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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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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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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25화

DUMMY

<승리와 영광>여관 이층 방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펠릭스와 올리버, 그리고 실비아는 이제 슬슬 수도를 떠날 준비를 갖추며 방 안 여기저기 늘어두었던 물건들을 챙기느라 분주하게 방 안을 이리저리 오갔다.



“올리버! 당신 칼! 아, 코튼! 야이, 네 주인한테가 가!”



펠릭스는 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단검을 집어들고, 그의 발치에서 찍찍거리며 계속 감겨오는 다람쥐를 피하며 거실로 걸어나왔다.



“아, 내 칼. 고마워 펠릭스.”



“칼 간수좀 잘 해요. 원 참. 실비아! 당신은 다 챙겼어요?”



“잠시만요!”



실비아도 한창 방 안에서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어휴. 하필 오늘 같은 날에 늦잠이라니. 빨리요, 빨리! 열 시 되기 전에 방 빼야 한다고요. 아니면 하루치 방값 더 내야 하는데.”



“돈 많다면서요?”



방문 너머에서 실비아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돈 많은거랑, 돈 아까운건 다르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게 기본 중의 기본 아녜요?”



“펠릭스. 그런 말을 하기에는, 애초에 너무 좋은 여관을 잡았잖아.”



“저도 모처럼 수도까지 온 김에 기분 좀 내 본거죠 뭐. 아무튼, 다 된건가? 이제 가면 되나······.”



“똑똑.”



“아니, 벌써 재촉하러 온다고? 잠시만요!”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펠릭스는 쪼르르 문으로 다가갔다.



“네. 누구죠?”



펠릭스가 문을 달칵 열자, 문 너머에서 게일이 멋쩍게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게일.”



펠릭스는 고개를 뒤로 돌려 올리버에게 말했다.



“올리버. 잠시 나갔다 올게요. 그동안 나갈 준비 잘 해 둬요.”



“그래.”



올리버가 대답하자 펠릭스는 문을 달칵 열고 밖으로 나갔다.








펠릭스는 방에서 걸어나와 문을 닫았다.



“게일. 왜 온거지? 좋은 소리 못 들을 걸 뻔히 알지 않아?”



게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문을 뗐다.



“펠릭스. 어제 단델리온에게 전부 말했어.”



하지만 펠릭스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녀는 결국 날 이해해줬어.”



“그래서? 이 기회에 그대로 결혼이라도 하게? 축복이라도 해 달라고 온 거야? 아니면 노리스가 그랬듯이, 하객들에게 돌릴 술잔에 무슨 약이라도 타달라고?”



“아니. 사과하려고.”



펠릭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어쨌든, 실비아는 만족한 것 같더군.”



“그래?”



“그래. 내 능력껏 공작질은 되는대로 다 틀어막았으니까. 완주 할 때까지 별 탈도 없었고.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그래. 고마워 펠릭스. 그런데 말이야. 단델리온은 날 이해해 줬지만, 그 부모님은 어떨지······.”



“네가 감당할 일이지. 그러게, 왜 책임 못 질 일을 멋대로 벌여?”



게일은 멋쩍게 뒤통수를 슬슬 쓰다듬었다.



“펠릭스. 전에, 네가 한 말 있잖아. 네 연금술 가게 근처에 땅을 조금 내 주겠다고.”



“아. 그거. 네가 흉계를 꾸며서 실비아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으니, 없던 일로 하겠어.”



게일은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제대로 된 값을 지불해.”



그러자 게일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비용은 왕국 표준 토지 임대료에 기초해서 산정하겠어. 제대로 비용을 낼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고마워 펠릭스.”



“고맙다는 소리 들으려고 한 말 아니야. 하지만, 미리 분명하게 말 해 두는데. 우리 연금술 가게 근처에는 괴물이 살고 있어. 새파랗고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놈이지. 그놈과 같이 부대껴 살 자신 있으면, 그 때 돈 들고 찾아와.”



게일은 멋쩍게 웃었다.



“낭만적인데.”



