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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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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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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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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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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또 하나의 복수의 끝 #5

DUMMY

한창 전투의 열기에 빠져 전투의 함성을 내지르던 불꽃 부족의 전사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머릿속에 들려온 목소리와 그 목소리가 들린 직후 날아들어 적들을 쓸어버린 광선을 보고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멈춰섰다.

전사들은 자신들이 모든 체중을 실어서 전력을 다해 몽둥이로 때리고, 창을 찔러야 간신히 관통시킬 수 있는 갑옷을 입은 외부인들이 한순간에 살점이 첨가된 녹아내린 금속덩어리가 되었다가 눈에서 보낸 신호가 뇌에서 처리되기도 전의 짧은 시간이 지나자마자 연기로 타오르고, 그 연기마저 광선의 압력에 휩쓸려 사라진 것을 보았다.


그들 중 눈이 가장 좋은 이들만이 적이 광선 속에서 녹아내렸다가 연기로 변해 사라진 것을 인지할 수 있었고 대부분은 적이 사라졌다는 것만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그들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걸 인지하기에는 충분하였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그들이 본 것은 태양이 폭발하는 것 같은 섬광이었으며, 그 섬광이 걷힌 뒤 그들이 본 것은 지금껏 가장 나이 많은 노인도, 가장 어린 꼬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언제나 따스하게 마을을 비춰주던 태양이 사라진 자리에는 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에 휘감긴 악마와 그 악마의 옆에 서 있는 진홍색 불꽃으로 된 존재가 서 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드는 두려움과 경외심,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친근감에 불꽃 부족민들은 아직 죽지 않고 남아있는 적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결국 어두워진 마을을 태양을 대신해서 비추는 두 존재를 가까운 곳에서 보고 있던 마을의 원로들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고, 전사들 중 일부는 뒷걸음치다가 동료들과 부딪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들 중 하나가 먼저 마을의 노인들처럼 무릎을 꿇자 다른 이들도 도미노가 무너져내리는 것처럼 무릎을 꿇게 되었다.



[이 지하의 퀴퀴한 냄새조차 얼마나 그리웠던가!]



불꽃으로 된 육신을 마음껏 움직면서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휘날리는 존재는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이 공기를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그저 세상의 모든 존재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고 불의 신이 빨아들인 공기는 이내 불꽃이 되어서 날숨으로 나왔다.



[내가 돌아왔으니 이제 게임의 판도가 다시 바뀔 것이다! 이 이그니의 인도에 따라 온 세상이 타오르고 새로운 폭풍이 몰아치리라!]



해방된 불의 신은 그러면서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잡고 들어올렸다.

그러자 끝을 모르는 공간에 뚫린 구멍 같이 어둡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검은 구체가 빛나더니 던전 전체에 지진이 일어났고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불꽃 부족은 몸을 낮추고 있었기에 큰 영향이 없었으나 아직까지 서 있던 알티로스 제국과 중부 아카이아 왕국군의 생존자들은 바닥을 뒤흔드는 진동에 휘청거렸다.



[이그니!]


[이게 누구야? 탈락한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있었나 영감탱이?]



그때 던전의 천장 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고 즉각 그것이 전쟁의 신 마헤스 무르간의 목소리라는 걸 파악한 불의 신은 신기하다는 듯이 그 목소리를 듣고 대답하였다.



[이거 아쉬워서 어쩌나? 내가 봉인되기 직전에 여러 보험을 들어놔서? 하하하하!]



불의 신 이그니는 제2시대 막바지에 던전을 만들면서 여러 준비를 해놓았었다.

자신의 부족이 들어가서 숨을 던전 대피소의 핵을 던전에 배치하지 않고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 그 던전 핵을 개조해서 다른 신들이 흘리고 다니는 신성력을 저장해놨다가 원하는 때에 써먹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 그 중 하나였고 이그니의 띠꺼운 목소리와 표정에 전쟁의 신은 화를 내며 말했다.



[흥! 일마타르를 돕기 위해서 온 것일 뿐이다]


[우리 만신전이랑 얼마 전에 맺은 불가침 조약을 알아서 파기할 정도로 일마타르 아지매랑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닌 걸로 기억하는데?]



이그니는 그 짧은 시간동안 지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시스템 로그를 보고 대충 파악하고 말했고 전쟁의 신은 이그니의 지적에 대꾸했다.



