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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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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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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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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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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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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40화

DUMMY

펠릭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공터에는 다시 차가운 정적이 감돌았다. 손에 든 빈 약병을 물끄러미 내려보던 펠릭스는 천천히 빈 병을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으흠.”



대스승 아이작이 헛기침을 하며 연금술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너희들이 만든 약은 잘 보았다. 올해도 다들 최선을 다했구나. 뛰어난 약을 선보인 사람도 있었으며, 생각지도 못한 약을 만들어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너희들이 만든 약 하나하나가 모두 최고의 약이다.”



아이작이 금빛으로 도금된 테이블 앞으로 걸어나오자 펠릭스, 메를린, 실비아는 다시 자기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이제부터 채점의 시간이다!”



아이작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 연금술사들에게 한 장씩 돌렸다. 종이를 받은 실비아는 처음에는 그 눈처럼 하얀 색깔에 놀랐고, 그 다음에는 부드럽고 맨질맨질한 감촉에 놀랐다.



“최고급 종이에요.”



실비아는 뜻밖이라는듯 눈을 말똥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왜요, 실비아? 숲 속에 있다고 우리들이 너절한 싸구려 종이나 쓸 줄 알았어요?”



“아니오. 그게 아니라, 이건 구하기도 힘든 최고급중의 최고급 종이잖아요. 한번 만져봐요! 이렇게 좋은 종이, 저도 거의 본적 없다구요.”



펠릭스는 조금도 놀랍지 않다는 얼굴로 피식 웃더니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뭘 쓰는 거예요?”



“채점해야죠. 실비아. 당신도 채점해요.”



“뭘, 어떻게 채점하는데요?”



펠릭스는 여전히 종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글자를 끄적이며 대답했다.



“그냥 뭐든지. 누구의 어떤약은 뭐가 좋더라. 또 누구의 무슨 약은 어디가 별로더라. 그런 식으로요.”



“제가 그래도 될까요? 전, 아직 초보인데······.”



“친목 교류회일 뿐이에요. 당신이 뭐라 쓴들, 누가 뭐라겠어요?”



실비아는 보드랍고 매끄러운 종이를 손끝으로 살며시 만져보았다.



“정말 제 마음대로 쓰면 되는거죠?”



“의심은. 내가 언제 당신한테 거짓말 한 적 있어요?”



펠릭스의 대답을 재차 들은 뒤에야 실비아는 종이를 숨겨가며 무언가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혹여 누가 훔쳐볼까봐 주변을 힐긋거리며 팔로 종이를 가린채 글씨를 써내려갔다.







뿌려진 종이가 거두어지자 아이작은 종이를 순식간에 휙휙 읽어내려갔다.



“이제 시상식이다. 우선, 올해 최고의 연금술사부터 뽑고 시작하자꾸나.”



잠시, 긴장되는 공기가 공터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 공기가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기 전에 아이작이 호탕하게 말했다.



“올해 최고의 연금술사. 펠릭스!”



펠릭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와 동료 연금술사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아무 연금술사도 그에게 반응을 해 주지 않았다.



“뭐야 다들. 삐쳤어? 아니면 얄미워서 그래?”



“비겁한 방법으로 이겼잖아. 원래부터 밉상이었는데, 올해는 너무했어.”



카야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아이작이 펠릭스의 어깨를 덥썩 붙잡았다.



“아니, 아주 정당한 승리였다. 그러니 너희들도 승리자에게 정당한 영광을 돌려주려무나. 내 제자들아.”



펠릭스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곧, 대스승의 말에 따라 메를린을 필두로 힘없는 박수소리가 공터에 울려퍼졌다.



“자, 좋다. 다음. 가장 장래가 기대되는 연금술사 상이다. 뭐, 볼 것도 없지. 실비아!”



“네? 저요?!”



실비아는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화들짝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그래, 실비아! 앞으로 나오거라. 가장 장래가 기대되는 연금술사로 뽑힌 것을 축하한다!”



