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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시문아
작품등록일 :
2015.07.26 14:47
최근연재일 :
2017.08.2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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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1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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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먹고보자 8

DUMMY

8


단, 사흘이었다.

동체 시력은 예전과 큰 차이를 보였으며, 이 모든 게 푸른 구슬 덕분이었다.


"좋네. 세상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다니."


공기. 사물. 모든 게 움직였다.

정지된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찾으라면, 내 마음 정도?


"어우. 쏠려, 됐고, 이 놈을 써먹으려면."


휙. 쉬이잉.

사납고 날카로운 검날. 바람을 가르는 루이 2세. 이놈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흔들림이었다. 아니 흔들리지 않는 직선적인 힘. 그것을 깨닫게 된 건 바로 하루 전이었다. 이전 전투에서. 아! 전투라고 불러도 되려나. 어쨌든 처음으로 사력을 다해 무찌른 풍뎅이. 녀석을 처리했을 당시 루이 2세의 역할이 상당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나도 참 목숨 걸고 병신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후우. 무식하게 힘으로 하려 하다니."


이렇게 좋은 검을 두고 써먹지를 못했나. 바보.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루이 2세를 허리춤에 채웠다. 푸른 구슬의 효과는 딱 12시간. 그 이상이 지나면 효력은 사라졌다. 그동안 먹은 게 6개. 남은 수량은 5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깝지 않다면 거짓이겠으나,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다면 뭔 짓을 못하랴. 일단 푸른 구슬을 먹은 뒤, 몸을 두루 살핀 것이 첫 번째 했던 일이다.


"참, 앙상하다."


그랬다. 외계의 침공 이후 지하에서 햇빛을 받지 못해 허여멀건 해진 얼굴이며, 빈약한 근육. 이 모든 것은 푸른 구슬로 인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필패를 면할 것이 아닌가. 그냥 지는 것은 상관없지만, 놈들의 식사감으로 전락하기에는 두려웠다. 씹어 먹히고, 뜯어 먹히고 싶은 인간이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그런 놈들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후욱, 후욱."


푸른 구슬을 먹고,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하며 놈들의 다리를 삶아 먹었다. 다행히 풍뎅이 녀석의 맛은 꽤 좋았다. 더불어 단백질이 풍부했는지 몸의 근육도 이전보다 불어 있었다.

아! 또 하나. 푸른 구슬의 효과는 눈만 좋아지는 게 아니었다. 지구력. 즉, 쉽게 지치지 않았다. 시력도 좋아지고 후각도 매우 발달한다. 그것은 곧 몸 안의 전반적인 생체리듬이 좋아졌다는 것.


"후욱, 후욱."


지금도 팔굽혀펴기를 하며 땀을 흘린다. 매일 이천 개를 목표로 삼아 단련시켜야 했다. 조금이라도 근육을 키워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후우우우."


드디어 오늘 할당량을 모두 채웠다.

더불어 앙상한 배에 왕자가 그려진다.

크하하하.


*


"이제 떠날 차례인가."


며칠 전부터 결심한 일. 바로 지하벙커를 탈출하는 것이다. 홀로 이렇게 늙어갈 수는 없다. 또한, 구슬이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다. 정부에서 외계 생명체의 비밀을 쉬쉬한 것도 이해가 갔다. 이런 희귀한 물질을 널리 퍼트린다면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책임질 수 없겠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거나, 무언가에 써먹으려거나. 그러나 그들이 몰랐던 것도 있었다.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끝장나는데, 본인들만 안다면, 그처럼 또라이 짓이 있을까? 집안의 금덩이 보물이 있는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비명횡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외계 생명체는 널리고 널렸다. 포획도 했을 것이고, 세부적인 해부도 해봤을 것이다. 다만, 사람에게 직접 실험하기에는 시간이 걸렸겠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했는지 모른다. 알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나 같은 인간에게 전해주겠는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됐다고. 이제 출발한다."


등에 큼지막한 가방을 둘러맸다. 내용물은 별거 없다. 식료품이 주를 이루었고, 차고 있는 윌슨 1호와 루이 2세가 전부다.


식량은 놈들의 살들을 뭉개버리고 동그랑땡처럼 만들었고. 배고플 때를 대비한 일주일 치는 문제 없다.

헌데, 제일 문제는 역시 구슬가방이었다. 부서질 수 있어서 장기적으로 본다면, 다른 저장 매체가 필요했다.


