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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노비가 왜구의 골통을 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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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사일도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6
최근연재일 :
2024.05.16 13:08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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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
추천수 :
85
글자수 :
54,237

작성
24.05.1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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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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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3쪽

모공(謀攻), 작전을 모의하다

DUMMY

오돌의 입에 육즙의 향연이 펼쳐졌다. 언젠가 백정 장팔이 빼돌린 소의 염통을 삶아 먹어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실한 살코기를 먹은 것은 인생 최초라 할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맛이다.’


비릿하던 염통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었다.


구운 소고기를 입에 잔뜩 집어넣은 오돌은 눈을 감고 맛 그 자체를 음미했다. 개구리, 미꾸라지, 쥐, 토끼, 참새, 여러 고기를 먹어 봤지만, 이 맛은 결 자체가 달랐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면서도 입안으로 퍼지는 육즙은 달기까지 하다.


꿀꺽.


그리고 이 묵직한 목 넘김은 어떠한가? 삼키는 그 와중에도 맛이 느껴진다.

괜히 세간 사람들이 육고기 중 소를 으뜸으로 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목 막힘은 어쩔 수 없었기에 이번엔 소고기 국물을 마셨다.


후루룩.


“캬아....”


뜨뜻한 소고기 국물이 목을 지나 뱃속까지 후끈하게 스며들었다. 기름이 진득한 이 국에 둥둥 떠 있는 고기는 보아하니 머리 고기와 꼬리다. 장팔 아재가 그랬다. 소란 버릴 것 하나 없는 녀석으로 머리와 꼬리로 국물을 우려내면 그 맛이 으뜸이고 푹 삶은 그것은 부드럽기 그지없을 것이라고.


당시 오돌은 말로만 들어서는 그 맛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먹어본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부드러움을 넘어서 입안에 꽃잎처럼 살랑거리며 혀를 스쳐 목구멍으로 순식간에 스며든다.


겨울에 눈이 내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이 이러할까.

아니다. 눈은 무미(無味)지만 이것은 진미(眞味)가 아닌가.


오돌은 다시금 눈물이 핑 돌았다.


만약 누군가 소고기를 매일같이 준다면, 그를 위해 인생을 바치리라. 그만큼 행복한 삶도 없을 것이다. 노비라도 좋다. 천해도 좋다.


그래.


인생 지사 고기서 고기인 것이다.

무슨 고기를 먹느냐에 팔자가 갈리는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얻을 찰나.


“하고 있냐?”


임두영의 목소리가 황홀경에 빠진 오돌 깨웠다.

눈이 번쩍 뜨이자 보이는 것은 여전히 잘 차려진 밥상.

아직 먹을 것이 많았다.

여전히 행복했고.

여전히 배가 고프다.


“이놈이?”


대답이 없자 두영이 창호를 벌컥 열었고, 바깥에서 펼쳐지는 사물놀이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으업?”

“이놈이? 고만 처먹고 시킨 것부터 하라고 인마! 하여튼 천박한 티를 내는구나!”


입안 한가득 고기를 머금고 있는 오돌이 보기 싫었던 것일까? 임두영이 먹던 밥상을 휙 하고 물렸다.


희번뜩.


먹던 것을 빼앗긴 기분을 아는가?

이 상황에선 짐승도 화를 낼 것이다.

순간 오돌의 눈에서 살기가 흘렀고, 임두영조차 뜨끔 할 수밖에 없었다.


“누, 누가 안 준대? 시킨 것부터 하라고 인마.”


순간 이성을 잃었던 오돌이 정신을 되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밥상은 주인 도령이 거저 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이번 석전판의 승리를 가져다줄 작전에 대한 대가였다.


오돌은 빼앗기지 않은 오른손의 밥 한 덩이와 왼손의 수육을 입속에 집어넣곤 기름기에 번들거리는 손을 옷섶에 슥슥 닦았다. 워낙 꾀죄죄해서 티도 안 난다.


