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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뉴런 님의 서재입니다.

새벽 0시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SF

완결

도파민뉴런
작품등록일 :
2020.11.22 20:58
최근연재일 :
2021.01.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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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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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1.


새벽에 나가지 마라, 아버지가 늘 하던 말이다. 이젠 그 말이 그립기도 했다. “무언가 보게 될지 모른다.” 아버지가 아닌 자가 하던 말이다. 그자는 아버지의 탈을 쓴 자이다.

그자가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버지의 겉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자는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를 잡아먹고 흉내를 내는 괴물이었다.

내 아빠는 그럴 리 없어.

박정건은 서재에서 나오지 않은지 한 달이 넘었다. 서재란 곳은 군대 간 형 방이었다. 형이 군대를 가자마자 박정건은 전에 보지 않았던 책들을 싸 놓고 가족들 몰래 보고 탐독했다. 일자무식이었던 그는 책이란 문화와 지식의 도구를 흡수하듯이 틀어박혀서 읽은 지 2년이 되었다. 그동안 가족들과는 말도 하지 않았고, 다니던 공사판 목수일도 나가지 않았다.

박정건이 그토록 오래 가족들을 속이고 틀어박힌 이유는 뭘까? 전에도 가족들과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틀어박히고 난 이후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끼에 두 공기씩 먹던 식탐도 사라진지 오래다. 밥도 먹지 않았다.

그가 밥 대신 이상한 액체를 먹는 것을 보았다. 마치 시궁창의 오물 같았다. 이만이 아니었다. 한 지붕 밑에 있으면서 2년 동안 본 것은 5번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독한 냄새가 온 집안에 들끓었다.


옛날 물놀이 할 때 나 쓸 것 같은 검은색 튜브만한 거대한 타이어에 쇠살로 된 휠을 가진 오토바이가 나의 소장품 1호였다. 트로이는 빵빵한 뒤 타이어가 독 보이는 바이크였다. 빨간색 연료통에 오프로드 바이크처럼 주유 구 뚜껑에 대롱이 달려있다. 중학교 3년 때부터 타던 것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다. 열 여 덜 살이 되자마자 이종원동기 면허를 취득했고 경찰의 단속에 들킬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았다.

성인이 되면 바이크로 바꾸고 싶었지만 그간 정이 많이 들어서 바꾸긴 싫었다. 어차피 중고로 산 거 내년이면 폐차해야하는 골동품이었다.

베터리는 나간 지 오래였다. 다리로 강제시동을 걸어야 하는데 여간해서 걸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 너도 아빠처럼 사회생활 포기한 놈이냐. 엔진의 잔향음도 들리지 않았다. 덜덜 거리며 뜸이 드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씨발 기름이 없네.

등교시간은 늦었고 놈은 말썽을 부렸다. 진작 채워 넣지 않은 내 실수였다. ‘실수 덩어리 아버지를 조금만 닮아라. 조금만. 아버지가 언제 연장을 안 가지고 가든. 아버지는 개미야 개미. 여왕개미를 살리기 위해 일하는 일개미.’ 엄마가 늘 하던 말이었다.

젠장. 그 여왕개미는 큰 배가 없는 개미였다. 자신이 여왕이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하지만 전혀 여왕이 아니었다.

아버지란 자가 아직도 진짜인줄 아는 엄마가 미친년이다. 그자는 박정건이 아니란 말이다. 빌어먹을 년아. 그 생각을 하니 주유소로 오토바이를 끌고 갈 힘이 났다. 분노는 나의 힘. 사람들은 내가 왜 분노하는 줄 모른다. 왜 항상 화가 난 나고? 그건 나만 빼고 다른 모든 것은 다 좆같이 때문이야.

서울 시내에서 시속 백 킬로미터로 달려서 30분 거리의 학교에 도착했다. 어차피 늦을 것, 담배나 한 대 피우고 가야겠다. 동수 놈은 전자담배로 바뀌었다. 담배 값이 오르고 자작한 액상으로 만들어서 피운다고, 그게 싸다고 하면서 바뀌었다. 친구들도 그것을 피워대는 꼴이 아니 꼬았다.

“왜 너는 전담으로 안 펴?”

동수를 비롯한 친구들은 그렇게 말했다.

“돈 지랄 좀 하려고.”

내가 생각해도 비꼬는 말투가 거슬리지만 난 세상하고 맞지 않았다.

