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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564,954
추천수 :
18,148
글자수 :
839,717

작성
20.12.27 14:57
조회
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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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글자
20쪽

지오 디 오리진 -13화-

DUMMY

서울 강남에 원룸을 구했다.

월세가 80만 원이란다. 우효! 도둑놈들 같으니.

컴퓨터를 살 때 용팔이를 피하려고 직구를 택했다.


-본체에 더미를 심습니다. J. 승인하시겠습니까?

-승인.

-복사 중... 완료. 데이트레이딩 시작합니다.


증권사 계좌를 만들고 자본금을 집어넣으면 G와 연동된 더미가 단타를 시작한다. 간단한 원리다.


-하루 수익은 100만 원을 넘기지 않을 계획입니다.

-매일 수익이 똑같으면 의심하지 않아?

-당연히 변화를 줄 겁니다.


100만 원씩 1년 내내 똑같은 수익을 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수익 100만따리를 진지하게 추적할 금융감독원 직원은 없다. 금융엘리트는 콧대가 하늘을 찔렀다.

자, 이걸로 이민 및 노후를 위한 시드 작업은 끝.

김준강은 뭐 날짜만 맞추면 된다. 너무 뻔한 얘기라 급격히 흥미가 떨어졌다. 김치싸대기를 날려주는 21세기 막장을 기대했는데 해방 전후 유행하던 최루성 신파극이 돼버렸다.

홍도야 우지마라도 아니고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좀 아니지 않나.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극혐하는 스토리. 하지만, 러브스토리가 잘 팔리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태블릿을 챙겨 카페로 나왔다.

스벅은 사람이 너무 많아 자신만만한 커피 애호가의 노브랜드 카페를 찾았다. 요즘은 닭집 대신 카페가 유행이란다. 로스팅에 자신 있는 창업자는 프랜차이즈 말고 노브랜드를 선호했는데 수제 맥주가 유행하는 것과 비슷했다. 반은 1년 안에 망하고 나머지 반도 3년 안에 폐업하겠지만.

간판업자만 노났다.

더구나 폐업도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가게를 개업 전으로 복구하고 나가야 하니까. 계약서를 꼼꼼히 읽지 않으면 눈탱이 맞기 쉽다. 들어올 땐 우리 세입자님, 나갈 땐 남남이다.

제일 비싼 커피와 케이크를 시켰다.

맹랑한 꼬맹이의 입맛 덕분에 딸기 케이크에 눈떠버렸다.

시뮬레이션 툴이 안 되는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글을 놓진 않았다. 시나리오를 만드는 일은 재미있었다. 배고픈 예술가를 자처할 맘은 없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데이트레이딩 이외에도 수입이 필요합니다. J.

-흥신소도 하잖아?

-크게 돈이 되는 일도 아니잖습니까.


하긴 조폭, 정치인, 재벌을 거르면 크게 돈이 되진 않았다.


-토토라도 할까?

-차라리 경마나 하시죠.


토토충이나 경마충이나.

카지노를 드나드는 도박쟁이는 스스로 낫다 믿을까? 한탕을 노리는 인간치고 정상인이 드물었다. 아, 로또충도. 어차피 인생이 운빨좆망겜이긴 해도 확률이 너무 극악이다.

눈치 주는 카페 사장 때문에 커피를 한 잔 더 시키고 이번에는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아, 이 가게 장사 잘하네. 돈 많이 버슈. 사장놈아.

오늘 내 주제는 이벤트를 피하면서 꿀을 빠는 방법이다.


‘오천명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 성조의 내분이 시작되지.’


호랑이 같은 안주인이 아무리 중심을 잡으려고 해도 그녀도 언제 꼴깍할지 모를 노인네였다. 오채령의 임기는 대략 10년, 부친의 유지를 잇는다면 현 회장의 다음 회장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굴려야 제맛!

이라는 작가의 단순한 상상으로 말미암아 꽤 험악한 미래가 준비돼있다. 내가 이 좆같은 스토리를 썼다는 걸 주인공이 안다면 존 윅을 보내지 않을까 심히 두렵다.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


-이벤트에 휘말리지 않고 꿀을 빠는 방법은?

