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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노비가 왜구의 골통을 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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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도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6
최근연재일 :
2024.05.16 13:0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629
추천수 :
85
글자수 :
54,237

작성
24.05.11 10:16
조회
172
추천
10
글자
12쪽

선전포고(宣戰布告)

DUMMY



“석전이요? 또?”

“긍게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나도 들은 얘기긴 한데.”


장팔은 오돌에게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



오돌이 두동골 장승을 지날 무렵.


제 아들의 무경칠서 필사본을 들고 새벽 마실을 나선 임형태는 논부터 살폈다. 소싯적 무과에 급제해 상감께 하사받은 10결 토지는 비옥하다 할 순 없었지만 해마다 쌀 오백 가마는 능히 수확할 수 있는 땅이었다.


그곳에서 새벽부터 부지런히 아침 새들을 쫓으며 경작 중인 옥분 아범이 보였다. 임형태가 반갑게 인사했다.


“옥분 아범. 글쎄 이것 좀 보게. 우리 아들 두영이가....”


옥분 아범은 소 한 마리에 노비를 무려 다섯이나 가졌고 초가집이긴 하나 안채에 사랑채, 행랑채까지 딸린 큰 집에 사는 부유한 상민이었다.


“나으리. 안녕히 주무셨는지요.”


옥분 아범이 임형태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사실 임형태의 논에서 농사를 일구는 이가 여기 이 부지런한 옥분 아범과 그의 노비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의 표정이 심히 좋지 않았다.


임형태는 무경칠서 필사본을 숨겼다.

자랑할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아니? 자네 표정이 어두운 것이... 무슨 일 있나?”

“저희 소가 송아지를 낳다 죽었습니다요.”

“허허... 그것참... 쯧쯧쯧....”


임형태에게도 옥분이네 소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논을 갈아주는 대단한 노동꾼이기에 그랬다. 소 한 마리는 노비 다섯의 몫을 해내곤 했으니 말이다. 그 소식을 접한 임형태는 ‘아, 올해는 수확량이 줄겠구나.’ 하는 속물적인 생각을 했다가 양반의 체통을 지키지 못했음을 자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 송아지는?”


송아지까지 죽었으면 큰일이었다.


“무사합니다.”

“불행 중 다행이구먼. 그거라도 잘 키우면....”

“나으리!”


그런데 옥분 아범이 난데없이 임형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모르는 임형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 왜 이러나?”

“나으리. 도와주십시오! 송아지를 빼앗기게 생겼습니다요!”


옥분 아범의 꾀죄죄한 손이 임형태의 옷을 더럽혔다. 하지만 알다시피 임형태는 일반 상민들에겐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아니 그 보다, 마을에 고작 하나 있는 소 한 마리를 빼앗기게 생겼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빼앗기다니? 누구에게? 도적이라도 들었나? 아니면 노름빚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그런 것이. 크흑... 세동골, 세동골 상문(尙門) 나으리가 이제 갓 태어나 어미 잃고 염소젖이나 먹는 송아지를 빼앗아 가려 합니다요.”


상문(尙門)은 세동골 염소수염 고자양반이 지낸 벼슬로 종8품에 해당하는 직책인데, 궁문에 관한 일을 맞는 내시였다. 그런데 그는 궁중에서 몹쓸 전염병에 걸려 낙향한 이후 궁에서 다시 불러주지 않아 세동골에 눌러앉은 인사였다.


“뭐라?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양반이 왜 우리 마을의 소를 달라 한단 말인가!”

“그게 말입니다요.......”


구구절절하고 통탄스런 옥분 아범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임형태가 대노했다.


“암송아지가 태어나면 주겠다 한 것은 우리 마을의 암소가 무사할 때 이야기였다. 이건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제 말이 그 말입니다요. 어미 소가 죽어버렸는데... 아이고 우린 이제 어쩝니까? 나으리!”


옥분 아범은 은근슬쩍 ‘우리’라 칭했다. 이 일은 옥분네만의 일이 아닌, 임형태의 일이기도 하다는 암시였다.


“인정머리 없는 천하의 도둑놈이 따로 없구나. 욕심은 그득그득해서는! 놀부가 따로 없구나 놀부가 따로 없어!”

“맞습니다. 나으리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두 눈 뜨고 송아지를 빼앗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요! 나으리!”

“자네는! 걱정 말게! 두동골엔 나 권관 임형태가 있지 않은가. 내 당장 세동골로 가겠네. 자네도 따라서 오게!”

“네!”


