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탈 성 - [3]
둘은 소리 없이 나아갔다. 그리고 금세 목적지에 이르렀다.
용골로 된 문을 두 경비가 지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두 쌍의 눈이 시뻘겋게 일렁였다.
샤는 두 흡혈귀 경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참을 주저했다.
“저 둘, 치워야하지? 내가 할게.”
님프가 무언가 하려던 차, 샤가 먼저 움직였다. 어둠 속에 흑마염동의 촉수를 뻗어 그 목을 찔렀다. 기절시키기 위해서였지만 죽을지 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건 두 경비는 쓰러졌고 샤는 문을 열고자 했다. 흑마염동의 끈적거리는 촉수를 자물쇠 구멍에 집어넣었다.
자물쇠는 돌아가지 않았다.
샤가 당황하는 가운데 언데드 로드가 속삭였다.
‘소용없어, 샤. 공룡은 손이 퇴화한 대신 모두가 염동력자였지. 그런 종족이 만든 자물쇠니까 염력 대비는 당연히 돼 있어. 문을 이루는 용골을 부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열쇠가 필요해.’
‘열쇠는 어디 있나?’
‘모르지.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
결국 건물 안 전체를 뒤져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과정에서 방금 저지른 일을 거듭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샤는 문 옆에 생겨난 두 재 무더기를 보았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손에 피를 잔뜩 묻혀가면서까지 다크히어로 노릇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는데. 앞으로 얼마나 죽여야할지 알 수 없는 판이다.
돌아가자고 할까?
샤는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님프가 보였다. 샤는 그녀를 데려온 주제에 돌아가자고 제 입으로 말할 용기가 없었다.
샤는 말했다.
“자물쇠가 열리지 않는다. 열쇠를 구하려거든 건물 전체를 뒤져야 할 것 같은데.”
불가능하다고, 돌아가자는 말이 님프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님프는 말했다.
“힘들겠네.”
그뿐이었다. 돌아가자는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샤는 앞장서서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며 마주친 모든 경비들을 기절시키거나 재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십 분쯤 지났을 때、건물 내부에는 이미 재가 열 무더기를 넘었으며 쓰러진 흡혈귀의 수는 그 세 배쯤 되었다.
이쯤 되면 은밀히 돌아다니더라도 소용이 없다. 건물의 모두가 질겁하여 수색자를 찾아다녔다.
복도의 어둠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거기 누구냐!”
마침내 샤는 학살자를 찾아다니던 흡혈귀 수색대와 마주쳤다. 척 보기에도 스물이 넘는 무리였는데, 잔뜩 겁먹었는지 발작적으로 외쳐대고 있었다.
“누구냐! 누구냐고!”
샤가 대답하지 않자 흡혈귀들은 손에 든 창과 총을 들어올렸다. 염동갑을 입은, 아마도 간부쯤 될 마법사는 주저 없이 외쳤다.
“사격!”
샤는 뒤에 있는 님프를 생각했다. 이쯤 되면 기절이니 뭐니 신경 쓸 수 없다. 적극적으로 굴어야 한다.
그렇게 했다. 샤가 입술을 달싹였고, 거대한 차원문 두 개가 어둠을 불태우며 생겨났다. 차원문은 다가온 총알들을 집어삼키고 도로 토해냈다.
토해진 총알들이 흡혈귀들을 재로 바꿔놓는 가운데, 검게 끈적거리는 흑마염동의 촉수가 뻗어 나갔다. 흑마염동의 일부는 작은 조각이 따로 떨어져 나가 기관총 탄환처럼 쏘아졌다.
이 초 후,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은 염동갑을 입은 간부 하나뿐이었다.
“어······”
신음이 비명으로 바뀌었다. 염동갑 틈새로 파고든 흑마염동의 타르가 흡혈귀 간부의 혈관으로 파고 들었다. 혈액의 성질이 다른 흡혈귀조차 오래 견디지 못했다.
이내 염동감은 안속에 재를 담은 채 뒤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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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무지 세네.”
