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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Drummond

회귀하자마자 한국 축협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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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먼드
작품등록일 :
2024.08.2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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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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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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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DUMMY

11월 7일. 레기오날리가 17라운드.



지난 경기에서 내 활약으로 2연승을 달린 우리는 홈에서 키커스 오펜바흐를 상대한다. 키커스 오펜바흐는 이번 시즌 레기오날리가 1위고 우리는 5위다.



상대는 지난 시즌 3부리그에서 강등당한 팀. 그리고 3부리그에서도 강등당할 전력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강등당한 팀이라는 평가다.



기본적으로 24~28세의 선수들이 주축이다 보니 19~21세로 꾸려진 우리보다 경험이 많고. 상대적으로 전술적인 완성도도 높고. 전체적으로 축구를 더 잘한다는 게 비디오 분석팀이 알려준 결과다.



다른 선수들과 스태프는 편하게 마음먹은 듯한 뉘앙스를 은근히 풍겼다. 4-1-4-1을 주로 쓰는 오펜바흐를 상대하기 위한 맞춤 훈련에서도 그랬고. 비디오 분석 때에도 그랬다.



당연히 승리를 목표로 하지만, 그것보다는 키커스 오펜바흐를 상대로도 우리가 준비한 내용대로, 우리가 준비한 경기를 제대로 하는데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느낌.



뭐, 팀의 방침은 팀의 방침이고. 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할 예정이다. 사실 지난 2경기의 흐름이 비슷하기도 했다. 해 보니까 어느 정도 되더라.



상대 수비가 내 쪽으로의 공 배급 자체를 막아버리면 방법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래서 유소년 레벨에서처럼 완전한 원맨 캐리는 나오지 않지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더라. 특히 요즘 같은 컨디션에는. 도저히 안 될 만한 상황에서도 뭔가 균열이 일어난다. 혼자서도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도 신기하다.



한국 대표팀을 버리고, 독일 대표팀을 노리겠다는 선언을 부모님께 한 순간부터다. 뭔가 번쩍하고 심리적인 각성이 일어났다. 또 심리적인 각성이 육체적인 각성도 이끈 것 같고. 보이지 않는 작은 벽 하나를 뛰어넘은 기분이다.



이번 경험이 내게는 제법 결정적인 교훈이 될 것 같다. 한계를 세워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가 아는 선에서, 내가 이전 삶에서 경험했던 선에서. 나름 최선의 계획을 짜 두고 있었던 건데. 그게 오히려 울타리로 작용하고 있었던 거지.



더 할 수 있다.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해낼 수 있고 더 큰 성장은 거기에서 올 거다. 여기가 한계인가 싶을 때도 타협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위를 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그럴 거다.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라서.



그런 상태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본격적인 워밍업에 들어가기 전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독일로 날아온 형태 형이었다. 내 한국 에이전트라고 미리 말해둔 덕분에, 훈련장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형. 오랜만입니다. 하하.”

“와-씨. 너 몸 뭐냐 이거. 엄청 좋아졌네. 키도 한 10cm 큰 것 같다?”

“그 정도는 아니고요. 7cm정도 컸어요. 지금 183.4인가 그래요.”

“아니, 키도 그렇고. 덩치도 그렇고. 요새 웨이트 엄청 열심히 하나봐?”

“네. 좀 빡빡하게 해요.”



오랜만에 본 형태 형은, 내가 고작 2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며 놀랐다.



“다른 선수들 테스트는 잘 돼가고 있어요?”

“아니. 다들 좀. 좋은 평가 받은 애들이 없어. 긴장해서 그런가 제 실력들을 못 내더라. 그리고 말. 말 안 통하는 것도 엄청 크고.”

“그거 중요하죠.”

“내가 너랑 왔던 때만 기억하고 좀 느슨하게 생각했나 봐. 영어도 잘 못 알아먹는 애들이 독일어 쓰는 애들 사이에 딱 놓이니까 완전히 그냥. 후우-”

“유럽 올 생각이었으면 진작 언어 공부해 뒀어야지. 나처럼.”

