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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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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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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41화

DUMMY

“붉은 가루 병을 만든것이 제이콥 맞습니까?”



아이작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나는 알지 못한다. 제이콥에게 직접 물어라, 펠릭스.”



“그럼, 말씀해 주시지요 대스승님. 제이콥, 지금 어디있습니까?”



“모른다.”



이번에는 펠릭스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아이작의 반대쪽으로 살짝 돌렸다.



“모른다고요?”



“그래. 모른다. 제이콥이 숲을 떠난지 벌써 얼마나 시간이 흘렀느냐?”



“아니, 대스승님. 당신은 알고 있어야죠. 다른 가문도 아니고, 왕국 안에서 가장 발 넓고, 귀 밝고, 눈 밝은 가문과 친분이 있는데, 그런데도 모른다고요?”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친구로서의 친분일 뿐이다. 내 사사로운 일을 해결하는데, 그들의 도움을 빌릴 수야 없지.”



펠릭스는 영 못마땅한듯 눈쌀을 찌푸렸다.



“그럼, 일단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죠.”



펠릭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의 대스승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아이작. 그때, 당신은 왜 약을 만들지 않은 겁니까? 당신 수제자가 벌인 일이라 팔이 안으로 굽던가요?”



“터무니없는소리. 그런 하찮은 이유로 내가 약을 만들지 않았을 리 없잖느냐? 훨씬 단순한 이유에서 그랬다. 그 병은 내가 처음 보는 것이었고, 또한 마녀가 내게 전수해준 수많은 지식을 총동원해도 무슨 약을 만들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병이어서 그랬다.”



“엘릭서 있잖아요.”



“엘릭서는.”



아이작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실비아에게는 말 해 주었지만, 엘릭서는 오직 내게만 효과가 있는 약이다. 믿지 않는 자에게 엘릭서는 아무런 은혜도 내려주지 않아.”



“종교적인 이유군요. 연금술이 그렇게 종교적인 학문인 줄 처음 알았는데요.”



“비유적인 표현이지. 약효를 의심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약을 써본들, 효과를 거둘 수는 없다 펠릭스. 너도 알지 않느냐? 그 때, 내가 무리해서 엘릭서를 만들어 주었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의심만 깊어가겠지.”



“그래서 두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요.”



“제이콥이 수습을 하려하지 않았느냐. 잠깐이었지만 말이다.”



“불가능한 재료를 모아 만드는 마법의 약.”



펠릭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때는, 저도 스승님이 미친줄 알았습니다.”



“그런것 치고는, 오른다리까지 바쳐가며 재료를 구해오지 않았느냐?”



“어쨌든 약은 만들어야 하니까요. 내 자존심이 달린 문제라.”



“결국, 실패했지만 말이다.”



펠릭스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듯 심드렁한 얼굴로 잠시 침묵했다.



“우리들의 기억은 왜 막아둔 겁니까?”



그러더니 펠릭스는 화제를 돌렸다. 아이작은 조금 말하기 불편한 주제였는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날숨을 뱉었다.



“너희들이 충격받을까봐. 그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까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그림자에 질질 끌려다닐까봐. 그래서 기억을 막아 두었다.”



“제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난 그런 하찮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잖아요?”



아이작은 조금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찌 스승이 되어서 제자를 차별할 수 있겠느냐?”



펠릭스는 가볍게 실소를 터트렸다.



“제이콥에게 그 마음가짐은 제대로 가르쳐 주질 못했군요, 대스승님.”



“나도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당신의 그 실수가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지만요.”



펠릭스는 웃음을 멈추고 다시 아이작과 두 눈을 마주쳤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책임 져 드리지요. 그러니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제이콥. 지금 어디있습니까?”



“모른다.”



“숨길 생각입니까? 당신이 모를 리가 없잖습니까?”



“정말로 모른다 펠릭스. 네가 늑대의 아가리에 오른 다리를 집어넣고 그 눈물을 담아온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제이콥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너도 기억할 거다.”



