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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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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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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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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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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27화

DUMMY

아이작의 황금빛 눈동자가 기이한 광채를 내뿜자, 실비아는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흐음.”



다행히 아이작은 금새 실비아에게서 눈을 돌리더니 그를 향해 허리를 숙인 연금술사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돌연, 아이작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뼉을 짝짝 쳐댔다.



“하하! 다들 건강하구나. 그만 허리들 펴고. 어디, 트로이. 후원자를 얻었다고? 축하한다. 드디어 네 서커스에도 빛 드는 날이 오려나보구나. 그리고 올해는 제인이 없군.”



“게일도요.”



“하하하! 게일. 매 해마다 내게 몰래 찾아와서는 사랑의 묘약이니 뭐니 알려달라고 떼를 쓰더니, 결국 해 낸건가?”



아이작은 뭐가 그리 재미난지 다시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실비아는 조금 눈을 크게 뜨고 펠릭스의 귀에대고 조그맣게 속닥거렸다.



“펠릭스. 사랑의 묘약이라니, 설마 벤투스 경이······.”



“실비아. 벌써 몇 번 정도 듣지 않았나요? 사랑의 묘약따윈 없다니까요. 그리고 벤투스 경이 아니라 게일이고.”



“저한테는 벤투스 경이거든요!”



한 마디 쏘아붙여준 다음, 실비아는 펠릭스에게서 떨어져 다시 연금술사들의 대스승을 관찰했다.







아이작은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다. 위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동네 술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처럼 생긴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단 하나, 황금빛으로 이따금 번뜩이는 눈을 제외하곤 말이다.



“······해서. 올 사람은 이제 다 왔느냐? 해리어도 안왔고. 첼시도 안 왔군. 노리스는······.”



아이작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펠릭스를 힐끗 보았다. 그러자 펠릭스는 아리송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다 왔군그래. 좋다. 그럼 이제부터 올해 연례 연금술사 교류회를 시작하도록 하자.”



아이작은 품에서 붉은 액체가 가득 담긴 약병을 꺼내들고 공터 한 가운데 커다란 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솥 앞에 멈춰서서 아이작은 약병의 뚜껑을 열어 솥 안으로 내용물을 한 방울 똑 떨어뜨렸다. 그러자 그 큰 솥은 금방이라도 폭발할듯 마구 떨리다가, 펑! 하는 소리를 내며 커다란 불꽃을 하늘 위로 쏘아올려 터트렸다.



“자! 시작하자꾸나, 내 제자들아! 올해도 부디 최고의 약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도록 말이다. 그럼, 수고들 하려무나!”



아이작은 다시 호탕하게 웃으며 그가 걸어나왔던 오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커다란 솥이 불꽃을 쏘아올리자 연금술사들은 서로 흩어져서 각자 무엇인가 준비하기 시작했다.



“펠릭스. 이제 뭔가 시작 된 건가요?”



그리고 실비아는 조금 갈팡질팡하는 눈으로 연금술사들의 뒤를 쫓다가 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작한거죠.”



“연례 연금술사 교류회라더니, 그냥 이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네. 대스승님이 불꽃을 쏘아올리면 시작하는 것이고, 마지막 연금술사가 약을 완성하면 그때 끝나요. 그러면 다같이 모여 서로가 만든 약을 평가하고, 올해 최고의 연금술사를 뽑죠.”



“제멋대로에 대충대충이네요.”



“사교모임이 다그렇죠! 그리고 바로 그점이 좋은 거라고요.”



대강 연금술사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져 사라지자 실비아는 눈 둘 곳을 찾다가 펠릭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왜요?”



“아, 펠릭스. 저기, 당신은 무슨 약을 만들 거예요?”



“비밀이죠.”



펠릭스는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실비아. 당신 이렇게 느긋하게 있어도 돼요? 다른 연금술사들의 정수를 모조리 흡수하지 않는 이상, 저랑 맞붙기 힘들 걸요 당신.”



