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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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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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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26화

DUMMY

“엎드려!”



실비아가 바닥에 납작 엎드리자 올리버는 칼을 뽑아들고 화살이 날아든 방향으로 뛰어들어갔다. 또 한발의 화살이 올리버를 스치더니, 수풀 사이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엎드린 실비아쪽으로 화살을 겨누었다.



“움직이지마!”



올리버는 칼을 든 채 머뭇거리며 그 사람을 노려보았다. 후드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사냥꾼은 실비아에게 재차 위협적으로 활을 겨누었다.



“너희들 뭐지? 어떻게 이렇게 깊숙히 들어온거야?”



“저기. 그러니까, 우리들은 연례 연금술사 교류회에······.”



“뭐?”



“교류회에 참석하려고 가는 길이었는데. 그러는 넌 뭐지?”



사냥꾼은 다시 활을 치켜들었다.



“연금술사가 아니잖아. 무슨 꿍꿍이야? 보나마나, 우리 숲에서 나는 귀한 재료를 훔치려고 온 거지?”



“아니! 아니라니까. 그래, 우린 연금술사가 아니고, 같이 온 사람이 있는데······.”



사냥꾼은 올리버에게 말할 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거짓말! 너희들 같은 사람 한두번 본 줄 알아? 당장 돌아가. 꺼져버려. 연금술사도 아닌 주제에 두번 다시 이쪽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여튼, 무슨 수로 경계를 넘어온거야?”



“아니오! 못 가겠는데요.”



실비아는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하게 말했다.



“뭐야? 화살 맞고 싶어? 한대 맞아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데요? 그리고, 저도 이제 연금술사거든요.”



“제대로 된 스승도 없는 약사겠지. 가짜 연금술사거나. 네가 진짜라면 네 스승의 이름을 말해. 누군데?”



“그러니까-”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사냥꾼은 그쪽을 향해 활을 잽싸게 겨누었다. 그리고 수풀 사이에서 펠릭스가 히죽 웃으며 걸어나오자 그제서야 사냥꾼은 활시위를 내렸다.



“펠릭스?”



“야, 카야. 좀 봐 줘라. 넌 무슨, 그러다가 진짜 사람 하나 잡겠네.”



“펠릭스. 이 사람들 알아?”



“알지. 저쪽은 내 채집꾼 올리버. 너도 알텐데? 그리고 저쪽은······.”



펠릭스는 실비아를 손가락질 하다가, 손 모양을 바꾸어 손바닥으로 조금 정중히 실비아를 가리켰다.



“내 제자.”



“제자라고? 너 펠릭스 아니지?”



“왜이래, 카야? 정 의심스러우면, 네가 몰래 숨겨둔 사슴 다리 고기를 밤에 솥에 끓이다가 스승님한테 들킨 이야기를 해 줄까?”



“야, 그건 실수였거든!”



사냥꾼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듯 활을 든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러더니 곧 어이가 없다는듯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숲 속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그제서야 사냥꾼은 화살을 도로 화살통에 집어넣 로브의 모자를 벗었다. 모자를 벗은 카야가 펠릭스의 동료들에게 정중히 허리를 꾸벅 숙이자, 그녀의 낙엽같은 갈색 머리칼이 살짝 아래로 늘어뜨러졌다.







“만나서 반가워, 펠릭스의 친구들.”



방금전까지 살기등등한 분위기를 풍기던 카야는, 언제 그랬냐는듯 싱글벙글 웃으며 실비아와 올리버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동전 뒤집듯 한 순간에 태도를 바꾸는 카야를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좀 머쓱한데.”



“아, 올리버.”



카야가 어색하게 웃자 올리버는 그녀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올리버와 카야가 악수를 마치자 카야는 실비아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저, 실비아에요. 카야?”



“카야. 성은 몰라도 돼. 잘 부탁해, 펠릭스의 제자.”



실비아가 머뭇거리며 카야의 손을 잡자, 갑자기 카야는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고 잡아당겨 실비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네, 네?!”



“음.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



카야는 도로 실비아의 손을 놓아주었다.



“야, 펠릭스. 얘는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런 애가 네 제자라고?”



“일단은.”



“거 참.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제자로 들이나 했더니. 얘는 너랑은 요만큼도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데.”



“됐어 카야. 너무 그러지마. 제자로 들인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아직 일 년도 안 됐지.”



