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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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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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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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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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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바깥

DUMMY

“···아무튼, 축하해. 그런 몸이 되었어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잖아.”

이런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시를 받는다. 이게 정말 축하를 받을 일인지는 의문이 들었지만, 필요하다면 어린아이까지 이용해 먹는 지금의 단군처럼 이 정도의 축하는 어쩌면 이젠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십 년 전이야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 몇 가지가, 요즈음엔 응당 당연한 일이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예로, 이제 막 서울로 들어서는 차 밖의 풍경은, 십 년 전과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 있었다. 몬스터가 출현하면서 총기를 규제規制하는 법이 폐지된 것인지, 초저녁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몸 여기저기엔 죄다 휴대용 총기가 싸늘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것도 작게는 권총, 크게는 잘 다룰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운 저격총, 그리고 그 무게만으로 아주 효율적인 둔기가 될 수 있는 중화기까지. 가지각색의 화기들이 밤의 도시를 비추는 밝은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며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을 그대로 끌어 내려 펼친 것처럼, 길목마다 어지러운 성단星團을 이루어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이전과 비할 바 없는 굵직한 사건 사고가 급증한 모양인지, 방탄복을 착용한 무장 경찰이 그러한 길목 군데군데에 네 명씩 짝을 이룬 채 서 있었다. 또한 테이저 건이 아닌 서슬 퍼런 빛을 발하는 소총을 들고서, 간신히 두 눈만 보일락 말락 하는 검은 마스크와 검은 방탄 헬멧으로 완벽하게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신분을 보호하기 위함인지, 도로를 달리는 내내 마주친 경찰들은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하나같이 똑같은 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성남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판단력이 낮은 어린아이를 제외한 모든 시민들이 기본적으로 총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심지어 삼삼오오 공원에 모인 노인들까지도, 전부 각자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몬스터를 대비한 최소한의 방벽인 셈이었다.

물론 실질적인 효과가 정말로 있기는 한 건진 잘 알 수가 없었지만, 어찌됐든 본격적으로 총기의 소지가 확산되면서 그 반대급부로 기본적인 치안이 좋아졌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질릴 정도로 입을 꽉 다물고 흡사 벙어리가 된 것처럼 단 한 마디도 흘려 내지 않던 중년의 남성이 마침내 입을 열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천연 몬스터의 비명 소리와도 같은 한서준의 목소리완 달리, ‘하드보일드hard-boiled’란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강인한 인상에 걸맞은 강직하면서도 힘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응. 땡큐, 아저씨.”

백준호 상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는지, 권지아가 즉각 그의 말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영 어색하기만 한 표정으로, 영 어색하기만 한 감사의 말을 날린 한서준도 마저 차에서 내리자, 차는 약간의 쉴 틈도 없이 곧장 도로를 따라 달려갔다. 또 어딘가에 한서준과 권지아 같은 사람이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자, 오늘은······ 일단 방부터 잡고······ 밥이나 먹을까?”

장시간 똑같은 자세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굳어진 몸을 크게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부드럽게 풀고, 차가 내려준 장소 바로 앞에 놓인, 이른 바 ‘호텔Hotel‘이라 불리는 거대하면서도 화려한 건물 내부로 거침없이 발을 옮기는 권지아의 행동에, 그러니까, 그 한 점 망설임 없는 당당한 행동에 그만 현혹되고 만 것인지, 저격총을 짊어진 한서준이 홀린 듯이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십 년 만의 서울은 너무나도 낯설 뿐더러, 무엇보다 긴장의 나날이었던 피곤한 일주일 덕에 알게 모르게 피로가 어마어마하게 쌓였던 탓이었다. 그렇기에 순순히 권지아의 뒤를 따른 건, 순전히 그의 의지임과 동시에 피곤함의 발로였다. 그의 몸은 비록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확실히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로, 대체로 어디를 가든 따라붙었던 ‘신기함’, ‘혐오감’, ‘의아함’, ‘적대감’, '놀람' 등이 뒤섞인 갖가지 감정들이 프런트 데스크Front Desk, 나아가 라운지Lounge 같은 곳에서도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정신적으로 누적된 피로가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듯했다.

“그럼 두 분이 쓰실 방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가 한서준과 권지아를 안내하며 앞장섰다.

대체 어떠한 객실을 체크인Check-In 했는지는 직접 보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승강기의 최종적인 목적지가 호텔의 꼭대기 층에 해당하는 17층인 것을 말미암아 볼 때, 그저 일반적인 객실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따로 1층에 내려가셔서 하실 수 있지만, 달리 룸서비스Room service를 이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 식사는 저희가 알아서 먹을게요. 그만 가 보셔도 돼요.”

어쩐지 묘하게만 느껴지는 존댓말로 남자를 돌려보내고, 즉시 객실 중앙에 놓인 고급스런 원목 소파 위에 마치 누가 밀치듯이 엎어져 누운 권지아가, 곧 멀뚱멀뚱 서 있는 한서준을 흘깃 바라보았다.

“···이 인실밖에 없었나?”

한서준이 첫마디를 가로채며 물었다.

“어차피 부녀나··· 뭐··· 경호원쯤으로 보겠지. ···왜? 일단 나 같은 어린애도 여자는 여자라는 거야?”

