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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노비가 왜구의 골통을 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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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도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6
최근연재일 :
2024.05.16 13:0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627
추천수 :
85
글자수 :
54,237

작성
24.05.09 10:17
조회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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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2쪽

지랄맞은 팔자(奴)

DUMMY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께서 여쭙거든 난 체력을 단련하며 무예를 수련한 것이다.”


저 피둥피둥 살이 오른 주인 도련님은 꼴같잖게도 무관을 선발하는 무과(武科)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실로 그가 무과에 급제할 거라 여기는 이는 이 마을에 아무도 없었다. 아니 딱 한 사람뿐이다. 내 상전 나으리이자 도련님의 아버지 되시는 임형태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도련님께선 산을 세 번이나 왕복하셨고 목검으로 검술 수련도....”

“세 번이 아니고 다섯 번이다. 그리고 검술이라니? 무과엔 검술 따위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하여튼 천것이라 머리에 든 것이 없구나.”


어디서 찾은 건지 딱 목검처럼 생긴 작대기를 들고 있어 했던 말이었건만, 지랄병이라도 든 것인지 저 도련놈은 틈만 나면 지.


“어쭈? 대답 안 해? 너 속으로 내 욕했지!”

“랄, 아니 그럴 리가요. 속으로 도련님께서 산 정상까지 몇 번 왕복 하셨나 세 보니 다섯이 맞습니다. 정말 체력이 대단하십니다.”


갑자기 홱 돌아보며 작대기를 들고 내 눈앞에 들이민 도련놈의 지랄에 황급히 변명했다. 그러지 않으면 저 작대기가 부러지도록 매타작이 시작될 테니. 노비가 맞는 데는 이유가 딱히 없다.


도련놈은 작대기로 내 머리를 톡 톡 치며 입꼬리를 올렸다.


“크큭. 좋아 그래야지.”


그래도 대충 둘러댄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도련놈은 다시 뒤돌아 작대기를 휙 휙 바람 소리가 나도록 휘두르며 길가에 난 풀을 도륙 냈다. 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산을 왕복한 것은 거짓이나, 검술 수련은 사실인데.


사실 무엇이 거짓인지 참인지는 중요치 않다.

내 삶에 이유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내가 이유가 있어서 노비인 것도 아니고, 이유가 있어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냥 지랄 맞게 천하게 태어나 이리 사는 것이다.



***



오돌의 주인 도령 임두영이 개울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의 젖가슴을 쳐다보며 희롱하고, 꼬마들이 골목에서 놀다 길을 막자 발로 차 버리고 꼬마들의 울음소리를 기분 좋게 들으며 남의 집 개에 돌을 던지고 하다 보니 어느덧 오돌의 상전댁에 도착했다.


“기다려라.”

“네.”


임두영은 문 앞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이곳은 낡긴 했어도 두동골의 유일한 기와집이자 양반댁인 만큼 이 집의 담장이 두동골에선 가장 높았다.


“열어라.”


주인 도령의 지시에 오돌이 반쯤 열려있던 대문을 열었다.


“네 이노옴!”

“!!!”


동시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 우렁찬 노여움이 둘을 내리꽂았다.


오돌은 상전의 노성에 철렁해 지게에서 장작이 와르르 쏟으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임두영은 바짝 긴장해 ‘내가 뭘 잘못 했더라?’ 하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임두영이 결국 양손을 모으며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소, 송구합니다.”

“두영이 네가 단오날 석전에 참전했다지?”


상전이 노한 이유는 단박에 나왔다.

오돌은 상전의 분노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지만 안도할 수 없었다. 석전(石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자신도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러했다.


“예?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아니긴 무어가 아니더냐! 네 놈이 석전에 끼어들어 돌 좀 던지다 겁먹고 꽁무니 뺐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늘!”


그런 일이 있었나?

임두영이 꽁무니 빼기 전에 이미 뒤통수 맞고 혼절했던 오돌에게 그런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 아니 그, 그 꽁무니가 아니라... 전술적인 삼십육계 줄행랑....”

“변명 집어 치워라! 내 너를 그리 키웠더냐! 비록 석전이라 하나 그것은 돌 석자에 싸울 전자. 전투란 말이다! 무관이 되겠다는 놈이 전투에서 적에게 등을 보여? 차라리 대가리가 깨져 그 자리에서 뒈지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이노옴!”


