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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요셉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3.04.11 23:59
최근연재일 :
2024.05.2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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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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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요셉 -18화-

DUMMY

박중현, 21세.

대학교 오전 강의만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고민에 빠졌다. 보통은 학생식당에 한 끼 때우지만 밥 사달라는 신입생이 너무 많아 눈치껏 도망쳤다.

나 먹고살 돈도 없는데 누굴 챙기나.

연애는 꿈도 못 꾸는 중이다.


“쿠쿠 하세요. 쿠쿠.”


밥솥과의 대화는 모든 자취생의 기본스킬.

가끔은 띠링 거리는 세탁기와도 상호작용한다.


“좋아. 오늘은 너로 정해쓰.”


스팸과 맛김 그리고 형이 보내준 맛다시.

이것이 삼첩반상인가.

6개월 풀알바를 뛰며 마련한 300만 원짜리 슈퍼컴퓨터 앞에 앉았다. 뭐 게임은 좆롤밖에 안 하지만 입고 먹는 것 아껴가며 최고사양으로 뽑았다. 초고사양 그래픽카드는 남자의 자존심이다.

하지만, 현실은 유튜브와 넷플릭스머신일 뿐이다.


“룰루, 어제오늘 어떤 신박한 일이 있었을까.”


혼잣말은 자취생의 버릇이다.

일단 각종 커뮤를 돌아다니며 어제오늘 핫이슈를 검색했다. 역시나 미성년자 성매매 게이트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였다.


“그냥 싹 다 잡아다 사형시키지.”


나도 아직 못 해봤는데! 분노보다 부러움이 앞서는 건 내가 쓰레기기 때문일까?


“응? 연예기획사 김모 대표 구속?”


미성년자 성매매 게이트의 후폭풍은 사회 각계각층을 뒤흔들었다. 스포츠와 더불어 미성년자의 활동이 활발한 연예계는 거의 직격탄을 맞은 셈. 검찰이 대대적으로 선언한 연예계 실태조사는 시작부터 각종 특종을 빵빵 터트렸다.

노예계약, 사기, 열악한 처우는 진즉 알려진 사례고 노골적인 착취와 세뇌는 아동노동환경이 얼마큼 낙후됐는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이렇지 않을까 이미 알고는 있었다. 단지 누군가 총대를 메고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불공정한 계약으로 많은 연예기획사가 철퇴를 맞는 중에 불거진 김모 대표의 구속이 특이한 점은 그 대표가 검사 출신이란 사실이다.

검사 출신 엔터테인먼트 사장.

박중현이 알기에 언론이 물고 늘어질 정도로 유명한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김모면... 김범수네.”


모자이크된 사진 역시 김범수를 닮았다.

아니나 다를까 연예계 커뮤니티는 난리였다.

※김모 대표면 빼박 김X수네. 맞지?

⤷김X수면 녹X 엔터?

⤷ㅇㅇ

⤷루나레나 내 최애그룹이었는데... 정연두 살려내라! 개새끼야!

⤷자살한 애는 왜 끄집어내;;

⤷억울하니까 자살했지

⤷억울? 검사에서 양성 나왔으면 정키지

⤷약쟁이 정연두

⤷우리 연두 그런 애 아니다!

⤷좆두맘들 시발! 바퀴벌레새끼들!

⤷좆두 때문에 우리 세아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좆두 꺼졎!

⤷고인 모욕하지 마라!

⤷약쟁이는 그래두 됨!

박중현은 루나레나를 잘 모르지만 이세아는 안다.

포스트 윤소희

윤소희도 이제 40대를 향해 가니 싱그러운 청춘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대한민국 대표미녀였다. 포스트 윤소희는 이제 막 연예시장에 나온 여배우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그러나 포스트 윤소희는 매년 서넛은 거론되는 흔한 별명이기도 했다. 그걸 1년 이상 끌고 가냐 마냐는 본인하기에 달렸다. 이세아는 이제 제2의 윤소희란 딱지를 뗄 때가 왔다는 것이 언론과 대중의 중론이었다.


“우리 세아 누님이 이제 곧 서른인가?”


박중현은 이세아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출연작은 꼭 챙겨봤다.


“서른 전에 대상 한 번 딱 받으면 게임셋인데.”


