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꿈의 신약
(실존 인물, 단체, 사건등과는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시민단체 행동하는 사람들과 대표인 김종숙의 이름이 포털의 검색 순위 상위 대부분을 휩쓸었다.
<공익이란 이름의 도를 넘는 폭주> <시민단체, 우리 사회의 악(惡)이 되다!> <후원금 모집을 위해 선명성 경쟁으로 내몰린 시민단체> <일단 까고 보자? 아무 말 대잔치 하는 시민단체> <8,90년대식 옛 프레임에 갇혔다! 이제는 소멸해야 할 때>등등의 제목의 기사들에 접속자 수가 폭증을 했다.
경찰과 검찰에 고발장이 접수됐다는 기사도 실렸다.
세계자유정의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첫 고발이 있은 지 사흘만에, 행동하는 사람들 사무실과 대표인 김종숙, 활동가 양병주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온 신문과 방송, 개인 유튜버들까지 생방송으로 실시간 압수수색 과정을 보도했다.
사기와 배임, 횡령, 공문서 위조 등등 의심되는 범죄 행위만 수십개에 이른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정도면 과히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니겠느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어떤 것도 그러나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로였다.
심지어는 범죄단체 조직 혐의를 거론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갈취와 납치, 폭행을 일삼았다고 검찰이 발표한 삼진건설 노조.
그에 맞춰 언론이 귀족노조, 깡패노조라 명명지었던 삼진건설 노조의 배후세력이 다름아닌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 언론사가 쓰니 모든 언론사가 베껴 썼다.
모든 언론에 도배가 되니, 여론의 관심이 높아졌다.
클릭수가 높아지니, 하이에나로 변한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고는 또 아무 말 대잔치를 해댔다.
행동하는 사람들과 대표인 김종숙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기사거리가 되었다.
불 구경, 싸움 구경 못지 않게 재미난 것이 성추문 관련 기사였다. 빠질 리 없었다.
김종숙이 대학 3학년 때 조교와 사귀었다더라, 조교는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는데 그 약혼자가 학교로 찾아와 난리를 피웠다더라, 그 일로 조교는 결국 교수의 꿈을 접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더라, 전도유망한 젊은 학자의 꿈을 접게 만든 김종숙은 꽃뱀이었다!!! 그럼 지금은?
김종숙의 딸에게는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소문이, 남편이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는 무명 작가들의 등골을 빼먹는 악덕 출판사라는 소문이 붙었다.
일일이 해명하는 건 불가능했다. 20년 시민운동가 경력의 김종숙마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게 힘에 부칠 지경이었다.
가족이 당하는 고통 앞엔 그저 속수무책, 쓰리고 아파하는 일 이외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행동하는 사람들은 열성, 진성 후원자들이 많은 걸로 유명했다.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시민단체였다.
그러나 매일매일 쏟아지는, 대한민국을 강타한 의혹성 기사들의 홍수 속에 후원자들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휴먼생명공학 연구소가 개발했다는 신약의 효용성, 환산되는 가치, 그로 인해 얻게 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 등등의 기사는 그에 쐐기를 박는 역할을 했다.
후원 중지를 통보하는 전화가 쇄도했다.
대한민국 언론이 ‘휴먼’이란 이름 앞에만 서면 꼬리를 흔드는 한마리 개가 되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여론은 ‘인류 최고!’, ‘세계 선도!’란 말 앞에선 한없이 감정적이 되곤 했다.
그걸 알기에, 김종숙의 편에 서는 걸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내 편이 없다는 사실이, 김종숙을 한없이 약하게 했다.
한편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더는 한편이 아닌 척 했다.
지지와 연대를 보내줄 것을 믿어 마지 않았던 인사들은 침묵으로 외면했다.
그 중 몇몇은 심지어 앞장 서, 큰 목소리로 김종숙을 비난하고 공격을 해댔다.
행동하는 사람들을 넘어 시민사회단체 전반으로까지 책임론과 무용론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냐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김종숙을 향해 있었다.
버텼다. 김종숙은 약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며 악착같이 버티었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검찰 기소가 곧 유죄 확정이라고 믿는 경향들이 있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잠시 물러나 있는 게 좋지 않을까?....
다 김대표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오해는 말고...’
스무살 김종숙으로 하여금 시민 운동에 뛰어들도록 만든 선배였다.
존경하던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에 김종숙은 마침내 무너졌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김종숙은 대표 자리를 사임했다.
그리고도 소란은 수습되지 않았다.
결국에는 자신이 만든 행동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떠나겠다는 발표까지 김종숙은 해야만 했다.
사무실에서 짐을 챙겨 나오던 날, 드물게도 서울 하늘은 미세먼지 하나 없이 청명했다.
울지 않겠다고, 쿨하게 웃으며 떠나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김종숙은 후배 양병주가 건넨 커다란 장미꽃 다발에 그만 얼굴을 묻었다.
펑펑 쏟아지는 눈물에 꽃향기가 묻혔다.
**
김종숙에 대한 집중 포화식 공격 보도와 나란히 언론을 도배한 건, 대대적인 찬양성 기사들이었다.
<인류의 꿈, 이뤄지나?> <대한민국의 과학이 세계를 뒤흔들다!> <K과학, 드디어 일냈다!> <세계만방에 우수성을 입증한 K 과학!> <K팝, K드라마에 이은 또 한번의 쾌거, 이번엔 K과학이다!>···
다음날엔 보다 집중된 양식의 기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놀랍다! 자랑스럽다! 휴먼생명공학 연구소!> <집중과 투자로 이루어낸 성과, 오너가 있어 가능했다!> <3세 경영, 휴먼 장재준 부회장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
여야 의원들이 앞다투어 신약 개발 출시와 관련한 절차 간소화법을 발의했다.
