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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요셉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3.04.11 23:59
최근연재일 :
2024.05.27 22:38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132,347
추천수 :
5,232
글자수 :
444,410

작성
23.06.12 12:08
조회
2,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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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글자
20쪽

요셉 -21화-

DUMMY

“죄송해요.”

“속은?”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인다. 일본도 나름 해장이란 개념이 있는지 뜨끈한 국물이 나오는 밥집을 찾았다. 언지원은 입맛에 맞는지 국물을 두 번이나 리필했다.

식사 후 찾은 아침 카페는 한산했다.


“한 선배는요?”

“없더라.”


한채원은 해 뜨기 무섭게 숙소를 나섰다.


“우리 가이드는 누가 하죠?”

“사람이 올 거야.”


찬밥 신세긴 한데 일본이 완전히 신경을 끈 건 아니었다.


“아리모토 겐집니다.”

“강지찬입니다.”


들은 대로 일본에선 명함 교환에 진심이다. 명함 교환을 잘 치러야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네는 상대를 건성으로 대했다간 낭패당하기 딱 좋다.

강지찬도 두 손으로 명함을 받고 또 건넸다. 진지한 태도로 임하자 아리모토 겐지도 알게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시험인가?

영악하게 간보는 행동을 꼭 나쁘다고 욕할 순 없었다. 생판 남과 첫 대면인데 당연히 상대가 어떤 놈인지 알아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언지원입니다.”


강지찬이 판을 깔아주자 언지원도 눈치껏 공손히 명함을 교환했다.


“귀국이 요청한 피의자 수배는 아직 도쿄도에 한정된 상탭니다.”

“전국은 어렵습니까?”

“전국수배령을 내리려면 공안위원회의 심의가 필요합니다.”


정태영에게 걸린 혐의는 일단 탈세와 탈루, 제3자 뇌물공여, 마약류 관리법 위반 등 총 아홉 가지. 일본 검찰이 외국인 수배를 순순히 받아들인 이유는 마약 때문이다. 만약 다른 혐의였다면 난색을 표하며 시간을 끌다 흐지부지했을 것이다.

남의 나라 범죄자를 잡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수사당국은 없다. 하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은 어느 나라든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과거 정태영의 잦은 일본 방문이 꼭 마약과 관련된 건 아니겠지만 경일이란 거대한 보호막이 걷힌 그가 기댈 건 수년 동안 이 나라에 뿌려진 정가家의 검은돈뿐이다.

한마디로 빚 받으러 온 셈.

하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그때는 경일이란 튼튼한 뒷배 덕분에 채권이 유효했다면 지금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장부? 그딴 쓰레기 영수증 따위 누가 신경 쓸까.

그런데 신경 쓰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내각공보참의관 미우라 소웁니다.”

“내각공보참의관?”

“생소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군요. 그냥 특별직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프리랜서?”

“그렇다고 해두죠.”


서글서글한 인상과 달리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강지찬은 이런 유형의 인간을 알고 있다.


-킬러?

-라이선스를 가진 블랙이야.

-정부의 사냥개군.


국가는 절대로 깨끗하지 않았다. 겉으론 정의를 표방할지라도 국익 앞에 선악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일본어를 정말 잘하시는군요. 모르고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으로 착각했겠습니다.”

“용건이 뭡니까?”


한채원과 언지원은 저 앞에서 열정적으로 협의에 임하는 중이다. 한채원은 몰라도 언지원은 대충할 것 같더니 똑 부러지는 성격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다.

강지찬은 한 걸음 물러나 구경만 했다.

전투적인 그녀들을 응원할 겸 은근한 접근을 유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선한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미우라 소우는 진짜 있지만 저놈은 아니야.

-그럼?

-다테 타카시, 전 자위대 국방정보국 OCIT.

-에이전트군.

-지금은 프리랜서 해결사 겸 분석가.


이런 사람을 미국 등에선 로비스트로 부른다.

처음부터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자도 있고 보통 일선에서 물러난 은퇴자나 조직을 위해 희생한 해직자를 위한 두 번째 기회로 활용했다. 미우라 소우, 아니 다테 타카시는 후자다.