사실 그것이 가장 고민사항이다. 멀쩡하게 보관하는 방법! 어떻게 하면 가장 휴대성을 높일까. 깨부수면 수증기로 날아가니 그게 아쉬웠다. 그래서 단단한 밀폐 용기가 절실히 필요했다. 수증기가 채 빠져나가지 못하는 물건. 집안을 아무리 뒤져도 티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비커나 그런 비슷한 물건. 그런 게 가정집에 있을 리 만무하다.


"이놈의 집구석."


어쩔 수 없이 굴러다니는 보온병을 쓰기로 했다. 구시대적 물건이지만,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는 유일한 물건. 여기에 구슬을 보관할 거다. 보온용기는 딱 5개. 그것도 그리 큼지막하지 않지만, 아쉬운 대로 써야겠지.


인생의 첫걸음. 드디어 부자가 되기 위한 발판.


"기다려라. 구슬아. 이 몸이 나가신다."


자연스럽게 거미가 지나간 길을 따라 서울로 향했다. 이유는 당연하다. 초록 구슬! 하반신의 강화. 더 이상 말하면 입만 아플 뿐이다.


*


하루 간의 여정. 예상외로 한산했다. 외계 생명체들은 단체 소풍이라도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걸까. 벌써 침공이 끝나고 지네들 별로 꺼져버린 걸까. 그렇다면 대실망이다. 구슬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내 웅대한 부자 순위 1단계 작전은 해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린다. 이 얼마나 원통하고 슬픈 일인가. 내가 돈 벌어서 어디에 써먹겠느냐. 예쁜 여자랑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려 하는데. 시작부터 장난질이냐.

어? 그런데?


"드디어! 오예."


바라마지 않았던 은빛 게맛살들.

거미들이 보인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나의 거미.

게맛살과 같은 너를 사랑한다. 진짜로 말이야.


"작전. 작전이 필요하다."


낮은 포복으로 놈들을 확인하며, 100m 떨어진 거리에서 포획을 준비했다. 아무리 몸을 단련하고 무기가 좋다 한들 1대 100 싸움에서 어찌 이기랴. 그건 판타지나 무협지에서 그런 거다. 놈들을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는데?

빌어먹을 외계 놈들. 좀 한두 마리씩 안 다니나?


슬쩍, 로프를 꺼내 들었다. 들고 보니 어찌 써먹어야 하는지 머리가 안 돌아간다. 아무래도 하루 이천 개씩 팔굽혀펴기를 한 부작용 같다. 머리에 살이 쪘나.


"아! 미치겠네. 떠올려라. 초록 구슬들이 기다린다고. 이 멍충아!"


나도 모르게 머리를 치는 순간,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역시 국산 제품은 때리면 고쳐진다. 이것은 진실.

힘차게 로프를 짊어졌다.


이 로프는 일반 로프가 아니다. 예전의 바보 같은 행동을 본보기 삼아, 놈들의 심줄을 모아서 꼬아놓은 레어급 장비. 하긴 레어급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게 무슨 소용이랴. 잘만 잡히면 되는데.


"자 여기에 설치하고."


상당히 한적한 도시. 어딘지 잘 모르겠다. 하도 건물들이 다 박살 나고 아파트, 주택들 할 것 없이 모두 부서진 상태라. 그러니 예전의 기억을 가지고 어디라고 말하기 참으로 무색했다. 나침반을 들고 대략적인 위치. 그리고 구형 밥 주는 시계로 그나마 낮과 밤을 알아가는 나. 생각보다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흠."


사실 난 전자 물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한 거다. 리필도 필요하고 무언가 혼자서 동작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배터리라든지, 반드시 무언가 필요하단 말이야. 하다못해 전기라도 없으면 고물상에나 팔아먹어야 하는 것들. 그런 건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


"자아, 요렇게 묶고."


지금 있는 곳.

주택이 허물어진 곳. 여기저기에 하얀 벽이 부서져 잔재들. 오각형으로 짜인 로프기준 10m 주변마다 땅을 헤집어 홀을 팠다. 한 50cm가량 파버렸다. 쉽게 쉽게 팔 수 있었던 건 벽돌 몇 개 손으로 치우고, 루이 2세로 그어 버리면 간단했다. 이 구멍은 녀석들의 걸음을 느리게 만들 것이다. 또한, 로프가 묶인 곳은 내가 위치한 장소보다 약 7m 아래. 나는 오각형 로프로 둘린 가운데에 있을 것이고, 물론 벽돌들이 쌓인 높은 곳으로 적당한 엄폐를 유지한다.


"제대로야."


