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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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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84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58

작성
22.07.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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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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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8쪽

화련(4) - 처형인들의 대부(代父)

DUMMY

#1


“너냐? 산이라는 놈이.”


첫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최악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첫 대면이었다.


피에 젖은 참수도.

초연(硝煙)을 흘리는 오래된 권총.

그 앞에 널브러진 머리 잃은 몸뚱이들.


마피아들이 즐겨 입는 검은 정장과 코트 위로 꽃무늬 머플러라는 괴팍한 패션 감각을 가진 그 남자는 늘 지독한 피비린내와 독한 담배 연기가 풍겼다.


“난 오코넬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 손에 나이프 한 자루를 쥐여주었다.


“앞으론 날 ‘선생님’ 이라 불러라.”



...



우르릉!


먹먹한 잿빛을 한껏 머금은 우중충한 하늘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비의 냄새가 났다. 곧 다시 쏟아질 것 같았다.


몸은 점점 추위를 느끼는데 머릿속은 터질 것처럼 뜨겁다.


“....”


문득, 시라비아에서 맡던 역겨운 바다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입안에선 구역질 나는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내 피가 아니고, 다른 누군가의 피도 아니다.


“퉷!”


고인 침을 뱉어보았지만, 기분은 썩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끈덕지게 무거워지는 공기는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단 한 사람에 의해 세상이 압도당한다.

처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건 바로 저 남자를 만났을 때였다.


소름 끼치는 살기에 당장에라도 내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마 처형인을 앞에 둔 놈들이 이런 느낌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든 살 방법을 궁리하면서도, 그 어떤 방법도 무의미하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인정해버리는 좌절감.

끔찍한 기분이다.


‘오코넬 다이아.’


시라비아 마피아의 처형인.

동시에, 수많은 처형인을 길러 내 시리비아에선 ‘선생’ 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처형인들의 대부(代父)와도 같은 남자.

피안파를 치러 연방으로 온 처형인들을 지휘하는 게 저 오코넬이란 건 의심의 여지도 없다.


“아직도 현장 뛰는 줄은 몰랐네요.”

“중요한 일이라서.”


오코넬이 움직였다는 건 시라비아에서 피안파의 반항을 상당히 중요한 사건으로 생각했다는 의미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 괴물이 연방에 와서 칼질이나 하고 있을 리 없다.


“눈 하나는 어디다 주고 왔어요? 전에 봤을 땐 안 그랬는데.”

“..너 몰라서 묻는 거냐?”

“...모르는데요.”

“그럼 됐다. 그냥 일이 있었어.”


오코넬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피에 젖은 참수도와 구식 시라비아제 권총. 간결한 무장이지만 보기 드문 조합.


굳이 총을 잡아놓고 저렇게 다루기 힘든 검까지 쥐는 건 단순한 기선 제압의 용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 남자를 아는 사람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참수도와 권총. 그 의미는 상징성이다.

죄인의 목을 베는 참수도는 처형인을 상징하며, 낡아빠진 구식 시라비아제 권총은 오래전부터 시라비아를 지배해온 마피아들을 상징한다.


즉, 오코넬과 그 무기는 시라비아 마피아와 그들의 처형인을 대표하는 상징성 그 자체다.


‘많이 위험한데...’


싸움을 피하긴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승산이 있느냐를 계산해보면 암담한 결말 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그래도 여기서 얌전히 대가리를 내놓을 생각은 없다. 이제 막 인생 좀 펴지나 싶은 차에 시라비아 놈들에게 발목 잡힐 수는 없지 않은가.


숨을 고르며 흥분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선 저 권총.

저 구식 시라비아제 권총은 원래 군용으로 굴러먹던 놈을 마피아들이 불법개조한 괴팍한 놈이다.


반동도 크고 총성도 오질라게 큰데다가 명중률조차 구리다.

여러모로 암살을 주업으로 삼는 마피아 처형인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지만, 저런 단점을 모두 씹어먹는 무식한 파괴력이 저 총엔 있다.


‘맞으면 끝장이다.’


장탄수 12발. 타이어 터뜨리느라 두 발은 쐈고, 그 전에 쏜 게 있나? 일단 10발이라 생각하고 계산한다.


총을 경계한다고 해도 저놈의 참수도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다루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고 애초부터 대인용으로 만들어진 칼도 아니건만 오코넬의 칼솜씨가 녹슬지 않았다면 저 참수도는 절대 못 이긴다.


최대한 해봐야 흘리고 피하는 정도. 받아치는 건 힘에서 밀릴 게 뻔해 위험하다.

