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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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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07 21:10
연재수 :
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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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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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707,785

작성
23.12.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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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29. 방어진 2

DUMMY

4.


만봉이 고개를 들었다.


숲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아침 해라니.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가. 진이 사라졌는데도 왜 계속 이리 아리송한 걸까.’


만봉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었다.


아직도 주변의 모든 사물이 전과 다르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늘 다니던 이 길이 그 길이 아닌 것 같은··· 이 기분!’


그러면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역시··· 일성 법사!’


청운당 앞 작은 폭포에 도착하자 해는 조금 더 높아져 있었다.


해가 움직이는 걸 보면서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법사들은 일단 안심이 되었다.


폭포에서 물을 마신 후 바로 청운당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앞서 걷던 만봉은 가끔 허리를 굽혀 허벅지를 두드려 댔다.


유정도 그런 만봉을 보면서 연신 몸 여기저기를 주물렀다.


두 사람은 걸으면 걸을수록 진에 갇혀있을 때의 체력 소모가 상당했음을 실감한다.


드디어 청운당이 보였다.


순간 만봉은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더는 나아가지 않았다.


그 모습이 이상하기만 한 유정이 만봉의 옆에 다가와 선다.


“왜 그러시오? 무슨 일이오?”


일성 법사가 걸어 놓은 진에 당한 후 긴장하는 건가?


혹시 또 다른 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판단해 경계하는 건가?


유정은 만봉의 얼굴을 살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만봉은 정면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유정도 앞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유정의 눈에 청운당의 전경이 더 자세히 들어왔다.


먼지가 일고 있었다.


청운당의 앞마당에.


청결하고 단정한 초가가 뿌옇고 지저분하게 보일 정도로.


그 뿌연 먼지 사이로 사람이 하나 드러났다.


그는 마당을 쓸고 있었다.


거칠고 어색한 비질이 좀 이상해 보였다.


청운당에서는 누구도 저렇게 거칠게 빗자루질을 하지 않건만.


유정이 눈을 더 가늘게 떠보니 어렴풋이 얼굴이 보였다.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서 몇 걸음을 더 앞으로 내디뎠다.


일성 법사?


법사들 앞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사죄하겠다는 뜻을 저렇게 비질로 표하는 건가?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움직임이···.


유정은 몇 걸음 더 다가섰다.


그리고는···.


“으아아아아아아앜···!”


하는 비명과 함께 도로 왔던 만큼 뒷걸음질을 쳤다.


그가 본 것은 일성 법사가 아닌 송담 법사였다.


일성 법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바로 그 송담 법사!


그런 그가 어떻게 저렇게 살아서 마당을 쓸고 있단 말인가?


“유정, 물러나시오! 다가가지 마시오!”


만봉의 외침에 유정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하지만 무릎이 덜덜 떨렸다.


겁에 질린 만봉도 떨리는 이를 애써 악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송담의 비질이 갑자기 멈췄다.


법사들의 외침을 들은 것일까.


그리고 그 외침에 반응이라도 하는 걸까.


그의 시선이 돌연 두 사람을 향했다.


눈을 마주친 송담은 빗자루를 한 손에 옮겨 쥐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유정은 다가오는 송담을 노려보면서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수인을 맺으려는 자세였다.



5.


유정의 손가락이 서로 엇걸리려는 순간이었다.


“법사님들, 지금 오시는 거요?”


송담이 환하게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멀리서 봤을 때와는 다른 생기 있는 분위기.


“아니, 아까는 왜 소리를 지르셨소이까?”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일인가?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유정의 손가락이 다시 느슨해졌다.


곧 그의 손은 양 허벅지까지 내려왔다.


유정과 만봉이 동시에 눈을 찡그리자 송담이 다시 말한다.


“다른 법사들이 보이지 않소이다. 다들 어디 계시는 거요? 건우 그놈은 잡으셨소?”


이어지는 송담의 태연한 말투에 유정과 만봉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술로 만든 허상이라면 어딘가 표정이 어눌하고 생기가 없어야 하거늘.


어찌 저리 자연스럽단 말인가?