-주식은 위험합니다.

-알아.


미래를 알고 주식을 선점한다? 오래지 않아 공구리 당해 인천 앞바다에 수장당하리라. 경호원을 고용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투자자의 개인정보가 지켜질 것 같은가.

증권사니 은행이니 돈 만지는 놈들이 얼마나 지독한 놈들인데 내부거래는 당연하고 남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정보를 먼저 팔아먹겠지.’


말이 좋아 기업이지 다 깡패집단이었다.


-그거 무분별한 혐옵니다. J.

-왠지 캐릭터의 원본이 이 나라를 혐오하고 있어.

-정신진단을 시작할까요?

-승인.

-진단 중... 완료. 사용자의 내재 된 분노는 과거와 연관 있습니다. 캐릭터 설정을 확인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과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고아, 고졸, 군필.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게 전부고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성질머리에 흠칫했다. 인격융화의 부작용일까. 문제점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아니면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사용자 캐릭터의 유년은 학대당한 적도 없고 왕따를 당하거나 방황하지도 않았습니다. 성적은 중간 이상, 교우도 썩 나쁘지 않습니다.

-그럼 왜 화가 많은 건데?

-...

-G?

-여기서 멈출 것을 제안합니다.

-왜?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J.

-당장 말해.

-사용자는... 모쏠입니다.

-헉!

-연애한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언냐들한테 인기짱짱맨이었는 걸? 뿌잉뿌잉! 그런 내가 모쏠이라고? 이 얼굴과 이 몸으로? 말도 안 된다.


-뭔가 착오가 있을 거야.

-재확인 중... 완료. 오류는 없습니다.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이 사패AI야!

-정신진단 중.... 완료. 현실도피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누구한테 하는 말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게임고자에다 모쏠이라니? 보통 모쏠이면 게임고수 아닌가.

게임도 못 하고 연애도 못 하다니 가슴이 찢어진다.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되니까.’


긍정적인 마음을 먹었다.

좋아. 당장 연애는 무리니까 게임을 잘해보기로 하자. 지오는 PC방을 찾았다. 허울뿐이지만 IT강국 대한민국의 상징 같은 PC방에서 인기 있는 게임을 검색했다.


‘LOL?’


접속했다. 그리고 난 얼굴도 모르는 부모와 조상욕을 8대로 거슬러 올라가 먹었다.


-나 욕한 놈들 게임 계정 삭제해!

-그건 사이버테럽니다. J.

-퍽킹! 두 잇!


이것은 정의구현이다. 나는 미래의 흉악무도한 범죄자가 됐을지 모를 싹수 노란 어린양들을 교화했다. 세상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명작이다.

LOL은 시간을 두고 연구해야겠다. 첫술에 배부르랴.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노오오오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PC방을 나와 맛집을 찾아다녔다. 확실한 건 SNS는 믿을 것이 못 된다. 맛집이라고 찾았더니 바이럴이 태반이다. 요즘 세상은 돈을 써야 돈을 번다.

오늘 메뉴는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을 고기를 선택했다.

혼밥족을 위한 1인분 메뉴도 있지만 그건 밥이나 면류에 국한됐고 고기는 무조건 2인분부터 시작이다. 욕을 하도 처먹어서 배부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가볍게 4인분으로 시작했다.

먹기 좋게 썰린 갈빗살 4인분을 10분컷 했다. 추가로 4인분을 주문하자 사장이 좋아했다. 8인분이 많아 보여도 소고기는 양이 얼마 안 된다. 탄수화물은 시키지 않았다. 왜냐면 오늘은 고기의 날이니까.

12인분을 넘어가자 육회가 서비스로 나왔다.

마무리는 깔끔한 물냉면으로.

계산하려고 카드를 내미니 먹방 유튜버인지 물어본다. 남이 밥 먹는 것도 인기라니 참 요상한 세상이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걷다 아주 낯익은 얼굴을 마주했다.

상대도 나를 보고 놀랐다.


“어? 자기?”


포토그래퍼 강선아, 누님의 빨간 립스틱과 미니스커트가 오늘따라 더 육감적이다.