나는 알바를 한다. 닭은 싫고 피자를 배달한다. 밤에 잠깐 파트타임으로 하는 알바지만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우리 집에선 알바를 뛰면 혼난다고 하면서 돈 좀 빌려달라고 한다. 미친 세끼들....... 사장과 계약을 해서 바쁜 날만 하는 알바였다. 시급도 적다.

회색구름. 식빵 색깔 같은 황사먼지들, 태양이란 프라이에 우유를 엎지른 날씨, 변덕 많은 택시들(한 차선으로 가다가 깜박이도 키지 않고 다른 차선으로 옮기는 택시운전), 길거리를 다니는 쳐진 엉덩이의 아줌마들, 뜀박질 하는 여고생. 오전이란 한가하게 지나는 시간이 아니다. 중간에 바람구멍이 난 담배처럼 오늘도 좆같다.

지금쯤 1교시가 끝이 났을 거다. 이 시간에는 지각했다고 교문에서 잡는 선생은 없었다. 언제나 처럼 이 시간을 이용한지도 오래되었다.

학교 담 위로 개나리가 피어있다. 조금한 꽃들이 천공구멍처럼 어지럽다. 담은 높았지만 그건 밖에서였다.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면 지대가 높아서 담은 낮았다. 봄의 아지랑이들이 조금씩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심해지겠지, 학교에서 잠만 자는 녀석들 그중에 나도 끼어있었다. 엄마는 졸업은 해야 한다고 늘 말했다. 공부에 취미가 없다. 대학을 갈 필요도 없다. 내 길은 내가 선택한다.

1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렸다. 멀리서 보니 운동장으로 몇몇이 나온 것이 보였다. 오토바이를 외진 곳에다 숨겼다.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슈퍼 밑에 골목이었다. 초라한 집들.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미래가 없다. 잘 해봐야 언제나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사람들이다. 동수는 이 골목에 산다. 골목도 길어서 처음 가는 사람들은 해매기 마련이다. 골목과 조금한 집들은 거의가 비슷해 보인다.

잔디를 밝지 말라고 했지만 이 길이 빠르다. 축구부가 쓰는 운동장으로 잘난 척 하는 몇몇이 공을 차는 모습이 들어왔다. 패스를 하고 뛰고 수비 뒤 공간으로 들어온 공이 그물을 가른다. 골키퍼는 짧은 패스게임이지만 아쉬워한다. 공은 다시 공격에게로 간다. 수비들은 진을 치고 연습했던 포지션으로 이동한다. 운동장 한쪽만 이용하는 미니 게임이었다.

잔디 운동장 옆엔 마사토가 깔린 운동장이 있었다. 일반 학생들은 그 길을 이용해야 했다. 조금한 블록이 깔린 길이 가장자리로 있기는 하지만 돌아가기 싫어들 했다.

“야 거기 공 좀 차줄래?”

축구부원이 나를 보고 소리 질렀다. 공은 내 앞으로 오고 있었다. 펑 차서 그 축구 부원의 안면을 적중시켰다. 그는 아픈 듯 욕을 시부렸다. 제법 강하게 맞은 듯했다.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러 그랬지? 너.”

그는 정신을 차리고 내게 물었다. 다른 부원들도 그 말의 주위가 집중 된 듯 했다.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야. 너 임마.”

“제 건드리지 마. 유명해.”

한 부원이 말했다.


3학년 15반 3관의 제일 위층이다. 복도에서 야단을 부리는 놈들이 뭉쳐서 얼뜨기 짓을 하고 있다. 무시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몇몇은 자고, 교단위에서 손장단을 치는 놈도 있고, 칠판을 지우는 반장이 보였다. 교복치마를 만지는 미진은 굵은 다리가 길 여학생이다. 부당한 처사에 대항하듯이 짧은 치마를 단속을 비웃는 것처럼 말아 올린다. 몇몇 남자애들은 그녀의 다리를 힐끔거리고 있다. 크기는 했지만 길고 매끄러웠다. 내가 보기에도 잘빠진 측에 낀다.

여학생 책상 줄과 남학생 줄이 따로 있었다. 여학생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다.

“가출 한 거지? 걔?”

임미진은 말했다. 나는 누군가 떠올랐다. 그제부터 안경과 단발머리를 한 양수진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수진이가 그럴 애가 아니야. 걔 집 좋다. 끝내줘. 아빠가 어느 회사 사장이라지.”