휴먼연구소 앞은 물론이고, 휴먼 본사 앞에까지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노란색 민들레꽃과 보라색 헤베꽃으로 작은 산이 만들어졌다.
노란색 민들레 꽃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 보라색 헤배꽃의 꽃말은 영원한 젊음이었다.
이제 공은 大 휴먼의 손에 넘어갔다.
모든 환경이 조성되고 승인된 셈이니, 이제 휴먼은 국민 모두의 바람대로 꿈의 신약을 신속히 세상에 내놓기만 하면 됐다.
한 국내 경제연구소에 의하면 신약 출시로 인한 경제적 수익은 대략 4천조원이 될 거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일년 예산 450조원의 아홉 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단기 직접 수익만 따졌을 때 그런 것이지, 장기간의 그리고 간접적 수익까지 따진다면 상상을 뛰어넘는 액수가 될 것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일본을 젖히고 5년 내, GDP 세계 3위의 초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를 터였다.
등등의 뉴스가 언론을 도배했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작 당사자인 휴먼생명공학 연구소는 그러나 침묵하고 있었다. 휴먼 본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마음이 급한 일부 사람들은 언론사는 물론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갖가지 추측들이 난무하였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로선 따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목빠지게, 마음을 졸이며 한마음으로, 그저 '휴먼'을 우러러 쳐다볼 밖에는...
大 휴먼이 결정할 터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은 휴먼이 원할 때, 판단해 결정하고 실행될 터였다.
**
휴먼 그룹에서 사람이 나왔다.
“구조본부실에서 왔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데 대한 작은 답례로 준비했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만···.”
그리고 놓고 간 것이 이태리 와인 티냐넬로였다.
안진한이 평소 와인을 즐긴다는 걸 염두에 두고 준비한 선물이 분명했다.
쌍용이파 두목 안진한이 좋아하는 와인은 호주산 펜폴즈였다. 그러나 티냐넬로도 나쁘지 않았다. 좋은 와인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문제는 보낸 사람의 이름이, 이름 석자가 적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선물을 놓고 간 사람은 구조본부실이라고만 말했다.
선물 포장을 풀며 안진한은 보낸 이의 명함이 들어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안에 든 것은 달랑 술뿐이었다.
그로써 선물 잘 받았노라는 사례 전화를 할 수 없게 돼버렸다.
저쪽의 속내가 빤히 엿보였다.
그동안 수고했어. 하사품으로 술은 내리겠지만, 딱 여기까지. 끝!
더는 너와 엮이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의사 표시인 셈이었다.
안진한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십사일 전, 해피 요양원 원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서 이번 일은 시작됐다.
성만호의 사진을 들고 수소문을 하고 다니는 남자가 있다고 원장은 말했다.
인상 착의를 들어보니, 손무현 형사였다.
어떻게 할까? 고민도 잠시, 안진한은 이것이 곧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그간 휴먼연구소와 관련해 온갖 궂은 일에 앞장 섰던 건, 오직 하나의 목표 때문이었다.
장차 휴먼그룹의 오너가 될 장재준 부회장의 오른팔, 이상용 구조본부실 부회장과의 연줄을 맺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상용 부회장과 휴먼생명공학 연구소 소장 이하영은 외사촌 지간이었다.
이하영이 휴먼의 자회사 중 하나인 휴먼연구소 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이상용 부회장이란 배경 덕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랬건만 이하영은 차일피일 이상용과의 만남 자리를 미루기만 했다.
언제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계획을 세우고, 안진한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켜 나갔다.
반상호를 살려둔 게 신의 한 수였다.
비록 신뢰도는 바닥을 헤매지만, 어떤 사안을 쟁점화 시키는 데 업계 최고인 자유일보를 선택한 것 역시 좋았다.
자유일보의 방문기 기자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휴먼의 허락 없이 ‘휴먼’의 이름을 대외에 공표하는 일이었다.
휴먼생명공학 연구소 소장 이하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약의 존재에 대해 윗선에 보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하영은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했지만, 사실일 리 없었다.
세상을 들썩이게 할 엄청난 파급력을 갖춘 신약의 개발이었다.
그걸 휴먼의 수뇌부가 알았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방치해 두었을 리 만무했다.
당연히 상황을 조정했을 것이고, 안진한이 끼워들 공간도 애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왜 숨겼을까?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게 뭐지? 너무 위험해서? 부작용이 너무 엄청나서?
이하영의 속내를 알 수는 없었다.
상관없었다. 안진한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자신,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터뜨리기로 결정했다. 휴먼의 허락 없이 ‘휴먼’이라는 두 글자를 공표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존재를, 이 안진한의 공로를 인정받기에 이보다 좋은 때는 없다는 계산이 섰던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는 핑계를 대기에도 적절한 때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거절을 당할 줄이야···
최소한 불러 묻기라도 할 줄 알았다.
골프채가 날아오면 기꺼이 몸을 대줄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미운 정도 정이고, 고약한 인연도 인연은 인연이라 하지 않는가? 그렇게 물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연을 이어가 볼 작정이었건만···
안진한은 낙담했다. 그러나 첫 술에 배 부를 걸 기대한 건 아니니, 포기할 일은 아니었다.
이런 정도로 물러날 안진한이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애초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반상규는 안영이파 애들한테 맡겼습니다. 죽을 걸 살려준 걸 본인도 아니, 조용히 있을 겁니다.”
수하인 박홍철의 보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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