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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요셉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3.04.11 23:59
최근연재일 :
2024.04.16 02:55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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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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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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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요셉 -17화-

DUMMY

결론부터 말하면 정씨놈들을 만나러 가진 못했다.


“압수수색은 보류해.”

“알겠습니다.”


정태석 소유 펜트하우스 압수수색영장 발급은 기각됐다.


“외압이냐고 안 물어봐?”

“물어보면 뭐 바뀝니까?”

“...”

“충성.”


부장검사의 똥 씹은 표정을 뒤로한 채 방으로 돌아왔다. 어설픈 미소와 로봇처럼 딱딱한 동작으로 맞이하는 식구들, 김대수 사무장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밀린 사건이 많습니다. 검사님.”


강지찬은 자유를 얻었지만 또 자유롭지 못했다. 검사의 일반사무에선 해방됐지만 오늘은 특별한 임무를 받았다.

윤미정 아나운서는 싱긋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강 검사님.”

“한 달도 안 됐습니다만?”

“하루가 1년 같았거든요.”


검찰은 다시 촬영을 허가했다.


-더 뽑아먹을 게 있나?

-검찰 지휘부는 부담스러운 정치권에서 연예계 실태조사로 시선을 돌리려는 거야. 대놓고 취재를 허락할 순 없으니 당신으로 물타기하는 거지.


강지찬만큼 잘생기고 몸 좋고 이슈 있는 검사를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고 누가 봐도 훌륭한 광고판인 셈. 테이저를 쏘고 삼단봉을 또 휘두를지 모를 폭탄은 촬영 핑계로 내돌리는 것이 좋겠다고 지휘부는 판단했다.

안타까운 착각은 그가 얼마큼 막가파인지 지휘부는 몰랐다. 촬영에 보여주려고 미리 준비한 사건 몇 개를 처리한 뒤 지검을 나섰다.

강지찬이 방문한 곳은 옛 직장이다.

벨로라인 테크놀로지

베스타 글로벌 산하 용역회사.

강지찬이 신분증을 꺼내기도 전에 간부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마중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보더니 더 깍듯해졌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강지찬 검사님.”

“아, 네.”


환영할 일인가?


-당신 재벌이야. 재벌. 그것도 같은 범성조잖아.


대성이 베스타 글로벌이나 벨로 테크에 영향력이 있느냐 물으면 있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없다고 말하기도 그랬다.


“박진규 씨를 볼 수 있을까요?”

“박진규면...”

“지금은 과장입니다. 본부장님.”

“박진규 과장 알지요. 알고말고요.”


본부장이 옆으로 눈짓하자 부장으로 보이는 중년이 바로 아는 척했다. 박진규는 그동안 꽤 유명세를 치렀나보다. 하긴 강지찬이 이슈가 되면 될수록 그의 과거는 낱낱이 해부됐다.


“오랜만... 입니다. 강 검사님.”

“편하게 해요. 편하게.”

“아, 하하. 하하하. 제가 어떻게...”

“방송 마이크가 여기까지 닿진 않아요.”

“그렇지? 하하.”


우리는 촬영팀도 간부들도 물린 채 멀찌감치 떨어졌다.


“아따, 무서븐 눈깔로 쳐다본다. 새끼들.”

“은근히 즐기시네요?”

“나도 몰랐던 내 안에 작은 아이가 속삭이더라고.”

“아직도 리중딱입니까?”

“시발놈들.”


박진규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리버풀FC의 진성 훌리건이다.


“어쩐 일이야? 명절도 아닌데.”


둘은 명절이 아니더라도 간간이 연락은 주고받았다. 박진규로서는 대단히 황송했는데 재벌과 친한 선후배로 지내는 것은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다.

만년 대리로 끝냈을 커리어를 이어간 것도 좋고 운전대에서 손을 놓은 것도 좋았다. 박진규는 현재 직급과 삶이 만족스러웠다.


“결혼 안 해요?”

“결혼은 무슨...”

“누님이 언제까지 기다려줄 거 같아요? 빨리빨리 해치워요.”


이지원 대리, 아니 그녀도 이제 과장이다.

사내연애를 꺼리는 건 좋게 헤어지든 나쁘게 헤어지든 소문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결혼하면 되지 않는가? 이것도 장단점이 있었다.

이지원과 박진규는 배차 담당자와 기사로 원래 오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강지찬의 번갯불 같은 입·퇴사를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많은 언론에서 그들을 취재해갔다.