쿨하게 헤어진 것치곤 다시 만나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강 작가, 우리 한잔 더 하자니까? 응? 누구.”

“남자친구요.”

“그, 그래? 크흠. 그래요. 잘 들어가요.”


강선아에게 치근덕거리던 양복쟁이는 지오의 건장한 체격을 보고는 슬그머니 도망쳤다.


“아후! 시발. 계약만 아니면 내가 진짜.”

“괜찮아? 많이 취한 거 같은데.”

“안 취했어.”


예전에도 비슷한 허세를 부렸다. 여자의 몸으로 비즈니스를 이끌어가는 건 쉽지 않다.


“한잔?”

“술이나 깨러 가자.”


지오가 강선아를 데려간 곳은 맥도날드다.

쓴맛이 심한 맥커피는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데 즉효다.


“넌 진짜... 무드가 없구나.”

“거울이나 보고 말하시오. 누님.”


흐릿한 달밤이 감춘 참상은 LED조명의 휘황찬란한 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눈꼬리가 내려간 마스카라, 매력적으로 보였던 붉은 립스틱은 사실 쥐 잡아먹은 듯 번졌다.


“얼굴 보고 섹스할 것도 아니고, 뭘 그리 따져.”


몸매만큼이나 화끈한 성격과 입담은 여전했다.

작업 중에 성질 드센 모델들을 휘어잡으려니 자연히 거칠어졌다는데 지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선아는 태생부터 여장부였을 것이다.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를 했어도 잘했을 것 같다.

해장으로 맥도날드 커피와 햄버거라니 의외로 잘 어울렸다.


“후, 속이 좀 풀리네. 여기에 콩나물국밥 한 그릇 때리면 딱인데.”


폭립만 뜯을 것처럼 생겼는데 입맛은 한국인이 맞다.


“계속 서울에 있었어?”

“아니, 일본에 갔다 왔지.”

“그새?”

“다음은 중국을 가볼까 싶어.”

“아서라. 중국은 아니다.”

“왜?”

“패키지가 싸다고 좋은 건 아니거든. 거기다 혼자 다니면 눈탱이 맞기 쉬워.”

“홍콩도?”

“홍콩은... 나쁘지 않네. 홍콩은 오케이.”


겸사겸사 마카오에서 룰렛도 돌려볼 생각이다. 그런데 원정도박은 불법 아닌가?


-해외에서 카지노 가면 불법?

-일시오락이란 단서가 붙습니다만 코에 걸면 코걸입니다.


검사 기분에 달렸다는 뜻이다. 검찰이 이래서 무섭다.


“전화 줘봐.”


폰을 내밀자 번호를 찍었다.


“내가 걸면 빠딱빠딱 받아라.”


강선아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니 새벽 3시다.

하루가 뭘 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며칠 뒤 강선아의 초대를 받았다. 드레스 코드는 편한 대로. 소주를 궤짝으로 사 오라는 주문에 차를 움직여야 했다. 오늘 참석하는 손님은 골D미드단 3인방이다.

포토그래퍼로 돈 잘 번다더니 좋은 아파트에 산다. 한 20억 원 할까?


“24억이야.”


소주 궤짝을 주방에 내려놓은 지오의 질문에 강선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막내 왔어?”

“오올! 우리 운명인가.”


중학교 교사 이은미와 한의사 김주희는 그를 반겼다.


“부를 남자가 너밖에 없네. 우리도 참 처량해. 그치?”

“왜? 학교에 남교사 없어?”

“괜찮은 남자는 다 임자가 있거든.”


현 세태에 공무원은 남편감으로 인기 높다. 그러니 금방 품절됐다.


“그러는 넌? 멋진 남자 의사는?”

“멋진 남자 의사? 하, 다 다크서클 가득한 멸치 아니면 배불뚝이 교수들이야. 그레이 아나토미는 없어.”

“아, 너 그걸로 영어 공부했었지.”


내 눈에는 예쁜데 다들 자학으로 썰을 풀었다.


“넌 배우나 아이돌이랑 작업 많이 하잖아? 얘기 좀 해봐.”

“연예인은 보이는 그대로 믿는 거 아니다. 모두 가면을 쓰고 있거든. 우울해도 웃고 화가 나도 웃고 기뻐도 웃고 마치... 바비인형 같아.”