“하지만······.”



실비아는 이제는 불안한 눈으로 공터를 두리번거렸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걸요.”



“당신 마음대로 하면 되죠 뭘.”



“네?”



펠릭스는 뭐가 문제냐는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마음대로 해요 실비아. 솔직히 말해서, 전 당신이 그 잠깐의 시간동안 다른 모든 연금술사들의 정수를 흡수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기껏해야 한두명의 기술을 배우는데서 그치겠지만, 당신 실력을 감안하면 그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죠. 안 그래요?”



“펠릭스! 절 무시하는군요! 제가 못 할것 같나요? 오기로라도 어떻게든 해 보이겠어요!”



방금전까지 뭘 해야 할지 갈피도 못 잡고 방황하던 실비아는, 이제 펠릭스를 째릿 노려보고는 대뜸 공터 저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펠릭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실비아가 자리를 뜨자 올리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좋은 말로 어르고 타이르는 것보다, 실비아한테는 이편이 더 잘 먹히죠.”



“좋은 말로 어르고 타일러본 적도 없으면서. 하여튼. 그래서, 펠릭스. 넌 무슨 약을 만들거야? 죽음의 약은 재료도 없잖아. 그러니, 네가 뭘 만들 생각인지 나는 알고 있어야 숲으로 나가 재료를 모아오지.”



“다 수가 있다니까요. 어디보자.”



펠릭스는 종이를 한장 휙 꺼내들고는 순식간에 글자를 좌르륵 써내려갔다. 그는 금방 메모를 끝내고 종이를 올리버의 얼굴에 휙 들이밀었다.



“여기요, 올리버. 이대로 부탁해요.”



올리버는 조금 흥분한 얼굴로 리스트를 죽 훑어보더니,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줘. 드디어 일할 시간이로군.”



올리버는 종이를 주머니에 구겨넣더니 그대로 숲 속으로 잽싸게 뛰어가버렸다.







막상 되는대로 펠릭스에게서 떨어져 나온 실비아는, 정처없이 공터를 걷다가 문득 눈에 띄는 사람이 있어 걸음을 멈추었다. 큰 유리알 안경을 코에 걸치고 수많은 책더미를 늘어놓고 있는 버크였다. 그는 여전히 어딘가 행동거지가 느릿하고, 또 어색해서 어딘가 어설프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실비아는 마침 눈에 띈 김에 버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가 다가오는것도 모르고, 버크는 자기 일에만 집중하다가 실비아가 인사를 건네자 그제서야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 안녕하세요? 버크?”



버크는 들어올렸던 책을 도로 내려놓고 실비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실비아. 저는 버크입니다.”



“아까 인사 했잖아요 우리.”



버크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려썼다.



“아, 네.”



“책이 많네요? 저도 잠깐 봐도 될까요?”



버크는 늘어놓은 책 더미를 천천히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실비아는 마침 가까이 있던 책을 하나 집어들어 보았다. 야전 응급 의학. 그녀도 아는 내용의 책이었다.



“어머, 군의관이세요?”



“아니, 아닙니다.”



버크는 헛기침을 하며 부정했다.



“저는 떠돌이 연금술사입니다. 군의관이 아닙니다.”



“연금술사가 응급의학을 공부하나요?”



“제겐 필요해서.”



실비아는 책에서 눈을 떼고 버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기요. 버크? 당신은, 어떤 연금술사에요?”



“뭐. 저는, 방금 말한대로 떠돌이 연금술사 입니다.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아픈 사람을 낫게 해 주고. 약을 만드는 법도 알려주고.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좋은 일 하시네요? 아, 약값은 어떻게 처리하세요?”



“안 받습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



“네? 그럼, 공짜로 사람들을 도와주고 다닌다는 거예요? 세상에! 버크. 당신, 정말 최고의 연금술사네요! 펠릭스는 말이죠. 아무리 불쌍한 사람이 있어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실비아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연금술사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들떴지만, 정작 버크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저······버크?”



