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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노비가 왜구의 골통을 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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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사일도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6
최근연재일 :
2024.05.16 13:0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641
추천수 :
85
글자수 :
54,237

작성
24.05.08 10:51
조회
266
추천
10
글자
13쪽

괴이한 꿈(怪夢)

DUMMY

긴 꿈을 꿨다.


[스트라이크!]


기묘한 꿈속에서 기괴한 투구를 쓴 거한이 외쳤던 말이 생생하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돌처럼 단단한 공(球)을 던지면 거한이 그리 외쳤다.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요상한 복색의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은 뜻 모를 그 외침에 환호했다.


그들은 내게 열광하고 있었다.


하지만.


“끙... 뭐야 여긴.”


꿈에서 깨어나자 보이는 것은 마구간이다.

말똥내가 진동하는 이곳, 상전께서 내게 하사한 보금자리다.


깨어나자 머리가 깨질 듯 아픈데 늙은 말 한 필이 날 반겼다.

꿈이 너무나 길고 생생했기에 노쇠한 말이 푸르릉거리는 이 상황이 현실로 바로 와 닿지는 않았다.


“좋은... 꿈이었나?”


꿈이었음은 확실치만, 공을 던지던 손끝의 감각은 조금 전처럼 생생했다.


“후우... 그게 현실이고 이게 꿈이면 좋으련만. 아악. 쓰읍... 하....”


뒤통수가 너무 아파 손으로 만져보니 움푹 팬 생살이 느껴진다. 백정 장팔 아재의 일을 도울 때 만졌던 돼지의 속살 또한 이러했다. 고통에 현실의 기억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기절하기 직전의 장면이 조금 전의 일 같이 떠올랐다.


- 와아아!

- 이거나 먹어라!

- 크억!


전쟁통을 연상케 하는 장면. 그래, 단오날 윗마을 세동골과 석전(石戰)이 있었다. 석전이 있으면 마을 장정 두엇은 반병신이 되며 이따금 운 나쁜 누군가 죽기도 하는 것이 예사지만 그 주인공이 내가 될 거라 생각진 못했다.


아니다.

팔다리 잘 움직이고.

혼잣말도 잘 하고.

꿈도 잘 꾸니, 반병신이 된 것은 아니겠구나.


다행이다.


푸르릉-


“알았다 인마. 배고프냐.”


늙고 노쇠한 말은 내가 아픈 건 생각 안 하고 제 굶주림만 중한갑다. 녀석은 내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이제 말이 먹을 여물을 해 와야 한다.


꼬르륵-


하지만 나 또한 배가 고프거늘.

그래도 종놈의 밥보단 늙은 말이 처먹을 여물이 우선이다.


‘너 같은 노비 셋을 줘도 말 한 필 못 사! 상전이라 여기고 잘 모셔라!’


그래... 이게 현실이었다.

말보다 못한 인생.


“좋은 꿈이었다.”


피를 많이 흘렸던 탓일까, 말똥 냄새나는 마구간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와아아! 삼진아웃! 장태산 선수 팀을 승리로 이끕니다!]


핑 도는 순간 생생한, 그러나 생경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이것도 그 기괴한 꿈속의 한 장면이었던가?

하지만 꿈 타령하기엔 현실은 코앞이다.


끼기잉- 쿵-


빛이 새어 들어오던 마구간 문을 열자 아침인지 점심인지 알 수 없는 햇살이 눈부시게 내비쳤다.


눈이 빛에 적응하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어? 야 이놈아! 정신이 드냐? 아침부터 재수 없게 종놈 송장 치우는 줄 알았잖아! 어우, 말똥 냄새.”


아침이었다.


“도련님.”


난 언제나처럼 두 손을 모으고 주인 도령에게 꾸벅 인사 올렸다.

그런데 머리를 숙이자 또다시 핑- 하며 세상이 돈다.


[167? 지금 제가 제대로 본 것이 맞나요?]

