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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Drummond

회귀하자마자 한국 축협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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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먼드
작품등록일 :
2024.08.2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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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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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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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007.

DUMMY

조만간 슈투트가르트가 발칵 뒤집힐 것이라는 코치 힌켈의 판단은 옳았다. 단장 미슐린타트의 판단 또한 옳았다.



유태훈은 자신의 존재감을 순식간에 내보였고, 유태훈을 중심으로 앞으로 모든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유태훈의 성장 속도에 맞춰 갈 새 프로젝트도 막 꾸리려는 참이었다. TF팀의 초안이 만들어지기 직전이었다.



딱 그 시점에. 모든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전혀 다른 이유로, 슈투트가르트뿐 아니라 전 세계가 훨씬 더 크게 뒤집혔기 때문에.



유태훈이 입단한 뒤 시간이 한두 달 흐르면서, 슈투트가르트의 고위 관계자와 지도자 모두가 확신했다. 자신들에게 굴러들어온 복덩이, 15살짜리 한국인 꼬마 유태훈이 곧 독일 축구를 뒤집어 놓는다고.



무조건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부적인 판단은 끝났다.



유태훈의 몸만 조금 더 만들어지면, 근육과 근력이 조금만 더 붙고, 그에 맞게 체력만 조금 더 올라오면. 그러면 유태훈은 U-17도 아니고 U-19에서 뛰어야 한다고. 그리고 U-19에서도 충분히 폭격할 수 있는 움직임과 이해도, 기본기를 갖고 있다고.




기다림이 힘들 뿐. 의심은 없었다. 그저 유태훈이 잘 먹고 잘 자고, 불만 느끼지 않고, 신체적으로 잘 성장해 지금의 학생 같은 모습에서 축구선수 같은 모습으로 변모할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



그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 지구적인 재앙을 슈투트가르트의 관계자들이 버텨낼 수 있게 한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일상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는, 말 그대로 악몽 같은 시간이 지독하게 흘러가는 동안. 슈투기가 웃을 수 있던 건 유태훈의 몸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 유일했다.




**




길다면 참으로 길고, 또 짧다면 나름 짧은 시간이었다.



“태훈아!!”

“오셨어요.”

“잘 있었지? 응?”



내가 입단하고 한 달 뒤, 이민 준비를 위해 잠깐 한국으로 돌아가셨던 부모님이 마침내 독일로 넘어오셨다. 2019년 11월에 한국으로 갔다가, 2020년 2~3월 즈음에 독일로 오겠다는 계획을 짜 두셨었는데.



코로나로 인한 국경 폐쇄 조치가 모든 것을 막았다. 2021년 3월 말이 되어서야 독일의 봉쇄완화 조치가 이루어졌고, 부모님이 넘어오실 수 있게 된 거다.



“그동안 엄마 아빠 없이 괜찮았어?”

“그럼요. 매일 영상통화 했잖아요.”

“그래도. 아픈 데는 없고?”

“네.”



엄마가 울컥하셨는지 눈물을 훔치시는 사이. 아빠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셨다.



“많이 컸구나. 아들.”

“하하. 네. 할 게 운동밖에 없었거든요.”

“몰라보겠다. 핸드폰으로 볼 때도 조금씩 달라지는구나,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이렇게나 듬직해졌어.”

“이제 좀 운동선수 같나요?”

“그렇고말고. 이제는 학생 같아 보이지를 않아. 학생인데.”



1년 반에 가까운 기간. 그동안 내 키는 175cm에서 182cm까지 컸다.



더 중요한 건 근육이 상당히 붙은 상체다. 왜소했던 예전과 비교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심지어 내 전생 때보다도 형태가 더 좋았다.



전생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운동에 들어가 관리하기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떡 벌어진 어깨와 알맞은 밸런스로 맞춰 둔 등 근육이 코어를 확실하게 잡아준다. 누가 봐도 운동선수의 몸이다.



“잘 오셨어요. 공항에 오래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어서 가요. 구단에서 차 준비해줬거든요. 직원이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 아빠의 캐리어를 한 손씩 나눠 끌며, 부모님을 안내했다. 평소보다는 훨씬 한산한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을 걸어 나와 슈투트가르트 우리 집으로 향하는 구단 벤츠에 올라탔다.



“한국에서? 네 이야기는... 거의 없지.”