“낭만은 무슨. 너, 하나만 말 하겠는데, 그 낭만에 푹 빠져서 단델리온 데리고 야반도주는 하지 마라. 내 연금술 가게 근처에 귀족들의 끄나풀이니, 경비대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꼴, 난 절대 못 봐주니까.”



“그건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



“야반도주 할 거면 다른데로 가. 올 거면 제대로 허락 받고 오든가.”



게일은 머쓱하게 웃으며 괜히 두리번거리다가, 대뜸 펠릭스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펠릭스. 숲에서 공부할 때, 누군가는 네게 인간의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다고 그랬지.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해.”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난 관심없어. 그리고, 게일. 너는 또 언제부터 그렇게 혓바닥이 길어졌어? 난 너랑은 더이상 악수 안 해. 하고싶은 말 더 없으면 이제 그만 가 봐.”



게일은 멋쩍게 오른 손을 거두어 들이고는 헛기침을 했다.



“저기, 그 실비아를 주인공으로······.”



“절대로 안 돼 게일. 만약, 네가 그 비슷한거라도 썼다가는 내가 네 책 싸그리 다 회수할거야. 그리고 네게 고발장을 수십 통씩 날려주지.”



“알았어, 알았어. 무섭게. 펠릭스 네가 하는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를 않는다니까.”



“농담 아니니까.”



게일은 다시 어색하게 머뭇거리다가 마지막으로 펠릭스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펠릭스. 만나서 반가웠어.”



“그래.”



“아, 그리고. 만약 올해 연례 연금술사 교류회에 간다면, 난 올해는 못 간다고 좀 알려줘.”



“동화작가 게일이 파릇파릇한 소녀에게 눈이 멀었다고 알려주지.”



게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펠릭스에게 인사를 해 준 다음, 이제 그도 뒤를 돌아 여관 밖으로 걸어나갔다.







다행히, 펠릭스의 일행들은 오전 10시가 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방을 비울 수 있었다. 여관 카운터에 열쇠를 반납하고 미리 대기시켜 두었던 마차에 오른 뒤에야 펠릭스는 크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다행이네. 아침부터 요란법석을 떤 보람이 있네요 그래도. 하마터면 생돈 날릴뻔했네.”



그리고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올리버는 대체 어느틈에 주워온 것인지, 오늘 아침자 수도 소식지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올리버. 이 와중에 소식지를 챙겼어요?”



“왜? 궁금하잖아. 수도라고 수도. 수도에는 매일같이 재미난 일이 일어나지 않겠어?”



“터무니없군요. 내 참. 수도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올리버는 한번 피식 웃은 다음 소식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나 그는 채 몇 자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허 참. 정말 수도는 소식이 빠르군.”



“왜요?”



“어제 콩쿠르 말이야. 벌써 결과가 나왔는걸.”



“네? 정말요?”



막 책을 꺼내들어 읽으려고 펼치던 실비아는 재빨리 책표지를 덮어버렸다.



“저 몇등이래요? 네?”



“잠시만. 보자. 아니, 연주자 이름으로 안 써놓고 가문 이름을 써놨네. 일등은······.”



실비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에보니 가문의 장녀. 이등은 에보니 가문의 차녀.”



실비아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도로 책표지를 펼쳤다.



“삼등은 버널 가문.”



“네? 버널이면, 저잖아요! 진짜요? 저도 봐요!”



실비아는 올리버의 손에서 소직지를 빼앗다시피 한 다음, 재빨리 눈으로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정말이네! 어머, 그리고······.”



실비아는 순식간에 기사를 마저 읽어내려갔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네요? 그리고 비평가들과 평론가들이 이번 수상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에보니 가문의 세 자매가 수상을 하는 것은 당연시 여겨져왔다. 그것이 불문율이니까. 허나, 오늘 밤의 연주는 우리들에게 전혀 다른 생각을 불어넣어주었다······중략. 비록, 귀족들에게는 불문율이라는 것이 있다고는 하나, 오늘 밤의 연주를 계기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다시 재고해 보아야 한다. 비록 버널 가문은 백작의 지위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연주자의 연주는 그야말로 천상의 솜씨에 가까웠다······.’ 라네요. 어때요, 펠릭스?”



