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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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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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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39,717

작성
20.12.1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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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지오 디 오리진 -4화-

DUMMY

“오지오, 괜찮냐?”

“괜찮습니다.”

“병원에선 뭐래?”

“가벼운 타박상이랍니다.”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무서워. 당장은 괜찮더라도 나중에 골병든다. 요 며칠은 내근으로 돌려줄게.”

“고맙습니다.”


김윤석 대리는 주둥이는 걸걸해도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다.

옆자리에 눈치 보던 안현민 주임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왔다. 요새 어느 건물이나 실내는 금연이었다.


“영수증을 진짜 끊어온 건 아니지?”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주임님.”

“그래. 뭘 하다 치인 거야? 지나가는 여자라도 쳐다봤어?”

“신호등이 고장이었습니다.”

“어라? 소송감이네.”

“소송이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습니다.”

“하긴 우리 같은 서민이 소송해봐야 공무원이 눈 하나 깜빡하겠어? 보험은?”

“운전자가 전액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씨 좋은 호구를 물었구나. 노났네. 노났어. 실손보험도 따로 나올 거 아니야?”

“그건 입원해야 많이 나오죠.”


지오가 다니는 회사는 경호·경비를 가장한 반半용역이다.

주로 중소기업 행사를 많이 뛰었는데 대기업은 자체 경호실이 있으니 외주를 쓰는 경우는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계열사였다. 그래도 중소기업 행사보다 단가는 세다.

임원 포함 사무직 32명, 현장직 125명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중간 규모의 경비회사다. 지오가 소속된 경비 4팀은 주로 지역축제나 사계절 행사를 뛰었는데 업무는 별거 없다.

그냥 잡상인을 막는 수준.


“당분간 내근이면 나 좀 도와주라.”

“뭔데요?”

“사립학교에 경비를 배치해야 해.”

“네? 청원경찰은 경찰 담당이잖아요? 더구나 파견이면 내근이 아니라 외근인데요?”

“학교 안에서 어슬렁거리는데 내근이고 외근이고 나눌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학교시설 전체를 커버하는 게 아니라 기숙사만 담당하면 돼. 수당도 나오고. 완전 개꿀이지.”

“저야 상관없지만 김 대리님 지시를 어기는 꼴이 될 텐데...”

“내가 말해볼게. 어때? 콜?”

“음. 일단 허가부터 받아주세요.”

“좋아. 딱 기다려.”


꽁초를 비비며 돌아서려던 안현민 주임을 잡아 세웠다.


“진짜 개꿀이면 지원자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 하하하.”


어색한 웃음에 지오는 눈썹을 찡그렸다.


“솔직히 말씀해주시죠. 주임님.”

“음. 기숙사에 문제가 좀 있다.”

“문제요? 인서울 사립학교면 있는 집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 아닙니까? 설마 부잣집 도련님들 똥꼬를 핥으라는 건 아니겠죠?”

“야! 우리 그렇게 타락한 회사는 아니다. 솔직히 말할게. 귀신이 나온대.”

“네?”

“기숙사에 귀신이 나온대.”

“하하. 농담이.. 아닌가보네요.”


헛웃음을 흘리던 지오는 안현민의 굳은 표정을 보곤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아니 21세기 대한민국에 귀신이 웬 말입니까? 장난치지 마세요. 주임님. 설사 귀신이 있다고 해도 때려잡을 사람들이 우리 아닌가요?”

“경비 2팀 정준이랑 경비 3팀 재환이랑 석상이가 거기 파견 갔다 도망쳤어. 낯부끄러운 건 차치하고 자칫 회사 평판이 땅에 떨어질 판이야.”


해병대가 귀신 잡는다는 건 허세에 찌든 개소리다.


“학생들의 짓궂은 장난 같은데.”

“우리도 처음엔 있는 집 애들의 질 나쁜 장난이라고 의심했는데... 근데 아니야.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해도 애들이 한 짓이 아니더라고.”


CCTV도 2배, 기숙사 경비도 2배로 늘렸다. 그런데도 다 큰 남자끼리 손잡고 도망칠 만큼 생생한 귀신소동이 계속됐다.


“소문이 날까 봐 학교 측은 기숙사 폐쇄를 검토 중이라네.”

“그랬다간 우리만 망신당하겠네요.”

“맞아.”

“근데 왜 접니까?”


나는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도 아니다.


“너 신애라 때 귀신 잡았잖아.”

“제가요?”

“기억 안 나? 어라. 교통사고 당했다더니 머리 다친 거 아니야?”

“아, 이제 기억나네요.”

“어쨌든 우리가 내밀 마지막 카드는 너밖에 없어. 아까 팀장님도 허락했으니 김윤석 대리한텐 내가 잘 설명할게.”


위에다 미리 손썼나보다. 능구렁이.

김윤석 대리의 허락은 옥상을 내려오자마자 떨어졌다. 위에서 이미 얘기가 진행됐으니 일개 대리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을까. 내일부터 학교로 출근하란다.

오늘은 겸사겸사 현장답사에 들어갔다.