“메를린이 도와줘서 빈 자리에 의족을 박아 넣었죠.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며 제이콥의 등만 쳐다보던 우리들은, 졸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되어 다들 넋이 나가버렸고. 그러다가 메를린이 위험천만한 방법까지 동원하려는 꼴을 보자 제가 나설 차례가 왔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펠릭스는 두 손을 깍지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얼굴을 반쯤 가렸다.



“내 손으로 모두 죽였습니다. 더이상 병으로 그 누구도 고통받지 않도록.”



“잘 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죽음을 강매하고, 그들의 시체로 산을 쌓아 모조리 불태워버렸습니다. 역병이 서려있는 마을과 함께. 숯검댕도 남지 않았고, 하얀 재는 모조리 북풍에 날아가버렸죠.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그 시뻘건 불길.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지만, 마을을 태울 때는 오히려 더워서 땀이 다 날 지경이었죠.”



실비아는 그 끔찍한 일을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펠릭스의 얼굴을 조심스레 훔쳐보았다. 조금의 후회나 원망, 슬픔이나 죄책감, 그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은 얼굴. 그는 마치 바다 건너 미지의 대륙에서 벌어진 남의 일을 회상하듯 덤덤하게 말할 뿐이었다.



“펠릭스. 그래서, 제이콥을 원망하느냐?”



“설마요. 난 원망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대스승님. 머리로는 이해해도 말이죠.”



“그럼, 제이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펠릭스는 깍지낀 손을 풀더니 뜬금없이 허리를 뒤로 젖혀 기지개를 켰다.



“못난 스승일 뿐이죠, 저한테는. 이제 독립했으니 사업상 라이벌쯤 되려나요. 사실, 저는 제이콥에게는 별 관심 없습니다. 제 관심사는 그 역병 뿐이거든요. 그 병을 만들어 낸 사람의 눈앞에다가, 제가 만든 치료약을 들이밀며 내가 이겼다고 선언하는것, 그게 제 관심사입니다.”



“제이콥이 그 병을 만든게 아니라면, 그러면 그를 찾는 일을 그만둘 테냐, 펠릭스?”



“물론이죠. 하지만 전 꽤 확신합니다. 그가 병을 만들었다고. 안 그래요?”



아이작은 시선을 펠릭스의 두 눈 너머, 조금 멀리 떨어진 어딘가로 던졌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럼요.”



“이제 약을 만들 수 있겠느냐, 펠릭스?”



아이작의 눈동자가 금빛 광채를 내뿜었다.



“그 약은, 오늘같은 방법으로는 만들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 약이나 들고와서 아무리 우겨본들, 제이콥은 눈 하나 깜짝 않을 것이다.”



“제대로 만들 겁니다. 난 천재니까. 위대한, 아니, 현존하는 최고의 연금술사니까. 마녀조차 뛰어넘고, 백수십년을 살아온 당신도 뛰어넘었으니까. 제이콥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약을 만들든간에, 제가 못 이길리 없습니다.”



펠릭스는 서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조심해라, 펠릭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때때로 벼려낸 창칼보다 날카롭고, 대포의 포탄보다 묵직하며, 낭떠러지같은 성벽보다 단단하다. 제이콥이, 그 범재가 자신의 모든 집념과 원한을 담아 만들어낸 끔찍한 역병이다.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천재도 집념은 있습니다. 범재 따위의 집념이 그렇게 강한 힘을 발휘하는데, 제가 가진 집념이 그만 못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펠릭스의 대답을 듣고 아이작은 물끄러미 수제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곧, 그는 시원섭섭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펠릭스. 가는 길에, 내 안부도 전해다오.”



“제이콥 말입니까?”



아이작은 여전히 미소지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전에, 먼저 찾아갈 곳이 있지 않느냐?”



펠릭스는 복잡미묘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해드리지요. 자, 그럼.”