-목적은?

-주요인물 포섭을 위한 사전작업쯤? 통상의 첩보활동이지.


어느 나라든 다 하는 평범한 외교 및 첩보활동이다. 지일파든 친일파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포섭하든 말든 하지 그냥 돈과 이익을 논하는 관계는 오래가기 힘들다.


‘뭣?’


다테 타카시는 강지찬과 눈이 마주친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전 자위대원이자 심리전 전문가, 대공첩보분야의 스페셜리스트로서 나름 명성을 쌓은 그였기에 의심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두려움이라니?

왜?

상대는 한국인 검사이자 재벌가 도련님일 뿐인데?

하지만, 동물적인 본능이 그를 이제껏 살아있게 만들었다.


“미안합니다.”


용건을 묻는 상대의 질문에 다테 타카시는 즉시 물러섰다. 평소라면 너스레를 떨며 친화력을 발휘했겠지만 그의 감은 맹렬한 경고를 보내왔다.

도망쳐!

살고 싶다면!


-제법인데?

-눈치 하나는 귀신이네.


뒷걸음치며 빠르게 멀어지는 상대를 보며 강지찬과 안나는 동시에 감탄했다. 보통은 상식에 어긋나는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고 주저하는데 다테 타카시는 자기애 넘치는지 육감을 넘어선 초인적인 결단력을 보였다.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인치곤 실로 과감한 판단이다.


‘빌어먹을!’


회의장을 벗어나 거의 뛰듯이 비상구를 내려가는 다테 타케시의 속마음은 포섭할 대상을 미리 분석한 분석관들을 천번만번 찢어 죽이는 중이다.


‘저게 어딜 봐서 일반인이야!’


20세기 말 마지막 냉전에서 활약하던 괴물들을 실제로 보았던 그의 트라우마가 재발했다.

현대 첩보전은 치열한가? Yes!

그러나 냉전의 끝물을 지나 21세기 초까지 살았던 괴물들과 비교하기엔 요즘 것들?은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라떼는 사람 몇 명 잡아먹는 것 정도론 명함 한 장 내밀기 힘들었으니까.

전설적인 블랙요원들 암살자들 심리 및 첩보전문가는 거의 초능력자에 가까웠다. 근데 그런 비슷한 느낌을 강지찬에게서 받았다. 다테 타카시, 본인이 미친 것이 아니라면 윗선에서 잘못 판단해도 엄청나게 잘못 판단한 것이다.

저건 도련님이나 왕자님 따위가 아니다.


“우리 얘기 좀 할까요?”


로비를 벗어나려던 다테 타카시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미우라 소우, 아니 다테 타카시 상.”

“!!!”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괴물 맞잖아!’

******




대한민국은 여전히 뒤숭숭했다.

기세를 잡은 검찰과 정치권의 눈치싸움은 점입가경이고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재계는 하나둘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정치는 이념싸움이다. 사실과 진실이야 어쨌든 당파의 당리당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 장관의 구속이 현 정부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냈다면 대통령 비서실장의 자살은 이 정권이 절름발이를 넘어 사지를 절단 낸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역대급 식물정권

대통령 이운상의 대국민담화는 성난 민심을 다독이지 못했다. 이쯤 되면 야권이 탄핵카드를 만지작거릴 텐데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는 건 국회도 식물이긴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검찰만 신났다.

강규현 검찰총장은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 본인이 직접 칼을 꺼내들었다. 마치 뒤가 없는 사람처럼 정치인과 기업인, 대한민국 기득권층의 단단한 카르텔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깊은 곳에선 어느 정도 합의가 있었다.

누가 총대를 멜 것이냐.

어디까지 보여줄 것이냐.

대한민국을 해체할 계획이 없다면 결국은 합의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 밀실에서 이뤄진 야합이란 사실. 강지찬이 정씨형제를 겨냥해 날린 가벼운 잽에 화들짝 놀란 몇몇은 이제까지의 느슨한 자세를 접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개중 제일 활발한 이들이 신한국 고씨형제였다.