강지찬의 회사생활은 어땠는지 칭찬이든 꼬투리든 뭐든 돈이 됐던 시기가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서서히 시들해지다 성매매 게이트를 계기로 다시 주변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윤미정의 촬영팀 역시 벌써 이지원과 박진규의 인터뷰를 따갔다.


“생각해봤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어렵지 않아요.”


강지찬은 박진규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현재 삶과 직급에 만족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기회를 걷어찰 정도로 욕심이 없진 않았다. 강지찬이 제안한 일자리는 안나가 만들려는 종합물류회사다.

앞으로 만들 것이 많다. 작은 물품이야 기존 물류회사를 이용해도 되지만 기밀을 요하는 부품은 보안을 위해서라도 보증된 물류회사가 필수다.

트럭과 기차, 비행기와 선박 등 모든 운송수단을 망라한 유통기업을 출범하려면 당연히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생체단말을 이용해도 되지만 반드시 사람을 써야 했다.

왜라는 질문에 안나는 이렇게 답했다.

‘생산성이 박살나는 만큼 대중은 좋아하거든.’

인건비에 효율을 추구하는 순간 모든 기업은 악덕이 된다.


“좋아. 할게.”

“오, 그럼 인수인계만 잘하고 넘어와요.”

“인수인계할 것도 없어. 사실 이 자리는 너한테 잘 보이려고 위에서 던져준 거니까.”

“누님도?”

“지원이는 능력대로 승진한 거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저 멀리 인파를 헤치고 이지원이 다가왔다.

생글생글 웃는 낯을 보니 사진 찍을 생각에 신나나보다. 여자는 관심 받길 좋아했다. 부러움 가득한 긍정적인 관심에 목말랐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우리 동생.”

“형한테 들을 답이 있어서 왔습니다.”

“답?”

“네. 방금 들었습니다.”

“뭔데?”

“이사 자리를 제안했거든요.”


이지원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대성?”

“아니, 안나 회삽니다.”

“어? 안나 씨가 회사를 만들어? 그럼 당연히 가야지! 나는? 난 제안 없어?”

“누님도 오시게요?”

“오빠가 가면 나도 가야지. 그럼 난 안 데려가려고 했어?”

“어... 아니요.”

“너 방금 좀 고민했다?”

“하하. 누님이 오면 나야 좋죠.”


강지찬은 얼른 자세를 바꿨다.


“지금 과장이니까 넘어가면 부장 달아주나?”

“이사도 가능합니다.”

“이사? 와!”


이지원은 좋다고 손뼉을 쳤다.

박진규 나이도 어느새 서른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학벌도 나쁘고 벌어둔 돈도 별로 많지 않은 그를 결혼할 남자친구라고 부모님께 소개했던 날 이지원은 가족의 차가운 태도에 큰 상처를 받았다.

물론 재벌과 안면 있다는 여러 인터뷰와 뉴스 덕분에 더 싫은 소리는 안 듣지만 그게 남친을 주눅 들게 했다. 그러니 작은 회사라도 이사 직함을 달면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

박진규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날 뭘 믿고 이사 자리를 줘?”

“형은 뭘 믿고 그때 제게 잘해줬어요?”

“어...”


그는 고아에다 계약직에 불과한 신입을 첫날부터 알뜰히 챙겼다. 딱히 뭘 더해주기보단 무시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았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박진규는 선량한 사람이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었지.”

“저도 그냥입니다.”

“그래도 나 말고도 학력 좋은, 윽!”


박진규는 옆구리에 틀어박힌 이지원의 주먹에 신음했다. 더 주둥이를 놀렸다간 저 주먹은 옆구리가 아니라 면상을 향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호호. 이이가 뭔 세상 좋을 헛소리를 한담. 신경 쓰지 마.”

“누님은 언제부터 괜찮으시겠어요?”

“나야 당장 내일도 가능하지.”

“잘 마무리하고 넘어오세요.”

“안나 씨한테 연락하면 될까?”

“아직도 어려우세요?”

“그, 그렇지.”


강지찬은 편히 대하는 그녀였지만 이상하게 안나는 어렵다. 이국적이고 화려한 외모 때문에? 그것도 영향이 있지만 알 수 없는 아우라에 압도당했다.


“너무 어려워하지 마세요.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으니까.”

“하, 하하. 그래.”


