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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Drummond

회귀하자마자 한국 축협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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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먼드
작품등록일 :
2024.08.2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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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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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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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DUMMY

8월 14일. 드디어 찾아온 21/22 시즌의 개막일.

새벽부터 바빴다.



레기오날리가(4부 리그) 개막전인 데다가, 하필이면 또 쥐트베스트(남서 지구) 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중 하나인 코블렌츠 원정으로 시작하는데. 또 하필이면 개막전 중에서도 첫 경기에 배정되어 킥오프가 오후 2시라서.



원래 리저브 팀은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1군의 낮 경기가 먼 지역에서 잡히면 전날 미리 이동해 호텔에 묵었을 테지만. 리저브 팀은 그 정도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덕분에 아침 6시에 트레이닝 센터에 출근했다. 30분 정도는 마사지를 받고, 또 30분 정도는 가볍게 달리며 몸을 깨운다. 그러고 나니 소집 시간인 7시에 딱 맞았다.



그래도 개막전이라고. 어젯밤 메신저를 통해 연락한 몇 명이 같은 시간에 나와 나름대로의 의지를 불태우더라. 다들 이 마음을 시즌 끝날 때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은데.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첫날부터 지각한 정신 빠진 놈은 없었다. 다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넉넉하게 출근했다.



그렇게 이동할 구성원이 모두 모이자마자, 코로나 증상 검사를 마치고 아침 식사 없이 버스에 올랐다. 3시간을 꼬박 달려야 코블렌츠에 도착하기 때문에 숨 돌릴 시간이 없단다.



이때부터 딱 느꼈다. 오랜만이라 잠시 잊고 있었다. 화려하고도 안락해서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1군의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열악하고 고된 리저브 팀의 환경을.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메가 클럽의 2군 팀 정도를 제외하면, 어디를 가도 비슷할 거다. 한국에서 표현하는 소위 눈물 젖은 빵을 먹는 거다. 리저브 팀은 언제나 그렇고 당연히 그렇다.



오늘은 그나마, 정말 아주 조금이나마 나았다. 1군 팀과 U-19 팀이 개막전으로 홈경기를 치르고 우리만 원정을 가기에, 커다란 구단 버스가 우리에게 주어졌으니까.



3시간이나 걸리는 원정길을 버스 타고 가는 건 변함없지만 조금이나마 편했다. 1군 팀과 원정이 겹치면? 지옥이겠지. 거기다 또 개막전이라고 나름의 배려를 받아 백룸의 막내 직원들도 넉넉히 동행했고.



“앞으로는 이렇지도 않을 거야. 어쨌든 1군이 우선이니까. 너희들도 더 고생할걸. 괜찮아. 다 익숙해져.”

“으아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식사 추진을 위해 버스에 같이 탄 직원이 하는 말을 들으며, 엔조 미요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프랑스에서는 안 이랬어?”

“이랬지. 거기라고 뭐 달랐겠어? 그래도 내가 있던 AS 모나코는 돈이 많은 팀이어서 좀 괜찮았었거든. 근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잖아.”

“그래. 내가 모나코에 있어본 건 아니지만, 모나코에 비하면 여긴 훨씬 더 야생이긴 하겠네. 돈이 없으니까.”

“으아아- 빨리 1군으로 가야겠어.”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될까 모르겠다만. 그 말에는 동감이다. 나도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



앞으로 고생길이 훤할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으로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 악물고 해서 최대한 빨리 1군으로 가야지. 방법은 그것뿐이다.



“어이. 거기 꼬맹이들. 코블렌츠에 도착해 보면 더 놀랄 거다. 흐흐.”

“아저씨. 쟤들한테 미리 얘기 좀 해줘요. 너무 놀라서 자빠지지 않게.”



이번 원정길에 동행하는 유일한 30대이자, 무려 88년생인 리차드 웨일은 리저브 팀 사이에서 아저씨로 통한다. 수도 없이 많은 하부 리그 팀과 프로의 2군 팀을 돌아다닌 신기한 케이스의 노장이다.



보통 저 정도 되면 축구를 포기할 법도 한데. 리저브 팀의 뎁스를 채우는 동시에 어린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는 용도로 팀이 쏠쏠하게 써먹는, 매년 단기 계약을 맺는 유형의 선수다.



저런 베테랑을 리저브 팀에 한 명씩은 꼭 배치시켜 두는 게 팀의 안배라는 것을, 나는 안다. 저 모습이 어린 선수들에게 일종의 자극제 역할을 하니까.



조금 잔인하지만, 웨일 같은 선수를 보며 누구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저렇게라도 악착같이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처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



웨일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거다. 그 역할에 순응한 거고. 재능은 없지만 저런 방식으로라도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이 이 축구판에 수도 없이 많다.