님프가 질린 듯이 중얼거렸는데, 샤는 그 말에 반응하지 못했다. 최대한 방금 일으킨 일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자 노력하며, 쓰러진 염동갑에 다가갔다.
그 목에 열쇠 하나가 걸려있었다.
주워보니 용골로 된 열쇠였다. 그것을 용골문 자물쇠에 넣어보았더니 자물쇠가 돌아갔다.
둘은 감옥 안에 들어섰다.
조명을 밝혀보니 숫제 감옥이었다. 철창 안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둘은 복도를 걸으며 죄수를 찾으러 다녔다.
먼저 발견된 죄수는 님프였다.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누워있는 님프.
두 님프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욕조에 든 님프는 힘없이 이쪽을 돌아보다가 이쪽 님프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동족에 관심이 없다던 이쪽 님프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미 여기 님프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태연하지 못했다.
“나는······”
두 님프의 눈이 떨리는 가운데 샤는 애완흡혈귀를 찾으러 감옥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감옥 안 철창은 온통 비어있었다.
초조하게 돌아다니다가 겨우 하나 찾았다.
“너, 뭐냐?”
철창 안에 머리칼 짧은 소년 흡혈귀가 갇혀있었다. 애완흡혈귀치고는 이 시대 기준으로도 썩 귀엽거나 곱상하게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특이함에 샤는 신경쓰지 않았다.
샤가 다가선 순간 소년 흡혈귀는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뭐냐니까. 망나니냐? 뭐냐고 물었다!”
예사 애완흡혈귀들과 다른, 비굴하지 않은 어조였다. 심지어 누군가를 압도하려는 듯한 그 외침에 샤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구하러 왔다.”
“날? 어디서 보냈는데?”
“설명할 시간은 없다.”
“없긴, 어서······”
샤는 무언가 말하려던 소년 흡혈귀를 네크로팰리스에 보냈다.
왔던 곳으로 돌아오니 두 님프가 나란히 서 있었다. 온종일 누워있기만 해서인지 걷기도 힘들어보였다. 그러나 저 님프를 네크로팰리스에 보내서 보호할 수는 없었다. 전에 경험했기로 님프는 네크로팰리스에 들어가면 거부반응을 보였으니까.
다행히 탈출이 어렵지는 않았다. 두 님프가 정령으로 몸을 감싸 서로의 이동을 도왔고, 샤는 앞장 서서 걸었다. 그러다 저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또 수색대인 모양인데?”
굳이 싸울 필요는 없었다.
샤는 창문 밖을 노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하여 바깥에 차원문을 생성했다.
차원문을 통과해 거대한 건물을 빠져나왔다. 물가에 가보니 악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악어를 타고 셋은 그곳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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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거지가 단 두 명에게 쑥대밭이 된 것은 혁명정권에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 심지어 귀중한 두 포로를 빼앗기기까지 했다. 경비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몸소 경비대를 이끌고 염동갑을 입은 채 침입자와 맞서다가 죽어버렸으니.
분노와 절망 속에서 혁명정권은 수색자들을 여기저기 파견했다. 그와 동시에 모두에게 함구령을 내렸지만 잘되지 않았다.
살아남은 흡혈귀들은 이번 사건이 암흑마도성에 의해 벌어졌다고 믿었다. 이쪽에서 원시태양교에 님프를 선물로 보내려 하니, 그 반대파인 마왕 추종자들이 수를 쓴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명인지 세 명인지, 하여튼 고작 몇 명이서 경비대를 쓸어버리는 괴물들과 마주치기 싫다고도 생각했다. 결국 수색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졌다.
함구조차 잘 되지 않았다. 어찌 숨기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함구령이 내려지기도 전에 소식은 널리 퍼지고 말았다. 좋지 않았다. 당장 론탈 승강기 공사가 코앞인데 이러다가는 공사의 주도권마저 다른 당에 빼앗길 판이다.
론탈 승강기 공사에 앞서 혁명정권은 권위를 되찾고 싶어했다. 이번 침입자들에게 천문학적인 현상금을 내걸고는 고발만으로도 현상금 절반을 내주리라 공언했다. 별다른 증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의심스럽기만 하면 병사를 움직이겠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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