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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요셉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3.04.11 23:59
최근연재일 :
2024.05.2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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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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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요셉 -26화-

DUMMY

“월터?”

“예스. 보스.”

“지난달 결산이 왜 이렇게 많이 비지?”

“노바스코샤에서 입금이 안 됐습니다.”

“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안드레가 거래처 여러 곳을 날려먹었다고.”

“...”


뉴욕과 보스턴을 오가는 솔베이 조직은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발을 넓히는 중이다. 솔베이는 현재 레드마피아 분파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저지대에 기반을 둔 플란데런 계열이다.

막심 세르게예프는 솔베이 패밀리에 속한 솔베이-포틀랜드 조직의 보스였다.


“투자자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

“당장 내달에 분기결산인데 안드레가 해먹은 금액만 120만 달럽니다.”

“잉여금으로 처리해.”

“언제까지요? 보스. 언제까지 뒤를 봐주실 겁니까?”


부하의 답답하단 반응에 막심 세르게예프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냉혹한 마피아도 하나뿐인 아들은 소중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식을 건사하는 건 존경스럽습니다. 보스. 하지만, 당신의 과보호가 애를 망치고 있어요.”

“월터.”


막심은 검지로 월터를 가리켰다.


“마지막 선은 넘지 마.”

“답답하니까 하는 말 아닙니까! 보스.”


형제 같은 부하가 아니었다면 벌써 주먹을 내질렀다.


“녀석은 어디 갔어?”

“뉴욕에 있습니다.”

“레드 퀸?”

“네.”


뉴욕! 뉴욕! 뉴욕! 이 거대한 탐욕의 도시를 노리는 조직은 셀 수 없이 많고 뒷골목은 피 마를 새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뉴욕에는 하나둘 질서가 자리 잡았다.

구역이 나눠졌고 총질보단 중재와 타협에 익숙해졌다. 인종의 용광로답게 피부색으로 나뉜 조직들 그리고 차차 세분화된 분파는 나름 건전한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깡패가 괜히 깡패일까.

법도 의리도 도리도 모르니까 깡패다.

평화가 길어지면 필연적으로 전쟁을 부른다. 한 세대가 저물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혼란, 그 혼란이야말로 신흥세력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니까.


“데려와.”

“왜요? 혼이라도 내시게요?”

“월터.”

“네네. 알겠습니다.”


월터는 폰을 꺼내며 밖으로 나갔다.


‘내가 잘못하는 걸까?’


안드레는 사별한 아내가 다른 남자랑 낳은 아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미혼모였고 막심은 어린 안드레를 제 친아들처럼 키웠다. 잔인한 운명이 아내를 데려간 후 막심의 아들사랑은 보호를 넘어 집착에 다다랐다.


“보스.”


돌아온 부하의 표정이 심상찮다.


“왜?”

“레드 퀸에 문제가 생겼답니다.”


뉴욕의 유서 깊은 클럽 레드 퀸은 북동부의 모든 조직이 합의한 중립지대로 저돌적이고 난폭하기로 소문 난 라틴 카르텔이나 아프리카 무기상조차 얌전해지는 곳이다.

레드 퀸 반경 두 블록 내에선 조직 사이의 무력분쟁이 일체 금지되고 만약 이를 어길시 평의회의 제재를 당한다. 미 북동부에서 제일 잘나가는 열 개 조직의 연합은 겉으론 느슨해 보여도 그들이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에겐 강경했다.


“본국에서 감찰관이 떴답니다. 보스.”

“뭐?”

“안드레를 잡아갔습니다.”

******




“으앗!”


머리를 뒤덮은 두건이 벗겨지자 기겁했다.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건 무릎 꿇린 내 경호원들과 진탕 마셔 해롱거리던 친구들이다. 안드레는 기억을 더듬어봤다. 오랜만에 찾은 뉴욕에서 기분 좋게 놀다가... 놀다가?


“안드레이 세르게예프.”

“누, 누구냐! 컥!”


야구방망이가 배를 때리자 숨이 턱 막혔다. 침이 질질 입술과 턱, 목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안드레이 세르게예프.”

“너, 너 내가 누군. 큭!”


퍽퍽-

이번엔 좌우 뺨을 후리는 주먹질에 며칠 전 박아 넣은 임플란트가 흔들렸다.


“안드레이 세르게예프.”

“네, 넵.”

“본 적 있나?”