“지금 뭐 축구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신형민 정도 아니면 축구 뉴스는 나오지도 않아.”



공항부터 슈투트가르트 우리 집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이것저것 얘기하며 회포를 풀었다. 엄마는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몇 번을 더 울컥하셨고 아빠는 드디어 표정이 좋아 보이셨다.



나야, 알고 있었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했고 공포심도 그리 크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마음 편히 운동에 전념하며 시간을 보냈지. 하지만 부모님은 심적으로 참 힘든 시간을 보내셨구나 싶었다.



한국보다는 조금 위험해도 독일에서 같이 있을 걸 그랬나,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도 작년 초중반부터 있었던 유럽 사람들의 우직한 일상-마스크도 쓰지 않고, 격리하라는 데도 끝까지 파티를 연다거나 스킨십을 서슴없이 하는-을 생각하면. 분명히 이게 나은 선택이었다.



“그나마 지금은 여기 애들이 좀 정신을 차렸어요. 물론 마스크 안 쓴 사람이 많기는 한데, 그래도. 그래도 이제는 조심하는 추세에요. 이제는 어느 정도 일상 회복도 됐고요.”

“다행이네. 넌 안 걸렸지?”

“네. 저희 팀에는 확진자가 거의 없었어요. 운이 좋았죠. 다른 구단들은 선수건 스태프건 몇십 명씩 걸려서 훈련장 폐쇄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더라고요.”

“그래. 한국에서도 그런 기사가 나오는데 무섭더라. 너는 여기 혼자 있지, 마스크도 없지, 그런데 축구는 계속한다지... 휴.”

“정말 괜찮았어요. 이제 여기도 한국이랑 비슷해요.”



여전히 치사율이니 사망자 숫자니 하는 뉴스 보도들은 공포심을 자아내지만. 이제는 사람들도 꽤 익숙해져 가고 있다. 어느 정도의 일상은 회복되었고,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결국, 시간이 흐르면 이것도 다 지나갈 테니.



“그나저나, 태훈이 넌 좀 어떠냐. 살 만했어?”

“네. 그럼요. 너무 잘 지냈어요.”



아빠가 화제를 돌리시자마자, 난 운전을 도와주고 있는 조엘에게 장난 섞인 말을 걸었다.



“조엘. 부모님에게 설명 좀 해 줘요.”

“하하. 뭘?”

“음- 제가 팀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조엘이 피식 웃으며 얘기를 쏟아내려 했다.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알브레히트는...”

“알브레히트?”

“아. 독일 친구들이 하도 제 이름으로 장난을 쳐 대서요. 독일 이름 하나 만들었어요. 알브레히트로.”

“왜 하필 알브레히트야? 이름이 어렵네.”

“아. 그냥, 독일에서 살게 됐으니까요. 독일인스러운 걸로 하나 골라봤어요.”



사실은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인데. 독일로 귀화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고른 이름이기도 하다. 알브레히트.



요즘 세대 사람들이 보기엔 아주 올드한 느낌의 이름이란다. 내가 선수로 뛸 때도 알브레히트라는 이름의 선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른 감이 없잖아 있다. 한국에서 중학교 졸업장이 오고 나서부터 다니게 된 여기 고등학교에서 배웠거든. 알브레히트는 게르만 어휘에서 파생된 이름이고, ‘고귀하게 빛나다’라는 뜻이고.



무엇보다 딱 들으면, 좀 독특한데 분명히 독일 사람이구나 떠올리게 된다고.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기왕 지을 거면 그런 이름으로 고르고 싶었다.



나도 여러 가지 후보를 찾아봤지. 독일 사람들에게 가장 독일인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 중에 제일 간지난다고 생각하는 걸 골랐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알베르트는 너무 흔하잖아.



“어쨌든, 알브레히트는 팀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선수가 됐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요. 축구도 잘 하고, 선수들하고 잘 지내고, 또 백룸과 오피스 사람들에게도 잘 하고요. 어떤 정도냐면...”



한 시간 반 내내, 또 집에 도착해서도. 우리 가족은 재잘재잘 떠들었다. 오랜만의 만남에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




삐빅-



“정상이야. 들어가.”

“항상 고생이 많아요, 데니스.”

“그러게 말이야.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휴우- 이 빌어먹을 바이러스.”

“이 빌어먹을 바이러스.”



