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남편이 받았다
(실존 인물, 단체, 사건등과는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강훈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건, 큰섬 주민들이 의도한 바가 전혀 아니었다.
아이의 존재 자체를 숨기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더군다나 기자, 언론이라면 이미 충분히 끔찍했다.
오보를 내고도 사과할 줄 모르고, 심지어 정정기사조차 제대로 내보내지 않는 무책임한 자들이었다.
진실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써대는 무성의한 자들이었다.
그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자들 때문에 큰섬은 살인짐승이 출몰하는 섬으로 오인을 받았다.
관광객들이 줄어들었고, 큰섬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어야 했다.
강훈을, 그 어린 아이를 사지로 밀어 넣은 저변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역시도 언론이 원흉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강훈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비솔나무가 큰섬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상학은 강훈의 사고 기사에서 실마리를 찾았노라 대답을 했다.
음식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파리들마냥, 바퀴새끼들마냥, 우르르 기자들이 큰섬으로 몰려왔다.
모두들 강훈과 인터뷰하기를 원했다.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멸종된 줄 알았던 비솔나무를 처음 발견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기사화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로는 아무래도 밋밋했던 모양이었다.
‘비솔나무 소년’이란 별명을 붙이더니, 기자들은 온갖 이야기들을 써댔다.
사실과는 무관한 창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미담 일색이었다.
그랬던 기사들이 자극적인 색채를 띠며 ~카더라 식으로 변한 건,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식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함부로 비솔나무를 만진 탓에, 부정을 탄 아이의 온 몸이 시커멓게 변해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비솔나무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큰섬 사람들이 아이를 살해해 제물로 바쳤다는 소문이 있다,....
경찰이 곧 수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믿을만한, 짐작되는, 추측 가능한, 의심해 볼 여지가 있는, 그러므로 사실일 것이다 식의 기사들이 남발했다.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대한민국 언론의 민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보였다..
다행히 사람들이 나서 주었다.
영물인 비솔나무를 찾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아닌가? 칭찬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비방과 모략질은 그만 멈춰라.
쓰레기 짓은 그만하라는 국민 여론에, 언론은 개망나니 짓을 조금은 자제하게 되었다.
딱 거기까지였다면, 큰섬 주민들로서는 좋았을 것이다.
비솔나무 소년이라 불리게 된 강훈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넘어, 그 마음을 전하는 행동으로까지 여론이 발전을 했다.
국민 성금 모금 운동이 그 중 하나였다.
"그럼 그동안 모은 국민성금은, 전달 안했어요?"
도지사의 까칠한 질문에 이장이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게.....”
파출소장이 대신 앞으로 나섰다.
“애 아빠가 받았습니다.”
이장이 흠칫 놀라며 파출소장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도지사의 눈에 들어왔다.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는 도지사의 시선을 이장이 알아챘다.
다시 확실하게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몰린 이장이, 다시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마, 맞습니다. 애 아빠가 아마, 아니, 받았습니다.”
“확실합니까, 그 말?”
“무, 물론입니다···.”
“그래요? ...그럼 갑시다.”
그 말을 끝으로 도지사가 앞장 서 걸어갔다.
파출소장이 얼른 뒤따라가며 길을 안내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다, 하릴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이장만이 붙박인 듯 움직일 줄을 몰랐다.
도지사를 안내해 가던 파출소장이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봤다.
김순경에게 대신 안내를 맡긴 파출소장이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다.
행여 도지사의 귀에 들어갈까 걱정하며 파출소장이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을 했다.
“뭐해요, 안 오고?”
“난.... 못 하겠어.”
그 사이 도지사 일행은 선착장 입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곁눈질로 그 모습을 확인한 파출소장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누군 좋아서 이래? 빨리 가자고! 어서!”
“난, 난 정말.....”
“똑똑히 말해두지만 우리가 이 상황을 만든 게 아니야. 이렇게 되라고 고사 지낸 사람 아무도 없어. 어쩌다 보니 일이....
빌어먹을! 이제 와 어쩌라고?”
“........”
“처음부터 그 돈 안 주려고 한 건가? 좀 진정되면 주려고 맡아놨던 거지. 그러니 아주 거짓말은 아닌 거고!
젠장, 알아서 해. 죽기밖에 더 하겠어? 다같이 한번 어디 죽어보자고!”
잡아먹을 듯 이장을 노려보던 파출소장이 홱 몸을 돌려, 도지사가 간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혼자 남겨진 이장의 눈에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파출소장의 말대로였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되돌이킬 수는 없게 되어 버렸다···.
잠시 후, 체념한 표정의 이장이 일행의 뒤를 따라갔다.
**
<회상3>
파출소장의 안내를 받으며 도지사가 강인기의 집으로 들어섰다.
파출소장의 눈짓에 부녀회장이 앞으로 나섰다.
"훈이 엄마, 집에 있지?"
부녀회장이 총총히 안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 후, 도지사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돌보지 않고 방치된 마당 위 평상과 장독대 위에 먼지가 뿌옇게 앉아있었다.
그 모습에 도지사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부녀회장이 방에서 나와 말을 했다.
"들어오세요"
도지사가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랐다.
