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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요셉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3.04.11 23:59
최근연재일 :
2024.04.16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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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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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0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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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요셉 -24화-

DUMMY

“현재 우리나라에 있답니다.”

“...돌아가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넘어온 CIA 국장 일라이자는 쓴웃음을 흘렸다. 미리 약속하지 않았으니 상대를 욕할 수도 없었다. 서로가 이렇게도 어긋날 수 있다니 참 재수도 없다.


“그래서 평가는?”

“주의가 필요한 인물은 맞습니다.”

“고작 주의?”


강지찬을 대상으로 위협평가를 지시했다.


“벨리알과 접촉이 있었는데 왜 우리 목록엔 없을까?”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착오라... 이거 믿고 맡길 수 있겠어?”

“...점검하겠습니다.”


어떤 조직도 완벽한 곳은 없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분명 빈틈과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정보국은 다른 어디보다 완벽함을 추구해야 했고 우리의 실수나 실패는 곧 엄청난 피해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일본에서 류세이와 접촉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정태영 때문인가?”

“거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확인 중입니다.”


일라이자는 인상을 썼다.

현재 CIA 정보자산이 유럽과 중동에 집중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시아를 허술하게 관리하는 건 아니었다. 오지오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각국 정보국의 시선이 한반도에 집중됐고 미국은 ODNI 연락관과 지부를 설치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물론 지금은 철수한지 오래다.


‘점검이 필요하겠어.’


아주 강도 높은 점검이 필요해 보였다.


“국장님. 비서실입니다.”

“비서실이 어디 한두 군데야?”

“웨스트 윙입니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었다.


“태프트?”

“일라이자. 지금 어디요?”

“태평양 상공이에요.”

“대통령이 긴급안보회의를 소집했소. 내일 아침 9시.”

“12시간 뒤에 열릴 거면 긴급이란 말을 왜 넣나요?”

“당장 소집하라는 걸 내가 겨우 말린 거요.”

“제임스 록 때문에?”

“맞소.”


닥터 제임스 록

본명은 제임스 휴잇-에이브러햄 록이다.


“우리가 경고하지 않았나요. 태프트. 기회가 있을 때 잡아들이라고.”

“지난 얘긴 하지 맙시다.”

“CIA 입장은 변함없어요. 제거.”

“...”

“미국인에 대한 암살명령이 탐탁찮은 거 알아요. 하지만, 제임스 록은 국익에 득은커녕 해만 될 위험인물이에요. 놈을 계속 방치한다면 더 많은 국내외 테러가 벌어질 거예요. 장담하건대 대통령은 재선이 아닌 탄핵을 걱정해야 할 겁니다.”


자국민을 체포가 아니라 암살하는 건 일반적인 관점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게 맞다.

제임스 록, 그는 테러리스트다.

웃긴 건 중동이나 아랍계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순수 미국인 테러리스트란 사실이다. MIT에서 물리학 종신교수에 오른 양키가 테러리스트가 되다니 놀랍고 황당한 경우지만 이유를 알면 무조건 욕하기도 힘들다.

9월 11일

미국 역사의 최대오욕으로 기록된 그날 닥터 제임스는 아내와 두 아들을 잃었다. 이후 그는 미국의 적에게 복수하는 팔코넷이란 조직을 결성해 전 세계에 선전포고했다.

처음엔 다들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평생 공부만 매달린 학자가 뭘 할 수 있겠느냐 지켜만 봤었다. 그러나 선전포고 한 달 후 벌어진 이란대사관 폭탄테러에 세계가 경악했다.

사망 12명, 부상 77명.

총 사상자 89명을 발생시킨 폭탄테러에 이어 중동 테러리스트가 벌인 참수사건의 역逆참수, 명예살인을 일으킨 주모자를 암살하거나 심지어는 무슬림 학교에 불을 질렀다.

팔코넷이 세운 원칙은 하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에는 피!’

너희가 테러한다면 우리도 테러한다.

너희가 우리 여자와 아이를 죽이면 우리도 너희 여자와 아이를 죽이는데 망설이지 않겠다는 선언은 온갖 비난을 받았지만 한편으론 일부에선 커다란 지지를 이끌어냈다.