펠릭스는 의자에서 가뿐히 일어났다.



“실비아. 그만 가죠. 들을 이야기는 대강 다 들었으니까.”



“저, 펠릭스. 저는 대스승님께 아직 묻고 싶은게 하나 남아있어서요. 먼저 가요.”



“네? 당신이?”



“그래요. 왜요?”



펠릭스는 조금 의아한 얼굴로 올빼미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뭐, 알았어요.”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요. 밤은 추우니까.”



“내가 언제 기다리겠다고 말이나 했나요. 그럼, 대스승님. 제자 펠릭스는 이만 물러갑니다.”



펠릭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으로 걸어가 오두막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그래서, 실비아.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느냐?”



펠릭스가 오두막을 빠져나가자 아이작의 금빛 눈동자가 실비아를 향해 서서히 또르륵 굴러갔다.



“네.”



실비아는 목 언저리에 맺힌 긴장감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거라.”



“그, 병이 돌았을 때요.”



“그래.”



“펠릭스도 약을 못 만들었잖아요."



“그렇다.”



“엘릭서랑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죠?”



아이작의 눈썹이 짓밟힌 벌레처럼 기분나쁘게 꿈틀했다.



“무슨 뜻이냐?”



“마음에 걸려서요. 문득 떠오른게 있어요. 혹시, 너무 무례한 질문이었나요?”



“아니, 아니다. 말 그대로다. 무슨 뜻으로 묻는 거냐?”



실비아는 머뭇거리다가 가볍게 손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도 바라지 않았던 거죠? 펠릭스가 그 병의 약을 만들어 내는 일이요. 지금 연금술사들이 펠릭스와 친한 척을 하는 게, 순수한 진심에서 그러는 것만은 아니죠?”



“흠.”



아이작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대스승님. 제가 너무 무례했나요?”



“아니, 아니다. 잘 물어봤다 실비아. 난 네게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지. 그러니, 나는 네게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작이 한숨을 내쉬자, 촛불의 불빛이 순간 꺼졌다가 위태롭게 되살아났다.



“연금술사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복잡한 도형과 수식, 문자열, 빽빽한 글씨들에 금새 질려 달아나버리니까. 평범한 사람들은 연금술사가 되지 않는다. 다시말하자면, 모든 연금술사들은 그 나름의 비범한 구석이 있다고 봐야 하겠지.



그래. 어떤 식으로든, 연금술사들은 하나같이 비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며, 또한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특별한 천재가 모습을 드러내자 스스로를 특별하다 여겼던 연금술사들은 하나같이 큰 위협을 느꼈다.”



“어떤 위협이요?”



“자기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 어쩌면, 스스로가 생각한 것만큼 자신이 뛰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불안감.”



“역시, 그랬던거죠?”



아이작은 씁쓸하게 일그러진 입술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콥이 그랬는데, 그보다 훨씬 어리고 자만한 연금술사들은 오죽했겠느냐? 그 누구도, 차마 말하기 껄끄러운 일이다만, 펠릭스가 약을 만들어 내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그가 실패하길 바랬을거다.



그렇지만, 그들도 펠릭스가 그런 방법까지 쓸 줄은 몰랐겠지. 환자와 마을 전체를 세상에서 지워버릴줄은. 그 때, 우리 모두는 너무 어렸다. 제이콥도, 그리고 내 제자들도.”



“메를린이나 트로이조차도요? 카야나 듀프, 게일도 그랬어요? 심지어 해리어는, 그 병으로 자기 약혼자를 잃기까지 했잖아요. 그 모든 연금술사들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펠릭스를 그렇게까지······.”



아이작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하지만, 아무도 그런 결과가 벌어질 줄은 몰랐으니까. 다들 겉으로는 의심했어도, 내심 속으로는 어떻게든 펠릭스가 일을 해결해 주리라 믿었겠지.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이 기회에 우는 소리를 하며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하기를 바랐지만, 결국 펠릭스라면 여느 때처럼 마지막에 모두를 바보취급하며 약을 만들게 틀림없으니까.



