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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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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104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0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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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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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5-76. 해태(獬豸)-수원과 화성(華城) (1)

DUMMY

경환의 목소리에는 정말 미안함과 염치없음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저 일전에 제가 무례하게 버릇없이 군 건 정말 죄송합니다.”


수희가 '훗'하고 웃어보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환이 황급히 고개를 숙여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진짜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입은 옷차림이나 하는 행동이며 말투가 상현 씨를 빼다 박았네. 보아하니 상현 씨가 진짜 엄청 아끼는 후배 같아 보이는데 어쩜 하는 짓이 상현 씨랑 저리 똑같대? 진짜 웃긴다!


수희는 상현과 똑같은 로봇 같은 말투의 경환을 보자 슬며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무심한 표정을 지은 채 경환에게 말했다.


“아까 버스 안에서 저랑 같이 사는 승주 언니 폰으로 연락이 왔는데 상현 씨가 핸드폰 고장으로 저랑 연락이 안 돼서 오는 길이 어긋났나 봐요. 지금 자차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까 어디 카페 같은데 가서 이야기나 하면서 상현 씨 오는 거 기다릴까요?”


수희가 경환에게 눈짓을 하며 말하자 그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아는 조용한 카페가 있다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사실 경환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는 상현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경환은 평상시에도 명동 사채 시장에서 업무가 많은 상현이 너무 바빠서 답장을 할 수 없나보다 싶었고, 수희와 상현이 함께 올 것이라 생각해 나홀로 수원역에 그들을 마중 나왔던 것이다.


수희는 조용히 경환의 뒤를 뒤따라 걸으며 그에게서 느껴지는 악귀(惡鬼)나 영(靈)적인 기운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온몸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딱히 느껴지는 이상한 것은 없어보였다.


수희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종 걸음으로 경환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요근래 들어 수희는 화마의 기운을 이끌어 내거나, 혹은 다른 악귀(惡鬼)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예전과 달리 매우 힘이 들고 버거웠다.


흔히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무당들은 자신의 신빨이 약해졌다면서 강화도에 있는 마이산(馬耳山)에 기도를 올리거나 자신의 신어머니에게 점지받은 기도터에서 신빨을 올리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워가며 정성껏 치성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무불통신(無不通神)하여 따로 내림굿을 받지 않은 수희 입장에선 도움을 청할 신어머니도 없거니와 딱히 신빨을 올리기 위해 기도터를 찾아 치성을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경환이 안내한 카페에 도착해 수희는 역시나 그녀가 늘 즐겨먹는 ‘딸기 쉐이크’를 주문했고, 경환 역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인지 ‘초코 쉐이크’를 주문했다.


- 덩치는 상현 씨랑 비슷한 우락부락 근육남인데 초코 쉐이크? 풋... 안 어울리게 귀엽네.


수희는 결제 하고나서 그대로 음료를 수령하는 데스크에서 예의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여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경환을 바라보며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바깥 구경을 하고 있었다.


수원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카페는 수원역 전경이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였다.


수희가 여기저기 둘러보며 주변구경을 하는 사이 경환이 음료수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저... 수원은... 처음이신가봅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수원성을 구경하느라 바쁜 수희를 보며 경환이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


“그러게요. 그렇게 귀신들 잡으러 다니면서도 어떻게 수원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수희가 눈앞에 놓인 딸기 쉐이크를 마시며 말했다.


경환은 평소 상현의 밑에서 명동 사채 시장 일을 하면서 상현의 그림자처럼 그의 일을 도왔다. 상현이 백마녀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것처럼, 경환은 상현의 말이라면 절대 복종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의 충실한 심복이었다.


지난번 남양주 사건 때 역시, 상현이 계속해서 백마녀에게 경호 인력을 데려올 수 있었던 것도 경환이 사방팔방 애를 쓰며 돌아다니며 고생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상현에게 단둘이 이야기 할 것이 있다며 따로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상현은 친동생 같은 자신이 아끼는 후배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고 경환은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물론 남양주를 드나들던 상현과 백마녀가 무속(巫俗)적인 일에 관련되었다는 것을 경환은 일찌감치 눈치 채고 있었기에 상현에게 도움 아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저... 혹시 상현 형님이 수희 씨를...”


수희는 대번에 그가 자신에게 상현의 마음을 넌지시 알려주려는 낌새를 느끼곤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근데 무슨 일로 저를 여기까지 부르신 거에요? 위험한 일이면 전 빠질게요!”