실비아는 금새 환희로 빛나는 웃음을 지으며, 메를린과 트로이, 카야, 다른 몇몇 연금술사들에게 등을 떠밀려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연금술사들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원스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한다. 부상은 나중에 따로 챙겨주마. 그만 돌아가 보거라.”



“고맙습니다!”



실비아는 쫄래쫄래 자리로 돌아와 펠릭스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음. 올해 가장 성실한 연금술사 상. 버크! 그 다음은 가장 우직한 연금술사 상. 듀프!”



하지만 연이어 연금술사들이 호명되자 실비아의 의기양양한 미소는 조금씩 힘을 잃고, 대신 실비아는 약간 의아한 눈으로 눈치를 살폈다.



“가장 아름다운 연금술사 상. 린! 가장 사무적인 연금술사 상. 트로이!”



“펠릭스. 이거······전부 다 상을 주는 거예요?”



“가장 솔직한 연금술사 상. 카야!”



펠릭스는 대답도 하지 않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지막이군. 가장 너그러운 연금술사 상. 메를린! 이것으로 올해 시상식은 끝이다. 참가하지 못한 게일과 첼시, 그리고 제인에겐 아쉽게 되었군.”



“아니, 전부 다 상 주는 거였잖아요!”



뒤늦게 실비아가 하소연을 하자 연금술사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터트리며 실비아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내가 말 했잖아요. 교류회라고. 친목을 다지는 교류회일 뿐인데, 일 등을 뽑았으면 그걸로 끝이지. 뭐 구구절절 누가 낫네 못하네 따지겠어요?”



실비아는 얄밉게 웃고있는 펠릭스의 얼굴을 보고 약이 올랐지만, 진심어린 다른 연금술사들의 축하와 기대에 금방 마음을 풀었다.



“부상은 내일 아침까지 마련해 주겠다. 그럼, 이제 저녁 식사 시간인가?”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지만요.”



카야가 주머니에서 회중 시계를 꺼내 살피며 대꾸했다.



“하하! 미안하다. 다들 배가 고팠겠구나. 자, 오늘은 특별히 내가 직접 요리를 해 주도록 하마. 실비아에게 내 솜씨를 한번 쯤은 보여줘야지.”



연금술사들은 아이작의 말을 듣고 금새 들뜬 기분이 되었다.



“가자꾸나! 식사하러.”



그리고 아이작의 뒤를 따라 그들은 가볍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대스승님은 요리를 잘 하세요?”



자박자박 공터를 걷는 동안 실비아가 조심스레 펠릭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펠릭스는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하지만, 그래요. 요리 실력 만큼은 난 대스승님 발끝에도 못 미쳐요.”



“요리로 승부를 보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단단히 혼쭐이 났을텐데.”



실비아가 놀리자 앞에서 걸어가던 아이작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거 좋은 생각이구나, 실비아! 내년 부터는 요리 대회를 같이 열어야겠다.”



“꿈도 꾸지 말아요, 대스승님! 내가 이제 최고의 연금술사가 되었으니, 그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테니까!”



“하하, 또 스승에게 대들 셈이냐? 어디, 해 보거라 펠릭스.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으니까 말이다!”



두 사람이 왁자지껄하게 말을 해대기 시작하자, 차게 식었던 분위기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금술사들이 식사 테이블에 도착했을 때는, 펠릭스의 반항이나 엘릭서에 관한 짧은 논쟁따위의 기억은 거품처럼 사그라들어버렸다. 다만, 대스승이 직접 만들어주는 요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빛들이 한 밤중에 조용히 빛났다.