“그래? 그런데 벌써 교류회에 데려와?”



펠릭스는 히죽 웃었다.



“교류회에 가서, 내로라 하는 연금술사들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요령을 한껏 흡수하라는 뜻으로.”



카야는 알겠다는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된 일이었구만. 저기, 펠릭스의 친구들. 다시 한번 사과하죠. 귀한 손님을 몰라뵙고. 무례를 범했네요.”



카야는 재차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아, 아니에요 카야. 괜찮아요. 다친 사람도 없고. 그렇죠, 올리버?”



“야, 카야. 맨입으로 사과만 하고 치우게? 뭐 좀 성의를 보여야 하는거 아니야?”



정작 물어보지도 않은 펠릭스가 히죽거리며 대화에 끼어들자, 실비아는 팔꿈치로 펠릭스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으헉!”



“펠릭스. 당신은 눈치 좀 챙겨요.”



그러자 카야는 고개를 불쑥 들고 놀란 눈으로 실비아와 펠릭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니, 당신. 지금······?”



“아. 죄송해요. 조금 우아하지 못했죠?”



펠릭스는 괜찮다는 뜻으로 카야에게 눈짓을 보냈고, 카야는 그러자 아리송한 얼굴로 실비아를 힐끗 보았다.



“아, 뭐. 그렇다면야. 그래서, 펠릭스. 여기서 밤을 지내려고?”



카야는 다시 허리를 곧게 펴고 만들다 만 야영장을 두리번거렸다.



“그래. 왜, 카야 네가 쓰려고 점찍어둔 데였어?”



“그래. 내가 기껏 봐둔 땅이었는데. 장작 좀 주우러 간 사이에 빼앗기다니.”



카야는 아쉬움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로 가볍게 투덜거렸다.



“아, 저기. 카야. 그러면 우리랑 같이 자는건 어때요?”



“응? 뭐······.”



그러자 펠릭스가 앞으로 한 발짝 걸어나와 실비아와 카야 사이를 가리며 섰다.



“실비아. 안 그러는게 좋을걸요. 사실, 카야는 코골이가······.”



“야, 펠릭스! 너 자꾸 그럴래?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아, 알았어 알았어! 카야. 좀 진정해. 하여튼, 내 근처 여자들은 다들 왜이렇담.”



펠릭스는 벌써 상체를 뒤로 젖히며 한쪽 팔을 들어 방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됐어, 펠릭스. 아무튼. 실비아? 제안은 고맙지만, 나도 펠릭스랑 같은데서 자긴 싫거든요. 사실, 펠릭스는 잠꼬대가 아주 어마어마한데······.”



“아, 맞아요. 정말 대단하던걸요. 전 그렇게 잠꼬대 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다시 카야는 휘둥그레진 눈을 끔뻑거리다가 펠릭스를 힐끗 돌아보았다.



“야. 펠릭스. 너 설마······.”



“아, 그런거 아니야. 그냥 좀, 사고가 있었어.”



펠릭스는 답지않게 얼굴을 조금 붉혔다. 그러자 카야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메를린한테 다 일러야지.”



“네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내가 쓴 편지가 먼저 도착할걸. 거기다가 이렇게 써야겠군. ‘카야는 거짓말쟁이······.’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뭐라는거야 펠릭스? 메를린 여기있어.”



잠시 서늘한 바람이 숲 안쪽에서부터 불어왔다.



“뭐?”



“메를린 벌써 여기 와 있다고. 그럼 지금 바로 가서 일러바쳐야겠다.”



“야! 카야! 하지마! 진짜로, 나 화낸다!”



“어이쿠 무서워라!”



카야는 이쪽을 향해 눈웃음을 지어주고는 숲 속으로 쏙 사라져버렸다.







한바탕 폭풍 같은 카야와의 만남 이후에, 세 사람은 모닥불 위에 작은 냄비를 올리고 스튜를 보글보글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 실비아는 조그만 나무 국자로 스튜가 냄비 바닥에 눌러붙지 않도록 휘휘 저었다.



“펠릭스. 당신 친구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치네요.”



실비아는 충분히 끓은 스튜를 작은 그릇에 한 국자 덜었다.



“그 쯤 돼야 연금술사 하죠. 실비아, 당신도 이 기회에 뭐 하나 특출난 특기를 마련하는건 어때요? 보자. 낚시꾼이 없던가? 아니면 어릿광대나······.”



