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전쟁 01
3. 투기전쟁
1.
-아들. 아들. 어서 일어나야지.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아들. 빨리 눈을 떠.
‘엄마!’
어둠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을 뜬 나백현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형광등 불빛 때문에 눈이 시려 볼 수 없었지만, 알코올과 약품 특유의 냄세 덕분에 병원에 와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그를 얼싸 앉았다.
“아이고, 우리 아들 깨어났네. 우리 아들 살아났어.”
“엄마? 엄마!”
“백현아. 괜찮냐?”
“아빠? 네, 저 괜찮아요.”
다 큰 사내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무척 창피한 일이지만, 꿈속에서 요괴들의 식사가 되었던 나백현은 부모님을 뵙자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이고, 우리 아들……”
어머니와 아버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나백현은 점점 시력이 돌아오는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어요?”
“집주인 아줌마가 전화를 해줬어. 네가 치킨 시켰는데 문을 열지 않으니까, 배달하러 온 사람이 주인집 벨을 눌렀나봐. 그래서 올라가 보고 쓰러져 있는 너를 발견한 거야.”
어머니가 설명하는 동안, 시력이 확실하게 돌아온 나백현은 부모님의 몸에서 나와 자신과 연결된 실을 봤다. 아직 시력이 100% 돌아오지는 않은 것인지, 실이 더욱 굵고 선명한 흰색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자신과 연결된 실은 부모님의 것만이 아니었다. 색이 옅은 회색으로 보이는 실 두 개가 더 자신과 연결돼있었던 것이다. 해서 그는 그 회색실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니, 병실 문 입구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대머리 의사선생님과 예쁜 간호사 아가씨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나이 처먹은 놈이 부모님과 껴안고 우는 것을 보고 웃는 것이리라.
갑자기 창피해진 그는 헛기침을 하며 부모님에게서 살짝 멀어졌다. 그러자 대머리 의사가 다가왔다.
“나백현씨?”
“예, 선생님.”
“혹시 병원에 어떻게 오셨는지 기억나시는 것이 있나요?”
“아니요.”
의사는 나백현의 맥과 동공 등을 검사하며 계속 질문했다.
“혹시 이런 일을 겪어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그럼 최근에 어지럽거나 정신을 잃을뻔하거나 한적은 있나요? 아니면 넘어지거나……”
“아니요.”
나백현이 모든 대답에 ‘아니요’로 일관되게 대답을 하자, 의사는 조금 더 어두워진 기색으로 가족들을 내보내고 물었다.
“나백현씨. 혹시 최근에 약을 하셨습니까?”
“약이요? 저 먹는 약이 없는데요.”
“그게 아니고…… 마약 말입니다. 코카인 같은……”
“예? 그런 것 하지 않아요. 그런 것 살 돈 있으면 한우 사먹겠네요.”
“그럼 혹시 자살을 시도한다고 휘발유성 물질을 드시거나……?
“무슨 말씀이세요. 저 그런 짓 안 해요.”
이에 대머리의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런 병도 없고 건강한 이십 대 후반의 남자가 이유 없이 쓰러져서 사경을 헤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 있는 코카인 같은 마약이나 엑스터시 같은 환각제를 섭취했거나, 아니면 휘발유성 독극물로 자살을 시도하려다 실패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나백현이 이마를 찡그리고 고심하는 의사에게 물었다.
“저, 선생님. 제가 이곳에 얼마나 있었나요?”
“육 일이나 됐습니다. 그리고 두 번이나 심장이 멎었었습니다.”
대머리의사는 매우 심각하게 대답했지만 받아들이는 나백현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악몽이라고 하지만, 악귀들에게 모든 내장과 살점을 뜯어 먹힌 그로서는 단지 두 번 심장이 멎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다행이다. 영화에서처럼 몇 년 후에 깨어난 것이면 어쩌나 했는데, 단지 6일만 지났다니…… 그럼 가서 로또 당첨이 됐는지 확인만 하면 되겠지?’
