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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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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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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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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곤드 대륙 #8

DUMMY

투발카와 구야자는 비록 출신 성분은 다르지만 소드라우프니르를 넘어 곤드 대륙의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대장장이였다.

대장장이들은 제각기 재능이 출중한 분야가 달라서 어떤 이는 재료를 만들어내는 걸 잘하고, 어떤 이는 부여 마법을 잘 다루고, 어떤 이는 쇠를 두드리는 것을 잘하며, 어떤 자는 무기를 만드는데 뛰어나고, 어떤 이는 방패나 갑옷을 만드는데 능숙하다.

이 둘은 그런 대장장이들 중에서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자랑하는 최고의 대장장이들이었다.


구야자는 선대 국왕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정치보다는 대장장이 일에 관심을 보였고 선대 국왕과 그의 형제들은 그런 구야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며 재능을 키워줬다.

다른 형제들이 정치적인 투쟁을 거듭하고 있을 때 구야자는 겨우 14살의 나이에 자신이 쓸 대장장이 망치를 직접 만들어냈으며 겨우 18살의 나이에 전설 속의 국왕 안드바리를 기념하는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구야자는 어렸을 때부터 최고의 스승들과 최고의 재료들과 최고의 환경에서 실력을 쌓아갔고 마침내 서른이 되어서 자신의 라이벌인 투발카가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 전설들에 나오는 드워프 시조들을 따라잡을 인재라고 칭해졌었다.


투발카는 구야자와는 너무도 달랐다.

영주나 귀족의 자식은커녕 대장장이의 자식조차 아니었던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보부상 부부의 아들이었다.

장남도 아닌 삼남이었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따라다니며 드워프 왕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낮에는 형들과 부모들 밑에서 일하고, 밤에는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하던 투발카는 장사를 위해 돌아다니다가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여러 대장장이들의 공방을 엿보았고 거기에 조금씩 노하우를 익혀가며 부모 몰래 조금씩 연습을 하였다.


투발카의 부모들이 마침내 투발카가 17살이 되던 해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고향에 가게를 내기로 했을 때 투발카는 부모형제들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는 대신 독립하기로 하였고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부모님과 두 형들이 쥐어준 얼마되지 않은 돈이었다.


투발카는 그 돈으로 가장 먼저 곡괭이를 구입해 보부상으로 돌아다니면서 유심히 봐뒀던 어느 야산에서 직접 광물을 캐고, 원시적인 화로와 용광로를 직접 손으로 만들어 자잘한 금속제 식기를 만들어 내다 팔았다.

그러나 관청에 신고도 없이 영주 혹은 국가 소유인 야산에서 불법적으로 광물을 채취하고 가공해 파는 것을 엄연한 불법이었기에 투발카는 게으른 관청 공무원들이 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해당 지역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조금씩 돈을 모으며 실력을 기른 투발카는 수도 안드바리나우트에서 열린 경연대회에서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해 이름을 날렸고 그 어떠한 스승도, 뒷배도 없이 나타나 우승을 차지한 그는 전통을 중시하는 늙은 드워프들이 보기에는 이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실리와 효율을 중시하였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두 드워프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그 둘은 서로 붙어다니며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였고 40년이 지난 뒤 모두에게 인정받는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었다.



"크르르르!"



허나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던 이 두 드워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한 죽음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둘 다 70대라는 드워프들의 평균 수명의 딱 절반 정도를 지난 이 최고의 대장장이들은 현재 옛 드워프 선조들이 살고 있던 지하 왕국 마추픽의 제4공동에 있었다.


드워프들이 떠나가 폐허가 된 도시의 폐건물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는 투발카와 구야자의 몸에서 수많은 상처가 나있었고 보통 인간이었다면 진작 무력화되었겠지만 억센 드워프 특유의 체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몇 개월 전 이 제4공동에서 태양석을 가져온 드워프 장인들은 자신들이 전설과 신화에 나오는 드워프들의 고향 마추픽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들뜬 나머지 그동안 제4공동에 어둠이 드리워진 걸 알지 못했다.


몇 개월 전에 마추픽으로 들어온 통로를 그대로 따라가며 확성 마법으로 날카로운 쇳소리를 증폭시켜 괴물들을 유인한 사이 태양석이 사라져서 어둠이 드리운 제4공동으로 들어온 이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덮쳐오는 처음보는 괴물들에 놀라 이리저리 달아나야 했다.


