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나는 살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시문아
작품등록일 :
2015.07.26 14:47
최근연재일 :
2017.08.27 18:3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47,428
추천수 :
1,059
글자수 :
98,197

작성
17.08.17 10:32
조회
122
추천
4
글자
12쪽

먹고보자 11

DUMMY

11


푸욱.

벽에서 윌슨을 내빼, 놈을 바라봤다.

두려움에 떠는 거지새끼. 입은 벙긋벙긋 여는데, 말이 들리지 않는다. 할 말이 꽤 많아 보이긴 하는데.


"궁금하지 않아. 관심 없다고. 그냥 죽어."


손을 들어, 윌슨을 내려치려 할 때, 순간 머릿속이 울려왔다. 누군가 속삭이는 느낌. 충동적인 도발.


"녀석을 빨리 죽여."

"죽여야 네가 살아."

"뭐?"

"놈을 죽이라고!"


누구일까.

주변엔 이 녀석밖에 없는데.


"제길. 막상 하라고 하니, 갑자기 죽이기 싫어지네."


혼란스러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뭘까. 주체를 없애버리면 간단한 일이라는 거,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죽일까, 말까."


지금 내 얼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살인을 저지르기 위한 보편적인 단계. 바로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마음이 동하자, 손에 들린 칼날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왠지 흰색 날이 붉어질 것만 같지 않아?

응? 안 그러냐고.


"그래, 안 그래."


무심히 내려다보니.

놈이 눈빛을 감당하지 못했다. 훑어보던 녀석이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이고. 마치, 죽일 거라면 어서 시행하라는.....무언의 동의.


끝없는 고민이 밀려든다.

과연, 날 죽여 나를 이해시켜야 하나?

이 혼란의 끝을 종결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 좋다."


결정을 내렸다.

뇌가 지배하는 감성 부분은 휘이 사라졌다. 오직 파괴.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내 오른손.


쉬이익.

놈의 심장으로 다가간 윌슨. 칼끝의 날카로움이 살점을 파고들었다.

감촉은 진짜였다.

살덩이를 찌른 느낌. 거짓이 아니라는......


"죽어."


놈의 입이 벌어져 간다.

슬픈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 들어 가는 동안, 물기 어린 녀석의 표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죽이는 이 상황. 정말 개떡 같고, 기분이 더럽지만.

일말의 양심은 있기에 놈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하아."


한숨을 내쉬고, 가슴에 꽂힌 윌슨을 빼내었다. 예전 벙커는 어느새 은색 빛이 발하는 방으로 변화되었고, 고개를 휘저어 주위를 살펴보니.


"역시 허상이었나."


많은 것이 뒤바뀌어 있었다.

거미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개판.


"기분만 잡쳤네. 구슬 때문에 들어왔다가. 제길"


윌슨에 묻은 하얀 물질을 바닥으로 휘두르자 흩어진 녀석의 액. 피라고 해야 하나. 하긴,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이게 진정한 네 모습이냐. 아니면, 또 있는 거냐. 응? 말해보라고."


녀석의 정체는 카멜레온 같았다.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이에 따르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행동들. 아마도 그게 나를 본떠 만든 허상이었겠지.


주위가 전환되고 빠르게 하얀 방이 드러났다. 역시나 여긴 놈의 머릿속 한가운데였다. 내장된 구슬. 유추해보건대 이건 생각보다 중요 부위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으로 치자면.


"뇌 속."


아무려면 어떠랴. 그게 뭐든 알 바 아니다. 구슬의 효능은 입증되었고, 내게는 수집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구슬이다."


정면에 정확하게 벽에 박힌 은빛 구슬. 보아하니 덩치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매우 작았다. 대략 메론 정도의 크기.


"등치에 비해 작네. 뭐, 일단은, 레어템이니까."


농부가 한철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거둬들이듯 녀석의 구슬을 조심히 집어 들었다. 어찌 됐건 이건 유니크한 구슬. 푸른 구슬과 붉은 구슬이 아까웠지만.


"더 좋은 것일 수 있어."


목숨과 바꿀 만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런데 만약 은색 구슬이 쓸모가 없다면? 가당찮은 효과라면 진짜 죽여버릴 거다.


"이제 여기서 나가야지.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빠르게 놈의 머릿속에서 빠져나간 뒤, 가져온 배낭을 찾았다. 낭떠러지 인근에 놓인 가방. 보온병을 꺼내 들고 보니.


"아, 쉣!"


그랬다. 너무 작았다.

생각은 했지만 이다지도 작을쏘냐. 썩을 보온병.