슈투트가르트 트레이닝 센터의 경비원인 배불뚝이 데니스 씨의 입버릇을 따라 하며 서로 피식 웃었다. 독일인들은 농담을 지독하게 못 하지만 웃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은 아니거든. 어느 때보다 웃음이 필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저 아저씨가 고생한 지도 한참 됐다. 드나드는 모든 사람의 체온을 일일이 재고, 사람이 출입할 때마다 손이 닿은 모든 곳을 세정제로 닦아내고.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눈에 띄게 고생 중이다.



“Halo. Guten tag.”

“Guten tag.”



만나는 사람들마다 입버릇처럼 ‘구텐 탁’을 주고받고 웃기는 해도. 예전과는 다르다. 실제로 ‘좋은 오후’가 아니니까.



그래도 지금은 분위기가 정말 많이 좋아진 편이다. 한창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 때는 말도 못 할 정도였다. 축구팀인데 축구가 전부 멈추었으니. 세상이 멈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백룸과 오피스에는 월급이 밀리는 것 아닌지, 잘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대놓고 흘러 다녔다. 필드 위와 트레이닝 센터라고 다르지 않았다. 축구를 언제까지 못하는 건지, 체육관은 언제까지 폐쇄인 건지 전전긍긍했었지.



그래도 분데스리가와 2부 리그는 무관중으로 진행하는 강수를 둬서 19/20 시즌을 마무리하기는 했는데. 유소년 리그는 모두 멈추고 그대로 종료시켰었다. 아예 모여서 팀 훈련을 하는 횟수도 주당 1~2회로 줄었고.



그때 즈음이 내 몸무게가 72kg 정도까지 불어나고, 근육도 어느 정도 갖춰져서 파워와 스피드가 붙은 시점이었다. 이제 좀 선수의 본새가 나는 몸이 되었다 싶을 때 즈음. 구단에서도 슬슬 의미가 적은 U-17에서의 훈련 대신 U-19로 합류시키려는 각을 보던 차였고.



그런데 리그가 중단되어 버렸다. 나를 빼고 모두가 당황했다. 구단 전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시간이 제법 오래 갔다.



나야 처음부터 대충 계산했으니 그 순간에도 꾸역꾸역 몸을 만드는 것과 개인 훈련을 하는 것에 집중했다.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다. 특히 기본기와 슈팅 부분은 아주 집중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 이후 20/21시즌이 평년보다 조금 늦게 개막하는 데 성공하기는 했다. 역시나 프로 리그로만 한정됐다. 유소년 리그는 온전한 취소는 아니지만, 매주 독일 정부와 독일축구협회가 내리는 시행령에 따라 운영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그 결과.



슈투트가르트 U-19 팀은 2020년 9월부터 2021년 4월, 지금까지 딱 한 경기밖에 치르지 못했다. 2020년 10월에.



그로이터 퓌르트 U-19 팀과의 원정 경기였고, 무관중으로 치러졌으며, 대외적으로는 아무런 영상 기록물이 남지 않은 경기였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난 16세 4개월의 나이로 U-19 팀의 주전 공격수로 뛰었다. 결과는, 전반 45분 동안 2골과 1개의 도움. 사실 마지막 도움도 무리한다면 직접 슈팅할 수도 있었으나 더 좋은 위치에 있던 선수에게 밀어줬던 거였다.



후반전엔 교체되어 뛰지 않았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렇게 할 예정이었다. 7살 때부터 12년 동안 유스 팀에 있었으나 추가 계약을 제안받지 못한 공격수 한 명에게 슈투기의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뛸 기회를 줘야 하는 날이었거든.



“저 왔습니다, 코치님.”

“음. 들어와.”



얼굴이 좌우로는 얇고 위아래로 길쭉한 힌켈 코치님은, 저렇게 마스크를 쓰고 계실 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무서워하겠다 싶은 인상이다. 하관을 가리고 눈매만 보면 딱딱함이 훨씬 부각된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무뚝뚝한 분이실 뿐이다. 엄할 때야 한없이 엄하지만, 평소엔 은근한 잔정이 많은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지난 코로나를 거치면서 부쩍.



“컨디션은 어떻지?”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부모님이 독일에 들어오셔서 훨씬 더 좋아진 것 같아요.”

“다행이군. 가족과 함께 사는 게 제일이지.”



