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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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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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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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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42화

DUMMY

아이작은 재료 오두막으로 펠릭스를 데려갔다. 그는 오두막의 바닥에 쌓여있는 나무 상자를 옆으로 밀어 숨겨져있던 바닥의 비밀 문을 열었다.



아이작은 촛대 위에 불을 켜고, 불을 밝히며 계단 아래로 한 발짝씩 내려갔다. 펠릭스도 그를 뒤따라 내려갔고, 그는 아래에서 형형색색의 반짝이는 가루들이 담겨있는 자루들의 무더기를 발견했다.



“요정 가루다.”



펠릭스는 조금 놀란 눈으로 가루들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새빨간색, 분홍색, 하늘색의 가루도 있었다.



“진작에 멸종한 요정 나방의 가루까지 모아뒀군요.”



“멸종하지 않았으니까.”



아이작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마당에 벌레를 풀어 키울만큼 담이 센 귀족은 별로 없을텐데요. 그렇다고 신흥 사업가가 손을 댔을리도 없고. 신흥 사업가가 떵떵거리며 잘난 체를 시작하기 한참 전에 나방들이 멸종했으니까.”



“그러니까, 멸종한 적이 없대도.”



펠릭스는 그제서야 스승을 돌아보았다.



“몰래 키우고 있었나요?”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귀족 친구는 생각보다 훨씬 도움이 되더구나, 펠릭스.”



펠릭스는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가루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거라.”



“이걸요?”



“그래. 필요하지 않느냐?”



펠릭스는 하늘색의 가루가 가득 담긴 자루로 다가가, 손끝으로 가루를 살짝 만져보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연금술사들 사이에서는, 한 병의 약이 천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마련 아니겠느냐.”



“정말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 되죠?”



“그래. 내가 제자를 또 속이려고?”



펠릭스는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요정 가루가 담긴 자루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고맙습니다, 대스승님. 안 그래도 부탁하려던 참이었는데.”



“최고의 죽음의 약. 재료는 충분히 모았느냐?”



“불나무 껍질 빼고는요. 대신, 꽤 묵직하고 질좋은 호박석을 얻었으니까.”



“하늘 대신 땅이라. 다른 것들은?”



“뭐, 거의 다 모았습니다. 흑살구는 최상품은 아니지만, 어차피 그건 촉매일 뿐이니 별 상관은 없을 겁니다. 집에가서 뿔도마뱀 눈알을 좀 구해달라 하면 그것도 금새 모을 테고, 남은 것은 겨울눈꽃 하나 뿐이죠.”



“부족하지 않느냐?”



펠릭스는 싱긋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제이콥을 찾아, 제 것을 가져오면 됩니다.”



“늑대의 눈물. 거기에 겨울눈꽃까지 더하면 충분하겠구나.”



아이작은 대견한 눈으로 펠릭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만들 수 있겠느냐? 네 최고의 죽음의 약.”



펠릭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누구에게 부탁할 셈이냐? 너 정도 되는 연금술사를 왕국 안에서 또 찾기는 힘들 텐데.”



“메를린은 자기한테 맡겨달라 하던데요.”



“메를린은 무리지.”



아이작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실비아한테 부탁할 생각입니다.”



“그 때 까지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그 어리고 조그만 소녀가? 연금술에 관해서라면,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인데.”



“그렇다면, 대스승님 당신도 실비아를 잘못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군요. 걸음마를 뗀 아이라니. 아니죠. 차라리, 기수의 신호를 기다리며 안절부절 못하던 준마에 더 가까울 겁니다. 이제 달리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어디까지 가는지 볼 만 할 겁니다.”



아이작은 씩 웃었다.



“네 제자라고, 편을 들어 주는 것이냐?”



“그럴지도요.”



“펠릭스. 너도 변했구나.”



펠릭스는 대꾸하지 않고 씩 웃기만 했다.







지하 창고를 빠져나오자 잠시 잊고 있던 차가운 겨울 바람이 펠릭스의 옷 밖으로 드러난 얼굴 위를 할퀴고 지나갔다. 하지만 펠릭스는 조금의 아픔도 느끼지 못한듯 보여서, 오히려 바람의 손톱이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 어디로 보내주면 되겠느냐?”