근래 빵! 다시 뜨기 전까지 지난 3년 동안 강지찬이란 이름 대신 안나의 약혼자만 있었다.

강안나

남친이 좆?도 없을 때부터 사랑하고 약혼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더구나 약혼자 성을 따라 안나 강으로 개명했단 소식이 전해지자 거의 국모 대우를 받았다.

물론 일부 여성에겐 가부장을 옹호한다고 개까였다.


“이거. 니가 부탁했던 거.”


악수로 헤어지기 직전 박진규가 넘긴 건 종이봉투다.


“네 다음 타겟이 이것들이야?”

“네.”

“쯧쯧! 내 된통 걸릴 줄 알았다.”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 보겠네요.”

“고마워.”


강지찬이 돌아오자 윤미정과 촬영팀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얼굴이다. 그래도 여기는 듣는 귀가 많아 말을 아끼는 기색이다. 간부들의 배웅을 받으며 벨로 테크를 나섰다.

윤미정은 그제야 질문을 던졌다.


“뭘 쫓는 거죠?”

“지금 내 꼴이 어떤 거 같습니까?”


강지찬은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쳤다.


“광대?”

“맞아요. 저는 광댑니다. 나팔 부는 광대.”

“기사로 내달라는 건 아닐 테고... 꿍꿍이가 있군요?”

“예리하시네요. 윤 기자님.”


윤미정은 기자란 호칭이 마음에 든 얼굴이다.


“부총리의 목을 단두대로 보낸 순간 국민들은 엄청난 희열을 느꼈을 겁니다. 고위공직자를 제 손으로 해치운 것처럼 착각했죠. 엄밀히 따지면 부총리는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멨습니다.”

“지지부진한 수사를 성토하는 건가요?”

“성역은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성역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밀실 야합을 통해 만들어진 가이드를 충실히 따르죠.”


검찰총장이 휘두르는 칼춤에 목이 달아날 이들은 철저히 조율이 끝난 고기방패였다. 국회에서 한둘, 내각에서 서넛, 기업인과 스포츠스타 그리고 연예인 예닐곱 등등 각계각층에서 면피할 미끼를 단두대로 차례차례 투척하는 것이다.

이건 수사가 아니라 연출된 희극이다.

국민을 즐겁게 만드는 드라마.

당연히 해피엔딩을 그렸다.

누구를 위한 해피엔딩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전 살면서 제가 뱉은 말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강지찬은 종이봉투를 뜯었다.


-세원로지스.


옛 경일그룹 전반을 담당했던 기업물류회사다. 당연히 경일의 자본이 들어가고 총수일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회사다.


-시험은 통과야.


박진규는 안나의 시험을 통과했다.

강지찬이 그에게 요구했던 정보는 유통산업 제일 아래에 존재하는 트럭커들의 은밀한 소문과 교류였다. 사람들은 밀수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또 자유분방하게 이뤄지는지 잘 몰랐다.

밀수는 범죄가 맞다.

뉴스를 통해 밀수를 적발하는 사례가 보도되면 국민은 수사기관이 잘 대처한다고 느끼겠지만 밀수범죄는 줄어들기는커녕 나날이 늘어났다. 마약밀수만 심각한 범죄가 아니다. 온갖 밀수가 전국에서, 전 방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담배? 볼펜? 중고폰? 중고차? 심지어는 생리대도 밀수한다.

마약만 뉴스에 나오는 이유는 나머지 것들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기 때문이고 어떻게 보면 밀수도 외화벌이 수출산업이다.


-정가놈들은 위기를 느꼈어. 그리고 납작 엎드렸지.


국내에서 벌이던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접어버렸다. 당연히 그 여파는 중국에서 들여오던 마약에도 영향을 끼쳤다. 정씨형제들에게 마약은 주업이 아닌 관계를 형성하는 부업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것도 쌓이고 쌓이면 재고를 감당할 수가 없다.

어쨌든 대금은 지불해야 했으니까.


-이쪽 사정이야 어쨌든 바다 건너에서 마약은 계속 들어오고 대금은 나가야 해. 그것이 강원도 마약사건과 더불어 성매매 게이트로 나락 가버렸어.


아무리 작은 도매상이라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공안정국에 가까운 지금 이 나라에선 절대 약을 팔 수 없어. 그럼 남은 곳은?

-일본.

-빙고!