최미영은 말했다. 우리 반 소식통이었다. 미영도 수진의 아빠에 대한 것은 잘 알진 못했지만 꼭 알아내고 마는 버릇이 있다. 한번 걸리면 모든지 알아내고 만다.

“가출할 애가 아니데....... 이상해.”

미진은 말했다. 삼인조인 김혜영이 끼어들었다.

“벌써 우리 반에 3번째야. 가출인지 실종인지 하는 것이.......”

아무래도 그 뉴스들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실종되었다 돌아온 사람들이 최근 2년간 많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실종된 기간 동안의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일대에서 심야 시간에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고 일주일이나 길게는 한 달 만에 집에 들어왔다. 연령도 제각각이었다. 초등학생부터 남녀를 가리지 않고 노인들까지 많았다.

“다들 돌아왔지만 이상해졌잖아.”

김혜영은 생각에 집중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다들 이상해. 실종된 것도 그렇고, 학교에서 20여명이야. 가출을 그렇게 많이 할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다른 아이들도 수근 거리고 있었다.

나는 창가 쪽 뒤 줄의 동수 옆에 앉았다. 날씨는 춥지 않은데 창문은 전부 닫혀있었다. 뿌연 얼룩이 유리에 가득해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계속되고 있다. 한동수는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에 열중이었다. 눈을 흐리멍덩하고 눈가에 눈껍이 끼어있었다. 연습장이 펼쳐져 있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앉는 바람에 그는 내 쪽을 보았다.

“안 오는 줄 알았다. 독고다이.”

녀석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반의 아이들도 그렇게 전염이 된 듯이 부른다. 그건 동수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녀석의 쌍판이 웃긴지 자신은 모르고 있다. 잘생겼다는 착각에 사로잡혀서 연예인이 되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놈이었다. 강동원을 닮기는 했지만 미스터 빈과의 합작품이었다. 행동은 미스터 빈에 가깝다.

“영어가 뭐래? 나 찾지 않아?”

영어 선생은 담임이었다. 오늘 일교시가 영어였다.

“이 놈 운 좋네. 담임은 오지도 않았어.”

“진짜야?”

“어재 종례도 안하고 오늘 아침에도 안 왔어. 일교시도 빼먹고.”

우리 담임의 이름은 전여운이다. 삼십대 후반의 노처녀고 그래서 인기가 많다. 제법 예쁘기도 했다. 눈이 크고 좀 튀어나왔다. 말투는 금속처럼 날카롭다. 혀를 굴려야 하는 잉글리쉬 발음이 독일어처럼 딱딱하게 들린다. 뛰어나온 눈알에 안경까지 끼었으니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잘 된 네.”

동수는 다시 볼륨을 높였다. 그리곤 최면에 빠져든 듯이 연습장에 코를 박았다. 녀석은 그가 계발한 나선형의 그림에다가 집중하면서 정신을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했다.

3교시와 4교시가 지나가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들 식당으로 갔지만 나는 학교뒤편 운동장 구석의 벤치로 갔다.

아무도 없어야 할 벤치에 점심시간도 마다하고 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야 박군소? 그냥 가냐?”

나는 돌아가려고 했지만 담임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돌아섰다.

“선생님? 여기는....... 왜?”

그녀는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뒤뜰의 플라타너스 그늘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었다. 치마가 짧게 허벅지 위로 올라있었다. 살색 스타킹의 올이 나간 것이 보였다.

“담배 피러 왔지?”

“아닌 데요.”

그녀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앉으라고 시늉을 했다.

“아니면 말고....... 양수진이 너희 동네에 살지?”

“그곳은 아니지만 위 동네에요.”

“그렇게 말을 잘라 먹을 거야? 수진이가 사는 집이 어디인지 알아? 너희 동네에서 가깝잖아.”

“아니요. 몰라요.”

반에선 나와 수진이가 제일 먼 곳에 살고 있었다. 둘은 동네가 이웃으로 가는 길이 같았지만 한 번도 같은 쪽으로 가지 않았다. 집도 어디 인지 모른다.

“그래 그렇구나.”

내 눈은 그녀의 다리에 머물렀다. 요즘 들어서 왜 자꾸 여자들에 다리에 관심이 생기는 걸까? 쳐다보고 있으면 괜히 이상한 마음이 든다. 담임의 다리가 예뻤다. 우리는 할 말이 없어졌고 그녀는 내가 허벅지를 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반대편으로 꼬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른 곳을 보는 척했다. 담임은 일어섰다. 내 어깨를 가볐게 치더니 사라진다.