아이작은 뛰어난 연금술 실력만큼이나 뛰어난 요리 솜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이 숲 속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온갖 재료들로 동시에 세 가지 요리를 만들어왔다. 조그만 비스켓 위에 얇게 자른 햄, 토마토와 치즈 한 조각씩, 껍질을 벗긴 새우살을 올린 카나페를 시작으로 불에 익혀 소스에 졸인 메추라기 요리, 큼직하게 썰어 불에 겉을 그을리듯 익힌 부드러운 소고기. 아이작이 직접 만들어낸 종잇장처럼 하얀 케이크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을 때는, 연금술사들이 일제히 소리없이 감탄했다.



“요리 솜씨가 아주 뛰어나세요!”



아이작이 요리를 마치고 테이블에 털썩 앉자 실비아가 감탄어린 목소리로, 입가에 생크림까지 묻혀가며 탄성을 내뱉었다.



“입가는 좀 닦고 말하지 그래요?”



펠릭스에게 한 소리 들은 뒤에야 실비아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쳤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아이작은 주머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자, 선물이다.”



“네?”



실비아는 아이작이 내민 청록색의 비단결 손수건이 장작의 불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장 장래가 촉망받는 연금술사 상. 그 부상이다. 네게 필요해 보이는구나, 실비아.”



“이게······뭐예요?”



“바다나방 유충의 고치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 손수건이다. 보기에는 보드랍고 맨들맨들하지만, 왕국 최고의 대장장이가 벼려낸 칼끝으로도 이 손수건을 찢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로요! 세상에, 저한테 이렇게 대단한 물건을 주셔도 괜찮아요?”



“뭐 어떻느냐? 그리고, 네게는 손수건이 필요해 보이는구나 실비아. “



실비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머뭇거리다가 아이작이 내민 손수건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저, 꼭 뛰어난 연금술사가 될게요!”



“하하.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실비아! 네가 뛰어난 연금술사가 되든 말든, 내게는 별 상관없는 일이니까. 좋은 연금술사가 되고싶다면 되고, 되기 싫다면 관 두거라.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



실비아는 손수건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마저 식사하자꾸나. 어디, 린. 왜 그러느냐? 차가 없어서 그러느냐?”



“아, 차는 제가 끓여올게요.”



실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연금술사들이 소리없이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저, 자신있거든요.”



그리고 실비아가 솥으로 다가가자 린은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나보다 잘 끓이려나?”



“설마. 린. 네 솜씨를 어떻게 이겨?”



펠릭스는 손가락으로 자기 몫의 케이크 위에 얹어진 크림을 슬쩍 덜어 낼름 핥았다.



“그 펠릭스의 제자잖아. 자꾸 기대하게 된단 말이지.”



“메를린. 한 마디 해줘.”



그러자 메를린은 살며시 웃으며 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해도 좋아.”







금새 테이블 위에는 새콤달콤한 향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연금술사들은 그 냄새만 맡아보고도 무엇으로 차를 끓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사랑초!”



카야가 가볍게 탄성을 내뱉었다.



“차로 끓이기엔 별로일텐데. 비싸잖아?”



“우리 집에 저걸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거든.”



“그게 누군데, 펠릭스?”



“올리버.”



카야의 얼굴에 당황스런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조금 의외네 그 사람. 생긴 건 거친 맥주를 입에 달고 살 것처럼 생겨서는.”



“섬세한 구석이 있거든. 아무튼, 뭐. 별 맛은 안 날 테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고.”



펠릭스가 한 말과는 달리, 정작 실비아가 차를 끓여오자 연금술사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조용히 차를 홀짝이며 이따금 케이크에 손을 댔다.



“펠릭스.”



조용히 차를 홀짝이던 린이 펠릭스의 이름을 부르자, 빈 접시를 포크로 탁 탁 두드리던 펠릭스가 고개를 돌렸다.



“왜?”



“너보다 훨씬 낫네. 요리 솜씨는.”



펠릭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빈 접시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렸고, 실비아는 고마움이 듬뿍 묻어나는 미소를 린에게 지어보였다.