[마지막 볼의 구속이 무려 167.8km였어요! 그것도 9회 말에 말입니다!]


또다시 들려오는 무슨 말인지도 이해 안 갈 흥분한 남자의 음성.


“야 이놈아!”


환청이 다시 가시자, 주인도령이 픽 쓰러진 내 얼굴을 발로 툭툭 건드리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몸을 일으킬 힘이 없고 꿈속의 잔상만 떠오른다.


[정말 괴물 같은 어깨에요! 대한민국 역사상, 이런 선수가 있었나요?]

[기네스북에 오른 아롤리스 체프만의 최고 구속과 2km 차이밖에 안 나요!]

[장태산 선수 폼 미쳤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 꿈이나 다시 꿨으면 좋겠다.

그렇게 현실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암전되는 내 의식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



퍽-


퍽-


퍽-


쩌억- 우지끈....


숲속에 나무 하나가 쿠웅, 통째로 쓰러지며 주변의 산새들이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며 푸드득 날아갔다.


“화 난 거 아니지?”


몸을 추스리는 데는 꼬박 하루가 더 걸렸다.

그렇게 달콤한 꿈은 끝났고 쓰디쓴 현실의 굴레 위에 다시 올라서야 했다.


“그럴 리가요.”


주인 도령의 말에 대꾸하며 나무에 도끼를 내려쳤다. 푹 깊게 파인 골 속에 도끼가 들어가 박혔고, 그것을 빼고자 끙, 힘을 줬다.


“내가 일부러 한 건 아니고, 킁 석전 때 나도 한몫하려다가.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 우리 마을이 밀리는데 나도 두동골 사람인데. 안 그래?”

“끄응... 네, 네. 후우....”


내가 뒤통수가 깨진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단오 날 세동골, 그러니까 우리 두동골의 윗 마을과의 석전에 마을 장정이 모두 참가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세동골 놈들이 던진 돌을 피하며 세동골 장정들을 향해 연신 돌을 던지고 있었는데, 멀찍이서 구경만 하던 도련님이. 아니 저 도련놈이 구경하다 피가 끓어 상민(양반이 아닌 양인 또는 중인, 일반 백성)이나 상놈들이나 즐기는 석전판에 그가 끼어든 것이다.


거기까진 좋았다.

석전을 즐기는 양반들도 있다 들었으니.


다만 도령놈이 던진 짱돌이 멀리 가지 못하고 내 뒤통수에 꽂혔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까, 영문도 모른 채 나흘이나 정신을 잃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여기 이, 바위 위에 드러누워 꽃잎 수나 세는 내 주인 도령이란 소리다.


하... 어이가 없네.


“후우? 방금 한숨 쉰 거야?”

“그럴 리가요.”


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벌써 여름이 온 것일까?

이제 보니 매미 우는 소리도 들린다.


“네가 그 앞에 버티고 서 있지만 않았어도 내가 던진 돌에 세동골 억춘인가? 그 놈 대굴빡이 깨졌을 텐데.”

“지.”

랄 이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세동골 억춘이는 이 자그마한 촌동네에선 일 년에 두 번. 가끔 마을 간 분란이 있으면 세 번 정도 하는 석전판의 왕이나 다름 없는 인물이었다.


마빡엔 돌에 맞은 상처가 수도 없어 인상이 험악하기 그지없는 사냥꾼 겸 약초꾼. 그런 억춘 아재의 대굴빡을 깰 뻔 했다는 도련님의 말은 실로 개소리다.


“지?”

“지엄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지? 네 뒤통수가 아니고 억춘이 그 백정 놈의 대가리가 깨졌어야 했는데. 쯧.”

“억춘 아재는 백정이 아니라 노비입니다. 그것도 외거노비.”