희뿌옇게 먼지가 내려앉은 마루 위로,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도지사가 마루를 가로질렀다.
그 뒤를 따라가려는 도지사의 수행비서와 기자를 막아서는 김성수 순경이었다.
“두 분은 여기 계시죠. 환자분이고 여자분이시라···. 외지 분들이라 불편해하실 겁니다.”
그 말에 도지사가 뒤를 돌아봤다.
김성수를 위아래로 훑어 보는 도지사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그러나 딱히 별 말은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는 도지사였다.
비서와 기자는 결국 마당에 남았다.
파출소장과 부녀회장, 김성수에 이어 뒤늦게 온 이장까지 차례차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비서와 기자가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
<회상4>
병색 짙은 얼굴로 모연희가 이불을 덮고 앉아있었다.
그 앞에 도지사가 앉고, 파출소장과 이장, 부녀회장과 김성수는 나란히 뒤에 섰다.
“영부인께서 꼭 쾌차하시라는 말씀과 함께 이걸 보내셨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바닥에 내려 놓는 도지사였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 강인기의 아내는 그림처럼 앉아만 있을 뿐 반응이 없었다.
“언론을 통해 뉴스를 접하신 후, 대통령님 내외분께서 마음 깊이 아파하고 애도하신다 말씀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하루 속히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계신다는 말씀도 있으셨습니다.
남편께서 받으신 위로금도 다 그런 뜻에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막 한발을 걸쳐놓은 사람처럼 보이던 모연희였다.
그랬던 모연희가 스르르 도지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처음 보인 반응에 도지사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위로금?”
“네, 그렇습니다. 위로금 잘 받으셨죠?
남편께서 유용하게 쓰고 계신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습니다만......”
“·····남편?”
“네. 남편 분께서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돈을, 받았다, 고요.....남편이?”
띄엄띄엄 끊겨 나오는 모연희의 말이었다.
그런 모연희를 쳐다보며 살짝 인상을 쓰는 도지사였다.
방안에선 환자 특유의 들척지근하면서도 쉰 듯한 몸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핏기 하나 없는 파리한 낯빛에 볼이 폭 패일 정도로 앙상한데, 오직 눈 주위만이 열에 들떠 붉은 빛을 띠는 모습이 영 꺼림직했다.
애써 그런 감정을 숨기며 도지사가 사람들을 돌아봤다. 동의를 요구하는 얼굴이었다.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자, 도지사가 이번에는 표나게 인상을 쓰며 물었다.
“맞죠, 내 말?”
강인기 아내의 파리한 얼굴도 따라서 사람들을 향하였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도지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애 아빠가 돈 받았죠? 위로금? 아닙니까?”
더 이상은 침묵의 시간이 허용되지 않을 터였다.
이장은 결국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 되돌이킬 수 없는 일···.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
“네, ····받았습니다.”
의심을 깨끗이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삼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은 도지사였다.
남동쪽을 조심하라던 신년 운수가 퍼뜩 떠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방안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와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는 여자는 그만 상대하고 싶었다.
대충 매듭을 짓고 일어나자는 생각에, 도지사는 모연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했다.
“받았답니다, 남편 분께서, 위로금을!”
**
<회상5>
한밤중, 잠에서 깬 김성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내 역시 놀란 얼굴로 일어나 앉았다.
“무슨 소리야?”
그 말에 답이라도 하듯, 멀리서 절규하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악!
불길한 예감에 김성수가 몸을 떨며 말했다.
“당신은 나오지 말고 있어.”
방문을 열고 나가는 남편의 뒤에 대고, 아내가 역시 부르르 몸을 떨며 말을 했다.
“조심해, 여보!”
**
<회상6>
집 대문을 열고 나오는데, 다시 한번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앞집에서, 그리고 옆집에서도 홀린 듯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무슨 소리냐? 하고 서로 물었겠지만 아무도 섣불리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선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짐작되는 곳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덫에 빠진 사람들처럼,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큰섬 주민들이었다.
**
<회상7>
강인기의 집이었다. 그 집 앞에 큰섬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비통과 절망의 비명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서성일 뿐, 아무도 강인기의 집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파출소장과 김성수의 눈이 부딪쳤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강인기의 집 대문 안으로 한 발을 넣었다.
**
<회상8>
안방 문이 열려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서 강인기가 중얼중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쉴새 없이 앞뒤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은 그의 아내 모연희였다.
바닥에 축 늘어져 맥없이 흔들리고 있는 하얀 손, 절망적인 각도로 꺾여있는 고개, 파리한 목 위로 선명한 붉은 줄 자국까지, 죽은 것이 분명했다.
괜찮으냐고, 정신을 차리라고 막 입을 벌려 말하려던 김성수의 말은,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갇혀버렸다.
흐린 마루 불빛에 치료받지 않은 강인기의 오른쪽 눈이 시야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튀어나온 안구 위로 검붉은 피와 누런 고름이 말라붙어 끔찍했다.
성한 왼쪽 눈에 비하면 그래도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절망과 분노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왼쪽 눈, 그 눈은 조금씩 열리고 있는 지옥의 문인 듯 했다.
그 문 안쪽을 보게 되는 순간, 다시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지옥을 보고도 멀쩡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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