정씨형제들은 들어온 마약을 도로 밖으로 토해내야 했다.

박진규의 정보는 애초에 필요 없었다. 안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가 쓸 만한 인물인지 확인하고 싶었나보다.


-오늘이야. 자기.


강지찬은 카메라를 향해 안나에게 지도받은 자신만만한 연기를 펼쳤다.


“특종 좋아합니까?”

******




“영감님.”

“오랜만이네요.”

“누구 때문에 대판 깨져서요.”

“좋다고 달려들 땐 언제고 다 내 탓입니까?”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말이.”


성진영 경감은 너스레를 떨었다.

광수대와 경찰서 지원 인력은 세원로지스가 소유한 한 물류창고를 포위했다. 소란을 느끼고 나온 주민도 있고 오가던 시민 일부는 벌써 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거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 강지찬의 등장이다.


“강지찬 검사님 파이팅!”

“정의구현! 정의구현!”


어디 아이돌 팬사인회를 방불케 하는 호응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지찬이 나쁜 놈을 잡으러 왔다고 아무 의심 없이 믿어버렸다. 물류창고 정문은 튼튼한 창살문이고 그 너머 경비소장으로 보이는 양복쟁이가 곤란하단 표정으로 다가왔다.


“사유지를 무단으로 침입하시면.”

“다물고 문이나 열어.”


영장을 보여줬지만 문은 열릴 기색이 없다. 아마 위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열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을 것이다.


“문 여세요! 문 열라고!”


성진영이 문을 두드려도 경비인지 깡패인지 모를 것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강지찬은 성진영에게 손 내밀었고 커다란 오함마Sledgehammer를 건네받았다.


“괜찮겠습니까? 영감님.”

“이제 와서 내 걱정입니까?”

“아니요. 제 걱정입니다.”


히죽! 세상을 향한 경멸 섞인 냉소.

성진영 이 양반은 경찰이 안 됐으면 분명 깡패가 됐으리라.

그러든가 말든가 강지찬은 창살문 앞에 섰다.


“열어.”


열지 마.

이건 내 마음의 소리.


“열어.”


그렇지! 계속 뻗대라고!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문 열어.”


지잉-

때마침 강지찬의 폰이 진동하자 발신자를 확인했다.

정태석

이제야 좆됐음을 깨달았나?


“강 검! 이런 식으로 나올 거요?”

“먼저 전화를 다 주시고 많이 쫄리시나보네요? 정태석 씨.”

“거기 뒤져봐야 나올 거 없어! 강 검도 괜한 헛수고하지 말고 나중에 성찬이랑 같이 찾아와! 내 좋은 곳에서 대접할게.”

“형님께 전화하니 그쪽은 잘 모른다는데?”

“성찬이가 그래? 짜식.”


정태석은 되도 않는 허세를 부렸다.

어렸을 때 정씨형제는 거칠게 놀았고 같은 재벌 자제끼리도 우열은 있었다. 재계 서열은 대성이 높을지 몰라도 쾌락의 도道는 경일을 당할 수 없다.

이미 10대 시절부터 이성에 눈뜬 정태석이 제공하는 유흥에 친구들은 홀딱 빠졌다. 강성찬을 유흥의 길로 이끈 것도 정태석이다. 물론 언제부턴가 소원해졌지만.


“강 검, 우리 이러지 말자. 대화로 해결할 수 있잖아.”

“왜 그리 벌벌 떨고 그래요. 정태석 씨. 뭐 꿀이라도 감추셨나?”


김범수를 협박하던 자신감은 어디 갔는지 다급함에 목소리가 떨렸다.


-정태곤이 방금 미국행 표를 끊었어.

-정태영은?

-일본으로 튀려고 준비 중. 아, 방금 신한국도 대응팀을 가동했어.


신한국에도 소식이 들어갔나보다.


-이 새끼들 이제야 좀 다급해졌네. 이래야 옳지. 죄진 새끼가 당연히 쫄려야지. 어디서 여유로운 척이야.


녹스 엔터에서 튄 불똥이 바빌론으로 확산되면 신한국이 돌린 페이퍼 컴퍼니가 드러날 위험이 있다. 재벌은 다 위장기업 몇 개쯤은 가지고 있었다. 정의로운 이미지를 연출한 그 오지오조차 수많은 더미 코퍼레이션을 굴렸다.


-신한국은 분명 꼬리를 자르려고 시도할 거야.