불편한 듯 마스크를 한번 바꾸어 낀 힌켈 코치님. 이내 눈으로 살짝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DFL에서 마지막 경기 허가를 냈어. 유소년 리그도 다음 시즌부터는 운영할 생각이겠지.”

“오. 게임인가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무리 코로나 기간의 공백을 대비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나도 당연히 실전이 그리웠다. 아니까 참는 게 덜 힘들었던 것뿐이지.



“준비는 잘 됐겠지?”

“물론이죠. 자신 있습니다.”

“절대 지고 싶지 않은 경기가 될 거야. 하필 상대가 바이에른 뮌헨이거든.”

“상대가 누가 됐든 질 수 없죠. 얼마만의 경기인데.”



약간의 흥분으로 대답하자, 힌켈 코치님이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마스크 속 표정이 상상됐다. 쉽게 웃는 분이 아닌데.



“우리가 할 수 있는 팀 훈련은 딱 하루밖에 없어. 경기 이틀 전이지. 어차피 지금의 상황에서 조직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알아듣지? 개개인의 능력이 승부를 가를 여지가 훨씬 커.”

“네. 이해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너를 숨기려고 숨긴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지. 지금 넌 말 그대로 우리만 알고 있는 괴물이야. 난 이번 경기에서 기대를 걸어보려고 하는데.”

“어떤 걸 원하시죠?”

“세상에 보여줘 봐. 이 빌어먹을 바이러스가 어떤 괴물 같은 선수를 숨겨두고 있었는지.”



힌켈 코치님의 확신에 찬 말이 날 조금은 들뜨게 했다. 힘 조절 같은 걸 할 필요가 없겠다. 이전 삶의 몸과 거의 비슷해진 지금, 모처럼 제대로 된 축구를 할 시간이 기다려져 견디기가 힘들었다. 벌써부터.




**




“경기 한번 뛰기 더럽게 힘드네. 안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라인업하고 경기장에 올라와서 기다리는 게 대체 얼마 만이냐.”



정말 많고도 귀찮은 절차가 있었다. 컨디션 관리 따위가 제대로 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워밍업조차도 충분히 못 했다. 피지오들은 부상 당할 위험이 크니 항상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시기의 축구는 이 모양 이 꼴이었다. 나라고 아주 다를 건 없다. 내가 숱한 경험이 있다지만 이 시기에 축구를 해본 적은 없으니까.



다만, 이런 불안정한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은 다른 녀석들보다 월등히 뛰어나겠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전체적인 선수들의 텐션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처하는 능력 같은 것 말이다.



“알비.”

“예압.”

“긴장하거나 하지 마.”

“내가? 주장이나 긴장 풀어.”

“그래. 알비는 걱정할 녀석이 아닌 거 알잖아?”



우리 U-19 팀의 주장이자 슈투트가르트 로컬 보이인 조던 마이어는 자신의 표정도 모른 채 나를 걱정하고 있다.



이 친구는, 실력 때문에 주장을 단 유형은 절대 아니다. 이렇게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있고 선수단을 넓게 살필 줄 아는 사람 좋은 유형이라 주장을 단 케이스지.



그리고 슈투트가르트에서 나고 쭉 자란지라, 뮌헨이라는 도시에 갖는 라이벌 의식도 단단한 친구다. 오늘 유달리 긴장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일 거다.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은 남부 독일을 대표하는 두 대도시고, 역사적으로 쭉 은근한 라이벌 의식이 있다. 특히 슈투트가르트 쪽이 뮌헨 쪽에 갖는 의식이 더 큰 편이랬다.



자연스럽게 VFB 슈투트가르트와 바이에른 뮌헨 또한, 분명히 체급 차가 나긴 하지만 일종의 더비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오늘 이 경기도 엄밀히 따지면 남독일 더비의 일종이다.



나름대로 의식이 있는 친구들은 이 경기를 제법 특별하게 받아들일 거다. 나는, 뭐. 그 정도까진 아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흥미로운 건 역시 바이에른 뮌헨 U-19 팀에서 선발로 나온 녀석들의 면면이다. 훗날 꽤 훌륭한 선수가 되는 녀석들이 여럿 있어서, 제법 반갑기도 했거든.



특히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올 가브리엘 비도비치. 센터백인 가브리엘 마루시치, 루카 뎅크. 왼쪽 윙백인 앙겔로 브뤼크너. 공격수 그란트-레온 라노스. 이런 녀석들은 분데스리가에서 롱런 하는 선수로 성장한다.