눈앞에 들이민 건 태블릿에 떠오른 사진이다.


“...컥!”


표정을 관리하던 안드레는 사정없이 날아드는 몽둥이에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영원할 것 같던 구타가 멈춘 건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즈음이다.

바닥에 웅크린 채 꿈틀거리던 안드레는 억지로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그래봐야 누군가의 구두만 봤지만.


“제법 깡이 있군.”


영어는 영어인데 동유럽 발음이 진했다.


‘설마?’


안드레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 본국에서 오셨소?”

“잔머리도 제법이네. 친구. 그런데 왜 병신같이 굴었어.”

“...”

“생각할 시간을 줄까?”


안 돌아가는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왜?’


왜 나지?

나는 잔챙이다. 자존심 상하거나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솔베이 패밀리는 동북부를 아우르는 10대 조직 말석에 속했고 부친이 이끄는 솔베이-포틀랜드(오리건주 포틀랜드가 아니라 메인주 포틀랜드)는 뉴욕과 보스턴에 비하면 있는지도 잘 모를 시골이다.

안드레는 언뜻 본 태블릿 속 사진을 떠올렸다.


‘어디서 봤지?’


동양인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


‘생각해! 빨리 기억해내라고!’


뉘앙스를 들으니 오래전이 아니라 최근에 벌어진 일과 관련됐으리라.


‘아!’


안드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무려 100만 달러를 건넨 아시안.


“떠올렸군.”


안드레의 반응을 예의 주시하던 상대는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어디로 보냈지?”

“...노바스코샤.”

“정확한 주소는.”


본격적인 신문이 시작되기 직전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이윽고 막심 세르게예프가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이게 무슨!”


만신창이로 널브러진 아들을 본 그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이유 없이 내 아들을 손댔다면 각오해야 할 거요! 감찰관.”

“미스터 세르게예프.”


감찰관 다닐로는 무심한 눈으로 분노한 아버지를 바라봤다.


“당신 아들은 금기를 범했습니다.”

“무슨?”

“직접 물어보시죠.”


감찰관을 지나친 막심은 아들에게 다가갔다.


“뭘 한 거니?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

“안드레!”


아무리 다그쳐도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막심은 감찰관을 돌아봤다.


“대체 뭡니까?”

“정치권에 선을 댔더군요.”

“...그 정도는 다들 하지 않습니까?”


지역 경찰과 검찰, 관료를 매수하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막심 본인도 정치권에 달러를 들이밀며 무던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신 아들은 상원의원을 목표로 정치공작에 가담했습니다.”

“What The...”


막심은 눈을 부릅떴다.

연방상원의원United States Senate

미합중국에는 50개 주가 있고 주마다 2명의 상원의원을 두었으니 총 100명의 연방상원의원이 존재했다. 양원제를 이루는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몰라도 미국에서 연방상원의원의 힘은 엄청났다. 그러니 우의를 다질 수 있으면 최상이지만 만약 악연이 되면 미국 땅에서 살아가기 괴로워질 것이다.


“너...”


막심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아들을 쳐다봤다.


“미쳤어?”

“퉷! 언제까지 시골에서 왕노릇 할 겁니까! 아버지.”


안드레는 피 섞인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이왕 걸렸으니 당당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시골 촌구석에서 왕노릇 해봐야 누가 알아줄까. 그는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큰물에서 놀고 싶었다.


“...실패한 게 아니구나.”

“제가 바봅니까.”


거래처를 잃은 것이 아니다.

거래처를 바꾼 것이다.


“누가 너한테 헛바람을 불어넣은 거야!”


그동안 손해로 치부한 금액 전부가 아들놈의 비자금이자 공작금으로 쓰였을 것이다.

짝짝-

감찰관은 박수를 쳐 주의를 환기시켰다.


“진실은 확인하셨습니까.”

“...처분은?”

“시의원이나 주의원도 아니고 연방상원의원을 건드리는 건 선을 넘었습니다. 미스터 세르게예프. 우리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끼칠 커다란 실책이죠. 하지만, 대의회는 관대합니다.”


레드마피아 대의회는 지역 평의회보다 더 강력한 질서로 유지된다.


“오랫동안 헌신한 보스를 봐서 만회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어떤?”


감찰관 다닐로는 히죽 웃었다.


“당신 부자는 연기 좀 합니까?”

******




-정태곤은 지금 캐나다에 있어.