언제부턴가 흔히 알려진 1티어 톱스타 루트에 서른 전 영화제 대상이 있다. 롱런하는 톱스타는 어렸을 때부터 재능과 더불어 위상을 인정받는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했으니까.

그런데 이세아는 상복이 없는 편이다.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연기?

그녀를 연기로 깔 만한 여배우가 몇이나 될까. 괜히 윤소희에게 도전할 만한 여배우로 이세아를 손꼽는 것이 아니다.


“응?”


밥 한 숟가락에 마우스 한 번.

유튜브 영상을 클릭하던 박중현의 알고리즘이 이상한 라이브로 그를 안내했다.


“시청자 6만? 허!”


어디 윤소희가 눈물의 기자회견이라도 여는 걸까? 본능적으로 마우스를 갖다 댔다. 그 사이에 시청자는 7만을 넘었다. 아니, 8만을 넘고 9만을 넘어 10만에 이르렀다.


“뭔데?”


이 미친 카운팅은? 톱아이돌의 커밍아웃이나 벗방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속도다.


“윤미정의 시사펀치?”


뉴스채널? 이게 그 뷰봇인가? 하지만, 윤미정이라면 박중현도 아는 이름이었다. GKBC에서 밀어주는 스타? 아이돌? 아나운서는 확실히 지적이고 우아한 멋이 있다.

우와아아-

함성이 들린다.

창살문을 부수고 들어간 이들은 누가 봐도 경찰이다.


‘어디지?’


고작 시위 영상으론 이만큼 시청자가 몰리진 않는다.

역시나.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소드마스터 강지찬!

본인 입으론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와 관련된 영상은 국경을 넘어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마! 이게 대한민국의 검사다!】

【진격의 K-검사劍士? No! 검사檢事!】

【미국 스왓팀도 한 수 배울 K-범죄자 진압!】

【아이돌 아나운서와 스타 검사의 핑크빛 기류!】

재벌가 출신임에도 흙수저의 성공신화로 인식되는 강지찬의 등장만으로도 유튜브 라이브 시청자는 대폭발했다.

경찰이 창살문은 뚫고 강VS강으로 부딪친 일촉즉발의 위기, 숫자는 문을 뚫은 경찰이 우세하지만 어째선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때 강지찬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팡-

쐈다.

팡-

또 쐈다.

어디서 봤던 것처럼 테이저를 던지곤 삼단봉을 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뚝배기의 향연.

뚝배기!

뚝배기!

뚝배기!

박준형은 벌떡 일어났다.

무릎에 걸린 반찬통이 하늘을 날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와아아!”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




손원석, 39세.

꼴통학교로 유명한 경원고 57기 졸업생.

고등학교 졸업 후 지역의 자랑? 상암파에 들어가 조직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길 19년, 이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번듯한 감투도 썼다.

세원로지스 수지 물류소장

깡패로 시작했다고 꼭 밤거리를 어슬렁거릴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는 젊은 시절(지금도 젊지만) 온갖 궂은일은 다 해봤다. 재개발 건설용역부터 사채와 추심, 청부폭력 등 돈되는 일은 가리지 않았다.

그중 가성비가 제일 좋았던 일이 화물용역이다.

좋게 말해 용역이지 진실은 그냥 밀수다.

화물차 기사들은 본인이 옮기는 물건이 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또 알아도 모른 척했고 다 빠져나갈 구멍 한두 개쯤은 마련해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운임이 비싼 것엔 이유가 있다.

상암파에 일거리를 떨구는 물주가 누군지는 나중에 알게 됐다.

경일그룹

경일뿐만이 아니라 다른 재벌의 뒤치다꺼리도 했다. 자기들 회사 간판을 달고는 처리할 수 없는 많은 일을 깡패를 고용해 해치웠다. 자기네들 나와바리에 확고한 수익모델을 가진 전국구 조직이야 부자 똥꼬를 핥을 일이 없지만 상암파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대大성조와 박 터지게 싸운 경일은 망했다.

하지만, 경일이 망하든 말든 깡패의 쓸모는 여전했다. 손원석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30대 후반은 한창 일할 나이지만 정씨형제가 제안한 관리직은 전혀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들어온 물건의 포장을 풀고 쓰임에 따라 재포장하고 배차하는 혹은 세관과 통관에 필요한 공무에 기름칠을 하거나. 짭짤한 부수입을 원하는 기사와 공무원은 찾아보면 많았다.