다들 쉬쉬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테러리스트를 후원한다는 것을 안다. 팔코넷 역시 익명의 후원자를 두고 미국인을 죽이겠다고 난리치는 중동 테러리스트와 남미 카르텔을 직접 응징했다.

여기에 많은 미국인이 겉으론 몰라도 속으론 환호했다.

인간성을 상실한 야만이라느니 비난이 끊이지 않았으나 본래 양키는 복수에 진심인 인간들이다. 복수는 항상 옳다. 스파게티 웨스턴에 왜 열광하겠나? 복수는 우리의 당연한 권리다.

일라이자도 개인이라면 제임스 록을 이해했다.

한순간 가족을 잃은 그의 증오와 복수심에 손가락질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CIA 국장이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 사고하고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제임스 록은 똑똑하고 조직적이며 카리스마 있습니다. 많은 미국인이 심적으로 그를 지지하죠. 팔코넷이란 조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질 거고 언젠가는 우리가 손쓸 수 없는 괴물이 될 겁니다.”

“...”

“그때는 늦어요. 태프트.”

“자료를 정리해서 내일 보고하세요. 일라이자.”


통화를 끝내자 대기하던 비서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뭐랍니까? 국장님.”

“여전히 모르겠어. 그 속을.”

“속을 모를 사람이긴 합니다. 비서실장은.”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이면 구르고 구른 정치인이다. 남에게 속내를 들킬 정도면 그 자리에 앉지도 못했다. 정보국에 괴물이 많다고 하지만 안보보좌관으로 잠깐 경험했던 백악관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레인보우팀 준비시켜.”

“제거를 승인하겠습니까?”

“모르지. 하지만, 우린 준비돼있어야 해. 두 번 실수하면 안 돼.”

“...알겠습니다.”


CIA가 제임스 록을 주시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닉...’


변절한 CIA 요원.

중동 섹션 책임요원이었던 닉 홀츠의 변절로 정보국은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 물론 그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부당한 아들의 죽음은 미국의 사법정의에 대한 한계를 드러냈다.

충성을 다 바친 조국이 아들을 빼앗아간 것이다.

이 역시도 개인적으론 이해하지만 배신과 매국을 용납할 순 없었다. CIA는 즉각 변절자 제거를 명령했다. 세계최고정보기관의 명성이 무색하게 닉 홀츠는 CIA의 수배를 잘만 피해 다녔다.


‘그건... 어쩌면 최고위원회와 관계됐을지도 몰라.’


오지오의 죽음 이후 일라이자는 편집증적인 의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았던 악마왕의 최후는 그녀에게 큰 충격과 후유증을 낳았다.

CIA 국장조차 그 실체를 알지 못했던 신비단체, 도시괴담이 진실로 드러난 순간 기존의 상식 모두가 부정당했다.


‘닉 홀츠와 제임스 록은 분명 관계가 있어.’


팔코넷에 중동 정보를 제공하는 배후가 닉 홀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왜?

조국에 복수하려고?


‘아니야.’


변절하긴 했어도 그렇게까지 악랄한 인간은 아니었다. 단지 미합중국이 앓는 모순이 그를 밑바닥까지 떨어뜨린 것이다.


‘최고위원회는... 사상이야.’


그것은 소문이자 유령이다.

실체가 있지만 또 실체가 없는.

그것을 움직이는 건 돈이나 권력이 아니다.


‘공포와 두려움.’


막연한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어떤 믿음의 형상이 눈앞에 등장할 때 인간은 오감이 전하는 최고의 공포를 맛볼 수 있다. 현대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국가, 그것을 넘어선 초권력에 근접했던 것이 메가코프 다국적 기업이다. 그런데 그조차도 뛰어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벨리알이었다.

오지오는 아시아인이었지만 피부색으로 그를 예단하는 것은 어리석다. 아메리카와 유럽, 아프리카를 넘어 아시아까지. 빛과 어둠의 세상에서 벨리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냥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다.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치른 수많은 경쟁.