-밀항?

-그렇지.


미국에 도착한 정태곤은 곧장 캐나다로 튀었다.


-멕시코가 아니라 왜 캐나다야?

-멕시코보단 캐나다가 나아. 미국을 오가기도 편하고.

-유흥을 포기할 수 없었나보군.

-애들을 움직여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야.

-...

-너무 싫어하는 거 아님?

-지금 내 꼴을 보고 하는 말임?


그게 무슨 소리니? 안나안나야.

자선파티와 이어진 클럽 활극?으로 말미암아 강지찬은 온갖 흑역사를 방출 중이다. 특히 클럽에서 벌어진 술대결은 벌써 전설이 되어 떠돌았다.

충격의 30연승!

한국인은 백의민족이 아니라 술의민족이 되었다.

보수적인 대한민국 관료사회에서 일개 검사의 일탈을 좋게 볼 리 만무했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적극적인 비호와 대성, 성조, 웬텔로 이어지는 엄청난 배경 덕분에 징계성 소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언론과 커뮤니티만 신나게 떠들었다.


-다들 당신의 인간미를 좋아해.

-인간미?

-높은 성에 사는 사람을 향한 경외는 때론 독이 되거든. 저들처럼 일희일비하는 한낱 인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


그녀의 말마따나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정의로운 신념으로 무장한 강인한 검사檢事, 철인鐵人 이미지가 조금은 희석됐다. 언젠가 정치인으로 나설지도 모르지만 제 나이에 어울리는 젊음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미스터 강의 요청은 거부됐습니다.”

“그렇습니까.”


강지찬의 담담한 반응에 도리어 상대가 놀랐다.


“언론에 알려지면 망신일 텐데요?”

“글쎄요. 망신은 내가 당할 거 같진 않습니다만.”


미 법무부 연락관은 웃지도 울지도 못 했다.

강지찬은 미 법무부에 정태곤 수배를 요청했지만 거부됐다. 거부한 사유는 간단했다. 대한민국 법무부와 외교채널을 거친 공식적인 요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인간의 소심한 복수다.


“그래도 FBI는 의견을 받아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꼼수군요.”


미합중국은 연방검찰총장이란 직책이 따로 없다. 즉 법무부 장관이 곧 연방검찰총장을 겸임했다. 지방자치와 분권을 중시하는 양키답게 주정부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와 비슷했다.

수틀리면 연방정부도 개무시하는 것이 주정부다.

행정도 이 모양인데 사법은 어떨까? 제 잘난 맛에 사는 법조계 인사들이 순순히 말을 들어 처먹을 리 없었다. 케이트와 백악관의 압력을 받은 법무부 장관은 꼼수를 부렸다.

50개 주정부와 지방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엔 부담스러우니 차라리 연방수사국FBI 하나로 타협을 본 것이다. 강지찬으로선 큰 불만은 없었다.

애초에 기대도 없었으니까.


‘기대가 없으니 실망할 이유도 없지.’


나라가 커지면 커질수록 행동력은 굼뜰 수밖에.

인류제국 역시 엘리자베스와 그 딸들이 없었으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천 년은커녕 백 년도 못 가서 뿔뿔이 흩어졌으리라.

법무부 건물을 나서자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미스터 강.”

“CIA?”


답하지 않았지만 맞을 것이다.

워싱턴 기념탑 꼭대기만 보이는 어느 노천카페를 찾았다.


“엘레나 화이트에요.”

“강지찬입니다.”


일본처럼 명함을 교환하진 않았다. 아니, 교환해봐야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린다.


“정태곤의 마지막 위치가 확인됐어요.”

“캐나다?”

“!!!”


평온하던 그녀의 얼굴에 파문이 인다.


“...어떻게 알았죠?”

“멍청한 놈이 잔머리를 굴려봐야... 거기서 거기죠.”

“멕시코로 도망칠 수도 있잖아요?”

“아무리 멍청해도 자기가 황금고블린인 줄은 압니다.”


멕시코? 맞다. 숨기엔 좋은 곳이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입고 있는 팬티까지 다 털릴 것이다.

도움을 줄 인맥이 있다면 모를까 돈 있는 냄새만 살짝 풍겨도 피 한 방울 살점 한 조각까지 다 발라먹을 것이다. 밀입국을 돕는 브로커와 밀수업자를 신뢰할 수 있을까?

