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나는 살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시문아
작품등록일 :
2015.07.26 14:47
최근연재일 :
2017.08.27 18:3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47,436
추천수 :
1,059
글자수 :
98,197

작성
17.08.15 14:29
조회
266
추천
4
글자
12쪽

먹고보자 5

DUMMY

5


공황상태다.

저런 목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등골마저 오싹했다. 외계 생물들이 지구를 뭐 어쩐다고. 사람들을 막 뜯어먹고 그러는?


"뭐라고 했지? 먹이?"


장난하니?

이러면 내가 서울로 갈 수가 없다고! 유럽마저도 끝장났다는데. 아시아권에서 그나마 여기가 제일 안전하다는 대한민국이!


"망했다. 망했어."


나간다고 한지 1분도 안 됐는데, 다시 지하 방이 최고라는 거냐? 미칠 노릇이네, 정말.


"제길."


왠지 모를 분노가 온몸을 휩쓸었다. 물론, 난 가진 힘이 없어 한없이 약해빠졌다. 어제까지도 깡통이나 주우러 다니며 하루를 아등바등 살고 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난......이제 강하다.

모든 원인은 저들이 지구를 침공했으니까 일어난 일이겠지마는. 그걸 역으로 난 강해졌다. 헌데 이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방송국에서 가끔 울려 퍼지던 목소리.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난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캐스터가 말하다가 뒈지는 건 좀 아니잖아. 내가 혼자라는 느낌을 머릿속에서 지워준 게 그 캐스터인데, 방송국을 쳐?


거지 같은 기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 더러운 기분이 온몸에 세포처럼 퍼질 것 같았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주위를 둘러봤다. 조그마한 지하 벙커. 오직 하나뿐인 안식처. 벙커라는 말이 어울리진 않지만, 나름 편안하게 살아왔다. 철제 사다리는 언제나 튼튼했고, 머리 위의 단단한 맨홀 뚜껑. 비록 작았지만, 햇살도 그럭저럭 비치는 내 집. 그런데 이제는 한없이 좁게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잖아!"


불쑥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 진짜 쓰레기였다. 하수구에 살던 쥐랑 다를 바가 무엇인가. 단지 서서 말하고, 인간이란 허울 좋은 감투로 치장하면 사람답게 사는 거냐.


"으아아아!"


허리까지 뒤로 젖히며 있는 힘껏 소리치자 조금이지만 기분이 풀렸다. 솔직히 외계 생명체의 말 한마디에 공포심을 느낀다. 근데 그게 어때서. 쫄리시면 뒈지시던가. 그런 뜻인가. 외계 곤충 새끼들아!


"후우. 일단 나가자."


사다리를 올라타고 지상으로 올라섰다. 풍족한 공기. 산뜻한 산소. 지구는 아름다운 나라야. 이 새끼들아.


아무 생각 없이 정신 사납게 동네를 뛰었다. 또 다른 놈들이 몰려올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다리의 힘은 여전히 건재하고, 도망칠 스피드도 충분하다. 물론 게맛살 구슬 덕분. 그리고 내게는 또 다른 구슬이 있다.

바로 붉은 구슬.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궁금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빌어먹을 기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뛰놀던 나의 동네. 이제는 축축한 습기만이 감싸고 돈다. 인기척은커녕 이제 개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은 이곳. 여기가 한국이며, 내 터전이었다.


"허억, 허억!"


겁나 뛰다 보니 어느새 집과의 거리가 5킬로나 떨어져 버렸다. 너무 많이 벗어났나. 침공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벗어나 봤자, 기껏 1킬로 남짓이었는데.

그때였다. 낯선 동네 어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것이.

찌륵, 찌르륵.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졌다. 일반 동물인가. 저렇게 소리를 내는 짐승이 있던가. 귀뚜라미? 나도 모르게 병신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닌 걸 잘 알잖아!

동공이 무참히 흔들렸지만 살아가는 게 우선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본능적으로 오른손이 허리춤을 찾았다. 없다, 없어!

루이 2세가 잡히지 않았다.


"빌어먹을."


소리가 점차 커지며, 엄청난 소음이 사정없이 고막을 때렸다.


찌르륵. 치르륵. 취히이르륵.


도대체 며, 몇 마리냐!

다리 안쪽이 후들거리며 식은땀도 나지 않았다. 무섭다는 느낌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현실.


"억......어억!"


혼란스럽다. 무섭다. 살려달라. 제발 살려 주세요.

미친 듯이 다리를 놀려 뒤로 뛰었다.

다행히 빠른 다리를 가졌으니 망정이지.


"으와아악!"


소리치는 병신. 이 동네에서 그 짓을 할 수 있는 자는 나밖에 없다. 무서우니 어쩌겠는가.

병신 같은 짓이지. 나 여기 있소. 와 다를 바가 없잖아!


쿵쿵쿵! 쿵쿵!