“코블렌츠는 원정팀 라커룸이 진짜 쥐똥만해. 쥐똥보다도 작을걸. 흐흐. 너희들도 곧 겪게 될 거다. 하프 타임에 땀에 쩐 유니폼을 갈아입는데 옆에 놈하고 살끼리 맞닿기라도 하면.”

“으악! 상상했어!”

“거기에 가끔은 쥐도 나와. 내가 마그데부르크에 있을 때였나? 어떤 놈이 축구화를 갈아신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쥐를 밟고 그 자리에서 울었다니까.”

“그만! 아저씨! 그만요!”



리차드 웨일은 고약한 농담과 함께 킬킬거렸다. 코블렌츠 원정을 가본 것 같은 몇몇 사람들도 같이 웃었다.



“... 설마. 농담이겠지?”



엔조 미요가 울상이 되어 소곤거렸다.



“쥐? 모르지, 뭐.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으아아! 제발. 진짜로 최대한 빨리 1군에 가야겠어. 끔찍하다고.”

“그래.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앞으로 빡세게 뛰어야지, 뭐. 천국 같은 분데스리가에서 우리를 불러주기를 기다리면서.”



웨일 아저씨의 고약한 농담이 엔조의 절실함에 불을 붙였나? 코블렌츠로 향하는 내내, 녀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 중얼거리며 결의를 다지는 듯했다. 나 원 참. 승부욕에 불타는 방법도 가지가지네.




**




21/22 시즌의 개막전이라 설레서 그런가. 원정길이 고되고 길어서 그런가. 아마 후자겠지만, 어쨌든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웨일 아저씨의 말마따나 정말 쥐똥만큼 작은 원정팀 라커룸을 확인해 뜨악했던 것도. 구단에서 공수해 온 식사를 꾸역꾸역 집어넣고 바로 워밍업에 들어갔던 것도. 짧은 워밍업을 끝내고 이어진 파른호스트 감독님의 간단한 브리핑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새 경기에 나서기 직전이었다.



주문받은 축구 내적인 내용은 별 것 없었다. 코블렌츠의 전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으니, 우리가 할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 정도다. 프리 시즌 내내 맞춰 온 움직임 몇 개를 강조하셨던 것 정도.



다만, 마음가짐은 반복해서 강조하셨다. 의욕이 과해서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되고. 경기장 위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되 너무 신을 내서 상대에게 무례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등.



이제 막 프로 레벨로 올라온 선수들이 많아서인가, 이런 당연한 말씀으로 라커룸 토크를 채우셨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 치는 놈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겠지.



감독님의 시선이 내게도 자주 닿았다. 여기서 나이로 치면 막내기도 하고, 실전 경험이 없으니 걱정이 되셨을 수도 있고. 어쩌면 경고의 의미가 담겼을 수도 있다.



의미를 잘 안다. 경기장 밖에서 프로 선수로서 보여줘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관찰이 들어가는 거다. 경기장 안에서의 퍼포먼스뿐 아니라, 이런 것 또한 내가 누적해야 할 결과물들이고.



“자. 다들 나갈 준비해. 어이구, 허리야. 야- 꼬맹이들아! 아저씨 힘드니까 많이 뛰지 않게 해 줘라! 열심히들 해 보자고!”



오늘 선발이자 주장 완장을 차게 된 웨일 아저씨가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수단 전원이 둥그렇게 스크럼을 짤 만한 공간도 없어, 비좁은 자리에서 각자 주먹만 하늘로 들어 파이팅을 한 뒤. 답답한 라커룸을 하나씩 빠져나간다.



“머리 깨우자고! 몸만 풀리면 다 되는 게 아니라 머리가 깨어 있어야 돼! 시즌 준비하면서 계속 반복했던 것 잊지 말자!”



나름대로 투지를 불태우는 선수들이 각자의 목표를 조금은 옆으로 밀어 두고, 당장 90분 뒤의 승리만을 생각하며 환한 그라운드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리저브 팀의 경기임에도 이 정도라면, 나쁜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나도. 나도 통로를 벗어나고 큰 육상 트랙을 지나 잔디 위에 딱 발을 얹는 순간에, 왼쪽 가슴에 박힌 슈투기의 로고를 매만졌다. 크게 들뜨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라앉지도 않은, 딱 좋은 기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좋네.’



데뷔할 준비는 끝났다.