임형태는 종9품 권관(權管) 출신으로 울산의 변경에서 근무하던 무반(武班)이었다. 무관 말석이었고 몇 해 전 책임 지역에서 경계를 소홀히 해 왜구를 들인 죄목에 파직을 겨우 면하고 자진하야 한 인사였다. 명예로운 자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이 자그마한 두동골에서 만큼은 방구 좀 뀌는 양반이었다.


“쯧쯧쯧, 꼬락서니하고는... 오돌이 네 놈도 뒤통수 꼬라지를 보아 하니 같이 도망 쳤나보구나. 두영이 네 놈이나 종놈이나 쌍으로 어휴....”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건 도련님이 돌을 잘못 던져 맞은....’


입가를 맴돌지만 오돌은 변명하지 않았고, 반대로 임두영은 이거다 싶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저는 도망치려 한 것은 아니나, 오돌이 이 녀석이 절 끌고 도망친 것입니다. 맞지!”


두영이 오돌을 노려봤다.

이 와중에 내 탓인가?

억울한 것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네? 아, 맞습니다. 네 맞습니다. 위험한 석전판에 도련님께서 끼어든 것에 놀라 제가 분수도 모르고....”

“이, 이놈아! 날 놓거라! 장수는 절대 적 앞에 등을 보이지 않는다! 오돌이 네 이놈!”


오돌은 바짝 엎드려 잘못을 고하던 것도 잊고 신들린 듯 연기하는 두영을 멍 하니 바라봤다. 도대체 이 도련놈은 뭐라 지껄이는 것인가? 지랄병은 참으로 약도 없는 것인가?


“아버지! 전 이렇게 말하며 오돌이 이 녀석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놈 어깨를 보십시오! 이놈 힘이 장사인 지라.”


금세 도련놈의 의도를 알아차린 오돌이 맞장구 쳤다.


“어? 아. 그, 그렇습니다. 나으리, 벌하시려거든 저를 벌하십시오. 도련님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크흑. 아버지. 저도 우리 두동골이 석전에 진 것이 통탄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침부터 일어나 산 정상까지 세 번이나 왕복했고.”


눈시울까지 붉어지는 임두영.


“제가 똑똑히 봤습죠. 세 번이 아니고 다섯 번이었습죠!”


눈치 없는 노비는 명이 짧다.

그 점에서 오돌은 명줄이 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오돌은 임두영의 변명에 맞장구쳐 줬고, 그럴수록 성난 상전 나으리의 미간에 주름살이 하나둘 녹아내렸다.


“크윽, 분합니다! 아버지! 세동골 놈들에게 지다니. 치욕스럽습니다 아버지! 이 치욕을 씻을 수만 있다면! 뒷산을 다섯 번이 아닌 오백 번도 더....”


기어이 임두영은 제 가슴을 치며 통탄해 하기 시작했고, 오돌도 박자 맞춰 외쳤다.


“다 제 잘못입니다! 나으리, 도련님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세동골 놈들에게 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버지!”


그제서야 오돌의 상전이자 임두영의 아버지인 임형태의 노성이 잦아들었다. 임형태가 희끗희끗한 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돌이 네 놈이 주인인 두영이를 지키려 한 것은 알겠다. 허나 명심하거라. 본디 상전과 노비의 관계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나 다를 바가 없느니라. 이번 일은 네가 잘못 한 것이 맞다. 자고로 신하가 제아무리 자신의 뜻이 옳다 여겨도 임금의 앞을 가로막아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것이 충(忠)이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요. 어르신.”

“그리고 두영이 너도 새겨듣거라. 무과에 급제하면 너도 주상전하의 녹을 받는 무반이 되는 것이고 충을 가장 중요한 기치로 받들어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은 오돌이 잘못 한 것이 맞지만 신하인 오돌을 설득하지 못한 네 책임도 분명히 있음이다.”

“맞습니다. 아버지.”

“그러니, 오늘 넌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무경칠서(武經七書)를 밤새워 필사하도록 하거라!”

“아, 아버지!”

“오돌이 네 놈도 군주를 모시듯 밤새워 두영이의 곁을 지키며 먹을 갈아라. 알겠느냐!”


잔뜩 진지해진 상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오돌이 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똑같이 고개 숙인 얼굴에서 오돌은 인상을 찌푸렸고, 두영은 웃고 있었다.

무경칠서는 무과 시험을 치르기 위해 반드시 공부해야 할 병법서였고, 필사해야 할 요약본만 무려 7권에 달했다.



***



“야 인마, 글씨를 그렇게 똑바로 쓰지 말라고. 네가 무슨 한석봉이야? 대충 쓰라고 내 서체 몰라? 확!”