다름회

대한민국 재벌 3, 4세가 주축이 된 친목·사교 모임은 근래 뒤숭숭한 나라꼴 때문에 만남을 자제해왔다. 그런데 고경환이 앞장서 전화를 돌리자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어차피 호텔 한 층을 통째로 빌린 프라이빗 행사니 누구 눈치를 볼 이유도 없다. 오늘 신한국호텔은 다름회 행사를 위해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웠다.

지난 몇 년 동안 테러를 당한 호텔이란 오명을 씻으려고 콧대 높은 양키 보안전문가를 대거 채용했고 나아가 보안요원을 가장한 조폭을 동원해 한탕을 노리며 어슬렁대는 기레기를 손봤다.

악만 남은 파파라치도 신한국호텔 근처는 꺼린다.


“어째 썰렁하네?”

“아직 눈치 보는 애들 많지. 나도 나올까 말까 고민 좀 했으니까.”

“쯧! 솔직히 우리랑 뭔 상관이야?”

“아예 상관없진 않지. 유준이랑 지용이도 구속됐고 현상이도 곧 조사받는다더라.”

“그 새끼들은 내 걸릴 줄 알았다. 계산이 지저분하니까 걸리는 거야. 나처럼 깔끔하게 계산하면 뒤끝이 없어.”

“맞아. 잘 놀았으면 값을 지불해야지. 푼돈 아끼겠다고 지랄하니까 사고 터지지.”

“이래서 대가리 나쁜 놈이랑 놀면 안 돼.”


재벌이라도 다 친하진 않았다. 범汎 뭐라고 묶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늘 모임 참석률을 예전과 비교하면 6할쯤. 고경환은 홀을 둘러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내 말을 씹어?’


오지오가 죽은 이후 고씨형제의 사교계 지위는 확실히 올라갔다. 재벌 총수치곤 오채령은 젊은 축에 속했고 새로운 후계자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성조는... 늙은 호랑이야.’


고경환은 형과 경영권을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제멋대로 살아왔지만 누구보다 자기 깜냥을 확실히 파악했다. 무엇보다 총수가 되면 제약이 너무 심했다. 톱에 올라서면 지금처럼 한량으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뭐 형은 날 경계하지만... 총수는 귀찮아.’


그 답답한 자리를 왜 서로 가지려는지 잘 모르겠다.


“경환아.”

“잘 왔다.”


재벌 3, 4세 사이에도 급은 있었다. 홀에 모인 이들은 준재벌급 혹은 재벌 중에서도 방계에 속했다. 고경환은 룸에 모인 면면을 둘러보곤 속으로 피식 웃었다.


‘다음 세대는 우리가 성조를 넘어선다.’


오지오란 근본을 잃어버린 성조에게 미래는 없다.


“다들 잘 지냈어?”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경환아.”

“맞아. 아빠는 나대지 말라고 잔소리지 아랫것들은 눈 부라리고 감시하지 죽을 맛이다. 오늘 안 불렀으면 정신병 걸렸을 듯.”

“난 미국은커녕 일본도 가지 말래.”

“나도 밖에서 사고 치지 말란다.”


푸념을 늘어놓는 친구들.


“정가놈들이랑 엮인 사람?”


고경환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


갑작스런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중에 걸리면 커버 못 쳐줘.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어... 현상이가 총대 메기로 한 거 아니었어?”

“걔는 걔고.”


정씨형제는 고씨형제 못지않게 음흉한 종자들이니 신한국과만 협력하진 않았을 것이다. 정태석은 어렸을 때부터 노는 것과 잔머리만큼은 대단했었다. 무식한 삼남이나 과묵한 장남과 달랐다.


‘뒷구멍을 파놨겠지.’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바빌론이 검찰에 털리고 정태석이 구속된 지금 지분을 매입하는데 쓰인 페이퍼 컴퍼니와 자금 출처가 드러나면 곤란해진다.


‘차명이 드러날 일은 없어.’


케이맨 제도에 만든 페이퍼 컴퍼니는 월스트리트 금융공학의 정수로 그 지독하다는 미국 국세청도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러니 대한민국 금융기관이 알아채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쪽은 형이 알아서 할 테고...’