하지만 순간,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예상치 못하게 혼절하여 입원하는 바람에 로또 종이를 그냥 책상 위에 올려두고 온 것이었다. 때문에, 만에 하나 집주인 아줌마가 그것을 훔쳐갔으면 자신의 모든 노력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리라.
갑자기 다급해진 나백현이 조급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전 이제 퇴원해도 되죠?”
“안됩니다. 아직 무슨 이유로 쓰러졌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퇴원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아, 걱정 마세요. 봐요. 아주 건강하잖아요.”
그러며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 팔다리를 마구 움직이지, 의사와 간호사는 기겁을 했다.
“이러시면 안됩니다. 6일씩이나 혼절해있다 이렇게 갑자기 일어나면 안됩니다.”
“환자분!”
결국 퇴원수속을 마친 나백현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6일씩 집을 비는 바람에 곳곳에 먼지가 잔뜩 쌓여있었고,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방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나백현은 그런 부모님을 만류했지만, 어머니를 막을 힘이 없는 그는 결국 강제로 침실에 감금되고 말았다. 해서 그는 부모님이 청소와 빨래를 하는 동안, 책상 위에 올려놨던 로또 종이를 찾았다.
‘여기 있다.’
다행히 로또 종이들을 찾은 그는 컴퓨터를 켜고 지난 주 로또 당첨번호를 확인했다. 그리고 1등서부터 5등까지 자신이 싹쓸이 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1등 당첨자가 자신까지 포함해 단 두 명이라는 사실이었다.
‘67억? 다른 당첨금까지 계산하면 세금을 공제하고도 45억 정도 되겠다.’
나백현은 재빨리 계산을 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밖에 계신 것을 기억해내고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깜짝 선물을 하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무슨 선물과 함께 말씀 드릴까? 집을 구한다음 올라와 같이 살자고 할까?’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딸도 아닌 아들이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알리 만무했다. 해서 그는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엄마.”
“왜 아들?”
청소를 마치고 걸레를 빨아 널던 어머니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자리를 잡고 서울에 집을 구하면 올라와서 같이 살래?”
“됐다.”
“왜요?”
“우리 나이가 몇인데 벌써 노냐?”
그 말에 아버지 역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 말이 맞다. 그리고 우리가 서울 올라와서 뭐하냐? 아는 친구들이 다 고향에 있는데…… 그리고 요즘 우리가 재배하는 배하고 사과가 제법 잘나가서 벌이가 쏠쏠해. 그러니 몸을 쓰지 못할 때까지는 일을 할 생각이다.”
“아빠. 그럼 만약 제가 돈을 많이 벌면요, 집을 새로 지어드리는 것은 어때요? 요즘 보니까 1-2억이면 깨끗하게 지을 수 있다던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겨우 10년 된 거다. 그러니 쓸데없는 곳에 돈 쓸 생각하지 말고, 돈 생기면 무조건 적금 부어.”
“네 아빠 말이 맞다. 괜히 쓸데없이 주식 한다고 돈 날려먹지 말고, 돈은 무조건 적금 붓고 땅하고 건물에만 투자해라.”
“그리고 너 자꾸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 되야 한다. 알았지? 그래야 선 자리도 많이 들어오지.”
“네.”
로또 당첨이 된 나백현은 이미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머리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부모님은 옛날 분들이고 고지식해서 그런지, 번듯한 직장을 선호하는듯했다. 아마도 로또 당첨됐다고 말씀 드려도 집이나 땅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은행에 적금을 든 다음 공무원 시험준비나 하라고 말씀하실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공무원고시를 포기했다고 말씀 드리기 전에 뭔가 확실한 성과를 내놓는 것이 좋으리라.
‘그때까지는 로또 당첨은 비밀로 하는 것이 좋겠다.’
로또 당첨에 대한 것은 나중에 말하기로 미룬 나백현은 점심을 먹기 위해 중화식당에 전화를 하여 자장면과 탕수육, 깐풍기 그리고 튀김만두를 잔뜩 시켰다. 이 많은 것은 모두 자신들이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마침 시간도 점심시간이고 하니,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주인아줌마에게 퇴원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음식을 더 시킨 것이었다.