첫마디를 빼앗긴 탓인지 권지아가 약간 귀찮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여전히 문 앞에 서서, 시선의 끝에 걸린 하얀 더블베드Double bed를 잔뜩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던 한서준이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위기의식이 없나 보군,”

어떻게 이제 열다섯 살에 접어드는 나이로 이런 고급스런 객실을 빌릴 수 있었는지는 조금 궁금증이 일었지만,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글쎄? 위기의식이라기보다는······ 그냥 이게 내 일이니까. 당신을 도와주는 게 그냥 나한테 떨어진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지켜야지. 단군도 꽤 엄격하거든.”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권지아는 천연덕스럽게 이 인실을 빌렸다.

그저 어린아이의 실수라고 보기엔 영 탐탁치가 않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방금 흘러나온 말을 분석해 보면, 이건 확실히 실수가 아니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단지 허울 좋은 명목일 뿐인 ‘보호’와 ‘도움’이 가득 들어차 있던 탓이었다.

다시 말해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거리낌 없이 한서준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마저도 이미 백준호 상사의 말처럼, 흡사 ‘뱀’을 보는 것 같은 권지아의 계산상에 들어간 결과일지도 몰랐다.

“거기다 나한테 음··· 그, 이상한 짓은 안 할 거 아냐?”

“···당연한 소리를······.”

하지만 이 인실을 쓰는 데 곤란한 점이 있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권지아는 어디까지나 단군의 일원. 아직은 모호하지만, 미래엔 충분히 적대관계가 될 수 있는 ‘감시자’였다. 따라서 여차하면 목을 비틀어 버릴 수 있는 그런 가까운 거리라면, 오히려 한서준에겐 더 좋았다.

물론 가까운 시일 내에 비틀어 버릴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거기다 생활상의 불편한 정도를 따져 봐도, 한서준보단 권지아가 더 불편한 게 많았다. 아무래도 여자, 그것도 이제 막 사춘기가 올 법한 여자아이인 만큼, 개인적으로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한서준의 대답에, 당연하다는 듯 권지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나한테 딱히 관심도 없잖아. 그리고······ 눈을 보면 알 수 있어. 날 ‘감시자’······ 그런 걸로 생각하지? 군대가 당신에게 위치 추적기를··· 붙였던 것처럼 말이야.”

여전히 소파 위에 엎어진 상태로, 소파와 한 세트로 보이는 원목 테이블 위에 놓인 바구니 안의 네모난 초콜릿 과자를 한 움큼 집어든 권지아가, 이내 그것을 하나하나 까기 시작했다. 그리곤 한서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말을 덧붙였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난 내가 감시자··· 역을 맡았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으니까. 물론 당신을 도와주며······ 나도 모르게 감시를 하고 있던 거라면······, 그건 어쩔 수가 없어. 단군이 굴리는······ 그, 잔머리는··· 알면 조금 기분이 나쁘거든. 그러니까··· 음흉하다고 해야겠지. 어쩌면······ 이 대화도 벌써 듣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나도 모르는 도청기나······ 뭐, 그런 걸로 말이야. ···아, 그럼 난 괜한 말을 한 건가?”

태평한 건지, 아니면 제 입으로 내뱉었던 단어같이 ‘음흉’한 건지 알 수가 없는 말이 끝을 맺고, 말을 하는 내내 포장지를 벗겨 놓았던 초콜릿 과자 여러 개를 한 조각 한 조각씩 입 안으로 밀어 넣던 권지아가 돌연 부스스 몸을 일으켜 소파에 걸터앉았다. 엎어진 채로 먹기가 당최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한서준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아무튼, 뭐? ···내가 감시자라서, 같은 방을 쓰기가 꺼려진다는 거야?”

하지만 권지아가 금세 끼어들어 한서준의 말을 뚝 끊어 버렸다.

“어차피 당신은······ 날 감시자로 보고 있어, 아니···, 그렇게 믿고 있겠지. 그런 마당에···, 내가 정말 감시를 한들······ 그게 의미가 있을까? 당신은 자기 자신한테 나타날······ 여러 약점들을 철저하게 숨길 텐데 말이야. ···아니야?”

“···그래, 맞다.”

확실히, 맞긴 맞았다.

권지아를 단군이 보낸 감시자라 인식한 순간부터, 한서준은 자신의 몸에 대한 이상 현상, 즉 변이에 대한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까닭에 몸의 크기에 의문점을 표시한 백준호 상사에게, 정확히는 그 상황에 끼어 있던 권지아에게 이건 그냥 치료의 후유증이라는, 다소 억지스런 대답을 했고, 변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얼굴의 형태에 대해서도 단지 화상을 입은 것뿐이라 둘러댔다.

‘변이’의 ‘변’자도 생각할 수 없도록, 그러한 흔적 자체를 아예 억지로 덮어 버렸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권지아의 말처럼, 지금에 와서 감시를 당한들 몬스터화가 되었다는 건 들킬 여지가 없었다.

같은 방을 쓰더라도, ‘여자’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딱히 걸릴 만한 문제는 없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말에 한서준이 어쩔 수 없다는 양 긍정을 표하자, 권지아가 거듭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들어와서 짐이나 풀고 좀 씻어. 나도 냄새나는 아저씨··· 옆에선 자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당신이 빨리 정리해야 밥을 먹지. ······우리 밥 안 먹을 거야? 나 배고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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