경기의 승자가 트로피를 들기 직전 죽었다면 그는 과연 승자일까? 벨리알이 세우고 다듬던 질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지난 3년, 서로를 간보는 시간은 끝나간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그리고 일라이자는 몇 시간 뒤 또 다른 시대를 여는 총성을 들을 수 있었다.


“밀란코비치가 사망했습니다. 국장님.”

“...”

“레드마피아가 일통됐습니다.”


그녀는 차량 뒷좌석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붉은 대공이 패밀리 대의회를 소집했습니다.”

“이참에 대관식을 치를 생각이군.”


붉은 대공, 아니 이제는 차르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강지찬.’


일라이자의 이번 아시아행은 강지찬은 핑계고 해외정보자산 점검이 우선이었다. 아니라면 일정이 어긋날 일도 없었다. 정보국 누구도 강지찬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일라이자만 관심 갖는 걸까?


‘그때랑 똑같아.’


벨리알을 처음 만났던 그날.

그 충격적인 기억이 영혼 깊이 각인됐다.


‘우주의 기운이 그에게 모이는 것 같았지.’


다양한 경험과 끊임없는 노력이 훌륭한 인간을 만든다고 믿는 그녀에게 오지오는 뭔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 여자에 미쳐있을 틴에이저 때부터 다른 소년과 달리 특별했다.

나이와 성별, 인종은 상관없다.


‘운명...’


마치 그렇게 되어야 하는 숙명처럼.

지배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강지찬, 위치 확인됐어?”

“그는.”

******




“끼얏호우!”

“?”


강지찬의 강력한 서브가 탁구대 모서리를 정확하게 맞고 튕겨나갔다. 에이프릴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지. 아가씨. 맹수의 왕조차 연약한 사슴새끼를 잡는데 최선을 다하는 법.”

“이익! 다시 해!”

“마이 서브.”


강지찬은 강력한 톱스핀이 걸린 서브를 날렸다.


“끼얏호우!”

“익!”


당연히 이쪽의 승리다.


“훗! 스포츠 천재자매라더니?”

“닥쳐!”


강지찬은 승리자의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케이트의 대저택에 초대받은 그는 불퉁한 에이프릴, 줄리아나 자매의 투정과 심술에 그대로 노출됐다. 아, 오태양의 의심어린 시선도 함께였다.

강지찬은 이 적대적인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승부를 제안했다.

‘날 함부로 대하고 싶다면 날 이길 것!’

거칠 것 없는 자매는 냉큼 수락했다.

그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고 기대 이상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학업성취능력 이상으로 스포츠도 탁월했는데 승마나 발레, 펜싱 같은 고상한 운동은 물론이요 육상과 구기에서도 놀라운 결과를 냈다.

강지찬과 자매의 대결은 금방 내기로 발전했다. 고용인들과 평소 친분이 두터운지 편하게 내기판이 벌어진 것이다. 오태양이 직접 내기를 주재했다. 판돈을 접수한 결과는 8대2, 강지찬이 2고 자매가 8이다.

하지만, 첫 종목인 사격부터 강지찬이 승리했다.

뭐 사격은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는 분위기. 하지만, 두 번째 종목인 펜싱부터는 훈련 없이는 타고난 성별의 우위로 결정되지 않는다.

당구는 강지찬 승, 줄리아나 패.

볼링은 강지찬 승, 에이프릴 패.

블랙잭은 강지찬 승, 줄리아나 패.

사격은 강지찬 승, 에이프릴 패.

펜싱은 강지찬 승, 줄리아나 패.

농구는 강지찬 승, 에이프릴 패(자유투 대결).

소프트볼은 강지찬 승, 줄리아나 패.


“끼얏호우!”

“젠장!”


탁구도 강지찬 승, 에이프릴 패.


“지독하군. 지독해. 지독한 남자야. 미스터 강.”


오태양은 박수를 치는 한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판은 져줄만 한데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강지찬의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너무나 예쁜 미인을 저렇게 기를 쓰고 이겨야 속 시원한가? 오태양은 순간 강지찬이 동성애자가 아닐까 의심했다. 아빠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매는 누가 봐도 초절정미녀였다.

남자라면 약해질 수밖에.