“눈요기는 좋잖아.”

“보기 좋은 떡이 맛있을 거 같지? 아니야. 썩지 말라고 방부제를 들이붓고 반짝반짝 빛나라고 광택제로 도배한 떡은 독이야. 독.”


카메라 마사지란 말이 있다.

방송을 오래 하고 카메라에 많이 노출될수록 예뻐진다는 속설이다. 하지만, 강선아는 그 표현을 달리 받아들였다. 마사지가 아니라 폭행이다. 카메라 폭행. 프레스로 찍어낸 강철판처럼 그대로 굳어져 영원히 웃는 얼굴로 살아간다.

우울해도 웃고 화나도 웃고 기쁨을 더 표현하고 싶어도 처음 찍힌 미소 그대로 웃어야 했다. 내 삶이 진짜인지 연기인지 모르는 혼돈이 프로페셔널로 포장됐다.

영혼을 점점 잃어가는 기분.


“피사체를 찍어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어.”


멋지다고 꺅꺅거리는 사진은 보정이 들어간 결과물이다.

진짜는 렌즈 바로 뒤에 있었다. 셔터를 누르는 짧은 순간이 피사체의 진짜 모습이다. 오직 작가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심연이다.


“나는... 돈 많이 준대도 그렇게는 못 살겠더라.”

“돈 많이 주면 살아야지!”

“어디서 개소리를 하고 있어!”


이은미와 김주희는 강선아의 자조를 단박에 반박했다.


“메마른 년들.”

“야, 애새끼들한테 매일 치이느니 연예인이 낫지. 어딜 비교하고 있어. 스타로 만들어준다면 감사합니다! 하고 절하겠다.”

“맞아. 잘생긴 것들만 만나더니 얘가 미쳤나 봐. 난 다시 태어나면 의사는 절대 안 해! 오늘도 어쩌다 외박하는데 교수가 지랄지랄. 아니 내가 논문이랑 임상 노예냐고. 시발새끼. 미친 척하고 고자를 만들어버릴까.”


김주희는 한의학만이 아니라 양의학 의사 자격까지 있는 초수퍼울트라엘리트였다. 왜 유사의학으로 조롱당하는 한의사로 소개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느 병원인지 안 물어보거든.”


그냥 의사라고 하면 어느 병원이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단다.


“그럼 한방병원에서 근무하는 게 아닌 거네?”

“응.”


김주희는 대학병원에서 부교수까지 올랐다.

그녀가 친구 셋 가운데 학벌이 제일 좋을 것 같지만 중학교 교사인 이은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두 친구에 비해 떨어지는 강선아만 해도 연세대를 나왔다. 그런데 이 세 여자는 지오를 무시하기는커녕 신기해했다.


“영어도 잘하고 불어도 잘하네? 고졸이 어떻게 그래?”

“독일어도 잘하던데?”

“혹시 더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있어?”

“일본어도 할 줄 알지. 중국어도 좀... 하고.”


G 덕분에 세상 모든 언어를 다 한다고 봐야 했지만 그녀들은 진실을 몰랐다.


“이야! 천재네. 외국어 천재. 너랑 다니면 통역은 구할 필요 없어서 좋겠다. 아, 너 알바 하나 할래?”


오징어 안주를 씹으며 감탄하던 강선아는 갑자기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알바?”

“어, 보자. 다음 주 수요일에 일본에서 촬영이 있거든. 통역 좀 해라.”

“비즈니스 통역은 전문가를 불러야지. 내가 뭘 아나.”

“그 통역은 따로 있고 나 관광하는데 가방모찌 하라고.”

“하. 가방모찌는 좀.”

“이 누나랑 여행 가기 싫어?”


강선아는 은근슬쩍 몸을 치댔다.

헐렁한 박스티로도 숨길 수 없는 볼륨이 느껴진다.


“이것들이 솔로 앞에서 염장질이야!”

“죽엇!”


침 묻은 오징어 다리가 날아왔다.


“페이는?”

“경비 일체. 딜?”

“오케이.”