교류회가 끝나자 드디어 숲 속의 공터는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풀벌레와 밤 새, 조그마한 들짐승, 그리고 때때로 무시무시하게 불어닥치는 차가운 북풍.



연금술사들은 하나둘 잠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지만, 펠릭스와 실비아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아이작의 뒤를 따라 그의 오두막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두막 안으로 들어오자, 사뭇 무겁고 진지한 공기가 그들을 맞이하여 실비아는 속으로 놀랐다. 하지만, 아이작과 펠릭스는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한듯, 조금도 놀란 기색 없이 곧바로 책상에 가 앉았다.



“거기서 뭐하고 서 있어요?”



현관에서 멀뚱거리는 실비아를 향해 펠릭스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 제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말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실비아? 펠릭스가 승리한다면, 제이콥의 일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그냥 하신 말씀 아니었어요? 그냥······.”



“나는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아이작은 실비아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실비아가 펠릭스의 옆자리에 가볍게 앉자, 아이작은 갑자기 품 속에서 약병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것은 아이작이 만들어 낸 또 한 병의 엘릭서였다.



“이게 뭔지 알겠느냐?”



“엘릭서 아닌가요?”



아이작은 웃으며 실비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엘릭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엘릭서 였던 무언가지.”



아이작은 병의 뚜껑을 열고 엘릭서를 책상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책상에서 자그마한 새 가지와 새순이 돋아나다가, 금새 시들어 죽어버렸다.



“펠릭스. 오늘 네가 한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느냐?”



“네. 물론.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너는 오늘, 하나의 약과 그 약의 역사를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엘릭서에 얽힌 많은 신화와 전설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엘릭서를 찾던 수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엘릭서를 배합하기 위해 노력해온 무수히 많은 선배 연금술사들을 모조리 실패자로 만들어 버렸다. 알고 있느냐?”



“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까지 나를 이기고 싶었느냐, 펠릭스?”



“시간이 없거든요. 곧, 겨울이 다가옵니다. 저도 시간만 충분했다면 이런 방법은 안 썼겠죠.”



아이작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품 속에서 또 하나의 약병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펠릭스가 만든 것과 마찬가지의, 무색무취무미의 약이었다.



“이것이, 진짜 엘릭서다. 그리고, 이것은 가짜 엘릭서고.”



아이작은 엘릭서가 담겨있던 병의 바닥에 살짝 고인 찌꺼기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 펠릭스. 가짜가 진짜를 능가할 수는 없는 법. 너를 최고의 연금술사로 인정해주마. 그에 걸맞는 예우를 해 주겠다.”



“제이콥에 관한 일. 전부 말해 주십시오.”



펠릭스는 기다렸다는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이냐?”



“기억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만큼. 무리해서 캐내지는 않겠습니다.”



“좋다. 잘 알겠다 펠릭스. 그리고, 실비아.”



아이작은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채 불안한 눈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실비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네!”



“긴장하지 말거라. 듣기 싫다면, 도중에 자리를 나가도 상관없다.”



“아, 네. 알겠어요.”



“그렇지만, 만약에라도 말이다. 네가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로 했다면, 증인이 되어주려무나.”



“증인이요?”



아이작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증인. 과거에 일어난 어떤 무시무시한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 되어다오. 물론, 네가 원한다면 말이다.”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알려주마. 제이콥에 관하여.”



연금술사들의 대스승 아이작이 소리없는 한숨을 내뱉어서일까. 책상 위를 밝히던 촛불은 금방이라도 꺼져버릴듯 위태롭게 일렁이며 펠릭스와 아이작의 얼굴이 기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제이콥은 내가 여행 도중 만난 소년이었다. 그는 남작 가문의 후예였는데, 그의 가문은 이미 세를 잃고 기울어 가고 있었지.”



아이작이 입을 열고 말소리를 뱉을 때마다 촛불이 일렁거렸다.



“마침 그 마을에 가벼운 전염병이 돌고 있어서, 내가 조금 도와주었다. 거기서 제이콥을 만났다. 아직 어린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며 병상을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구나.”