“그러니까. 넌 완전히 돌연변이였더라고. 누가 유럽 처음 오자마자 의사소통이 안 막히고 되냐? 참, 나. 그래서 얘들도 아무리 영어 잘 못 한다 해도 기본적으로 운동장 위에서는 대충 될 줄 알았지 뭐냐.”



형태 형과 같이 온 선수들의 테스트 결과가 썩 좋지 못하댔다. 축구 실력도 그렇지만, 적응 면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는 것 같다고도 했다.



어쩔 수 없다. 문화가 달라서, 수동적인 면이 짙은 한국 선수들은 작정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쉽지 않았을 거다. 말까지 안 되니 더더욱.



“야, 근데. 그 대표팀 얘기는.”

“형. 그 얘기는 지금 다 하려면 좀 길어요. 경기 끝나고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러자. 오늘 잘 하고.”

“그럼요. 저 요새 제대로 마음먹었거든요. 잘 보세요.”

“알았어, 알았어.”



선수들과 하는 반가운 하이파이브를 한 뒤, 웃으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축구화 끈을 한 번 다시 묶으며, 마인드를 경기 모드로 전환했다. 지난 경기들에서의 흐름을 쭉 이어갈 시간이었다.




**




“침착하게! 침착하게! 돌리면서 해!”



공을 잡고 내 쪽으로 패스를 투입할 각을 재던 라우파이머에게 손짓하며 공을 뒤로 돌릴 것을 요구했다.



오펜바흐도 당연히 우리 경기를 분석했을 거다. 내게 가해지는 마크와 압박의 정도가 강하다. 확실히 리그 상위권 팀답게, 미드필드와 수비 사이의 간격 유지가 비교적 잘 되는 편이네. 이전 경기들보다 내게 주어진 공간이 적다.



‘뒤를 파야 하나?’



반대로 슬슬 전환하는 템포를 따라 뛰며 생각했다. 빡빡한 대신, 그만큼 상대적으로 최종 수비라인의 위치가 높은 편이네.



지금까지는 중앙에서 공을 받고 수비를 집중시킨 뒤 측면 공간을 크게 열어주는 역할을 했지만. 이럴 땐 조금 더 직접적인 공략도 할 필요가 있겠는데.



“아니야, 뒤로!”



우측 측면에서 크로스 각을 재던 율리안에게 다시 뒤로 돌릴 것을 요구하며, 우리 팀의 공격 라인을 최대한 뒤로 끌어내렸다.



지금 뒤쪽의 녀석들은 조금 답답해할 타이밍이지만. 일단 뒤에서 돌리면서 끌어내야 한다. 서서히, 서서히 라인의 위치가 상대 골대와 멀어지고 있다.



“엔조! 내려가서 받아줘! 조금 더 내려가서!”



엔조가 내 얘기를 듣고 상대 미드필더들과 같은 선상까지 내려간 순간. 센터백 마글리카의 매우 강한 패스가 엔조 쪽으로 전달됐다. 그리고 엔조는 빙글 돌아서며 공을 터치하는 데 성공했다.



역시 기술적으로는 완성도가 높은 녀석이었다. 받아놓고 돌아서는 동작에서 앞쪽으로 살짝 휘청거렸지만, 그게 오히려 좋았다. 센터백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엔조에게 쏠리는 걸 확인했거든.



이때는 믿어야 했다. 그래도 엔조라면, 밸런스가 안 잡힌 상태에서도 뒷공간 패스를 찔러 넣어줄 거라고.



곧장 시도한다. 딱 한두 걸음 돌아나가면서, 상대 오른쪽 센터백의 등 뒤쪽으로 돌아나가며 왼팔을 크게 들었다. 골문 쪽을 가리키면서.



“엔조!!”