그런데 강지찬은 자비 없이 두 자매를 처발랐다. 아무리 약혼자가 있다고 해도 저렇게 악랄하게 나올 것까진 없지 않나? 내 딸에게 관심 없는 건 환영하지만 또 저렇게 일방적으로 발리는? 것을 보는 아빠마음도 좋진 않았다.

씩씩거리며 분을 못 참는 딸들을 위해 아빠로서 위신을 세울 때다.


“미스터 강. 나랑 한판하지.”

“노인네라고 안 봐줍니다. 전.”

“하하! 건방진 친구군.”


환갑이 한참 넘은 오태양이지만 관리를 잘했는지 근육이 울끈불끈했다.


“종목은요?”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민속놀이지.”

“윷놀이? 제기차기?”

“어허! 한국인의 민속놀이는 당연히.”


오태양이 가리킨 건 컴퓨터다.


“스타지.”

“오! 자신 있습니까?”

“...녀석이랑 참 많이 했었지.”


오태양은 누굴 떠올리는지 감상에 젖었다. 무작정 미국으로 향한 그는 솔직히 모든 것이 막막했다. 전처의 마음이 그렇게 무너지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자신을 자책했다.

하나뿐인 아들은 엄마가 아닌 아빠를 택했다.

왜?

본래 자식은 엄마와 더 친하지 않나? 그 질문에 아들은 이렇게 답했다.

‘엄마는 나 아니어도 챙겨줄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아빠는 혼자죠.’

그날 오태양은 아들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육아는 여자나 하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때론 아들과 친구처럼 또 형제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아!”


슬그머니 손을 잡아오는 아내의 손에 오태양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일대일 헌터!”

“콜!”


치즈 러시로 밀었다.


“다시!”


다시 치즈 러시.


“다시!”


또 치즈 러시.


“다시!

“그만하시죠.”


강지찬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겼지만 이긴 것 같지 않다.


-이건 뭐... 지오 녀석만큼 게임을 못 하는군.

-걔는... 많이 이상하긴 했어.


기계신 주제 게임고자라니?


“최종적으로 제 승립니까?”

“아니! 아직 한판 남았어!”

“그래! 이번엔 우리 둘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해!”


최종승리를 선언하려던 그에게 태클이 들어왔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그건 좀...”


2대1은 반칙 아님? 하지만, 전투적으로 빛나는 눈동자와 빽빽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였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방관하는 케이트를 보아하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끝날 것 같아 승낙했다.


“좋습니다. 레이디들. 종목이 뭡니까?”

“풋볼!”

“오!”


Football! 미식축구는 미국의 국기나 마찬가지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잘나가는 남자 대부분은 풋볼 스타다. 아버지, 그러니까 황제도 풋볼을 잘하셨단다.

월반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아버지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도 미국 4대 대학스포츠를 평정하는 괴물 같은 신체능력을 보였었다. 특히 대학미식축구에서 그가 기록한 미쳐버린 터치다운 횟수로 말미암아 초음속의 기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흠! 괜찮겠습니까?”

“혹시 퍼킹 섹시스트?”

“놉! 단지 풋볼은 높은 피지크를 요구하니까 아무래도 여자가 불리하죠.”

“상관없어! 고 어헤드!”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긴 하지만 강지찬의 피지크도 양놈 못지않게 훌륭했다.


“하하! 이거 전승으로 끝날 거 같군요. 케이트. 미안해서 어쩌죠?”

“쟤들은 좀 져봐야 해.”

“어디 가서 자랑하기는 그러네요.”


여자를 이겼다고 좋아할 이유는 없다.

아! 오태양을 스타로 이긴 건 자랑해도 좋겠다.

대저택 뒷마당엔 잔디 깔린 운동장이 있었다. 하, 어떻게 집에 축구장이 있냐? 미국 땅덩이는 한국과 비교하면 욕 나오게 넓었다.


“어?”


풋볼 아니었어?


“왜요?”

“풋볼이잖아요? 풋볼.”

“맞아요.”

“저건 풋볼이 아니라 싸커 아닌가요?”

“미스터 강도 싸커를 계집애나 하는 스포츠로 여기나요?”

“아니요!”