내 인생은 이제 탄탄대로...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말이다.


“막아! 막으라고! 막아!”


경찰이든 뭐든 위에서 막으라면 막아야 했다. 대한민국 경찰이 설마 총을 쏠까? 그가 아는 짭새는 온갖 형식과 절차에 발목 잡힌 반병신이다.


“막! 끄아아아!”


손원석은 바닥에 쓰러진 채 물고기처럼 팔딱거렸다.

강지찬은 테이저건의 카트리지를 갈며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당신 동료들이 저 깡패새끼들한테 처맞고 있잖아! 총은 장식이야? 쏴! 쏘라고!”


죽창까진 아니어도 긴 장대와 나무방망이, 쇠파이프로 무장한 상대다.


“아니 경찰이 선량한 시.”

“닥쳐! 이 폭도새끼들아!”


살벌한 무기로 무장한 주제 선량한 시민? 지나가는 개도 안 믿을 말이다.


“경찰이 함부로 총을, 끄아아아!”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는 폭도를 두 놈으로 늘린 강지찬은 카트리지를 다 쓴 테이저건을 던지며 삼단봉을 펼쳤다.


“이것들이 공권력을 좆으로 봐? 밟아!”


기세가 오른 진압군이 우르르 돌진했다.

강지찬의 기선제압에 용기를 얻었는지 손에 든 무기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폭도놈들이 아무리 싸움에 일가견이 있어봐야 숫자의 힘을 당해낼 순 없다.

강지찬이 도착한 곳은 컨테이너 수십 개가 늘어선 물류창고의 야적장이다. 여기서 원하는 것을 찾는 건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한 컨테이너를 지목했다.


“여세요.”

“네잇! 열어!”


성진영의 지시에 절단기를 사용해 컨테이너를 깠다.

우르르-

안에 쌓인 상자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마약이 든 봉지가 막 우르르 쏟아지는 극적인 장면은 없다. 그냥 아이돌과 연예인 사진이 박힌 책받침과 머그컵 같은 굿즈가 쏟아졌다. 라이선스를 받은 물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성진영이 윤소희 화보가 인쇄된 코팅지를 들어보였다.


“요즘에도 이런 게 팔립니까? 아니, 이거 수출품 아닌가요? 이런 게 외국에 잘 팔리나?”

“글쎄요.”

“라떼는 브룩 실즈랑 소피 마르소에 환장했는데.”

“너무 간 거 아닙니까?”


이제 40대일 텐데 브룩 실즈랑 소피 마르소는 너무 갔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사실 전 알리샤 실버스톤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처음 둘은 알겠는데 알리샤 실버스톤은 누군지 모르겠다.


“이거 다 뒤지려면... 마약탐지견을 요청할 걸 그랬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이 컨테이너 하나니까.”

“어... 그렇군요.”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디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성진영은 그러려니 넘어갔다. 사람이 단순해서 좋다. 아니, 진짜 단순하진 않겠지만 쓸데없는 반문이 없었다.

강지찬은 온갖 연예인 사진이 가득한 책받침 비슷한 화보들 사이에서 한 장을 꺼내 내용물을 깠다.


“그겁니까?”

“그런 거 같네요.”

“어디이이 보자아아. 야! 정한철!”


성진영의 부름에 달려온 경찰이 요상한 기계를 꺼냈다.


“확인해봐.”

“넵.”

“맛으로 확인하지 않습니까?”

“에이, 영화를 너무 보셨다. 우리 영감님. 요즘 누가 그렇게 해요? 큰일 나게. 손으로 만져도 위험한 게 마약인데 혀를 대라고요? 죽어요. 죽어.”


결과는 금방 나왔다.

무슨 물과 시약 그리고 사진 일부를 떼어내 슥슥 하더니 기계가 삑삑 소리를 냈다.


“코카인 원료가 맞습니다.”

“이야! 대박이네.”


마약을 찾았다. 그것도 반죽 상태인 코카인 원료를 말이다.


“이 정도면 대가리를 아주 잘 썼습니다. 평범한 마약상은 아니겠어요.”


