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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정의 고로케

용사를 동경하는 마왕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토끼정
작품등록일 :
2023.04.15 13:36
최근연재일 :
2024.04.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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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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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0,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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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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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1

DUMMY

프로윈은 원작 소설이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직전에야 등장하는, 최후반부 등장인물이다. 250화짜리 소설의 200화 즈음에나 일행에 합류하는 캐릭터이다보니, 독자 입장에선 정이고 나발이고 줄 겨를 자체가 없었다.

작가도 그걸 염두에 두었는지 프로윈의 심리 묘사에는 꽤 공을 들인 편이었다. 그가 무슨 마음으로 하이드를 따라 나서겠다고 성왕에게 청을 했는지, 용사 일행과 함께 끔찍한 지옥도를 헤쳐나가며 어떤 걸 눈에 담고 어떤 걸 가슴에 담았는지.


[아니 작가님, 이런 대머리 중년남캐 심리 묘사에 들일 노력의 절반만 코다한테도 좀 들여주시지...]


마지막의 마지막에라도 하이드와 코다의 러브라인에 대한 묘사를 보고 싶었던 마음에, 250화 내내 철옹성처럼 굳건히 지속되는 남캐 위주의 묘사에 볼멘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ㄴ감사합니다. 남은 분량 동안 최선을 다해 써 볼게요.]


'작가님으로부터 그런 답글이 달려서, 한밤중에 말 그대로 기함을 하고 스마트폰을 얼굴에 떨어뜨렸었지...'


물론 그 이후에도 최종화까지 코다의 심리가 묘사되는 일은 없었지만.


"불안하군... 과연 나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가."

"선택을 하기 전에도 불안했잖아? 단지 불안의 이유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에서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로 바뀐 것뿐. 넌 단 한 번도 불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지."


불안.

그렇다. 이것이 프로윈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이다.


반짝거리는 대머리, 곡도의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은 콧수염,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에는 수많은 전투에서 입은 훈장과도 같은 상처투성이.

이런 겉으로만 보이는 특징들로는 상남자 중의 상남자가 가진 특징을 죄다 모아놓은 것 같은 인물인데, 정작 내면은 끝없는 불안으로 자기 자신을 좀먹고 있다니.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에도 있을 법한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


"나를 가르치려들지 마라, 악의 우두머리 주제에."

"그게 마왕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제 주인을 배신한 자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끄응."


하지만 덕분에 프로윈의 행동 원리나 심리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 자신도 평생 불안을 달고 살았던 사람, 그야말로 불안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기에.


중요한 발표나 인터뷰 같은 자리에서야 잠시 동안 가면을 쓰고 나 자신을 감출 수 있었지만,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연구소 직원들에게까지 24시간 100% 완벽하게 페르소나를 쓰고 대할 수는 없는 노릇.


'하하! 잘 될 거라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사시더니, 지금 소장님 얼굴 완전 좀비 같아 보이는 거 아세요?'


'어휴... 넌 그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버릇을 좀 버려. 대학교 때 조별과제 할 때부터 맨날 걱정투성이더니 아직까지도 못 고치네. 이제까지 잘해왔잖아? 자신감 좀 가지고, 널 믿는 우리들도 좀 믿고 그래라.'


특히나 눈치가 좋은 몇몇 연구원들은, 나와 단 둘이 있게 되면 으레 그런 잔소리를 늘어놓고는 했다.


'하지만... 평생 가슴 한구석에 불안을 달고 살다보면 오히려 불안한 게 더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고, 불안이 사라지면 오히려 그게 불안해진단 말이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에도, 조금만 옆을 돌아보면 불안은 늘 내 그림자 속에 쪼그려앉은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계속 바라보다보면, 그 시선만으로도 언젠가는 내 정신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수 있다는 듯이.


“변화를 시도하는 건 늘 걱정되는 일이지.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 네가 이곳에 도달하게 된 것도 결국 그 걱정과 불안을 이겨내고 작은 변화를 계속 쌓아온 덕분일 거다. 지금의 방어술로 적의 공격을 막기 어렵다면 손에 익은 동작에 약간의 변화를 줘 보고, 지금 쓰는 무기가 자기 방식과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면 길이가 약간 다른 무기로 바꿔보고. 그런 변화들은 시도했을 때는,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졌잖아? 그렇다고 한다면··· 큰 변화에도 얼마든지 도전해볼만 한 거지.”

“그런 말은··· 처음 듣는군. 다들 나한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했는데.”

“하지만 넌 욕심쟁이잖아, 프로윈.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더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지금 주어진 역할을 최대한 완벽하게 해내고 싶고, 할 수 있다면 더 큰 역할을 맡고 싶다고 생각하지. 늘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이 자리에 나보다 더 걸맞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역설적이게도 더 큰 꿈을 꾸고 있지.”