새침한 말투로 톡 쏘는 수희의 말에 경환은 자신이 꺼내려는 말을 입속으로 집어삼키고는 한참을 망설이다 한숨을 푹 쉬고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 그게... 저한테 가족이라고는 누나 한명 밖에 없습니다. 부모님은 저와 누나가 어렸을 적에 이미 사고로 돌아가셨고 저랑 누나는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


“고생 많았겠어요... 그런데요?”


무덤덤한 말투로 수희가 딸기 쉐이크에 꽂힌 빨대를 무심한 듯 이리저리 뱅뱅 돌리며 경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보다는 누나가 고생을 많이 했죠. 저 먹여 살린다고 누나가 안해 본 일이 없습니다. 전 상현 형님 덕분에 흔히 남들이 말하는 깡패니 건달이 되지 않고 명동에서 백마녀 님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구요. 남들이야 사채놀이 한다고 하면 다들 무서워하거나 상종하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상현 형님 일하시는 거 보면 이 일이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닙니다. 상현 형님이 얼마나 정(情)많고 착하신 분인데요!”


그에게 갑자기 상현에 대해 열변을 늘여놓는 것은 딱 보아도 수희에게 상현의 마음을 어필하면서 수희가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으면 하는 낌새가 역력했다.


수희는 속으로 경환이 너무 티가 나는 순진한 남자라는 생각을 하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저도 알아요. 상현 씨 착하고 좋은 사람인 거. 그런데 경환 씨 누나 분은 경환 씨가 명동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계속 수원에서 사셨나 보네요?”


“네... 수원이 고향이니까요. 부모님 사셨던 곳을 떠나기 싫다며 누나는 계속 수원에서 지냈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누나는 결혼도 하고,...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음을 참으려는 듯 보였다.


수희가 좌우로 돌리던 빨대를 잠시 멈추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그런데요? 누나 분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조심스레 말하는 그녀의 말에 경환이 슬픔에 잠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췌장암 말기였어요...”


“에고.... ”


수희가 혀를 차며 카페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세상에 신(神) 따위는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수희였다.


수희의 가족들이 화마에게 참사를 당했을 때, 수희가 처음 생각했던 것이 또 다시 떠올랐다.


신(神)은 악(惡)을 막을 의지가 있는데 능력이 없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신은 전능하지 않은 신이기에 신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악을 막을 능력이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것이라면 그 역시 악(惡)한 것이기에 신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사도 있다면 왜 이 세상의 악은 끊임없이 선한 자들을 괴롭히고 죽이는지 수희는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존재를 왜 신(神)이라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안 됐네요. 인생이... 원래 자기 뜻대로 안 되죠. 그런데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는 게 뭔지... 전 의학적인 능력은 없는데요...”


“영(靈)적인 문제 같아 상현 형님께 졸라 수희 씨에게 도움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누나 분이 시한부이신 거랑, 영(靈)적인 문제랑 무슨 상관일까요?”


수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누나랑 일주일 전 즈음에도... 통화를 했었습니다...”


“그런데요?”


“그게... 저희 누나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이 일년전의 일입니다.”


“잘 버티시고 계신가보네요...”


수희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자 경환이 굳은 표정으로 수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의사 말이... 시한부를 알려줄 때, 3개월 남았다고 했었습니다.”


수희의 눈이 흔들렸다.


의사들이 말하는 기대여명은 굉장히 보수적이다. 가망이 없는 환자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희망적으로 알려준다면 남은 삶을 정리하는데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의사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난 뒤에 4~5개월이 최선일 것이다.


그런데 일년전에 시한부 판정을 받고 지금껏 생존하다 못해, 불과 일주일 전에 전화통화라니 수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대로라면....”


수희가 말을 아끼자 경환이 단호하게 말했다.


“죽었어야죠. 제 누나는 이미 죽어서 저와 전화 통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어야 합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경환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을 수도 있잖아요?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현상들이 종종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수희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한껏 가라앉고, 힘이 없었다.


경환의 깊은 슬픔이 전해졌기 때문에 수희 역시 더 이상 장난스러운 가벼운 목소리일 수가 없었다.


“저도 처음엔 누나가 너무 간절하게 기도를 해서 기적 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수원에 누나 집으로 찾아가려고 했어요.”


“그런데요?”


수희의 말에 경환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누나 집을 찾아가려 할 때마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그 집으로 들어갈 수 가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다른 곳에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곤 했고.... 정말 귀신에 홀렸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몇 번을 찾아갔지만 갈 때마다 주변을 빙빙 돌면서 도저히 누나 집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 어랏? 말을 들어보면 결계(結界) 같은데... 결계로 못 오게 막는다? 흠... 이상하긴 하네...


수희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누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경환의 말을 매우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분명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영(靈)적인 주술이나 결계라면 일반인들이 주변을 빙빙 돌며 길만 헤매다 결국 그 집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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