게다가 칼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저놈의 총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쏴댄다. 성가시기 짝이 없는 조합이다.


‘거리 안 주고 총질만 해?’


그것도 나름의 방법이다. 이쪽은 공업제 사일런스 피스톨이라는 최첨단 총기니까. 저런 낡아빠진 총에 질까?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다. 그때 이 총을 받은 이후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번 쏴보기라도 할 걸 그랬다.


“생각이 많구만.”

“선생님 이길 생각 하는 겁니다.”

“너, 나 선생이라 부르는 거 이제 그만 해라. 그럴 자격도 없잖아.”

“그러네요. 오코넬.”

“짜식. 바로 이름부터 까네.”


까가가각...


오코넬이 참수도로 바닥을 긁으며 걸어왔다.

익숙한 소리. 저 소리만 들리면 다들 벌벌 떨면서 도망치기 바빴었지.


“그보다 소문이 사실이었네.”

“소문이요?”

“자기가 시라비아 출신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병신이 공업에 있다더라고. 그게 너일 줄은 몰랐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딱히 대놓고 드러내고 다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숨겼다기엔 또 애매하다. 써먹을 때는 제대로 써먹었으니까..


한 마디로 방심했다. 요즘 좀 살 판 났다고 느슨해진 것 같았다.

좀 무리해서라도 이 문신을 지우는 게 역시 나았을 것 같다.


“조심했어야지. 안 그래도 에콰가 눈치챘다.”

“.....”

“네 어머니보다 나랑 먼저 마주친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다 타들어 간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끈 오코넬이 마침내 참수도를 바로 쥐었다.


“하긴, 그랬으면 죽지도 못했겠네.”


난 카르마 나이프를 내밀고 무릎을 굽혔다. 언제라도 튀어 나갈 수 있도록 다리 근육을 긴장시켰다.


“쩝. 아직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내가 좀 바쁘네.”

“그래 보이시네요. 얼른 하죠.”

“그러자.”


참수도가 천천히 호를 그리며 움직였다.


칼을 쥐는 법, 몸을 움직이는 법, 휘두르는 법, 숨 쉬는 법과 여러 가지 잡기술.

내 몸에 때려 박힌 기술 대부분은 모두 오코넬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말은 즉, 오코넬은 내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을 게 뻔하다는 얘기다.


페이크는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변수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짧고 강한 도박에 걸어야 한다.


“흡!”


고민은 길지 않았고 난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다.

여유조차 두지 않은 폭발적인 가속도에 시야가 뭉그러지고 공기가 찢어진다.


그대로 힘이 실린 카르마 나이프의 칼날을 앞세워 돌진.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라는 말이 어울리는 일격은 이 싸움을 단번에 끝낼 수도 있을 첫수이자 비장의 수다.


깡!


하지만 막혔다.

빌어먹을 몸뚱이가 제대로 따라오질 못했다.


오코넬을 베려면 훨씬 더 빠르고 힘이 붙어야 한다. 지금의 나로선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강철이 부딪치는 마른 쇳소리가 메아리쳐 흩어진다. 그리고 그 메아리가 끝나기도 전에 서늘한 바람이 훅, 하며 들이닥쳤다.

이게 참수도라는 걸 인지하기도 전에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음?”


순식간에 몸을 틀어 오코넬의 참수도를 걷어찼다.

본래 궤도를 벗어나 위로 튕겨 올라간 참수도. 그 틈을 비집고 나이프를 쑤셔 넣는다.


‘총!’


탕 - !


역시나 불쑥 튀어나온 총구에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급격한 회피 동작에 당연히 오코넬에겐 스친 상처 하나 내지 못했고 초연을 흘리는 오코넬의 총구도 날 맞추지 못해 허공을 겨누고 있었다.


한 호흡.

단 한 호흡이라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공방이 차가운 도시 속 메아리로 흩어졌다. 난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공업제 사일런스 피스톨을 내밀었다.


“너..”


뭔가 말하려던 오코넬이 바람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아래!”


마치 짐승처럼 몸을 낮추고 날아든 오코넬이 참수도를 쳐올렸다. 재빨리 턱을 뒤로 젖혀 피하고 카르마 나이프를 역수로 쥐어 잡아 긋는다.


핏!

팔을 베었다. 하지만 너무 얕았다.

고작해야 슬쩍 옷깃을 스친 정도. 이 헛방은 곧 빈틈으로 연결될 게 뻔했다.


‘움직여!’


머리는 팽팽 돌며 회전이 빠른데, 이놈의 몸이 생각대로 따라가질 않았다.

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를 내고 있건만 오코넬은 가볍게 내 속도의 빈틈을 찔러온다.