기세등등해진 임형태가 씩씩거리며 윗마을 세동골로 향했다. 원래 자랑하려 들고 다니던 무경칠서 필사본도 분노에 꾸깃꾸깃해졌다.


아침을 시작하던 마을 사람들도 담장 너머의 흉흉한 기세에 하나둘 나와 뒤따랐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수군대는 소리에 임형태가 홱 뒤 돌아 그들을 마주했다.


“두동골의 송아지를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요! 그것은 불의(不義)한 일이고, 양반이 백성을 수탈하는 일이다 이 말이요! 나 임형태가 두동골에 있는 한 그런 일은 없어야 하오!”


두동골에서 임형태는 나름 마을의 수장이라 할 수 있었는데, 민심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옳소!”

“옳소!!”


이미 마을에 파다하게 퍼진 송아지 사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두동골 사람들 모두 한 편일 수밖에 없었다. 기세등등해진 그들은 임형태의 뒤를 따랐다.


동이 트고, 두동골을 벗어나 얕은 개울물을 지나자 세동골의 장승,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한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동골의 해학적이고 장난기 많아 보이는 장승에 비해 흉악하고 욕심 그득그득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흥.”


‘장승 꼬라지 하고는....’하는 말을 내뱉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제아무리 화가 났어도 그건 선 넘는 발언이었다. 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었으니 그런 말을 내뱉었다간 천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드가자.”

“네!”


그들이 세동골 초입으로 들어서자,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던 세동골 백성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군거리며 뒤따랐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저기 저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노비 셋이 바깥마당을 쓸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갓과 도포를 입은 양반 임형태를 보자 비질을 멈추고 허리를 굽혔다.


임형태가 멈춰섰다. 기세등등하게 이곳에 왔고, 대문은 열려있다만 다짜고짜 발을 들일 순 없는 일이었다.


“크흠.”


임형태는 예를 차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리 오너라!!”


우렁차게 외친 임형태의 목소리는, 권관 시절 수하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던 그것을 닮았다. 그 순간, 세동골 곳곳에서 꼬끼오 울어대던 닭들도 숨죽였다.


“이리 오너라!!!!”


임형태가 다시금 외쳤다.

기와집 내부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고, 내부에서 후다닥거리는 노비들이 여럿 보였다.


노비라면 솔거노비 오돌이 하나를 보유한 임형태와 달리, 세동골의 고자 양반 조창오는 가진 별명만큼이나 많은 노비를 거느렸다.


임형태가 다시 ‘이리 오너라!’ 하고 외치려던 찰나. 기와집 안채에서 가느다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들라 하세요.”

“크흠!”


뒷짐 진 임형태가 어깨 활짝 펴고 보무도 당당히 조창오의 대문에 발을 디뎠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 두동골과 세동골 백성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쿠웅-


대문이 닫혔다.


“권관께서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남자 목소리 라기엔 너무나도 가느다란, 그렇다고 여자 목소리는 아닌 내시 목소리. 임형태는 그의 목소리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문!!”


그들은 소싯적 직책을 호칭하며 서로를 높였다.


“전하의 곁에서 녹을 먹던 이가 이리 백성을 수탈해도 되는 일이오!!”

“무슨 말이죠?”

“송아지 말이오! 송아지!”


임형태의 일갈에 안채에 서 있던 조창오가 마루에 걸터앉더니 부채를 촤악 펼쳐 살랑살랑 부쳤다.


“송아지? 아, 깜짝아, 난 또 무슨 일이라고. 아침부터 그렇게 소리를 지르세요? 체통 없이, 누가 무반 아니랄까 봐. 현이야, 권관 어르신 목 타시겠다 물이라도 한 그릇 대접 해 드려라.”


조창오의 이죽거림에 임형태의 이마에 힘줄이 빠직 돋았다.


양반 사이에서 무반이 하대 되는 것은 예사였다. 조정에서도 무반은 왼편(서쪽)에, 문반은 오른편(동쪽)에 섰고, 무반은 2품 이상이 사실상 없었다. 이처럼 암암리에 존재하는 문반과 무반의 차별은 고려부터 이어 오던 것이다.


하지만 임형태는 화를 가라앉혔다.

본디 전투에서 흥분함은 패배를 향한 길이나 다름없는 법이었다.

임형태는 손에 쥔 꾸깃한 무경칠서 필사본의 감촉을 느끼며, 분명 이 안에 적혀 있을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상대를 흥분시켜 어지러이 만들라.]


“불알 잘라 벼슬한 것이 뭐 자랑이고 문무반을 쳐 따지고 있소이까?”

“뭐, 뭐라구욧!!”


