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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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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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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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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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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또 하나의 복수의 끝 #4

DUMMY

에스티나 왕국의 팔라딘들은 팔라딘이 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수많은 권한과 그에 비례하는 막중한 의무를 부과받게 된다.

제2시대에 하로나스가 만들어낸 선발 시스템에 의해 선택되는 이들은 팔라딘 시험을 통과한 직후부터 더 이상 평범한 필멸자가 아닌 여신이 세상을 굴리기 위해 끼워넣은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살아가게 된다.



"온다!"



그 대신 그들은 제 아무리 다 죽어가는 늙은 엘프라도 만신전을 모시는 신전에 신앙심이 액화되어 채워진 성수를 나무의 정령왕의 인도에 따라 마시고 팔라딘으로 선택받으면 수백 년을 살아가는 엘프들조차 꿈도 꿀 수 없는 젊음과 힘을 부여받게 된다.

팔라딘이 되기 이전 속세에서 지원자가 가지고 있던 계급, 지위, 위치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팔라딘에 오르는 순간 그들을 모두가 동등하게 신들과 정령왕의 아래에서 일하는 하인이 될 뿐이었다.



"첨자찰진!"



그러나 팔라딘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서열이라는 건 있었다.

그 비공식적인 서열은 어떤 때는 힘으로, 어떤 때는 상관의 총애로 정해졌다.

젊은 엘프들에게 전설이나 무용담 혹은 역사서에나 나오는 까마득한 옛 시대의 영웅들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자존심이 꼿꼿한 이들이라 생각되기 쉬웠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협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감히 팔라딘들의 위에 있는 존재들의 명령을 거역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아는 이들이었다.



"우리는 이곳을 사수한다!"



현재 홀로 봉인을 해제하고 있는 포이부스를 대신해 지휘권을 잡은 것은 팔라딘 오리스였다.

팔라딘 오리스의 명에 따라 팔라딘들은 완전 무장을 갖춘 채 또 다른 침입자들의 존재에 혼란을 보이는 불꽃 부족 전사들을 무시한 채 입구를 틀어막는 진을 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간신히 말하는 불꽃의 문을 박살내고 신의 봉인을 찾아온 알티로스 제국과 중부 아카이아 왕국의 연합군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불타는 문을 상대하느라 고생한 것인지 갑옷 곳곳이 그을려 있었다.

알티로스 제국의 근위대는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에스티나 왕국의 팔라딘들을 보고 일부 경험많은 이들은 70년 전 알티로스 제국과 에스티나 왕국 사이의 전쟁에서 나타나 전황을 뒤집어버렸던 마스터 나이트들을 떠올렸는지 바짝 긴장하며 중부 아카이아 왕국군의 지휘관들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리고 두 군대의 지휘관들이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갔을 때 중부 아카이아 왕국군 사이사이에 껴 있던 작은 칸텔레를 들고 있는 군악대가 앞으로 나섰다.



"위대한 일마타르시여! 음악의 베이네뫼이넨이시여! 그대들의 자손들을 봐주소서! 페르켈레의 권능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그들의 합창과 함께 칸텔라 연주가 시작되자 던전에 있던 모든 이들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현이 한 번 튕겨질 때마다, 그들의 목소리의 단어 하나하나가 사람에게 닿을 때마다 제국군과 왕국군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불꽃과 번개에 그을린 상처 밑에서 새살이 돋아났다.

반대로 팔라딘들과 불꽃 부족의 전사들은 발걸음 자체가 무거워지고, 손에 든 무기의 무게가 한층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사알 파 힌!"



팔라딘 오리스가 주문을 외치며 뷔토스의 지팡이에 마력과 신성력을 담아 바닥을 두드리자 눈에 보이지 않는 확산하는 파동이 한순간에 모두에게 걸려있던 디버프를 무효화 하였으나 불꽃 부족은 마법과 신성마법에 그저 방어진을 굳게 할 뿐이었다.