저 모습은 떠나기 전에 보았던 송담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일성은 어디 있소이까?”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은 유정이 송담의 얼굴을 살피다 불쑥 질문을 던졌다.


“아! 사실···.”


빗자루를 다른 손에 고쳐 잡은 송담이 유정의 눈을 슬쩍 피하며 말을 흐렸다.


유정과 만봉은 동시에 긴장하면서 눈을 부릅떴다.


유정은 다시 손끝에 힘을 바짝 주면서 송담을 노려보았다.


“법사님들이 건우를 잡으러 떠나신 후 청운당에 난리가 났었소이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어서였을까?


두 사람의 귀가 쫑긋 서면서 눈이 커졌다.


“난리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만봉이 커진 눈을 다시 찡그리며 물었다.


“예전에 스승님께서 쫓았던 악귀 나찰 있지 않소이까? 결국 붙들려서 쇠통바위 밑에 봉인된 놈! 그놈이 어떻게 거기서 나왔는지, 청운당을 다시 찾아와 난장판을 만들었지 않소. 마침 일성 법사가 일찍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나찰을 쫓던 일까지 알고 있다.


허상이 오래전 일까지 기억할 수는 없는 일.


즉, 그건 허상이 절대 흉내 내지 못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그놈이 글쎄 일성 법사에게 제압당하나 싶더니··· 갑자기 영일 법사의 모습으로 변한 후 달아나 버렸다오. 밖에 나가 사고라도 칠까 봐 일성 법사가 따라가기는 했는데···.”


유정과 만봉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면서 입을 벌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울에서 떠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영일의 모습을 떠올렸다.


만신창이에 눈까지 하나 빠진 몰골, 게다가 숨이 거의 넘어가기 직전의 영일 법사!


그때였다.


“법사님들, 오셨습니까?”


초가 부엌에서 누군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인사를 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일 법사였다.


상처투성이에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아닌 말끔하고 풋풋한 모습의 영일!


건우를 잡으러 떠나기 전에 항상 봐왔던 그대로의 모습!


영일은 오늘도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한 손에는 밥주걱이 들려있다.


“아니, 영일 자네, 괜찮은 건가?”


꿈을 꾸다 깬 듯한 표정으로 만봉이 물었다.


그러자 영일은 되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한다.


“괜찮냐니,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영일은 동그랗게 뜬 눈이 아이처럼 천진해 보였다.


유정과 만봉은 다시 한번 멍한 표정을 한 채 송담과 영일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송담의 말이 맞다면 서울에서 법사들이 함께 봤던 영일은 나찰이 변신한 몸!


유정과 만봉은 머릿속이 다시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제때 잘 오셨습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영일이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송담도 거들고 나섰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잘 되었소이다. 마침 일성 법사가 마을에 내려가서 장을 봐온 게 있소. 바로 준비하겠소이다.”


송담의 말이 끝나자 영일은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유정과 만봉은 송담을 따라 초가 안으로 들면서 청운당의 마당을 휘 한 번 훑어보았다.



6.


“그럼 일성은 대체 언제쯤 돌아온단 말이오?”


오래간만에 방 안에 앉은 유정은 피로에 지친 다리를 주무르며 물었다.


“지난번에도 경험했지만, 나찰 그놈이 여간 영악한 게 아니라서··· 알 수가 없소이다. 전해지기를 놈이 갱생해서 불가(佛家)의 수호신이 되었다고는 하는데··· 다시 이렇게 설치고 다니는 걸 보니 부처께서 도로 내치셨나 보오.”


송담이 두 법사를 차례로 돌아보면서 말했다.


갑자기 여러 명이 들어앉아서일까.


좁은 방안은 금세 후텁지근해졌다.


유정이 방문을 살짝 밀어 열려고 하는데, 영일이 마침 밥상을 들고 들어섰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제대로 된 밥 냄새인가?


그리고 보니 두 사람은 요 며칠간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긴 적이 없었다.


구수한 음식 냄새에 시장기까지 더해지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유정은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수저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만봉만큼은 물잔을 먼저 들면서 서두르지 않았다.


