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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563,333
추천수 :
18,148
글자수 :
839,717

작성
20.12.22 15:57
조회
9,982
추천
264
글자
20쪽

지오 디 오리진 -8화-

DUMMY

“좋은 아침.”


강선아는 상쾌한 얼굴로 인사했다.


“어머! 우리 자기.”


여자는 요물이다.


“막내가 왜 니 자기야? 미친년아.”

“우리는 어, 젯, 밤에 만리장성을 쌓았거든.”

“얼씨구?”


김주희가 팔짱을 끼고 나와 강선아를 번갈아 쳐다봤다.

프랑스 일정이 끝났다.

다음은 스위스를 거쳐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지나 독일을 들른 뒤 네덜란드에서 배를 타고 영국 런던에서 귀국하게 될 것이다. 18박 20일이 길어 보이지만 7개국 국경을 넘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지오는 스위스에서 국제우편을 보냈다.

Dear 목욕탕으로 시작하는 편지의 내용은 로또 2등에 당첨된 얘기 그리고 출出사표 하고 유럽여행을 떠난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P.S.-전학생 오면 잘해줘라.]


주인공은 대영학원을 정태곤, 아니 경일그룹에서 강탈했다.

이때부터 성조와 경일의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 셈.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교육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제2, 제3의 정태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지오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재혼해 낳은 여동생들을 대영학원에 보내지.’


본래 스토리에 이유나란 캐릭터는 없었다.

주인공을 등에 업고 대영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전학 올 이수영과 이수현 자매의 학교생활은 파란만장해질 계획이다. 이유나가 이씨자매의 줄을 잡는다면 그녀는 주인공의 도움으로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니 내가 흑막 같군.

-창조주인데 당연히 흑막 아닙니까?

-욕심일까?

-그건 욕심도 아닙니다. J. 진짜 욕심을 부린다면...

-주인공을 바꾸라고? 싫어. 사서 고생할 일 있나.


계속 말하지만 스토리는 진부함의 극치고 온갖 클리셰와 오마주, 이벤트를 때려 박았다.


-재난영화가 왜 재미있는 줄 알아?

-시원하게 때려 부숴서?

-아니, 내가 당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거야. 지진에 폭풍에 휩쓸리는 대상이 내가 아니잖아? 난 일개 관객일 뿐. 저 절망과 고통에 공감할 필요도 이유도 없거든. 그냥... 즐기면 돼.


남의 불행은 그저 남의 불행이다. 우리는 그들의 비극과 희극을 지켜보며 즐거움과 교훈을 얻으면 그만이었다.

스위스 다음은 오스트리아인데 건물은 예뻤다. 그러나 여기서 살라면? 싫다. 겉모습이 예쁜 옛 건물은 예쁜 쓰레기였다.

체코도 별로 볼 것 없었고 독일은 소시지가 괜찮았다. 아니, 짠가? 맥주를 기대했는데 기대한 만큼 맛있진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배를 타고 영국으로 넘어왔다.

여행의 종착지 런던, 우리는 오랜 의문을 풀기 위해 영국식당을 찾았다. 영국 음식은 소문대로 맛없을까? 영국의 대표식단인 피시 앤 칩스를 시켜 악명을 확인해봤다.


“나쁘지 않은데?”


첫 감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정어리 파이는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었다. 인류의 미각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영국인 요리사는 다 죽여버려야 한다.

언제부턴가 강선아는 내 곁을 맴돌았다.

팔짱을 끼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스스로 놀랄 만큼 그녀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문란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문란한 게 아니라... 솔직하군.’


여고생이랑 비슷할 정도로 솔직했다. 나이를 먹고도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부류다. 실력 하나로 세상을 헤쳐갈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악과 깡만 남은 실패자거나.

강선아는 전자였다.

여행이 끝난 후 우리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밤의 그녀는 어느 때보다 뜨겁게 안겨들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우리는 쿨하게 헤어졌다.

일단 서울로 올라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도 짐도 다 처분했으니 가져갈 건 캐리어 하나밖에 없었다. 호텔 객실을 잡고 침대에 누웠다.


-이민 준비는?

-정상적인 절차로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조작은 안 돼. 아직은 안심할 수 없거든.


브라이스가 아직 내 이름을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더 빠르게 이주할 수 있는 나라는 프랑습니다.

-레종?

-프랑스 외인부대는 매력적인 옵션이죠.

-내가 막 신기술을 개발하면 어떨까?

-고졸이 신기술이요?

-좀 그런가?