그러니 그 때까지는 어디한번 자기들처럼 연금술에 연이어 실패하는 쓴 맛이나 실컷 봐 두라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천재로서 느껴보지 못한 좌절감. 불안감. 자기들이 느꼈던 그런 것에 펠릭스도 벌벌 떨길 원했겠지. 하지만 펠릭스의 해결책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끔찍한 것이었다.



펠릭스가 뒷수습을 하는 동안, 나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뒷수습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내 제자들의 얼굴 위를 떠도는 그 무력감, 패배감, 죄책감. 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최선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약을 만들어 제자들의 기억을 막아버렸다. 앞으로 살면서, 두 번 다시 떠올리지 못하도록.”



“펠릭스도 그걸 알고 있었죠? 다른 연금술사들이 자길 싫어한다는 거요.”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도 펠릭스는 혼자 모두 감당하겠다고 나선 거예요?”



“그래.”



오두막 안이 조용해졌다.



“그게 펠릭스다. 펠릭스는 우리가 가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온전히 가지지 못했으니까. 그에게 죄책감, 배신감, 의무감, 불안감, 그런 하찮은 감정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니까. 그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펠릭스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던 책임까지 모조리 끌고 가버렸다.”



“왜 그랬대요? 왜 그렇게까지 했대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펠릭스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까.”



아이작은 말을 멈추고 가느다란 촛불의 불빛으로 그의 눈시울을 적셨다.



“지나간 과거의 일일 뿐이다. 지금 와서 그들을 책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제, 그들은 그 때를 기억하지도 못하니까. 그만 놓아주려무나. 나쁜 과거가 기억의 강 저편으로 흘러가 사라져버리도록.”



아이작의 이야기가 끝나자 실비아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네 작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맡겨서 미안하구나, 내 제자의 제자야.”



실비아는 아이작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아니에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스승님이 부탁한대로, 제가 증인이 될게요. 그게 무슨 소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작은 피식 웃었다.



“네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사람에게 또 알려주려무나. 이 사실이 영영 잊히지 않도록.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자그마한 마음의 엇갈림이 겹치고 또 겹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다고. 나는 일어난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럴거면 직접 알려주시면 되잖아요?”



아이작은 무려, 서글픈 눈으로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내 제자들이 눈에 밟혀 견딜 수가 없더구나. 미안하다 실비아. 날 비겁자라고 불러도 좋다. 하지만, 부디 부탁건대, 내 제자들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비겁해요.”



아이작은 아무런 변명도 부정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오늘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든, 나는 더이상 관여하지 않겠다. 나는 네게 증인을 부탁했으니까.”



“그것조차도 비겁해요. 직접, 스스로 알릴 수도 있으셨잖아요?”



“나도 인간이다 실비아.”



아이작의 그 한 마디가 실비아의 가슴 깊은 곳까지 철렁 내려앉았다.



“나도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실비아. 대단한척 하며 엘릭서를 만들어 내지만, 그래도 나도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실수도 하고, 때로는 웃으며 장난도 치다가 가끔 진지한 얼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결과가 일어날 줄 미처 알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네가 정의를 바란다면, 그렇게 하려무나. 하지만, 나는 비굴하게나마 네게 자비를 구걸하고 싶구나.”



“정말로 비겁한 일이에요. 제게 떠넘겼잖아요? 당신이 책임졌어야 할 일인데. 저한테, 저한테 그 뒷처리를 떠넘기셨어요.”



“미안하다 실비아.”



아이작의 금빛 눈동자가 더는 금빛으로 비쳐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실비아의 눈에 비쳐 보이는 아이작의 눈동자는 황달 환자의 누렇게 든 얼굴과, 또는 곪은 상처의 누런 고름과 비슷한 색으로 보였다.