“평론가가 영 글에 소질이 없군요. 다시 재고하다니. 그리고 그놈의 비록은 몇 번이나 말하는 거래요?”



펠릭스는 무관심한 태도로 중얼거렸다.



“아니요! 그게 중요한게 아니죠. 제 연주, 천상의 솜씨에 가까웠다잖아요?”



펠릭스는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진실은 아무도 몰라요. 그 기사도, 정말 순수한 의도로 쓰였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다고요.”



“소식지에는 사실만 실리지 않아요?”



“터무니없는소리.”



펠릭스는 실비아의 손에서 소식지를 낚아채 술술 읽어보았다.



“흠. 그렇군. 뭐, 잘 봤어요.”



“그래서요? 어땠어요? 제가 좀 자랑스럽지 않나요? 이런 사람과 동행할 수 있다니······.”



“에취!”



“꺅!”



펠릭스는 뜬금없이 창문을 드륵 열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재채기를 해 버렸다.



“뭐예요?!”



“아, 실례. 아무튼, 제 소감을 말하자면. 믿고싶은대로 믿어요, 실비아. 소식지에 사실만 실리는건 아니니까. 예를 들어 볼까요? 이 기사를 쓴 평론가가 뒷돈을 받고 기사를 썼을지 아닐지 누가 알겠어요?”



“에이. 누가 뒷돈을 주고 평론가를 매수해요?”



“흔해빠진 일이죠. 버널이 그랬을 수도 있고, 잘나가는 낭만소설작가 벤투스가 그랬을지도 모르고.”



“설마.”



펠릭스는 실비아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른 가능성도 있죠. 에보니 가문은 일을 조용하게 처리하는 법이 없어요. 그 추종자 만큼이나 적도 많죠. 수면 아래에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던 에보니의 적들이, 이번 무대를 기회로 삼아 불만을 토로했을 수도 있어요.



어찌됐든, 버널의 연주자를 치켜세워주며 에보니를 공격했으니, 화살은 평론가 보다는 버널 가문의 연주자에게 쏠릴 테니까. 이제 오늘 오후 소식지에는 어제의 무대가 형편없었다는 내용이 지면 거의 전부를 가득 채우고 있을 걸요. 이 연주는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하여튼, 평론가들이란.”



실비아는 크게 실망한 얼굴로 잠시 펠릭스를 쳐다보다가, 금새 기운을 되찾고 다시 책표지를 펼쳤다.



“하지만 상관없어요. 전 치고 싶은 만큼 쳤으니까. 그리고 제가 만족했는데, 남이사 뭐라고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람.”



“그래. 그게 좋은 태도지, 실비아. 평론가니, 비평가니, 그치들이 하는 말은 대강 무시해치워. 펠릭스가 그랬잖아? 천상의 악상을 들어도 구분할 귀도 없을 거라며.”



“고마워요 올리버. 역시, 절 생각해 주는 건 당신 뿐이네요.”



펠릭스는 소식지를 주섬주섬 접어 올리버에게 돌려준 다음, 멍하니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실비아는 책을 한 반쯤 읽다가 도로 표지를 탁 덮어버렸다.



“왜?”



그리고 그녀는 책을 도로 주섬주섬 집어넣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으음. 이번 책이요. 조금······.”



“재미없죠?”



“네? 아······.”



실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펠릭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펠릭스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하여튼. 창작자들이란. 그치들은 희한하게도, 어딘가 마음의 위안을 얻고 나면 꼭 글솜씨가 형편없어지더군요. 게일도, 그 단델리온의 마음을 얻기 전에는 아주 절절하고 매력넘치는 글을 써댔으면서······.”



“어머, 펠릭스. 당신도 벤투스 경의 책, 읽어봤어요?”



펠릭스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실비아의 눈초리를 외면해버렸다.



“별로요.”



그러자 실비아는 펠릭스의 옆얼굴을 보고 생긋 미소를 지었다.



“쑥스러워 하기는. 펠릭스, 당신도 자세히 보면 귀여운 구석이 가끔 있네요.”



“뭐야! 실비아.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나랑 당신은 계약 관계고, 그리고 연금술로 따지고 들자면 난 스승! 당신은 제자! 스승한테 귀엽다느니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어머, 되게 신경쓰이나봐요? 그렇게까지 반응할 줄이야. 알았어요. 미안해요 스승님.”