고경환이 할 일은 바빌론이 제공한 유흥을 넙죽넙죽 받아먹은 인맥들의 입막음이다.


“내 말 잘 들어. 정태석과 관련된 모든 연락을 끊어. 쳐다보지도 마. 알겠어?”

“계속 연락하면?”

“받지 마.”

“그래도 돼? 그러다 앙심 품고 폭로하면 골치 아픈데...”

“놈은 절대 못 해.”


살고 싶으면 입도 뻥긋 못 한다.


“정태석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둘은?”

“태곤이는 걱정할 거 없어.”


미국으로 도망친 못난 셋째는 걱정하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도망치는 것 하나만큼은 신의 경지에 이른 녀석이다. 검찰에 잡히지만 않으면 된다. 잡히지만 않으면.


“태영이형은...”


제일 까다로운 사람이 정태영이다.

본래라면 경일그룹을 물려받았을 이.

사교계에서 정태영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나랑은 안 맞아.’


어떤 사람은 그를 뛰어난 책략가 혹은 과묵한 경영자로 높게 평가했고 또 어떤 사람은 음흉한 변태 또는 무능한 후계자로 멸시했다.

고경환의 평가는 후자에 가깝다.


‘변태.’


정태석도 S지만 정태영은 초S였다.

그는 특히 일본문화에 심취했는데 사람을 결박하는 매듭 묶기에 진심일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재벌가에서 극도로 꺼리는 동성애자였다. 놀라운 사실은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이 몇 없다는 것이다. 형 고경민도 가면으로 진심을 잘 감추지만 정태영도 그에 못지않았다. 고경환은 그와 마주칠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좆같은 눈빛이었어.’


남자가 남자를 사냥감으로 봤다.

동성애자끼리야 합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없지만 정태영은 마음에 드는 남자의 성적 취향은 알 바 아니었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인성질인가?


‘똥꼬충새끼.’


고경환은 본인을 좋은 놈이라고 생각한 적 없지만 정태영과 비교하면 그래도 자기가 낫다.


“너 소문 들었어?”


정태영에 대한 대응을 결정하지 못했지만 이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화제는 빠르게 바뀌었다.


“무슨 소문?”

“강지찬이 말이야.”

“강지찬이? 대성 강지찬?”

“어. 걔 이번에 물 먹었더만.”

“중국이 지랄하는데 걔라고 별수 있겠어. 왜? 좌천이라도 당했대?”

“특수본에서 쫓겨났대. 징계성 출장으로 도쿄에 있다드만.”

“총장이 싸고돈다더니 어떻게 징계를 당하긴 했네. 너무 나대긴 했어. 새끼가 겁도 없이.”

“얘가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교육을 못 받은 건지 감히 허락 없이 우리 애들을 건드리더라.”

“모르긴. 다 알고 지랄한 거야. 강지찬이 만만하게 보지 마. 똑똑한 놈이야.”

“검사가 뭐 대단하다고. 그거 다 머슴놈들이 할 일이지 우리 같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이들의 관심은 강지찬에게 옮겨갔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돼.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24년 동안 살았는데 못 찾았다? 말이 되나?”

“너도 가짜설 믿어? 근데 형제끼리 닮았던데?”

“맞아. 강성찬이 미남은 절대 아닌데 묘하게 닮았어.”

“성형했다는 소문은?”

“고아가 성형?”

“사실이면 진즉 말 나왔지. 걔 성형해준 병원 입장에선 광고비 수십억은 절약할 대박인데.”

“그보다 약혼자가 더 신기하더라.”

“강안나? 예쁘긴 존나 예쁘더만.”

“동유럽 애들이 이쁘긴 이뻐. 야, 우리 다음엔 유럽 갈래?”

“아서라. 니 얼굴론 어림없다.”

“돈으로 사면 돼지. 돈다발 흔들면 가랑이 안 벌리고 배겨?”

“그래서 니가 결혼을 못 하는 거야.”


여기 모인 재벌 3, 4세 중엔 가문을 이어갈 후계자는 없다. 차남, 삼남, 막내 중에서도 계열사 대표는커녕 체면 때문에 달아준 본부장이나 사외이사가 전부다.