외거노비는 사노비지만 상전(주인)과 따로 사는,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노비를 말했다. 큰 도시에서 잘 나가는 외거노비는 부를 축적해 집과 땅을 사고, 다른 노비를 거느리는 경우도 있다 들었다. 그러니, 같은 노비라도 외거노비와 나 같은 솔거노비는 천지 차이였다.


“노비나 백정이나 그게 그거 아냐? 근데 나무 언제 끝나냐? 빨리빨리 안 하냐? 너 때문에 글공부하러 늦게 왔다고 아버지께 혼나면 네 책임이야! 굼떠가지고.”


하지만 주인도령의 눈엔 백정이나 노비나 똑같이 천민 상놈이다.


“후... 네.”


누가 따라 오랬나. 상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뱉어선 안 된다. 그것이 천것의 삶이었다.


‘꿈속에서 난 노비가 아니었는데....’


아직도 그 이상한 꿈속의 장면이 생생했다.

그곳은 나 같은 천민이 없는 세상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끼질을 하다 보니 장작이 쌓여갔고,


“다 됐습니다. 도련님.”


지게를 가득 채웠는데,


드르렁- 쿠울-


굳이 내가 나무하는 산속까지 따라서 와 온갖 염장을 질러대던 주인도령은 따스한 햇살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었다.


이 경우는 실로 난감하다.


깨워도 지랄. 안 깨워도 지랄인 상황.


“후....”


지랄 맞은 인생.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깨워도 지랄 안 깨워도 지랄이지만, 주인도령이 자는 동안은 작지만 소소한 휴식이다. 그거라도 즐길 요량이다.


나는 행여 풀 밟히는 소리라도 들릴까, 조심조심 지게를 내려놨다. 그리고 소심하게 자리에 앉으려는데, 내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호오....”


시커먼 돌이었다.


헌데 어쩜 돌이 이토록 둥근가?

내가 꿈에서 던져대던 공과 비슷했다.

더 묵직하고, 거칠었지만, 크기만큼은 비슷했다.

돌을 집어 들자 손에 착 감기는 그 느낌이 꿈속에서의 그것과 같았다.


콩닥- 콩닥-


이것은 행여 주인도령이 깰까 조마조마해서 나는 심장 소리가 아니었다.

아랫배가 간질거리는 느낌. 백정 장팔 아재가 남들 몰래 우리끼리 먹자며 백정 움막에 숨어서 돼지 곱창을 구울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휙- 타악.


난 돌을 공중에 던졌다가 다시 받았다.

꿈속에서 왼손에 끼고 있던 커다란 장갑은 없었지만, 공, 아니 돌멩이는 내 손의 일부였던 것처럼 착 감겼다.


그때, 멀찍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여 주인 도령이 깬 것일까 철렁했지만, 방향이 달랐다. 그 소리의 주인은 풀을 뜯어 먹는 회갈빛 산토끼 한 마리였다.


꿀꺽.


군침이 돌지만, 돌팔매로 잡긴 힘든 거리.

하지만 오른팔이 속삭이는 듯했다.


‘충분해.’


경직되어 있던 어깨와 목을 풀자, 꿈속에서 내가 공을 던지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공을 몸 가장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 내리꽂듯 던지던 그 자세는 실제로 해본 적은 없어도 너무나 익숙했다. 나는 꿈속의 그 장면을 재현하듯, 왼 다리를 들어 올려 오른발에 무게를 실었고, 원을 그리듯 오른팔을 뒤로 빼 자세를 잡았다.


발 끝부터 허리를 거쳐 머리끝까지 온몸의 무게가 검지와 중지로 실리는 기분.


[장태산 선수의 정석적인 오버핸드 투구 폼은 현존하는 투수 중 가장 높은 릴리스 포인트를 자랑하는데요....]


바람결에 꿈속의 환청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 데로록- 굴러가는 토끼의 눈.

마주쳤다.

녀석이 내 존재와 살기를 눈치채곤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늦었다.


촤악-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 정도로 검지와 중지가 돌을 매섭게 할퀴었고, 손끝을 떠난 그것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갔다.