정태곤이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


“북쪽은 그래도 멕시코보단 나은 편 아닙니까?”


미국-캐나다 국경은 브로커를 끼지 않아도 충분히 넘을 수 있다.


“캐나다 입국 기록은 없어요.”

“밀입국이군요.”

“신분증을 위조해주는 일당이 있죠.”

“그걸 혼자 진행하진 않았을 텐데요?”

“기록을 보니 유학 당시 꽤 거칠게 놀았나보더군요.”

“있는 집 자식들이 다 그렇습니다.”

“본인은 아닌가요?”

“나요? 난 이십 몇 년을 고아로 살았습니다. 유학은커녕 해외여행도 성인이 돼서야 나왔습니다.”


엘레나 화이트는 직속상관의 맘을 알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신경 쓰는 걸까.’


동맹국의 재벌 출신이고 웬텔 제국의 여황(진)과 친한 것도 알겠다. 하지만, CIA 국장이 신경 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특이점이라면 몇 년 전 벨리알과 스쳐지나갔다는 정도?


‘오지오는... 특별했어.’


피부색과 상관없이 특별했다.


‘그런데... 이상하군. 이상해.’


강지찬을 보자마자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오늘 처음 보는데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 아닌가? 이건 확실히 그리움이다.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기억 속 누군가의 짙은 향수.

얼굴을 쓸어내려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음?”

“미안합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시나봅니다. 지쳐 보이네요.”


강지찬의 걱정스럽다는 말에 엘레나는 속으로 자책했다.


‘현장을 너무 오래 떠나있었구나.’


남에게 속내를 틀길 만큼 방심했다니 요원 실격이다.


“정태곤의 정확한 위치가 특정되는 대로 알려드리죠.”

“기다리겠습니다.”


CIA와 미팅을 끝낸 강지찬은 약속대로 FBI 청사를 찾았다. 일본을 떠나기 전 급하게 잡은 약속이다.


-히토시 매클렌, 일본계 미국인. FBI 일본지부 요원.

-도움을 꽤 받았어.


한국에도 FBI 지부가 있다.

일본 FBI 지부는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


-그는 당신이 시노자키팀에 합류하기 전부터 관심이 많았어. 그리고 처음부터 호감을 보인 이유가 있어.

-왜?

-소드마스터, 아니 닌자마스터의 열렬한 팬보이거든.

-오타쿠?

-그런 기질이 있지.


FBI 본부 방문허가증을 발급받는 것도 한세월이다.


“미스터 강?”

“강지찬입니다.”

“반갑습니다. 스페셜 에이전트 리처드 포텁니다.”


리처드 포터는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어수선하죠?”

“아닙니다. 보기 좋네요.”


요원과 같이 들어간 곳은 딱 봐도 난장판이었다.

서류의 산, 21세기 디지털시대라지만 종이는 여전히 애용됐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는 첨단기기를 이용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현실은 아날로그를 벗어나지 못했다.


“뭐가 보입니까?”


다짜고짜 시험이냐?

화이트보드는 이 많은 서류를 압축한 일종의 가이드였다.

어지럽게 이어지는 선과 사진, 보고서 일부를 발췌한 문구들. 이들이 찾는 것은 모래사장의 바늘이다. 이를테면 통계 속의 통계다. 패턴이 있다고 믿는 패턴이라고나 할까.


“연쇄살인.”

“왜죠?”

“패턴이 없는 것도 패턴이니까. 이건...”


강지찬은 흩어진 현장사진 몇 개를 한곳으로 모았다.


“의도적으로 수법을 바꿨네요. 비슷하지만 다르게.”

“현장에선 모두 다른 지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문이 발견된 위치는 똑같죠.”


창문틀이나 문손잡이 같은 지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면 무시해도 좋을 패턴이지만 사체 입천장이라든가 구두 안쪽 밑창 등 불필요한 곳에 확실한 시그니쳐를 남겼다.


“지역 경찰이 도움을 요청했나요?”

“상황이 심각해지면 개입할 겁니다.”


리처드 포터는 난감한 얼굴이다.


“팀도 없이 혼자 수사한 겁니까?”

“...”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네요.”


FBI가 외부인에게 수사자문을 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히토시와는 어떤 관곕니까?”

“그의 누나가 제 아내였습니다.”


처남과 매형 사이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그런데 과거형이다.


“히토시가 당신이 홈스를 뛰어넘는 명탐정이라더군요.”