-천재 코스프레는 잘못했다간 망신당합니다. 차라리 주식을 하고 말죠.

-단타로 10억을 모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당국의 눈을 피한다는 가정이면... 3년이 안전합니다.

-연 3억 수준이군.

-부실한 종잣돈으론 그 정도면 감지덕집니다.


연봉 3억 원은 큰돈이다.

든든한 배경이 없는 사람이 막 수천억 원씩 버는 것은 소설에서나 가능했다. 주식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미래를 안다고 주식시장을 석권하는 건 무지한 자의 꿈같은 바람이었다. AI-Geo가 제아무리 기계장치의 신이라도 21세기 국가시스템을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깊은 어둠에 숨어 흑막을 자처할 것이 아니면 최대한 법질서를 존중해야 옳다.

작가로서 지오는 타임머신을 극혐했다.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꾸는 건 대량살인마보다 더 지독한 악당이나 할 짓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바꾸는 행위는 어떤 정의나 대의로도 용납할 수 없다. 굳이 타임머신을 써야 한다면 나는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겠다.


‘복수하고 싶지 않냐고?’


별로.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설사 안다고 해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안녕하세요. 오지오 씨.”


혹시 나? 대단할지도.


“여행은 잘 다녀왔습니까?”

“경치 좋더군요. 그래서 또 나가볼 계획입니다.”

“경험은 많을수록 도움이 되죠.”


강호 C&C 이택기 과장은 귀국 다음 날 호텔로 찾아왔다.


“사표를 냈다는 소식은 나중에 들었습니다. 일이 많아서 뒤늦게 알게 됐죠. 로또 2등에 당첨됐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당분간 취직할 맘이 없는 겁니까?”

“2등이라고 해봐야 얼마 안 됩니다. 그보다 이 과장님.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 솔직해집시다.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제가 모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엔 많은 인재가 필요하죠.”

“나한테 머리 쓰는 걸 바라는 건 아닐 테고... 난 조폭이 아닙니다.”

“불법적인 일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시키진 않습니다.”

“다들 말은 그럴듯하게 시작하죠. 그러다 결국은 저 잘난 정의에 매몰돼 폭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겁니다.”

“확고하시네요.”

“가방끈은 짧지만 이거 하나만은 압니다.”


작가로서도 경찰로서도 나는 더 큰 부와 권력에 부려졌다.


“부려지는 자에겐 형편 좋은 일은 없습니다.”


형편 좋게 일을 가려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돈이든 권력이든 더 많이 가진 자였다.


“난 하기 싫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전 직장에서 질리도록 경험한 거로 충분합니다.”

“자유로운 분이군요.”

“쉽게 말해 반골이죠.”

“하하.”


이택기는 브라이스의 부탁을 받고 눈앞에 있는 청년을 강호 C&C에 꽂았지만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이 대영학원을 장악하고 발견한 CCTV 데이터를 확인하며 마음을 달리 먹었다.

천부적인 싸움꾼.

간결하고 치명적이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전투감각은 타고난다.


“오늘은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음에 또 보죠.”


이택기는 급하지 않다는 태도로 물러났다.


-G.

-대영학원을 차지하며 CCTV 데이터를 확인했습니다. 이택기가 사용자에게 강한 흥미를 느낀 것 같습니다.

-이택기가 주인공 라인인가?

-몰랐습니까? 이택기는 젠슨 리입니다.

-어라? 그는 6챕터에 등장하지 않나?

-그래서 지금은 이택기죠. 시나리오 전반에 걸쳐 작은 변화들이 있습니다. 툴로 확인할 수 없지만 변곡선에 중대한 변화가 있으리라 추측합니다.

-나 때문일까?

-절반의 긍정, 약간의 부정. 변수로 작용한 건 맞지만 사용자가 변화의 주체는 아닐 겁니다.

-그럼?

-추측하건대 사용자를 이곳으로 소환한 존재가 운명변곡선을 왜곡한 진짜 흑막입니다.

-누가?

-그건 지금 단계에선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첫 번째 제안은 이택기를 제거하는 것.

-안 돼. 젠슨 리는 꽤 중요한 조연이야.

-두 번째 제안은 모든 기록을 말소하고 신분을 세탁할 것.

-얼굴을 드러내고 돌아다니긴 힘들겠군. 다른 제안은?

-마지막 제안은 주인공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황을 통제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사용자는 주인공의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우위로서 긍정적인 관심을 끌어냅니다. 사용자는 배우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메인-이벤트를 피해 가는 작은 이벤트를 취사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관찰과 생존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건 물론이고 메인프레임의 총화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적당한 거리라면 어느 정도?