“싫거든요! 낚시꾼이고 어릿광대고.”



“원, 농담이에요 농담. 하여튼.”



실비아가 국자를 건네자 펠릭스도 자기 몫의 스튜를 한 그릇 덜었다. 그리고 펠릭스는 국자를 올리버에게 내밀었다.



“올리버. 올해도 잘 부탁해요.”



올리버는 국자를 넘겨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뭘 부탁하는데요?”



그리고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호호 불다가 실비아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제 약에 쓸 재료 구하는 일이요. 올리버는 제 채집꾼이잖아요?”



“당신 약이요? 제 것이 아니라?”



“네. 제 약. 연금술사 교류회까지 왔는데, 저도 한 솥 끓여야죠.”



“아.”



실비아는 그릇에 담긴 스튜의 국물을 호록 마셨다. 따뜻한 국물은 홀홀하고 싱거워서 스튜라기보다는 수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여기서 다들 최고의 약을 만든다고요?”



“물론이죠! 다행히 잘 기억하고 있군요 실비아. 놀러온 줄 알았다면 오산이에요.”



“전 아주 진지하거든요? 그래서, 펠릭스. 당신은 무슨 약을 만들거예요?”



펠릭스는 씩 웃으며 그 역시 스튜를 한 모금 후룩 마셨다.



“뭐겠어요? 내 최고의 죽음의 약이죠.”



“죽음의 약이요. 아니, 잠깐! 펠릭스. 그거, 저한테 만들어준 그 약 아니에요?”



“맞아요.”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펠릭스. 재료 없다면서요? 그 재료를 구하려고 절 데리고 온 왕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닌거 아니에요? 앗, 설마. 당신, 몰래 숨겨둔 재료를 가지고······!”



“터무니없는 소리 말아요, 실비아. 진짜 재료는 당연히 없죠. 없고말고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그리고, 재료가 없으면 또 없는대로 어떻게든 만드는게 진짜 연금술사거든요. 뭐, 그것 말고도 전 온갖 종류의 약을 최고의 품질로 만들수 있으니까, 어찌됐든 이번 교류회의 1등도 따놓은 당상이라고나 할까.”



실비아는 펠릭스의 오만한 태도에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그간 펠릭스가 보여온 솜씨를 떠올리자, 그럴 수도 없어서 조용히 투덜거리기만 했다.



“펠릭스. 당신, 좀 재수없네요.”



“하하. 질투하는 건가요? 내 참. 이래서 너무 뛰어나도 탈이라니까. 사람들이란······윽!”



실비아는 다시 펠릭스의 옆구리를 힘껏 찔러주고는 묵묵히 스튜를 떴다. 그러자 펠릭스도 쓸데없는 소리는 그쯤하고 역시 조용히 식사만 했다.







숲 속에서 밤을 맞이하여, 실비아는 처음에는 긴장과 기쁨으로 간이 텐트가 가만 누워 두 눈을 반짝거렸다. 조잡하게 만든 텐트의 천에 바람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는, 꼭 요정의 속삭임 처럼 들려 그대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고 차게 식은 바닥이 한층 더 차갑게 식어가자, 실비아는 올리버가 야영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부스럭거리며 배낭을 뒤져 수많은 천과 옷으로 온 몸을 꽁꽁 여몄다.



새 아침이 밝았을 때, 실비아는 다행히 감기에 걸리지 않고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 안을 두리번거렸다. 엉망으로 헤집어 둔 양말, 손수건, 옷가지 등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품보다 한숨이 먼저 났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실비아가 텐트에서 빠져나와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켜자, 서늘하고 깨끗한 숲의 바람이 그녀의 허파로 가득 불어들어왔다. 실비아는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며 가볍게 미소를 머금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조금 기분나쁘게 히죽거리며 서 있는 펠릭스가 있었다.



“별로 귀족의 우아함이 느껴지진 않는군요. 하기야, 귀족도 사람이니까.”



“펠릭스! 있었으면 인기척을 내든가 해야죠!”



실비아는 뒤늦게 옷섶을 여미며 텐트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내 참. 늑장 부리지만 말라고요, 실비아. 아직 숲 안쪽으로 한참 더 걸어들어가야 하니까.”



그리고 그제서야 펠릭스도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켰다.