사립 대영고등학교


특목고는 아니지만 특목고보다 더 독특한 커리큘럼을 가진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보통은 인서울 대학교에 몇 명을 보내느냐로 고등학교 서열이 결정되는데 대영고등학교는 자유로운 교풍校風치고는 다수의 인서울 합격자를 배출하는 명문이다.

대영고등학교 출신 유명인사는 꽤 많았다.

국무총리와 장관, 국회의원도 있고 성공한 기업인도 다수며 연예인은 매우 흔했다. 학연과 인맥의 최고봉이 서울대학교라면 대영은 최고까진 아니라도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학교 정문 경비는 나이 든 아저씨가 아닌 또래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내일부터 기숙사 경비를 맡은 오지오라고 합니다.”

“아, 연락은 받았습니다.”


티는 안 내려고 하지만 비웃음이 깔린 말투다.

번드르르한 경비회사 직원으로 계약한 주제 귀신 보고 놀라 도망쳤으니 비웃을 만했다. 학교는 총 세 군데 회사와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첫째는 대영재단 이사회 직영으로 학교시설 전반을 관리하는 합자회사, 이사회 친인척의 온갖 인사청탁으로 이뤄진 비리의 온상이다. 뭐 사학재단치고 깨끗한 곳을 찾긴 힘들다.

둘째는 스쿨폴리스 제도로 말미암아 학교에 상주하는 전직 경찰관 몇 명이다. 이들은 경찰 인맥이 상당하기에 목에 힘주고 다니는 부류로 학생보단 교사들과 행정처에 더 관심이 많았다.

셋째는 감사에 대비한 외부용역이다. 사학비리다 뭐다 들쑤실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일종의 아웃소싱으로 재단사업의 투명성 고지告知 일환으로 홍보 성격이 강했다.


“기숙사가... 크네요?”

“기본적으로 1인 1실입니다. 총 330실이고 현재 만실에서 9실이 부족한 321실이 입주한 상탭니다. 주로 체육장학생 그리고 특기생들이 묵고 있습니다.”

“특기생?”

“공부 잘하는 애들이요. 뭐 시골에서 장학금 받고 뽑힌 농어촌 전형도 있고 외국인 유학생도 있죠.”


구세계는 정말 이상했다.

공부를 잘한다는 기준을 잘 모르겠다.


‘지식이 많으면 똑똑한가?’


뉴로다인기술은 인간의 잠재력을 한계까지 끌어냈다.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지각과 운동, 창의성과 상상력을 한계치로 밀어붙였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는데 잠재력의 과도한 활성화로 인격이 파탄 나거나 마음과 정신이 병들어 자살자가 속출했다.

캡슐이 중요한 이유는 병든 마음과 정신을 치유하는 역할이다. 원하고 꿈꾸던 이상을 시뮬레이션해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것만으로도 병든 정신과 마음에 위안과 안정을 주었다.

시뮬레이션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다.


“내일부터 잘 부탁합니다.”

“뭐... 그럽시다.”


넌 언제 도망가려나 가늠하는 상대방의 눈빛에 지오는 빙그레 웃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 어? 그러고 보니 엄밀히 따지면 나는 귀신일까? 죽음의 기억이 생생했다. 사후를 정확히 인식했으며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삶과 죽음, 철학을 음미하기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귀갓길을 서두르진 않았다. 구세계의 도시는 알게 모르게 내 눈을 현혹했다. 촌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또 세련된 분위기가 있다. 검은색 일색의 머리카락과 인간형 인류만이 거리를 오가는 모습은 낯설면서 신기했다.

중력에 갇힌 채 땅을 기는 인류의 생활상은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것보다 신비했다. 구세계 시뮬레이션은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다. 캐릭터를 뛰어넘는 생생한 인간성의 향연이 내 창작욕을 부채질했다.

시뮬레이션 툴을 쓸 수 없으니 답답할 뿐.

무려 세 시간에 걸쳐 골동품을 감상하며 집으로 돌아온 지오는 인터넷에 풀어놓았던 G와 대화를 나눴다.


-어때? G. 수확이 있어?

-이곳이 시뮬레이션 속이란 확증은 찾지 못했습니다. J. 다만...

-다만?

-행성 단위의 시뮬레이션은 엄청난 컴퓨팅파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단 한 기의 보조AI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터넷이란 원시프로그램이 표준인 세상에서 8세대 뉴로다이어 극소기기단말 보조AI는 기계장치의 신이나 마찬가지다.

뚫고 들어가지 못할 방화벽이 없으며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온 세계의 금융전산시스템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사용자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법리해석의 유연성을 최대로 적용합니다.

-말 참 어렵게 하네. 그래서 은행 해킹할 수 있어? 없어?

-가능합니다.

-추적당할 가능성은?

-21세기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보조AI를 범죄에 이용하는 건 제국법에 반하는 중범죄였다. 물론 보조AI의 윤리회로는 이를 거부할 것이다. 단지 내가 처한 특수한 상황이 예외를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이럴 때면 밀리터리급 뉴로칩을 시술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본대와 떨어진 병사의 생존을 위해 뉴로칩은 도덕과 윤리기준을 재검토할 것이다. 지오시스템 중앙서버와 연결되지 않자 오지오의 보조AI는 곧장 서바이벌모드로 이행했다.

