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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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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119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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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6-88.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1)

DUMMY

흔히 ‘무덤’이라 함은 송장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놓은 곳을 말한다.


죽은 사람이 묻히는 장소인 무덤은 대개 흙으로 둥글게 쌓아 올리기도 하거나 돌로 평평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묘석(墓石)을 세워 누구의 무덤인지 표시를 한다.


죽음, 혹은 시신을 상징하는 무덤은 좋지 않은 불길한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조선시대 유교에서는 죽은 사람을 가까이해서도 안 되고 멀리 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나 바로 옆에 묘지를 조성하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거주지에서 너무 먼 곳에 묫자리를 쓰지도 않았다.


근대기에 접어들면서 무덤은 혐오시설로 인지되기 시작한다.


죽은 조상을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조상의 무덤이 가까이 있는 것을 선호하는 문화권도 꽤나 있다는 사실과 대비되는 요즘 풍속에 조상들의 무덤은 점점 잊혀져가고 사라져간다.





<챕터6. 사이비>




한 겨울에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마치 칼날과 같았다.


날카롭고 서슬퍼런 기운에 얼굴을 스치면 그대로 얼굴을 베일 것 같은 무서운 기세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굴 안은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지 않는 탓인지 오히려 온화한 기운마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은은한 촛불이 몇 개 켜졌을 뿐인데도 동굴 안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간혹 가다 물방울 한두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올 뿐 동굴 안은 쥐 죽은 듯이 정적만이 가득했다.


동굴 안에 켜둔 촛불이 일렁이며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종이에 붓으로 열심히 무언가 적고 있었다.


얼굴엔 비 오듯이 땀이 우수수 떨어지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였다.


그가 입은 얇은 잿빛 승복(僧服) 같은 옷 위로는 그의 몸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수증기가 모락모락 일고 있었다.


“스승님. 다 되었습니다!”


그가 깊은 한숨을 ‘후’하고 내신 뒤, 조용히 말하자 동굴 안 쪽 벽에서 가부좌를 틀며 앉아있던 늙은 노인 한명이 천천히 일어나서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깡마른 체구에 머리는 하얀 백발이었으며, 낡은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곱게 땋아 늘여 뜨려 놓았는데, 오랜 세월 머리를 깎지 않은 것 같았다. 또한 수염 역시 한동안 깎지 않았는지 무척이나 길게 자라있었다.


노인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젊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


“어느 새 대결계술까지 익혔구나! 장하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가르칠 것이 없겠구나. 고생했다!”


노인의 입모양은 웃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엔 기쁜 기색이 가득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 눈빛만은 서글프고 처연했다.


그런 노인을 향해 고개를 땅바닥에 숙이며 깊은 절을 하며 젊은 남자가 말했다.


“스승님! 이 모든 것이 다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노인은 슬며시 그에게 다가와 깡마른 주름진 그의 손을 들어 젊은 남자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이제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하여도 되겠구나. 무명(無名)아... 내가 너의 이름을 무명이라 지은 연유를 아느냐?”


어느새 무명이라 불린 젊은 남자의 맑은 두 눈에 눈물이 서리며, 그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전에 부모님께 듣기로는 제 사주에 물(水)이 많아 뱀이 꼬이는 팔자라 하셨습니다. 하여 저희 부모님 역시 뱀 귀신에게 돌아가시고 가업(家業)마저 기운 것이 아닙니까.”


“그래. 본디 사람의 인생과 운명은 신(神)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본인의 노력과 결정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넌 타고나기를 물의 기운이 강한 아이인데 이름 역시 물의 기운이 가득한 글자로 지었으니... 뱀이 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이름 자체를 지우고 살아야 네가 살 수 있다. 하여 내가 너를 무명(無名)이라 지은 것이다.”


무명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혹여 나를 원망하느냐.”


무명이라 불리는 젊은 남자는 빛나는 눈빛으로 또렷하게 노인을 쳐다보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하신 말씀입니다. 스승인 덕분에 천방지축 개망나니 같은 제가 이제야 겨우 인간구실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망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무명의 말에 그의 늙은 스승 역시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무명의 어깨를 잠시 움켜쥐었다.


“내일 아침 동이 트기 전에 하산하여라. 기억하거라! 꼭 동이 트기 전에 나가야한다.”


그 말을 끝으로 늙은 노인은 아까 자신이 가부좌를 틀고 있던 동굴의 제일 안쪽 너른 바위로 몸을 돌려 천천히 움직였다.


그런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는 동안 무명은 머리를 땅바닥에 박으며 그에게 계속 절을 올리고 있었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고, 무명은 아침상을 차려 깨끗한 물과 함께 자신의 스승이 참선한 곳에 걸어갔다.


스승님과 자신은 생식(生食)만을 고집하며 매일 같이 정갈한 생쌀과 소금, 그리고 물만을 먹는 생활을 꾸준히 지켜오고 있었다.


삿된 음식을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몸이 무거워지면 악(惡)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스승님의 말씀에 따라 최소한의 곡식만을 곱씹으며 그는 수행자의 삶을 산 것이 어느 덧 햇수로 11년 째였다.