그 와중에도 고개는 들어 앞쪽을 쳐다보던 엔조가, 몸의 밸런스를 얼추 회복하자마자 그대로 오른발을 휘둘렀다.



완벽하지 않은 동작에서의 킥이어서 패스가 조금 무뎠지만. 그래도, 내 스타트가 상대 수비수들이 되돌아서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조금 긴가?’



달리면서 공의 궤적을 파악했다. 회전이 조금 덜 걸려서 그런가, 생각보다 조금 더 멀리 둥실 떠 갈 듯했다. 있는 힘껏 스프린트를 하며 조금 더 치고 나가다가, 서서히 잔발로 전환하며 낙구 지점을 맞춘다.



그리고 또 동시에, 고개를 들어 페널티 박스 중간에 어정쩡하게 나와 서 있는 골키퍼의 실루엣을 체크했다. 아예 튀어나오기에는 부담이 된 모양이지.



떨어지는 공에 오른발 발등을 가져다 대며 앞쪽으로 떨궈 놓는다. 컨트롤은 잘 됐는데. 잠시 속도를 죽였다가 받은 바람에, 뒤쪽에서 또 전력으로 달려오는 수비수들이 거의 같은 라인까지 왔다.



터치한 공을 향해 스피드를 다시 붙여 보지만, 이미 가속이 붙은 상대 수비수가 어깨를 들이밀었다.



‘어딜!’



있는 힘껏 힘을 줘 어깨로 강하게 튕겨냈다. 어깨와 어깨끼리의 충돌이 아팠지만, 순수한 파워만으로는 밀릴 만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내고 튕겨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왼발 바깥으로 공을 컨트롤해 사선으로 툭 밀었다. 다소 긴 것처럼 보이겠지만. 여기서 괜히 속도를 줄여 안전하게 공을 잡은 뒤 돌파를 시도하기보다는, 스피드 승부를 건다. 할 수 있다고.



숨도 쉬지 않는 전력질주. 맞바람이 얼굴을 강하게 때리고, 잔디가 튀어오른다. 순식간에 공에 가까워지고, 어느새 페널티 박스 하얀 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한두 발 바로 바깥에서 공을 따라잡았다. 골대 쪽으로 몇 발 들어가 각을 절묘하게 좁혀준 골키퍼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곧장 디딤발을 디뎠다.



왼발 스윙이 빠르게 이어지는 순간에 이미 확신했다. 가까운 쪽 낮은 코스. 저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 템포 늦게, 대각선 뒤쪽으로부터 파란 유니폼의 긴 다리가 슥 들어왔지만 이미 공은 발등에서 떠난 뒤였다.



잔디를 가를 것처럼 낮게 쫙 깔려 간 슈팅은. 골키퍼가 몸을 날려도 닿지 않는 코스로 정확하게 들어갔다. 골망이 강하게 출렁이는 순간 이미 난 몸을 공중으로 띄워 세레머니를 하는 중이었다.



“으랴쌰!”



혼자서 만들어낸 골, 우선 하나.




**




스코어 1대0으로 맞이한 후반.



전술이 조금 바뀌었다. 파른호스트 감독님은 오펜바흐 맞춤 전술로 준비한 형태로 바꿔 설 것을 주문하셨다.



기존 우리가 이번 시즌에 쭉 유지한 건 3-4-3 형태다. 원래 뛰는 양쪽 포워드들이 윙어 성향을 갖고 있어서 넓게 퍼지고, 중앙 원톱은 필연적으로 다소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1군 팀 전술도 비슷하다.



대신 1군 팀은 공격수가 샤샤 칼라이지치니까 조금 고립되어도 괜찮은 거지. 어차피 발밑으로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선수는 아니어서, 칼라이지치는 중앙에서 딱 버티다가 올라오는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먹기만 해도 된다.