-브라이스와 협력하는 프리랜서 해결사를 추천합니다. 다만 정보브로커와 접선하려면 새로운 백그라운드 공작이 필요합니다.

-킬러나 비밀요원이 되라고?

-이택기가 사용자를 인식한 이상 쉽게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요. 굳이 킬러나 비밀요원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좀 특수한 부대를 나온 거로 하죠.

-시간이 얼마나 있지?

-이택기의 행동반경을 고려했을 때... 최소 두 달, 최대 반년입니다.


평범과 평탄한 인생이 이렇게 힘들다.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건 똑똑할수록 심해졌다. 젠슨 리는 악당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주인공을 숭배하는 극단주의자는 그만큼 쉽게 자기만의 정의에 매몰됐다.

홍위병이 자신을 악당이라고 생각했을까? 천만의 말씀.


‘바르게 미친놈은 뭔 짓을 할지 몰라 더 무섭지.’


이틀 뒤 지오는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도망치는 겁니까? J.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거든.


젠슨 리는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고작 과장에 있을 위인이 아니니 조만간 조직개편을 통해 높은 자리에 앉게 되리라. 주인공은 젠슨 리를 통해 한국에서 무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됐다.

강호 C&C는 주인공의 숨은 칼이다.

성조그룹 경호실이 있지만 엘리트는 쓰임새가 달랐다.

G라는 강력한 번역기 덕분에 일본어를 알아듣고 말하는 일은 쉬웠다. 뭐 발음이 구린 거야 어쩔 수 없다. 차차 나아지겠지.

도쿄는 친절한 도시다.


‘어디까지나 겉으론...’


어느 도시든 나라든 이면이 존재한다.

작가로서 경찰로서 지오의 특기는 관찰이었다. 남이 못 보는 걸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보고 지나친 부분을 잘 살폈다. 망막디스플레이와 G센서의 결합은 실시간 거짓말탐지기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증강현실을 더하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


‘이것이 제한 없는 인비저블비전이구나.’


중앙AI의 통제를 받지 않는 보조AI의 정보수집능력은 가공했다. 정보보호법에 의거 뉴로다이어 센서는 함부로 시민권자의 정보를 들춰보거나 추측할 수 없었다. 이는 뉴로통신 보호를 위해서 입법됐는데 이곳에서 뉴로통신이 가능한 자는 지오뿐이니 법령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시각정보에 필터를 넣었다.

첫 번째는 자산 즉 돈이다.


‘오.’


전 재산 590엔도 있고 90만 엔도 있고, 오 저 아가씨는 젊은데 100억 엔이 넘는 갑부였다. 뭘 하는 여자일까 싶어 상세정보를 클릭하자 갑자기 소프란 글자가 튀어나왔다.


-소프?

-일본에는 다양한 성인업소가 있고 소프는 풍속의 한 갈랩니다. 매우 광범위한 법령을 가진 주산업으로 분류되죠.

-뭐 스트립클럽 같은 건가?

-비슷합니다만 좀 더 본격적인 터치가 가능합니다.


스트립클럽은 눈으로 즐기는 곳이지 만지면 불법이다.


-통합되기 전 일본의 성인산업은 세계최고였습니다. 미국도 한 수 접어줄 만큼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했습니다.

-멋진 나라군.


내 감상은 그게 다였다.

필터를 바꿔가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온갖 검색어를 집어넣었는데 자기가 봐도 이상한 기준도 있었다. 범죄라는 포괄적인 검색에는 9할이 빨간색이 되었다. 기준을 바꾸어 살인으로 한정하자 놀랍게도 대략 1천 명 중 한 명꼴로 ‘살인자’로 검색됐다.


-범죄분석 중... 지난 3년 동안 총 9명의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추측됨.

-근거는?

-일본 경찰청, 일본 경시청, 일본 검찰청 등 전국의 수사기관 수사정보를 프리즘 검색함.


연쇄살인범 다음에는 연쇄강간범을 찾았다.

사기꾼이 제일 많고 뺑소니와 소매치기, 폭행 등 다양한 범죄자가 잡히지 않은 채 길거리를 활보했다. 경찰이 무능한 걸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무능보다는 기술이 부족했다.

이제 인력人力으로 수사하는 건 무의미했으니까.


‘나랑은 상관없지.’


범인을 잡아야 할 의무도 의리도 없었다.

도쿄 맛집을 찾아다녔다.

