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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노비가 왜구의 골통을 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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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사일도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6
최근연재일 :
2024.05.16 13:0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634
추천수 :
85
글자수 :
54,237

작성
24.05.1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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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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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3쪽

모공(謀攻), 작전을 모의하다

DUMMY

석전(石戰)은 말 그대로 돌팔매로 벌이는 집단전투며, 풍요를 기원하며 단오와 정월 대보름에 하는 놀이이자, 마을 간의 다툼을 해결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석전은 일반 백성들의 전투력 고취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라에서도 권장하는 오락거리이기도 했다.


“석전? 좋지요. 키킥.”


석전이란 말에 조창오는 대번에 키득거렸다. 세동골이 두동골을 박살 내 버렸던 단오의 석전이 아직 엿새도 지나지 않았다. 너무 쉽게 끝나 시시하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게다가 세동골이 두동골에게 석전을 진 적이 있었나?

뭐, 있긴 했겠다만 그것이 언젠지는 가물가물했다. 아무튼, 송아지는 이제 떼놓은 당상이 되어 버렸다. 석전에서 져놓고 딴말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날짜는?”

“닷새 후로 하십시다.”

“규칙은?”

“줄팔매 금지, 방망이 금지.”

“늘 하던 대로군요?”


동네마다 석전의 규칙은 달랐지만, 이쪽 지방은 대체로 순수 돌팔매만 허용했다. 하지만 윗지방으로 올라갈수록 석전에 허용되는 것들이 많아진다 들었다. 한양에선 줄팔매가 허용되는데, 줄팔매로 투척한 돌에 머리를 맞으면 뇌수를 쏟으며 죽는 것이 예사였고, 안동이나 평양처럼 방망이가 허용되는 석전판은 그야말로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지곤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본질은 놀이였다.


“그럼, 닷새 후 대곡천에서 보도록 하십시다.”

“좋지요. 깔깔, 억춘아, 손님 가신단다. 뫼셔라.”

“네 나으리.”


조창오의 축객령에 수문장처럼 대문 입구에 버티고 서 있던 억춘이가 비켜서며 대문을 열었다. 흉터가 가득한 험악한 인상은 둘째치고 덩치가 실로 곰 같은 사내였다.


“크흐음!”


무관 출신인 임형태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관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임형태는 호기롭게 도포를 휘날리며 대문으로 향했다. 바깥에선 두동골과 세동골 마을 사람들끼리 격한 언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라믄 우덜은 암소도 죽은 마당에 송아지도 빼앗겨야 하는 겨?”

“애초에 약속을 그리 한 게 아니오?”

“그건 암소가 무사할 경우 이야기지. 어미 소가 살아 있었으면 그냥 줬을겨 아니여? 근데 이건 해도 너무하잖여. 세동골은 인정도 없소?”

“옳소! 이웃 마을인데 이건 너무한 거지.”

“그려, 무슨 말 하는지 이해는 하겠는데 이게 인정에 호소할 사람들의 태도여? 으이? 새벽 댓나발부터 마을 사람 이끌고 우르르 몰려와서 말이여.”

“옥분 아범이 인정에 호소를 얼마나 했는디. 무릎까지 꿇었는데 다 필요 없고 송아지 내놓으라 한 기 누군디 으이?”

“죽은 암소 물어내라 해도 모자랄 판인디! 송아지까정?”

“됐고. 정 억울하면 관아로 가면 되지 뭐 이라고 앉았디야? 속시끄럽그로.”

.......


오늘 장날이라 했지만, 이곳에서 열리는 것은 아닐진대 장거리보다 더 복작거리고 시끌시끌했다. 대문이 열리고 임형태가 나오자 찬물을 끼얹은 듯 좌중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나으리! 우, 우째 됐십니까?”


옥분 아범의 물음에 임형태가 답했다.


“닷새 후! 대곡천! 석전(石戰)이요!”

“와아!”