**




[ 현재 시간, 2021년 8월 14일 오후 2시. 이번 시즌 슈투기의 첫 번째 레기오날리가 쥐트베스트 경기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여기는 코블렌츠의 오버베르트 스타디온이고, 언제나처럼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 인사드리는 필트너입니다. ]

[ 슈미트입니다. ]

[ 1시간 30분 뒤면 슈투기의 분데스리가 개막전이 시작하기 때문에, 지금 이 중계를 찾아보시는 분들은 많이 없겠지요? 지금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에 모든 시선이 쏠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을 맞이하는 슈투기 U-21 팀은 정말 흥미롭다는 걸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

[ 정말 그렇습니다. 특히 구단으로부터 새로운 선수들이 상당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

[ 소개해 주시죠. 누가 있을까요? ]

[ 최전방에 나오는 선수. 태-훈, 유. 한국인이고, 17살입니다. 17살! U-17도 아니고, U-19도 아니고, 곧바로 레기오날리가에 데뷔합니다. 특히 이 선수는 몇 달 전 뮌헨 U-19와의 경기에서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인 적이 있었죠. ]

[ 영상을 꼭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굉장히 인상적인 득점과 도움을 선보였던 선수거든요. 오늘 프로 계약을 맺은 뒤 첫 경기를 치르는데, 구단은 아주 훌륭한 결과를 기대한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신입생 엔조 미요와의 호흡도 기대된다 하죠. 바로 이 선수입니다. 킥오프를 준비하고 있는 등번호 29번의 이 선수. ]

[ 경기 시작하네요. ]

[ 슈투기의 선축으로 경기 시작됩니다. 코블렌츠는 4-4-2로 나서는 것 같습니다. 오우, 전방부터 강하게 달려드는군요. ]




**




로트-바이스 코블렌츠는 하나의 완전한 팀이고. 우리는 슈투트가르트라는 구단의 리저브 팀이다. 만약 이 경기 승부에 대한 순수한 간절함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쟤들이 우리보다 더 높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슈투트가르트라는 큰 조직이 재능의 편린을 발견해 키워 보려는 선수들이 모인 집단이고.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레기오날리가를 뛴다.



지금 이 경기의 내용과 결과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인 선수는 아무도 없다. 좋은 결과를 내서 1군으로 올라가는 게 목표지.



반면 코블렌츠의 선수들은 여기가 저들의 1군이다. 커다란 팀에서 선택받지 못하고 밀리고 밀려서 4부리그 팀에서라도 축구를 이어가는 선수들.



본인들도 재능이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 간절할 수 있고, 그래서 더 거칠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거다.



삐이익-!

“으악!”



거칠게 들이박는 것으로 실력의 간극을 메우려는 플레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첫 3분 만에 양상을 눈치챈 나는, 공을 잡을 때마다 거칠게 들어오는 수비수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일단 집중했다.



지금도 패스를 받자마자 공을 툭 밀어놓는 반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발끝을 차이는 게 아니라 발목에 강한 충격을 받았을 거다.



“알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아오. 까딱했으면 발목 돌아갈 뻔했네.”

“이 자식들, 첫 경기부터 더럽게 하네. 진짜.”



파울을 얻어낸 28m 지점 부근에 다른 녀석들이 몰려와 누워 있던 내 가슴팍을 두들겼다. 얼굴에 묻은 잔디를 털어내며 팔코 미첼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며 얘기했다.



“다들, 온 볼 상황을 많이 만들면 위험해. 느꼈지?”

“알비 말이 맞아. 공을 조금 빨리 순환시키자. 더 많이 움직여서,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자고.”

“그건 그거고. 지금 이건 어떻게 처리할래? 붙여?”

“붙여서 공중볼 싸움 한 번 해보자. 쟤네 거칠게 하는데, 우리도 기세에서 밀리면 안 돼.”



센터백 마글리카의 말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칠게 나오는 상대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지 않으면 초반 기세 싸움에서 밀리고 들어간다. 필드 위에서 그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또 없다.



프리킥을 담당할 에킨 첼레비에게 공을 맡긴 채 선수들이 우글거리는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기분 나쁜 팔꿈치가 시선 근처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여차하면 찍어버릴 수도 있다는 허풍이다.



‘허풍이 아니면 좀 아프기야 하겠지만.’



리그 첫 경기부터 팔꿈치를 써 퇴장을 자초할 정도의 멍청이는 웬만해서는 없다. 팔꿈치에 쫄아 위축되는 게 코블렌츠 수비수들이 원하는 거라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팔꿈치 쪽에 얼굴을 들이밀며 거세게 옷을 잡아당겼다가 놓고 밀치기도 했다. 아시아인 공격수가 유럽 무대에서 살아남는 가장 기초 단계이기도 하다. 쫄지 않고 들이받기.



이전 삶에서 수도 없이 체득한 방법 그대로, 코블렌츠 놈들과의 싸움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첼레비의 킥이 문전으로 날아든다.



“나야! 나야!”



살짝 높은 킥이 먼 포스트를 향해 감겨 들어오고, 뒤쪽에서부터 점프한 수비수가 두려워 않고 머리를 들이댄다. 살짝 빗맞은 헤더가 상대 수비수의 몸을 맞고 흘러나오고, 클리어링이 제대로 되지 못해 어정쩡한 위치로 통통 구른다.