펠릭스는 혼자 공연히 씩씩거리다가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꿍얼거렸다.



“게일이 제게 책을 보내왔을 뿐이에요.”



“제 생각보다 더 친했나봐요?”



“전혀.”



펠릭스는 부루퉁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데, 펠릭스. 가만 생각해 보니까요. 당신, 생각보다 친구 많네요?”



“아니, 실비아. 아까부터 아주 무례한 말만 하기로 작정했나요? 그럼, 내가 뭐 친구 하나 없이 사는 외톨이일줄 알았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신 별로 성격이 좋지는 않잖아요. 그런데도, 당신 동문들은 다 얼굴만 봐도 반가워 하고, 이름만 들어도 아는 체를 해 오잖아요? 비단 메를린 뿐만 아니라······.”



“흠흠. 제 솜씨가 워낙 뛰어났어야 말이죠.”



펠릭스는 그새 우쭐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실비아는 그가 꼭 어린아이처럼 보여 다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연금술사들은 실력지상주의 사회인가봐요.”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그저, 제가 유난히 월등해서 그럴 뿐이었지. 질투, 경외, 존경······. 뭐, 다들 그럴 만은 했죠.”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네요.”



“지금 만나러 가고 있잖아요.”



“네?”



실비아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지금, 가고 있다고요?”



“수도에서 말 했잖아요? 나랑 같이 연금술사 교류회 가자고. 당신도 동의했잖아요.”



“아니, 저기······.”



실비아는 조금 허둥거리며 불안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왜요?”



“이렇게, 갑자기요? 저, 아직 준비도 덜 됐고······.”



“내 참. 준비 할 것도 없으면서. 당신 전용 솥도 없잖아요. 뭐 손에 익은 재료는 있어요?”



“······없죠.”



“그럼 그냥 가요. 그리고 가서 뭘 다른 연금술사들이랑 실력을 겨루고 자시고 할 것도 없으면서. 차라리 그럴 때는 잘 모르는 채로, 빈 손으로 가는게 최고에요. 괜히 쓸데없이 쥐고 있는게 많다 보면 남들에게 배우는데 방해만 되니까.”



“일리있는 말이로군.”



어느새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 올리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오호, 올리버. 당신도 안색이 좋아졌네요?”



“그래. 드디어 그 귀족 어쩌고저쩌고에서 탈출해서, 내 집이나 마찬가지인 숲으로 들어가는 거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동안 좀이 쑤셔 죽는줄 알았다고. 마차, 여관, 호위······. 술도 한두번이라야 말이지. 그것도 마시다보니 질리더군.”



“술이 질릴 정도라니. 올리버 당신도 참 어지간했나보군요.”



“아! 그러고보니까요.”



실비아가 손뼉을 치며 입을 열자 펠릭스는 그녀에게 눈을 돌렸다.



“왜요?”



“그, 교류회에 노리스도 오나요?”



펠릭스의 얼굴 위에 거무칙칙한 안개가 스쳐지나갔다.



“안 와요.”



“그래요? 하긴, 그렇겠죠. 그렇게 제멋대로에 막나가는 연금술사라니. 정말, 최악이에요. 사람한테 독을 뿌리고 다니는 연금술사라니······. 아, 펠릭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연금술사가 된 거죠? 연금술사가 되고싶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요. 당신 스승님이나 대스승님은 어째서 그를······.”



“본보기에요. 노리스는.”



“본보기요?”



펠릭스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네. 본보기. 연금술사들은 삶과 죽음을 두 손으로 주물럭거리죠. 그러다 보면 온갖 유혹에 이끌려요. 귀족 가문들은 언제나 솜씨좋은 독살자와 해독제를 찾고 있는 마당에,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시골 마을로 내려가서 독과 약을 적절히 섞어 쓰면 조그마한 마을의 조그마한 신으로 군림할 수도 있어요.