탕 - !


또다시 총성.

맞은지, 안 맞은 지도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몸을 숙였다. 어깨나 머리통이 날아가지 않은 걸 보니 다행히 피한 모양이다.


다시 한 번 거리를 벌린다. 그리고 다음 자세로..


‘안 따라와?’


당연히 따라붙을 거라 예상했던 오코넬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슬그머니 칼과 총을 내렸다.

갑자기 날아들지도 모를 총질에 대비해 총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푸하..!”


식은땀이 줄줄 흘러 온몸이 축축했다.

몇 번이나 생사를 오고 갔다. 보고 인지하는 것보다 그냥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해 겨우겨우 목을 지켜냈다.


“하... 그새 늙으셨나? 나 같은 거 상대로 왜 이리 시간이 끌리신대?”

“널 누가 가르쳤는데. 당연히 시간이 끌려야지. 헛가르친 게 아니라 뿌듯하구만.”

“그거 고맙네요.”

“근데 저건 또 뭐냐?”


오코넬의 하나 남은 눈이 내 어깨너머를 가리켰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괴상한 물건을 쥐고 방독 마스크까지 쓴 시카가 있었다.


“..뭐해요?”

“지원이요.”


시카가 내밀고 있는 건 총처럼 생기기도 했지만, 자세히 보니 총이 아니라 네일건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못을 쏴댈 리는 없었고 그 안에 든 게 폭탄이라 짐작한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써요.”


무언가 휙 던지길래 받았더니 시카랑 똑같은 방독 마스크였다.

이걸 갑자기 왜 주는 건가 싶지만 이 상황에 이유 없이 줬을 리는 없었다. 뭔가 생각이 있으니 준 거겠지. 난 재빨리 마스크를 썼다.


“산아. 그거 혹시 여자친구냐?”

“...직장 동료입니다.”

“그럼 봐줄 필요 없지.”


또다시 바닥을 찬 오코넬이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쳤다.

시카의 네일건이 겨누고 있건만,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조준을 흘리던 오코넬은 팔꿈치로 시카의 턱을 올려쳤다.


“이런!”


참수도가 움직인다.

이쪽도 움직였지만 한참이나 늦었다.


‘그러게 내가 튀라고 했는데!”


구하자니 이쪽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냥 시카를 포기하고 오코넬을 노릴까?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내 몸은 이미 시카를 낚아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허공을 힘차게 가른 오코넬의 참수도가 살벌한 바람을 뿜어냈다. 오코넬은 곧장 나뒹구는 나와 시카를 향해 거리를 좁혀왔다.


‘못 막는다!”


어쩌지? 시카를 버려? 방패로 쓸까?

맞아. 이 여자 어차피 재생하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난 시카의 등을 떠밀었다.


“아!?”

“미안! 방패 좀 해 봐요!”

“..!”


시카가 뭐라 소리친 것 같은데, 그보다 먼저 오코넬의 참수도가 시카의 가슴팍을 뚫고 쑥 들이닥쳤다.

아슬하게 몸을 숙이고 시카의 뒤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역으로 오코넬의 뒤를 잡았다.


참수도는 아직 시카에게 박혀 있다.

저걸 뽑아 내 쪽으로 휘두르려면 잠깐이지만 시간이 걸린다.


그 짧은 시간.

1초나 걸릴까 싶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카르마 나이프를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쌔액!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지르며 날아간 나이프는 어깨에 박혔다.

오코넬의 어깨가 아닌 시카의 어깨에.


“와..”


참수도를 뽑기보다 놓는다는 선택을 한 오코넬은 나랑 똑같이 시카를 방패로 쓴 것이다.

덕분에 오코넬 대신 카르마 나이프가 어깨에 박힌 시카는 어쩌다 보니 칼빵을 두 번이나 맞았다.


“커흑...”

“미안합니다. 아가씨. 방패로 좀 씁시다.”

“...왜 나만..”


어차피 초재생으로 회복할 텐데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죄책감을 뒤로 밀어 넣고 난 가죽 케이스의 지퍼를 열어 대표님께 받은 참수도를 꺼냈다.


“뭐냐? 그거 설마 나 따라 한 거 아니지?”

“에라이.. 아니거든요..”


이래서 이게 싫었다. 괜히 따라 하는 것 같아서.


“그래. 한 번 보자.”


오코넬은 시카의 가슴을 뚫고 박힌 참수도를 마치 검집에서 뽑듯 쑥 뽑았다.

덕분에 시카는 뭔가 괴상한 신음을 내며 풀썩 쓰러졌다. 나자빠진 시카를 슬쩍 본 오코넬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아가씨 네 직장 동료라며? 근데 방패로 쓸 생각을 다 하네.”