“본부장님.”


고경환도 본부장이다.


“왜?”

“강성찬 부회장이 밖에 왔습니다.”

“어?”


부하의 속삭임에 고경환은 깜짝 놀랐다.


“안으로.”


뻥-

안으로 모시라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아주 꼴값들을 떠시네. 꼴값들을.”


강성찬은 룸 내부를 둘러보며 혀를 찼다.

경쟁에 밀렸거나 경쟁이 아예 안 되는 쩌리들, 다름회의 실체는 실패자끼리 물고 빨고 합리화하는 병신집합소였다. 돈만 있는 병신들.


“성찬 형님, 윽!”


웃는 얼굴로 강성찬을 맞던 고경환의 미소는 금방 일그러졌다. 배를 가격한 발길질에 뒤로 발랑 넘어진 것이다. 강성찬의 돌발행동에 양측 경호원은 놀라며 빠르게 가로막았다.

고경환은 황당함과 수치에 휩싸인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무, 무슨 짓입니까!”

“너 이 새꺄. 내 동생 뒷담 까고 다니지?”

“그, 그건.”


평소라면 헛소리 말라고 부인했겠지만 배를 맞은 충격에 머리가 굳어버렸다.


“빵에 갔다 왔으면 얌전히 자숙할 것이지 전과자 주제 어디 우리 훌륭하신 검사님 뒷담을 까고 다녀?”

“지금 우리 신한국을 모욕하는 겁니까?”

“우리? 신한국? 하, 회사랑 자길 일체화하는 병신이 진짜 있었네? 어이, 고경환이. 내 말 잘 들어.”


강성찬의 얼굴은 살기등등했다. 그는 진심으로 되찾은 동생을 사랑했다. 아들을 잃은 뒤 어머니는 웃지 않으셨고 아버지는 시시때때로 낡은 지갑 속 어린 둘째 사진을 바라보며 한숨 쉬셨다.

부모님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우리 형제자매는 알고 있었다.

내가 우리 부모님 장남인데!

내가 강지찬이 하나뿐인 형인데!

당연히 내가 늙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어린 동생들을 알뜰살뜰 챙겨야 한다.


“내 동생 건드리면 시발! 너 새끼들 다 죽여 버릴 거야.”


아버지가 왜 국회에서 의원놈들을 패고 다녔는지 나이를 먹으니 조금쯤 이해하게 됐다.


“깝치지 마! 이 개버러지 새끼들아.”


내 가족 건드리는 놈은 다 죽어라.

******




“가족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

“나 못 믿습니까?”


그럼 믿겠냐! 새꺄!

다테 타카시는 그렇게 외치고 싶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외침을 도로 삼켰다. 정체가 발각된 이상 망신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강지찬은 역으로 제안했다.

‘서로 필요한 걸 거래하죠.’

이 얼마나 관대하고 달콤한 말일까? 하지만, 경험 많은 다테 타카시의 귀에는 제안을 가장한 협박으로 들렸다. 너 정체를 비밀로 하는 대신 뭔가를 바쳐라.

모르쇠로 잡아뗄까?


‘아니야.’


왠지 그러면 큰일 날 것 같다.


“원하는 게 뭡니까?”


이제는 거꾸로 용건을 묻고 있다.


“아이자와 유이.”

“...”


설마 그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아이자와 유이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선발대회에서 우승한 그녀는 곧바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데뷔 직후 촬영한 드라마에서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배우와 모델 심지어 가수로 성공했다. 자국에서만 유명했던 그녀의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마침내 샤넬 앰버서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남자와 관계된 스캔들 덕분이다.

오지오

아메리카에 문어발 스캔들 일리야 로빈이 있다면 아시아엔 오지오가 있었다. 연예인이 아닌 재벌임에도 그와 비슷한 인기를 누린 건 곱씹을수록 대단했다.

재벌 이상의 재벌.

한국인(사실 오지오는 미국인이다)이라면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우익언론조차 함부로 언급하지 못했다.