연금술사에게는 지식과 기술이 있고, 거기에 조금의 요령만 보태면 말 그대로, 무엇이든지 될 수 있죠. 혓바닥만 날름거리며 억만금을 벌 수도, 멍청이들의 우상이 되어 빈자들의 왕이 될 수도. 목숨줄을 잡고 흔들어 대는데, 어느 누가 감히 거기에 대항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더더욱 노리스 같은 사람은 연금술사가 되면 안 되잖아요.”



“노리스가 아니었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랬을걸요. 어쩌면 게일이 그랬을지도 모르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사람들의 정신을 교란하는 약을 몰래 피우고 그 경과를 지켜보는 거예요. 당연히, 그런 제정신 아닌 짓을 벌이는 사람이라고는 게일 혼자 뿐일테니, 그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글을 쓸 수 있겠죠. 그 글이 잘 팔리지 않겠어요?”



실비아는 소름이 돋아 가볍게 손끝을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차피 누군가는 그렇게 될 운명이었죠. 그래서, 스승님도 그중에 거르고 걸러 노리스를 연금술사로 키워냈고요. 하지만, 어쨌든 노리스는 선을 너무 많이 넘어버렸어요. 그래서 그에게 처벌이 내려졌죠. 다른 연금술사들에게 본보기로서.”



“무슨 처벌인데요?”



펠릭스는 뒤늦게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 뭐겠어요. 사람 목숨 갖고 장난 치는 사람에게 내려질 처벌이.”



“죽었나요?”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거기까진 몰라요.”



“그렇군요. 그 사람. 정말, 제가 본 것중에 제일 나쁜 사람이었어요.”



펠릭스는 그대로 대화의 주제를 슬그머니 돌릴 수 있을것 같아 싱긋 웃었다.



“당신 아버지 보다도요?”



“아빠 이야기가 왜 나와요?!”



실비아는 대번에 미끼를 물어버렸다.



“아빤,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니거든요! 그 때는, 저도 어리고 잘 몰라서 그랬지만, 그렇지만! 이젠 괜찮아요.”



“저 모르는 새에 화해라도 했어요?”



“아니오! 그냥, 그 산호항구에서요. 아빠가 칼에 맞았을 때······.”



실비아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 때 알았어요. 아빤 나쁜 사람 아니에요.”



“뭐, 부녀가 화해했다니 저로서는 다행이네요.”



“아, 맞다. 언니한테도 편지 써야 하는데. 펠릭스, 그 숲에도 우편국이나 그 비슷한게 있어요?”



“있겠어요?”



실비아는 실망한 얼굴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음 마을에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려나······.”



“걸어서 두 시간 거리에 마을 있어요. 거기에 부탁하면 되니까, 그렇게 풀죽지 말아요.”



“아, 그럼 다행이고요. 어디보자. 우선 언니한테 고맙다고 쓰고, 벤투스 경 이야기도 쓰고, 그리고 3등 했다는것도 써야겠다.”



실비아는 금새 기운을 되찾고 웃으며 수첩을 펼쳐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단델리온이랑 친구 됐다고도 써야지.”



그리고 펠릭스는 무대 뒤에서 벌어진 추잡한 일들에 대해 함구한채, 실비아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마차는 빽빽한 숲으로 접어드는 오솔길 앞에서 멈춰섰다. 세 사람이 내리자 마부는 낑낑거리며 겨우 마차를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다.



“이쪽인가요?”



실비아는 오솔길을 가리켰다.



“거기겠어요? 메를린네 집에 가 봤잖아요. 당연히, 이쪽이죠.”



그리고 펠릭스는 도무지 사람 지나갈 만한 길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거친 숲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그러자 실비아는 한숨을 폭 쉬었다.



“그럴 줄 알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요. 아, 벌레는 없겠죠?”



“계절이 계절이니까.”



올리버는 벌써부터 행복한 얼굴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있어봤자 도롱이벌레 정도 밖에 되겠어?”



“나방이라면 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올리버.”



“으! 싫어. 펠릭스, 그 나방. 겁이 많겠죠? 저한테 안 달려들겠죠?”



“걱정 말아요. 낮에는 다 쿨쿨 자니까. 자, 그럼. 잡담은 이쯤 하고 슬슬 들어가 보자고요.”