제국군과 왕국군은 한순간에 신성한 노래와 연주의 효과를 지워버리는 팔라딘 오리스를 경계하면서도 마법사들의 공격을 개시하였다.

팔라딘들은 다 함께 던전 내부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가져오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였고 제국군과 왕국군 진형 안쪽의 몇몇 마법사들은 팔라딘들의 강력한 의지에 휘어잡힌 마력의 흐름에 질질 끌려가 한순간에 마력을 빨려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서 마법 공격들의 시전에 성공한 마법사들이 날린 공격들이 위로 치솟았다가 떨어지며 팔라딘들과 불꽃 부족 전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렸다.


마을 입구에서 전투가 개시된 동안 포이부스는 불꽃으로 된 악마의 육신마저도 태워버리는 태양과도 같은 응축된 신성한 불꽃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신의 봉인이 내뿜는 불꽃의 코로나 방전현상의 파동 같은 것만으로도 평범한 필멸자들을 재로 만들건만 저 태양의 표면에 닿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포이부스는 걱정을 뒤로 한 채 주저 없이 그 불꽃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불꽃의 악마조차 다시금 태워버리는 신의 불꽃에 불꽃 안으로 들어간 포이부스의 피부 곳곳이 갈라지며 붉은 불꽃이 파란색으로, 파란 불꽃이 다시 하얀색으로 변해 피부에서 백열현상이 일어났다.

포이부스가 뿜어내는 이미 한 번 연소되어 날아가는 유황의 연기조차도 다시 태워서 완전연소 시켜버리는 신의 불꽃은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재로 만들어버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포이부스는 이 불꽃의 원천인 이그니의 사도였기에 금방이라도 한순간에 재가 되어버릴 것 같은 상태로도 견뎌낼 수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백색 화염 속에서 포이부스는 눈을 감은 채 손을 내뻗었고 마침내 타들어가는 손끝에서 익숙한 감촉의 무언가를 잡았다.

포이부스가 그대로 그것을 움켜쥐고 손을 잡아당기려 했으나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사슬들이 방해하는 것처럼 그것은 아주 약간 움직일 뿐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려고 하였다.


포이부스는 자신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주 살짝 눈을 떴고, 포이부스의 얼굴에 달린 두개의 눈과 등짝에 달린 사냥의 신의 눈 안으로 화염이 들이닥쳤다.

하지만 포이부스는 화염이 자신의 눈의 혈관을 쓰다듬는 것을 참아내며 앞을 바라보았고 포이부스의 눈에 태양의 핵인 봉인을 칭칭 감고 있는 창조신의 공허의 쇠사슬들이 보였다.


포이부스는 마력과 신성력을 끌어올려 자신이 손에 쥔 불의 신의 봉인에 주입하는 대신, 먼저 2개의 쇠사슬을 붙잡고, 2개의 쇠사슬을 잡은 채 쇠사슬을 밀어서 나머지 2개의 쇠사슬마저 한꺼번에 양손에 붙잡고 힘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우오오오오오!!"



태양 안에서부터 악마의 쇠사슬을 끊기 위한 사력을 다한 울부짖음에 모든 필멸자들이 움찔거리고, 신들조차도 시선을 돌렸다.

감히 그 누구도 똑바로 태양을 보지 못했으나 그 울음소리에 제국군과 왕국군은 다급해진 천상의 존재들의 외침에 어떻게든 방어선을 뚫고 나아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에스티나의 팔라딘들은 자신들의 숫자의 2배나 되는 제국 근위대를 압도하는 것도 모자라서 일부가 옆으로 빠져나와 불꽃 부족 전사들을 유도하기 시작하였다.