단단히 로프가 묶인 곳을 내려다봤다. 아무리 봐도 난 너무 머리가 좋은 것 같단 말야. 오각형의 끄트머리 지점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박이야. 정말. 음. 얍삽해. 크크큭."


옛날 영화에서 본 것은 고지대를 점령한 자가 전투에서 이기는 모습이었다. 그 말인즉,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때려잡기가 수월한 뜻이겠지? 내려다보며 아나트를 조준하고, 녀석들은 홀마다 다리가 빠질 것이다. 다리가 여섯 개니 이마저도 계산에 넣은 것. 왠지 모르게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다.


"정지된 적만큼 손쉬운 떡은 없다."


내 기준으로 외곽에 오각형의 로프. 이것은 그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방어선을 친 것이고. 놈들의 심줄은 꽤 질겨서, 루이 2세로도 몇 번을 칼질해야 잘렸으니, 쉬이 심줄을 뚫고 들어오긴 힘들겠지?


그런데 한 쪽으로 몰린다면 그것 또한 위험하다. 예상치 못한 반응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도주로는 나의 뒤 10m 가량 떨어진 낭떠러지. 물론 깊은 곳은 아니니까 상관없고. 바로 3m 아래 돌무더기가 삐죽 나와 있었다. 거기로 뛰어내린다면 놈들은 따라오지 못하겠지?


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생명의 동아줄은 여지를 남겨두어야 했다. 목숨은 하나이니까 말이야.


깊은 구덩이는 아마 녀석들이 침공했을 당시 싸웠던 흔적이리라. 딱 봐도 우리나라와 싸운 흔적이 역력했다. 폭탄이 떨어진 걸까. 뭐 상관있겠나 싶다.


*


"후우우. 자 그럼 시작해보자고."


아나트를 들고 거미들이 뭉쳐 있는 곳을 주시했다. 저번처럼 열댓 마리 정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냥 보기에는 사오십 마리는 훌쩍 넘길 태세다. 대충 봐도 우글우글했으니까.


"제기랄, 그냥 하지 말까."


왠지 두렵다. 일차에서 삼차까지 준비를 마친 뒤라, 아쉬운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 사랑스러운 것들아.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살겠냐. 너희가 뒈지든 내가 곱게 순직하든 어차피 한 번은 벌어져야 할 일. 대충 백 마리만 와라. 구슬 먹고 피를 토해도 내 기꺼이 감당해주마."


가방에서 꺼낸 보온병을 꺼내 들었다. 뽁 소리와 함께 푸른 구슬이 가득 찬 나의 보물. 손가락으로 하나 끄집어내 입에 물었다.

뽀득, 혓바닥에서 노니는 구슬을 작심한 듯 어금니로 깨물었다. 여지없이 흘러나오는 포도 맛. 난 역시 구슬이 좋아.


"자, 진짜 나 이번에 장난 아니다!"


아나트를 조준한 다음, 방아쇠울의 검지를 힘있게 잡아당겼다.

피슝. 퍽.


푸른 구슬을 먹어서 그런가. 적중률도 매우 좋았다. 한 놈이 쓰러지자 옆에 있던 거미들이 우왕좌왕하는 꼬락서니가 꽤 웃겼다. 지금 심각한 상황인데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어얼, 이거 작전도 필요 없겠는데. 역시 아나트 네가 짱먹어라."


피슝. 퍽.

다시 한번 아나트를 조준해 쏘아대자, 녀석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나에게로 향했다. 오줌을 찔끔 쌀 정도의 오싹함. 허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쓰레기들아! 꼬나보면 어쩔 건데!"


다시 조준하며 집중했다.

그러나 더는 아나트를 더 이상 잡아당길 수 없었다.


"이, 이런."


거미들이 달려오는 것이야 예상했던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이건! 거미들이 있던 장소. 그것은 주택가였다. 분명 그러했는데 왜 집이 움직이는 거냐고!


키웨웨액.

끼에에액.


소리부터가 기차 소리처럼 화통을 삶아 먹었나. 우렁찬 외침에 다리가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왜 집이 움직이는지 연유를 캐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뭐냐고."


두두두두두.

말이냐. 뭐냐. 왜 저리 빠르지.

심장이 입을 통해 튀어나왔다. 거의 그 정도로 놀라자빠질 것만 같다.


키웨웨액.

집이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이거 완전 보스급 거미인가. 눈에서 레이저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눈은 이미 풀려버린 지 오래다.


"망.했.다!".


집. 아니, 집만 한 개자식들이 움직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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