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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정의 고로케

용사를 동경하는 마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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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정
작품등록일 :
2023.04.15 13:36
최근연재일 :
2024.04.08 18:25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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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8
추천수 :
63
글자수 :
260,684

작성
23.06.2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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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D-36

DUMMY

"...물."


애타게 목놓아 외친들 뙤약볕이 내리쬐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물이 튀어나올리는 없다.

불꽃이야 손가락을 튕기는 정도의 마찰력과 연료만 있으면 만들어낼 수 있지만, 습기라고는 한 점도 감돌지 않는 사막의 공기에서 물을 뽑아낸다는 건 제아무리 대마법사라도 불가능한 일.

정신을 집중한다면 탐색 마법으로 이 드넓은 사막 어딘가에는 있을 수원지를 찾아낼 수 있겠으나, 수분 부족으로 멍해진 머리로는 시도해볼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자, 아~ 하세요.”

“으어··· 헙!”


하마터면 상냥한 목소리가 시키는대로 입을 벌리고 물을 받아마실 뻔했던 코다는 황급히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바람에 몇 방울의 물이 그녀의 턱을 타고 아래로 흘려내렸고, 그녀는 그 물 몇 방울이라도 손가락으로 훑어 먹고 싶은 욕망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렇게 고집 부리지 말고~ 그냥 딱 한 모금만 마셔봐요?”

“절대··· 안 돼. 차라리, 탈수로··· 죽고 말지.”


루드밀라의 유혹적인 손짓에도 코다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꾸만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아, 어떡해요 루르! 이러다가 진짜 코다 씨가 죽게 생겼어요!”

“그냥 한 모금 마시면 편해질 텐데, 괜히 고집 부려봤자 자기만 고생이지.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 ···!”


루르가 툭툭 던지는 말에 다시 한 번 코다의 가슴에서 응어리진 분노가 끓어올라 고함소리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입술부터 목구멍 안쪽까지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버린 탓에 그녀는 바닥이 드러난 호수의 잉어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저기, 코다 씨··· 그러지 말고 입술만이라도 축여요. 진짜 그러다 죽으면 어떡해요···”


마음씨 고운 루드밀라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코다는 힘이 완전히 빠졌는지 상반신을 아래로 푹 꺾은 채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루르, 이러다가 정말-”


저만치 떨어져 느긋하게 걷고 있는 루르를 향해 고개를 휙 돌리며 외친 순간, 반짝이는 눈물 한 방울이 루드밀라의 눈 위에서 튀어올라, 힘없이 늘어진 코다의 손가락 위에 떨어졌다.


츕.


“...?”


이상한 소리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내린 루드밀라의 눈에 보인 것은, 방금까지 죽은 생선처럼 빛을 잃었던 두 눈을 별처럼 반짝이고 있는 코다의 얼굴이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구나.”


손가락에 떨어진 그 작은 눈물 방울로 입술을 적신 코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루드밀라를 향해 팔을 뻗었다.

서서히, 그러나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그 손아귀에 루드밀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이야, 진작 이렇게 할 걸! 나도 이제 늙었나봐~ 머리가 안 돌아간다니까? ”


‘피의 결속.’

본래는 피를 흘리는 부상자에게 긴급히 혈액을 공급할 목적으로 개발된, 두 사람의 혈액을 공유하는 마법이었지만 코다는 그것을 살짝 변형하여 루드밀라의 신체 수분을 자신과 공유하는 용도로 이용한 것이었다.

물기가 반짝반짝 감도는 상쾌한 얼굴로 기지개를 펴는 코다의 옆에서, 루드밀라는 울상을 지은 채 물병에 꽂은 빨대를 열심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흑흑··· 하지만 이게 루르한테 물을 받는거랑 뭐가 다른 거예요? 제 몸을 거쳐서라는 거 하나만-”

“밀라야, 그게 무슨 소리니? 나는 네 체액을 공유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물이 아니라.”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하도다. 신의 권능으로 솟아난 오아시스의 물은 마실 수 없지만, 그 물을 마신 자의 피는 받을 수 있다니.”


저 뒤에서 루르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코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꿋꿋이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말할 시간이 있으면 빨리 물이나 마셔. 두 명분의 땀을 흘린 만큼 보충하려면 빨대가 아니라 물통째로 들이켜도 모자라다고?”

“후잉···”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리면서도 열심히 빨대를 쪽쪽 빨아대는 루드밀라를 뒤로 하고, 코다는 힘찬 발걸음으로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까부터 이쪽은 본 체도 않고, 앞만 보고 걸어나가는 얄미운 녀석을 향해서.


“야, 야, 배신자 새끼야. 혼자 배터지게 마셔대니까 좋디?”


팔꿈치로 하이드의 옆구리를 툭툭 쳐대며 시비조로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앙? 뭐야, 평소에는 안 시키던 말도 하던 놈이 왜 또 조용해? 물에 뭐 이상한 거라도 들어간-”

“도착했다.”

“우와악!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


하이드가 갑자기 발을 멈춰서는 바람에 그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한 코다는, 황급히 상체를 옆으로 틀며 그의 옆구리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오오, 이게 말로만 듣던-”

“그래.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그 입구다.”


두 사람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웬만한 성 한 채는 통째로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 보이는 모래 구덩이였다. 구덩이의 한가운데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어두운 구멍이 있었는데, 사방에서 내려온 유사가 끝없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정말 여기에 세상의 비밀들이 숨겨져 있다는 거지?”

“그래. 점술로도 엿볼 수 없는, 천상이 아닌 지저의 비밀들이 숨겨져 있지. 여기라면 세상의 중심이 대체 어디인가에 대한 지식도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이곳 자체가 세상의 중심일수도 있고, 라고 그는 짧게 덧붙였다.