“전, 그런 좋은 뜻으로 사람들을 돕는게 아닙니다. 그저 저 좋자고 하는 일이니까.”



“그래도요. 펠릭스보다는 훨씬 나은데요 뭘. 그는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으니까요. 정말, 가끔 사람의 마음을 갖고는 있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니까요.”



“그래요?”



버크는 잠시 멀뚱히 실비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한, 일 분 정도.



“저, 왜요?”



“실비아. 저는 당신이 펠릭스의 제자라고 하길래, 펠릭스와 비슷한 사람일줄 알았는데.”



“아, 아니에요! 전혀 달라요 달라. 터무니없어요. 펠릭스는 정말이지, 툭하면 저를 놀리고. 비웃고. 다른 사람들도 비웃고. 제 잘난 맛에 사는데다가,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어떤지 눈 하나 깜짝 않죠. 정말, 제가 아는 두 번째로 나쁜 연금술사에요!”



버크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피식 웃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펠릭스의 제자가 되기로 한 겁니까?”



“아, 저. 그게, 그러니까요······.”



실비아는 버크에게 수선화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말 해 주었다. 노리스의 독에 중독되어 죽어가던 사람들에게 펠릭스가 내린 처방. 죽음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무시무시한 치료.



“그 때는, 정말이지. 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만약, 내가 펠릭스 못지않게 약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더라면, 저라면 저런 약 안 만들었을 거라고.”



“그게, 유일한 처방일지도······.”



“그렇다면! 제가 새로운 처방을 만들겠어요! 저라면 훨씬 더 좋은 약을 썼을 거예요. 사람들을 아프지 않게 만드는 부드러운 치료 약을요.”



버크는 다시 잠시 가만히 있다가 한 박자 늦게 피식 웃었다.



“당찬 포부군요. 실비아. 뛰어난 연금술사가 되어 당신의 그 꿈 이룰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선배 연금술사로서 하나 충고하자면······.”



버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한, 일 분 정도.



“실비아.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요. 나처럼, 후회에 묶여 살지 말아요.”



“네?”



버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내 실비아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기, 버크.”



버크는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지만, 실비아는 여전히 그의 곁을 맴돌았다.



“왜 그러죠, 실비아?”



“저기요. 조금 무례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요.”



실비아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저, 혹시. 무슨 약을 만드실 거예요?”



버크가 다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실비아와 눈을 마주치자, 실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재빨리 첨언했다.



“그러니까요! 저는, 여기 연금술사 교류회에서 많이 배우고 싶거든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도 약을 만들어서 펠릭스의 콧대를 꺾어주고 싶고. 그러니까······.”



“저는 만병통치약을 만들겁니다.”



버크는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는듯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했다.



“만병······통치약?”



“네. 아주 어려운 약이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꼭 만들고 싶습니다.”



“왜, 왜 하필이면?”



왜라니.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실비아는 뒤늦게 말실수를 한 것 같아 재빨리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리려 했다. 하지만 줄곧 느릿하던 버크가 이번에는 곧바로 실비아의 물음에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어버렸다.



“왜냐고 묻는다면······.”



버크는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그의 안경알 너머로 실비아는 과거의 잔영이 언뜻 보이는듯 했다.



“예전에, 연금술사들의 숲 근처에 마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을의 이름은 단풍마을. 연금술에 관심있는 사람 몇 명과, 원래부터 마을에 살던 사람 몇 명이 모여 만든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그 마을에, 어느 날. 붉은 가루 병이 돌았습니다. 무시무시한 역병. 아무런 치료약도 없어서, 그저 두 손 놓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만 했던 병.”



“저, 펠릭스가 그 병을 막아냈다고 들었어요.”



버크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 사람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밤낮을 지새며 온갖 약의 배합을 만들었지만······.”



