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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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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152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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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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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챕터6-89.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2)

DUMMY

그 때였다.


무언가 단단한 몽둥이 같은 것이 자신의 머리를 후려쳤고, 번개 같은 통증에 정신을 차린 무명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정말 뼈만 남은 앙상한 노인 하나가 자신의 머리에 지팡이를 휘두른 것 같았다. 그는 무서운 눈빛으로 허공에 매달린 자신의 부모님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딜 한낱 뱀 귀신 따위가 사람을 잡아먹느냐! 너는 정신이 홀려서! 어휴, 너도 잡아 먹힐테냐?”


노인의 목소리는 다 쉬어 있었고, 쇠를 손톱으로 긁는 듯 날카로웠지만 그 기운 만큼은 맑고 카랑카랑했다.


그의 말을 들은 무명은 갑자기 그에게 달려가 그 노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했다.


“제발...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 저희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 거 같습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를 잠시 내려보던 노인은 옅은 한숨을 쉬며 잠시 망설였다.


노인은 이내 그의 품속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허공에 태우더니 손으로 어떤 수인(手印)을 맺으며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부모님이 공중에서 떨어져 거실 바닥에 쓰러졌다.


무명은 서둘러 그의 부모님에게 다가가 숨을 쉬는지 확인 해보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절명(絶命)한 듯 부모님의 안색은 파리했고, 두 사람 모두 숨을 쉬지 않았다.


무명은 그대로 부모님을 끌어 안고 대성통곡을 하며 슬프게 울부짖었다.


노인은 천천히 무명에게 다가와 하염없이 울고 있는 그의 눈을 말없이 한참을 쳐다보았다.


이내 고개를 몇 번 가로젓더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조용히 말했다.


“이미 한참 전에 돌아가셨느니라. 내가 네 부모님의 육체는 건졌다만... 저 사악한 뱀 귀신은 죽이지 못했구나. 영특한 것이 도망을 가버렸어. 혹여 복수를 하고 싶으냐?”


늙은 노인의 말은 차가웠지만 따뜻했다.


무명은 통곡을 하며 그에게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슬픔에 잠겨 울먹거리면서 말을 더듬는 무명의 대답을 들은 늙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무명(無名)’이다. 지금부터 너의 모든 걸 다 버려야한다. 할 수 있겠느냐?”


무명과 그 노인은 그대로 구미에 위치한 금오산 ‘도선굴’에 들어가 11년이란 세월동안 수련을 시작했다.


그가 동굴에 막 들어서고 결계를 치자마자 그의 스승은 그에게 낡은 천자문 책을 집어던지며 말했다.


“한 달 안에 한문을 독파해라! 한달이다!”


그의 명령에 그는 밤을 세우며 석 달 만에 한문을 모두 익혔다.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명은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무명은 스승님이 자신에게 던진 과제를 끝마치자 다시 스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스승님, 다음으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스승은 그의 말에 아무 망설임 없이 품안에서 낡은 책 하나를 정성스레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지금부터 이 책을 한글자로 빼지지 않고 모두 외워야 한다. 글자 토씨 하나 틀리거나 순서를 바꿔서도 안 된다! 책을 다 외우고 나면 그 후엔 손동작을 익혀야한다.”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무명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명의 시선이 꽂힌 것은 스승님이 쥐고 있는 낡은 고문서였다.


겉표지는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은 것인지 반들반들 그 칠이 다 벗겨져 있었다. 책 제목 역시 색이 바래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알아 볼 수 없을 지경이었고, 손때가 묻어 책은 반지르르 윤기가 날 정도였다.


겉표지는 거의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거의 거적떼기 수준의 넝마와 다름없었다.


조심스럽게 스승님에게 책을 건네받은 무명은 혹여나 책이 바스라질까 정말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거친 붓글씨로 쓰여진 한문들이 보였고, 곳곳에는 이상한 문양의 그림들도 보였다.


조심스럽게 연거푸 종이를 넘기던 무명은 이내 그것이 밀교 본진의 비전서임을 알아차렸다.


“스승님! 이것은...”


“내 언젠가 너에게 이것을 물려줄 것이다. 하지만 너 역시 연(緣)이 닿는 자에게 나와 같이 물려주어야 한다. 내 선대 스승님께서도 나와 마찬가지로 하셨다.”


무명의 스승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스승에게서 책을 건네받은 무명은 그로부터 그 책의 모든 내용을 익히는데 거의 오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동굴에서 그는 벗어나지 않은 채, 매일매일 절실한 마음으로 비전서를 달달 외웠다.


책 한권이었지만 모두 한문으로 쓰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상한 그림 문양들까지 똑같이 외워야 했기에 어떤 때는 책 한쪽을 외우는데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책 내용을 모두 외우자, 이번에는 외운 내용을 바탕으로 결계를 그리는 순서라던가 주문을 읊는 순서 등을 스승님에게 점검받아야했으며, 결계의 종류 그리고 수인을 맺는 방법까지 매일 매일이 점검과 확인의 연속이었다.


그렇기에 책 한권을 외우고 익히는데 시간이 더욱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새 봄에 시작된 수련은 해가 열 번 넘게 바뀌어 또다시 지겨운 겨울에 접어들었다.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이 맴도는 추운 한겨울이었다.


따로 난방도 하지 않아 동굴 안의 공기는 서늘하다 못해 냉기가 감돌았다.