“그걸 믿었습니까?”

“누가 믿겠습니까.”

“지금은?”

“...아예 거짓말은 아닌 거 같네요.”


강지찬 입에서 연쇄살인이란 말이 나왔을 때도 딱히 기대하진 않았다. 화이트보드만 훑어도 수사 방향을 추측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범인의 서명을 확신한 건 나 빼고 그뿐이다.


“저녁 약속 있습니까? 미스터 강.”

“없습니다.”


있었지만 없어졌다.


-그를 따라가. 자기.


안나는 날 위한 어떤 쇼를 준비했다. 대본을 받아보진 못했지만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음.’


아니겠지? 나쁜 이야기는.


“제가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교외의 주택단지였다.


“좋은 곳?”

“집보다 좋은 곳은 없죠. 하하.”


리처드 포터는 웃음으로 무마했다.


“사무실만 더러운 게 아니군요. 사모님은...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다 그런 거죠.”


FBI이든 CIA든 많은 요원이 겪는 불행 중 하나가 이혼이었다. 집구석 꼬락서니를 보니 이혼했든 아니면 별거 중이란 방증이다. 애는 없나? 아직 버리지 못한 사진을 보니 아이는 없나보다.

우리는 배달된 피자와 프라이드치킨 그리고 맥주로 저녁을 때웠다. 아, 후식으론 싸구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위에는 보고했습니까?”

“뭐요? 전국구 연쇄살인범이 있다고?”


리처드는 다 마신 캔을 구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방수사국은 일을 만들어서 하는 곳이 아닙니다. 있는 일도 줄여야 할 판이죠.”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멋들어진 요원은 없다. 다들 피곤에 절은 비즈니스맨과 다를 바 없으니 환상을 갖고 입사한 엘리트는 곧 지독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검사도 똑같지.’


현장에 출동해 범인을 잡는 검사? 어지간히 짬이 되거나 특혜 받는 것이 아닌 이상 방구석에서 서류나 들여다볼 팔자다. 지검장급은 돼야 연수를 빌미로 해외에서 꿀 빨 수 있고 미국으로 연수 온 검찰 고위간부는 꽤 많다.


“살인보다 기업과 정치, 마약, 조직범죄와 연관된 사건이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실적에 반영됩니다. 그런데 그냥 살인도 아니고 연쇄살인이요? 잘해도 본전이고 자칫 미제사건으로 넘어가면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겠죠.”


연쇄살인범을 잡으면 최상이다. 그러나 잡지 못하거나 늦게 잡을 경우 여론에 의해 난도질당할 수도 있다. 누구도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 않았다.


“요원님은요?”

“제가 출세를 바라는 것 같습니까?”

“그래도 워싱턴 본부에 사무실이 있을 정도면 나름 성공한 거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리처드 포터의 직위는 기록관리 책임요원이다. 더 정확히는 행정 및 재정관리지원센터 기록관리과RMD 소속이다.


“...다들 제가 사표 쓰길 기다리죠.”

“데스크 오프?”

“위든 아래든 제 책상이 빠지길 호시탐탐 노리는 중입니다.”


미국도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했다.

FBI라고 다를까? 정치력으로 승부하는 고위간부의 승진싸움에서 업무능력은 기본이고 누구 줄을 잡는가는 중요한 승부처다. 하지만, 리처드 포터는 줄을 잡지 않았다. 그는 중립을 유지했고 승패가 갈린 순간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군대식으로 비유하면 기수열외다.


“쿠데타를 준비하는 겁니까?”

“혼자는 못 죽겠습니다. 그러니 몇 놈이라도 데려가야죠.”


사방에서 등 떠민다고 나가야 할까? 아니다. 좆같아서 그렇게는 못 하겠다. 날 무시한 연놈들을 거하게 엿 먹이고 싶다. 리처드에게 남은 것은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아니었다.

통쾌한 복수!

수사관으로선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비틀린 욕망이지만 그렇다고 비윤리적인 막장수사를 펼치진 않았다.


‘아직까지는...’


만약 그의 시도가 계속 묵살되고 반복된 좌절로 절망한다면 세상은 또 다른 괴물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웬텔과 연줄이 있죠? 미스터 강.”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요원님. 대가는 아주 클 겁니다.”

“얼마든지.”


중년, 이혼남, 왕따, 정리해고 1순위, 돌이켜보면 리처드 포터는 더는 잃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어. 자기.