“집으로요.”



“어느 집?”



“연금술 가게로요.”



“거 참. 집 한 군데는 그만 정리하는게 어떻겠느냐?”



펠릭스는 그의 대스승을 향해 히죽 웃었다.



“곧 정리할겁니다.”



“작년에도 똑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느냐.”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래서, 펠릭스.”



아이작은 걸음을 늦추다가 완전히 멈춰섰다. 그러자 펠릭스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섰다.



“이제 떠날 것이냐?”



“네. 바쁘니까요. 곧 겨울이 다가와요. 여긴 북쪽이니까. 겨울눈꽃을 찾으려면 조금 서두르는게 좋겠죠.”



아이작은 그리움과 대견함이 묻어나는 눈동자를 천천히 깜빡이며 펠릭스를 보았다.



“펠릭스. 수고하거라. 네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마.”



“행운은! 대스승님. 난 그딴 것이 도와주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내겐 충분한 힘과 능력이 있으니까.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대스승님.”



펠릭스는 할 말을 마치더니 뒤도 돌아보지않고 몸을 휙 돌려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펠릭스가 점점 멀어져가자, 아이작은 조금씩 자그맣게 사라져가는 펠릭스의 뒷모습에 대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펠릭스. 그게 바로 행운이 도와준 것이 아니면 뭐겠느냐?”



나무 위에서 낙엽을 몰고 바람결이 비스듬히 불어와 아이작의 목소리를 사뿐히 덮어버렸다.







펠릭스와 아이작이 오두막에 가 있는 동안 잠에서 깬 것인지, 실비아는 식사 테이블에 느긋하게 앉아 두 손으로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을 쥐고 다른 여자 연금술사들과 조잘거리고 있었다. 마침 식사 테이블 옆의 나무 위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는데, 그 지저귐 소리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나뭇가지와 둥지 속에 몸을 숨긴 숲 새들이 내는 것인지 조금 구분하기 어려워 보였다.



펠릭스가 꽤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도 실비아는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메를린 뿐만 아니라, 카야와 린과도 대화를 나누며 어느새 친구가 된듯 보였다. 한창 수다에 집중하여 때때로 잔을 내려놓고 가볍게 손뼉까지 쳐 가며 웃던 실비아는, 등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



“왁!”



“꺅!”



펠릭스가 큰 소리를 내며 놀래키자 실비아는 대뜸 그를 찰싹 후려쳤다.



“아야!”



펠릭스의 공허한 비명과 함께, 연금술사들의 실소가 공터에 울려퍼졌다.



“놀랐잖아요!”



“그렇다고 때려요?”



“맞을 짓을 하니까 그렇죠!”



실비아는 씩씩거리며 도로 찻잔을 집어들었다. 아직 김이 뿜어져 나오는 찻잔을 보더니 펠릭스는 행여 차 세례를 맞을까봐, 금새 아무렇지도 않은척하며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여기서 느긋하게 놀고 있었어요?”



“네. 또 시비걸러 왔어요? 하지만, 오늘은 시비걸 구석이 없을걸요. 전 이미 약도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교류회는 친목을 다지는 자리라면서요? 그러니, 지금 저는 교류회에 아주 걸맞게 행동하고 있는거죠. 그렇죠, 메를린?”



메를린은 잔을 들어올려 입가에 가져다 대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린, 카야. 안 그래요?”



“그래.”



카야는 의기양양해서, 린은 별로 흥미없다는듯 대답했지만,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똑같은 말로 대꾸했다.



“봐요!”



“교류회는 끝났어요. 어젯 밤에.”



“그런게 어딨어요? 파티는 마지막 손님이 떠나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법이거든요.”



“이건 파티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교류회라니까요.”



“그게 그거죠. 똑같은 사교의 장인데.”



“됐어요 됐어. 마음대로 생각해요.”



결국 먼저 질려버린 펠릭스가 혀를 내두르자 실비아는 당당한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쯤 하고 마무리 지어요. 우린 이제 떠나야 하니까.”



“네?”



실비아 뿐만 아니라, 다른 세 사람의 연금술사도 조금 놀란 눈으로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벌써 가게?”