‘확실히 뮌헨이긴 하네. 재능 있는 녀석들이 제법 있어.’



반면 우리 팀에는 분데스리가에 발 들이게 될 녀석이 몇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있을 수야 있겠지만 내 기억 속에 또렷한 선수가 없으니.



어쨌든 현재 두 팀 간 기본적인 재능의 총량 자체는 비교가 안 된다. 오늘 경기는 재능 싸움으로 갈 확률이 아주 높은데.



웬만하면 혼자서 해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겠고. 또 그러려면 나를 파악하기 전, 초반에 강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겠네.



“자. 가보자! 제대로 한 판 뛰어보자고! 우리도 할 수 있어! 관중은 없지만 어쨌든 우리 홈이잖아! 초반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자!”



마지막 스크럼을 짜고 마이어가 외쳤다. 저렇게 목소리를 크게 내면, 지금처럼 텅 빈 경기장에서는 상대에게도 다 들리는데.



“아. 그리고 말인데. 하나만.”

“알비? 할 말 있어?”

“저 녀석들은 방심하고 있을 거야. 경기 호흡이 트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건 우리나 쟤들이나 똑같을 거고. 나를 잘 봐 둬. 그리고 기회가 열렸다 싶으면, 과감하게 패스를 넣어줘. 조금이라도 괜찮다 싶으면, 초반에 저 녀석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시작할 테니까.”

“좋아, 좋아! 알비를 믿어, 알비를 찾아...”

“쉿! 다 들려! 쟤들한테도 다 들린다고!”



아직도 들떠 있는 주장 마이어의 등짝을 세게 때리려다 참았다. 그래도 나보다 3살이 많아서. 어휴, 뭐 이런 경기에서 긴장을 하고 있어. 기분 좋게 뛰면 되는걸.




**




삐이익-!



하얀색 유니폼의 우리와, 검은색 원정 유니폼의 뮌헨.



킥오프 스팟에 공을 올려둔 나는 휘슬과 함께 공을 밀어 내리며 뮌헨의 진영을 향해 힘껏 달려나갔다. 공이 우리의 수비 라인까지 내려가 한 바퀴 순환하는 동안 뮌헨의 두 센터백 마루시치, 뎅크의 사이에 자리 잡았다.



둘 다 괜찮은 수비수들이다. 특히 마루시치는 훗날 크로아티아 대표팀으로 월드컵까지 나가게 되는 수비수다. 덩치가 좋고 몸싸움이 강한 유형의, 전형적인 파이터.



‘나보다 한 3~4cm 정도 큰가? 몸은 아직 조금 말랐지만.’



그래도 힘 싸움으로 붙으면 지금은 지겠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민첩하기는 내가 더 민첩할 거다.



고개를 양옆으로 휙휙 돌리면서 센터백 둘 모두를 살폈다. 동시에, 녀석들의 시야 안에서 슬쩍슬쩍 좌우로 움직여 봤다.



내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든, 마루시치가 일차적으로 가까워진다. 뎅크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멀어지고. 견적이 바로 나왔다. 공이 내 발밑으로 떨어진다면 마루시치가 힘으로 부딪힐 거고. 공간으로 빠진다면 뎅크가 커버에 들어올 거다.



아주 찰나의 순간 고민을 끝냈다. 쟤들이 잘하는, 쟤들이 원하는 수비에 굳이 부딪혀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언제나 약점을 물어뜯는 게 최우선이니까. 보통 팀도 아니고 뮌헨의 재능들 아니겠어.



킥오프한 지 대략 30초에서 1분 흘렀을까? 오랜만의 경기인 건 피차 마찬가지라 뮌헨 녀석들도 압박이 없다. 몸을 좀 덥히고 호흡이 터질 시간이 필요하겠지.



덕분에 무난하게 돌던 공이 중앙 3선으로 무리 없이 들어왔다. 앞을 보고 공을 잡은 우리 팀의 젝서 크나페가 반 칸 전진해 있던 라우파이머에게 사선 패스를 건네는 바로 그 순간.



난 한두 발의 급격한 스프린트로 마루시치의 뒷공간으로 파려는 페이크를 줬다. 마루시치가 움찔하며 뒷걸음으로 반응하고, 딱 그 순간에 강하게 땅을 박차고 반대편으로 달려나간다. 또 하나의 센터백 뎅크가 서 있는 쪽으로 매우 강하게.