펠릭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올리버는 칼을 슥 뽑아들더니 덤불을 휙휙 잘라 길을 개척하며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북쪽의 숲은 음산하고 서늘한 바람이 계속 불어왔다. 그리고 바람에 나뭇가지가 계속 살랑살랑 움직이는 바람에, 실비아의 눈에는 이 나무가 저 나무같았고, 여기가 처음 오는 곳인지 아까 왔던 곳인지 구분도 잘 가지 않았다.



“저기요. 펠릭스? 올리버? 우리, 계속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는것 같지 않아요?”



마침내, 실비아는 조금 용기를 내어 줄곧 걱정하던 것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실비아. 긴장 완화제라도 줘요? 잘만 가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아, 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하지만, 저기······.”



“벌써 세번째에요. 또 물어보면, 그땐 내가 강제로라도 약을 먹이든가 해야지 원.”



“꿈도 꾸지 말아요, 펠릭스!”



“네, 네. 아무렴요. 아, 마침 공터가 보이는데. 올리버. 쉬었다 갈까요?”



소나무숲 한 가운데 덩그러니 만들어진 공터에는 다행히 어디서 굴러왔는지 작달만한 바윗돌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래서 실비아는 펠릭스가 나무 밑동에 자라난 버섯을 구경하고, 올리버가 주변 정찰을 간 사이에 바위 위에 올라앉았다. 그녀는 잠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신발을 벗은 다음, 땀에 젖은 양말을 새것으로 갈아신고 다리를 주물렀다.



“휴! 훨씬 낫네.”



그리고 나서야 실비아는 저만치 떨어져있는 펠릭스의 등에 대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펠릭스. 많이 멀었어요?”



“한참 남았어요.”



펠릭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나저나, 당신 뭐하고 있어요?”



“버섯이 있어서 잠깐. 못먹는거네요. 아깝게. 아, 올리버. 벌써 왔어요?”



펠릭스는 인기척을 느끼고 허리를 펴고는 저쪽에서 걸어오던 올리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해야겠어. 벌써 밤이야. 숲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뭐, 구름때문일지도 모르죠.”



“전 좋아요. 숲에서 야영이라니, 낭만적이잖아요? 어릴 때도 자주 숲에 몰래 빠져나간 적이 많은데.”



올리버는 쓴웃음을 지었다.



“실비아. 막상, 직접 해보고 나면 아마 다시 숲에서 야영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는 않을거다.”



“왜요?”



“춥고 힘들거든.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오니 모포를 두껍게 깔아. 펠릭스, 그럼 슬슬 시작하자고.”



“아, 전 잠시. 그, 볼일이 급해서리”



펠릭스는 저쪽에서 멋쩍게 웃더니 어기적거리며 수풀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뒤늦게 그 말뜻을 이해한 실비아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펠릭스! 좀, 숙녀 앞에서, 말 조심좀 해요!”



“아니! 생리현상인데 어떡해요! 미안하긴 한데, 저도 급하거든요. 금방 다녀올게요!”



“내 참. 애도 아니고. 올리버. 당신은 대체 어쩌다가 펠릭스랑 엮이게 된 거예요?”



“······뭐. 진지할 땐 진지한 녀석이잖아.”



“그렇기는 하죠. 어휴, 일단 야영 준비나 하죠. 그나저나, 이 숲 속에서 뭐가 튀어나오지는······.”



“쉭-!”



실비아의 눈앞으로 뭔가가 날아가 옆의 나무에 퍽 박혔다. 실비아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나무에 박힌 화살을 향해 느릿하게 고개를 돌린 뒤에야 방금 자기가 헛것을 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온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로브의 모자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사냥꾼이 날카롭게 빛나는 화살촉을 바로 이쪽으로 하여 또 하나의 화살을 겨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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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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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3화 21.12.18 27 1 24쪽
142 142화 21.12.17 29 1 23쪽
141 141화 21.12.17 24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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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32화 21.12.12 27 1 24쪽
131 131화 21.12.12 21 1 21쪽
130 130화 21.12.11 28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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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7화 21.12.10 25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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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121화 21.12.07 25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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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9화 21.12.06 22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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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6화 21.12.04 22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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