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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조회수 :
83,289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58

작성
22.07.08 14:10
조회
331
추천
17
글자
21쪽

화련(2) - 대면(對面)

DUMMY

#1


“다 모였어?”


루아 호텔 로비.

평소라면 쥐잡이뿐만이 아니라 일반 고객도 많이 오가는 장소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건 전부 피안파의 조직원들이었다.


건장한 사내들이 각자 연장을 들고 우르르 모여 있는 로비는 험악한 분위기로 가득했지만 그런 사내들을 앞에 두고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한 젊은 여자가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뭐야? 첸 사장은? 왜 안 보여?"

"저쪽 화련 만나러 갔다."


조직원들 사이를 비집고 나오며 한 남자가 말했다.

피안파의 '야차' 로 잘 알려진 그는 검은 선글라스 너머, 날이 선 눈으로 화련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지금이 어떤 때인데 자리를 비워?”

“..그쪽이 ‘약’을 첸 사장한테 맡겼잖아. 알아서 하라고.”

“아, 그랬었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화련이 손짓하자 그녀의 곁에 있던 젊은 사내가 정사각형의 나무로 된 상자를 내밀었다.

그다지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상자. 그 뚜껑을 연 화련은 안에 손을 집어넣곤 거리낌 없이 무언가를 불쑥 꺼내 들었다.


“!!?”


덕분에 로비에 모여 있던 피안파 조직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각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뒷걸음질을 친다던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던지, 그저 무뚝뚝하게 지켜만 본다던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그토록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이 사람의 잘린 머리였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얼마 전에 선물로 받은 거야.”


잘린 머리의 머리카락을 꽉 쥐고 있던 화련의 손에 핏대가 섰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쥐어뜯을 것처럼 힘이 들어간 손만 봐도 그녀의 심기가 꽤 불편하다는 것을 야차는 알 수 있었다.


“얜 쥐잡인데, 내 의뢰로 코렌에 보냈었어. 헤이카 미켈런을 잡으라고 보냈었지.”

“헤이카 미켈런!?”


술렁거림이 커졌다. 화련은 씨익 웃으며 조직원들을 향해 머리를 툭 던졌다. 바람 빠진 축구공만 한 사람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 로비 바닥을 더럽혔다.

머리를 피해 조직원들이 조금씩 물러나는 동안에도 가장 선두에 있던 야차는 바로 앞까지 굴러 온 잘린 머리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듣도 보도 못한 애송이한테 당하더니 머리만 덩그러니 돌아왔어. 아주 예쁘게 포장까지 됐더라고. 소금에 절여서, 얼음 동동 띄워서.”

“....”

“그 애송이가 지금 헤이카의 똥개로 있는 공업의 신입 팀장이야.”

“신입 팀장?”

“공업의 새로운 사업팀.. 아니,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 똥개 새끼 대가리를 내 손으로 자르고 싶다는 거야.”


젊은 사내가 건네준 젖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화련이 입가를 비틀었다.

평범했던 그녀의 얼굴이 살벌하게 일그러지자 야차가 혀를 찼다.


“설마 그거 잡자고 부른 거냐?”

“맞아.”

“미친년.”


야차의 거침 없는 말투에 화련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하지만 지금 이 도시에 있는 피안파 전력 중 가장 큰 전력은 야차뿐이었다. 화련은 화를 눌러담았다.


“지금 하인타에 들어온 공업 놈들은 우리를 치려고 온 거야. 레베스타 에이전트까지 붙여서 왔다고.”

“보나 마나 그 약 때문이겠구만. 근데 그건 어차피 저쪽 화련한테 넘어갈 텐데.”

“그건 모르고 있겠지. 그러니 괜히 우리한테 시간 낭비하려는 거야. 저쪽 화련이 약을 갖고 도망칠 수 있도록 우리가 여기서 공업 새끼들을 모조리 묶어놔야 해.”

“누구 계획이냐?”

“내 계획이야.”

“미친년. 대가리는 장식인가?”


또 튀어나온 야차의 비난에 결국 화련이 폭발했다. 성큼성큼 야차를 향해 다가온 화련이 그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입 조심해. 똥개. 넌 그냥 내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내가 왜?”

“난 피안파의 화련이니까. 이 루아 호텔의 총관리인이고. 그러니 직급으로는 내가 너보다 한참이나 위야. 똥개 새끼야.”

“....”