야영장 정리가 대강 끝날 즈음, 수풀이 부스럭거리더니 카야가 웃으며 튀어나왔다.



“야, 펠릭스. 아, 펠릭스의 친구분들. 좋은아침.”



카야는 올리버와 실비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 주고 펠릭스를 향해 곧장 걸어갔다.



“왜?”



“펠릭스. 같이 좀 가자.”



펠릭스는 잠시 손을 멈추고 카야와 마주섰다.



“왜. 어제는 메를린한테 바로 일러바치느니 뭐니 하더만. 하룻밤새에 마음이 바뀌었나?”



“그, 약을 다 썼거든.”



펠릭스는 피식 웃으며 카야에게 핀잔을 주었다.



“하여튼, 카야. 너 또 사냥에 정신팔려서 그랬지?”



카야는 그저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그럼 같이 가지 뭐. 별 수 있나.”



“야, 고맙다 펠릭스! 자식. 시원시원하니 좋네. 그럼 신세좀 진다. 아, 펠릭스의 친구들? 오늘 잠깐 신세좀 질게요.”



“내 참. 호들갑은. 올리버, 실비아! 얜 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평소처럼 편하게 있어요.”







낙엽을 사박사박 밟으며 숲속 깊숙이 걸어가는 동안, 카야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계속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펠릭스는 영 못마땅한 얼굴로 카야를 힐끗거리며 그녀를 뒤따라갔다.



“저기, 펠릭스. 아까 무슨 약 이야기를 하던데.”



“아, 뭐. 해독제죠.”



실비아는 걸음을 멈췄다.



“네? 해독제요? 독이라도 있어요?”



“환각 독을 연금술사들 숲 곳곳에 뿌려뒀거든요.”



“왜, 왜요? 뭣하러 그런 짓을······?”



“아. 내가 대신 설명해줄게.”



못들은척 하고 있던 카야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펠릭스는 다시 못마땅한 얼굴로 뒤로 한 발짝 물러서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연금술사들이 숲 속에 모여있다고 소문이 난 뒤로는, 사람들이 뭐 보물이라도 있나 싶어서 자꾸 근처를 기웃거린단 말이야. 근데, 그게 꽤나 성가시거든. 책이나 재료를 망가뜨리는 일도 있었고. 가끔씩은 일부러 작정하고 쳐들어오는 녀석들도 있거든.”



“그래서요?”



“그래서, 아무나 함부로 가까이 못 오도록 우리들이 머무는 근처에 독을 울타리처럼 뿌려둔거야. 조금이라도 들이마시면 하루 종일 가벼운 환각과 오한이 느껴지고, 기분이 축 쳐지는 그런 독으로.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증상 자체는 아주 확실해서 다음날 아침이 되기 전까지는 계속 기분상하도록 만든 독이지.”



“효과가 있어요?”



“당연하지! 꽤 효과가 좋아. 뭐, 그래도 꿋꿋이 밀고 들어오는 놈들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별건 없네요.”



실비아는 카야의 말을 들은 소감을 한 마디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펠릭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 어쨌든, 하루 공치기 싫으면 해독제를 준비하는 편이 좋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루 종일 사람 기분 축 쳐진 꼴을 보면 또 생각이 달라질걸요.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멍하니 주저 앉아 눈만 꿈뻑거리며 벽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 하루이틀 그걸 겪고 나면 무서워서 숲 근처에 얼씬도 안 하죠.”



“그렇게 들으면 또 무서운 독 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우리한텐 해독제가 있으니 걱정할건 없어요 실비아.”



실비아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다시 카야가 홀가분한 걸음걸이로 앞장섰다.







숲 깊숙히 걸어들어오자 펠릭스가 자그마한 약병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약병의 내용물을 마시고 다시 한동안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다보니, 실비아는 갑자기 투명한 안개의 벽을 관통한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카야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여기부터 우리들의 땅이야. 우리 연금술사들의 숲에 온 걸 환영해.”



살짝 언덕진 땅 아래쪽으로, 펠릭스에게서 말로만 들어왔던 그 연금술사들의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빽빽한 나무숲 한 가운데 자리잡은 둥근 공터. 그리고 그 공터 한 가운데는 커다랗고 검은 솥이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솥 오른 쪽에는 삼각형의 텐트들이 십수개 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솥 뒷편에는 나무 오두막이 세 채 있었다. 그중 한 채는 다른 두 개 보다 크기도 작고, 솥에서도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공터 왼쪽에는 중앙의 솥 보다 훨씬 크기가 작은 솥들이 둥근 고리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여기가 바로 그 연금술사들의 숲이야. 우리들이 약에 대한 지식을 배워온 곳.”