어지간한 소규모 영지 수준으로 거대한 마추픽의 제4공동에는 다행히 숨어있을 폐건물들과 식량으로 쓸 식용 버섯이 자생하고 있었지만 빛 하나 없는 어둠의 도시에서 드워프 장인들은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어둠 속의 괴물들은 어둠이 익숙하다는 듯이 횃불을 들고 있던 그 두 드워프를 덮쳤고 지금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건 서로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형님께 부탁해서 군사들을 데려오는 거였는데"



왕족인 구야자는 태양석을 처음 수도로 가져갔을 때 형인 흐레이드마르 9세가 마추픽 발굴에 도움을 주겠다고 했을 때 그 제안을 거절한 것을 후회하였다.

만약 태양석이 사라진 지하가 이런 괴물 소굴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절대로 형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손때가 타지 않은 온전하게 보존된 드워프들의 고향을 자기 손으로 전부 발굴하고 싶다는 욕심이 화를 불러온 것이다.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하나... 우라질, 죽기 전에 신들이 필멸자들에게 내려준 무기를 능가하는 걸 만들고 싶었는데"


"킁킁, 크르르..."



구야자는 어렸을 때 운 없이 전장에 물건을 팔러 갔을 때 봤던 어둠의 신 아펩이 뱀 수인들의 왕에게 내려준 거대한 전투용 낫을 떠올리며 결국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며 한탄했으나 아직 완전히 체념한 것이 아닌지 벽 너머에서 그 둘을 찾는 괴물의 소리가 들리자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숨을 죽이고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두 장인은 괴물의 소리가 멀어지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구야자는 초췌한 얼굴로 아까 친구의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며 말했다.

물론 어둠 속이라 그 둘은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식량은 얼마나 남았나 친구?"


"지금 내 가방에도 보존식이 한가득이고 내 발치에 버섯이 걸리적 거리는 걸 보니 충분할 거 같네."


"그럼 물이 문제군"



물은 대부분의 생명체들의 근원이며 지하에서 쉴 새 없이 땅을 파내려가기 적합하게 진화해서 평범한 인간보다 갈증을 오래 버틸 수 있는 드워프들조차 아예 물 없이 버틸 수는 없었다.

이전에 태양석이 있을 때 제4공동을 구석구석 조사한 덕택에 아직 마르지 않은 우물의 위치는 알고 있지만 밖에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물을 떠오는 건 굉장한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두 장인은 어떻게 물을 보급해야 할지 고민했으나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서로 말 없이 고민만 하던 때에 갑자기 투발카가 뭔가를 감지하였다.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나?"


"나도 들은 것 같네 이건..."


"꾸어어어어!"


"크헝어어!"



투발카와 구야자는 갑자기 건물 밖 거리의 괴물들이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한 것에 잔뜩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으나 그보다 더한 소리가 그들을 덮쳐왔다.



구구구구구!!



그들이 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소리는 지진의 전조였는지 가만히 건물 안에서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제대로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진동이 그들을 아예 눕게 만들었다.

두 장인은 급히 자신들의 가방을 위로 향하게 해서 낙석에 대비하였고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있던 건물이 진동에 의해 쩍쩍 갈리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쉴 새 없이 지하 전체가 흔들린 뒤 갑자기 진동이 잦아들었고 가방 밑에 숨어있던 두 장인들은 조심스럽게 자기 앞의 돌무더기만 살짝 치워서 밖을 내다보았다.


건물 벽이 무너져 드러난 어둠만이 깔려있던 거리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타오르는 마력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서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괴물들은 다 함께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이 자신들이 제4공동으로 들어오는데 사용한 통로 쪽이라는 걸 투발카와 구야자가 깨달았을 때 갑자기 잦아들었던 진동의 2파가 덮쳐왔다.



구구구구구!!


"이거 좀 위험한 것 같네!"


"여진이 계속될 텐데 괴물들의 주의가 분산되었을 때 빨리 달아나야 하는 거 아닌가?"



투발카는 구야자의 말에 갈등하였다.

어차피 지진으로 몸을 숨기던 건물이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이곳에 오래 있어봤자 별로 좋을 것은 없지만 지금 몸에 마력광을 번득이고 있는 괴물들이 쫙 깔린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 괴물들에게 들키면 이제는 엄폐물도 거의 없는 제4공동에서 도망치기가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투발카와 구야자는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었다.

아예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심한 지진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지진은 10분동안 지속되었다가 30초 정도 멈추고 다시 10분동안 계속되는 걸 반복하였고 그렇게 지진이 5번 쯤 계속되었을 때 구야자가 바닥에 엎드려서 등을 가방으로 방어하면서 친구인 투발카에게 힘겹게 기어가 말했다.



"그런데 아까보다 괴물들 숫자가 줄어든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아니, 확실히 불빛이 줄어들었네."



거의 1시간 가까이 지속된 지진 속에서 천장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인지 마력으로 몸을 뒤덮어 방어하던 괴물들이 내뿜는 불빛의 숫자가 일부 줄어들었다.