“알비!”



누군가 내 이름을 외치기도 전에 이미 몸이 반응한 상태였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어깨부터 집어넣고, 자세를 한껏 낮추고 엉덩이를 빼 수비수의 뒤늦은 도전에서 충격을 흡수한다.



이를 악물고 하체에 힘을 줘 버텨낸 뒤. 상체의 페이크로 수비수의 반응만 확인해 본다. 역시 레기오날리가 선수라 그런지 페이크 하나에 움찔하는 반응이 크다.



곧장 왼발 발바닥으로 공을 긁어내며 등지고 있던 상대의 허리를 휘감아 돌았다. 어깻죽지가 잡혀 유니폼이 길게 늘어지지만, 어깨를 슬쩍 휘둘러 저항을 밀어냈다.



누군가가 크게 ‘파울! PK!’라는 소리를 질러준 덕분에 수비수의 힘이 쉽게 빠진 것 같았다.



휘청거리듯 왼발을 크게 내딛고, 억지로 밸런스를 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한 시야 안에 패인 잔디와 축구공, 하얀 선, 수많은 축구화들이 혼재했고- 그 많은 정보 중에 순간적으로 손짓하며 움직이는 파란색 축구화를 찾아냈다.



지체없이 뒤쪽으로 공을 밀어 보냈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달려나가며 패스를 보낸 방향 그대로 공을 쫓아 이를 악물고 달렸다.



“엔조!”



내 패스를 받은 엔조 미요는 상황을 바로 이해한 듯했다. 패스를 받자마자, 자기가 슈팅할 수 있는 공간을 수비수가 가로막게끔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내가 녀석의 뒤로 돌아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내 속도가 붙고, 내가 녀석을 축으로 삼아 왼발 각도를 만드는 자세에 딱 들어가자마자. 별다른 속임 동작 없이 오른발 안쪽으로 공을 툭 밀어줬다.



흐으읍-

“때려!”



숨을 크게 들이킨 뒤, 알맞게 흘러가는 볼의 옆에 오른발을 쾅 디뎌 놓고서. 왼발을 강하게 휘둘렀다. 축구공이 왼발 안쪽에서부터 복숭아뼈까지 강하게 타고 흐르는 감각이 짜릿했다.



멋들어진 궤적으로 날아가는 공을 끝까지 바라봤다. 먼 포스트 바깥쪽으로 나갈 것처럼 비행하던 공이 어느 순간 안쪽으로 급격하게 휘어 들어오며, 마지막 순간 골대 안쪽을 때리고 부드럽게 골망 안으로 감겨든다.



“그렇지이이이!”

“나아아아이스!”

“알비! 알비!”



이번 생에 프로 첫 골. 어렵지 않게, 정확하게 그리는 대로 나왔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게 달려드는 다른 녀석들을 다 피해서, 왼쪽에 안겨 어깨동무를 한 엔조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하면서. 경기장 중앙 터치라인 부근을 향해 달렸다. 거기 우리의 경기를 유튜브로 송출하기 위해 세워둔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정식 중계도 없고 구단 자체 유튜브를 통한 송출밖에 되지 않지만- 엄마 아빠는 이 경기를 모니터 앞에서 지켜보고 계실 거였다.



카메라를 한 번 가리킨 뒤 가슴팍 앞에서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어제 약속했던 대로, 부모님한테 보내는 세레머니다.



물론 멋진 척을 하는 건 거기까지였다. 뒤늦게 달려온 녀석들이 하나 같이 날 헤집어놓기 시작했거든. 정도가 제일 심한 건 웨일 아저씨였다. 주책맞은 사람.




**




[ 우- 매우 좋은 플레이입니다! 슈투기의 어린 선수들이 첫 경기부터 훌륭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중앙에서 과감한 전진 패스와 리턴, 그리고 다시 전진 패스! ]

[ 삼각 패스가 아주 원활하게 돌아가네요. 자신감이 붙은 우리 어린 선수들이에요. ]

[ 주고, 뛰어가고. 받고, 내주고. 내주고- 다시 들어갑니다! 팔코, 엔조, 유! 멋진 콤비네이션, 마지막은 유! 키퍼와 마주한 상태에서 슛, 아닙니다! 옆으로 내어줍니다! 완벽한 찬스- 골대가 비었습니다! 텅 빈 골대로 그대로 밀어넣습니다- 엔조! 미요! 3대0, 슈투기! 전반전 끝나기 직전, 3대0까지 만들어 버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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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06. +6 24.08.31 7,635 190 15쪽
5 005. +3 24.08.30 7,904 176 16쪽
4 004. +8 24.08.30 8,081 17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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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02. +13 24.08.29 8,817 17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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