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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쿤아재 의 서재방

이혼하고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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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라쿤아재
작품등록일 :
2022.10.26 14:32
최근연재일 :
2022.12.06 20:2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116,607
추천수 :
3,773
글자수 :
162,928

작성
22.11.17 20:20
조회
2,772
추천
95
글자
10쪽

캠핑샵(3)

DUMMY

가쁜 숨소리가 들려 시선을 돌리니, 창백해진 얼굴의 상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굳어있는 게 보였다.

바로 아래층에 백여 마리의 좀비 떼가 있다면 누구라도 보일만한 모습이긴 하다.


현준 역시 긴장되긴 마찬가지였지만 상진보단 침착한 상태였기에, 그녀의 등에 손을 살짝 얹고 부드럽게 두드렸다.

혹시나 공포심 때문에 패닉을 일으켜 돌발행동을 하면 곤란하니, 조금이라도 진정이 되도록 다독여줄 생각이었다.

흠칫하며 몸을 떤 상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효과가 있었는지 점점 차분한 안색으로 돌아온다.


그 상태로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아래층에서 느껴지던 난리도 점차 가라앉아, 건물 안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2층 계단 뒤에 숨은 채 소동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던 현준이, 몸을 숙이고 천천히 창가 쪽으로 움직였다.

창밖을 보니 뒤집힌 차량 주위로 대략 40마리쯤 되는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는 게 보인다.


‘아까 봤을 땐 분명 100마리도 넘어 보였는데.’


그렇다는 건 목격했던 좀비 떼의 절반 이상이, 지금 1층에 들어와 있다는 의미.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창문을 열었다.

이전에 회사에서 차를 탈 때 했던 것처럼 창밖으로 멀리 물건을 던져, 아래 모여든 좀비들을 다른 방향으로 유인해볼 생각이었다.

다행히 창문의 형태가 옆으로 활짝 열리는 구조라, 투척각을 확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마땅히 던지기 좋은 게 보이진 않다만...’


전시가 주 목적이다 보니 2층에는 텐트나 해먹처럼 부피가 큰 물품이 있을 뿐, 1층처럼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진 않았다.

주변을 살피자 그나마 소품으로 배치된 것인지 땅에 박는 팩들이 바닥에 몇 개 놓여있어, 급한 대로 그것들을 모아 손에 쥐었다.

30cm 정도의 길이로 못을 확대한 듯한 생김새에, 머리 쪽엔 고리나 줄을 걸 수 있도록 구멍이 나있는 형태.


팩 다섯 개를 확보한 현준은 그중 하나를 붙잡고, 크게 팔을 휘둘러 창문 바깥을 향해 집어던졌다.

공처럼 던지기 쉬운 모양새는 아니지만, 강해진 근력 덕분인지 날아가는 기세가 힘이 부족해 보이진 않았다.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 원반처럼 보이게 된 팩이, 수십 미터를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텅! 탕, 티그르르-

크르륵? 캬악!

그워어억!


강철로 단조 된 팩이 아스팔트 바닥에 맞고 튕기며 굴러가는 소리에, 바깥에 몰려있던 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그쪽을 향해 움직였다.

효과가 제법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 재차 남은 팩을 잡고 집어던졌다.


처음과는 약간 다른 각도로 던진 두 번째 팩이 바닥에 떨어지자, 좀비들이 두 방향으로 나뉘며 혼란스럽게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소란에 이끌려 1층 매장 안에 들어왔던 좀비들이, 10마리 가량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좋아! 이대로 잘만하면 빠져나갈 기회를 만들 수 있겠어.’


긍정적인 현상에 기뻐하며 세 번째 팩을 조금 더 멀리 던진 후.

남은 두 팩 중 하나를 왼손에, 다른 하나는 던지기 위해 오른손에 들고 자세를 잡던 때였다.


툭, 턱. 게에에-

팔에 힘을 주던 현준이 다급히 뒤로 몸을 돌렸다.

2층 계단으로 좀비 한 마리가 어기적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이런 씁!’


계단을 전부 오른 좀비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봄과 동시에, 현준은 벼락같은 속도로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캬- 푹!

녀석이 소리를 내지르려고 입을 벌리기 무섭게, 양손에 역수로 고쳐 쥔 강철 팩이 내리꽂히며 좀비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깊숙하게 박아 넣었던 팩을 거칠게 잡아 뽑자, 두개골에 구멍 두 개가 뚫린 좀비는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다른 녀석들이 들었을까?’


재빨리 처치하긴 했지만 소음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계단 아래를 보고 있자니,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위기를 알리는 경고를 보내었다.

이어서 불규칙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들려왔다.

하나둘 정도가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런 개 같은!’


머리 안쪽이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겁게 달궈진다.

막다른 곳에 갇힌 상황이니, 무얼 어찌해야 할지 쉬이 떠오르질 않았다.

일단은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지 않을까.


“상진 씨! 가능한 부상 없이 뛰어내릴 수 있는 자리를 찾아요!”

“네, 넷!?”


상진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그녀와 더 이야기를 나눌 여유는 없었다.

손에 쥔 팩을 내던진 현준은,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설치된 텐트 쪽으로 움직였다.