“...이쯤 되면 네놈이 사실 나도 모르는 내 숨겨진 쌍둥이 형제라고 해도 믿겠군. 대체 어떻게 내 마음을 그리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거냐.”

“말했잖아?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랑한다니까.”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그 불안을 말을 통해서든 글을 통해서든 끄집어내서, 바로 보이는 눈앞에 두는 것. 항상 시야의 구석에 숨어서 그 크기를 실제보다 부풀리고 있던 불안의 실체를 정면에서 확인함으로써, 사실은 별것도 아닌 일이라는 걸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


“넌 충분히 해낼 수 있어, 프로윈. 이제까지 잘해 왔잖아. 자신감을 가지고, 주변의 널 믿는 사람들을 너도 한 번 믿어보라고.”


나는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이라, 내 곁의 사람들이 그래주었던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날 격려해주고, 응원해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려 노력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이 이야기의 끝에서는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그러니 그 대신, 나는 진심을 담아 바란다.


“잘 될 거야. 너도 나도, 그리고 그 친구들도 모두 최선을 다해서 이 이야기를 해피 엔딩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니까. 그 노력을 믿어보자고, 우리 같이.”


나와 같은 행운이 프로윈에게도 있기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들이, 그의 등을 받쳐주기를, 그의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박힌 불안의 가시를 빼내줄 사람들이, 언제나 그의 곁에 함께 해주기를.


“믿는다, 라···”


그 인연들이, 이 이야기의 끝에서 사라져버리지 않고 오래오래 함께 머물기를.


***


“흐으음··· 허어··· 오호라···”


5초 간격으로 서로 다른 감탄사를 연발하며, 성왕 루르에리트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위에서 봐도.”

“...”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는 성왕의 거리감이 약간은 부담스러웠지만, 하이드는 내색하지 않고 그 시선을 받아들였다.


“아래에서 봐도.”

“...”

“하하! 그대는 이다지도 재미있는 영혼을 품고 있었구나.”


성왕의 그러한 모습은, 지난 오십여 년간 그를 보필해왔던 ‘성왕의 오른눈’ 페릴리 추기경에게도 당혹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성하께서 저렇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신 것이 대체 얼마만이지? 전전대 용사에게도 저 정도의 관심을 보이시지는 않았는데···’


성왕의 권능으로 천 리 밖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그는, 권능을 십분 활용하여 성왕이 구류되어 있는 여관의 창문을 통해 용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고 있었다.


‘그 용사는 당대 제일 가는 미남이기라도 했지, 이번 용사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멧돼지 같은 놈일 뿐인데. 대체 왜 저렇게 관심을-’


순간, 얼마 전 참석했던 학회에서 모 추기경이 인간 심리에 대한 자기 나름의 여러 가지 분석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던 게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헉! 이건 설마, 그 인질이 납치범에게 심적 동조를 느낀다는, 그 뭐시기··· 증후군인가!?’


“혼자 호들갑 떨지 말고, 뭘 봤는지 어서 말을 해라.”


페릴리 경의 옆에서 무뚝뚝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꺼운 철가면 아래에 얼굴을 감추고 있음에도 몹시 기분이 불편해보이는 걸 누구라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온몸에서 기분나쁜 오라를 팍팍 풍기는, 성왕의 오른팔의 목소리였다.


‘싸가지 없는 놈. 마흔도 안 된 새파란 애송이가 감히 반말을 찍찍··· 네놈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나는 이미 성하께 이 권능을 하사 받았단 말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입에까지 옮기지는 않은 채, 페릴리 추기경은 다시 여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는 게 발각되는 즉시 성왕의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용사의 엄포로 인해,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여관의 방 하나에 성왕의 수족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인 상태였다.


“...엉?”


페릴리 추기경의 얼빠진 목소리에, 방안의 모든 수족들이 일제히 긴장한 듯 어깨를 움찔했다. 오직 한 명, 성왕의 오른팔만이 두 팔을 굳건히 팔짱 낀 채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토해낼 뿐이었다.


“어서 말해라. 뜸 들이지 말고.”

“그··· 그것이. 성하의··· 오, 루르에리트 맙소사.”

“대체 뭔데 그러십니까. 어서 제대로 설명을 해주십시오.”


참다 못한 ‘성왕의 입’도 그를 채근하고 나서자, 페릴리 추기경은 창문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서··· 성하의 입ㅅ··· 입술이. 용사의 이, 이마에···. 닿았, 닿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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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D-42 23.06.13 2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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