“그녀가 자취를 감춘 건 오 부회장의 사고 직후.”

“...”

“일설로는 일본이 키운 블랙요원의 쓸모가 다해서 폐기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말도 안 됩니다.”

“말이 안 된다? 내가 보기엔 반은 맞는 거 같은데.”

“...”

“정부가 키운 건 아니어도 누군가 키운 건 맞잖습니까?”


미인계는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수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즐겨 사용됐고 앞으로도 사라질 리 없는 효용성 높은 수단이다.


“모릅니다.”


다테 타카시는 솔직하기로 결정했다.

변명할 만큼 아는 것도 없고 알아볼 방법도 없다. 첩보분야 전문가는 맞지만 남의 비밀을 캘 정도로 높은 지위에 있진 않았다. 그리고 매국으로 오해받을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임무실패에 따른 징계를 받고 말지.


“그럼 물어보세요. 당신 상관한테.”

“...”

“아, 빈손으로 돌아가긴 그렇겠구나. 뭐가 좋을까.”


강지찬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메시지를 전하려면 화끈한 게 좋겠지?

-현 내각의 최우선 과제는 얼마 남지 않은 총리 임기야. 그리고 중의원 해산 타이밍과 이어지는 총선이지.

-선거는 인기로 결정되잖아?

-맞아.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나 똑같은 종자야.

-인기라... 광대놀음을 좀 해야겠네.

-정말?


안나는 적극적으로 반겼다.


-추천! 내가 추천할게!


내가 사랑하는 그의 멋진 모습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으니까.


-당신이 잘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예를 들면 탐정.

-탐정?

-검사나 탐정이나 비슷하잖아. 무엇보다 이 나라는 탐정에 미쳐있거든.


일본은 탐정에 미친 나라다.

탐정 소설, 탐정 만화, 탐정 애니메이션, 탐정 드라마, 탐정 영화 등 한국에서 막장이 잘 팔린다면 이 나라는 명탐정에 환장했다.

연속살인, 존속살인, 사이비의 대량살인, 미제사건 등 엽기적인 범죄행각을 소재로 다루는 콘텐츠가 넘쳐났다. 영국보다 더 셜록 홈스를 사랑했고 프랑스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아르센 뤼팽은 안다.

물론 도둑놈보다 잡는 쪽을 선호했다.


“실적이 필요해?”

“?”

“연쇄살인범은 어때?”

“???”


그가 원하는 건 전혀 다른 실적이겠지만 선물은 원래 주는 사람 마음이다.

세기의 명품수사쇼!

극적인 살인추리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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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요셉 -29화- +22 23.07.11 2,762 129 22쪽
28 요셉 -28화- +15 23.06.29 2,842 128 17쪽
27 요셉 -27화- +13 23.06.27 2,610 124 20쪽
26 요셉 -26화- +9 23.06.26 2,614 120 22쪽
25 요셉 -25화- +11 23.06.22 2,828 132 24쪽
24 요셉 -24화- +20 23.06.20 2,817 141 26쪽
23 요셉 -23화- +11 23.06.16 2,824 140 15쪽
22 요셉 -22화- +11 23.06.14 2,778 137 23쪽
» 요셉 -21화- +12 23.06.12 2,880 126 20쪽
20 요셉 -20화- +12 23.06.06 3,195 152 29쪽
19 요셉 -19화- +15 23.06.02 3,049 157 30쪽
18 요셉 -18화- +14 23.05.29 3,073 144 25쪽
17 요셉 -17화- +10 23.05.26 3,200 150 23쪽
16 요셉 -16화- +23 23.05.23 3,324 158 24쪽
15 요셉 -15화- +15 23.05.18 3,528 147 36쪽
14 요셉 -14화- +17 23.05.16 3,341 177 17쪽
13 요셉 -13화- +12 23.05.15 3,313 131 24쪽
12 요셉 -12화- +23 23.05.12 3,499 166 20쪽
11 요셉 -11화- +16 23.05.10 3,431 134 20쪽
10 요셉 -10화- +10 23.05.08 3,484 132 17쪽
9 요셉 -9화- +15 23.05.07 3,617 16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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