동굴 한 가운데 모닥불에 의지해 한겨울을 보내야했지만 이상하게도 동굴 한가운데는 그럭저럭 버틸만한 온기가 계속 유지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스승님께서는 동굴 내부에 따듯함을 유지하는 결계를 쳐두신 것이었다.


스승님과의 만남을 생각하던 무명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아침의 서늘한 한기(寒氣)에 몸을 부르르 떨며 조심스레 스승님을 불렀다.


“스승님, 일어나셨는지요? 아침 식사하십시오!”


그의 말에도 스승님이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무명은 살며시 그의 스승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동굴 안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너른 바위 위에는 스승이 아직도 꼿꼿이 앉아 가부좌를 틀며 명상 중이었다.


“스승님...!”


무명이 그에게 가까이 가자 이내 무명은 놀라서 몸을 흠칫 떨었다.


“스승님!!!”


무명이 동굴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그의 스승에게 달려갔을 때, 무명은 이미 그의 스승이 세상을 떠났음을 직감했다.


그의 스승은 앉아서 가부좌를 튼 채, 그대로 입적(入寂)한 것이었다.


“스승님! 이렇게 돌아 가시다뇨! 안 됩니다!”


그는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스승의 손을 어루만지며 소리쳤지만, 그의 스승은 이미 죽은 지 한참인지 그의 손은 차가웠다.


한참을 그렇게 서럽게 울며 대성통곡을 하던 무명의 눈에는 가부좌를 튼 채 앉아있던 스승님 바로 앞에 놓인 작은 종이 한 장이 보였다.


‘混濯法鱗淸頸(혼탁법린청경) 七星必恭必敬(칠성필공필경)’


그 종이에는 붓글씨로 ‘혼탁법린청경 칠성필공필경 ’이라고 적혀있었다.


-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 우둔한 제자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무명은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며 그에게 공손히 예의를 갖춰 절을 올렸다.


더 이상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무명은 스승님의 유지를 지켜야만했다.


무명은 스승이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짐을 간단히 꾸려 동굴 밖으로 나가려 했다.


분명 스승님은 자신에게 아침 동이 트기 전에 하산하라고 하셨다. 그것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무언가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다시 한번 스승님을 돌아보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전에 부모님의 복수를 다짐하던 자신을 거두면서 스승님은 몇 가지 당부를 했었다.


“내가 너를 거두기로 결심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이 비전서를 전수할 만한 사람이 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스승님 역시 인연(因緣)이 닿은 나에게 이 비전서를 전수하시고자 마음먹으시고는 바로 나를 거두셨다. 너도 이 비전서의 전승자가 되어야한다. 두 번째 이유는 내 비록 영적인 격(格)이 낮아 큰 인물은 되지 못하나 너를 보아하니.... 후에 아주 나중에 너가 큰일을 할 인물이라고 보여 지는구나. 필시... 너가 중요한 일을 해내야한다. 명심하거라. 마지막으로....”


스승님의 말씀은 진지하고 엄숙했기에 무명은 그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


다시 한번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친 무명은 서둘러 동굴 밖에 펼쳐둔 결계를 잠시 거두고 천천히 발걸음 떼기 시작했다.





무명과 그의 스승이 수련을 한 곳은 경상북도 구미 금오산에 있는 ‘도선굴’이었다.


도선굴은 금오산에 자리 잡은 자연동굴인데, 신라 말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 스님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와 야은 길재 등이 찾아와 은거(隱居)할 정도의 절경(絶境)이었지만 오랜 세월 일반인들이 오를 수 없는 험난하고 위험한 길이었기에 1930년대에 구미 면장(面長)과 마을 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산을 오를 수 있는 길을 내는 공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스승님은 그 도선굴 제일 안쪽 깊숙한 새끼 동굴에 따로 은둔 결계를 쳐놓아 수련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도선굴 내부에 숨겨진 또 다른 새끼 동굴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의 결계는 그만큼 강력하고 대단했기에 일반인들의 눈을 피해 소리와 냄새. 심지어 움직임까지 그 기척을 감출 수 있는 은둔술의 정점이었다.


무명은 숨죽여 은둔결계를 잠시 해제하고 자신이 빠져나온 뒤, 다시 은둔결계를 쳐두었다.


무명은 천천히 금오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금오산은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파르고, 미끄러워 많은 주의가 필요했지만 1930년대에 사람들이 공사를 해놓은 이후에는 계단처럼 돌을 깎아놓아 일반인들도 트레킹을 하며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살짝 흐리고, 습한 공기 탓에 그리 선명한 일출은 아니었지만 서서히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무명이 울적한 마음으로 이제 어디로 향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그의 앞으로 어떤 거지몰골을 한 노숙자같아 보이는 늙은 할아버지 한명이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 ‘도선굴’이 어디로 가야 나옵니까?”


그의 행색은 거지몰골이 따로 없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맑고 청량했다.


그 노인의 주름진 얼굴은 무척이나 피곤해보였는데,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이 험난한 금오산을 등산하다니 무명은 그런 노인이 신기하고 의아했다.


무명은 아마 산을 좋아하는 노인이지 싶어 그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이며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위로 70미터 가량 올라가시면 나옵니다. 가는 길이 위험하니 천천히 조심해서 올라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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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6-89.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2) 23.12.03 3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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