해서 배달이 도착하자, 그는 깐풍기와 튀김만두를 가져다 드리고 집에 올라가보니, 예상치 못한 단발의 불청객이 떡 하니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 아저씨. 안녕하세요.”
박희선이 먼저 인사를 하자, 어머님이 빨리 와 앉으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여기 이쁜 처자가 찾아왔어. 그런데 아가씨 이름이 뭐라 했지?”
“박희선이라고 합니다.”
“어, 그래.”
어머니와 아버지가 묘한 눈빛을 주고받자, 박희선 역시 눈치를 살피며 나백현에게 물었다.
“병원에 전화를 하니, 퇴원했다고 해서 들렀어요.”
“그랬나요?”
“몸은 괜찮으세요?”
“네. 문제 없어요. 참, 그런데 편의점은 어떻게 됐죠? 사장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아니요. 제가 계속 일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어요.”
둘의 대화를 듣던 어머니가 또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아가씨도 백현이와 함께 편의점에서 일해요?”
“예? 아, 예.”
“나이가 어떻게 되요?”
“22살입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이고, 꽃다운 나이이네. 그리고 생긴 것도 참 똑 부러지게 생긴 것이 일도 똑 소리 나게 잘하게 생겼네.”
“엄마!”
나백현이 자꾸만 이상한 질문을 하는 어머니께 눈을 흘기고는 박희선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나요?”
“그게…… 저와 함께 가주셔서 도와주기로 한 것 때문에요. 그쪽에서 빨리 제.출.하라고 연락이 왔거든요. 해서 저와 함께 내.일.같이 가주실수 있겠죠?”
“아, 그것이라면 문제 없어요. 내일 같이 가드리죠.”
“고마워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박희선이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나백현의 부모님들 역시 매우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특히, 가장 아쉬운 표정이 역력한 아버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지.”
“아닙니다.”
“혹시 자장면이 3개라서 그런 것이라면 걱정 마시게. 저 녀석은 원래 자장 싫어하니까, 그냥 탕수육만 먹으라고 해도 돼.”
“그게 아니라, 일하던 도중에 잠시 시간 내서 나온 것이라 빨리 가봐야 해서요.”
“그런 거야?”
“예.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음.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예. 그럼 안녕히 계세요.”
박희선이 편의점에서 단 2주 동안 일하고서도 직업병이 생겼는지, 90도로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이에 너무나도 흐뭇한 미소를 짓던 어머니가 바깥양반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 오후 차로 후딱 내려갑시다.”
“왜? 좀 더 이곳에서 지내다가, 저 아가씨를 식사라도 초대했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어머니가 팔을 찰싹 때렸다.
“이구,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내일 저 아가씨하고 만나기로 했다는 소리 듣지 못했어?”
“들었지.”
“두 남녀가 만나서 놀다가 어디 갈데 있겠어? 기껏해야 이런 집이지. 그런데 우리가 여기 있어봐. 그럼 오겠어? 안 오겠지? 그럼 진도도 안 나가겠고.”
그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 그럼 우리는 오늘 오후 차로 내려가고…… 나백현. 올 겨울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시골에 방문하기를 바란다.”
“아빠. 엄마. 희선씨하고 저는 아무런 사이 아니에요.”
“됐다. 그런 변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고, 다만 연말에 혼자 고향 내려오지 말아라.”
“아빠. 정말 아니라니까요.”
“됐다. 그럼 모두 식사!”
그러고는 나백현의 부모님은 무슨 상상을 하는지, 흐뭇한 미소를 얼굴에서 지우지 못하고 중식을 빨리 해치우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aldud 님, 8차원 님, 정태양 님, 재밌으시다니, 감사합니당. ^^
붉은공원 님. 좀만 기둘리세요. 원래 '막장은 소리소문없이 다가온다'는 명언데로, 소리소문없이 막장의 장이 열리리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당. (잉? 뭔밍...???)
샌드위치 님. 반갑습니당.
beautiful 님 말씀대로입니다. 제 글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온 주제가 인과응보인만큼, 쥔공이라도 벌을 받아야 하면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쥔공이니까 수정이 있기는 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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