어쩔 수 없이 구슬을 터트려, 억지로 욱여넣고, 잽싸게 마개를 닫아버렸다. 두 개가 가득 찰 정도의 양. 이제 대망의 초록 구슬을 주워 담을 차례인데. 보온병에서 흘러내리는 은색 구슬 액체가 너무 아까웠다.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되지."


급히 입술을 가져다 대, 후루룩 들이마셨더니.


후르릅. 콰과광.


"뭐, 뭐야! 갑자기."


소용돌이치듯 머릿속이 울려왔다.

도대체 무슨.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있던 낭떠러지 위도 아니었다. 여긴 어디지? 어디냐고!


"아, 안 돼에에."


순식간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


삐릭. 삐릭.

여의도 상공에의 두 인영.


"이, 이게 대체!"

"갑자기 왜 그러는가?"


다급한 한 목소리.

외계 생물체의 놀란 모습에 곁에 있던 이가 되물었다.


"문제가 발생했다. 레벨 넘버 60짜리가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보고 있던 화면. 그 중앙에 포착되어 있던 은색 표시가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설마. 아직도 지구인들이 대항할 힘이 있는 건가?"


*


어둡다. 캄캄하다. 그런데 포근하다. 왜 내가 이런 곳에 있는 걸까. 평소와 다름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젠장, 은색 구슬."


역시나 옛 성인들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라 했거늘. 공짜라서 좋다고 양잿물이라도 퍼마실 놈이 나였다. 역시나 탈이 난 게 분명하다.


"미치겠네. 죽은 건 아니겠지?"


발아래로 시선을 돌리자 생각보다 멀쩡한 하체. 어라! 아직 다리가 있었다. 귀신이 되면 다리가 없어져서 붕붕 날아다닌다고 하던데. 다리가 붙어있는 걸 보니 죽은 건 아닌 가 보다. 이 와중에도 실없는 생각을 하는 나.

얼마나 구제 불능인 거냐.


"젠장, 거미 녀석. 끝까지 속을 썩이네. 내가 나를 죽여서 이런 꼴이 돼버린 건가. 제길. 외계 놈들은 모조리 없애버려야 하는데."


일단, 상황판단부터 한다.

바닥에 가지런히 몸을 뉘니, 기분은 좋다. 죽었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여자의 품속에 안기는 따뜻한 느낌. 안겨본 지가 하도 오래돼,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졸려. 그런데 죽어서도 하품은 나오는 구만."


멍 때리는 와중에 불현듯 스치는 생각.

아무리 독약을 먹었다고 해도 이건 이상하다. 눈알을 또르르 굴리며 주위를 살피자,


"설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이곳. 기묘했다. 거미 속에서 내가 나를 보는 것과 같이, 또 다른 내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색달랐다.


거미 안의 녀석은 어느 정도 허상 같은 느낌이었는데. 허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자는 달랐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나 자신. 즉, 본질 같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동화되는 느낌. 한편으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너, 누구야?"

"너야말로!"


본질적인 내가 나한테 물었다. 응? 그러고 보니 내 목소리가 저런 목소리였나. 신기하네.


"너 이 자식. 웃기지 말고. 대체 뭐냐고."


빈정거리는 말투에 기분이 상했나. 녀석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짓했다. 왠지 저것도 내 모습 같다. 그런데 왜 이리 기분이 더럽냐.


"미친 소리 그만하고 이리로 와."


자리에 털푸덕 앉은 녀석. 참나, 별 해괴한 일도 벌어진다.


"그래. 좋다. 앉았다. 어쩔 건데."


친구 같은 느낌.

내가 나를 보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줄은 몰랐다. 오늘 미친 짓거리.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냐?


"별로 시간이 없다. 네가 여기로 올 줄은 몰랐네. 원래 죽어서야 만나는 건데."

"그게 무슨 소리냐. 죽어서 만난다니."

"미친 새끼야. 얘기 끊지 말고 들어. 시간도 없는데."


저거 분명 나 맞다. 입에 걸레 짝 물듯 자연스럽게 욕을 내뱉는 걸 보니. 확실하다.


"알았으니, 썰 좀 풀어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놈은 앉은 자리에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왠지 눈빛이 심오하다고나 할까. 바라볼수록 깊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한테도 저런 면이 있나 싶기도 하고. 여튼 신기하다.


"원래, 너는 죽어야 나와 만날 수 있었다. 그 말인즉, 너의 생각하는 사고가 세상에서 없어질 때, 내 속으로 건너와 함께 소멸하는 거야. 그것은 실로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내가 죽으면 너와 만난 뒤에 내 존재가 없어진다는 거냐?"


녀석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적인 의미는 맞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만났다는 건 내가 죽은 거네."

"그건 아니다. 나도 모르겠지만 너를 만난 후에 함께 소멸해야 하는데. 제길!"


나 맞네.