함성이 터져 나왔고, 임형태는 자신이 잘 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런데, 다시 보니 함성을 지르는 이들은 두동골 사람들이 아니라 세동골 사람들이 아닌가?


심지어 옥분 아범은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망했네... 망했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분위기가 다름에 임형태는 당황했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는 꾸깃해진 무경칠서를 펼쳐 보이며 두동골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자, 자. 여기 이것 보이시오? 이게 무경칠서라고 손자, 오자, 사마법, 위료자, 이위공문대, 삼략, 육도 총 일곱 가지 병서인데 내 아들 두영이가 이걸 통달했소! 전술만 제대로 짠다면 우리가 이길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시게!”

“.......”

“아이고... 망했네 망했어.”


그 말에 두동골 사람들은 곡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백정 장팔은 어느덧 어미소를 갈비, 안심, 채끝, 등심, 목심, 앞다리, 사태, 등 부위별로 도축했다.


“단옷날 석전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석전이여? 지난 석전에 돌쇠 그 놈 대가리 깨져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우웅 거리고 병신 다 됐다던데. 쯧쯧, 이번 석전은 걸린 것도 있어서 더 치열할 텐데 말여.”

“돌쇠요? 어느 집 돌쇠?”


노비의 이름 중 가장 흔한 것이 돌쇠였고, 두동골의 돌쇠 수만 해도 여덟에 달했다.


“왜 그 있잖여, 감나무 집 돌쇠.”

“아... 감나무 돌쇠가 그렇게 됐어요?”

“병신 된 노비 팔자 인제 거지밖에 안 남은긴데 쯧쯧....”


감나무 집 돌쇠라 하면 일머리가 없어도 꾀부리지 않는, 돌쇠 중에서도 꽤 괜찮은 돌쇠였다.


“힘들겠네요 이 싸움.”

“힘들다 뿐이것어? 다른 건 둘째치고 억춘이 그 놈이 문제지. 대굴빡이 얼마나 단단헌지 마빡에 돌팔매 맞고도 멀쩡한 놈은 세상천지 그놈뿐일 겨. 괴물이여 괴물.”


오돌의 머릿속에도 머리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맹수의 눈을 하고 끊임없이 전진하던 억춘의 모습이 그려졌다. 실로 지하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와 같은 모습이었고, 두동골 사람들은 그 기세에 짓눌려 도망치곤 했다.


“아무튼, 이번 석전 덕분에 그래도 마을 잔치 한번 열릴 판이니 우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잉? 오돌이 너도 괜히 저번처럼 나대다 대굴빡에 돌빵맞고 반 병신 되지 말고 알제?”

“아, 그건 나대다 그런 것이 아니고....”


주인 도령이 던진 돌에 맞은 것이라고 변명하면 제 주인 얼굴에 똥칠하는 격밖에 되지 않기에 오돌은 말을 삼켰다.


“그런데 잔치요?”

“네 상전께서 이 어미소를 옥분 아범한테서 팔아 줬다. 어떻게든 마을 사람들 잘 먹이고 해서 이번엔 세동골을 이겨보자 그런 심산인게지. 얻어 먹은 것이 생기면 더 열심히 싸워 줄 거 아니여? 그리고 이게 뭐시여? 닭도 돼지도 아닌 소 아니여? 이 쇠심줄 보여? 없던 힘도 불끈불끈 생길거다 이 말이여.”


그리 말하면서 장팔은 도축한 소를 부위 별로 잘 분류했고, 용도에 맞게 잘 썰었다. 석전은 석전이고 눈앞의 잔치가 기대되는 건 오돌이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소고기 아닌가.



***



임형태 왈,


“두영아, 네가 이번 석전판의 지휘관이니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라.”

“네?”


임두영으로선 말 그대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였다.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일어난 두영 아버지 임형태에게 처음으로 들은 말이 그것이었다. 임형태가 무경칠서 필사본을 들이밀었다.