케이트의 말에 강지찬은 펄쩍 뛰었다.


“요즘 여성계는 풋볼부르기운동 중이에요.”


그러니까 싸커도 풋볼이다? 웁스! 조심해야지. 재수 없으면 성차별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은 개나 줘라.


“아니, 그래도 저건 풋볼이 아니라 싸커죠!”


MLS, 메이저리그 싸커라고 본인들이 직접 싸커로 불렀다.


“?”


케이트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왜 명칭에 집착하죠?”

“아니, 집착하는 게 아니라...”


안나의 비웃음이 들렸다.


-쫄리지?

-...

-개발이 탄로 날까. 풉!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진정한 풋볼! 미식축구로 합시다!”

******




내기는 막판에 개같이 멸망했다.

내기 내내 구겨졌던 자매의 얼굴은 막판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케이트는 내 거대한 홈런볼과 본관 유리창이 와장창 부서지는 장면을 보면서 물개박수를 쳤다. 오태양은 날 쓰레기 보듯 훑었다.

민속놀이 패배자 주제! 비웃을 자격이 있나!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재미있었으면 됐다. 잼있었으면.


“한잔?”

“맥주로 하겠습니다.”


남들은 다 잠들었을 새벽.

오태양과 강지찬은 남자만의 동굴인 별관 아지트 옥상에 앉아 술잔을 나눴다.


“고마워.”

“뭐가 말입니까?”

“그냥 다 고맙네.”


오태양은 감사를 표했다.


“한국에 가면서도 아내를 데려오리라 기대하지 않았어.”

“가족은 함께해야죠.”

“...지오를 잃은 충격이 우릴 갈가리 찢어놨지. 내 딸들도 떠나간 오빠를 그리워했어.”

“오늘 보니 대단히 전투적이던데요?”

“그런 열정적인 모습은 내게도 오랜만이야.”


열의에 불타던 모습, 강지찬을 찍어버리겠단 결의에 가득한 자매의 모습은 오태양도 오랜만이었다.


“신기하더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여자인 형제가 많았습니다.”

“고아원 말인가?”

“네.”


사실 보육원은 아니다.

안나의 자매들.

그러니까 엘리자베스의 딸은 하나같이 유별나고 개성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에이프릴과 줄리아나는 속이 비칠 정도로 투명했다.


“묻고 싶은 질문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

“편하게 물어보세요.”


망설이던 오태양은 결심이 선 듯 입술을 뗐다.


“자넨... 요원인가?”

“그 말씀은 부회장에 의해 키워진 비밀집단에 속했냐는 질문이겠군요.”

“...”

“답은 놉니다.”

“하지만, 그들을 아는군?”


오지오가 거느린 수많은 점조직은 알게 모르게 유명했다.


“부회장과 오래전부터 알았냐고 물으신다면 네. 맞습니다.”


안나가 설정한 오지오는 일단 강지찬의 숨은 후원자였다.


“무슨 사업과 관계된 심각한 사이냐면 노.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그러니까 형동생 같은 사이였습니다.”

“형동생?”

“아드님은 특별했습니다. 그렇죠?”

“...그래. 녀석은 특별했지.”

“저도 특별합니다. 그리고 우린 서로를 알아봤죠.”


오태양은 눈을 치떴다.

아빠는 아들의 특별함을 미국에 넘어온 뒤에야 눈치 챘다.


“자네도?”

“오해하진 마세요. 그렇다고 미래를 예지하진 못하니까. 그냥 남들보다 힘세고 똑똑한 정도?”

“...대단하군.”


그러고 보니 강지찬을 보자마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어.’


싱숭생숭한 알 수 없는 기분이 거슬렸는데 이유를 알자 그럴 수도 있겠단 결론을 내렸다. 아들만큼 특별한 사람이면 남과 달라도 다를 수밖에. 그러자 강지찬의 모든 언행과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오태양은 가식이 아닌 진솔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였군. 케이트가 자네한테 관심을 가진 게... 그래. 그렇겠지.”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오태양.


“녀석도 자네를 특별하게 여겼겠구먼? 친하게 지냈나?”