“꼼꼼하게. 내가 봐도 이해할 수 있게! 알겠어?”

“꿀꺽. 네.”


오돌의 눈이 다시금 초롱초롱해졌으니, 임두영의 수는 제대로 통했다고 봐야 할까?


“빨리 안 하면 내가 다 먹어? 츄릅. 그런데 이거 참 먹음직스럽구나.”


임두영도 먹음직스런 소고기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천하디천한 노비가 먹던 밥상이지만, 눈앞에 번들거리는 큼지막한 소갈비의 유혹은 참기 힘든 것이다.


결국 임두영이 소갈비를 집어 들었다!


“아아...안....”


그것은 오돌이 일부러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 둔 유난히 살점이 많이 붙은 것이었다. 그것이 자비 없이 임두영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의 턱살이 부르르 떨렸다.


“쩝, 쩝. 너 그거 빨리 안 하면 다 먹을 거다. 쩝쩝, 꿀꺽.”


그의 입을 거친 갈비는 앙상한 뼈마디를 드러냈다.


저 귀한 것을 몇 번 씹지도 않고 삼키는 도련놈.


저 돼지 도령의 식성이라면 저 밥상은 순식간에 거덜 난다.

치밀어 오른 위기감에 오돌은 빠르게 종이를 펼쳤다. 손에 묻은 소기름에 종이가 달라붙었고, 오돌은 그 손가락을 손으로 쪽쪽 빨았다. 소고기의 고소함이 손때의 짭쪼롬함과 어우러졌다. 별미다.


그때, 임두영의 손이 두 번째 갈비를 향해 움직였다.

오돌이 황급히 외쳤다.


“자, 잠깐만요! 도련님.”

“왜? 쩝쩝.”


갈비는 순식간에 임두영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다시금 앙상해진 갈빗대.

눈물이 핑 돌았다.


“도, 도련님 집중이 안 됩니다. 자, 자고로 제대로 된 전술을 짜기 위해선 심상 속에 전장을 그려 내야 합니다.”

“쩝쩝, 내가 뭐 집중하는 데 방해된다 그거냐?”


우물쭈물.

차마 그렇다 즉답이 나오진 않았다.

지금은 영락없이 돼지처럼 보여도 명색이 주인도령인 것이다.


하지만 임두영이 이번엔 소고기 국그릇에 손을 가져다 댔고, 오돌은 마음이 급해져 없던 용기까지 생겨났다.


“그, 그렇습니다!”

“켈룩.”


임두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하며 국그릇을 내려놨다.


“도저히 집중이 안 됩니다. 도련님! 승리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나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겨야죠!”


국그릇을 내려놓은 임두영이 팔짱을 꼈다.

돼지 앞발이 자취를 감추자 오돌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음. 그렇지? 이겨야지. 이번 석전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럼요!”

“오돌아, 필승의 전략을 짤 수 있겠느냐?”


필승(必勝)

그것을 쉬에 입에 담는 장수가 있다면 필시 명장은 못 될 것이다.


“필승의 전략을 짜겠습니다!”


하지만 소고기가 걸린 일이다.

명장이 될 필요도 없다.

난 아직 배가 고프다.


“음, 그래 좋다. 내 다시 여기서 망을 볼 테니. 다 되면 말해라. 그리고 꼼꼼하게! 내가 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무슨 말인지 알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좋아. 그런데 알지? 이번 석전에 지면 네 책임이야.”


그렇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언제나 임두영의 과오(過誤)는 오돌의 책임으로 전가되었다.

이번 또한 마찬가지.


허나 두렵지도 않다.

지면 뭐 매타작 좀 맞으면 될 일이다.

매타작 맞고 소고기 먹었으면 그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다.


“패한다면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설마 죽이진 않을 것이다.

오돌은 자신이 이 집안에 말 다음으로 비싼 재물임을 알았다.

석전에 졌다고 죽을죄는 아닐 터.


“좋아. 이 밥상은 으음.... 네가 전술 짜는 데 방해가 되니 다 하고 나면 먹거라.”


