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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정의 고로케

용사를 동경하는 마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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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정
작품등록일 :
2023.04.1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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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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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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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8

DUMMY

“그럼··· 마지막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만···.”


학생 기자의 얼굴에는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까지의 질문- ‘서로 다른 종족들을 마족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는 비결은?’이나 ‘마법사로서의 능력이 조직 경영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이번 질문도 그 결을 벗어나는 것은 아닐 텐데.


“어떤 질문이든 괜찮다. 편하게 말해보거라.”


나는 최대한 편한 자세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동시에 상반신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세구연>의 소장으로서 초짜 인터뷰어를 맞이할 때면 종종 사용하던 스킬로, ‘나는 지금 심리적으로 매우 편안한 상태이며 당신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라는 의미의 제스쳐였다.


“그··· 그러면,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도 ‘수지’라고 쓰여 있는 명찰을 목에 건 학생 기자의 눈동자에서 번뜩임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연구에 몰입한 상태의 연화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강력한 열정과 지성이 섞여 뿜어져나오는 날카로운 빛이었다.

그리운 눈빛을 한 채로, 수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물었다.


“마법에 적성이 없는 그림자족으로서, 대체 어떻게 대마법사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으셨던 겁니까?”


나는 그제야 마법학원의 두꺼운 로브 교복으로 가려져 있는 그녀의 종족에 대한 사실을 눈치챘다. 인터뷰 내내 정열적인 태도로 질문을 쏟아내고 빠른 속도로 내 답변을 수첩에 휘갈겨 쓰던 학생은, 바로 고블린이었던 것이다.

그림자족만큼은 아니지만, 만만치 않게 마력 적응력이 낮은 고블린. 심지어 그림자족과는 달리 신체적으로 강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마족의 역사에서 아직까지 단 한 명의 사천왕도 배출하지 못한 종족. 그런 선천적인 불리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싸움에 있어서 가능한 수단은 모조리 동원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비열한 놈들’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린 종족이 바로 고블린인 것이다.


‘마왕성의 마법학원은 마족 중에서도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자들만을 모아 훈련시키는 엘리트 교육기관이었지. 그런 곳에 고블린 학생이 입학했다니.’


원작에서는 ‘마왕성 깊숙한 지하에 그런 시설이 있다더라’라는 짧은 언급만 나오고 정작 직접 등장하지는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던 맥거핀 중 하나였는데, 이런 식으로 그곳의 학생을 만나보게 될 줄이야.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역으로 물어보겠는데, 그럼 수지 학생 본인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는가?”

“···예?”

“그대가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 말이야. 내가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선택하고, 내가 화를 낼까봐 걱정하면서도 결국 질문을 꺼내게 만든 그 고민. 그걸 먼저 알려줘야 나도 그대에게 필요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군.”

“···.”


입을 연신 뻥긋거리는 모습이, 쉽게 말을 꺼내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학창 시절을 되돌이켜 보면, 나는 비전이라든지 장래희망 같은 것을 확실히 정해놓고 그 목표를 위해 학업에 정진하는 학생 같은 게 아니었다. 머리가 대단히 좋아서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 타입도 아니었고, 선생님이 하는 말을 단 한 문장도 빼놓지 않고 노트가 찢어져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필기에 열중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사실은··· 최근 들어서 너무 괴롭습니다. 노력해도 노력해도 발전은 눈에 보이지 않고,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으니 어느 순간 돌이켜보면 성장해 있을 거라는 말을 믿고 계속하고는 있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 어느샌가 저 멀리 앞서나가 있으니까요.”


재능이 없는 사람이 전문적인 일에 종사하고자 할 경우 보통 그녀와 같은 길을 걷다 결국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게 되곤 한다.

어린 시절에는 시도한 사람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크니 성취감을 쉽게 획득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에는 자신과 같은 수준의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 남게 되니 점점 우월감보다는 열등감이 비대해져가고, 결국 그 열등감에 짓눌려 도주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천재는 노력하지 않기에 결국 뒤처진다’, ‘결국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승리자’ 같은 격언들이 많지만, 현실은 천재들이 뼈를 깎는 노력까지 하기에 범재는 그들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물론 현실이 냉혹하다고 해도 그것과는 별개로 ‘보통의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 자체는 꽤 있다.


“마력 적성이 없어도 대마법사의 길을 성취해내신 마왕님께서 계시니 지금까지는 마왕님을 목표로 삼아 계속 정진해왔는데, 아무래도 제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계속 들어서··· 불경한 물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답을 꼭 구하고 싶었습니다.”


제일 쉬운 방법은, 롤 모델을 정하고 그 롤 모델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다.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경외감을 느낄 정도로 저 멀리 있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언젠가는 닿고 말겠다는 꿈을 꾸는 것이 훨씬 나으니까.

세구연 시절에도 의외로 나를 롤 모델로 삼은 학생들이 있어서, 종종 학생 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받곤 했었다.


‘뭐,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적었기도 했지. 뉴스는 항상 신인류 관련 내용으로만 도배되었었고.’


그러나 롤 모델을 쫓아가는 것만큼 위험한 방법도 없다. 이미 땅에 묻혀 위인전으로만 그 이야기가 전해지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살아 있는 사람은 산 정상에 꽂혀 있는 깃발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만의 하나의 얘기지만, 내가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면 그대의 목표는 어떻게 되는 건가?”

“···그건, 무, 아니,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 죄송합니다.”

“그러면 지금 한 번 생각해서 답해보게. 이를테면··· 내가 사실은 희생해서는 안 되는 걸 희생한 대가로 마법을 구사하다가 결국 그 반동으로 어느 순간 추락하고 말게 되었다고 가정하고, 그 때에 그대는 어떻게 행동할지를 말이야.”