“야차? 그렇게 불리고 싶으면 이름값을 해. 괜히 나한테 이빨 드러냈다간 그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릴 테니까. 알았어?”

“하..”


야차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화련은 그런 야차를 밀치며 말했다.


“불만 있으면 당장 꺼져. 대신 나중에 무슨 말을 들어도 난 모르는 일이야. 야차가 우릴 배신한 거니까.”

“그깟 이름 하나 받았다고 아주 꼴값을 떠는구만. 자할에서도 뒤통수나 처맞은 년이.”

“그러는 넌 헤이카 미켈런을 잡기라도 했어? 하다못해 헤이카의 떨거지들은 잡았니? 아니지? 뭐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남 말 하지마. 애초에 네가 자할에서 헛짓거리만 안 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어.”

“....”


둘 사이에 살벌한 공기가 내리깔렸다.

그런 경직된 분위기를 깬 것은, 호텔 로비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발소리였다.


“화련님!”

“뭐야?”


콧수염을 삐죽 기른 마른 남자. 이 호텔의 부지배인이자 화련의 정보원이기도 한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화련이 째릿한 눈빛을 쏘자 부지배인이 기겁하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 폭탄 테러.. 그, 그러니까.. 예고 전화가...!”

“똑바로 말해. 뭐라는 거야?”

“누, 누군가 이 건물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화련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부지배인은 입을 꾹 다물고 그녀의 눈을 애써 피했지만 이미 거리를 좁힌 화련은 부지배인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장난 전화면 죽을 줄 알아.”

“지.. 직접 제 번호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화련님께 전하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말해봐."

"...선물은 잘 받았느냐고.."

“...."


지금 공업에는 폭탄마가 있다. 폭탄을 이용한 공격은 예상했지만, 설마 루아 호텔을 상대로 폭탄 테러를 예고한 건 의외였는지 그녀의 얼굴엔 일순간 당혹감이 비쳤다.


'일반 고객이 있을지도 모를 호텔을 테러해? 아니, 그래서 미리 경고를 해온 건가?'


제아무리 공업이라도 민간인을 휘말리게 할 만큼 막 나가진 않는다.

화련은 피식 웃으며 부지배인을 놓아주었다.


"지금 객실에 남은 고객 없지?"

"없습니다. 화련님 지시로 어제부터 전부 비워뒀습니다."

"있는 척 해. 그럼 폭탄은 못 터뜨릴 거야."


침을 꿀꺽 삼킨 부지배인이 끄덕였다. 화련은 곧바로 야차를 향해 다시 돌아섰다.


“야차. 쓸데 없는 소린 그만하고 나가서 움직여. 폭탄 테러를 예고했으니 아마 근처에서 이쪽 동태를 살필 거야.”

“....”

“뭐해? 어서. 또 잔소리하게 하지 말고.”


야차는 팍 구긴 인상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여기서 혼자 빠진다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이건 자할에서의 실패를 만회할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쳇.”


하지만 돌아선 야차는 나아가지 않고 물끄러미 호텔 입구를 바라보기만 했다. 보다 못한 화련이 다시 인상을 팍 구겼다.


“뭐 하는 거야? 얼른 나가라니까!?”

“....나갈 때가 아니잖아. 이 년아.”


야차가 곤봉을 꺼내 가시 돋친 체인을 휘감았다.

그제서야 화련은 호텔 로비에 불청객이 발을 들였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앞으로 나섰다.


“..어머, 안녕하세요? 고객님?”

“네.”

“혼자 오셨어요?”

“네.”

“참 겁도 없으시네.”

“자주 들어요.”


호텔 입구.

검은 케이스 가방을 들고 홀로 들어선 시카가 천천히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저거 잡아!”


화련이 소리쳤다.



#2


“다시 확인해봤지만 역시 호텔 내부에 민간인은 없습니다. 대신 이 도시를 포함에 주변에 긁어모을 수 있는 피안파 조직원들은 전부 집합시킨 모양입니다.”


운전석에 앉은 사무엘이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화면엔 눈이 아플 정도로 빼곡하게 무언가 적혀 있었고 한쪽 구석엔 루아 호텔 내부의 CCTV 영상이 쫘르륵 떠 있었다.

뭘 한 건지 모르겠지만 사무엘은 노트북을 열고 몇 번 두들기더니 저 루아 호텔 내부 CCTV와 투숙객 명단으로 보이는 걸 죄다 들춰냈다.