화학적으로 합성된 원료에서 코카인만 추출하는 건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물건만 받아 파는 무늬만 총책인 하수와 하찮은 딜러와는 체급이 다른 것이다.


“지금이라도 마약반을 부를까요?”

“아니요.”


강지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위에서 지랄지랄 개지랄들을 할 텐데요?”


그는 이쪽으로 더 다가오려다 앞을 막은 경찰과 승강이하는 윤미정과 촬영팀을 보며 씩 웃었다.


“못할 걸요?”

******



“강지찬! 이 시발새끼!”


대검 마약과 부장검사는 뒤늦게 입수한 첩보에 책상을 부숴버릴 듯 걷어찼다. 그래봐야 제 발만 아프겠지만.


‘이 새끼가! 천둥벌거숭이 같은 새끼가 날 엿 먹여?’


대검 부장검사면 차기 검사장이 예약된 엘리트 승진코스다. 당연히 줄세우기와 정치가 생활화된 인간이다.


“차장님!”

“이 과장, 또 왜?”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마약 첩보면 당연히 저한테 먼저 기회를 줘야죠! 왜 그 새파란 애새끼한테 맡깁니까?”

“아아, 소리 좀 지르지 마. 교양 떨어지게.”

“차장님!”

“야.”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누르던 차장검사의 외마디 부름에 부장검사는 합죽이가 됐다. 아무리 친한 선후배라도 상대는 대검찰청의 2인자였다.


“훈현아. 우리 그냥 쉽게 가자.”

“왜요? 또 총장님이 뭐라 하십니까?”

“총장님이 문제가 아니야.”

“네?”

“너 지금 총장님 집무실에 누가 왔는지 알아?”

“뭐 강대성 회장이라도 왔답니까?”

“왔지. 부부가 같이 왔어.”

“아무리 강 회장이라도 우리 대검찰이.”

“아아, 사람말은 끝까지 들어라. 훈현아.”


차장검사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강 회장 내외만 왔으면 내가 이럴까? 또 누가 왔을까?”

“...”

“성조 오 회장도 왔어.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다? 미국에 있는 오 회장 부인도 왔어. 케이트 오. 누군지 알지?”


케이트 오, 아니 케이트 웬텔이 한국에 머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처녀적 성은 너무나도 유명했다.

웬텔가家

아메리카와 유럽을 장악한 금융제국.


“그러니 얌전히 입 다물자.”

“...”


윤미정의 시사펀치 유튜브 라이브의 시청자는 약 89만 명으로 집계됐다. 89만 명이 라이브로 집단난투극을 시청한 것이다. 채널을 소유한 GKBC 뉴스투나잇은 즉시 방통위의 경고를 받았고 유튜브 다시보기는 노딱이 붙었다.

한바탕 사고를 친 강지찬은 즉시 높으신 검찰총장님의 부름을 받았다. 대검찰청 총장 집무실에 이르기까지 스쳐간 사람 전부 강지찬을 곁눈질하기 바빴다.


-왜 쳐다보지? 강제진압 때문에?

-아니, 그것보다 오지오와 함께 찍힌 사진 때문이야. 공개된 사진이 빠른 속도로 퍼지는 중이거든.


에펠탑을 배경으로 오지오와 찍힌 사진 한 장.


-마약 압수와 더불어 반응이 어마어마해.

-좋은 쪽으로 나쁜 쪽으로?

-둘 다.


강지찬과 오지오는 과거를 그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신기한 우연으로 보는 쪽은 순수하게 놀랐고 재벌음모론에 심취한 쪽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강지찬 가짜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자기가 가짜래.

-가짜?

-오지오가 대성을 장악하려고 보낸 뻐꾸기래.


타당한 의혹이다. 고아치곤 월등한 능력도 그렇고 피앙세도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당신 유전자를 몇 명이나 훔쳤을까?

-?

-112명, 방금 한 명 늘었네.


칫솔이 없어지거나 코를 푼 휴지가 없어지는 건 애교다. 아마 건강검진 받은 병원에선 피도 훔쳐갔을 것이다. 호텔에 묵고 체크아웃하면 해당 객실을 뒤져 체모 한 가닥 얻으려고 혈안이 됐다.


-당신 유전자를 탐낸 마지막 배후가 저 안에 있어.