“자주 보진 못해도 가끔 안부 묻는 사이? 그냥 아는 동네형이 한 명 생긴 셈이죠.”

“형, 형이라...”


아들은 형제를 원했었다.

여자 말고 남자인 형제.

오태양은 강지찬을 바라보며 감회에 잠겼다. 혹시 케이트와 나 사이에 아들이 있다면 그와 같은 모습일까? 세월이 야속했다. 좀 더 젊을 때 아내를 만났다면 더 많은 자식을 보았을지도 모를 텐데.

오태양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들자 강지찬은 속으로 혀를 찼다.


-뭐지?

-남자가 나이를 먹으면 여성 호르몬이 증가해.

-나는?

-우리에게 육체는 중요하지 않아.


영혼이 육신을 지배할까? 아니면 육신이 영혼을 강제할까? 인간의 성품이 환경에 따라 바뀐다면 육신 안에 갇힌 영혼 역시 영향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네... 내 아들 안 할 텐가?”

“한국에 계신 제 아버지가 화낼 텐데요?”

“대성이가 어렸을 때 나랑 친했었어.”


대성과 성조는 범성조에 속하니 오태양과 강대성이 친분 있는 건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대자, 그래. 내 대자가 되게.”


대자代子, 천주교 개념이긴 한데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어차피 뿌리는 같았다. 오태양은 나이롱신자지만 미국에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다음 날 아침 강지찬은 별관에서 자다 날벼락을 맞았다.


“일어나.”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앙칼진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에이프릴과 줄리아나가 보였다.


“너흰 부끄러움도 없니?”


어디 엊그제 처음 본 외간남자 숙소를 불쑥불쑥 들어오나?


“일어나! 시간 없어.”

“뭔.”


막무가내로 일으켜진 강지찬은 곧 전신거울 앞에 섰다. 에이프릴이 손뼉을 치자 수많은 이동식 옷걸이가 들어왔고 그는 곧 쇼윈도의 마네킨이 되었다.


“이건 폼이 너무 짧지 않아?”

“음. 너무 지루해. 패스.”

“핏은 가능하면 타이트하게.”

“하지장이 제법 기네? 구두는 골이 깊은 걸로 가자.”

“시계? 요즘 누가 시계 자랑해. 차라리 넥타이핀으로 마무리하자. 다이아 많이 붙은 걸로.”


손가락만 까딱이면 고용인이 알아서 세팅했고 품평이 끝나면 바로 스타일을 교체했다. 반항을 시도할까 하다 흐뭇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케이트와 오태양 부부를 확인하곤 꼼짝하지 못했다.

옷과 액세서리를 골랐으니 이제 분칠할 차례.

그전에 씻어야 했다. 거대한 욕실에 처박혀 중세귀족 체험?을 했다. 남, 그것도 여자 손에 둘러싸여 목욕하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여황의 남편 시절에도 목욕시중 따윈 받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조된 강지찬은 전신거울 앞에 다시 섰다.


‘흠. 나쁘지 않군.’


강상미와 강주미도 강지찬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지만 확실히 아메리카 여왕벌 출신 에이프릴과 줄리아나 자매에 비하면 순진했다. 그녀들에게 패션은 전쟁과 같고 사교는 말 그대로 전쟁터다.

오늘 강지찬이 참여(왜 참여하는지는 그도 모른다)할 전쟁터는 미국 대통령이 참석을 예고한 자선파티였다. 왜?라는 질문에 리무진 맞은편 좌석에 앉은 케이트는 미소를 지었다.


“이 나라에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대통령을 통하는 게 최선이니까요.”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확실히 스케일이 달라지네.

-그러려고 인맥을 쌓고 친해지는 거지.


왜 안나가 우쭐하는 걸까?

파티장소는 화려했다.

입구부터 철저한 경비와 통제 아래 있었는데 파파라치든 기자든 괜찮은 사진을 건지려고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강지찬은 의연했다.

오히려 양손에 꽃을 쥐고 포토라인에 서는 대담함을 보였고 에이프릴과 줄리아나도 오랜만에 대중의 관심을 즐겼다. 오지오의 죽음 이후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던 로열패밀리의 등장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순식간에 관심을 빼앗긴 셀럽은 속으로 투덜거릴지 몰라도 감히 항의하지 못했다. 화제와 이슈거리를 찾아다니는 유튜버는 이를 신나게 중계했다.