버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마을은 불타 재도 남지 않았으며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하나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 아무것도 못 한 것이 영영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 때의 후회와 속죄로 저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사람들을 아무런 대가없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만약에라도 그런 역병이 또 어디선가 돌더라도,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세상에 완전한 약이란 없기에, 결국 제가 아무리 애를 써도 한계는 있겠죠.”



버크는 다시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만병통치약을 만들어 낸다면, 그리고 그 지식을 널리 알린다면, 그러면 더이상 역병에 무력하게 당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며, 저는 만병통치약을 만들 겁니다.”



그리고 버크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실비아와 눈을 마주쳤다.



“실비아. 그러기 위해서, 저는 준비할게 많습니다.”



“아, 죄송해요. 방해였죠? 저기, 그럼 저는 이만······.”



“듀프에게 가 보십시오. 듀프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그가 만드는 약은 단순명쾌하니까. 저보다는 그에게서 배우는게 더 쉬울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약 만들기에 착수했을지도 모르니까.”



“아, 저. 고마워요 버크!”



실비아는 버크에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해 주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버크는 그녀의 뒷모습이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다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듀프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아까부터 어디서 이상한 기합 소리 같은 것이 났는데, 혹시나 해서 그리로 가보니 듀프가 솥을 걸어두고 그 옆에서 손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듀프?”



“히얏!”



듀프는 손도끼를 내리쳐 또 하나의 장작을 깔끔하게 토막낸 뒤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실비아를 발견하더니 조금 놀란 눈이 되었다.



“으응?”



“저, 실비아에요! 펠릭스의 제자. 아까 인사를 나누었는데.”



“아아! 펠릭스의 제자. 그래, 반가워.”



듀프는 그루터기 위에 손도끼를 내려놓고 헝겊으로 두 손을 닦으며 실비아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펠릭스의 제자랬지? 너도 기억력이 좋아?”



“아, 네. 꽤 좋은 편이에요. 예전에 기숙 학교를 다녔는데······.”



“왕국력 71년 여름 3번째 날부터 7번째 날까지 있었던 4일전쟁의 원인, 경과, 결과에 대해 말해봐.”



실비아의 말을 자르고 듀프는 대뜸 끼어들어 아주 이상한 것을 물었다. 실비아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 입을 벌리고 눈만 깜빡거렸다.



“4일 전쟁이요?”



“그래. 배우지 않아? 필리페 2세의 역사서로 공부하지 않나? 요즘은 또 바뀐건가?”



“아, 그 책을 쓰긴 했는데, 저. 4일 전쟁이요?”



“그래. 응? 안 배우나? 하긴, 꼴랑 4일짜리 전쟁이긴 하니까.”



“저, 잘 모르겠네요. 죄송해요.”



듀프는 아리송한 얼굴로 실비아를 힐끗 내려보았다.



“펠릭스는 막힘없이 대답하던데. 펠릭스만큼 기억력이 좋지는 않구나?”



“펠릭스가 이걸 대답했다고요?”



“그래! 산맥 너머 서쪽 왕국에서 7명의 유격대가 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정찰을 나왔다가, 마르키아 마을에 상주하고 있던 5인의 기마대에 발각되어 4일간 전투를 벌였어. 서로 사망자는 없었지만, 기마대가 유격대를 쫓아냈지.



그리고 두 왕국의 국왕이 뒷수습을 위해 서로 만났고. 뒷수습은 깔끔하게 끝났지만, 이 일로 동쪽도 서쪽도 산맥 너머의 왕국과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 그리 허황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 버렸고. 그러니까, 이건 동서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폭죽 같은 거였다고.”



“아, 저······네. 그렇군요.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실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아, 내가 좀 너무 많이 지껄였나? 좀 놀랐지? 미안. 난 생겨먹은게 산적같다보니, 사람들이 힘만 센 바보라고 자주 착각하더라고. 그래서 놀려줄 겸, 한 방 먹여줄 겸 해서 이것저것 줄줄 외고 다닌단 말이야. 입버릇이라.”