카야가 아쉽다는듯 말했지만, 린은 반대로 잘 됐다는듯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



“빨리 가. 펠릭스. 네 재수없는 얼굴, 더 보기 싫으니까.”



“린! 심술은. 야, 펠릭스. 린이 너 좋게 생각하는거 알지?”



펠릭스는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됐어.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간에, 다 귀찮아. 다른 볼 일 있어서 떠나는것 뿐이야. 내년에 또 올테니까 걱정 말라고.”



“그래도, 아쉬운데 펠릭스.”



메를린은 손에 살며시 쥐고 있던 찻잔을 탁 내려놓았다.



“벌써 가는거야?”



“바빠.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울눈꽃을 찾아야 하거든.”



“아.”



세 명의 연금술사들은 그러자 알겠다는듯, 그리고 아쉽다는듯 또는 조금 걱정된다는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눈꽃이 왜요?”



실비아 혼자서만 잘 모르겠다는듯 눈을 말똥말똥 뜨고 테이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중에 알게 될 테니까, 그만 정리하고 일어나요 실비아.”



“그래도, 이제 겨우 친구가 됐는데.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실비아는 전처럼 눈을 초롱초롱 떴지만 펠릭스는 요지부동이었다.



“편지 써요! 내 참. 바쁘다니까 그러네. 아니면, 편지쓰기 귀찮아서 그래요? 하긴. 메를린을 시작으로 당신 언니에다가 아버지, 트로이네 서커스 단원 폴라, 수도에서 만난 단델리온. 거기에다가 카야랑 린한테까지 편지 쓰긴 귀찮죠?”



“그런거 아니거든요! 열 통씩도 쓸 수 있어요! 사람을 뭘로 보는거람.”



“그럼 이제 그만 일어나요.”



아까보다 훨씬 가라앉은 목소리로, 훨씬 진중하게 펠릭스는 다시 실비아에게 말했다.



“정중히 부탁하면 생각해 볼게요.”



그 말을 듣더니 세 연금술사들은 피식 웃었다. 펠릭스는 얼굴이 살짝 굳었지만, 이내 아주 품위있게 허리를 수그리며 실비아에게 말했다.



“아가씨. 마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실비아를 포함한 네 명의 연금술사들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까르르 웃어버렸다.



“됐죠? 이제 정리하고 나와요.”



“네, 알겠어요 펠릭스. 벌써 마차가 기다린다니, 어쩔수 없네요. 그렇죠?”



실비아가 동의를 구하자 다른 연금술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편지할게요. 아, 어디로 편지를 부치면 될까요?”



“내 참. 마차가 기다린다니까 그러네. 빨리 하고 와요!”



펠릭스는 실비아가 수첩에 다른 연금술사들의 연락처를 적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고 먼저 공터 저쪽으로 털레털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실비아는 공터 저쪽에서 펠릭스와 재회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조용히 연금술사들의 숲 외곽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아 참. 인사를 덜 했는데.”



막 걷기 시작했을 때, 실비아가 머뭇거리며 숲을 돌아보았다.



“나중에 해요. 편지 쓰던가 해서.”



“버크랑 듀프는 주소를 몰라요.”



“내가 가르쳐 줄게요. 걱정은.”



“그 두 사람 주소를 알아요?”



실비아는 살짝 의외라는듯 펠릭스에게 물어보았다.



“네. 알아요. 무슨 문제라도?”



“아뇨. 그냥, 조금 신기해서요. 그 두 사람 하고도 친해요?”



“친하기는. 그냥그렇죠.”



“아, 네. 하긴.”



실비아는 전날 밤에 아이작이 했던 말이 떠올라 조용히 말끝을 흐렸다. 그 모든 연금술사들이 펠릭스의 실패를 바랬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펠릭스의 약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 일로 결국 펠릭스는 오른 다리를 잃어버리고 두 손을 피로 물들였지만, 정작 그들은 그런 사실을 모두 잊어버린 뒤였다.



“발빠른 사람을 알아요.”



두서없이 펠릭스가 말을 꺼내자 실비아는 잡념을 떨치고 고개를 돌렸다.