“내 이 서체만 봐도 네가 얼마나 병법에 통달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달달 외지 않는다면 이토록 힘 있는 서체가 나오기 힘들지. 장차 무관이 되어 만백성을 지켜야 하는 네게 흔치 않은 실전 기회가 될 것이다. 절대 패배는 용납지 않을 것이야.”

“그, 그건....”


눈앞의 필사본을 누가 썼는지는 임두영이 가장 잘 알았다.


‘분명 대충 쓰라 했거늘....’


하지만 그걸 이실직고할 수는 없었다. 임두영은 말을 돌렸다.


“하, 하지만 우리 두동골은 세동골과 석전에 이길 수가... 전투력의 차이가....”

“네 이놈! 적과 마주하기 전에 패배부터 생각하는게냐!!”


다혈질인 임형태의 갑작스런 불호령이 임두영은 간이 오그라드는 기분마저 들었다. 게다가 단옷날 석전판에 호기롭게 끼어든 이후 두영은 ‘다시는 석전판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 바 있었다.


“하, 하지만 세동골의 그 억춘이라는 백정 놈은 석전 판에서 귀신같은 놈인지라....”

“미천한 백정 따위에게 주눅 들었단 소리구나. 한심한지고!!”


연이은 불호령에 임두영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니! 석전에서 마을 사람들을 지휘하라니?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싫어할 텐데. 마을 사람들에게 틈만 나면 패악질을 일삼던 두영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기나 할까?


“이번 석전은 두동골과 세동골의 싸움이기 이전에 나, 임형태와 저기 윗마을 고자 염소 내시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절대 아비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야!”


임두영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불효막심하게 임형태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임두영을 일단 아버지의 노기부터 잠재워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임두영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내 옥분 아범에게서 죽은 어미소를 사다가 잔치를 벌일 것이다. 자고로 군대의 강약은 사기에 좌우되는 법. 일단 마을 잔치를 벌여 사기를 올려놓을 터이니, 그 이후는 네 몫이다. 알겠느냐?”


이미 임형태는 이번 석전에 승리하기 위해 거금을 들인 상태였다.

임두영의 어깨는 대책 없이 무거워졌다.



***



예정된 대로 마을엔 잔치판이 벌어졌다.


소 한 마리면 마을 사람 전체를 배불리 할 수 있었다. 마을 전체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고, 동네 가마솥은 모두 꺼내어져 소고깃국을 끓이는 데 쓰여졌다.


집집마다 찬거리도 내왔고 임형태도 곳간을 열었다.

마을 아낙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가운데 장정들은 꽹과리, 징, 장구, 북을 꺼내 와 풍물놀이를 시작했다.


며칠 후 벌어질 석전은 뒷 일이고 모두가 잔치를 즐기는 중이었다. 멀찍이서 사물놀이를 구경하며 흥겹게 박수치던 오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오돌이의 뒷덜미를 누군가가 잡아끌었다.


“어, 도련님?”

“인마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일로 따라서 와.”

“예? 조금 있으면 잔치 시작할 텐데....”

“그러니까 그 잔치 시작하기 전에 하, 빨리 따라 오기나 해 인마!”


오돌은 영문도 모른 채 임두영의 손길에 이끌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당도한 곳엔 입이 떠억 벌어질 정도로 잘 차려진 밥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삼양댁이 차린 것이었다.


“근데 왜 잔칫상 다 같이 드시지 않고....”


삼양댁이 그런 임두영에게 한마디 했다. 아무래도 임두영이 시켜서 그의 상을 따로 차린 모양이다.


“삼양댁은 관심 끄고 가서 잔치 준비나 하셔.”


임두영에게 한 소리 들은 삼양댁은 오돌에게만 들릴 정도로 궁시렁댔다.


“돼지처럼 혼자 처먹으려고 상도 따로 빼고 호랑이가 안 물어가나, 에잉. 쯧쯧.”