“그렇군요······.”



실비아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돌연 카야는 씩 웃더니 두 손을 입에 모아 힘껏 소리쳤다.



“다들! 펠릭스가 제자를 데려왔어!”



카야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실비아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숲 속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들 이쪽을 보고 옹기종기 모였다.



“카야. 호들갑좀 적당히 떨라니까 그러네.”



“뭐, 어때? 좋잖아.”



카야는 씩 웃으며 그녀 역시 다른 연금술사들의 무리 속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낭만 소설을 읽으며 실비아는 종종 유명 인사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하고 차분히 생각해보곤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자기의 얼굴을 알아보고 웃으며 반갑게 다가오는 그런 삶.



그러나 그 유명인사의 삶이라는 것이 마냥 좋지도 않다는 것을 실비아는 지금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연금술사들이 실비아 앞에서 웅성거리며 꼭 무슨 동물원 동물 보듯 신기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 진정 좀 해.”



실비아가 긴장하고 있으니 펠릭스가 슬쩍 그녀의 앞을 가로막아섰다.



“한 명씩 하라고. 자기 소개도 좀 하고. 우선, 자. 실비아야. 내 손님이었는데, 지금은 내 제자야.”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네······제자라고?”



무리 사이에서 큰 안경을 코에 걸친 남자가 한명 느릿하게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어딘가 어설프고 위태로운 걸음 걸이로 이쪽으로 오더니, 실비아의 얼굴을 가만히, 빤히 쳐다보았다.



“버크, 사람 얼굴 빤히 쳐다보는게 무례한 거다. 그리고 준남작이라고. 나름 귀족이야.”



“아, 그래?”



버크는 한 박자 늦게 대답을 하더니 두어발자국 뒷걸음질 치고 시선을 슬쩍 돌렸다.



“실비아. 저쪽은 버크. 연금술사죠.”



“반갑습니다. 저는 버크.”



버크는 다시 어색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갑자기 무리 속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듀프! 순서 지켜.”



“버크는 너무 느리단 말야.”



방금전까지 나무를 패기라도 했던듯, 한 손에 손도끼를 든 근육질의 남자가 버크를 가볍게 젖히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도 역시 실비아를 무슨 장작 품평하듯 위아래로 슬쩍 훑어보았다.



“얘가 네 제자라고?”



“네 소개부터해, 듀프.”



“알았어. 안녕. 나는 듀프. 연금술사고, 왕국 북동쪽 소나무숲 벌목장에서 일해.”



“아, 저. 실비아에요.”



정작 듀프는 실비아의 인사에는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는 실비아를 빤히 쳐다보더니 대뜸 말하기 시작했다.



“얘도 한번 슥 보고 책을 달달 외어?”



“네?”



실비아가 당황하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듀프는 계속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지식이 뛰어난가? 임기응변이 좋아? 서로다른 나비의 오십육가지 변종을 모조리 구분하나?”



“아, 저. 저기······.”



“듀프. 진정 좀 해. 얘를 제자로 들인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일 년도 안 됐어.”



그제서야 듀프는 아리송한 얼굴로 뒷걸음질쳤다.



“아, 뭐. 난 그 펠릭스가 제자를 들였다길레 무슨 대단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한걸. 아, 혹시 그건가? 그 외······.”



“듀프. 말 조심해.”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실비아는 메를린의 목소리를 듣고 벌써부터 반가워 긴장이 풀어지고 웃음이 났다.







듀프의 널따란 몸을 슥 젖히며 두 사람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한 명은 익히 아는 메를린이었다. 여전히 단풍결처럼 붉은 색과 노란 색이 얼룩덜룩한 머리칼을 늘어뜨리며 산뜻한 미소를 짓는 메를린.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조금 창백한 느낌의 피부에다가 머리칼에서는 파란 기운이 감도는 사람이었다.



“아, 실비아. 메를린은 익히 잘 알죠? 이쪽은 린. 메를린 친구고, 좀······.”