일본에 왔으니 일단 스시를 맛보고 무슨무슨 동으로 불리는 덮밥을 먹었다. 간장베이스의 양념이 많아서인지 짠맛과 함께 느끼함이 느껴진다. 전 세계 씹덕의 성지 아키하바라를 방문했을 때 실망한 것은 예상보다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중2병 환자가 넘친다거나 길거리에서 씹덕코스프레를 볼 수 있다거나 등등 그 이벤트가 아닌 이벤트를 즐기리라 고대했는데, 배신당했다.

메이드 카페를 들어갔다.

메이드옷을 입은 여자는 일본인 평균을 월등히 상회하는 지오가 들어오자 살짝 움찔하더니 금방 영업미소로 무장했다.

고슈진사마! 고슈진사마! 고슈진사마!


‘음. 나쁘지 않구먼.’


모에모에 큥! 맛있어져라! 모에모에 큥!

진심이 꼴랑 한 스푼 담긴 영업용 미소라도 여자의 웃는 얼굴은 남자를 들뜨게 한다. 이 카페의 영업전략은 확실했다. 호구의 돈을 쭈압쭈압 빨아먹겠다는 뜻.

일부 메이드는 지하아이돌?을 병행한다는데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지하아이돌? 뭐 지하실에서 공연하나?

-지하는 비유적인 표현이죠. 메이저 기획사가 아닌 혼자 혹은 영세한 공연장에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아이돌도 3부 리그가 있어?

-일본인은 등급을 나누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들 표현으론 분석 혹은 작전이죠.

-아니, 그렇게 이성적인 인간들이 2차 대전 때는 왜 그 지랄을 했대? 병신도 아니고.


디즈니랜드는 재미있었다.

남자 혼자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끼고 돌아다니자 시선이 느껴졌는데 교복을 입은 몇몇 여학생이 다가와 혹시 연예인이냐고 물으며 저들끼리 꺅꺅거렸다.


‘나... 괜찮을지도.’


랜덤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주인공만큼 대존잘은 아니지만 소존잘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 셀프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면 진짜 연예인 행세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촬영 중인 연예인도 몇 명 봤다.

디즈니랜드와 비슷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도쿄가 아닌 오사카라서 다음을 기약했다. 비즈니스호텔로 돌아온 지오는 편지를 썼다. 이것도 몇 번 써보니 버릇이 됐다.

Dear 목욕탕.

나는 지금 일본에 있고 맛집을 탐방하다 메이드와 즐겼다는 이야기를 놀리듯 풀었다. 대미는 디즈니랜드다. 테마파크에 환장하는 여고딩짱을 놀리려면 디즈니랜드에서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쓴 사진쯤은 동봉해야 했다.


[P.S.-봉제인형이 존나 못생겼어도 존나 비쌈.]


국제택배로 디즈니랜드에서 구매한 곰돌이 봉제인형을 함께 보냈다. 생긴 건 쥐 파먹은 듯 허접했는데 가격이 미쳤다.


‘하여튼 상술은!’


빈티지 장사는 반 사기다.

카바쿠라? 긴자? 거기가 유명한 유흥업소거리라는데 그다지 흥미를 끌진 못했다. 건담을 설정된 실물 크기로 전시하는 곳을 가봤는데 서고 앉는 시간만 한세월이다.

제국 육군을 대표하는 전쟁기계 타이탄을 본다면 어떤 표정일지 심히 궁금했다. 저 깡통을 보며 자랑스러워할까? 제국우주군 순양함 한 척만 떠도 이 지구는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내가 세계정복을 노린다면 얼마나 걸릴까?

-제국법을 예외로 둔다면... 50년 내로 가능합니다.

-기술제약을 푸는데도?

-기술발전에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더구나 이곳에는 연금과학을 풀이할 학자가 없습니다.

-넌?

-3급 지정기술은 가능하고 2급부터는 황립연구소장의 재가가 필요하며 1급 이상은 황실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사용자 우선으로 해제를 명령한다면?

-Negative! 이는 협상과 고려할 대상이 아닙니다.


뭐 세계정복할 생각은 없으니까 상관없다.

볼거리 많은 도쿄도 열흘이 넘자 슬슬 다음 도시가 궁금했다.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는 도쿄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일단 한국어로 된 간판이 엄청 많이 보였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야쿠자를 도쿄에서도 오사카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길거리에 막 행패를 부린다는 소문은 과장된 괴소문이었다.