토끼는 도망가는 와중에 다시금 눈을 돌려 날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녀석이 마주한 것은 거무튀튀한 돌멩이뿐이었다.


[스트라이크!]


시간이 지나 가물가물하던 그 단어가 다시금 떠올랐다. 동시에 포동포동한 토끼의 움직임이 멈췄다.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돌이 날렵한 산토끼의 골통을 깨버린 것이다. 녀석은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거기다 상당히 먼 거리였다. 이런 돌팔매는 세동골의 억춘이도 흉내낼 수 없으리라.


사냥에 성공한 기쁨과 흥분을 힘겹게 억누르며 잡은 토끼를 거두기 위해 걸어갔다.


부스럭-


“오돌아!! 오돌이 네 이놈 어디 갔느냐!”


잠에서 깬 도련님의 목소리에 오돌은 한숨을 푹 쉬고, 새빨간 피를 흘리는 토끼를 들고 외쳤다.


“도련님! 저 여기 있어요!”

“도망이라도 간 게냐? 경을 칠 놈!”


도망은 무슨....


노비의 팔자가 아무리 엿 같기로서니, 도망치면 추노꾼에게 하루 이틀도 못 가 잡힐 것이다. 그렇게 잡히면 죽기 직전까지 매질 당하고, 奴라는 낙인이 목덜미에 찍힐 것이다. 운이 나쁘면 이마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나으리라.


“아니요! 토끼를 잡았어요!”

“뭐? 토끼? 낄낄 배에 기름칠 좀 하겠구나! 웩, 치워라!”


도령은 피 칠갑을 한 토끼를 보더니 역겨운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는 안다. 가죽 벗긴 살코기를 푹 삶은 토끼탕을 내 오면 게눈 감추듯 입으로 처넣을 거란 것을. 저 피둥피둥 접힌 턱살이 부르르 떨리며 게걸스럽게 처먹는 광경이 눈에 선했다.


“나무도 했고 토끼도 잡았으니 이제 가자.”

“네 도련님.”


난 지게를 짊어졌다. 족히 내 무게의 세 배는 나갈 정도의 장작이 드높이 쌓였다. 강아지풀을 입에 문 주인 도령은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며 앞장섰다.


“복 받은 줄 알거라. 내 너에게 토끼 꼬리 정도는 맛보게 해 주마.”


제아무리 여름철 포동하게 살찐 토끼지만 꼬리라 봐야 쥐새끼보다 작다. 잡은 것은 내가 잡았지만, 천한 노비의 것은 언제든 상전의 몫이 된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주인 잘 만난 줄 알거라. 그런데 손에 쥔 그것은 무엇이냐?”


주인 도령의 말에 손을 황급히 숨겼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썩 보이지 못할까!”


성내는 주인 도령에게 손에 쥔 것을 보였다.

토끼의 피가 묻은 동그란 돌이었다.


“킁, 흉측한 것을 들고 다니는구나. 치워라.”


다행이다.

이건 빼앗기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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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노비가 왜구의 골통을 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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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일기당천(一騎當千)의 눈물 +2 24.05.16 76 5 13쪽
9 조호리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산에서 나오게 하라. 24.05.15 81 5 15쪽
8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라 24.05.14 92 9 14쪽
7 모공(謀攻), 작전을 모의하다 24.05.13 110 8 13쪽
6 모공(謀攻), 작전을 모의하다 +1 24.05.12 145 7 13쪽
5 선전포고(宣戰布告) 24.05.11 173 10 12쪽
4 죽음의기운(死氣) +1 24.05.10 199 8 13쪽
3 지랄맞은 팔자(奴) 24.05.09 218 12 12쪽
» 괴이한 꿈(怪夢) 24.05.08 267 10 13쪽
1 선조실록(宣祖實錄) 27년 5월 8일자 24.05.08 279 1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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