레베스타제 해킹 기술인지, 저런 거에 약한 내가 봐도 대단하다는 건 알겠다.


“그럼 문제없네요.”


저 호텔은 쥐잡이들이 애용하지만 반대로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이용한다. 일단은 겉으론 '평범한 호텔' 을 연기하는 놈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민간인 피해 없이 호텔을 날려버리려면 어떡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우리랑 싸움을 준비한 것인지 루아 호텔은 어제부터 객실을 싹 비워두고 있었다.

놈들은 전장을 준비했지만 덕분에 우린 거리낄 것 없이 그 전장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저대로 피안파 놈들을 호텔이랑 같이 묻어버리는 것도 좋지만 그런 일방적인 테러로 학살하는 건 역시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사전에 호텔에 전화해 ‘폭발물을 설치했다.’ 라고 테러를 예고했다. 은근슬쩍 나라는 것도 밝혔으니 장난 전화라곤 생각 안 하겠지.


이 계획은 테러로 인한 대량 학살이 아니라 ‘루아 호텔’ 이라는 놈들의 중요 거점 날려버리는 데 중점을 둔 계획이다.

놈들의 수를 줄이지 못해도 애초에 상관없다. 우두머리인 화련만 잡으면 돈에 움직이던 오합지졸들은 알아서 흩어지기 마련이다.


이걸로 핸디캡은 줬고, 제정신이 박힌 놈들이라면 저기 틀어박히지 않고 다 튀어나올 거다.


“그리고 캔들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말 예상을 한치도 안 벗어나네요.”


캔들에 붙여놓은 추적기 덕분에 캔들이 이동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것도 역시 레베스타제 기술이라 그런지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신호는 끊기지 않았다.


캔들이 움직였다는 건 피안파도 움직이고 있다는 뜻.

캔들을 가져갈 ‘또 다른 화련’ 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쪽은 머스칼에게 맡겼다. 제일 중요한 임무를 제일 강력한 전력에게 맡기는 건 상식이다.


그렇게 나와 사무엘은 루아 호텔 본사 앞에 차를 대놓고 대기. 나머진 시카한테 맡겼다.


‘3초라..’


그나저나 저 큰 호텔을 폭삭 주저앉게 하는 폭탄을 설치하는데 3초밖에 안 걸린다니, 농담이면 좋겠지만 시카는 농담이라곤 전혀 할 줄 모르는 여자다.


그 대단하신 폭탄마의의 말을 빌리자면 ‘사이드 이펙트를 생각해야 할 작업이라면 계산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냥 날려버리는 건 3초면 충분하다.’ 라고 한다.


폭발물 전문가의 말씀이시니 그러려니 하고 듣긴 했다만,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그냥 겁나 센 폭탄을 휙 던져넣은 뒤, 뒤도 안 돌아보고 터뜨린다는 소리로 들렸다.


즉, 폭탄 꺼내고, 작동시키고, 던지고. 이렇게 3초.

터지고 폭삭 주저앉을 때까지 약 10초 쯤. 그 뒤는? '짜잔, 루아 호텔이 사라졌습니다.' 하는 마술 쇼다.


‘그런 폭탄을 여태 주머니에 넣고 다닌 거야?’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정신 나간 여자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내 목숨이 위험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단단히 일러둬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무엘. 현재 캔들 위치는요? 계속 이동 중이죠?”

“지금 막 도시를 빠져나갔습니다. 어쩌면 피안파 본거지로 갈지도 모르겠군요.”

“피안파 본거지? 여기 아닙니까?”

“여긴 루아 호텔 본사입니다. 피안파의 겉모습일 뿐이죠. 진짜 피안파의 본거지가 어디에 있는진 아직 저희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잘만 유도하면 피안파 본거지까지 찾아낼 수 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난 재빨리 머스칼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번에 번호를 몰라서 못 했지만 그때 이후로 머스칼과 난 바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바로바로 지시 내용을 보낼 수 있다.


‘이참에 뿌리를 뽑아야지.’


피안파 소탕은 애당초 계획에 없었다.

그래도 기왕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거 기회 될 때 싹 쓸어버리는 게 나로선 마음 편하다. 어차피 나쁜 놈들이기도 하고.


― !!!!


때마침, 엄청난 폭음과 동시에 루아 호텔 1층에서 폭염이 뿜어져 나왔다.