뜬금없는 임형태의 기습 공격에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까랑까랑한 조창오의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갔다.


“가, 감히! 임씨 집안은 예의도 없는가욧!”

“의(義)롭지 못한 자가 예(禮)부터 따지는가!”

“무엇이 의롭지 못하단 말이죠!”


조창오의 새하얗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고, 부채를 접어 임형태를 향해 삿대질했다.


그때, 조창오의 양자 조현이 임형태에게 찬물을 대접했다. 버들잎이 둥둥 떠 있었다. 임형태는 그런 조현을 위아래로 슥 훑었다. 분명 문관을 노릴 녀석이건만, 기골이 장대해 오히려 임두영보다 무관이 더 어울리는 체형이었다.


‘흥 그래도 우리 두영이가 얼굴은 더 잘생겼군.’


물론 근거 없는 생각이었다. 임형태는 둥둥 뜬 버들잎을 치우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크으, 물맛은 좋구나.”


조현이 빈 물그릇을 예의 바르게 회수했다.

약이 바짝 오른 조창오가 외쳤다.


“그 송아지는 계약에 의해 내 것임이 확실한 것이에요! 이렇게 강짜 부린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구요! 그리고 그 전에! 예의 없이 천박하게 군 것을 사과하세요!”


물론 계약을 들이밀면 임형태는 할 말이 없어진다. 애초에 옥분 아범은 자신의 암소가 암송아지를 낳으면 조창오 댁에 주고, 수송아지를 낳으면 옥분네가 갖기로 약조 한 것이다. 아마 이 건을 가지고 울산 관아로 가져 가면 꼼짝없이 옥분네가 송아지를 빼앗길 것이다.


허나 그럼 너무하지 않은가?

어미소에 송아지까지 잃은 옥분네는 누가 보상하나?

절대 송아지를 빼앗길 순 없었다.


“그게 암소라는 증거 있소? 원래 숫소였는데 불알을 잘랐더니 그렇게 됐다던데?”

“뭣이 어쩌고 저째!! 네 이노오오옴!”


앵앵대는 조창오의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고, 임형태는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의 도발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조창오가 버선발로 마루에서 내려왔고,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심지어 임형태의 머리를 부채로 내려치려고까지 했다. 다행히 그의 아들 조현이 조창오를 황급히 막았다.


“아버지, 고정하십시오.”

“놔랏, 놔랏!!”


물론 이 또한 체통 없는 행위였지만, 임형태나 조창오나 권세 있는 대감집은 아니었고 촌구석에서 겨우 명맥이나 이어가는 양반가였기에 체통을 크게 따지는 편이 아니긴 했다.


임형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유롭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상문.”

“이거 놓거라!”


조창오는 부채로 임형태를 기어이 때려 보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을 붙든 조현을 뿌리치려 버둥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관 출신인 임형태에겐 조창오의 위협이 무서울 리 없었다. 임형태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두동골과 세동골은 가장 가까운 이웃인데 시끄럽게 관아에 갈 거 없지 않겠소? 전통적으로 이런 일은 조용하게 좋게좋게 해결해야지요.”

“이제 와서 조용히? 좋게좋게?”


본디 이런 일에 딱 걸맞은 해결책이 있었다.

합의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해결책.

임태형이 입을 열었다.


“석전(石戰)”

“뭐요? 석전?”


임형태의 제안에 조창오의 화가 가라앉는 듯했다.


“권관, 진심으로 하는 말이세요?”


아니, 심지어 조창오의 입꼬리가 꿈틀거리며 올라갔다.


‘크윽, 분합니다! 아버지! 세동골 놈들에게 지다니. 치욕스럽습니다 아버지!’


임형태의 귓가에 지난 밤 임두영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다시는 패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이 무경칠서를 필사했으리라. 아들의 그 간절한 마음이 임형태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다시는! 다시는 세동골 놈들에게 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버지!’

‘그래! 아들아, 네 치욕을 갚을 기회를 주마!’


“키킥, 우리 세동골이 이기면 송아지는 우리 것이죠?”

“만약 두동골이 이긴다면 두말하기 없소이다!”


이 희소식을 가져가면 기뻐할 두영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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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전포고(宣戰布告) 24.05.11 173 10 12쪽
4 죽음의기운(死氣) +1 24.05.10 198 8 13쪽
3 지랄맞은 팔자(奴) 24.05.09 217 12 12쪽
2 괴이한 꿈(怪夢) 24.05.08 264 10 13쪽
1 선조실록(宣祖實錄) 27년 5월 8일자 24.05.08 276 1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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