“알았어. 다음에는 늦지 마.”

늦지 마라니 내가 지각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동수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선생이 안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나를 놀린 것이다. 뻔뻔하게 연기를 한 것이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든다. 앞머리 몇 올이 가볍게 날린다. 위로 넘기 머리카락이 몇 올 내려온 것이다. 세 시간 동안 참았더니 무지 피우고 싶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 하고 한 대 물었다. 조금만 지나면 담배를 피우려 아이들이 올 것이다. 그전에 피우고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 빨리 피운 다음 밥을 먹으로 가야겠다. 담임이 담배를 피우러 오는 놈을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오자 자리를 피한 이유는 뭘까? 담임은 그런 걸 참견할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냥 바람은 쐬러 나온 것이지.

어느새 5교시가 되었다. 대학을 포기 했는지 줄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포기가 아니고 학교보다 학원공부를 하느냐고 피곤한 학생들이었다.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고, 또 학원에서 공부를 할 생각이어서 학교는 잠을 보충하는 곳이 되었다. 선생은 칠판에다가 수식을 적고 있었다. 적다 돌아보고 포기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나도 깜박 졸았다.

차들이 주차된 골목길은 좁았다. 그곳을 뛰어가던 수진이 뒤를 돌아보면서 소리 질렀다. 먼 곳에서 본 것이라서 정확치는 않았지만 그녀였다. 꿈속에서 며 칠전의 일이 떠올라 깨고 말았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는 것을 보니 쉬는 시간이었다. 꿈은 생생했다. 왜 수진이 꿈속에서 나왔던 걸까? 그날이었다. 그날 수진은 내가 배달하고 돌아오는 새벽길이 보고 다시 보지 못했다. 내가 알바하는 피자집은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했다.

멀리서 수진의 모습을 보았지만 소리 지른 것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맡은 편 골목에서 뛰어오면서 뒤를 돌아보는 것을 본 것이었다. 그 순간 사장이 전화를 걸어서 빨리 오라고 하는 통에 더는 보지 못했다. 왜 수진은 그렇게 새벽에 뛰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었을 까? 요즘 실종 사건이 많아서 새벽에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수진이 왜 나의 꿈속에 나타난 것일까?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수진의 모습을 본 것이다. 생각하니 수상한 점이 많았다. 그날 새벽에도 그랬고, 자신의 동네가 아닌 우리 동네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도 그랬다. 우리 동네에만 유독 실종 사건이 다른 동네보다 더욱 많았다.

한동수는 여전히 음악에 집중을 하고 있다. 녀석을 보니 그가 얼마는 재미있게 시간을 때우는지 알겠다.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쳐다보는 것도 모른 체 몰입하고 있었다. 미진이 내 앞에 섰다. 다리가 더욱 매끄러워보였다.

“군소 너, 수진이랑 같은 동네 살지?”

미진은 내 책상위에 걸터앉았다. 치마가 짧아서 인지 다리가 유독 탐스러웠다. 나는 시치미를 때었다. 다리로만 가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외면하며 대답을 했다.

“아니. 수진이는 위 동네에 살아.”

내 대답이 짧아서인지 그녀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비슷한 동네에 사니까 본적의 많을 것 아니야.”

“그건 왜 묻는데?”

괜한 일에 끼어드는 것은 내게 좋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너 한데 단서를 얻을 만하게 없겠네. 우리는 수진이가 가출 할 얘가 아니라는 걸을 알아. 걔는 그럴 얘가 아니야.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

미진의 말은 요즘 수상한 가출 사건을 두고 말을 꺼낸 것이다. 그렇다고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건 그래. 걔는 공부도 잘했잖아. 우리처럼 그런 것도 아니고.......”

이번에 삼인조의 소식통인 최미영이 끼어들어서 말했다. 임미진과 최미영, 김혜영은 반의 삼인조였다. 언제나 같이 다니고, 붙어 다니면서 떠들었다. 그녀들은 공부는 못했지만 활발하게 학교생활하고 있었다.

“공부 잘한다고 가출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안 그래?”

음악을 듣고 있던 동수는 한마디 했다. 그도 가출로 여기는 건가? 아직 증거가 없는데.

“뭐하는 짓이야? 박군소?”

나는 미진의 다리위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만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이것이 떨어져 있어서....... 그만.”