충격이 어찌나 강한지 주변에 있는 차가 뒤집히고 이쪽 차량도 들썩거리면서 유리창에 금이 갔다. 진짜 무시무시한 폭발력이다.


“와우..”


이제보니 맞은편 빌딩은 물론, 주변 다른 건물들도 죄다 유리창까지 박살이 났다. 그야말로 온 거리가 뒤집힌 것 같았다.

곧, 루아 호텔 건물에서 섬뜩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돌벽이 갈라지는 듯이 '쩌적' 거리는 소음. 살짝 휘청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역시 나오네.”


마침내 매운 연기를 쥐구멍에 흘려 넣은 것처럼 호텔 로비에서 피안파 놈들이 쥐새끼처럼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폭탄이 터진 건 터진 거고, 일단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은 저 건물이 곧 폭삭 주저앉을 거란 걸 직감한 모양이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꼬락서니가 허접하기 짝이 없다.


“시카는 왜 안 나오지?”


그런데 저 테러의 장본인이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초재생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저런 빌딩 잔해에 깔렸다간 재생이고 뭐고 빠져나오는 것부터가 불가능해진다.


뭔가 잘못 됐나 하는 걱정이 들던 중, 빌딩에선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이 나더니 또 폭염이 쏟아져 나왔다. 2차, 이어서 3차 폭발까지.

그렇게 박살 난 2층 유리창에서 시카가 뛰어내렸다. 한 방으로 안 쓰러져서 더 터뜨린 모양이다.


“..뒤로 조금 빼겠습니다.”

“예.”


빌딩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사무엘이 차를 뒤로 뺐다. 차가 움직이기가 무섭게 빌딩이 시꺼먼 연기를 뿜어댔다.


그리고 마침내 빌딩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몇 층짜리 빌딩인진 모르겠지만 저 호텔은 상당히 크다. 그 꼭대기가 지상으로 추락하기까진 정말 시카의 말대로 10초 정도였다.

새까만 먼지가 주변을 자욱하게 뒤덮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루아 호텔 본사 빌딩에 주변 사람들이 멀찌감치서 너도나도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크으.. 시원하다. 저거지. 괜히 폭탄마가 아니네. 봐요. 빌딩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네.”

“....그렇군요.”


별 반응이 없던 사무엘도 실제로 시카의 작업을 눈앞에서 보니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나도 저 정도 규모의 철거는 처음 봤다. 역시 폭탄에 미친 여자답게 위력 하난 화끈했다.


“슬슬 저희도 움직일까요?”

“..잠깐.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사무엘은 혼비백산 돌아다니는 피안파 조직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야 저런 폭발에 휘말릴 뻔했으니 제정신인 게 이상하지. 하지만 자세히 보니 사무엘이 말한 건 아무래도 정신 쪽이 아닌 것 같았다.


시커먼 연기 속에서 피안파 놈들이 마구 나뒹굴며 다른 무리와 싸우고 있었다. 사실 싸운다기보단 일방적으로 죽어나간다는 편이 어울렸다.


“다른 조직이 난입한 것 같습니다.”

“으음..”


그 속에서 이리저리 뒹굴던 시카는 겨우 방향을 잡았는지 이쪽을 향해 서둘러 달렸다. 사색이 된 얼굴을 보아하니 사무엘 말대로 다른 놈들이 끼어든 게 맞는 모양이다.


‘어째 머리만 노리고 있는데?’


이제 보니 피안파 놈들 대가리가 뎅겅뎅겅 떨어져서 바닥을 굴러다녔다.

그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날뛰는 검은 옷차림의 무리는 저마다 도끼나 나이프, 장검 등 각자 다른 무기를 쥐고 있었다.


동작이나 머리만 노리는 특징. 피안파 놈들이 맥을 못 추리고 속수무책 당하는 걸 보니 저놈들이 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때마침 시카가 차량으로 돌아와 올라타더니 재빨리 문을 닫았다.


“휴우.."

“수고. 시카도 왔으니 슬슬 튀죠."

“뒷정리 안 해도 돼요?”

“저것들 시라비아 놈들입니다. 설마 처형인들을 저렇게 보냈을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된 거 쟤네한테 맡기고 저흰 빠집시다.”


보통 시라비아의 처형인은 혼자 움직이는 편이다. 많아 봐야 둘, 셋.