“나부터 살고 봐야죠.”

“그래. 역시 잘 배웠어.”


참수도와 참수도. 같은 무기지만 저쪽은 실력이 있고, 이쪽은 기술이 있다.


공업제 참수도는 어떻게 만든진 모르겠지만 델라리온 머스칼의 능력을 흉내 낼 수 있다. 지금 내게 남은 수는 이것뿐이다.


오코넬이 한 발을 내밀었다.

나도 한 발을 내밀며 참수도를 몸 중앙으로 옮겼다.


뛰는 건 동시였다.


깡!

참수검끼리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그 순간, 오코넬이 아래로 푹 꺼졌다.


“어?”


설마 머스칼이 하던 것처럼 찌그러져 터졌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오코넬은 단순히 무릎이 굽혀진 것뿐이었다.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고 딱딱하게 경직되어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다.

슬슬 내 몸도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식인 도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기가 바위 덩어리가 된 기분은 아니었다. 해봐야 누군가 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정도.


반면에 오코넬이 받는 중압감은 내 몇 배 이상인 모양인지 얼굴을 찌푸리곤 이를 악물고 있었다.


‘머리!’


이틈에 베어야 한다.

자세가 무너진 오코넬의 목을 향해 힘껏 참수도를 휘둘렀다.


“!?”


분명 몸이 짓눌리고 있을 텐데, 오코넬의 참수도가 내 참수도를 쳐냈다.

그 뒤는? 방어가 활짝 열린 내 몸을 향해 오코넬이 쑥 들어왔다.


방심했다. 상대가 무력화됐다고, 약해졌다고 생각해 바보같이 들어가버렸다.


“욱!”


복부에 꽂힌 오코넬의 주먹에 숨이 턱 막혔다.

그 뒤는 사정없이 치켜 올라간 참수도가 단두대마냥 떨어졌다.


“음?”


동시에 공기가 일그러지는 파장.

이건.. 감응자다.


빠각!

오코넬의 참수도는 내 목이 아니라 아스팔트 바닥을 내리찍어 부쉈다.

살벌하게 번들거리는 칼날을 보며 목이 잘리기 직전이던 난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빗나갔어?’


그럴 리가? 내가 아는 오코넬은 한 번도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없다.


“팀장님.”


누군가 날 부르며 내 어깨를 잡았다. 사무엘이었다.


“그랬지.. 에이전트였지...”

“잠깐은 우릴 못 찾을 겁니다.”


방독 마스크를 쓴 사무엘이 말했다. 난 뭔 소린가 하며 오코넬을 돌아보았다.


사무엘의 말대로 오코넬은 코와 입을 가린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능력이 뭔진 모르겠지만, 오코넬의 참수도가 날 빗겨간 것도 사무엘의 짓이 분명했다.

시야를 가리기라도 하는 건가? 굳이 방독 마스크를 준 걸 보면 공기 중으로 퍼뜨리는 무언가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저쪽은 무서울 정도로 감이 좋은 남자다.

이런 눈속임 같은 능력이 통하는 것도 오래가지 못할 게 뻔했다. 난 서둘러 축 늘어진 시카를 들쳐메고 사무엘을 따라 달렸다.



#2


“헉! 헉..!”


이 빌어 처먹을 방독 마스크는 더럽게 숨쉬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늘어진 시카를 들쳐메고 있었으니 조금만 달려도 벌써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으....”

“헉.. 허억.. 일어, 났네요..?”

“......”


시카는 째릿한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딱 봐도 제대로 삐졌다. 거 나랑 오코넬이 방패로 좀 썼다고 토라지다니. 어차피 다 재생하면서.


그리고 이쪽은 숨이 차서 죽겠는데, 똑같이 마스크를 쓴 사무엘은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았다.

이 자식 능력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딴 걸 써야만 막을 수 있는 거라면 그다지 적으로 두긴 싫다. 진짜 성가신 능력이다.


“여기서 잠깐 쉬죠. 마스크는 벗으셔도 됩니다.”


사무엘이 말하자마자 난 재빨리 마스크를 벗어 집어던졌다.


“푸하! 하아... 쓰으으읍.. 하....”

“하아...”


시카도 마스크를 홱 던져놓고 숨쉬기에 전념했다. 진짜 거지 같은 마스크다. 이 퀴퀴한 연방 도시의 공기조차 지금은 달게 느껴질 정도다.


“죽는 줄 알았네.. 거 능력이 뭔데 이딴 걸 씁니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예. 그러시겠죠. 그래도 굉장하네. 그 감 좋은 아재를 따돌릴 줄이야.”