아무리 지치고 허기진 상황이라도 께름직한 무언가는 계속 그를 조심하게 하고 있었다.


송담이 다시 말했다.


“일성 법사가 준비한 게 이거요.”


밥상의 가운데 놓인 제법 큰 그릇.


묵직해 보이는 뚜껑이 덮인 게 평소 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송담이 그 뚜껑을 쥐고 천천히 들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리로 모였다.


그리고···.


“아··· 아니, 이건···!”


뚜껑이 열리자마자 유정과 만봉은 기겁하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걸쭉한 양념장과 다진 채소들에 잘 버무려져 있는 요리!


그건 놀랍게도 새끼 돼지 한 마리였다.


유정은 어이없어했고, 만봉은 송담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송담은 두 사람의 이런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이··· 왜들 그러시오? 다 알고 있소이다. 다들 몰래 술도 드시고, 고기도 드시고, 또 여자도 품으신다는 거··· 허허헛!”


기가 막힌 말에 유정과 만봉의 낯빛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그러자 문 옆에 서 있던 영일도 황당한 말을 하며 끼어들었다.


“법사님들,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고, 여자도 품으면 신선이 될 수 있는 겁니까?”


예기치 못한 도발에 방 안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유정은 송담과 영일에게 고함이라도 치려는 듯 볼살이 파르르 떨렸다.


송담이 그 분위기를 끊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어서 드시지요! 내가 썰어 드리겠소이다.”


송담의 한 손이 품 안으로 들어갔다가 막 나오려던 때였다.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이를 지켜보던 만봉!


순간, 그의 눈이 번쩍였다.


만봉은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강한 장풍이 송담의 가슴팍에 꽂혔다.


퍼억-!


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송담의 몸이 방구석으로 나동그라졌다.


그가 품에서 꺼내려던 게 방바닥에 떨어졌다.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이었다.


유정과 만봉은 식칼을 보자 하얗게 질려버린다.


평소 주방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송담이 식칼이라니.


언제부터 품고 있었던 걸까?


놀람과 의문에 다들 정신이 멍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송담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으하하하하하핫-!”


문 옆에 서 있던 영일도 따라 웃더니 두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흐흐흐흐흐흣-! 방어진을 통과해 와서 그런지 기력이 많이 쇠했구나. 이제야 감을 잡다니··· 하지만 너무 늦었다. 너희들의 명은 여기까지다. 그만 죽어라!”


문밖에서 그들을 맞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의 영일!


아니, 이건 영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만봉은 이게 누구의 목소리인가를 생각하다가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다.


유정을 돌아보자 유정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영일은 바로 일성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조금 전 장풍을 맞은 송담 법사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그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멀쩡하던 피부가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기겁한 두 사람이 밥상을 걷어차고는 뒤로 물러났다.


벽에 등을 대고 선 둘은 서로를 마주 봤다.


“여기서 나갑시다, 어서!”


만봉이 유정을 보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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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071. 한 피디 1 24.03.16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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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069. 나찰을 잡아라 1 24.03.10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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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067. 동상이몽 1 24.03.08 5 0 11쪽
66 066. 일성을 부를 때 3 24.03.02 6 0 11쪽
65 065. 일성을 부를 때 2 24.03.01 7 0 12쪽
64 064. 일성을 부를 때 1 24.02.28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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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62. 이 애는 안 돼요! 1 24.02.23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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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060. 부엌혈전 3 24.02.17 7 0 12쪽
59 059. 부엌혈전 2 24.02.16 10 0 12쪽
58 058. 부엌혈전 1 24.02.14 10 1 12쪽
57 057. 부적은 어디에 2 24.02.10 8 0 11쪽
56 056. 부적은 어디에 1 24.02.07 10 0 12쪽
55 055. 주인이 바뀐 돈 2 24.02.03 12 0 12쪽
54 054. 주인이 바뀐 돈 1 24.02.02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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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52. 내친 김에 어디 한번 4 24.01.26 14 1 11쪽
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6 1 11쪽
50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4 1 11쪽
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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