“오늘 하신 말씀 중에, 거짓말은 없는 거죠?”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대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스승님.”



실비아는 아이작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늘 들은 이야기. 제가 하고싶은대로 할게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네 마음 가는대로. 네 진심을 따른다고 해서, 일을 그르친 적이 얼마나 있느냐? 또한, 그렇게 하여 일을 그르친들, 그 책임을 진다면 부끄러울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부끄러우세요?”



실비아는 현관으로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휙 뒤를 돌아보았다.



“부끄러운 줄은 아세요?”



“그렇다. 난 내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지 못하고, 아직 나이도 어린 제자에게 그것을 떠넘겼으니까.”



“그럼, 됐어요.”



실비아는 다시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제가 말을 하든 말든, 대스승님은 앞으로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테니까요.”



“그래. 그게 내 책임이겠지. 스승으로서, 스승의 모범을 보이지 못한 것.”



실비아가 오두막의 현관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쳐 촛불의 희미한 불을 꺼트렸다.



“실비아. 네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등 뒤에서,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실비아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겨울의 밤 속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연금술사들이 머무는 숲 속 공터는 한 밤중인데도 차가운 바람이 자주 불어닥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람이 웅웅거리며 우짖는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실비아는 날숨을 뱉었다가 입가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보고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벌써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펠릭스의 가게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는, 아직 낙엽이 덜 진 가을이었는데. 이미 이곳의 나무들은 잎사귀를 모조리 땅으로 떨어뜨린 뒤였다.



실비아는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겨울 밤의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살짝 파란 빛과 보랏빛이 섞인 검은 밤하늘에 달과 은하수, 별빛들이 한아름 펼쳐져 신비롭고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예쁘다.”



실비아는 자기도 모르게 본심을 말하면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뒤로도 실비아는 추운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공터에 새 아침이 밝아오자 펠릭스는 잠이 덜 깬 얼굴로 텐트 밖으로 걸어나왔다가, 그 추위에 화들짝 놀라고는 호들갑스럽게 텐트 안으로 돌아갔다.



다시 채비를 갖추고 텐트 밖으로 걸어나온 펠릭스는 공터에 비스듬히 내리쬐는 주황빛의 햇살아래 두 팔 벌리고 서서 가볍게 눈을 감았다.



“으흠.”



펠릭스는 기분좋은 신음을 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조용해서 좋은걸.”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숲 속 저쪽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짐승의 끽끽거리고 우는 소리, 사람의 말소리, 화살 쏘는 소리 따위가 부산스럽게 울려퍼졌다. 곧, 그 방향에서 올리버가 손에 커다란 산토끼 한마리를 쥐고 나타났다.



“아, 펠릭스. 좋은 아침.”



펠릭스는 올리버의 손에 쥐어진 죽은 토끼를 힐끔 거렸다.



“올리버. 벌써 사냥이에요?”



“오늘은 카야랑 같이 사냥다니기로 했거든. 그러려면 힘을 많이 써야 하니까,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두고 싶어서.”



“그래요? 난 오늘 여길 뜨려던 참인데.”



“뭐?”



올리버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는 것을 보고 펠릭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교류회에 오면, 그래도 항상 한 달쯤은 있다가 갔잖아.”



“올해는 바빠요. 실비아랑 제가 계약한거, 벌써 잊은건 아니죠?”



“아.”



올리버는 진심으로 잊고 있었다는듯 바보같은 소리를 냈다.



“맞네. 그랬지 참. 그래서, 이제 얼마나 남았더라? 재료를 다 모은 거야? 아니면 아직 한참 멀었나?”



“세 개 정도 남았어요. 여기서 요정가루를 받고 나면 앞으로 두 개.”



“그건 금방 구할 수 있나?”



“하나는 쉬워요. 뿔도마뱀 눈알이야 뭐, 집에 간 김에 부탁하면 그만이니까.”



“집?”



올리버가 펠릭스의 말에 끼어들었다.



