할 수 있을걸?”

“뭔데요.”

“난 사실 초능력자야. 염동력을 가지고 있지.”

“...”

“믿기 힘든 이야기라는 건 이해한다만, 그 눈빛은 진짜 좀 무섭다. 표정 좀 풀어주지 않을래?”


론달이 뭐라 떠들든 말든 캐트시는 계속 그를 노려보았다.


초능력자라니!


자신을 얼마나 바보 취급해야 이런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려 드는 걸까, 본인이 말해 놓고도 부끄럽진 않은가, 나는 대체 왜 이 인간이랑 여기서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떨떠름한 얼굴을 하던 론달이 얼마 남지 않은 술을 입안에 탈탈 털어 넣었다.


“그렇게 못 믿겠다면 내가 직접 보여주지. 내기 하나 할까?”

“무슨 내기요?”

“그 술. 내가 손대지 않고 염동력으로 마셔볼게. 실패하거나 속임수를 쓰면 은화 5개!”


또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싶어 끙끙대던 캐트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한량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무조건 속임수를 쓰는 걸 잡아내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여유롭게 미소를 지어 보인 론달은 알아듣지도 못할 주문을 중얼거리며 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잔이 스스로 부유해 떠올랐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떠오르는 잔. 캐트시는 눈앞에서 보고도 이게 현실이 맞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론달의 기묘한 손동작에 맞춰 떠오르더니, 결국엔 스스로 공중에서 기울어지는 술잔.


흘러내린 포도주를 밑에서 받아먹은 론달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캐트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 봤지? 은화 5개 내놔.”


진짜 초능력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새 경험을 하긴 했지만, 왠지 억울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힘겹게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던 캐트시. 돈이 나오기 직전, 그녀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탁!


“동작 그만.”

“왜 이러실까?”


냅다 론달의 손목을 낚아챈 캐트시가 남은 손으로 술잔 주변을 휘휘 저어댔다. 아니나 다를까 허공에서 이상한 촉감이 느껴졌고, 그 촉감은...


“실이었잖아요! 이 사기꾼!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이런 걸로 절 속이려 한 거예요? 사람을 바보로 봐도 유분수지!”

“켁, 눈썰미가 좋네. 다 속여 넘긴 줄 알았는데.”

“속임수가 들통났으니까, 내놔요. 은화 5개.”

“알았어, 알았어. 내가 졌다. 앞으로는 좀 신중해야겠어. 얕보지 못하겠는데, 캐트시?”

“사람을 계속 바보 취급하려고 드니까 그런 거라구요. 다음부턴 조심하세요.”


순순히 지갑을 탈탈 털어 마지막 남은 은화 5개를 건넨 론달. 그는 텅 비어서 먼지만 날리는 지갑을 품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니, 교단에 먼저 돌아가 볼게.”


붙잡을 새도 없이 론달이 걸어 나가는 것을 보며 캐트시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바보 취급하던 상대에게 한 방 먹은 거다. 속으로 얼마나 배알이 꼴려있을지 상상하는 것도 꽤 만족스러운 즐거움이었다.


“한 잔 더 줄까?”


갑작스레 말을 걸어온 것은 주인장이었다.


“아, 괜찮아요. 한 잔만 마실 생각으로 왔던 거라서.”

“자네는 한 잔도 채 못 마시지 않았나?”

“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녀 몫으로 나왔던 은화 20개짜리 포도주. 캐트시는 그 절반도 마시지 못했다. 나머지는 염동력을 보여주겠다며 론달이 모두 마셔버렸고, 속임수가 들켰다며 준 돈은 겨우 은화 5개.


“아!”


또 속았구나. 캐트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론달을 쫓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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