무명은 구미에서 제일 유명한 지역 유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70년 중반에 접어들어 대통령이 그의 고향인 구미에 국가산업 섬유단지를 만들어 국가 발전을 도모한다는 정책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무명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공단 사업을 시작했다. 구미에 세운 공단은 어느새 제2공단까지 설립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며 가발, 섬유, 봉제, 완구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치게 되었다.


그로인해 무명의 집안은 갑자기 순식간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십여년 정도 시간이 흐르자 무명의 집안은 정원이 딸린 개인주택에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고용할 정도의 지역유지로 성장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은 새벽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반짝이는 불빛로 화려했고, 공장을 드나들던 물류 차들의 행진은 가히 장관(壯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안에 우환(憂患)이 들이닥쳤다.


정원 한쪽 끝에서 키우던 닭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끔찍한 몰골로 처참히 죽어있었다. 그 다음날은 마당에서 키우던 개가 피를 토하며 죽어있었다.


이상하다 싶었던 그의 할아버지는 인근에서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집을 둘러보게 하였으나 무당은 집안에 들어오기도 전에 마당에서 혼절을 하며 정신을 잃었다.


무당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마자 그의 할아버지에게 내뱉은 말은 이랬다.


“여긴 뱀 소굴이야! 뱀한테 잡아먹혀 죽기 싫으면 당장 이곳을 떠!”


평소 미신이나 무속을 믿었던 그의 할아버지는 길길이 날뛰며 당장 이사를 하자고 했지만 무명의 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무명의 아버지는 무당이 굿을 하거나 부적을 쓰라는 둥 돈을 벌기 위한 수작질이라며 할아버지의 말을 무시하며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결국 그 무당의 말이 맞았던 것일까.


무명의 할아버지는 일주일이 못가 정원에서 나무에 목을 매달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할아버지의 자살이 아무래도 자살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할아버지의 목과 손에는 뱀이 몸을 칭칭 감싼 것처럼 뱀이 똬리를 틀어 둘둘 말고 쥔 뱀자국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마치 뱀이 먹이를 감싸듯 그의 팔과 목을 쥐어 짜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무명의 아버지는 그 무당의 당부를 무시했다.


할아버지 몸 곳곳에 남은 자국 역시 본인 스스로 노끈으로 묶어 생긴 자국이지 뱀자국이 아니라고 우겨댔다. 애써 부인하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한달쯤 지났을 때, 무명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에 큰 불이 나면서 공단 사업은 하루아침에 쫄딱 망하게 되었다.


더불어 공장 운영을 위한 어음을 막지 못해 큰 빚까지 지게 되었다.


빨간 경매 딱지가 온 집에 붙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지역 유지라며 떠받들어준 이웃들은 모두 그의 가족을 외면하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집안의 가세가 기울면서 무명 역시 비참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주변 친구들 역시 그를 멀리하며 투명인간 취급했다. 사귀던 여자친구에게조차 비참하게 버림받고, 가진 것이 없어 몇날 며칠을 굶기도 했다. 무명은 매일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꾸러 다니곤 했다.


일련의 사태로 충격을 받아 쓰러진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무명은 막노동 일까지 하며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무명은 하루아침에 사람이 이처럼 비참해질 수 있구나 싶어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나날을 보냈다.


“죽어야 해!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 내가 죽어야 해! 죽자! 죽어버리자!”


무명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결국 자신의 아내와 무명까지 죽인 뒤 스스로 삶을 마치려 했다.


술에 잔뜩 취한 채 자신이 죽어야한다며 소리치며 무명의 방에 들어오는 아버지를 무명은 알면서도 잠이든 척 눈을 감고 있었다. 이렇게 비참하고 힘든 인생이라면 다 같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무명은 조용히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짐짓 자는 척하며 아버지의 행동을 기다리던 무명이 방안 가득 조용한 정적에 눈을 뜨자 자신의 방엔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목을 매단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였다.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부모님이 맨 밧줄이 뱀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광경에 무명은 슬픔도 잊은 채 멍하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무명은 눈이 풀린 채,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거실 한가운데서 그 뱀의 모습을 한 형상에게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채 매달려있는 부모님은 허공에 매단 인형처럼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무명의 눈에는 아직 부모님이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부모님은 흐릿한 형체로 고통스러워 발버둥치는 것 같았는데, 커다란 뱀은 그런 부모님의 모습이 즐겁다는 듯이 혀를 낼름 거리며 오히려 꽉 죄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내 ‘삭삭’거리는 뱀소리와 함께 무명의 몸을 타고 무언가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기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소름끼치게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무명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무명은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이대로 자신도 부모님처럼 뱀에 매달려 죽는 건가 싶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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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챕터6-89.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2) 23.12.03 33 1 11쪽
» 챕터6-88.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1) 23.12.02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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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챕터5-86. 해태(獬豸)- 신수 해태 (1) 23.12.02 36 1 11쪽
85 챕터5-85. 해태(獬豸)-아이티 부두인형 (3) 23.12.02 36 1 11쪽
84 챕터5-84. 해태(獬豸)-아이티 부두인형 (2) 23.12.02 34 1 11쪽
83 챕터5-83. 해태(獬豸)-아이티 부두인형 (1) 23.12.02 3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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