-맞아. 애새끼들이 사고를 쳤으니 그 애비놈이 움직이겠지.


바빌론에 투자한 자본은 외국을 거쳐 세탁된 자금이다. 들여다본다고 바로 탄로 날 리 없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불편한 것이다.

활빈당 테러 이후 신한국 오너일가의 평판은 땅바닥을 기었다. 예전엔 세상의 눈과 체면을 고려해 고상한 척했지만 어차피 시궁창에 처박혔으니 이제는 될 대로 되란 식이다.

1티어 재벌이 막가파로 나오면 불가능은 없다.

고남성

부회장 딱지를 떼고 회장 자리에 오른 그는 그날 이후 흑화했다. 총구 앞에서 맛본 무력함은 곧 분노로 바뀌었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물리적인 힘에 집착했다.


-고남성은 이상택을 경쟁자로 인식했어. 자기.

-체급 차이가 극심할 텐데?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 하지만, 특정분야에선 이상택이 고남성을 압도해.


무력武力

이상택은 예비역 대령 출신이자 군·경·정보기관 쪽으론 대한민국 최고의 실력자다. 현 국정원장이 직속 후배니 말 다했다.


-신한국이 설립한 제이원 테크는 양지 사업에 주력하고 뒤로는 깡패를 후원해 영향력을 넓히는 중이야.

-형제 중에 누가 제일 성질이 급해?

-고경환. 폭행과 음주운전, 과실치사로 전과도 있어.

-그놈이 키군.

-작업해?

-아직은 놔둬.


음주운전으로 일으킨 교통사고에 사람이 죽었다. 그게 바로 활빈당 테러의 단초가 된 사건이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 강 검. 응? 체면 한번 세워줄까? 수갑 차고 사진 좀 찍히면 돼? 강 검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수화기 너머 정태석은 이제 애원하는 지경이다.


“앞으로 계속 볼 사인데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뭐 개돼지들한테 뭔가 보여줘야 하는 건 알아. 알지. 근데 법정 가도 실형이 나오긴 힘든 거 알잖아? 나야 바지 한둘 세우면 걔들이 다 덮어쓰면 되거든.”


애원 다음에 허세인가? 순서가 왠지 뒤죽박죽이다.


“걔들이 다 떠안고 자수하면 법정에서 할 수 있는 게 뭐야? 없잖아? 개돼지들이 욕 좀 하겠지만 시간 지나면 다 잊어. 그래서 개돼지인 거야. 빨리 끓어오르는 만큼 빨리 식거든.”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어?”

“피해자? 누가 피해잔데? 아, 계집애들? 아니, 울 동생이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걔들 피해자 아니다? 다 내 고혈 빨던 거머리야. 거머리. 내가 걔들한테 갖다 바친 명품이랑 성형수술비, 피부에 처바른 돈을 합하면 수십억이야. 수십억. 그거 다 처먹고 나한테 그러면 안 돼. 양심불량이지.”


도리어 본인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나도 원칙이 있다? 강 검. 미자는 안 건드린다고.”


거짓말, 미성년자를 원하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있으면 어떻게든 구해줬다.


“자기가 선택한 걸 남 탓하면 안 되잖아? 안 그래? 내 말이 틀려?”


그 사고방식은 평범한 사람과는 달랐다.

어디서 봤을까?

이런 유형의 인간을 본 적이 있다. 유연한 남 탓, 자기를 끝없이 합리화하고 사사로운 것을 대의와 공익으로 포장하는 현란한 스킬.

누군가가 떠오른다.


-알란 그라임스.

-그 미치광이가 왜?

-닮지 않았어?

-누구랑? 설마 이 정가놈이랑 닮았냐고? 그 미치광이가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저런 놈이랑 비교하는 건 좀...

-왜?

-품격이 없잖아. 품격이.


미치광이 과학자에게 품격 따위가 있었나? 제국이 분열하도록 방치한 잘못은 분명 내게 있다. 그러나 인류제국을 쪼개버린 직접적인 사건을 일으킨 건 알란 그라임스, 아니 그 미쳐버린 신념과 유지를 이어받은 영생론자들이었다.

하이-메타몰포시스 모-리세리아트

인간의 껍데기를 벗고 유체된 영기에서 순수한 영혼인자만 추출한 상태를 그들은 하이-메타몰포시스라 불렀다. 인간종을 뛰어넘어 인간 이상으로 거듭난다는 영생론의 골자는 더 많은 플루토니언을 수집, 합성, 연성, 합일을 이루는 선각先覺이다.