젠장.


오돌은 이를 악물고 알겠다 하였고 임두영은 다시금 창호 밖으로 나갔다.


“후우....”


그래도 지켰다.

갈비.



***



“다 됐습니다. 도련님.”


벌컥.


“어디 보자!”


가장 윗장에 표시된 것은 작전상황도였다.


“이게 뭔데?”


그것은 도식화되어 있었고 분명 설명이 쓰여 있었는데 당장 임두영이 알아보긴 힘든 부분도 많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그렇죠. 손자의 모공편에 나오죠.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

“그렇죠.”


그것은 일전에 임형태가 두영에게 무경칠서를 필사하란 벌을 내렸을 적에 오돌이 필사 중이던 대목이었다. 그리고 손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지피지기. 여기 대곡천의 남쪽이 우리 두동골, 북쪽이 세동골입니다.”


두동골과 세동골이라 쓰여진 글귀 위엔 각 마을을 수호하는 장승이 그려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석전의 승패는 상대 마을 초입부를 점령하는 편이 이기는 거로 가려졌다.


“음, 그림이 어수선하긴 하다만 알겠다. 이건 뭐지?”

“아군과 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전을 짤 때 외부적인 요소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지형 말이죠. 여기가 송림(松林)이고 여기는 성황당입니다. 두동골의 장승으로 향하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할 작전 요충지죠.”


소나무 숲인지라 엄폐물이 많았고, 성황당 근처에는 마을 사람들이 물 떠놓고 소원을 빌던 돌무덤이 많았다. 석전에서 돌이 많은 곳이 요충지가 됨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흠, 그렇군! 그러면 이곳은, 그래! 대곡천을 지나 세동골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방앗간과 이건 그 곁에 있는 우물이구나.”


방앗간은 물의 힘에 의해 작동되었기에 수원(水原) 근처에 자리 잡는 것이 보통이었다. 두동골엔 방앗간이 없었기에 곡식을 빻기 위해서는 세동골의 방앗간을 빌려야 했고, 이곳은 두영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역시 영특하십니다 도련님.”

“엣헴.”


오돌은 임두영의 기를 살려줬다.


“방앗간은 샘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위치했습니다. 이곳은 길목이 좁고 장애물이 많아 적의 요충지입니다.”

“호오....”

“이것이 모든 작전의 기본이 될 것입니다. 다음은 아군과 적에 관한 것입니다.”


오돌이 다음 장을 넘겼다.


“두동골의 장정, 그러니까 단옷날 바보가 되었다는 돌쇠까지 포함 시키면 총 오십 네 명.”

“난 빼거라.”

“예?”

“나, 나는 지휘 해야 하니 말이다.”


순간 오돌은 벙쪘다.

장수가 후방에 있다면 군대는 누가 이끄는가?

이끌다 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나으리께서 그걸 두고 보실까요?”


오돌은 충언을 뱉었다.

만약 후방에서 몸을 사리는 두영을 본다면 나으리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한심한지고!!’


그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괜찮다. 이미 변명거리도 만들어 뒀으니. ‘아버지! 혹여 눈먼 돌에 지휘관이 상한다면 군기와 사기를 동시에 잃게 되는 것이니 위태로움을 감수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하면 되는 것이다.”


순간 오돌은 눈앞의 돼지 도령이 임두영이 맞나 의심했다. 이토록 청산유수의 답변이 흘러나오다니. 심지어 오돌의 머릿속에 구상한 작전과도 맞지 않았지만 납득했다.


“그, 그리고 오돌이 네 녀석도 내 곁에 있어야 한다.”

“엥?”


당황스러운 두영의 면모와 의외의 발언에 오돌의 말이 짧아졌다.