그날 술자리에서 이은미와 김주희와도 번호를 교환했다. 다음날부터 시시때때로 톡이 울렸다. 중딩 애새끼들 다 죽여 버리고 싶다든가 진상 환자새끼들 다 고자로 만들어버리고 싶다든가 온갖 하소연을 쏟아냈다.

쓰레기통이야 뭐야.

왜 자꾸 나한테 버리는 거야.

내가 뭐든 받아줄 것처럼 순딩순딩하게 생겼나?

일본 출국 전에 강선아를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다시 만난 뒤 잠자리를 가진 적은 없다. 그녀도 나도 서로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귀는 걸까? 별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니까.

오늘은 뜨거워도 내일 당장 식을지 누가 알겠는가.


“안녕하세요. 오지옵니다.”

“내 동생이야. 인사들 해.”


스튜디오를 이끄는 수장이자 카리스마 포토그래퍼 강선아의 공적인 모습은 댕청한 사석과는 달리 아주 다부졌다. 지오는 공항에서 그녀의 어시스턴트 및 스튜디오 직원들과 인사했다.

어시와 직원이 뭔 차이냐는 질문에 새끼작가와 직원은 다르단다. 어시스턴트는 이를테면 사부 아래 제자였다. 작업을 함께할 모델과 에이전시 관계자와는 인사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지오는 주로 스튜디오 직원과 얘길 나눴다.

여성이 수장이라 그런지 어시와 직원 대부분 여성이고 남성은 그를 포함해 고작 일곱에 불과했다. 조명 및 장비관리팀이란 그럴듯한 명칭이 있지만 솔직히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필요한 힘센 도비일 뿐이다.

사고는 오키나와에 도착한 그 날 바로 터졌다.

에이전시 매니저 몇 놈이 현지 클럽에서 헌팅을 시도했는데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으면 순순히 물러나지 알딸딸한 취기와 젊은 혈기에 취해 객기를 부렸다.

나중에 여자들 애인이라고 등장한 백형 흑형에게 복날 개 맞듯이 맞았다.

오키나와에는 일본에서 제일 큰 미군기지가 있다.


“나 참!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강선아는 완전 빡쳤다.


“이봐요! 촬영이 하루 딜레이 될 때마다 비용이 얼마가 날아가는지 알아요?”

“죄송합니다. 작가님. 일단 순서를 바꿔서 촬영을.”

“당신들 계약위반으로 다 고소할 거야!”


하루를 그냥 날렸다.

길길이 날뛰던 강선아는 돌아서서는 혀를 쏙 내밀었다. 그녀는 조금도 화나지 않았다. 로케이션 촬영을 수백 번 했는데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다 겪었다.

경찰서 방문 정도는 애교다.

어쨌든 사고를 친 인원은 곧바로 귀국 조치했다.


“이것들이 알아서 사고를 쳐주네.”

“좋아?”

“이쪽도 기싸움이 대단하거든. 이렇게 사고를 쳐주면 앞으로 내 말에 토 달지 못할 거야. 난 너어무우 좋지.”


훌륭한 결과물을 바라는 건 작가만의 욕심이 아니다.

남보다 한 컷이라도 더 찍어 좋은 결과물을 남기려는 건 모델도 똑같다. 아니, 더 치열했다. 이번 촬영은 두 가지 페이즈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나는 다수의 신인 모델을 기용한 물량공세.

A컷을 건지면 좋고 B컷, C컷도 괜찮다. 가능성 있는 신인을 발굴하면 좋고 망해도 상관없는 일종의 오디션이었다.

또 하나는 검증된 톱스타를 기용한 고급화.

이건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한다. 사진작가로서 쌓은 모든 경험과 감각을 동원해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찰나의 예술을 완성하는 것이다.

로케이션 초반은 신인들을 데리고 촬영하고 톱스타는 나중에 합류하는 일정이었다.


“잘나가는 에이전시는 신인을 데리고도 기세등등하거든. 어쨌든 한시름 놨어.”


현장은 이제 강선아의 주도로 돌아갔다.

나흘에 걸친 촬영을 마친 모델놈들을 돌려보내고 막간의 휴식을 즐겼다. 우리 바쁘신 톱스타 윤소희 양은 내일 오키나와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게 누구냐는 내 질문에 강선아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다.