총장실로 들어가자 안은 복작복작했다. 방의 주인인 강규현 총장을 빼면 예상 밖의 얼굴들이다.


“아들.”

“어머니?”


한지숙이 다가와 얼떨떨한 아들을 소파로 이끌었다.


“와서 앉아라.”


아버지 강대성.


“어서와. 조카.”


오채령 성조그룹 회장.


“헬로.”


금발 서양여자는 오늘 처음 만나지만 아는 얼굴이다.

케이트 오

오지오의 계모.


“앉지. 강 프로.”


강규현은 최대한 점잖은 척했지만 그의 심장은 빠르게 두방망이질했다.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 재산을 한데 모으면 나라 서너 개쯤 살 수 있지 않을까. 한 나라의 검찰총장 간판은 나름 대단한 위치지만 자본주의의 왕들 앞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해명해야 할 일이 있지?”

“사진 말씀입니까?”

“맞아.”


해명? 억지지만 일단 수긍했다.


“인터뷰에서 밝힌 적 있습니다. 전 혼자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고요. 여러 후원자와 독지가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오지오 부회장님은 그런 많은 분들 중에 한 분이죠.”

“단지 그뿐인가?”

“그럼 뭐가 더 있겠습니까. 우리 대성만 해도 취약계층 지원에 많은 돈을 쓰지만 솔직히 누가 어떻게 도움을 받는지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강대성 회장과 대성 이름으로 지원되는 사회사업 규모는 연 300억 원에 달했다. 고아, 한부모가족, 고령자 등 수백천백 명이 그 대상에 속했다. 강대성이 일부러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알 방법이 없다.

오채령이 관심을 드러냈다.


“그럼 지오가 네게 관심을 가졌다는 거네?”

“공부를 잘했으니까요. 미래의 일 잘하는 머슴쯤으로 여기지 않았을까요.”

“걔가 인재 욕심이 많긴 했어. 그래서 어떻게 만난 거야? 한국도 아니고 파리에서.”

“우연입니다. 고모.”

“우연? 그게 다야?”

“그냥 우연입니다. 우연에 의미를 하나둘 부여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무슨 얘길 나눴나요?”


마지막 질문은 오채령 옆에 앉은 서양여자였다.


“아, 이쪽은.”

“압니다.”


오채령은 그제야 소개하려고 운을 뗐지만 강지찬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날 알아요?”

“미시즈 오? 부인?”

“케이트라고 불러요. 지찬.”

“그날 우리가 파리에서 만났을 때 오지오 씨는 쌍둥이 선물을 고르는데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는 제게 조언을 구했죠. 요즘 어린애들은 뭘 좋아하냐고.”

“뭐라고 조언했나요?”

“파리의 명품이란 명품은 몽땅 털라고 했죠.”


케이트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과거 어느 날 오지오는 온 명품의 신상품을 다 털어온 적이 있다. 거대한 금융제국을 물려받을 상속인치곤 사치를 좋아하지 않는 케이트 때문에 쌍둥이는 명품에 굶주렸다.

그날 오빠는 쌍둥이 자매의 신이 되었다.

엄마로서 딸들이 괜히 헛바람 드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면서도 한편으론 배다른 동생을 알뜰살뜰 챙기는 의붓아들에게 감사했다. 제 아빠보다 더 쌍둥이에게 지극정성이었다.


“그랬군요. 지찬. 당신이었군요.”


케이트는 따스한 눈으로 강지찬을 바라봤다.


“오늘 왜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는지 이해합니다.”


강지찬은 면면을 돌아봤다.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거두가 한둘이 아니다. 오지오란 이름은 아직도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다.


“부회장님은 중요한 분이었죠.”


오지오의 죽음이 남긴 충격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켰다.


“우린... 어쩌면 서로의 비밀을 엿봤을지 모르겠습니다.”

“비밀?”

“부회장님과 저는 강합니다. 이를테면 우린 한마 바키죠.”


띠용-

전부 뭥미? 하는 표정이었다.


-응?

-...이 세계에서 그런 걸 알 리 없잖아!


아닛! 바키 시리즈가 없다고?


“정정하겠습니다. 그냥 숨만 쉬어도 강해지는 존잽니다.”

“맞아! 지오는 싸움을 잘했어. 어떤 남자보다 강했지.”