“아주 발이 빠르고, 머리가 똘똘한 심부름꾼이 있어요. 또한 충실하죠. 그 사람한테 맡기면, 주소를 모르는 사람한테 쓴 편지라도 직접 물어물어 찾아가서라도 전해줘요. 그러니까, 편지가 잘 도착할지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 사람을 알아요? 펠릭스. 당신, 참 발이 넓네요. 처음 봤을 때는, 숲 속에 뿌리박고 사는 애송이 연금술사인줄 알았는데.”



“허 참! 나를 그렇게 몰라서야. 우리 집에 가면 아주 두 눈이 휘둥그레지다못해 튀어나오겠네. 턱 간수 잘 해요! 입 떡 벌리고 있다가 빠질라.”



“허풍이 심해요, 펠릭스! 저도 나름 귀족이거든요? 설마 그럴려고요.”



“어련하겠어요. 자, 마침 마차가 오나본데. 소리 들리죠?”



멀찌감치서 리듬감있데 다그닥다그닥 하는 소리가 숲의 바람을 타고 귓가에 얼핏 스쳐지나갔다.



“진짜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 참. 내가 언제 거짓말 한 적 있나. 날 그렇게 못 믿어서야. 스승을 못 믿어서 어쩌겠어요, 제자가?”



실비아는 입 밖으로 대꾸하지는 않고, 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당신만 하겠어요?’



펠릭스의 생각없어보이는 옆 얼굴과, 그 얼굴에 덮어씌워진 얄팍한 미소의 가면을 훔쳐보며, 실비아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숲 저쪽에서 정말로 마차가 한 대 달려왔다. 앞에 종과 등불을 매달고서. 말쑥한 셔츠와 조끼, 바지 차림의 마부는 새까만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사람이었다. 그는 펠릭스의 바로 앞에 부드럽게 마차를 멈춰 세우더니, 마차에서 사뿐히 내려와 펠릭스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타죠.”



펠릭스는 마부는 쳐다도 보지 않고 마차로 걸어갔다. 그러자 마부는 재빨리, 펠릭스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으며 마차의 문을 활짝 열었다.



“타요.”



먼저 올라탄 펠릭스가 손을 뻗어주자 실비아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손목을 붙잡고 힘껏 마차에 올라탔다.



“어휴! 이렇게 높아서야. 큰 마차라 좋긴 한데, 용케도 이 숲 속으로 몰고 들어왔네요?”



“실력 좋은 사람이라.”



“서비스도 좋네요. 생긴것도 멋있어요. 굉장히 깔끔하던데요. 어느 마차 조합 소속이래요?”



펠릭스는 피식 웃기만 했다.



“아, 그러고보니까, 올리버는요? 올리버는 왜 아직도 안 온대요?”



실비아는 생각없이 마차의 차창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었다가 깜짝 놀랐다. 유리로 만든 창문. 아주 투명한 유리로 만든 창문이 마차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겨울에, 손발이 꽁꽁 얼 정도로 추운날 얼어붙은 호수처럼. 납작 엎드려 눈을 가까이 가져다대면, 티끌하나 눈에 걸리지 않고 그 바닥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호수처럼 투명한 유리창이, 바로 지금 실비아의 눈앞에 있었다.



“세상에, 펠릭스. 유리에요, 유리! 투명한 유리에요. 당신 연금술 가게에 붙어있는 싸구려랑 차원이 달라요!”



“호들갑좀 떨지 말아요. 올리버에 대해 묻고 있었잖아요?”



“아.”



실비아는 뒤늦게 품위있는척 헛기침을 했다.



“올리버는 이번에 같이 안 가요.”



“네? 왜요? 계약 끝났어요? 무슨 일인데요? 어디 아픈 데라도······.”



“카야랑 사냥하기로 약속했다길래, 느긋하게 즐기다 오라고 휴가 줬어요. 그게 다예요.”



“다행이다. 난 또, 밤새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요.”



“무슨 일이 생기려고요, 이 숲 속에서.”



실비아는 그래도 진심으로 다행이라는듯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가, 뒤늦게 살짝 긴장한 눈을 치켜떴다.



“그러면, 우리 둘이 가는 거예요? 위험하면 어떡해요? 올리버는 굉장히 듬직했는데······.”



“안전한데로 갈 테니까 걱정 마요.”