“행복의 연금술가게? 아니면······.”



“거기 말고, 제 집요. 내 원래 집. 거기 맡기면 금방이니까. 겨울눈꽃은, 뭐······.”



“흠. 집에 갈 생각이야, 펠릭스?”



“네.”



“언제는, 더는 거기 갈 필요 없다더만.”



“이제 필요해졌거든요.”



“뭐, 네가 그렇다면야. 네 가족사에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니까. 그럼, 어쩐다? 나는 카야한테 미안하다고 가서 말이라도 전해주고 와야겠는데.”



“됐어요, 올리버. 모처럼 숲에 온 김에 천천히 만끽하고 와요.”



“그래?”



올리버의 얼굴에 대번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도 돼? 난 네 호위를 겸하고 있었잖아. 비공식적으로나마.”



“집에가는건데 뭘요. 우리집에서 날 해치려는 사람 없어요. 걱정 말고, 느긋하게 즐기다 와요. 출발하는 길에 편지 부칠 테니까.”



“그래. 거, 고마운데 펠릭스. 그럼 나는 마음놓고 즐기고 있을테니까. 너도 무리하지 말라고.”



올리버는 쾌활한 얼굴이 되어 죽은 토끼를 들고 재빨리 저쪽으로 사라져버렸다.



“흠. 올리버. 하여튼. 저럴 때 보면 순 카야랑 똑같다니까. 안 그렇습니까, 대스승님?”



이번에는 펠릭스의 등 뒤쪽에서 풀숲이 들썩였다.



“펠릭스. 티가 나더냐?”



“대스승님. 뻔하죠 뭐. 난 오감이 예민하니까.”



“그래. 그 혈통에 걸맞을 정도로 말이다.”



“왜 오셨습니까? 이제와서 훈수라도 두려고요?”



펠릭스는 이제서야 뒤를 돌아 그의 대스승과 눈을 마주쳤다.



“네게 줄 것이 있다, 펠릭스.”



“뭐죠?”



“따라오거라.”



아이작은 먼저 뒤를 돌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좋은 겁니까?”



“좋은 거지, 당연히. 설마, 스승이 제자에게 나쁜 것을 선물로 주겠느냐?”



“또 모를 일이죠. 나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니까.”



“하하! 농담도. 따라오기나 하거라, 펠릭스.”



펠릭스는 어딘가 내키지 않는다는듯 밍기적거리다가, 눈이 부신 태양의 빛에 쫓겨 아이작의 그림자를 뒤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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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2화 21.12.17 30 1 23쪽
» 141화 21.12.17 25 1 22쪽
140 140화 21.12.16 27 1 23쪽
139 139화 21.12.16 23 1 29쪽
138 138화 21.12.15 26 1 24쪽
137 137화 21.12.15 23 1 23쪽
136 136화 21.12.14 28 1 25쪽
135 135화 21.12.14 24 1 22쪽
134 134화 21.12.13 28 1 23쪽
133 133화 21.12.13 23 1 21쪽
132 132화 21.12.12 28 1 24쪽
131 131화 21.12.12 21 1 21쪽
130 130화 21.12.11 28 1 22쪽
129 129화 21.12.11 20 1 24쪽
128 128화 21.12.10 24 1 21쪽
127 127화 21.12.10 26 1 22쪽
126 126화 21.12.09 29 1 24쪽
125 125화 21.12.09 25 1 23쪽
124 124화 21.12.08 25 1 25쪽
123 123화 21.12.08 23 1 22쪽
122 122화 21.12.07 30 1 24쪽
121 121화 21.12.07 25 1 24쪽
120 120화 21.12.06 28 1 21쪽
119 119화 21.12.06 22 1 21쪽
118 118화 21.12.05 22 1 23쪽
117 117화 21.12.05 18 1 21쪽
116 116화 21.12.04 22 1 23쪽
115 115화 21.12.04 26 1 24쪽
114 114화 21.12.03 25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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