평생동안 던전에 갇혀 살면서 인간, 그것도 규율잡힌 군대를 상대해본 적이 없던 불꽃 부족의 전사들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이내 팔라딘들의 유도를 받으며 저들이 침략자라는 걸 제대로 깨달은 뒤부터는 제 나름대로의 전술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불꽃 부족의 전사들은 제국군과 왕국군의 공동 전선의 빈틈을 찾아내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몬스터들의 무리가 함께 있는 방에서 사냥을 하는 것처럼 두 세력이 공동으로 지키는 구역 안으로 뛰어들어 제국군과 왕국군을 밀어붙어 서로가 섞이게 만들었다.

서로 다른 두 몬스터 무리를 뒤섞이게 해서 싸우게 만들 때와 같이 아주 훌륭한 몰이 사냥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번 상대는 지성 없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 바르바로이들이!"


푸욱!



정예화된 제국군 근위대와 중부 아카이아 왕국의 정예병들은 그 혼란 속에서도 바로 방패를 들어올려 창과 칼로 불꽃 부족의 전사들에게 응징을 가했다.

제 아무리 동맹을 맺었다고는 해도 지휘권이 통일되지 않은 두 세력일 뿐인 제국군 근위대와 왕국군은 절묘하게 안으로 몰리면서 연계에 균열이 생겨났으나 그러고도 불꽃 부족의 전사들보다도 규율 잡힌 모습을 보여줬다.



"고오오오오오오!!"



그러는 동안에도 포이부스는 봉인해제를 계속하였다.

불꽃 부족의 전사들이 죽어가며 비명을 내뱉고, 마을 입구에서 인간들이 흘린 피가 넘쳐흐르고 있지만 그 무엇하나 봉인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포이부스는 저 멀리서 살해된 자들의 영혼이 내는 절규에도 흔들리지 않고 창조신이 만든 공허의 쇠사슬을 잡은 손에 힘을 가했다.


지금까지 찾아냈던 신들의 봉인과 달리 창조신이 더해놓은 쇠사슬들은 지난 2천년 동안 이그니의 봉인이 내뿜는 열을 괜히 견딜 수 있었던 게 아니라는 듯 포이부스의 전력을 다한 힘에도 흔들거리고 서서히 구부러질 뿐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시간이 지나면서 불의 신의 봉인을 구속하고 있던 공허의 쇠사슬들이 구부러지고 있었다.



"이거나 처먹어!"


콸콸콸콸!



마을 입구가 워낙 넓었기에 12명의 팔라딘들만으로는 통로를 봉쇄할 수 없어서 점점 많은 숫자의 군인들이 마을 안으로 밀려들어왔고 팔라딘 오리스는 포이부스에게 배운 대마법 레드 리버를 시전하였다.

용암의 파도가 뷔토스의 지팡이 끝에서부터 흘러넘쳐서 강을 이루었고,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끈적끈적한 용암의 파도가 왕국군 전체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일마리넨의 지붕이여! 로우히의 딸들의 머릿결이여! 쿨레르보의 분노를 막아주소서!"



그러나 중부 아카이아의 군악대가 다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용암의 파도가 저절로 갈라지더니 왕국군의 좌우로 흘러갔다.

물론 팔라딘 오리스 역시 그대로 당해주지 않겠다는 듯이 용암을 그대로 굳혀서 한순간에 왕국군을 좌우로 감싸는 암석의 벽으로 만들어버렸다.



쩌저적! 챙! 츠르르르륵!



그동안 포이부스는 마침내 창조신 부리 아우둠라의 공허의 사슬 중 하나를 끊어냈다.

포이부스의 막강한 힘과 마력과 신성력에 의해 끊어진 사슬의 이음새가 하늘로 튕겨나갔다가 밑으로 떨어져 포이부스의 어깨를 때렸으나 포이부스는 나머지 3개의 사슬을 쥔 손의 힘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홀로 남은 왼쪽 사슬을 이빨로 물어뜯으며 두 손으로 나머지 2개의 사슬을 잡아당겼다.