당장 일을 때려치워도 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 대화하며 이 세상에 녹아들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다. 오지오가 아는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알아보라는 건?

-성조그룹은 설정과 바뀐 부분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현재 미국으로 돌아간 상태며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임시폴더로 옮긴 스토리 진행률과 똑같네?

-맞습니다.

-시나리오대로 흘러갈까?

-99.9% 확신합니다.

-0.1%는 어디다 쓰려고?

-0.1%는 변곡선 오차범위 이냅니다. 무시해도 좋을 확률이죠. 개추랄까요.

-농담이 늘었군.

-칭찬 감사합니다. J.


중앙시스템의 감시와 억제를 당하지 않는 보조AI는 기계학습을 빠르게 늘려갔다.


-주인공 옆에 붙어서 꿀을 빨아야 할까?

-우선 사용자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해봐.

-새뮤얼 G. 오가 여전히 시나리오 주인공이 확실합니까?

-아니면?

-사용자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시나리오 목표 변경을 제안합니다.

-구체적으로?

-새뮤얼 G. 오를 메인프레임 목록에서 제거할 것을 제안합니다.

-주인공을 갈아치우자는 뜻이군. 하지만, 시뮬레이션 툴 명령어를 사용할 수 없으니 불가능해. 아니, 여기가 진짜 시뮬레이션인지 너조차 확신할 수 없잖아?

-맞습니다. J.

-그러면 주인공을 바꾼다고 가정했을 때 문제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텐데? 그건 손해야. 제안을 수정해봐.

-요청 확인! 수정된 제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겁니다.

-오호. 계속해.

-메인프레임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예정된 이벤트에 휩쓸릴 확률도 낮아집니다.

-그렇지. 이벤트에 휘말리지 않으면 굳이 심력을 쏟을 이유가 없어. 재벌이 아니라도 먹고사는 일에 지장 없거든.


내겐 일생일대의 목표 따윈 없었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자 노력한 적도 없고 경찰로서 정의감을 떨친 적도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나는 이 세상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만들었으니까.

뭐 수십억 엑스트라의 미래는 잘 모르지만 주인공과 관련된 굵직굵직한 역사의 사건은 알고 있었다.


-좋아! 결정했어. G.


나는 내 죽음을 기억한다. 딱히 호기심을 가진 적도 없었고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났음에도 거대한 태풍이 가만있는 나를 휩쓸어버렸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만 터졌다.

소시민의 비애다.


“아, 출근하기 싫다.”


그래도 출근해야겠지.


‘그게 엑스트라 라이프의 근본Origin이니까.’


그러므로 여분으로 얻은 이 영문 모를 두 번째 삶에선 평범과 평탄에 물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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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지오 디 오리진 -24화- +11 21.02.27 6,506 201 21쪽
23 지오 디 오리진 -23화- +16 21.02.03 7,083 242 21쪽
22 지오 디 오리진 -22화- +5 21.02.03 6,793 208 22쪽
21 지오 디 오리진 -21화- +9 21.02.03 6,841 210 17쪽
20 지오 디 오리진 -20화- +27 21.01.20 8,161 230 30쪽
19 지오 디 오리진 -19화- +32 21.01.14 8,163 250 38쪽
18 지오 디 오리진 -18화- +16 21.01.07 8,040 232 17쪽
17 지오 디 오리진 -17화- +18 21.01.03 8,268 236 21쪽
16 지오 디 오리진 -16화- +19 21.01.01 8,091 231 19쪽
15 지오 디 오리진 -15화- +15 20.12.30 8,166 245 20쪽
14 지오 디 오리진 -14화- +13 20.12.29 8,241 253 12쪽
13 지오 디 오리진 -13화- +22 20.12.27 8,576 247 20쪽
12 지오 디 오리진 -12화- +20 20.12.25 8,521 260 13쪽
11 지오 디 오리진 -11화- +18 20.12.25 8,526 252 11쪽
10 지오 디 오리진 -10화- +23 20.12.24 8,931 246 13쪽
9 지오 디 오리진 -9화- +13 20.12.23 9,143 239 14쪽
8 지오 디 오리진 -8화- +16 20.12.22 9,970 264 20쪽
7 지오 디 오리진 -7화- +19 20.12.21 10,786 248 25쪽
6 지오 디 오리진 -6화- +17 20.12.20 10,905 268 12쪽
5 지오 디 오리진 -5화- +10 20.12.20 11,532 267 13쪽
» 지오 디 오리진 -4화- +17 20.12.19 13,423 316 12쪽
3 지오 디 오리진 -3화- +49 20.12.18 18,695 355 36쪽
2 지오 디 오리진 -2화- +19 20.12.18 20,504 362 18쪽
1 지오 디 오리진 -1화- +41 20.12.18 33,646 41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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