나는 과자부스러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변명이 통한 듯이 미진은 내게로 가까이 왔다. “귀여워.”하면서 책상 위에서 나를 끌어 앉았다. 덕 뿐에 미진의 가슴이 내 얼굴에 닫았다. 포근했다. 약간 향수냄새도 풍기었다.

“얘들이 뭐하는 거야?”

최미영은 우리사이를 떨어트렸다. “니들 썸타는 거니?”

“아니, 가벼운 접촉이지. 개방된 사회에서는 이 정도는 해줘야지.”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왜 이렇게 설레는 걸까?

“니들 이상해? 미진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렇지 미진아?”

최미영은 나와 미진을 동시에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예는 여자 친구 있어. 내가 뭘.”

미진은 새침하게 말했다.

“그래도 수상해? 학교에서 그런 짓을 하고.......”

미영은 말했다. 한 번 보면 안다는 건가? 나는 화제를 돌렸다.

“금요일 밤에 수진이를 봤어. 우리 동네 골목에서 성성이고 있었어. 밤에 어디론가 뛰어가는 걸 알바하다 봤어.”

내가 말했다. 미진은 내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우리 한번 거기 가볼까?”

“안 돼. 엄마가 일찍 오래. 제사 지낸다고.”

미영은 말을 하고 자기자리로 갔다. 수업시간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그럼 할 수 없지 라고 하며 미진과 가만히 있던 혜영도 자리로 갔다. 우리학교에서 만 벌써 21번째 가출이었다. 가출인지 실종 사건인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전부 가출로 처리했다. 그들이 왜 같이 시기에 가출을 했을까? 수상함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국어선생이 들어왔다. 나는 수업에 집중 할 수 없었다. 가출 사건들을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저절로 생각이 되었다. 매우 땡기는 사건들이었다. 올해 들어서 우리 반 반장이 가장 먼저 가출을 하고 다른 반에서도 줄을 이어 가출을 했다. 모두 일주일이나 이주일 후에 돌아와서는 자신이 가출했다는 것도 모른 체 전에 있었던 생활로 돌아가 있었다. 그들은 무엇에 홀린 것 같았다. 어디에 있었는지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로 온 것뿐이야 라고들 했다.

국어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백발의 신사였다. 아이들을 때리지도 않고 부드럽게 타일렀다. 아이들은 그를 할아버지라 뒤에서 불으며 그를 좋아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이들을 심하게 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전에는 많은 학생들을 매로 다스렸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그러지 않았다. 하여간 나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수업을 마치고 트로이가 세워진 골목으로 가는 길에 스마트 폰이 울렸다. 피자집 사장이었다.

“오늘 8시까지 와라. 상근이가 오늘은 사정이 있다고 쉰다고 해서. 알았지?”

“네. 그래요.”

알바는 매일 나가지 않았다. 일주일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 나간다. 동네 오토바이 가게 아저씨의 소개로 오토바이 잘 타는 친구가 없냐는 사장의 말을 듣고 나가게 되었다. 벌써 사 년째 일하고 있다. 주중 야간과 주말에 일을 한다. 사장은 내가 학생이라서 정규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말렸다. 나도 좋았다. 이렇게 일이 있을 때 전화를 해서 나를 불렀다.

아이들은 우르르 학교 문을 나서고 있다. 뒤따라오던 동수를 따돌리고 트로이가 세워진 골목으로 갔다. 교복위에다가 사복 잠바를 입고 오토바이 위에 걸터앉았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보이지 않던 여자로 짐작되는 것이 내 뒤에 앉았다.

“나 좀 태워 줘. 미안 하지만. 크.”

돌아보니 임미진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내려! 어서.”

나는 크게 화를 냈다. 허락도 없이 올라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을 들키면 좋지 않았다. 태워달라고 하는 녀석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귀찮아진다.

“싫어. 안 태워주면 다 분다.”

“뭘?”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알 텐데.”

미진은 학교에다가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 다는 것을 불 것이다. 그럼.......

“이건 차비.”

그녀는 앞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 입술을 훔쳤다. 깊게 들어와서 흥분하게 만들었다. 정신은 혼미 했다.

“뭐야. 왜 이래?” 다시 정신을 차리고 크게 소리쳤다.

“자 출발.” 미진은 액셀을 당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클런치를 조절했고 우리는 넘어질 뻔하면서 한 바퀴 돌아서 골목의 좁은 길을 질주했다.

“다른 얘들에게 말하면 안 돼.”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매일 태워준다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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