포이부스는 사슬을 끊으면서 동시에 불의 신이 방출시킨 신성한 불꽃들을 입으로 삼키기 시작하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슬을 이빨로 끊으려고 입을 벌리자 불꽃이 알아서 입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평범한 필멸자였다면 근처에 온 순간 잿더미가 되었을 신성한 불꽃은 불타는 악마로 변한 포이부스에게조차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고, 불꽃이 포이부스의 목구멍 너머로 흘러들어가며 내장 전체를 뒤집어놓았다.


원래 검붉은 진홍빛 불꽃과 연기로 가려져 어두워보이던 포이부스의 몸 곳곳에서 백열 현상이 일어나 포이부스는 새하얗게 타올랐다.



투웅! 차르르르륵! 퍼억!



백열 현상이 일어나는 이빨 덕택이었는지 아니면 포이부스가 고통이 심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빨에 힘을 더 가했는지 몰라도 포이부스가 물고 있던 공허의 사슬이 끊어졌고 끊어져버린 공허의 사슬은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가 포이부스의 몸을 채찍질 하더니 그대로 포이부스의 몸에 휘감겼다.


몸 곳곳이 신성한 불꽃에 태워지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가 끊어져서 튕겨나간 공허의 쇠사슬에 맞아 휘청거릴 법도 한데 포이부스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머지 2개의 쇠사슬을 노려보았다.



구르르르릉!



태양처럼 빛나는 신성한 불꽃 속에서 던전 전체가 뒤흔들리는 포효를 내뱉으며 백색으로 빛나고 있는 악마는 공허의 쇠사슬들을 잡아당겼다.

그 전능한 힘에 사슬 중 하나가 파열음을 내다가 마침내 먼저 끊어져버린 다른 2개의 사슬처럼 거칠게 튕겨나가며 포이부스의 겨드랑이와 날개죽지를 때렸다.

이번에는 단순히 얻어맞는 것이 아니라 쇠사슬의 끊어진 단면에 긁힌 것인지 피가 튀었고 포이부스조차 몸을 휘청거렸지만 신성한 불꽃이 한순간에 상처에서 나온 피를 태워버렸다.


피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기화되며 사라지는 동안 포이부스는 점점 뜨겁고 숨막히던 것이 사라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육신이 죽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포이부스가 이그니의 불꽃에 적응해가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포이부스는 전자라고 짐작하고 마지막 사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불의 신의 봉인을 향해 손을 뻗어 한손으로는 봉인을, 다른 손으로 창조신의 공허의 사슬을 붙잡고 외쳤다.



"불꽃 부족의 창시자시여!"


[막아!]



다급한 여신과 신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그들은 포이부스의 주인이 아니었다.

포이부스는 불의 신 이그니의 사도였다.

불꽃의 악마는 마침내 신의 불꽃에 적응했는지 백열현상을 일으키며 삐걱거리는 육신으로 마지막 창조신의 쇠사슬마저 끊어버린 뒤 불과 번개의 신 이그니의 봉인을 쥐고 태양과도 같은 신성한 불꽃 속에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저 앞에서 치열한 혈투를 벌이다 신들의 명령을 받아 무리하며 마침내 팔라딘들이 막고 있던 방어선을 돌파한 그들은 피를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고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모두 신들의 축복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역전의 용사들인 그들은 분명 알티로스와 중부 아카이아에서도 가장 위대한 전사들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영광스러운 싸움도, 상대를 인정하는 적의 담담한 찬사도 아니었다.

그들이 본 것은 비웃음이었다.


자식과 부모가 닮는 것처럼 창조자와 피조물 역시 닮게 되는 것인지 포이부스는 불의 신이 떠오르는 얼굴로 이제야 뭘 해야 할지 알겠다는 듯이 신성한 불꽃들을 들이키기 시작하였다.