[협정은 하로나스를 포함한 일곱 신들과 나 사이에서 체결되었다. 거기에 이그니 너와 아바리투스는 없었지. 대리인의 서명도 없으니 너는 불가침 조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너의 부족은 더더욱 그렇고!]



전쟁의 신은 서약서에 서명을 한 신 중에 이그니가 없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이용하려고 하였다.

전쟁의 신의 말대로 포이부스가 제국 근위대를 단번에 몰살시켰지만 협정 파기는 되지 않았고 하로나스로부터 위약금으로 걸린 권능 포인트 소모가 되었다는 말도 없었다.

이그니 역시 방금 막 봉인으로부터 나왔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전쟁의 신을 도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가시려고?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전쟁의 신도 한 물 갔구만!]


[싸구려 도발이구나 좀 더 연습하거라!]


[아 그렇읍니까? 정복의 신한테 낚여서 미완성 주문으로 자기 부족 날려먹은 분께서 그렇다고 하시니 그런 줄 알겠읍니다.]


빠직!



이그니는 말투를 최대한 어눌하게 하면서 전쟁의 신을 도발했고 이렇게까지 모욕을 듣고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닌 전쟁의 신은 순간 뭔가 끊어지는 소리를 내더니 바로 던전 내에 자신의 힘을 보였다.

바닥에 흩뿌려져 있던 싸움으로 흘린 피들이 요동치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형상이 치솟았다.

전쟁의 신 마헤스 무르간의 화신체가 전장의 시체와 피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의 다른 이름은 솝두이며 파괴의 여신 세크메트의 아들로서 여겨지기도 하였고 또 다른 세상에서는 승리와 전쟁의 데바로 생각되었다.

악의 뱀을 쫓아내는 자, 신성한 사자, 살육의 왕, 칼을 휘두르는 자로 불리는 신은 주홍빛 몸에 연꽃을 들고 왼쪽에는 공작새, 오른쪽에는 금시조를 거느리고 사자 머리로부터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손에는 신의 창 벨(Vel)이 쥐어져 있었고 허리띠에는 활과 화살통이 매여져 있었다.



[하! 걸려드셨구요! 지금 이곳은 내가 직접 만든 던전 한복판인데다 나는 꽤 오랜 세월 약해졌다고 해도 본체! 일개 화신체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지! 반면 영감탱이 편은 직접 화신체를 내려보낼 생각도 하지 않는 일마타르 뿐!]



그걸 본 이그니는 쾌재를 부르며 포이부스에게 손짓을 하였고 포이부스는 즉각 자신의 마력을 담은 신들의 강림 매개체를 만들며 만신전의 신들을 불렀다.

놀랍게도 만신전의 신들은 단순한 화신체가 아니라 권능 포인트 일부를 소모해서 본체로 강림하였고 이그니는 친구들이 만전의 태세를 갖추고 내려온 걸 보고 비열한 웃음을 보이며 전쟁의 신 마헤스 무르간을 도발하였다.



[반면 내쪽은 내 친구들이 완벽한 태세를 취하고 잔뜩 온데다 이미 반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부하까지 있다! 자? 이제 어쩔 거지 전쟁의 신 영감님? 아무리 당신과 나 사이에 격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이 정도 전력차를 뒤집을 수는 없을 터!]



만신전의 신들은 이그니를 중심으로 진형을 짜기 시작하였다.

선두에 하로나스, 좌측에 드모'우레스, 우측에 에우레테, 후방에 프레두스가 서서 사면으로 이그니 주위에 서게 되었고 알고로스, 올'쏜, 킴푸루샤가 전쟁의 신을 경계하며 포이부스의 반대편에 서서 주변을 살폈다.

전쟁의 신 마헤스 무르간은 자신의 창을 쥐고 이를 갈면서 말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네 녀석의 본체니 지금 이곳에서 네 녀석에게 상처를 입히면 한동안 활동하는데 지장이 있을 거란 뜻 아닌가?]



그 말대로 이곳에 있는 건 이그니의 본체였으니 본체에 상처를 입으면 이그니는 한동안 운신하는데 지장이 있을 게 분명했다.

전쟁의 신 마헤스 무르간은 할 수 있다면 이그니의 기동력을 봉쇄하도록 다리를 노릴 생각인 것 같았고 이그니는 그걸 깨달은 것처럼 슬쩍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내가 순순히 당해줄 거 같아? 나는 그렇게 멍청한 신이 아니... 뭐하냐 프레두스?]



그때 이그니의 뒤에 서 있던 프레두스가 이그니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넣고 이그니의 팔을 휘감고 이그니의 목 뒤에서 깍지를 꼈다.