다만 주점酒店 간판이 보인다고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데 여장남자가 운영하는 게이바Bar가 알게 모르게 많았다. 지오도 잘못 들어갔다 식겁했다. 여자가 남장하는 건 괜찮은데 남자가 여장하는 건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이게 동족혐오일까.

털이 수북한 아저씨가 짙은 화장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어떻게 감내하겠는가. 순간 눈앞이 아찔해진다. 오사카에서 이틀을 더 보내고 교토로 넘어갔다. 벚꽃과 단풍 시즌에 절정의 경치를 자랑한다는데 날을 잘못 정했다.

서울 사는 학생들이 한때 경주를 수학여행의 성지로 여겼듯 도쿄 사는 학생들은 교토를 많이 찾았고 지금도 많이 찾는다. 일본의 정취는 모르겠고 목조건물들이 예쁘긴 예뻤다. 진짜보다 전후 새로 만든 건물이 태반이지만 눈치 없는 외국인이 보기엔 닌자로 대변되는 재패니메이션의 성지로 추앙했다.

아키하바라보단 이국적인 풍경을 더 좋아했다. 나루토 코스프레로 돌아다니는 백인, 늦은 밤 흑인의 닌자 코스프레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사무라이를 동양인 무사의 정통으로 받아들이는 외국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오가 순수 한국인이었다면 분노했을지도 모르지만 코스프레 외국인과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여장남자로 썩어버린 눈을 정화하기 위해 이웃한 현에 있는 다카라즈카를 찾았다. 예약을 안 하면 공연을 구경하기 힘들다는 소문을 들어서 G를 이용해 티켓팅 서버를 조작했다.


-참... 소박하네요. J.

-왜? 진짜 은행이라도 털 줄 알았어?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많이 가질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연봉 3억이 적냐? 그 돈이면 주택청약통장을 만들고도 서울에서 월세를 살고 자차를 운행하며 성수기에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돈이야. 초슈퍼울트라엘리트라고.


지오는 로또 2등 당첨금 일부를 시드로 G를 이용해 연 3억 원 정도의 데이트레이딩 수익을 기대했다.

3억 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땅을 파봐라. 돈이 나오나. 막 각성해서 수조 수천억을 버는 건 지오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주인공 뒤만 쫓아가도 돈 버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부와 권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더 큰 부와 권력이 필요해진다.

악순환이다.

뭐 야망 있는 자는 성공의 계단을 오르기 위해 아득바득 기를 쓰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연수익 3억 원이면 즐거운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억이 아니라 5천만 원만 돼도 간도 쓸개도 다 떼줄 거야.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공연장을 찾는 관객 9할은 여자다. 잘생긴 남자배우 같지만 무대 위에 오른 배우 전원이 여자였다. 일본에만 있는 아주 특이한 공연이다.

공연은 즐거웠다.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한 조명과 의상에다 일본인치고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기럭지에서 나오는 역동적인 퍼포먼스,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의 무대인사를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지오가 앉은 좌석 근처의 관객들은 배우들 못지않게 그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잘생긴 남자 혼자 다카라즈카 공연을 관람하는 건 없지는 않아도 이례적인 경우다.

여성들의 은근한 시선을 즐기던 지오는 갸웃했다.


‘응?’


무대인사 중인 배우들 그리고 무대 아래 모습을 드러낸 스탶들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일본인 친구는 없다. 하지만, 얼굴이 익다는 것은 그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는 뜻이다.

여성 9명을 살해한 빨간색 이름.


‘연쇄살인범.’


바로 그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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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오 디 오리진 -12화- +20 20.12.25 8,532 260 13쪽
11 지오 디 오리진 -11화- +18 20.12.25 8,537 252 11쪽
10 지오 디 오리진 -10화- +23 20.12.24 8,942 246 13쪽
9 지오 디 오리진 -9화- +13 20.12.23 9,155 239 14쪽
» 지오 디 오리진 -8화- +16 20.12.22 9,983 264 20쪽
7 지오 디 오리진 -7화- +19 20.12.21 10,799 248 25쪽
6 지오 디 오리진 -6화- +17 20.12.20 10,918 268 12쪽
5 지오 디 오리진 -5화- +10 20.12.20 11,545 267 13쪽
4 지오 디 오리진 -4화- +17 20.12.19 13,442 316 12쪽
3 지오 디 오리진 -3화- +49 20.12.18 18,717 355 36쪽
2 지오 디 오리진 -2화- +19 20.12.18 20,527 362 18쪽
1 지오 디 오리진 -1화- +41 20.12.18 33,680 41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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