하지만 지금 저 숫자를 보면 열 명은 족히 넘는다. 저 정도로 왔다는 건 시라비아에선 전쟁을 의미한다. 상대를 완전히 담가버리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껴들었다가 잘못하면 피안파와 시라비아 놈들 전부를 상대해야 될지도 모른다. 위험한 것도 있고, 일단 난 저놈들이랑 어지간해선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음?"


그런데 먼지와 검은 연기를 뚫고 한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심지어 정확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시카가 도망친 게 걸린 모양이다.


당연히 근처에 있던 피안파 놈들은 그 남자를 에워싸고 연장을 들이밀었다. 숫자만 보면 20명을 넘는 건장한 놈들이 한 명에게 달려드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 불리한 머릿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말도 안 돼..”


남자는 쥐고 있던 무기와 함께 느긋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냥 보기엔 느려터진 듯 보이지만 교묘하고 변칙적인 칼질은 분명 프로의 솜씨다. 그리고 내가 지겹도록 보아온 칼놀림이기도 했다.


“......”

“팀장님?”

“...차. 어.. 그래요. 차 돌립시다.”


도망쳐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 이 느낌은 분명, 틀림 없다.

저 남자는 내가 아는 사람이다. 심지어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던 사람 중 하나.


“차 돌려요.. 빨리. 걸리기 전에 여기서..”


탕 - !


가슴을 때리는 쩌렁쩌렁한 총성과 동시에 차량 아래쪽에서 ‘펑’ 하며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 많던 피안파 떨거지들을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전부 참수한 남자가 다시 이쪽으로 관심을 돌린 것이다.


탕 - !


또 차체가 흔들렸다. 한 발에 타이어 하나씩. 앞바퀴가 전부 터진 차량은 도저히 굴러갈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담배 연기를 흘리는 남자가 우리 차를 향해 성큼성큼 거리를 좁혀왔다.


한 손엔 특이하게 생긴 권총. 다른 한 손엔 참 섬뜩하게 생긴 칼.

그 불쾌하기 짝이 없는 무기를 나는 알고 있었다.


‘참수검.’


사람 목을 치는 처형인들의 칼.


지금 내 어깨에 있는 참수도랑 똑같이 생긴 놈.

내가 이 검을 꺼림칙하게 여기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싫은 기억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축축한 안갯속.

그 괴팍한 칼로 사람 머리를 닭모가지 치듯 끊던 처형인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피안파 떨거지들이지? 아저씨 바쁘니까 얼른 내려라.”


마침내 목소리가 닿을 정도의 거리가 되자, 남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미 거리는 좁혀질 대로 좁혀졌고, 애초에 저쪽에서 우릴 눈치챈 순간 도망치는 건 이미 글렀었다.

남자의 얼굴. 그리고 손목에 슬쩍 보이는 문신을 보며 난 완전히 체념했다.


“...틈 나면 차 버리더라도 도망쳐요. 시간 벌어볼 테니까.”

“팀장님?”

“잔말 말고.”


심호흡하며 차 문을 활짝 열었다.

다른 손은 코트 안쪽의 카르마 나이프를 쥐고, 그대로 걸어나와 남자와 정면으로 마주섰다.


내가 만약 피안파 놈이었다면 이대로 총을 맞아도 할 말이 없지만, 내겐 저 남자가 날 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

“....”


침묵의 대치.

말끔한 검은 정장에 어깨 위로 둘러 늘어뜨린 붉은 꽃무늬 머플러. 왼쪽 눈이 있어야 할 곳에 대신 자리 잡은 같은 꽃무늬의 검은 안대.

부스스한 어두운 갈색 머리를 쓸어넘기며 입가에 문 담배를 까딱거린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씰룩이며 남자가 코웃음 쳤다.


- ...


맑은 쇳소리와 함께 남자의 칼이 아스팔트 바닥을 두드렸다.


끝이 뾰족하지 않고 직각으로 날을 세운 참수검.

정말 대표님 말대로다. 기선 제압으로는 저거만 한 게 없다.


“좀 놀랍네. 너 피안파에 들어갔었냐?”

“..피안파 치러 온 건데요...”

“그러냐? 나돈데.”

“.....그럼 서로 갈 길 갈까요?”

“미안한데, 우리 규칙 알잖아.”


잘 알다마다. 모를 리가 없지.


“적에겐 죽음을.”

“친구에겐 머리를.”


그 ‘적’의 범주에 배신자는 당연히 들어간다.


“오랜만이다. 산아.”