“지금 제 앞에 에이릴, 줄리 자매가 떴습니다!”

⤷뭐? 진짜?

⤷진짜네! 에이줄 자매 뜸!

⤷뭔데? 오늘 무슨 날인데?

⤷케이트 여사랑 그 남편도 보이네!

⤷어? 근데 자매 사이에 있는 저 새끼는 누구?

⤷원숭이?

⤷퍼킹 레이시스트 좀 쳐내라!

⤷오늘 대통령도 참석한다던데? 그것 때문에 온 듯!


“샘의 안타까운 사고사 이후 활동이 없다시피 했는데 드디어 에이줄 자매가 다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였습니다! 근데 저 남자는 누굴까요? 케이트 사일러스 부부가 동행한 걸 보면 부모도 허락한 파트너란 뜻인데... 누군지 아시는 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맞아! 나도 어디선가 본 것 같아

⤷눈 찢어진 아시안은 다 비슷하게 생겼어

⤷퍼킹 레이시스트 좀 빨리 쳐내라고!

⤷아! 그거네! 그거!

⤷뭐?

⤷그거!

⤷그게 뭐?

⤷소드마스터! 코리안 소드마스터!

⤷어라? 맞네! 코리안 퍼킹 닌자마스터!

⤷사무라이?

⤷아시안 제다이! 밈으로 본 거 같아


“아시안 제다이! 저도 본 적 있습니다! 근데 에이줄 자매와는 어떤 사이일까요? 굉장히 친밀해 보이는데? 혹시?”

⤷뭔 개소리야?

⤷우리 애기들이 남자를 사귈 리 없어!

⤷스물 중반인데;; 애기는 좀;;

⤷그동안 스캔들이 아예 없기는 했어

⤷당연하지! 스노우 화이트보다 더 맑고 투명한데!

⤷그게 이상하지! 연애를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뭘 안 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다 했겠지

⤷손가락 잘 놀려. 브로. K&S나 웬텔 이름으로 고소장 날아오면 신세 조진다

⤷그래서 저 아시안 제다이 이름이 뭔데?


“지금 찾아보니까 코리아에서 나름 유명한 인물이네요. 캉지찬? 칸지찬? 콴지찬? 아, 아시아는 이름이 뒤에 오죠? 그러면 지찬 캉?”

⤷그냥 아시아식으로 불러! 뭐라고 순서를 바꿔?

⤷맞아! 아시아 이름은 아시아식으로 불러야지!

⤷시발! 칭챙춍이 몰려온다!

⤷퍼킹 레이시스트 좀 어떻게 해봐!

⤷아니, 그러니까! 저 아시안이 왜 미국에 있냐고!

⤷번역기 돌려보면... 우리나라로 도망친 카르텔 총책 중 한 놈을 잡으러 왔다는데?

⤷카르텔? 설마 마약 카르텔?

⤷맞음! 저 아시안이 자국에서 정키놈들 때려잡는데 선수라고 함!

⤷마약수사관? DEA?


“어? 지금 캉지찬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어? 뉴스에서 본 거 같은데?

⤷일라이자 레인!

⤷누군데?

⤷CIA 국장이잖아!

⤷와! 여자가 중앙정보국 국장이야?

⤷;;존나 몇 년 됐는데;; 뉴스 좀 봐라


일라이자 레인은 케이트와 오태양 부부에게 눈인사하며 강지찬 앞에 섰다.


“일라이자에요.”

“강지찬입니다.”


악수를 나눴다.


“참... 만나기 힘든 사람이군요. 미스터 강은.”


40대 후반, 희미해진 젊음 대신 완숙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희로애락을 초월한 몇몇 감정이 담겼다.

호기심?

두려움?

호기심은 알겠는데 두려움은 뭘까?


“미스터 강? 미스터 강으로 부르는 게 맞을까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요.”


일라이자는 악수하며 다가와 속삭였다.


“그랜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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