실비아는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화제를 바꾸었다.



“저기요. 버크한테 다녀왔는데, 당신한테 가 보는게 좋을거라고 알려주더라고요.”



“응? 왜?”



“아. 그러니까요. 저는 이번 연금술사 교류회에서 이것저것 배우려고······.”



“펠릭스한테 배우지, 왜? 걔만큼 뛰어난 연금술사도 또 없는데.”



“펠릭스가 그랬어요. 다른 연금술사들의 정수를 흡수하랬는데.”



“으음? 그래? 하여튼, 펠릭스 그놈. 대스승님한테 나쁜 것만 골라 배워서는. 자기 귀찮다고 우리한테 떠넘기고 말이야. 쯔쯧.”



듀프는 가볍게 혀를 차더니 금새 웃으며 실비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그래서.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약제학? 약초학? 인간의 골격과 근육 구조?”



“아, 아니요. 그런 것까지는 필요 없고요. 그, 저. 듀프 당신은 무슨 약을 만들 거예요?”



“아! 아주 좋은 약이지. 아마 최고의 약이라고 생각해.”



“최고의······약이요? 대체 뭔데요?”



듀프는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실비아의 두 눈을 당당하게 마주치며 대답했다.



“괴력의 약!”



실비아의 눈에서 기대의 반짝임이 사그라들었다.



“괴력······이요?”



“그래. 괴력의 약. 어때? 좋지?”



“저기, 듀프. 힘이 세지는 것이 최고의 약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 참! 당연히 힘이 센게 최고잖아?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건 다름아닌 힘이잖아. 힘이 없으면 그 누구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어. 하지만, 힘만 있다면 누구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어떻게요? 남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든가······.”



“이런. 내 말을 오해하는구나. 좋아, 잘 들어.”



듀프는 목을 풀고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야. 저 농부들, 농노들이 불행과 고통에 찌들어 사는 것은, 귀족들의 그들의 고혈을 빨아먹어서가 아니야. 그들이 고된 농사일에 버틸 만 한 힘이 없어서 그래.”



“궤변 같은데······.”



“어허, 내 말 덜 끝났어. 그리고 저 병자들. 환자들이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는 것도 마찬가지야. 병마를 견뎌내고 이겨낼 만한 힘이 몸에 없어서 그래. 그리고 낭만 소설과 연극에 등장하는 젊고 아리따운 남녀들. 그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도 마찬가지야. 그들을 부정하는 세상과 맞서싸울 힘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만약, 이들에게 충분한 힘이 있었다면, 과연 똑같이 불행한 삶을 살아갈까?



충분한 힘이 있다면야, 농부들은 제 아무리 고된 농사를 지어도 코웃음을 치며 순식간에 일을 해치우고 남는 시간에 느긋하게 낮잠이나 자겠지. 오히려 힘이 남아돌아서 시키지도 않은 일도 척척 해낼 지경일걸?



환자들도 마찬가지야. 감기의 고열과 콧물이 그들의 강인한 신체에 무슨 영향을 주겠어? 병에 걸려도 몸이 아프질 않는데 뭐가 아쉽겠어. 연인들도 벼랑 끝에서 같이 뛰어내리느니, 독배로 건배를 하느니 할 필요 없어. 짜증나는 가문의 근위대들을 때려눕히고, 당당하게 땅뙈기나 얻어내서 밭을 갈고 오두막을 지어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야. 다 힘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실비아는 처음에는 듀프의 말이 순 궤변처럼 들렸지만,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있으니 조금 설득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듀프의 말이 끝났을 때, 실비아의 눈에 듀프가 다른 사람처럼 새로이 보였다. 그는 바보가 아니라 강직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의 두 눈에는 지성의 빛줄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래. 이제 내 말이 대충 이해가 돼?”



“그럴싸하네요.”



“똘똘하네! 펠릭스의 제자. 기억력은 좀 못나도, 사람 말은 찰떡같이 알아듣는구나? 너, 꽤 마음에 드는데.”