스릉 -


참수검이 칼날을 번들거리며 내 쪽으로 살기를 드러냈다. 그 칼날 너머로 낡아빠진 구식 시라비아제 권총이 총구를 삐죽 내밀었다.


나도 카르마 나이프의 날을 짧게 접고 몸을 낮췄다.

그리고 여차할 때를 대비해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공업제 사일런스 피스톨을 꺼내 코트 안쪽으로 숨겼다.


식은 땀이 뻘뻘 흘렀지만 내 입가는 씰룩거렸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끈덕지고 살 떨리는 위압감이었다.


몸에 익어 습관처럼 내지르던 기술은 이 남자를 상대론 전혀 쓸모가 없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내 몸에 이 살벌한 기술들을 때려 박은 게 바로 이 남자였으니까.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 편히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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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화련(4) - 처형인들의 대부(代父) +1 22.07.12 344 16 18쪽
53 화련(3) - 머스칼의 임무 +1 22.07.11 331 14 25쪽
» 화련(2) - 대면(對面) +1 22.07.08 331 17 21쪽
51 화련(1) - 서막(序幕) +2 22.07.07 336 14 15쪽
50 수면 아래 전쟁(6) - 경고, 그리고 선택 +2 22.07.06 341 13 20쪽
49 수면 아래 전쟁(5) - 불청객 +1 22.07.05 347 13 17쪽
48 수면 아래 전쟁(4) - 음모(陰謀) +1 22.07.04 355 11 17쪽
47 수면 아래 전쟁(3) - 검진 +1 22.07.01 346 13 16쪽
46 수면 아래 전쟁(2) - 정보 거래 +1 22.06.30 372 15 21쪽
45 수면 아래 전쟁(1) - 강철의 도시, 강철의 문명 +1 22.06.29 402 15 17쪽
44 숨겨진 역사 +1 22.06.28 413 14 14쪽
43 휴가 복귀 +1 22.06.27 423 15 20쪽
42 욕망의 입맞춤 +2 22.06.24 444 16 17쪽
41 뒷조사 +1 22.06.24 428 16 21쪽
40 알아야만 하는 것 +1 22.06.23 465 13 19쪽
39 식인 도시(10) - 매듭의 포성(砲聲) +1 22.06.22 410 16 12쪽
38 식인 도시(9) - 수면 위로 +1 22.06.21 413 17 17쪽
37 식인 도시(8) - 용 사냥 +1 22.06.20 428 17 21쪽
36 식인 도시(7) - 비밀의 대가 +1 22.06.17 406 15 13쪽
35 식인 도시(6) - 폭식(暴食)의 알산나 +1 22.06.16 399 15 17쪽
34 식인 도시(5) - 허를 찔리다. +1 22.06.15 399 17 14쪽
33 식인 도시(4) - 폭탄마 시카 +1 22.06.14 416 15 17쪽
32 식인 도시(3) - 비도덕성의 뒷면 +1 22.06.13 427 17 17쪽
31 식인 도시(2) - 사도(使徒) +2 22.06.10 459 19 20쪽
30 식인 도시(1) - 식인 도시 라얀 +2 22.06.09 469 16 17쪽
29 짧은 휴식, 적막의 밤 +1 22.06.08 475 19 12쪽
28 거래 +1 22.06.08 484 20 13쪽
27 성목(聖木)의 나즈카 +3 22.06.07 500 18 13쪽
26 자할 회담(8) - 위기탈출 +1 22.06.06 480 22 14쪽
25 자할 회담(7) - 사냥감의 계략 +2 22.06.06 480 24 15쪽
24 자할 회담(6) - 스마일 페이스 +1 22.06.03 493 22 15쪽
23 자할 회담(5) - 함정 +2 22.06.03 505 25 16쪽
22 자할 회담(4) - 위험한 회담 +1 22.06.02 512 21 14쪽
21 자할 회담(3) - 야차(夜叉) +5 22.06.01 533 23 15쪽
20 자할 회담(2) - 쟈토 노인 +2 22.05.31 538 24 13쪽
19 자할 회담(1) - 이웃 나라 +1 22.05.30 581 24 12쪽
18 수사 종결, 개인 보급 22.05.30 585 23 22쪽
17 공조 수사(6) - 발톱과 폭탄마 +3 22.05.27 581 22 18쪽
16 공조 수사(5) - 추격자들 +2 22.05.27 548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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