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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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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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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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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퀘스트

DUMMY

낮이었고 구름은 없었다. 바람에 멀리서부터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몇 조각의 구름만 있을 뿐이었다. 태양은 세상을 비췄고 고층 건물의 그림자를 곳곳에 떨어뜨렸다.

한서준은 철망으로 만들어진 난간 앞에 휠체어를 밀어 놓은 뒤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고 난간 너머를 내다보았다. 한 모금 연기를 뿜어낸 한서준이 권지아에게 시선을 던졌다. 권지아는 려의 머리카락을 손보는 중이었다. 려는 권지아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고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청록빛 삼각형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약 말이다."

한서준이 입을 열었다.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응. 계속 말해."

권지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한서준은 다시 난간 너머로 눈을 돌렸다.

"정말 '누군가'가 개입한 거라면···, 이번에도 똑같겠지. 너도 마찬가진가?"

"응. 지금도. ···원래대로라면··· 약을 처리할 방법은 많아. 하지만··· 생각이 나지는 않지. 정확히는 그런 방법들로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경로 자체가 막혀 버렸어. 우리가 지금도··· 베스카네치나스띠는 꼭 먹어서 없애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권지아는 려의 머리를 양갈래로 묶었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도 않아. ···당신도 그렇고. 당신도··· 그 약을 처리할 방법이란 주제로 머리를 굴리면 결국 먹는다란 결론밖에 나오질 않잖아. 꼭 그것만이 해결책이란 것처럼."

"···그래."

"응. 그래서 말이야."

권지아는 주머니에서 반절로 접힌 종이를 꺼내 한서준에게 건넸다. 권지아는 려의 머리를 원래대로 되돌렸고 한서준은 종이를 펼쳐 안의 내용을 훑었다. 권지아는 려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묶고 늘어뜨렸다.

"뭐라고 적혀 있어?"

권지아가 물었다.

"미안하지만 난 지금 먹는다라는 방법밖에 떠오르질 않거든. 그나마 그걸 준다는 생각도 어렵게 한 거야."

권지아는 말을 이었다.

"···그래. 하지만 별 거 없다. 버린다. 묻는다. 태운다. 수장한다. ···이게 끝이다."

한서준이 말했다.

"좋아. 간단하고 좋네."

권지아가 말했다.

"이제 머릿속이 좀 트여. 그건 당신이 진화를 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당신이 기절하고 있던 동안 내가 쓴 거야. ···왜 약을 굳이 먹는다란 생각을 했는지··· 조금 궁금증이 일었거든."

려가 머리를 흔들었다. 살짝 손을 뗀 권지아가 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정확히는 당신이 약을 먹고 난 후···, 그리고 내 능력이 보다 개화되면서 '누군가'의 영향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생겨났다고 봐야겠지. 그래서··· 그런 글을 쓴 거야. 만약 '누군가'의 개입이 없었다면 약을 어떻게 처리했을까란 주제로."

"···확실히. 이건 읽고 있으면서도 이해가 안 간다. ···아니, 애초에··· 저 단어들의 의미가 생각이 나질 않아."

"응. 그럴 거야. 나도 지금 그러거든."

권지아가 말했다.

"참 교묘한 존재야. 정말 신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알게 모르게 기억에 장애를 주고 있어. 어쩌면 그 단어들은··· 엄청 간단한 단어들일 수도 있어. 일상에서 쓰는 아주 평범한 단어. ···내가 아까, 머리가 좀 트였다고 했지? 그거 다시 닫혔어. ···뭐가 트였다는 건지 기억도 안 나.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기억은 있는데··· 뭘 깨닫고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 한서준."

권지아는 려의 머리 일부를 집어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길게 꼬았다.

"···아무튼, 이건 다시 말해, '누군가'가 우리의 기억에 장애를 주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는 거야. ···거기다 나나 당신이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은밀하다는 소리기도 하지."

"···잘 모르겠군."

한서준이 말했다.

권지아는 려의 머리를 꼬던 손을 멈추고 난간 너머를 내다보았다.

"어쩔 수 없어. ···그 종이에 뭐가 쓰여 있는지는 몰라도, 이게 정말 '누군가'가 개입한 거라면···."

권지아는 시선을 돌려 한서준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그 약을 또 먹어야 돼. 그게 '누군가'가 바라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래야만··· 우리의 기억에 혼선이 없어지니까."

"···결론이 그건가."

"응."

권지아는 시선을 내려 려의 꼬아 놓은 머리를 살펴보았다. 권지아는 려의 머리를 풀었고 자그마한 리본을 꺼내 려의 옆머리에 달아주었다.

려가 리본을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보니까··· 백 개가 넘는 것 같던데. ···어떡할래?"

권지아가 물었다.

한서준은 약통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도 먹는다인가?"

한서준이 권지아에게 물었다.

"응.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 ···당신한텐 미안하지만."

"···그럼 어쩔 수 없지."

한서준이 말했다.

"이게 유일한 방법 같으니까."

"···그래. 근데··· 어쩌면 지금 그 말도··· '누군가'가 개입한 걸 수도 있어."