린은 싱긋 웃으며 실비아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화답으로 실비아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펠릭스는 헛기침을 하며 조용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악녀라고나 할까.”



“어머, 펠릭스. 실례야.”



린은 긴장하거나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웃으며 대꾸했다.



“뭐, 너무 가까이 지내지는 않는걸 추천해요. 아무튼, 이쪽은 실비아. 내 제자.”



“흐음······그 펠릭스의 제자라고? 애인이 아니라?”



린이 던진 말에 소리없는 무언가가 술렁였다.



“린. 너, 메를린 옆에서 자꾸 큰일날 소리 한다. 얜 원래 내 손님이었다가, 지금은 내 제자가 됐어.”



“손님에서 제자가 됐다고? 이해가 안 가는데.”



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가락을 뻗어 실비아의 턱을 가볍게 건드려보았다. 그녀의 손끝이 닿자 실비아는 차가운 냉기가 들어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네가 이해하든 말든 사실이 그런걸.”



“얘도 너처럼 뛰어나? 맛만 보고도 무슨 재료를 어떻게 가공했는지 바로 알아맞히나?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도 진단을 내려? 손가락으로 약을 살짝 저어보기만 해도 무슨 재료를 섞었는지 바로 알아?”



“아니라니까. 방금까지 내가 한 말을 뭘로 들은거야?”



“흐응-”



린은 그쯤하면 충분히 구경했다는듯 도로 뒤로 물러섰다.



“아, 저. 메를린. 반가워요.”



그제서야 실비아는 메를린과 인사를 나누었고, 메를린도 웃으며 실비아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연금술사가 된 걸 환영해요 실비아.”



“아, 네. 고마워요!”



그리고 메를린과 린이 무리 안으로 돌아가자 펠릭스는 고개를 쭉 뻗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인은?”



“아, 제인은 못 와.”



막 걸어돌아가던 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왜?”



“결혼 준비하느라 바쁘대.”



“아하. 제인도 벌써 그럴 나이인가. 결혼 하니 생각났는데, 게일도 올해는 못 올거야.”



“왜?”



갑자기 듀프가 따지듯이 펠릭스에게 물었다.



“여자에 눈이 멀어서.”



듀프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그 말의 뜻을 헤아리다가 뒤늦게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게일. 드디어? 원. 언제는 순 수도승인 마냥 그러더니. 그놈도 결혼을 하긴 하는군.”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또 누가 덜 왔지?”



“저, 그. 올 사람은 다 왔을걸.”



버크가 느릿한 말투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주 이상한 기운이 있어서, 줄곧 들떠있던 사람들은 다들 입을 다물고 버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니까. 노리스랑 첼시는 원래부터 안 왔잖아.”



“아, 하긴. 그러면 트로이만 오면 되나?”



“트로이도 와 있어.”



버크는 그러고는 느릿하게 텐트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그 트로이가 왔다고? 서커스도 팽개쳐두고?”



“어젯 밤 늦게 왔어. 자세한건, 일어나거든 물어봐.”



“그럼······.”



그 때, 공터 저쪽 외딴 오두막의 문이 달칵 열렸다. 그러자 연금술사들은 일제히 공터의 큰 솥 앞에 자리를 잡고 서서 저쪽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펠릭스, 뭐예요?”



“아, 대스승님이 나오는 거죠. 실비아. 뭐, 굳이 따라할 필요는 없긴 한데. 알아서 해요.”



그리고 오두막에서 누군가 밖으로 걸어나오자, 연금술사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경의가 담긴 얼굴로 엄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연금술사들과 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제 막 30대의 중반을 지나는듯한 외모에, 올리버처럼 크고 단단한 체구. 얼굴에서는 여유가 흘러넘치는 데다가, 수염을 말끔하게 면도한 남자가 인품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 사람이······.”



“네. 제 대스승님. 이름은 아이작. 그리고, 저보다 뛰어난 유일한 연금술사에요.”



펠릭스보다 뛰어난 연금술사. 펠릭스를 연금술사로 만들어낸 바로 그 사람. 그동안 말로만 들어온 수수께끼의 괴짜가, 바로 지금 실비아의 눈앞에 서서 그녀의 두 눈동자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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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128화 21.12.10 24 1 21쪽
127 127화 21.12.10 25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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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9화 21.12.06 22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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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7화 21.12.05 18 1 21쪽
116 116화 21.12.04 22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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