삼양댁이 나갔고, 방 한가운데 밥상만이 덩그러니 놓였다. 임금님의 수라상이 이러할까? 밥상엔 고봉밥과 소고깃국, 삶은 고기, 구운 고기, 삶은 계란에 온갖 나물 반찬까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였다.


두영은 행여 누가 이 광경을 볼 새라 창호를 닫았고 바깥의 시끄럽던 풍물 소리가 잦아들었다.


“자. 앉아.”

“네?”


놀랍게도 두영이 앉으라 가리킨 곳은 밥상인데, 본디 노비가 주인과 겸상 하는 법은 없다.


“겸상하는 거 아니니 앉으라고!”

“지, 진심이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오돌의 눈은 소고기에 고정되어 있었고 입에선 군침이 질질 흘러 바닥을 적시지 않을까 염려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래 인마. 앉아. 이건 내가 네게 내리는 상이다.”


임두영은 오돌이를 위해 제 방석까지 내어줬다.

오돌은 어정쩡하게 있다 이내 자리에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고기에... 이것이 꿈이 아닌가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 봐도 꿈은 아니었다.


“도련님, 이걸 왜 제게....”


원래라면 노비인 오돌의 몫은 주인이 먹고 남은 음식이어야 마땅했다. 소고기 국물에 밥 정도는 말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던 기대에도 가슴이 설레던 오돌이었다.


그래선지 오돌은 눈물이 핑 돌았다.

이리도 잘 차려진 상이 날 위한 것이라니.

이렇게 대접받아 본 적이 있었나?

단언컨대, 없었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


그리고 임두영이 오돌에게 건넨 것은 오돌이 장작 팔아 새로 사 온 종이와 먹이었다. 임두영이 말했다.


“이번 세동골과 있을 석전판에 쓸 전술을 짜봐라. 아버지 말씀 들었지? 난 임금이고 넌 신하 같은 거야. 그러니까 넌 내가 부리는 장군인 거지.”

“자, 장군요?”

“장군까진 좀 아닌가? 아무튼 네가 무경칠서 필사한 것만 해도 세 번쯤 되나?”


정확히 열아홉 번이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니까. 너도 주워들은 게 좀 있을 것 아니냐. 자, 여기다 세동골을 이길 수 있는 작전을 짜 봐라. 그 왜 있잖아 진법 같은 거.”

“제가요?”

“그럼 내가 해?”


참으로 뻔뻔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오돌은 즉각 수긍했다.

글도 제대로 못 읽는 임두영이 작전을 어떻게 짜나?


“후, 자. 일단 이거 먹으면서. 어? 이것도 그 뭐냐 임금님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그 내림상?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어? 알았어? 어?”

“지, 진짜 먹어도 됩니까?”

“그래 인마 속고만 살았냐! 아무튼 여기다 병법에 나오는 그, 전술 지시 이런 거 싹 다 적고, 저기 작은 종이엔 언문(言文, 한글)으로 어? 그 있잖아. 내가 할 말들도....”


임두영은 오돌에게 부탁하면서도 문틈으로 누가 지나가나 확인하기 바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네.”

“다 되면 말해. 여기 밖에 있을 테니. 알았어?”


임두영이 나가자, 오돌은 입속으로 소고기를 쑤셔 넣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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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일기당천(一騎當千)의 눈물 +2 24.05.16 76 5 13쪽
9 조호리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산에서 나오게 하라. 24.05.15 81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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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공(謀攻), 작전을 모의하다 +1 24.05.12 145 7 13쪽
5 선전포고(宣戰布告) 24.05.11 173 10 12쪽
4 죽음의기운(死氣) +1 24.05.10 199 8 13쪽
3 지랄맞은 팔자(奴) 24.05.09 217 12 12쪽
2 괴이한 꿈(怪夢) 24.05.08 264 10 13쪽
1 선조실록(宣祖實錄) 27년 5월 8일자 24.05.08 278 1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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