백색광을 내는 던전 속의 태양을 삼키면서 속이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걸 느꼈지만 포이부스는 멈추지 않았고 던전의 태양은 점점 크기가 줄어들었다.



"뭐야 저건?"


-불꽃 부족, 알아서 피해라



그리고 마침내 포이부스가 쥐고 있던 불의 신의 봉인이 달려오고 있는 인간들의 육안으로도 보일 지경이 되었을 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어둠 속에서 필멸자를 비웃으며 노려보는 악마가 아니었다.

몸속에 거대한 태양을 집어삼키고 응축시킨 포이부스는 방금 전까지 그곳에 있던 태양을 대신해서 빛나고 있었다.


그는 모든 불꽃 부족의 사람들에게 텔레파시를 날렸고 마을 중앙광장으로 달려오던 제국군과 왕국군들을 막으려던 장로들은 허겁지겁 급히 방향을 틀어 옆으로 물러났다.

불꽃 부족과 함께 텔레파시를 수신한 팔라딘들이 진형을 무너뜨리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동안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른 채 마을로 진입하려던 병력들은 포이부스를 발견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끼이이이이잉!!!



밝은 백생광으로 타오르던 포이부스는 그대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이들과 방금 막 마을 입구를 점거한 적들을 향해 포효와 함께 자신이 삼켰던 화염을 응축시켜 광선처럼 발사하였다.

가장 위대한 영웅들 중 하나였을 이들은 몸에 걸치고 있던 신의 가호조차 기화되어버리는 그 극도의 고온의 광선에 삼켜져 사라져버렸다.

가장 앞에 있던 그들은 물론이고 광선이 지나가는 일직선 상에 있던 모든 것들이 섬광에 집어삼켜져 던전의 벽조차도 관통하고 나아갔다.


신성한 불꽃을 광선 형태로 토해내고도 여전히 백열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포이부스가 입을 다물었을 때 그의 앞에 남아있는 건 오로지 상처를 수복하지 못하고 구멍을 내버려둔 채 비명을 내지르는 던전과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동료들이 있던 자리를 보고 멍하니 넋이 나간 사선 상에서 벗어나 있던 제국군과 왕국군들 뿐이었다.


다시 집결 중인 팔라딘들과 불꽃 부족 사람들은 백열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신성한 불꽃을 집어삼킨 포이부스의 앞에서 본능적으로 머리를 조아렸고 포이부스는 불의 신의 봉인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주인이여, 잔혹한 불꽃과 번개의 지배자시여! 먼저 해방된 자가 그대의 요청에 따라 왔나이다! 이제 일어나소서! 이제 그만 자신의 잘못의 대가를 치르소서!"



그러면서 포이부스는 불의 신의 봉인을 번쩍 들어올리고는 그대로 땅에 내리쳤다.

그러자 불꽃을 휘감은 번개 조각은 그대로 뚝 부러지더니 이내 던전을 비추던 태양보다도 밝은 빛이 봉인으로부터 쏟아져나왔다.

빛이 지하를 가득 채운 뒤 사라지자 어둠이 찾아왔지만 마을은 완전히 어둠에 지배되지는 않았다.


태양이 있던 곳에는 이제 태양을 대신하는 두 형체가 서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입을 열며 팔을 활짝 양옆으로 펼치며 말했다.



[이 지하의 퀴퀴한 냄새조차 얼마나 그리웠던가!]



불꽃으로 된 육신을 마음껏 움직면서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휘날리는 불의 신은 숨을 들이쉬고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면서 당당하게 선포하였다.



[내가 돌아왔으니 이제 게임의 판도가 다시 바뀔 것이다! 이 이그니의 인도에 따라 온 세상이 타오르고 새로운 폭풍이 몰아치리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불의 신의 목에는 봉인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목걸이 하나가 걸려있었다.

그 목걸이 끝에 달려있는 보석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검은빛을 내뿜는 구체였고 신들은 그것이 다름이 아니라 던전 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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