뒤돌아볼 수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지 않다. 오로지 정면. 앞만 보고 달린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어느덧 십 분을 달렸을까. 더는 놈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다."


허나 미처 몰랐다.

저놈들 중에도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을.


푸드드드득.

머리 위에서 어느새 새가 날아들었다.

난 비둘기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미친 반사신경으로 바닥으로 구르며, 자리에서 벗어나자 등가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슈후우웅!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웃으면 그게 더 미친 거겠지. 진짜 저들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곤충들과 새. 그것도 커다란 새. 외계 생물체가 아닌 거인족에서 온 것인가. 그렇다면 하늘에 떠 있는 비행물체가 설마 노아의 방주. 뭐 그런 거 의미?


미친 소리지.


*


적막한 서울.

그야말로 아수라장의 표본.

여의도 높은 빌딩의 사이사이, 외계 생물체는 입에 거품을 물고 다녔다. 자세히 바라보면 거품이 아닌 사람의 팔다리. 사탕을 입에 물고, 해맑게 웃는 아이같이 미소 짓는 그들이었다. 그 와중에 빌딩 꼭대기에 두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몇 번째 장소지?"

"글쎄. 별의 반대편은 적당히 정리됐고. 이 부근만 정리하면 끝날 것 같다."


한국어는 아니었다.

듣도 보도 못한 말투. 세상 어디에서도 저러한 말을 사용하는 국민은 없었다. 허나 그들의 모습은 분명 인간이라고 칭할 수 있었다.

다만, 머리가 좀 큰 대갈장군 스타일. 팔다리가 길었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색채가 없었다. 즉, 빨주노초파남보의 원색이 아예 배제된 것이다. 아! 아니었나. 자세히 보니 옷이라 칭할 수 있는 색깔이 있었다. 은색이 전체적으로 덮여 있고, 간간이 섞여 있는 관절마다 또 다른 색이 조금이지만 어우러져 있었다.


"이제 이 별은 우리의 차지야. 미개한 문명이지만 적당히 리모델링 하면 쓸만할지도 모르겠어."

"지난 이백 년간 지켜봐 왔지만 내 생각도 그래. 아주 괜찮아. 먹이도 적당하게 퍼져 있고."


그들의 말에 따르면 지속해서 지구를 관찰했다는 것인가. 지구인들은 나라마다 핵과 강력한 무기. 또한, 공중전을 위한 전투함대 등 다양한 전술 무기를 다량 확보했을 터인데. 이리 쉽게 정복당할 인간이 아니었을 텐데?


"웃기지 않아? 고작 원자로로 만든 고전무기를 가지고 우리를 상대한다는 것이?"

"쯧쯧, 그러니 이 별이 발전이 없다는 거야.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써먹으려 하다니. 미개한 족속들은 없어져야지. 특히 해충보다 못한 것들은 말할 것도 없지."


그들에게는 대체 어떤 무기가 있었던 것일까.


"적당히 생물을 살려놓자. 이후에 우리 종족이 터전을 잡으려면 관상용도 몇 개 있는 게 좋겠지."

"그렇긴 하지. 키우는 맛도 쏠쏠하고. 아이들한테 장난감으로 주기 딱 좋아."


그들은 킥킥거리며 도로 위를 바라봤다. 자신들이 데려온 모델. 레벨넘버 100 에서 200 사이의 생물들. 이 정도로 편하게 정리될 줄 몰랐기에 후발 편대가 걱정되었다. 뒤이어 오는 레벨 넘버 십 단위의 생물들. 그들의 푸념이 걱정되었다. 재미를 너무 빼앗은 게 미안했고, 고소해 했다. 누군들 알았으랴. 저단위 모델을 가지고, 이리 쉽게 끝날 줄이야. 본국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고양이가 쥐를 걱정하는 마음. 장난감이 될 인간들의 부족함. 이제는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만 했다.


*


새가 날아든다.

거대한 새가 날아든다.


휘유웅.

바람 소리를 요란하게 가르는 저놈의 새. 크기는 생각보다 엄청나지 않았다. 적당히 크다는 게 또 함정. 워낙 날쌔고 위협적이어서, 도저히 반항할 엄두가 안 난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놈들. 무리 지어 다닌다고 했다. 그러니 또 다른 놈이 덤벼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미칠 노릇이다.

덫에 걸린 놈들은 나를 공격하지 못했지만,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새는 달랐다. 이제 내가 덫에 걸린 마냥 처지가 바뀐 것이다. 기분도 더럽지만, 다리만이 생명을 보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에 열심히 달렸다. 똥줄 타는 느낌도 있지만 어쩌랴. 죽는 거보다는 나았다. 다행이었을까. 시간이 지체되자 저놈도 이내 포기했는지, 지들 무리로 떠나갔다.


"허억, 허억. 살아야 해. 헉헉."