악몽의 신은 매우 평온한 웃음을 지으며 의문을 표하는 친구에게 말했다.



[이그니 너 지금 보니까 봉인 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자세가 구부정해진 거 같아서 교정해주려고 하는데 싫냐?]


[아니 지금 그럴 때가 아니... 그런데 드모'우레스? 내 왼발에서 뭐하고 있냐?]



불의 신은 자신의 왼발을 붙잡고는 망치질을 하면서 철판 쪼가리를 덧대고 있는 대장장이 여신 드모'우레스에게 말했고 드모'우레스는 프레두스와 완전히 똑같은 평온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리를 노릴 게 뻔하니까 갑옷 대신 할 것을 붙이고 있어!]


[그러면 굳이 철판을 바닥에 고정시킬 이유가 없지 않냐?.... 저기, 에우레테? 왜, 왜 바닥에서 꽃을 피워서 내 오른발에다 칭칭 감고 있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슬슬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이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오른발 밑에 특히 화염 내성이 있는 염난화의 꽃을 피워내서 그 줄기로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칭칭 감고 있는 에우레테에게 묻자 에우레테 역시 매우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 이그니가 내 신성력 일부 가로채서 던전핵에 저장시켜놨다 쓴 거 전~~~혀 신경 안쓰니까 걱정하지 마!]



이그니는 속으로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구만!'이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분위기가 너무 이상하게 돌아하는 현 상황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물론 예전에는 눈치 없이 이런 말도 막 내뱉었겠지만 하로나스한테 얻어터지면서 교정된 상태였기에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이다.

이그니는 슬슬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고 어느새 고개를 돌리고 있는 하로나스에게 물었다.



[하로나스? 내가 혹시나해서 물어보는 건데 지금 우리들... 강력한 적을 앞에 두고 있지 않냐?]


[그렇지]


[그런데 왜 마헤스 영감이 아니라 내쪽을 바라보면서 손을 풀고 있어?]


뚜둑! 뚜둑!



물과 나무의 여신은 주먹을 쥔 채 손을 풀고 있었다.

마치 스파링을 뛰기 직전의 격투기 선수처럼, 샌드백을 흠씬 두들길 준비를 하는 복서처럼 천천히 몸을 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죽음의 신 투오넬보다도 두렵게 보였고 전쟁의 신 마헤스 무르간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보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로나스의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 없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그니는 몸부림쳤지만 이미 세 명의 신이 그를 전력으로 붙잡고 있었기에 쓸데없는 저항에 불과했다.

이그니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저 멀리 물러나 있는 이들에게 외쳤다.



[알고로스! 올'쏜 영감님! 얘네들 다들 미쳤어 좀 말려봐! 적을 앞에두고 자중지란이라니! 아바리투스! 어디있냐! 좀 도와줘! 킴푸루샤?! 넌 또 왜 여기있어?!]



그러나 그들은 얼굴 앞에서 성호를 긋고는 불교식으로 합창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어야~ 어어야~ 어이제야!]



그건 틀림없는 장송곡이었고 이그니는 급히 비상탈출 버튼을 숨겨놓은 던전핵 목걸이를 발동시키려고 했으나 어째서인지 던전핵이 응답을 하지 않았다.

이미 올'쏜이 근처에 방해공작을 펼쳐놓은 상태였고 이그니는 떨리는 눈빛으로 포이부스에게 말했다.



[포이부스! 날 도와라! 이건 잘못되었어!]


"죄송하지만 제 힘으로는 무리입니다. 이게 다 이그니 님 능력이고 인생... 아니 신생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야지 방법이 없습니다."


[아들아!]



포이부스는 지금까지 영혼과 정신에 입은 상처는 치료할 약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몸 푸는 걸 끝낸 하로나스가 정권을 내지르기 시작하는 걸 보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 쌓여있던 분노와 증오와 슬픔이 한순간에 날아가며 썩어가던 마음의 상처부위에서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명치! 명치! 명치!]


뻐버버벅!


[커어억!]



2천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포이부스조차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하로나스의 연속 펀치에 이그니가 피 대신 불꽃을 토해냈고 하로나스는 계속해서 한방한방에 살의를 담은 연타를 가했다



[목젖! 목젖! 목젖! 겨드랑이! 겨드랑이! 겨드랑이! 인중! 인중! 인중!]


[갸야아아아아랄아라아앍! 푸켁!]