한석봉은 두동골 까지 명성이 닿은 조선 최고의 명필가였다. 임두영이 알고, 오돌이 알 정도면 말 다 한 것이다. 두영에게 지적받은 오돌은 왼손으로 붓을 고쳐 잡았다.


“옳지 그렇지. 이제야 내 필체랑 비슷하네. 잘 하고 있어.”


본디 지금 붓을 잡아야 하는 이는 두영이었고 오돌은 두영이 쓸 먹을 갈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두영은 코딱지 파며 드러누워 맨발로 오돌의 옆구리나 쿡쿡 찌르고 있고 정작 붓을 잡은 이는 오돌이었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었다.

필사를 하라는 벌은 두영이 잘못을 저지르면 받게 되는 단골 벌칙이었다. 하지만 그 벌칙을 대신 치르는 이는 언제나 오돌이었다.

두영에게 오돌은 늘 그런 존재였다.


“크흠.”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두영이 잘 하고 있나 감시하러 온 임형태의 기침 소리였다. 임두영은 후다닥 일어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오돌이 필사 중이던 대목을 읊었다.


무경칠서 중 첫 권인 제(齊) 나라 출신의 손무(孫武)가 쓴 손자(孫子)의 한 대목이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해?모?....”

“매.”


도영이 매양 매(每)자를 모르는 눈치를 보이자 오돌이 황급히 속삭였고, 덕분에 두영은 실수를 면했다.


“매전필태!”


손자병법 3편의 ‘모공(謨攻)’ 편에 속한 마지막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공격을 위해 계획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전히 창호 건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상전 나으리께서 더 바라는 것이 있다. 그 대목의 해석도 원하는 것이다.


눈치 빠른 오돌은 얇은 붓을 잡아 들고 언문(諺文, 한글)으로 빈 종이를 채웠다.


[적의 상황을 알고 나의 상황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오돌이 적자,


“나의 상황만 알고 있다면 한 번은 승리하고 한 번은 패배한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나의 상황도 모르면 매번 전쟁할 때마다 필히 위태로워진다.”


두영은 읽었다.


그러자, ‘크흠!’ 하는 약간은 흐뭇한 헛기침과 함께 임형태의 인기척이 멀어졌다. 이제 밤도 깊었고 부엉이 소리도 들리니 주무실 시간이었다.

발걸음이 멀어지고 안방의 미닫이가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임두영이 벌러덩 드러누웠다.


“됐다. 됐어. 고생했다 인마.”


달콤한 두영의 공치사에 오돌은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잘 테니까, 음... 귀 기울이고 있다가 아버지 기침하시면 깨우거라. 아, 해 뜨기 전까진 필사 다 해 놓고 알겠느냐? 흐아암.”

“해뜨기 전까지....”


장작도 많이 팼고, 토끼도 잡았고... 무엇보다 뒤통수가 아직 얼얼한 것이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경칠서를 모두 필사하려면... 쉬지 않고 손을 놀려 필사해도 불가능하다.


아닌가? 어차피 발로 쓰듯 휘갈겨 써도 되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대충 휘갈겨 써도 되는 겁....”


확답을 받기 위해 두영에게 묻고자 했건만, 두영은 그새를 못 참고 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코 고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 상전 나으리의 귀에 닿기라도 한다면 이건 큰일이었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 보니 상전 나으리의 코골이가 메아리처럼 돌아오고 있었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것은 부전자전인가.


“휴....”


일단 오돌은 임두영이 쓰던 처음 몇 장은 구겨 던져버렸고, 그 분량부터 새로 써야 했다. 서체에 일관성이 없단 것을 상전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자세를 다잡은 오돌은 왼손으론 먹을 가는 동시에 오른손으론 붓을 휘갈기기 시작했다. 실로 신통방통한 재주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흰 종이 위에서 붓이 춤추기 시작했다.


[병자, 궤도야. 고능이시지불능(兵者, 詭道也. 故能而示之不能).......]


오돌은 중얼거렸다.


“병(兵)이란,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어도 없는 듯하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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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공(謀攻), 작전을 모의하다 +1 24.05.12 144 7 13쪽
5 선전포고(宣戰布告) 24.05.11 172 10 12쪽
4 죽음의기운(死氣) +1 24.05.10 198 8 13쪽
» 지랄맞은 팔자(奴) 24.05.09 217 12 12쪽
2 괴이한 꿈(怪夢) 24.05.08 264 10 13쪽
1 선조실록(宣祖實錄) 27년 5월 8일자 24.05.08 276 1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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