“루카!!”



동시에, 상대 미드필더들 사이로 빠진 건 너무 기본적이다. 순간적으로 뮌헨의 미드필더 두 명의 사잇길이 열렸고, 내 외침과 동시에 루카스 라우파이머의 투박하지만 과감한 패스가 이어졌다.



기억하고 있었구만.



딱 좋지도 않았지만 나름 나쁘지도 않았다. 등지는 움직임으로 상대적으로 왜소한 뎅크에게 엉덩이를 딱 붙였다.



“으잇!”



이를 악무는 소리가 귀 옆에서 들리지만. 역시 뎅크를 상대로는 힘으로 내가 우위에 있다. 몸싸움을 버텨내며 굴러오는 공을 발바닥으로 잡아둔다.



강하게 팔을 휘감아 돌리면 파울의 위험이 있으니, 어깨와 등만 이용해 작은 벽을 만들어 두고- 잠시 멈추었다가, 순간적으로 다시 힘을 가해 타이밍을 빼앗으며 돌아선다.



그래도 뮌헨의 수비수라고, 골대로 향하는 길을 완벽히 내주지는 않으며 끈덕지게 다리를 뻗지만. 애초부터 내 목표는 무식하게 곧장 골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사선으로 몰고 가는 거였다. 마루시치가 뒤늦게 달려들도록.



내 시선도 처음부터 녀석의 거대한 허벅지에 가 있었다. 당황을 했는지, 내 쪽으로 달려들어 오고 있었다. 저 덩치에 민첩하지도 않으면서, 두 발을 땅에 댄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면서 날 마주한다?



마루시치는 아직 멀었다. 자살행위거든.



오른쪽 어깨를 내려 안쪽으로 치고 갈 것처럼 페이크를 걸자마자, 왼발 바깥으로 공을 툭 밀어내며 급가속. 어려울 것 하나 없는 가장 기본적인 페이크지만 이 상황에서는 속을 수밖에 없다.



마루시치의 커다란 몸통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며 스피드를 붙여 치고 나갔다. 공이 페널티 박스 라인 위를 지나가는 것을 보자마자 고개를 들어 골키퍼와 잔발의 위치를 확인한다.



망설일 것이 하나 없었다. 가까운 포스트 상단을 향해 강하게 왼발을 휘두르고- 뻗어 나간 공은 여지없이 그물 상단에 쳐박혔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면서.



퍼어억-!



그리고 곧장 휘슬이 울린다. 주심의 깔끔한 득점 인정 시그널.

이 모든 상황이 일어나기까지 걸린 시간. 1분 42초였다.


작가의말

제목이 너무 별로다 싶어 변경을 고민중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게 제목 짓는 일이라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제목 변경을 하게 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랜만의 글이지만 반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__) 

여러분의 선작 추천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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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NEW +12 1시간 전 604 42 17쪽
22 022. +12 24.09.18 3,504 120 18쪽
21 021. +5 24.09.17 4,551 143 17쪽
20 020. +14 24.09.16 4,987 154 15쪽
19 019. +6 24.09.14 5,325 152 14쪽
18 018. +6 24.09.13 5,507 139 16쪽
17 017. +7 24.09.12 5,579 144 16쪽
16 016. +9 24.09.11 5,695 145 16쪽
15 015. +5 24.09.10 5,973 139 17쪽
14 014. +8 24.09.09 6,268 147 18쪽
13 013. +3 24.09.07 6,483 157 15쪽
12 012. +8 24.09.06 6,773 174 17쪽
11 011. +11 24.09.05 6,844 172 15쪽
10 010. +5 24.09.04 6,849 191 14쪽
9 009. +6 24.09.03 6,937 180 14쪽
8 008. +3 24.09.02 7,193 175 17쪽
» 007. +9 24.09.01 7,501 182 22쪽
6 006. +6 24.08.31 7,628 190 15쪽
5 005. +3 24.08.30 7,901 176 16쪽
4 004. +8 24.08.30 8,080 171 14쪽
3 003. +9 24.08.29 8,430 169 14쪽
2 002. +13 24.08.29 8,814 179 17쪽
1 001. +21 24.08.29 9,938 18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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