[사타구니! 사타구니! 사타구니! X알! X알! X알!]


[어어억!]


[배꼽! 배꼽! 배꼽!]



하로나스는 체계적으로 이그니를 패기 시작하였다.

최대한 고통에 익숙해지지 못하도록 여러 급소를 번갈아가면서 때리는 그 여신은 분노에 차서 아무렇게나 알고로스를 박살낼 때와 달리 냉혹한 복수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간다!]


훙훙훙! 깡!



이그니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프레두스가 물러나고 드모'우레스가 자신의 거대한 망치를 빙빙 돌리다가 이그니의 엉덩이를 때렸고 이그니가 앞으로 날아가면서 본 것은 하로나스의 두꺼워진 근육질 팔이었다.



뻑!


[갸각!]



뒤에서 밀리는 힘과 하로나스가 팔뚝을 내지르는 힘이 합쳐져 이그니의 목을 가격하자 이그니는 목뼈가 빠졌는지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하지만 이그니의 몸이 바닥에 닿기 전에 에우레테가 피워놓은 꽃들에서 나온 식물 줄기가 프로 레슬링 경기장의 로프처럼 이그니를 튕겨냈고 이그니는 그대로 손을 깍지낀 하로나스의 주먹질을 간신히 고개를 꺾어 피했지만 하로나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깍지를 풀고 바로 이그니의 몸을 거꾸로 잡고 들어올렸다.



콰아앙!


[아아아악!]



그리고는 그대로 이그니를 바닥에 내리쳐서 파워밤을 날리자 던전 바닥이 쫙쫙 갈라지며 지진이 일어났다.

그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마을의 돌로 된 건물 몇 채가 충격파에 갈라져서 무너졌고 하로나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그니의 허리를 잡은 채로 이그니를 한바퀴 돌려 한번 더 파워 밤을 날린 뒤 자세를 바꿔 저먼 스플렉스를 먹이고, 거기서 이그니를 놓지 않은 채 뒤로 젖힌 상반신을 일으켰다.



[다들 지금이야!]



하로나스는 이그니를 목마 태우듯 들어올렸고 드모'우레스가 에우레테를 낑낑 거리며 어깨에 올렸다.

에우레테는 그대로 드모'우레스의 어깨를 발판 삼아 이그니에게 날아들며 클로스라인을 먹였다!



뻑!



3인 협동 둠스데이 디바이스를 성공시키자 이그니는 반쯤 정신을 잃고 날아갔고 만신전 신들 중 이그니에게 원한이 깊은 신들이 쓰러져서 바닥에 처박힌 이그니를 둘러싸고 밟기 시작하였다.



[정의의 발길질을 받아라!]


[둘러싸고 밟는게 무슨 정의... 끄아악!]



이그니는 그새 탈골된 목뼈를 재생시켰는지 항변하려고 했지만 무자비한 집단 린치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처럼 유럽인들이 와인용 포도를 발로 밟아 으깨는 것처럼 이그니를 반쯤 작살내놓은 신들은 그를 강제로 일으켰고 다시 처음 포메이션대로 이그니를 속박하고 슬슬 뒷걸음질 치면서 도망칠 준비를 하던 마헤스 무르간에게 말했다.



[자! 어서 치세요 마헤스!]


[공격하쇼 마헤스 영감! 지금이 기회입니다!]



하로나스는 정성스럽게 마헤스 무르간의 손에 Avenger라고 적힌 막대를 쥐어주었고 마헤스 무르간은 떨떠름한 얼굴로 진짜 이래도 되는 건지 고민하며 물었다.



[진짜 쳐?]


[답답하긴! 지금 치라고 붙잡고 있지 않습니까!]



하로나스가 화를 벌컥내면서 마헤스 무르간에게 말하자 전쟁의 신은 지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건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에라 모르겠다!]


빠악!


[커억!]



딱 한 방.

딱 한 방이었다.

이그니가 비명을 내뱉고 마헤스 무르간은 자기 할 일 다했다는 듯이 막대를 놓고 바로 도망쳤다.

이 복수라는 이름의 광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전쟁의 신을 누구도 붙잡지 않았고 이제 이그니는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는지 축 늘어졌다.

에우레테와 드모'우레스가 각각 이그니의 목과 발목을 잡고 그를 번쩍 들어올렸고 이그니의 바로 밑에 하로나스가 대기하였다.

이그니는 더는 저항할 힘이 없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깨닫고 절규하였다.



[아, 안돼! 허리는 제발 봐줘!]