“아는 사람 같았는데, 시라비아에 계실 때 알던 분입니까?”


사무엘이 물었고 시카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차피 알거 다 아는 놈들이니 나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오코넬 다이아. 시라비아 마피아 처형인이고.. 그냥 쉽게 말하면 처형인 기르는 마피아 놈들 선생입니다. 제일 실력 좋은 처형인이죠.”

“그랬군요.”


사무엘이 내 뒷조사를 했을 건 뻔했고 솔직히 내 과거는 조금만 들쑤셔도 금방 나온다. 딱히 숨기려고 이것저것 노력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표님이 말해놨는지 시카도 별로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시라비아라는 이름만 들어도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질질 짜는 놈들이 있는데, 그런 놈들이 팀이라면 곤란하다.


“..이제 어떡해요?”


시카가 물었다. 사무엘도 조용히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별로 생각할 것도 없이 답이 나왔다.


“루아 호텔은 날려버렸으니 됐고. 오코넬이 처형 부대 끌고 연방에 들어왔으니 피안파는 내버려둬도 알아서 작살날 겁니다. 머스칼이 캔들만 갖고 돌아오면 우리도 그냥 레베스타로 복귀하죠.”


기왕 이렇게 됐으니 전부 마피아 놈들한테 맡겨도 상관없다.

혼자서 조직 한두 개 쯤은 밥 먹듯이 담그던 남자가 오코넬이다. 게다가 저렇게 자기 부하를 끌고 왔으면 피안파 정도는 손쉽게 정리할 수 있을 거다.


“우선 계속 이동하죠. 혹시 따라올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고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모퉁이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반사적으로 칼을 쥐었지만 튀어나온 녀석은 날 보더니 비명과 함께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야?”

“히이익!!”


루아 호텔의 화련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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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화련(7) - 죽음의 사도들 +1 22.07.15 345 16 15쪽
56 화련(6) - 마지막 화련 +1 22.07.14 340 13 16쪽
55 화련(5) - 주란(珠蘭) +1 22.07.13 343 14 18쪽
» 화련(4) - 처형인들의 대부(代父) +1 22.07.12 344 16 18쪽
53 화련(3) - 머스칼의 임무 +1 22.07.11 331 14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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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화련(1) - 서막(序幕) +2 22.07.07 336 1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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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식인 도시(10) - 매듭의 포성(砲聲) +1 22.06.22 410 16 12쪽
38 식인 도시(9) - 수면 위로 +1 22.06.21 413 17 17쪽
37 식인 도시(8) - 용 사냥 +1 22.06.20 428 17 21쪽
36 식인 도시(7) - 비밀의 대가 +1 22.06.17 406 15 13쪽
35 식인 도시(6) - 폭식(暴食)의 알산나 +1 22.06.16 399 15 17쪽
34 식인 도시(5) - 허를 찔리다. +1 22.06.15 399 17 14쪽
33 식인 도시(4) - 폭탄마 시카 +1 22.06.14 416 15 17쪽
32 식인 도시(3) - 비도덕성의 뒷면 +1 22.06.13 427 17 17쪽
31 식인 도시(2) - 사도(使徒) +2 22.06.10 459 19 20쪽
30 식인 도시(1) - 식인 도시 라얀 +2 22.06.09 469 16 17쪽
29 짧은 휴식, 적막의 밤 +1 22.06.08 475 19 12쪽
28 거래 +1 22.06.08 484 20 13쪽
27 성목(聖木)의 나즈카 +3 22.06.07 500 18 13쪽
26 자할 회담(8) - 위기탈출 +1 22.06.06 480 22 14쪽
25 자할 회담(7) - 사냥감의 계략 +2 22.06.06 480 24 15쪽
24 자할 회담(6) - 스마일 페이스 +1 22.06.03 493 22 15쪽
23 자할 회담(5) - 함정 +2 22.06.03 505 25 16쪽
22 자할 회담(4) - 위험한 회담 +1 22.06.02 512 21 14쪽
21 자할 회담(3) - 야차(夜叉) +5 22.06.01 533 23 15쪽
20 자할 회담(2) - 쟈토 노인 +2 22.05.31 538 24 13쪽
19 자할 회담(1) - 이웃 나라 +1 22.05.30 581 24 12쪽
18 수사 종결, 개인 보급 22.05.30 585 23 22쪽
17 공조 수사(6) - 발톱과 폭탄마 +3 22.05.27 580 22 18쪽
16 공조 수사(5) - 추격자들 +2 22.05.27 548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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