실비아는 멋쩍게 웃었다.



“그래서, 난 이제부터 약을 만들거거든. 구경할래?”



“아, 벌써요? 다른 사람들은 아직 시작도 안 한것 같은데.”



“난 이미 확고하거든. 작년에도 그랬고 제작년에도 그랬지. 나는 매 해마다 한결같은 약을 만들어 왔어. 올해도 그러니까, 똑같이 괴력의 약을 만들거야. 작년보다 더 좋은 것으로. 부작용은 덜하고, 효과는 더 좋게. 귀하고 복잡한 재료를 쓸 필요도 없고, 잔재주를 부리지도 않아. 비율을 맞춰서 솥 안에다 싸그리 집어넣고 펄펄 끓이면 그만이지. 엇? 잠깐. 그러면······.”



듀프는 한창 신이 나서 떠들다가 뒤늦게 실비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그는 곧 미안하다는듯 씩 웃었다.



“미안해, 펠릭스의 제자. 나한테서도 별달리 배울 건 없겠는데? 난 진짜로 비율을 맞춰서 재료를 집어넣고 끓이면 끝이거든.”



“아, 그런가요?”



“그래.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래서야 허접한 여관 식당에서 스튜 끓이는 법을 배우는 것만도 못할거야. 뭐, 아쉽지만, 뭔가를 좀 배우려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데 좋겠다. 그러니까, 흠. 린 한테 가면 배울게 많을지도.”



“린이요?”



실비아는 파르스름한 긴 머리칼의 서늘한 인상을 가진 여성을 떠올렸다.



“그래. 린. 걔는 나랑 반대거든. 기교와 잔재주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어, 펠릭스 빼고는. 린도 나처럼 매번 비슷한 재료로 비슷한 약을 만드는데, 나랑 달리 약을 만들 때마다 효과는 천차만별이야. 그러니까 뭘 배우려면 린한테 가봐. 내가 보냈다고 하면 아마 너랑 잘 놀아줄거야.”



“아, 네. 고맙습니다. 듀프, 그럼 수고하세요!”



실비아는 듀프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 다시 걸음을 돌렸다. 그녀가 인사를 하자마자 듀프는 실비아가 떠나는 것을 끝까지 보지도 않고 곧바로 뒤를 돌아 손도끼를 집어들었다.



“원 참. 펠릭스. 저렇게 똑부러지는 아가씨를 찾다니, 운도 좋지! 그래봐야 우리 마누라만은 못하지만 말이야. 엇차!”



듀프는 다시 솥 아래에 집어넣을 장작을 걸리는 곳 하나 없이 시원시원하게 쪼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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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138화 21.12.15 26 1 24쪽
137 137화 21.12.15 23 1 23쪽
136 136화 21.12.14 28 1 25쪽
135 135화 21.12.14 24 1 22쪽
134 134화 21.12.13 28 1 23쪽
133 133화 21.12.13 23 1 21쪽
132 132화 21.12.12 27 1 24쪽
131 131화 21.12.12 21 1 21쪽
130 130화 21.12.11 28 1 22쪽
129 129화 21.12.11 20 1 24쪽
128 128화 21.12.10 24 1 21쪽
» 127화 21.12.10 26 1 22쪽
126 126화 21.12.09 29 1 24쪽
125 125화 21.12.09 25 1 23쪽
124 124화 21.12.08 25 1 25쪽
123 123화 21.12.08 23 1 22쪽
122 122화 21.12.07 30 1 24쪽
121 121화 21.12.07 25 1 24쪽
120 120화 21.12.06 28 1 21쪽
119 119화 21.12.06 22 1 21쪽
118 118화 21.12.05 22 1 23쪽
117 117화 21.12.05 18 1 21쪽
116 116화 21.12.04 22 1 23쪽
115 115화 21.12.04 26 1 24쪽
114 114화 21.12.03 25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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