케이트는 그 말이 옳다는 듯이 맞장구쳤다.


“제 자랑 같지만 저는 똑똑하고 싸움을 잘합니다. 모스크바에선 위기에 빠진 안나를 구해줬습니다.”

“아, 그래서 네게 빠진 거구나?”


한지숙은 그제야 아들과 며느리(진)의 로맨스가 이해된다는 얼굴이다. 강규현의 표정도 이제야 강원도와 수지 물류창고의 활극을 납득하는 모양이다.


“우린 보통사람과 다릅니다. 무슨 우성학적 우월주의가 아닙니다. 그냥... 부회장님과 저는 다른 사람과 많이 달랐죠.”


강지찬은 말하면서도 그들의 반응을 곁눈질했다.

어? 이게 되네? 이게 왜 되지? 왜?


-아우라야. 아우라.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지.

-통제단?

-어쩔 수 없어. 월드 엔진 자체가 통제단을 기초로 하니까.


돌을 금으로 우길 순 없어도 내 입에서 나온 말의 신뢰도는 매우 높다. 어지간하면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능력?”

“모릅니다. 사실 근거는 없습니다. 잡혀 실험당하고 싶진 않으니까. 이렇게 밝히는 것도 여러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강대성과 한지숙은 자식과 관련된 일이니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닐 이유가 없다. 오채령과 케이트는? 역시 나불거리고 다닐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규현은 다르다.

열 개의 시선이 꽂히자 그는 숨이 턱 막혔다.


“크흠. 말한다한들 누가 믿겠나? 걱정하지 말게. 강 프로.”

“하하. 총장님은 믿죠. 우리 아들 잘 부탁드립니다.”


강대성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아니다.

‘소문이 나면 범인은 너다!’

그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지찬. 내게 시간을 내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럼 조만간 연락할게요.”

“기다리겠습니다. 케이트.”

“나도 조만간 봐. 조카.”


오채령과 케이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떠났다.


“오늘은 들어오니? 아들.”

“그건...”


강지찬이 자기의 눈치를 보자 강규현은 펄쩍 뛰었다.


“퇴근해야지! 퇴근!”

“고마워요. 총장님. 그럼 우리도 가요.”

“우리 아들 잘 부탁드립니다.”

“암요암요!”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강대성의 입은 여전히 웃지만 눈동자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강규현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부모님도 떠나자 검찰총장은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와 씹!”

“죄송합니다. 총장님.”

“강 프로, 내가 아끼는 거 알지?”

“네.”

“나 오늘 팬티에 지릴 뻔했어. 대통령이 찾아오는 것보다 더 놀랐다고.”


강대성 회장만 해도 심장에 안 좋은 위인인데 대한민국 1등 성조그룹 총수와 세계금융을 선도하는 웬텔가家의 적장녀라니 차라리 미국 대통령이 낫다.


“세상은 역시 될놈될이구먼.”


강지찬의 뒤에는 대성뿐만 아니라 성조 그리고 웬텔의 관심도 적지 않다는 것을 방금 확인했다.

강규현은 욕심이 났다.


“내가 팍팍 밀어줄게. 강 프로. 어디 한번 날뛰어봐.”

******




강지찬과 오지오의 과거는 어느새 진실이 됐다.


-없던 일을 어떻게 끼워 넣지?

-디버깅을 돌리면 돼.

-얼마나?

-될 때까지.


없던 일을 있게 만드는 건 거의 천지창조 수준이다. 그곳을 지나갔던 모든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는데 월드 엔진을 사용하는 건 사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쓰는 셈이지만 그것이 최후의 진실이다.


-3년 전 호텔에서 만난 일도 바꿔해야 해.

-예스.


호텔 연회장에서의 만남 이후 오지오는 사고사를 당했다.


-조만간 미국에서도 날 찾아오겠어.

-오태양의 호의를 얻는 건 중요해. 그리고 그 키는 아내 케이트가 쥐고 있지. 케이트 매들린 웬텔, 지금은 남편의 성을 따랐지만 웬텔은 이 세계의 로스차일드이자 모건이야.


애초에 오지오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다.

친가는 성조, 외가(계모지만)는 웬텔.