원톱이 나라면 그렇게까지 효율적인 전술은 사실 아니다. 일단 내 쪽으로 공이 투입되어도, 근처 가까운 곳에서 받아줄 수 있는 선수가 많이 없으니까. 내가 칼라이지치처럼 모든 공중볼을 아주 높은 확률로 따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신 내가 활동량을 넓히거나, 어떻게든 발밑에 공을 잡아둔 뒤 버텨서 연계해주는 식으로 지금까지는 해 왔다. 그리고 1군의 기조가 확 변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웬만하면 그렇게 갈 거고.



다만 우리는 이번 경기를 앞두고, 우리는 3-4-1-2 형태도 준비했다. 순간적으로 양쪽 포워드들이 중앙으로 좁혀 투톱과 같은 라인을 만들면, 내가 1의 자리로 내려가서 상대를 교란하는 거다. 넓어지는 측면은 윙백들의 오버래핑에 맡긴다.



“기본적으로 4-1-4-1 형태는 변하지 않을 거야. 알비 넌 젝서의 포지셔닝에 계속 혼란을 주는 거고. 무슨 말인지 알지? 이번 주에 계속 준비했던 대로야.”



후반 들어오기 직전까지 코치진이 되새겨준 것. 약간 처진 위치에서 뛰게 될 나의 가장 명확한 타겟은 오펜바흐의 젝서 투나이 데니즈다.



전반전을 뛰어본 결과, 수비할 때 제법 영리하게 위치선정을 하며 공간 곳곳에서 나타나는 스타일의 선수더라. 단, 영리함을 무기로 삼는 만큼 개인의 일대일 수비력은 좀 떨어지는 듯했고.



수비력도 되는데 영리하기까지 하면 여기 있을 리가 없지. 정확하게는 못 봤지만, 전반전 엔조가 어시스트한 롱 볼 상황에서도 저 선수의 맨마킹이 실패했던 모양이었다.



후반전 나와 계속 스위칭을 해 가며 데니즈를 괴롭혀야 할 엔조가 슬쩍 와서 조언해 주기도 했다. 기회가 난다면 자신 있게 일대일을 걸어도 좋을 거라며.



그리고 곧 시작된 후반전. 오펜바흐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전반보다 살짝 내려선 위치에서 좌우측으로 크게 움직이며 빈 공간을 연신 노렸다.



지금 내 위치는 아주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다. 상대 젝서 데니즈와 같은 라인, 좌우측 하프스페이스. 이 공간을 계속 오가고 있다.



4-1-4-1을 상대하는 최고의 방법? 무조건 하프스페이스 공략이다. 포메이션상 태생적인 약점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 이를 커버하려면 두 중앙 미드필더의 위치선정 능력이 아주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 팀은 준비한 대로. 계속 미드필드에서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중앙 미드필더들이 공을 향해 튀어나오게끔 유인했다. 물론 그렇게 압박을 당하다 한두 번 공을 끊겨 위험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지.



하지만 벤치에서는 계속 그 상황을 만들기를 유도했다. 하프스페이스에 공간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 다른 말로 하면, 내게 데니즈와의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후반 시작한 뒤 20분쯤 되었을까. 모처럼 나온 오른쪽 측면에서의 긴 오버래핑으로 오펜바흐의 수비진을 한쪽으로 완전히 쏠리게 만든 뒤. 엔조와 율리안을 거친 공이 다시 중앙으로 빠져나왔다.



‘지금이다.’



아직 오펜바흐 수비진의 무게중심이 저들 기준 왼쪽으로 크게 쏠린 상황. 반대로 말하면, 우리 왼쪽의 하프스페이스는 거의 무주공산으로 비어 있다는 소리였다.



연습을 많이 한 덕분일까. 다행히 나랑 같은 장면을 보는 녀석이 있었다. 중앙에서 빠르게 패스를 요구하고는 고개를 들어 앞쪽을 살핀 라우파이머다.



“루카!”



상대 미드필더 쪽으로 한번 전진해 달려들게끔 만들고. 살짝 접은 뒤 연결해 온 오른발 아웃프런트 패스가 퍽 만족스럽다. 녀석의 패스가 텅 비어 있던 내 왼발 앞으로 똑 떨어졌다.