두 드워프들은 어쩌면 이대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달아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다시 반복되는 진동 속에서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크오오오오! 크워엉! 구어어엉! 구엑!"


"저, 저건?"



드워프들은 자신들 근처에 있던 두 발로 직립보행하는 사람 정도 크기의 용종 괴물이 갑자기 바닥으로 빨려들어가며 사라지는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괴물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며 몸의 마력을 끌어모아 자신을 지키려고 했으나 마력으로 만든 반탄강기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흡수되며 이내 몸 역시 바닥으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두 드워프 장인들은 부여 마법에도 조예가 있었기에 빨려들어간 마력이 바닥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들어가는 걸 감지할 수 있었고 땅 속에서 맥동하는 혈관 같은 것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여긴 어느 거대한 괴물의 뱃속이었던 건가?"



아직 던전이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투발카와 구야자는 마추픽을 침식한 어둠이 신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아니라 거대한 괴물의 신체 일부가 아닌가 생각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곳에서 살고 있던 건가? 그게 아니면 괴물이 뒤늦게 주인 없이 방치된 마추픽을 침식한 건가?"



정답을 알지 못하는 두 드워프들은 섬뜩한 느낌을 받고 지금 하나씩 사라지는 괴물들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였다.

그 눈빛에 깃든 뜻은 당연히 달아날 타이밍에 대한 것이었다.


태양석이 사라져 어둠이 깔린 마추픽의 제4공동에서 가로등처럼 늘어져 있던 괴물들의 마력광은 지진이 거듭되면서 하나둘씩 사라져갔고 마침내 그들이 들어왔던 통로 근처의 모든 괴물들이 사라지고 30초 동안 진동이 잦아드는 시간이 왔을 때 드워프들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려 신호를 주고받고는 뛰기 시작했다.


가방 위에 쌓인 낙석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고 아직 남아있던 괴물들 중 일부가 드워프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달려왔지만 죽을 힘을 다해 뛰는 드워프들은 그 숏다리로 나오는 속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달렸고 다시 지하 전체를 흔드는 지진이 시작되었다.


지진 때문에 크기에 비해 힘이 강한 드워프들은 잘 버틴 반면 거대한 괴물들은 지진에 휘청거리며 뒤처졌다.

통로까지 거의 다 온 드워프 장인들은 희망을 붙잡고 전력으로 내달렸으나 그때 갑자기 구야자는 발을 내딛은 바닥이 움푹 파이면서 균형을 잃어버렸다.

지진으로 약해진 지반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가 구야자의 몸무게가 실린 발이 닿자마자 폭삭 주저앉아버렸던 것이다.


구야자는 앞으로 쓰러지면서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앞으로 고꾸라져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고통보다 지진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괴물들의 발소리에 더 집중했다.



"친구여!"


"가! 어서가게 투발카!"



구야자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걸 깨닫고 친구에게 어서 도망치라고 외쳤다.

구야자가 몸을 일으키는 것보다도 뒤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가까워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대장장이 여신이 내려줬다 전해지는 태양석을 발굴해내는 위업을 달성하고도 자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게 될 줄 몰랐던 구야자는 한탄 대신 이왕 이렇게 된 것 친구라도 확실하게 탈출시키겠다고 결심하고 가방 옆 주머니 쪽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망치를 꺼냈다.


몸을 돌린 구야자가 본 것은 꼬리가 4개 달린 거대한 호랑이였고 그 호랑이는 윗턱에서부터 길게 뻗어나온 2쌍의 송곳니를 자랑하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와라 괴물아! 명예로운 레긴 6세의 아들 구야자가 널 상대하겠노라!"



구야자는 대장간 일로 다져진 팔 근육을 부풀리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괴물 호랑이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하지만 호랑이는 앞발로 구야자의 망치를 쳐낸 뒤 몸을 돌리면서 4개의 꼬리를 채찍처럼 구야자를 향해 휘둘렀고 구야자가 망치로 꼬리들을 쳐낸 사이 다시 몸을 돌린 호랑이가 구야자의 측면으로 바짝 파고들었다.

구야자는 아차 싶었지만 망치를 휘두른 손을 다시 되돌리는 것보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이빨들이 더 빠르게 그를 덮쳐왔다.



까앙!



그러나 그 순간 호랑이의 활짝 벌려진 입이 갑자기 구야자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대장간 망치가 호랑이의 머리에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괜찮나 구야자!"


"대장장이 망치를 가지고 뭐하는 건가!"



대장장이에게 목숨만큼 소중한 망치와 모루 중 망치를 주저없이 괴물을 향해 던져버린 투발카의 행동에 구야자는 경악했으나 투발카는 구야자를 부축하며 말했다.



"저깟 망치가 자네 목숨에 비하면 뭔 대수인가! 어서 가세나!"