본인의 돈 버는 수완도 나쁘지 않으니 자본주의사회에선 진짜 끝판왕이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전 재산을 영혼까지 끌어 모으면 한판 붙어볼 수 있을까? 오일머니로도 상대가 안 될 만큼 그가 구축한 조직의 자금동원력은 막강했다.


-당신은 오지오가 가졌던 대통을 이어받아야 해.

-대통?

-성조와 웬텔의 절대적 지지.

-대성만으론 부족해?

-시간만 충분하면 가능하지. 근데 지금은 아니야. 부회장이 괜히 미국을 끌어들인 게 아니거든.

-역사수업에서 들었던 기억이 나. 슈퍼파워.

-미국이 이 세계의 슈퍼파워로 설정됐어. 견줄 적이 없지.


다른 많은 시나리오에서 미합중국은 세계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렸다.


-케이트의 정신은 불안정해. 친아들보다 더 사랑했거든.

-니가 그를 죽였어.

-오지오는 사람이 아니야. 자기. 그냥 상징이지.


그녀에게 부회장은 하찮은 인간조차 아니었다.

인간 이하의 뭔가, 그냥 장식품에 불과했다.


-케이트는 복수 중이야.


케이트는 복수 중이었다.

아들의 사고와 관련된 건설사 관계자, 공무원, 추후 보수 및 감리를 맡은 직원 등 한 명 한 명을 추적해 죄에 합당한 벌을 내렸다.


-일곱 명이 의문의 사고사를 당했고 서른다섯이 아주 불행한 삶을 살아. 요 3년 동안 마흔두 명의 인생이 바뀌었지.

-...

-케이트가 찾아왔으니 오태양도 곧 당신을 찾아오겠지.


케이트는 아들의 흔적을 뒤쫓아 강지찬을 찾아왔다.


-당신은 케이트와 오태양의 새로운 아들이 돼야 해.

-내가 무슨 여포여?

-여포? 아, 맞네. 여포. 이부지자.


인류제국 당시 역사수업은 그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이다.


-여포는... 비참하게 죽었던 거 같은데...

-여포처럼 되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자기의 시그니처가 여포와 같은 강력한 무력이지. 이번에도 봐봐. 대중은 당신의 무모한 돌진을 좋아해.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한 태도에 환호하지. 아니! 사랑해.


강지찬의 법집행(물리)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군.’


뭔가 알 것도 같다.

과거 내 폭력은 너무나 그로테스크했으니까. 악마를 갈아버리든 반역자를 찢어발기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밖에 줄 수 없는, 악몽을 강제로 꾸게 만드는 끔찍한 광경이다.

테이저건을 쏘거나 삼단봉으로 뚝배기를 깨는 건 귀여운 수준인 셈.

이건 예를 들면 규칙을 지키는 스포츠다.

불살不殺

그리고 오늘도 강지찬은 불살행을 나섰다.


“도착했습니다. 영감님.”


경찰과 함께 도착한 곳은 바빌론 클럽 부산지점이다. 성진영은 아주 자연스럽게 삼단봉을 건네며 히죽거렸다.


“오늘은 대가리 몇 갤 깰 겁니까?”

“글쎄요. 봐서요.”

“살살 좀 하세요. 살살. 요즘 우리 애들이 영감님 때문에 어디 가서 기를 못 펴.”

“반대 아닙니까?”


이제껏 찬밥 취급받은 성진영팀의 주가가 오른 건 전적으로 강지찬 덕분이다. 하지만, 팀 내부는 책상물림보다 격투능력이 떨어진다는 자괴감에 가득했다.


“그럼 끝나고 우리 애들이랑 밥내기 대련 한판?”

“쫄리실 텐데?”

“에이! 우리 애들 출신지에선 다 에이스였다고.”


은근슬쩍 말을 놓는다.


“그럽시다.”

“오케이! 가자 애들아!”


승합차 여러 대에서 우르르 내리는 덩치들.

경찰조끼를 입지 않았다면 조폭으로 봐도 이상치 않을 험악한 비주얼이다. 그 뒤로 깔끔한 슈트를 걸친 강지찬의 모습이 이질적이다. 입구를 지킨 기도 둘 중 한 놈이 무전기를 든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뒷걸음쳤다.

성진영은 지체 없이 돌진했다.


“잡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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