“쓸데없는 감상에 젖지 마십시오, 대스승님. 나는 그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들으려던 것은 아니니까.”



“펠릭스. 참을성이 없구나. 벌써 백 년도 넘은 세월을 살아온 내게, 추억에 잠길 잠깐의 여유조차 허락할 수 없는 거냐?”



펠릭스는 못마땅한 눈으로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러자 다시 아이작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착한 아이였다. 그리고 머리도 똑똑했지. 내가 한 번 말하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으며, 가르쳐 준 것은 바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똑똑한 머리만큼이나 착한 성품을 가진 아이기도 했다. 사람들을 돕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며 당당하게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던 그런 아이였지.



나는 제이콥이 꽤 마음에 들었다. 마침 또 한 세대의 연금술사들을 제자로 길러내고 잠시 휴식할 겸 여행을 하던 도중이었는데, 제이콥이라면 이대로 바로 제자로 들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제이콥이 먼저 내게 물어왔다. 자기를 가르쳐 달라고. 연금술사로 만들어 달라고. 허울뿐인 귀족의 명예나 재산에는 더는 관심이 없다면서. 그래서 제이콥을 데리고 숲으로 돌아와 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제이콥은 빨리 배우더구나. 내가 그때까지 가르쳐 온 제자들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제이콥은 순식간에 내가 가르쳐준 모든 지식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사람들을 도우러 숲 근처를 돌아다녔고. 나는 멀찌감치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게 즐거웠다. 하지만······.”



아이작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범재일 뿐, 천재는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 하지만 제이콥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천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 모든 비극의 자그마한 씨앗이 되고 말았다. 제이콥은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나와 같은 경지에 이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



“어째서요? 그렇게 머리가 좋았다면서요?”



실비아가 이야기 도중에 이해할 수 없다는듯 끼어들었다.



“용기가 부족하거나, 또는 상상력이 모자랐겠지. 제이콥은 아주 뛰어났지만, 규칙과 틀에서 조금도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그가 만드는 약은 여태까지 존재한 것중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법이다. 책에 적혀 있되 적히지 않은 모호한 지식.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천부적인 영감. 귓가에서 진리를 속삭여 주는 정령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 제이콥은 그 모든 것들에게 전혀 선택받지 못했으며, 또한 스스로도 그것들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계속 하시지요, 대스승님.”



아이작은 잠시 불편한듯 헛기침을 했다.



“그래, 그때까지 제이콥은 괜찮았다. 어쨌든, 제이콥은 아주 뛰어난 연금술사로 성장하여 나는 그를 내 수제자로 삼아 다음 세대의 연금술사들을 그의 손에 맡겨보기로 했다. 숲을 제이콥에게 맡겨두고 나는 여행을 다니다가 연금술사들의 새싹을 몇 명 찾아 돌아왔다. 게일, 노리스, 듀프, 버크, 제인, 첼시, 트로이, 해리어. 그들을 숲으로 데려와 제이콥에게 가르치도록 했다.



“몇 명이 모자라네요.”



“린은 나중에 듀프가 데려왔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사창가에서 우연히 찾았다고 하더구나. 카야는 자기가 숲으로 찾아왔고. 재미난 우연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카야를 제자로 들이기로 했다. 메를린은 마녀의 후손이라는 입장을 고려해서 내가 직접 길렀고.”



“펠릭스는요?”



아이작은 실비아의 물음을 못들은체 하며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어갔다.



“그 때까지는, 모든 것이 괜찮았다. 노리스가 위험천만한 약을 만들어 산짐승들을 잡아 대도, 메를린이 제이콥과 맞먹을 재능을 보여주어도. 도중에 난입하게된 카야와 린에 대해서도 제이콥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들에게 특별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한 명의 훌륭한 연금술사로 길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펠릭스가 오고 나서부터 제이콥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실비아는 펠릭스를 힐끗 돌아보았다. 정작, 그 이야기의 당사자인 그는 얼굴 위에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펠릭스는 누가봐도 분명한 천재였다. 제이콥이 들인 시간의 절반조차 들이지 않고, 펠릭스는 그동안 연금술사들이 쌓아온 모든 지식에 통달해버렸다.