예전부터 탈권위적이고 전통보다 기술 발전에 힘써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고 다녔던 드워프 답게 투발카는 자신이 던진 망치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구야자는 투발카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망치를 포기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도 그가 친구를 위해 망치를 포기할 수 있는 대장장이라는 사실에 감동하였다.


하지만 괴물 호랑이는 아직 죽지 않았다.

생명체의 급소인 머리에 투척된 망치를 맞고 뇌진탕이 와서 어질어질한 것인지 휘청거리고 있었지만 놈은 구야자와 투발카의 뒷통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고 구야자와 투발카는 서늘한 시선을 느끼며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침내 통로로 진입했고 어두운 통로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두 드워프 장인들은 자신들의 뒤를 쫓는 괴물들을 피해 어둠으로 가득 찬 통로를 넘어 방으로 나왔고 그곳에서 허공에 떠 있는 어둠 속의 무지개와 그 밑의 조상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근처에 모여있는 괴물들과 눈이 마주쳐서 얼어붙어버렸다.



"이젠 정말 끝인가"


"괜히 내가 고집을 부리면서 형님의 원조를 거절해 자네만 고생시켰군 투발카. 미안하네."


"뭘 그러나 구야자. 이것도 인생이지. 드모'우레스 님의 곁에서 다시 보세."



투발카와 구야자는 자신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드는 괴물들을 보며 체념을 한 것인지 마지막으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눈을 질끈 감았다.

괴물들의 흉포한 울음소리와 무언가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드워프 장인들은 그것이 누군가의 피가 흐르는 소리라 생각하고 고통을 예감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슬그머니 다시 눈을 뜬 드워프 장인들이 본 것은 바닥으로 빨려들어가며 울부짖는 괴물들이었고 삽시간에 시끄럽던 무지개가 떠 있는 무덤의 방이 조용해지자 두 장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다시 뒤쪽 통로를 바라보았으나 통로에서 그들을 쫓아오던 괴물들 역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 뒤였다.



"구야자?"


"왜 그러나?"


"나 조금 지려버린 것 같은데 팬티 여분 있나?"



마지막 순간에 죽음을 예감하고 포기해버려서 방광의 힘이 풀렸던 것인지 아래쪽이 축축해진 걸 느낀 투발카의 말에 구야자는 가방으로 손을 넣다가 자신의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한 번 주저하였고, 가방을 벗고 속을 뒤지다가 하필 옷을 넣어놓은 부분이 낙석 때문에 갈기갈기 찢겨져서 내용물 없이 텅 비어있는 걸 보고 말했다.



"하필 지금 제일 필요한 게 없군. 옷의 소중함을 이렇게 느끼게 되다니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


"이런 악신들의 우유 묻은 수염으로 짠 운명의 여신들의 실타래여! 목숨은 건졌는데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군. 이 나이 먹고 수염 없는 애들 마냥 실례를 하게 되다니"



드워프 장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서로 구석으로 가서 뒤처리를 시작하였다.

잠시 후 다시 깔끔해진 그들은 축축해진 팬티와 바지를 땅을 파서 묻어버리고는 다시 무지개가 떠있는 무덤 앞에서 모였다.



"바지에 그게 걸려서 좀 까끌까끌한데"


"천이라도 덧대지 그랬나?"


"그게 낫겠네. 잠깐만 기다려주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변 덕택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드워프 장인들은 문득 지진이 멈췄다는 걸 깨달았다.

괴물들도, 지진도 사라진 뒤 너무 조용해진 지하 왕국은 두 드워프들에게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고 그들은 잠깐 무덤 앞에 앉아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괴물들이 사라진 이유는 모르겠는데 더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네. 자네는 어떤가 친구?"


"나도 마찬가지일세. 안드바리나우트로 돌아가세나."



두 드워프 장인들은 미련없이 탐사를 중단하고 수도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리고 터벅터벅 힘 없이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통로 몇 개를 지나고 무지개가 떠 있는 방 2개를 더 지나친 뒤 그들은 통로 한복판에서 불빛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괴물들이 내뿜는 마력광이 아닌가 의심했으나 그 불빛은 따스한 횃불의 불빛이었으며 횃불의 불빛에 비춰진 그림자는 분명 사람의 것이었다.


이 괴물들로 가득 차 있던 지하에 자신들 말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구야자와 투발카는 혹시 구야자의 형인 흐레이드마르 9세가 그들을 걱정해서 붙여놓은 자들이 아닌가 하고 급히 불빛을 쫓아 달려갔지만 그들이 본 것은 성한 곳 하나 없이 온몸에 상처가 난 메이스를 든 4명의 인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달려온 드워프 장인들을 보면서 비릿한 웃음을 지었고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스파이크가 달린 검은 메이스를 쥔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말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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