“...넌 참, 가끔 보면 대체 어떻게 이런 걸 알지 싶은 것도 알고 있단 말야?”

“용사의 기본 소양이지.”


가볍게 농담을 던진 뒤, 하이드는 무릎을 살짝 굽히며 능숙한 서퍼처럼 유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 코다는 약간은 불안하게 좌우로 흔들리며 모래 구덩이 아래로 내려갔다.


“와아~ 재미있겠어요. 얼른 가요, 루르!”


두 사람에 이어, 물 한 통을 다 비운 루드밀라가 치렁치렁한 사제복을 두 손으로 걷어올린 채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모래 구덩이로 뛰어들었고,


“...”


마지막으로, 루르가 날개를 활짝 편 채 구덩이 아래로 활강을 시작했다.


“아하하, 재밌다!”


하늘을 날던 그의 시선이 흘긋, 사막의 모래바람에 머리칼을 뒤로 흩날리며 깔깔 웃는 루드밀라의 얼굴로 향했다.

이어서 그 시선은 이미 구멍의 바로 앞까지 내려가고 있는 두 사람으로 향했고, 이윽고 활짝 펴져 있던 그의 날개가 슬쩍 접혔다.

새처럼 자유롭게 날던 천사의 육체가 햇빛으로 반짝이는 유사 위로 우아하게 내려오더니-


“앗 뜨거!!!”


맨발에 느껴지는 상상도 못할 뜨거움에, 폴짝 뛰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하아~.”


마법으로 지저의 어둠을 밝히며 앞서 걸어가던 코다가 긴 한숨을 내쉬자, 그녀의 바로 뒤에서 걷고 있던 하이드가 곧장 반응해왔다.


“그렇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고 땅이 꺼져주지는 않아.”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아오, 받아줄 기분 아니니까 여물어라 진짜···”


그녀의 날선 받아침은 고요로 가득 찬 어둠 속을 생각보다 크게 울려, 저만치에서 루르와 느긋하게 걷고 있던 루드밀라까지 종종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요, 코다 씨?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요? 안마라도 해줄까요?”

“너 때문이야, 너!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진짜···”

“에엥? 물은 계속 마셨는데···?”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드밀라든, 계속 농담을 던질 타이밍만 엿보는 하이드든 어느 쪽을 보건 간에 복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은 매한가지였기에, 코다는 입을 꾹 다물고 다시 앞만 보며 걸어가는 걸 선택했다.


대체 어떻게 모두 저리 태평한 걸까.

저렇게 위험한 인물이 뒤에서 태연하게 걷거나 날면서 따라오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뒤통수가 따끔따끔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건지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이유는 알고 있어. 로로아처럼 나름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사이도 아니니까. 이 충격과 마음이 찢어질 듯한 고통은 오롯이 나 한 명만의 것이라는 건, 애초부터 잘 알고 있었다고.’


그렇다 해도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이 자리잡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녀는 그 서운함을 한껏 두 눈에 담아,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는 하이드를 슬쩍 흘겨보았다.


‘적어도 너는 그러지 말아야지. 모든 일이 잘 될 것처럼, 앞날에 희망이 있을 것처럼 떠버리떠버리 잘도 말로 꼬셔놓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렇게 태연한 게 말이 돼?’


그래놓고는 뻔뻔하게 그 죽음의 원흉을 동료로 받아들이기까지 하고.

정말이지 사람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녀석이다.

물론 이런 말을 입에 올려봤자 돌아올 말은 뻔하다.


‘보나마자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런 결과라면 원래부터 이럴 예정이었던 거라고,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체념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겠지.’


늘 산이건 바다건 전부 부숴버릴 기세로 검 한 자루만 믿고 달려드는 하이드지만, 그렇게 노력한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쉽게 시무룩해져버리곤 하는 것 또한 그의 모습이었다.


‘그 얼굴이 어떻게 봐도 시무룩함이 아니라 분노에 가득 차 보여서, 사정을 아는 나까지 벌벌 떨게 만든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답지 않게 지난날의 실패를 곱씹고 있기라도 한 건지, 슬쩍 돌아본 하이드의 얼굴에 노기가 은은히 어려 있는 것을 그녀는 눈치챌 수 있었다.


“으흑흑··· 슬퍼요. 저는 진짜로 계속, 배터질 때까지 물을 마셨는데···”


별것도 아닌 일로 눈물을 질질 짜는 루드밀라의 모습도 보였다.


‘뭐야, 짜증나게. 지금까지 한두 번 고생한 것도 아니면서 왜 저 정도 가지고 우거지상을-’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걷잡을 수 없이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자기 자신까지.


“함정이다.”


그녀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하이드가 짧게 중얼거렸다.

이어서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 나쁘면서도 맑은 목소리가 귓구멍을 울렸다.


“마음 속의 어둠을 증폭시키는 마법, 아니 권능이로구나. 어디··· 그대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칙을 이겨낼 수 있나, 한 번 보도록 할까?”


한낱 인간 따위가 권능의 영향을 이겨낼 수 있을 리 없다.

마왕을 축복하는 악신의 권능이야 충분히 파악을 하고 있고 애초에 들어가기 전에 대비를 하지만.


‘이런 들어본 적도 없는, 정체 모를 권능 따위··· 대비할 수 있을 리가 없··· 잖아···’


거품처럼 순식간에 부풀어오른 감정들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을 느끼며, 파도처럼 온몸을 덮치는 분노와 허무감과 슬픔과 비통함에 압도당해, 코다는 비틀거리다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역시 어쩔 수 없나, 인간이란 이다지도···”


비웃음처럼 어둠 속에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루르의 투명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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