권지아가 말했다. 권지아는 려의 옆머리에 고정된 리본을 조심스레 다듬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상당히 주도면밀한 녀석이란 소리다. 그리고, 우리는 그 녀석의 계획에 걸려든 거지."

한서준이 말했다.

"···애초에 싸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번 싸움은 우리는 진 거다, 꼬마. '누군가'한테 보기좋게 당한 거지."

한서준은 세 번에 걸쳐 입안에 약을 털어넣었다. 그는 약을 차례차례 목 뒤로 넘겼고 약통을 버린 뒤 벤치로 가 앉았다.

"···전보다 그렇게 느낌이 있는 것 같지는 않···."

말을 하던 한서준이 머리를 감싸쥐고 벤치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약을 그렇게 먹고도 또 먹으니 진화를 하는 거야? ···그건 그것대로 엄청 대단한데."

권지아가 휠체어를 밀고 한서준에게 다가갔다. 권지아는 한서준을 살펴보았고 온몸을 들썩거리던 한서준은 머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벤치에 몸을 기댔다.

"벌써 끝?"

권지아가 물었다.

"···글쎄, ···모르겠군. 방금 전의 고통을 제외하면··· 딱히 별 이상도 없는 것 같고. ···몸이 좀 더 단단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다.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어."

한서준은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팔을 들어 손가락 끝에서부터 어깨까지의 경로를 눈으로 훑었고 얼굴을 매만지며 오른쪽 눈 주변을 문질렀다.

"그럼 힘만 좀 세지고 끝났다는 거네? '누군가'가 원하는 결과물이··· 고작 힘만 세지고 끝나는 건 아닐 텐데?"

권지아는 무릎 위의 려를 두 손으로 감쌌다. 목도리와 두꺼운 외투를 걸친 사람들이 지나치자 권지아는 려를 들어 자신의 목도리 안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진짜로··· 별 건 없다. 뭔가가 변했다는 느낌은 없어."

한서준이 말했다.

"이상한데. '누군가'가 원하는 게 진짜 그냥 몸뚱이만 강화되는 거라고?"

권지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가 더 있을 법도 한데. 백 개도 넘게 먹었잖아. 거의 다섯 배···, 아, 아직 소화가 덜 된 건가?"

목도리 이곳저곳을 기웃대던 려가 권지아의 왼쪽 뺨 옆에서 바깥으로 머리와 상체를 빼냈다. 권지아는 머리카락으로 려를 가렸고 벙어리 장갑과 털모자를 쓴 뒤 한서준을 뜯어봤다. 권지아는 담배를 집어드는 한서준의 손을 잡았다.

"담배 필 생각은 그만 하고··· 같이 생각 좀 해 봐."

권지아가 한서준의 눈을 응시했다.

"자신의 존재가 들킬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아니, 어쩌면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적극적으로 개입해 당신이 약을 처리할 방법으로 무조건 먹는다란 방법을 택하게 할 정도였으니까···, 분명 그런 이유가 있을 거란 말이야."

한서준은 담배를 집어넣고 벤치에서 일어나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는 옥상 한편에 마련된 자그마한 루프탑 바로 휠체어를 밀었고 권지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술이 아무리 당신 몸에 영향을 안 준다지만··· 너무 먹는 거 아냐? ···당신, 나 오기 전에 이미 스무 병은 넘게 마셨잖아."

"···이젠 술이 아니라 물이나 다름없으니까."

"···물도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심해."

권지아가 말했다.

"그래도 이 몸은 알아서 최상의 상태로 유지되더군."

한서준이 말했다.

"그래서 결론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거다."

"···그야 그 몸뚱이는 그렇겠지만···."

권지아는 손으로 턱을 괴고 맥주를 사가지고 오는 한서준을 보았다. 한서준은 권지아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아 병째로 입안에 맥주를 들이부었고 권지아는 장갑을 벗은 뒤 맥주와 함께 딸려온 네모난 크래커를 깨작거렸다.

"아무튼, 음··· 아쉽지만 당신··· 지금은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

권지아가 말했다.

"뭐, 그래. 인정해. 당신 생각도 일리는 있어. 지금 이렇게 생각해 봤자··· 결국 결론은 못 내릴 거란 거 말이야. 당신 생각처럼··· 어쩌면 증거를 먼저 얻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고."

"맞다. 이런 일에 굳이 시간을 써야 될 이유는 없지."

한서준이 말했다. 그는 크래커를 하나 집어 입에 넣고 반절 정도가 남은 맥주병을 들여다보았다.

"어차피 머리를 굴려봤자 '누군가'의 의도를 알지는 못한다. 추측이야 가능하겠지만··· 추측의 역할은 그걸로 끝이야."

한서준이 말했다.

"더욱이 내 몸이 어떻게 진화하고··· 약효가 어떤지를 생각하며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지금은 당장 급한 게 따로 있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응. 그렇지. 하긴, 이제 시간도 없으니까."

권지아가 말했다.

"그럼 당신도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돼, 한서준. ···얼른 움직여. 한 달이란 공백은··· 너무 컸으니까. 그걸 만회하려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어."

"그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한서준이 말했다.

한서준은 단번에 맥주병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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