“안전한 곳 어디요? 화이트 플레인 마을에서 불이 났고, 골든포트에서 저랑 올리버는 납치도 당했거든요. 거긴 북적이는 대도시인데. 산호항구에서 마적떼도 만나고······.”



“내가 보증해요. 이번에는 진짜, 진짜로 안전해요.”



펠릭스는 변명하듯 재빨리 말했다.



“정말, 믿어도 괜찮은거죠?”



“날 그렇게 못 믿어요? 그리고, 나랑 같이 다니면서 진짜 위험했던 적은 거의 없잖아요?”



실비아는 지난 여행의 기억들을 곰곰이 떠올리며 미심쩍은 눈으로 펠릭스를 힐끗거렸다.



“알았어요. 한번만 더 믿어줄게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마부! 가요!”



펠릭스는 마부와 연결된 차창을 드륵 열고 힘차게 외쳤다. 그러자 마부는 중후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이럇- 하며 우아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그런데, 펠릭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마차의 바퀴가 이 울퉁불퉁한 바닥 위를 굴러가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실비아는 펠릭스에게 행선지를 물었다. 그러자 펠릭스는 아주 개구쟁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은채 대답했다.



“우리집이요.”



“네? 연금술 가게요? 여기서 거기까지 돌아간다고요? 그럼, 반대방향 같은데······.”



“거기 말고요. 내 원래 집. 어릴 때 살던 그 집이요.”



실비아는 방금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잠시 고민하다가, 뒤늦게 깜짝 놀라며 눈을 재빨리 깜빡거렸다.



“당신 고향으로 가는 거예요?”



“네.”



“어딘데요? 그러고보니까, 저는 당신 성이 뭔지도 몰라요.”



“가서 보면 알아요.”



실비아는 어이가 없다는듯 피식 웃었다.



“보면 안다니, 누가 들으면 대단한 귀족쯤 되는 줄 알겠네요.”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네. 별로 기대하지 않고 기다릴게요. 그런데, 집에는 왜 가는 거예요? 갑자기 고향 생각이라도 났어요?”



“설마!”



펠릭스는 아주 하찮다는듯 피식 웃었다.



“필요해서 가는거죠.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집에 갈리가.”



그렇게 말하는 펠릭스의 얼굴이 아주 얄미워 보인 탓에, 실비아는 손을 쭉 뻗어 펠릭스의 옆구리를 찔러버렸다.



“으헉!”



펠릭스는 아주 볼품없는 소리를 냈고, 그러자, 갑자기 마차가 멈춰서버렸다.



“아, 마부! 장난친거니까 계속 가요!”



뒤늦게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긴장했던 실비아는, 몇 초 정도 뒤에 다시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조금 안도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여튼, 당신이 이상한 소릴 내서 그렇잖아요.”



“찌르기는 왜 찔러요. 왜요?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요?”



“내가. 기껏 힘내서 그런 약까지 만들어 줬는데, 당신은 전혀 달라지질 않았네요.”



“아, 그거요?”



펠릭스는 옆구리를 슬슬 문지르며 대답했다.



“사람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약. 꽤 괜찮더군요. 하지만, 실비아. 난 그걸 알아요. 느끼지는 못하지만, 머리로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아니, 실제로 느끼기도 해요. 내 것처럼 와닿지는 않지만.”



“그걸······알아요? 안다고요? 진심으로요?”



“네.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



“느끼기도 한다고요······?”



“그러니까 당신이 무슨 약을 만들었는지 먹자마자 알아맞히죠.”



“아니, 저기. 펠릭스. 당신. 그, 사람의 마음이 부족하다고······.”



펠릭스는 옆구리에서 손을 떼고 이제서야 허리를 폈다.



“부족하다고 그랬지, 없다고 한 적은 없는것 같은데.”



실비아는 아이작이 그녀에게 알려준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펠릭스는 느끼지 못해서 모두 떠안기로 작정했다. 펠릭스에게는 사람의 마음이 없으니까 그는 책임을 떠안기로 했다. 펠릭스는······



“당신, 알면서 그런 거예요?”



“응? 뭘요?”



실비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히죽 웃고있는 펠릭스의 얼굴을 어딘가 서글픈 눈으로 살펴보았다.



“아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싱겁기는. 괜히 궁금하게.”