그리고 두 여신은 이그니를 정확하게 하로나스의 쭉 뻗은 무릎 위로 내리쳤다.

이그니에게는 자신의 몸이 하로나스의 무릎에 닿기까지의 찰나가 영겁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고 그 공포의 시간동안 눈을 천천히 돌린 그는 지금까지 지켜만 보고 있던 포이부스가 공중에서 낙하하고 있는 걸 발견하였다.

포이부스는 팔꿈치를 내밀고 있었고 불의 신은 자기 부하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지만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콰아앙!


뿌가각!



포이부스는 정확하게 이그니의 허리가 하로나스의 무릎에 닿을 때 동시에 자신의 체중을 실어 이그니의 배를 팔꿈치로 내리찍었다.

중력 + 에우레테와 드모'우레스가 이그니를 내던진 힘 + 포이부스의 몸무게 + 위로 올라가는 하로나스의 무릎의 속도가 전부 더해져서 신조차도 절명시킬 끔찍한 위력의 합동공격이 완성되었다.


알고로스의 허리뼈가 작살났을 때보다도 더 거대한 굉음이 지하 전체에 울려퍼졌고 끔찍한 3신 + 1명의 합동 백 브레이커를 본 불꽃 부족민들은 제발 이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가기를 빌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전쟁의 신도 도망쳤고, 살아남은 제국군과 왕국군조차 무자비한 신들의 린치를 보고 이젠 될대로 되라며 눈을 감고 포기한 곳을 원격으로 지켜보고 있던 여신 일마타르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게임 셧다운제가 이래서 생긴 거구나]



다들 게임에 너무 과몰입했다면서 게임 규제 법안의 필요성을 인지한 여신은 그대로 화면을 꺼버렸다.

하지만 일마타르 여신과 달리 이그니는 허리 뼈가 수천 조각으로 조각나는 고통 속에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감동한 포이부스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빗물처럼 맞으며 의식을 잃었다.


정의가 실현된 것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던 포이부스는 먼 곳을 바라보며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가족들을 부르며 말했다.



"웃는 팔뚝 삼촌... 파나... 레지나... 끝났어."



누군가는 복수는 허무하며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손에 남는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복수를 끝낸 포이부스의 손에 물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도 마음과 영혼을 후벼파던 상처 위에는 치료약이 뿌려지고 있었다.

영원히 찾을 수도, 만들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영혼을 치료할 약은 그의 마음의 상처를 봉합하였고 포이부스는 복수를 통해 마음의 안식을 얻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포이부스는 신염을 먹고 여전히 타오르며 백열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몸에서조차 증발하지 않고 흘러내리는 감동의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걸 그제야 인지하고는 눈을 손으로 비벼 눈물을 훔치고 웃어보였다.

비록 포이부스가 악마화 주문을 해제하지 않아서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마음 속의 짐과 절망이 사라진 얼굴에 피어난 그 웃음은 처음 치킨을 만들었을 때만큼이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환한 웃음이었다.


그러나 포이부스의 생각과 달리 신들의 복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들 이 트롤러를 둘러싸고 티배깅을 해주자!]


[옳소! 인증영상을 만들어서 명예의 전당에 영구 박제해주자!]


"아, 아니 그건 좀..."



포이부스가 정색하면서 그건 너무 잔인한 것 같다고 말리기도 전에 끔찍한 티배깅이 시작되었다.

불의 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으나 포이부스는 그 광경을 보면서 자신의 복수조차도 그저 미적지근한 보리차 수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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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뜻하지 않은 재회 #5 +11 20.03.12 1,989 70 14쪽
150 뜻하지 않은 재회 #4 +16 20.03.11 1,842 68 14쪽
149 뜻하지 않은 재회 #3 +11 20.03.10 1,851 77 16쪽
148 뜻하지 않은 재회 #2 +15 20.03.09 1,835 74 17쪽
147 뜻하지 않은 재회 #1 +11 20.03.06 1,870 84 13쪽
146 곤드 대륙 #12 +14 20.03.05 1,823 80 13쪽
145 곤드 대륙 #11 +17 20.03.04 1,818 82 17쪽
144 곤드 대륙 #10 +14 20.03.03 1,808 82 17쪽
143 곤드 대륙 #9 +11 20.03.02 1,823 79 20쪽
142 곤드 대륙 #8 +5 20.02.28 1,977 71 19쪽
141 곤드 대륙 #7 +13 20.02.27 1,901 6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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