“윤소희 몰라? 국가대표미녀 윤소희.”

“연예계랑은 담을 쌓아서.”

“아니, 그게... 그런다고 모를 윤소희가 아닌데? 너 혹시 간첩이니?”


태블릿으로 윤소희를 검색해봤다.

많이 예쁘기는 한데 국가대표미녀란 간판을 내걸 정도면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왜냐면 주인공 여동생들 때문에 주인공은 곧 연예계와 이리저리 엮일 예정이었다.

거기에 윤소희란 이름은 없었다.


-세계창조알고리즘을 포함한 통합라이브러리 검색, 배우 가수 모델 방송인 윤소희.

-세계창조알고리즘 통합라이브러리 검색 중... 완료. 일치하는 캐릭터가 존재합니다.

-띄워.


화장빨이 이렇게 차이가 나나? 언뜻 봐선 같은 사람으로 보기 힘들었다.


-특이사항 확인됨.

-말해.

-윤소희는 내일 죽습니다.


뭐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야? 죽음을 예고하다니.


-이유는?

-챕터17의 원인이자 복선입니다.

-챕터17이면... 피의 밸런타인데이? 윤소희? 소희, 소희, 소정? 윤소정!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악당1이 정태곤이다.

다음에 등장할 악당2와 악당3을 해치우면 나올 악당4는 중간보스쯤 된다. 윤소정은 주인공이 중간보스를 처치하고 구하게 될 히로인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캐릭터 설정상 하나뿐인 가족이 죽는 것으로 되어 있지?

-네. 윤소정의 하나뿐인 언니 윤소희는 내일 죽습니다.

-설마 강선아도 사고에 휘말려?

-상세 스포일러를 허용하시겠습니까?


상세 스포일러는 양날의 검이다. 알고리즘의 변수가 결정한 이벤트를 잘못 건드리면 메인프레임 자체가 변경될 확률이 높았다.


‘내 캐릭터가 사실은 엑스트라가 아닌 건가.’


5천만 한국 국민 중에 대영고등학교 기숙사 경비가 내가 되고 브라이스의 해결사들을 묵사발 만들어 이택기가 나를 높이 사며 여행을 갔더니 챕터17의 이벤트와 관련될 인물의 사진을 찍을 강선아와 내일 그 복선이 시작될 현장에 함께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빌어먹을 누군가가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있었다.

사건이 날 쫓아왔다.

슬슬 피해 다니니까 날 보자기로 보나?


-상세 스포일러 허용, 윤소희를 죽음에서 구한다.

-챕터를 수정하면 메인프레임에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퍽킹! 두 잇!


계속 거슬리면 원작을 파괴해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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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지오 디 오리진 -16화- +19 21.01.01 8,121 231 19쪽
15 지오 디 오리진 -15화- +15 20.12.30 8,198 245 20쪽
14 지오 디 오리진 -14화- +13 20.12.29 8,275 253 12쪽
» 지오 디 오리진 -13화- +22 20.12.27 8,612 247 20쪽
12 지오 디 오리진 -12화- +20 20.12.25 8,555 260 13쪽
11 지오 디 오리진 -11화- +18 20.12.25 8,565 252 11쪽
10 지오 디 오리진 -10화- +23 20.12.24 8,966 246 13쪽
9 지오 디 오리진 -9화- +13 20.12.23 9,178 239 14쪽
8 지오 디 오리진 -8화- +16 20.12.22 10,008 264 20쪽
7 지오 디 오리진 -7화- +19 20.12.21 10,823 248 25쪽
6 지오 디 오리진 -6화- +17 20.12.20 10,944 268 12쪽
5 지오 디 오리진 -5화- +10 20.12.20 11,572 267 13쪽
4 지오 디 오리진 -4화- +17 20.12.19 13,474 316 12쪽
3 지오 디 오리진 -3화- +49 20.12.18 18,753 355 36쪽
2 지오 디 오리진 -2화- +19 20.12.18 20,564 362 18쪽
1 지오 디 오리진 -1화- +41 20.12.18 33,723 41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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