실비아가 입을 다물고 차창 밖을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펠릭스도 더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의 차창 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에 잠겨있었는지는, 오직 그들 자신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 비록 실비아가 서글픈 미소를 짓고, 펠릭스가 위협적인 웃음을 띄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 자신이 마음 속으로 무엇을 느꼈는지는 남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마차가 속도를 늦추기 시작하자 실비아와 펠릭스는 어느새 자연스레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꽤 멀리 가네요.”



실비아는 창문 밖을 힐끗 보았다.



“벌써 마을을 몇 개 정도 지나쳐 온 것 같은데. 당신 고향은 아직 멀었어요?”



“다 와 가요.”



실비아는 다시 창문 밖을 힐끗 보았다. 마차는 어느 널따란 도로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도로 양 옆으로는 수확이 끝나 텅 빈 검은 흙의 밭이 꽤 넓게 펼쳐져 있었다.



“좋은 농토에요. 일하는 사람은 안 보이지만.”



“올해는 쉬기로 했나보죠.”



“네? 수확이 끝난게 아니라요?”



“수확이 끝났으면, 밭에 밑동이 남아있든가 하겠죠. 저긴 아예 텅텅 비었잖아요? 같은 땅을 계속 쓰면 토질이 나빠져서 영 못쓰게 돼버려요. 가끔 쉬어주기도 해야죠.”



“잘 아네요. 꼭 여기서 농사라도 지어본 것처럼.”



“농사는.”



펠릭스는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당신 집은 언제 나와요? 설마, 산 꼭대기에 있거나 한 건 아니죠?”



펠릭스는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 안 해줘요?”



“기대하고 있으라는 뜻에서요.”



마차가 속도를 조금 늦추어 실비아는 몸이 살짝 앞으로 기우는 것을 느꼈다.



“다 왔군.”



펠릭스는 그 감각이 익숙한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실비아는 어딘가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펠릭스가, 평소의 펠릭스 처럼 보이지 않았다.



“펠릭스?”



“다 왔어요.”



펠릭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정도 낮아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장난기 많고 나잇값 못하는 소년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두 눈에 야망의 불씨를 품고 있는 어느 귀족의 후계자처럼 보였다. 남루한 여행복과 우스꽝스런 연금술 조끼로도 그 위엄을 숨길 수가 없었다.



“당신, 성씨가 어떻게 돼요?”



마차가 조금 더 속도를 늦추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멈추었다. 그제서야 실비아는 뒤늦게 차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검은 쇠창살 울타리. 한 겨울에도 녹색으로 빛나는 잔디밭. 그 반대편의 길쭉한 도로와 도로 양 옆으로 늘어선 끝없는 땅덩어리.



“펠릭스. 왜, 대답 안 해 줘요?”



마부가 차창을 열자 펠릭스는 먼저 마차에서 풀쩍 뛰어내렸고, 그 뒤를 따라 실비아가 조심스레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에서 내린 실비아의 눈 앞에는 거대한 저택이 있었다. 회색 빛의 저택. 지붕부터 벽의 벽돌, 현관까지 모든 것이 회색 일색이었다. 그 회색 빛은 저택의 잔디밭과, 저택 담벼락의 한 곳을 기어올라 잎사귀를 활짝 틔운 담쟁이덩굴에 대비되어 더욱 삭막한 잿빛으로 보였다.



“환영해요.”



펠릭스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저택 현관문이 저절고 활짝 열리며 하인의 유령 같은 것이 얼핏 보였다.



“여기가······어디죠?”



펠릭스는 말없이 저택 현관 문 위에 붙어있는 장식물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고래. 고래 모양의 장식물. 파란 색과 흰 색이 섞여있는, 거친 파도를 헤치는 고래 모양의 장식물.



“웨일?”



펠릭스는 어딘가 음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집에 온 걸 환영해요, 실비아.”



실비아의 눈앞에 서있는 것은, 행복의 연금술 가게의 천진난만한 주인 펠릭스가 아니었다. 그는 왕국 안에서 가장 강력한 동시에 가장 음흉하고 음습한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 펠릭스 웨일이었다. 그 낯설고 이질적인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차가운 북풍 때문일까. 실비아의 몸과 마음 모두가 불안하게 부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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