내면의 내가 저 정도라니. 본래 내 성격이 이놈 때문에 버려진 듯하다.


"누가 내 성격 아니랄까 봐. 쯧."

"어? 어?"

"뭐야?"

"어라. 나 사라진다. 야! 담에 다시 와. 물어볼 말이......"


*


강렬한 햇살이 두 눈에 쏟아졌다. 너무나 눈이 부셔 실눈을 뜨고, 녀석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꿈인가. 그런데 너무 리얼했다. 내가 나를 보며 욕하는 느낌.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친구도 없고, 사람도 없는 세상. 아니 어딘가에 분명 있겠지만. 그래도 대화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을 겪어 보니, 여러모로 기분이 쏠쏠했다. 말도 못 하는 무기랑 대화하고 그랬었는데.


"에휴."


어느 정도 눈이 적응되니,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러다 외계 생명체가 나타나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박동수가 빨라지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어? 어?"


이게 무슨.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손끝 발끝에 힘을 주어도 도통 반응이 없자, 긴장감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뭐야!"


이런 미친 몸뚱이! 일어나라고!

외계 놈들이 오면 죽는 건 한순간이란 말이다. 절로 등가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정말로 농담이 아니고 큰일이다.


기를 쓰며 이빨을 꽉 깨물고, 억지지로 몸을 뒤척거렸다. 제발! 일어나라. 응?


다행히 소원을 들어주셨을까. 조금씩 몸에 생기가 돌았다. 빌어먹을 은색 구슬. 이게 다 그놈 때문이다.


한 일 년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것처럼, 몸이 엄청나게 무겁다. 그나마 심장이 안 멈춘 게 어디인가. 다시는 저거 안 먹는다. 내 본질이고 나발이고 간에 이 더러운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젠장할."


천천히 활기가 돌자 팔을 빠르게 저었다. 아직 구슬의 힘이 남아있을까. 확인차 뛰어보니 다행히 있었다.


"진짜 망할 놈의 은색 구슬."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윌슨을 손에 든 뒤 작업을 시작했다. 여전히 뭉개져 있는 거미들. 한 놈씩 머릿속을 확인하며 초록 구슬을 꺼내니.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네가 최고야. 초록아. 아주 많이 나오거라."


눈을 부라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니자, 어느덧 가득 찬 가방.


"그래도 한 30개는 건졌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은색 구슬은 버려버릴까."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추를 똑딱거리는 마음으로 고민했지만, 역시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까짓거 구하기도 어렵고. 내버려 두자."


일단 급한 건, 무기.

손에 쥔 윌슨을 보니, 마음을 급해졌다. 루이 2세와 아나트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더욱이 훌륭한 재료가 저기 있잖은가. 대형거미를 해부할 좋은 기회.

혹시나 저 녀석의 몸에 엄청난 비밀. 아니 재료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네 녀석. 갈가리 찢어발기겠다."


*


"이거 장난 아닌데?"


대형 거미의 머리에서부터 천천히 썰었지만, 녀석의 단단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붉은 구슬의 힘이 있는데도 해부가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상황.


"얼마나. 윽. 센 놈이기에 이렇게. 윽. 질기냐! 허엇차."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핫한 녀석.

삐질삐질 흘리는 땀을 닦으며 해부했지만.


"죽을 거 같아."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도 진도가 나가지 않자, 괜스레 짜증이 났다.


"그냥 때려치울까."


그런데.

멍하니 놈의 생김새를 관찰하는 동안, 어딘가에 시선이 집중됐다. 확연히 다른 부위.


"저런 게 있었던가?"


재빨리 엉덩이를 털어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내가 놓친 건지 아니면 새로 생긴 건지 모르겠다만, 호기심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저게 뭐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살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검정색 3 17.08.27 49 2 15쪽
15 검정색 2 +1 17.08.23 67 6 16쪽
14 검정색 +1 17.08.21 88 5 15쪽
13 먹고보자 13 +4 17.08.21 94 5 16쪽
12 먹고보자 12 17.08.20 109 4 15쪽
» 먹고보자 11 17.08.17 123 4 12쪽
10 먹고보자 10 +1 17.08.16 141 4 12쪽
9 먹고보자 9 +1 17.08.16 146 4 13쪽
8 먹고보자 8 +1 17.08.15 169 5 12쪽
7 먹고보자 7 +1 17.08.15 187 4 13쪽
6 먹고보자 6 17.08.15 224 3 12쪽
5 먹고보자 5 +1 17.08.15 266 4 12쪽
4 먹고보자 4 17.08.15 288 7 13쪽
3 먹고보자 3 17.08.15 329 7 13쪽
2 먹고보자 2 17.08.14 399 14 13쪽
1 먹고 보자 1화 17.08.13 762 14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