아버지의 영무는 오직 자신의 격을 스스로 높임으로써 신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이 추악한 망령들은 타인의 경험을 약탈함으로써 영혼의 격을 강제로 높이려고 시도했다.

일부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부작용을 동반했다.

‘지각의 상실과 본능의 회귀.’

어떤 날은 선하고 어떤 날은 악했다.

또 어떤 날은 얌전하다가도 어떤 날은 미쳐 날뛰었다. 피와 살을 갈구하던 살인귀는 다음 날 부처도 울고 갈 성인이 되어 자비와 관용을 설파했다. 나, 내 자신이 사라지는 그 희미해지는 감각을 평범한 인간은 견딜 수 없다.

닫힌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겐 모두 ID가 있다.

위상우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세계가 있고 그곳을 사는 모든 인간은 시뮬레이션 원형으로부터 추출된 원본 ID에서 변형된 것이다.

정태석은 몇 번째 정태석일까? 아니, 그의 원본은 정태석이란 이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창조된 세계의 모든 것은 재활용 가능한 자원이었다.

원본의 기억.

망각된 세계의 비밀.

월드 엔진이 아무리 덧씌우고 덧씌워도 원본은 훼손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제1 연구소 콜로서스 원의 탄생 배경이다.

제국 말기 더는 연금과학이란 명칭은 쓰지 않았다. 학계에선 마동력학 혹은 마도과학으로 불렸다. 이것을 제창한 과학자가 닥터 소프다.

닥터 소프

그것은 누군가의 이름이기보단 별명이자 칭호다. 제국과학연구소의 기틀을 다지고 황제와 함께 연금과학의 선두에 섰던 과학자 앨리 그린우드의 아들 알란 그라임스가 바로 1대 닥터 소프였다.

1대 닥터 소프 알란 그라임스는 극한의 고스트카피를 통해 약 500년 가까이 살았다. 황실의 허가를 받지 않은 카피는 명백한 불법이고 닥터 소프를 맹신하는 이 과학자집단이 오늘날 모리세리안의 근거가 되었다.


-김진의 원생세계는 모리세리안에 의해 오염됐어.


엑소스켈레톤 트리건

삼생자 김진의 전생세계는 모리세리안의 침략을 받았다. 그는 무려 삼생三生 세 개의 세계에서 전투를 벌이는 기염을 토했고 다른 어떤 각성자보다 강력한 이유가 있다.

모리세리안에 의해 많은 세계가 오염됐다.

하지만, 시스템은 모리세리안의 침략을 방어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조차 적합자가 이겨내야 할 시련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넓은 범주로 보면 모리세리안은 여전히 제국에 속했고 그들의 포지션은 ‘반역자’ 역할이다.

그러므로 오염된 ID 역시 그저 새로운 배경일 뿐이다.


-정태석도 오염됐어. 아니, 빌런 전부가 다 오염됐지. 시스템은 창의적인 악당보다 진부한 악을 선호했는지도 몰라.

-진부하다는 건 많이 읽혔다는 뜻이잖아?

-맞아. 그만큼 많이 팔렸다는 뜻이지.


우리가 진부하다 느끼는 건 그만큼 많이 접했다는 것.


-그리고 난 악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아.


계도啓導는 그래도 말을 들어 처먹을 가능성이 눈곱만치라도 있는 사람에게 시도하는 것이다.


“자기가 선택한 걸 남 탓하면 안 되잖아? 안 그래? 내 말이 틀려?”

“네. 틀렸습니다. 이 병신새끼야.”

“...”

“내 말 잘 들어. 도망칠 기회는 지금뿐이야. 다음엔 내가 니 모가지를 따러 갈 거거든.”


말이 통하지 않는 죄악의 짐승.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 쓰레기에겐 몽둥이가 약이다. 법? 그건 겸사겸사 시간이 남으면 고려할 옵션 중 하나다. 이것들이 어디로 도망가고 숨든 나는 끝까지 추적해 모가지를 따버릴 것이다.

강지찬은 악을 사냥하는데 도가 텄다.


“Run.”


뛰어! 죽기 살기로.

강지찬의 손짓에 성진영은 성을 향해 돌진하는 장수처럼 소리 질렀다.


“부숴!”


와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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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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