어느덧 빙빙 돌아왔지만, 어떻게 해서든 집에 도착했다. 맨홀 뚜껑을 열기 전 주위를 훑어보는 것을 잊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재빨리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최대한 귀를 기울여 위험을 감지했다. 두근거리는 심장! 조용히 해라. 입에서 튀어나오겠다.


"제발, 쫓아 오지 마."


10분.

그나마 놈들의 반응이 더이상 없기에 그제야 낡은 침대에 몸을 기댈 수 있었다.

살아 남은 것이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욕은 다 하고 싶다.

그래도 사람이란 모름지기.

긴장이 풀리면 배가 고픈 법.

배에서 꼬르륵거리며 허기가 요동쳤다. 아까 먹던 다릿살이 남아있나. 이 와중에도 먹을 걸 걱정하는 내가 한심했지만 뭐 어쩌랴. 난 살아남는 게 제일 좋다.


개미의 다릿살이 남아있어 숟가락으로 남은 걸, 박박 긁어 배를 채웠다. 비릿했지만, 회라고 생각했다. 생선이라고 단정 지으니 먹기도 편했다.


여튼 배를 채우니 이제 미래에 고민해야 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도망 다니며 살 수는 없었다. 덫을 놓아 구슬을 모으며 살까. 그건 정말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복권이 맞을 리가 없다. 진짜 내가 잡은 거미와 개미는 천운이었다.


"새 자식. 그놈 잡으면, 하늘을 날 수도 있으려나."


오늘 새에게 위협을 당하고 보니 전술적인 상황과 무기가 필요했다. 그래! 원거리 무기가 필요했다. 총이라도 있으면 좋지만, 그런 게 없으니 문제였다.


윌슨 1호 1자루, 루이 2세는 대략 5자루. 내가 가진 무기의 전부. 곰곰이 생각에 빠지다가 일단 원시적으로 접근했다. 총 전에는 화살. 그래! 거미와 개미의 사체. 그것이다. 무기재료는 아직 있었다. 그걸 깎아서 만들면, 활을 쓸 수 있다. 워낙 단단한 재료니 숨어서 쏜다면 가능성은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산으로 올라갔다. 아직도 그대로 죽어 있는 사체. 녀석들을 보니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었다

퍽, 퍽.


"개 자식들. 퉷."


어제 새에게 당한 복수로 발길질을 몇 번 해주니 속이 시원했다.


"준비만 되면, 네깟 놈들 다 죽여 버릴 거야. 덤벼! 짜식들아."


한껏 거드름을 피우고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황급히 껍데기를 도려내고 보니, 여전히 남은 식량이 부족했다. 남아 있는 내용물을 싹싹 긁어 통에다가 담고, 최대한 놈들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복수하러 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보다시피 놈들은 통조림보다 수백 배 맛도 좋았다. 남길 이유가 없었다.

영양가도 있고, 우선으로 배고픔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무서운 거다.


"좋아. 준비 끝."


다시 집으로 돌아와, 생각한 대로 작업에 들어갔다. 화살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화살촉은 칼질 몇 번 해서 앞쪽을 뾰족하게 깎았고, 화살 깃은 집에 있는 깃털을 달아줬다. 푹신한 침대가 이내 딱딱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티이이잉.


"활의 탄력이 없어."


탄탄한 탄성이 필요하다. 장궁을 만들려면 음.


"좋아."


괜찮은 생각이 났다. 개미 다리를 다듬고, 녀석들의 심줄.

같은 부속물이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나쁘지 않았다.

이제 활이 완성되었으니,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 무엇이 제일 좋을까. 반드시 최고의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


"흐으으음! 생각났다."


나의 뇌리를 스치는 단어.


"너의 이름은 아나트. 아나트 넘버 쓰리다."


아나트.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수렵의 여신. 그리고 전쟁의 여신.


"앞으로 나를 수호해라. 너는 나의 여신이니까."


나의 세 번째 무기가 완성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살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검정색 3 17.08.27 49 2 15쪽
15 검정색 2 +1 17.08.23 67 6 16쪽
14 검정색 +1 17.08.21 88 5 15쪽
13 먹고보자 13 +4 17.08.21 97 5 16쪽
12 먹고보자 12 17.08.20 109 4 15쪽
11 먹고보자 11 17.08.17 124 4 12쪽
10 먹고보자 10 +1 17.08.16 141 4 12쪽
9 먹고보자 9 +1 17.08.16 147 4 13쪽
8 먹고보자 8 +1 17.08.15 169 5 12쪽
7 먹고보자 7 +1 17.08.15 187 4 13쪽
6 먹고보자 6 17.08.15 225 3 12쪽
» 먹고보자 5 +1 17.08.15 267 4 12쪽
4 먹고보자 4 17.08.15 288 7 13쪽
3 먹고보자 3 17.08.15 329 7 13쪽
2 먹고보자 2 17.08.14 400 14 13쪽
1 먹고 보자 1화 17.08.13 762 14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