게다가, 펠릭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감히 오만하게 책에 적혀있지 않은 새로운 약을 만들려 달려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약도 그는 척척 만들어 내는 데다가, 뻔뻔스레 죽음의 약을 만들기 위해 연금술사가 되었다고 자신의 포부를 당당히 밝히기까지. 엘릭서를 만들어 내는 나의 수제자인, 사람들을 돕는 것을 업으로 삼겠다 다짐한 제이콥에게는, 펠릭스는 아주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제이콥은 펠릭스를 싫어했고, 곧 그는 펠릭스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제이콥은 펠릭스를 두려워했다. 언젠가, 펠릭스가 자신을 뛰어넘을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다만, 그게 언제가 될지 그 차이가 있을 뿐,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으면, 스승에겐 좋은 일 아닌가요? 그만큼 자기가 잘 가르쳤다는 뜻이잖아요.”



“제이콥은 펠릭스를 단 한번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펠릭스는 제이콥이 가르쳐 주기 전에, 이미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 펠릭스는 도둑처럼 오두막에 숨어들어 책을 훔쳐 읽고 지식을 쌓아갔다. 아니면 숲을 거쳐가는 다른 연금술사들을 붙잡고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펠릭스는 제이콥보다 한 발 앞서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조차도 제이콥이 보기에는 두려운 일일 터였다. 제이콥은 위대한 스승이 내려준 위대한 지식에 기대어 겨우 지식을 깨우쳤는데, 펠릭스는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혼자서 그 모든것을 깨달았으니까. 심지어 펠릭스는 제이콥보다 이른 나이에 나와 같은 경지에 오르려했다.”



이제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두막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과거를 말하는 아이작의 어두운 목소리 뿐이었다.



“제이콥의 열등감이 점점 더 커져갔다. 그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천재라고 착각했던 범재의 얄팍한 꿈이, 진짜 천재를 만나 산산히 부서져가고 있었다. 평생을 사실이라고 믿어온 자신의 모습에 금이 갈라지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아이작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느릿하게 눈을 한번 깜빡였다.



“그 때도, 이런 시기였다. 연례 연금술사 교류회를 바로 앞둔 때였지. 제이콥은 내게 연금술사들을 부탁한다 말을 남기고 숲 속으로 잠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숲 속에서 붉은 가루 병이 돌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겁니까?”



펠릭스는 드디어 원수를 찾아낸 사람처럼 눈을 희번득하게 빛냈다.



“알고 싶다면, 제이콥을 찾아가거라 펠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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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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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3화 21.12.18 28 1 24쪽
142 142화 21.12.17 30 1 23쪽
141 141화 21.12.17 24 1 22쪽
» 140화 21.12.16 27 1 23쪽
139 139화 21.12.16 23 1 29쪽
138 138화 21.12.15 26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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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136화 21.12.14 28 1 25쪽
135 135화 21.12.14 24 1 22쪽
134 134화 21.12.13 28 1 23쪽
133 133화 21.12.13 23 1 21쪽
132 132화 21.12.12 28 1 24쪽
131 131화 21.12.12 21 1 21쪽
130 130화 21.12.11 28 1 22쪽
129 129화 21.12.11 20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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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4화 21.12.08 25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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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2화 21.12.07 30 1 24쪽
121 121화 21.12.07 25 1 24쪽
120 120화 21.12.06 28 1 21쪽
119 119화 21.12.06 22 1 21쪽
118 118화 21.12.05 22 1 23쪽
117 117화 21.12.05 18 1 21쪽
116 116화 21.12.04 22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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