-미친놈은 이용하기 편하니까?

-그것도 있고.


비틀린 웃음을 짓던 리처드가 손을 내밀었다.


“딜?”

“딜.”


강지찬은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




“윗사람을 엿 먹이면서도 내 행동에 제약이 걸리는 게 싫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뭡니까?”


갑자기 연쇄살인범을 붙잡을 순 없다.

증거도 증거이거니와 미국은 한국과 달리 지역 경찰과 검찰의 파워도 막강했다. FBI가 제아무리 날고 기는 파워엘리트집단이라도 주정부 사법기관들이 배 째라고 나오면 답이 없다.

권리침해를 무엇보다 지랄발광하는 양키 특성상 연쇄살인범을 몰래 잡았다간 진짜 총 들고 쫒아올 것이다.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 됩니다.”

“?”

“유명인을 체포하면 되요.”


강지찬은 대한민국의 교육부 장관이자 부총리를 잡아들이며 본격적인 관종검사의 길을 걸었다.


“누굴?”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 지역구 하원의원은 몰라도 상원의원은 알더군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거나 대통령 선거에 나온 후보 대부분이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거쳤다.

연방상원의원United States Senate

미합중국을 이끌어가는 힘 있는 100명의 권력자.


“마이클 밀러.”


화이트보드에 한 장의 사진을 걸었다.

나이에 걸맞은 주름진 미소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는 타고난 정치인이다.


-뇌물, 부정청탁, 직권남용, 살인교사, 불륜, 아! 외도는 범죄가 아닌가? 와! 이거 완전 권력형 비리종합선물세트인데? 제국이었으면 광장에서 조리돌림 당했어! 자기.

-말세군.


권력자는 다 부패하는 걸까? 아니면 권력이 부패 그 자체인 걸까.


“마이클 밀러면...”

“뉴욕주 상원의원.”


리처드 포터의 눈이 왕방울로 변했다.


“가볍게 연방상원의원부터 시작합시다.”


말하고 보니 뭔가 이상한데?

연쇄살인범보다 상원의원이 더 잡기 힘든 것 아닌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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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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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세요. 강철신검입니다. +21 23.04.12 8,935 0 -
37 요셉 -37화- +16 24.05.27 1,079 101 38쪽
36 요셉 -36화- +16 24.05.18 1,420 94 38쪽
35 요셉 -35화- +39 24.04.16 2,036 101 79쪽
34 요셉 -34화- +52 24.02.29 2,265 117 79쪽
33 요셉 -33화- +55 23.09.04 2,933 136 17쪽
32 요셉 -32화- +13 23.09.04 2,007 95 29쪽
31 요셉 -31화- +24 23.07.25 2,861 134 20쪽
30 요셉 -30화- +23 23.07.18 2,673 133 25쪽
29 요셉 -29화- +22 23.07.11 2,762 129 22쪽
28 요셉 -28화- +15 23.06.29 2,842 128 17쪽
27 요셉 -27화- +13 23.06.27 2,610 124 20쪽
» 요셉 -26화- +9 23.06.26 2,615 120 22쪽
25 요셉 -25화- +11 23.06.22 2,828 132 24쪽
24 요셉 -24화- +20 23.06.20 2,817 141 26쪽
23 요셉 -23화- +11 23.06.16 2,824 140 15쪽
22 요셉 -22화- +11 23.06.14 2,778 137 23쪽
21 요셉 -21화- +12 23.06.12 2,880 126 20쪽
20 요셉 -20화- +12 23.06.06 3,195 152 29쪽
19 요셉 -19화- +15 23.06.02 3,049 157 30쪽
18 요셉 -18화- +14 23.05.29 3,073 144 25쪽
17 요셉 -17화- +10 23.05.26 3,200 150 23쪽
16 요셉 -16화- +23 23.05.23 3,324 158 24쪽
15 요셉 -15화- +15 23.05.18 3,528 147 36쪽
14 요셉 -14화- +17 23.05.16 3,341 177 17쪽
13 요셉 -13화- +12 23.05.15 3,313 131 24쪽
12 요셉 -12화- +23 23.05.12 3,499 166 20쪽
11 요셉 -11화- +16 23.05.10 3,431 134 20쪽
10 요셉 -10화- +10 23.05.08 3,484 132 17쪽
9 요셉 -9화- +15 23.05.07 3,617 16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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