“인마, 생각해 봐라. 아버지가 갑자기 내게 뭔가를 여쭤보셨는데 내가 어버버 하는 일이 생기면. 어? 그럼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야.”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만약 이것이 실제 전쟁이고 임두영이 장수라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졸장 중의 졸장의 면모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오돌이 이번 작전에 자신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기에 그러했다. 지난번 돌팔매로 토끼를 적중시킨 후에도 수차례나 돌을 더 던진 바 있었다. 그리고 오돌은 확신을 가졌다. 자신의 돌팔매질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어떤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내심 자신이 활약하는 판을 짜 놓은 상황이었다.

그럼 승리는 더 가까울 테니.

하지만 두영은 이 판에서 오돌이 장기말이 될 수 없음을 논하고 있었다.


“도련님. 저는 도련님과 선봉에 설까 했습니다.”

“선봉은 무슨! 다시 짜거라.”


새 판을 짜라니.

여태까지 헛수고 한 것인가?

오돌은 밥상이 다 식었을까 두려웠다.


“후... 그런데 도련님. 머리를 많이 써서 그런지 배가 고픈데 좀 먹고 해도 되겠습니까?”

“킁.”


그럴듯한 작전 초입부에 매료되었던 임두영이 오돌이의 식사를 허락했고, 오돌이는 빠르게 밥상을 비워 나갔다. 고기와 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으로 계속 전략을 구상했기에 아까처럼 무아지경의 식도락을 즐기며 황홀경에 도달하진 못했다. 그래도 행복함은 매한가지였다.


너무 배가 불러 뱃속의 음식물이 목 끝까지 차올랐음을 느끼고 나서야 오돌은 밥상을 물렸다. 무려 소고기를 남기다니. 오늘은 실로 호강하는 날이었다.


“다 먹었느냐?”

“꺼억. 넵.”

“그럼 계속하거라.”


오돌은 빈 종이에 새 작전상황도를 그리는 동시에 설명했다.


“지휘관이 후방에 있다는 것은 전방의 군대에게 보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작전 신호를 소리로 전달해야 합니다. 이 경우엔 저기 들리는 사물(북, 꽹과리, 징, 장구)이 용이합니다.”


바깥에선 여전히 사물놀이가 한창이었다.


“옳다. 네 말이 옳다.”

“그리고 저희는 상전 나으리의 눈 밖이지만 전장 상황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고지대를 선점해야 합니다. 그곳은 바로 여기.”

“어디?”


커다란 오동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나무 위입니다.”

“난 나무 탈 줄 모르는데?”

“알고 있습니다. 미리 조치해 두면 될 일입니다.”


사다리를 만들어 둘 생각이었다.


“좀 무섭긴 하지만. 좋다. 나무 위까지 아버지께서 오진 않으시겠지. 그래. 계속해 보거라.”

“네. 일단 저와 도련님이 전력 외로 빠지면 쉰둘입니다.”

“세동골은?”

“저희보다 많습니다. 조현 도련님이 석전판에 끼실지 의문이지만, 만약 포함한다면 예순한 명입니다.”

“빼면 예순 명이구나.”

“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불리합니다.”


여기까진 모두가 아는 형국이었다.


“크흠.... 우리가 정녕 이길 수는 있는 것이냐?”


오돌이 작전상황도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불리함을 뒤집는 전술이 필요한 법이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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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노비가 왜구의 골통을 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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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일기당천(一騎當千)의 눈물 +2 24.05.16 76 5 13쪽
9 조호리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산에서 나오게 하라. 24.05.15 81 5 15쪽
8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라 24.05.14 91 9 14쪽
» 모공(謀攻), 작전을 모의하다 24.05.13 110 8 13쪽
6 모공(謀攻), 작전을 모의하다 +1 24.05.12 145 7 13쪽
5 선전포고(宣戰布告) 24.05.11 173 10 12쪽
4 죽음의기운(死氣) +1 24.05.10 199 8 13쪽
3 지랄맞은 팔자(奴) 24.05.09 217 12 12쪽
2 괴이한 꿈(怪夢) 24.05.08 265 10 13쪽
1 선조실록(宣祖實錄) 27년 5월 8일자 24.05.08 278 1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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