그러므로 좀 더 안전한 방법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미래 모습 또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그를 위해 정진하는 것이다. 나로 예를 들자면··· 언젠가 신인류의 폭거를 막아내고 세상에 평화를 되찾아올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겠고, 수지 학생을 예로 들자면 대마법사의 경지를 이뤄내고 모든 마력을 자유자재로 운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겠지.


“···그건 정말로, 괴로운 일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진 않다고, 지금 생각했습니다.”

“어째서지?”

“마법이 좋으니까요. 괴롭지만, 정말로 괴롭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니까요!”

“가까울지 멀지 모르는 미래에, 결국 그대는 영원히 목표로 삼았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기들이 각자 재능을 꽃피우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앞서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만이 잘못된 길에 들어와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감과 자괴감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평생을 바칠 수 있다고 다짐할 정도로 좋아했던 마법이,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에 마력이 흐르는 것만 느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싫은 기억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


수지의 두 어깨가 움츠러들고, 고개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무겁게 아래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목표를 정하고 달려나가는 것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로는 밤을 새고, 때로는 끼니조차도 거르며, 때로는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노력하고 또 노력했음에도 결국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열정으로 불태웠던 그 시간들은 결과에 의해 무의미하다고 결정되어버리는 것인가?


“그대는 마법을 좋아한다고 말했지.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괴로움이 뒤따르는가? 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그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데 괴로움이 따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도 괴로움이 따른다면, 그건 그대가 잘못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수없이 쓰러졌고, 수없이 일으켜 세워졌다. 때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때로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목표를 향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건 내가 조직의 리더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조직을 이끌어나가고 조직 구성원들이 모두 한뜻으로 움직이게 하기위해서는 명확한 목표, 즉 산 정상에 꽂혀 있는 깃발을 손가락으로 명확하게 가리킬 필요가 있다. 각자가 가진 다른 생각과, 서로가 바라보는 것이 다른 데에서 발생하는 불만과 알력과 다툼을, 공동의 비전이라는 거대한 광채로 뒤덮어 눌러버리는 것에 그 의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개인의 삶에 있어서까지 그렇게 목표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그대에게 오늘을 살아갈 것을 제안한다.”

“오늘을, 살아간다···?”

“목표를 세우는 건 나쁘지 않아.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고, 달성하지 못하고에 따라 그대의 삶이, 노력하며 흘린 땀과 눈물이 부정될 필요는 없지. 그대가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 동안 하게 될 일만 바라보며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완벽하게 충만하며, 낭비되지도 무의미하지도 않은 하루를 살아낸 것이야.”


높은 산의 정상은 아무리 걷고 걸어도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만큼 멀다.

그러니 산을 오를 때는 정상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발밑만 보면서 걸어야 한다. 지금 걷고 있는 이 발걸음에 집중하면서, 한 발짝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딛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어느 순간, 정상에 도달해 있을 지도 모르니까.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되, 아직 먼 곳에 있는 목표가 아니라 오늘 하루에 집중해서 살아가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근심으로 흐려졌던 수지 학생의 눈에 깨달음의 번뜩임이 돌아오는 것을 보며, 나는 죄책감이 심장 근처 즈음의 혈관으로 스며드는 감각을 느꼈다. 그래도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꾸벅 인사를 한 뒤 집무실 바깥으로 걸어나가는 수지 학생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보니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지만.


‘하··· 현타가 좀 오는데.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한테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고 있는 걸까.’


종족의 특징인 작은 키를 최대한 감춰보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독 길쭉하고 커다란 모자의 꼭지가 흔들거리며 방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나는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말없이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마왕의 집무실은 정적으로 가득 찼다. 평소에는 세로테나 라 베치가 있기에 조용할 틈이 없지만, 오늘은 둘 다 마왕성 외부까지 보내두었기에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 하든, 목표만 보며 나아가든··· 인생은 원하는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 인생도 학창 시절 막연하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라는 꿈을 꿨던 것과는 꽤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이 정도라도 해낼 수 있었던 건 제일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하이드를 만났던 덕분인데··· 설마하니 그 대적자에 빙의하는 신세가 될 줄이야.’


운명 같은 건 믿지 않는 주의지만, 이 정도면 정말 하이드와 나는 보이지 않는 빨간 실 같은 걸로 묶여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뭐, 일방적으로 나만 수혜를 입는 관계이기는 하다만.

그런 의미에서도 지금 나의 목표는 확실하다. 하이드를, 이 세계에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냈던 사람들을, 활자로 만났을 때부터 동경하고 감탄하며 용기를 받았던 주인공들을, 그리고 이곳에 와서야 만날 수 있었던 인연들을 모두 헤피 엔딩으로 이끌어가는 것.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도 마음대로 이끌 수 없는 것이 나라는 인간의 한계이니.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순간순간을 있는 힘껏 발버둥쳐 볼 작정이다.


<보고입니다, 주군.>


탁자 위의 수정구가 은은한 불빛을 뿜더니, 이윽고 라 베치의 얼굴이 구슬 표면에 한가득 떠올랐다. 그 뒤에서 세로테의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서로 다른 곳으로 임무를 보냈던 두 사람이 합류한 모양이었다.


“그래, 말해줘.”


<주군의 예상대로입니다. 용사 일행은 마왕성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서부 왕국도 마왕님이 말한대로야~! 번쩍번쩍한 갑옷을 입은 녀석들이 말을 타고 오고 있어!>


“···고맙군, 두 사람 다.”


각오하긴 했지만, 역시 인생은 원하는대로 흘러가주지 않는구나.



작가의말

이번 화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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