안쪽으로 받아놓자 걸렸던 회전이 죽으며 부드럽게 잔디 위에 멈춰섰고. 거의 발로 밀다시피 하는 드리블을 툭 치며 중앙으로 전진했다. 유연성 훈련을 늘린 덕분인지, 이 과정이 꽤나 민첩했다.



그 첫 터치와 한두 걸음의 전진. 그게 이 위치의 공격수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장면이다. 이 쉬워 보이는 판단과 실제로 쉬운 이 동작을 아무나 하지 못하기도 하고.



미리 알고 있어야 하거든. 이 그림을 미리 그리고 있어야 하고. 이 장면을 미리 연습하고 있었어야만 하프스페이스에서 조금의 시간낭비 없는 전진이 가능하다.



내가 딱 그랬다. 그리고 이 치명적인 공간에서 이게 되면? 순식간에 골대를 마주 보고 여러 가지 선택지를 갖게 된다.



“알비! 알비!”

“알비! 이쪽!”



센터백과 풀백 사이로 들어가 공을 요구하는 폴스터. 또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사선으로 돌아 뛰려는 엔조 미요. 둘 모두가 패스를 요구한다.



저런 오프 더 볼 움직임은 상대 센터백이 내게 달려들지 못하게 강요한다. 내가 신경 써야 할 유일한 걸림돌은, 지금 내 오른쪽 시야에서 뒤늦게 커버에 들어오고 있는 젝서뿐.



‘앞으로 밀어줄까?’



안 될 건 아니다. 패스 길은 있다. 다만 본능은 그러지 말라는 신호를 울린다. 동료들을 믿지 못하는 거냐면, 답이 애매한데 일단 그렇다. 내가 직접 하는 게 더 가능성이 클 거다.



그래서 곧장 왼발 각을 만들어놓고, 페널티 박스를 향해 더 전진할 것 같은 액션을 취했다. 한 발 디디고 중거리를 때릴 것처럼. 수비의 반응은? 온전히 예측한 대로였다.



황급히 내가 전진할 수 있는 공간을 막아서는 젝서 데니즈. 그를 끝까지 바라보다가- 이 악문 표정의 그가 내 발 쪽으로 다리를 뻗을 순간을 노려본다.



지금!



데니즈의 오른발이 내 공 쪽으로 쭉 들어오는 순간. 왼발 발바닥으로 공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디디고 있던 오른발의 뒤쪽으로 90도 꺾어 놓으며 몸의 방향도 휙 틀어버렸다.



수비력이 뛰어나지 않은 젝서. 이렇게 섣불리 덤비는 것 자체가 그 증명이다. 한번의 유려한 드래그 백으로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렇다 할 견제 없이, 탁 트인 시야로 골문을 바라본 공격수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슈팅을 차지 않을 수 있을까. 완전히 오픈된 동료가 있어도 패스를 줄까 말까지.



“막아! 개 같은 새끼들아!”



오펜바흐 골키퍼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이다. 오른발 발등에 강하게 얹힌 공이 진작 날아가고 있었다.



살짝 바깥으로 깎아 때린 슈팅은 정면에서 바깥으로 미세하게 휘어져 나가며 오른쪽 상단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 골키퍼가 몸을 날려 손을 쭉 뻗었지만, 음. 이번에도. 그 손끝을 벗어난 공이 골문을 찢을 듯이 빨려들었다.



“으아아아아-!”



비록 관중은 없지만,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려가 무릎으로 길게 미끄러지며 두 손을 치켜들었다. 아드레날린이 쫙 올라오고 있어서, 분출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경기를 하면서. 완벽한 확신을 갖게 됐다. 전술적인 포지셔닝도, 상대의 약점을 캐치하는 판단도, 터치도, 드리블도, 슈팅도.



지금의 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작가의말

독자님들 모두 풍성한 한가위 되셨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__)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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