캠핑현장을 꾸며놓은 현장이기에, 딱 텐트 하나만 펼쳐져 있는 건 아니다.

커다란 직사각형의 접이식 테이블을 한손으로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용 의자를 집어든 채 다시 계단 쪽을 향한다.


캬아-!

U자 형태의 계단 코너를 막 돌던 좀비 한 마리가, 그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지체할 것 없이 손에 든 물건을 집어던지자, 계단을 오르던 좀비가 거기에 맞고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잠깐의 시간을 번 현준이 다시 다른 텐트로 뛰어가, 똑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장애물을 쌓아 좀비들이 올라오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작업.


‘계단이 좁으니 어느 정도는 시간을 끌 수 있을 거야.’


성인 셋이 나란히 서기도 꽉 낄 정도의 너비이기에, 적당한 장애물만 있다면 놈들의 움직임을 크게 제한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다만 시간과 거리의 문제로 좀비가 2층에 오르기 전까지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건, 그렇게 딱 두 번의 기회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찌익-

흔히들 찍찍이라고 부르는 벨크로에 고정되어 있던 망치가, 허리춤의 공구벨트에서 뽑혀 나왔다.

1층에서 획득했던 파운딩해머 두 개가 양손에 하나씩 잡혔다.

한손으로 감당할 물량이 아닐 테니, 해본 적은 없지만 쌍수로 무기를 휘둘러 싸울 요량이었다.


그워어!

캬악!

테이블에 걸려 넘어지거나 자기들끼리 엉키고 밀치느라 계단 코너 벽에 뭉쳐있던 좀비들이, 이윽고 하나둘 빠져나와 현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웅- 퍽!

훅! 뻐걱!

좀비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각도와 간격을 확인한 현준이, 정교하게 계산된 동작으로 망치를 휘둘러 놈들의 대가리를 박살냈다.


뻑! 퍼걱! 퍼억!

두 개의 쇳덩이가 이리저리 허공을 오갈 때마다 묵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열 구를 넘는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좀비들이 2층으로 몰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후읍-!”


잠시 크게 숨을 몰아쉰 현준이 눈을 부릅뜨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두들겼다.

아슬아슬하게 적들의 공격을 피해가며 오로지 급소만을 타격하는 현란한 움직임.

다른 사람이 보기엔 금방이라도 좀비 떼에 휘말려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였지만.

당사자인 현준은 그다지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재미있는데.’


향상된 신체능력과 감각으로 전력을 다해 전투에 임하니, 전문적인 전투훈련을 받은 이조차 흉내 내기 어려운 수준의 근접전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스스로가 발휘하는 능력에 심취해, 살짝 흥분으로 들떠 있는 상태였다.

약간 하드코어한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굳이 도망칠 필요 없이 이대로 좀비 떼를 전부 쳐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미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스물을 넘어 서른에 가까운 좀비를 해치웠을 때쯤, 현준은 냉정을 되찾고 다시금 스스로의 처지를 인식했다.

믿기 어려운 전투능력을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그의 체력은 결코 무한하지가 않다.

싸움에 정신을 집중해서 몰입하느라 잠시 감정이 격앙된 듯한데, 냉철히 판단했을 때 저 많은 좀비들을 전부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호흡이 꽤나 가빠져오고, 두 팔에도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지 않은가.


‘상진 씨는? 마땅히 탈출할만한 자리를 찾지 못한 건가?’


여차하면 창문으로 뛰어내려서라도 달아날 생각으로, 적당한 위치를 찾아보라 지시를 했었는데.

예민해진 감각이 뒤쪽 어딘가에 있을 상진의 기척을 느끼고 있긴 하나, 정확히 무얼 하고 있는지 까진 파악할 수 없었다.


‘설마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건 아닐 테지.’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일단은 그녀를 믿고 무언가 신호를 줄 때까지 버텨보자고 생각하며, 현준은 재차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후욱, 후우- 흡!”


망치를 쥔 양팔에 근육이 도드라지며, 다시 한 번 허공에 살점과 핏물을 흩뿌리는 춤사위가 펼쳐졌다.


그아악- 퍼억!

크엑! 뻑!

널브러진 좀비 시체가 마흔을 넘어가니, 현준의 위치도 어느덧 계단 앞에서 몇 미터 이상을 떨어지게 되었다.

굉장한 기세로 적들을 해치우고는 있지만, 공격을 피해가며 싸우는 과정에서 점차 밀려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 이상 좁은 계단 앞을 막고 싸우는 게 아니기에, 좀비 무리가 점유하는 공간이 계속 늘어나며 녀석들이 덮치는 속도 역시 점점 가속되었다.


오십을 넘어 거의 육십에 달하는 놈들을 해치웠을 때쯤.

무리한 활동에 시달린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현준은, 곧 스스로의 육신이 한계에 도달할 것이란 사실을 파악했다.


'안 돼. 이대로는..'

“현준 씨! 여기로!”


그리고 마침 타이밍이 좋게도, 자신을 부르는 상진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뒤로 물러나며 몸을 돌리는 찰나의 순간에, 그의 눈이 재빨리 상진과 그 주변의 광경을 담았다.

기둥 한 곳에 묶여 길게 늘어진 로프.

거기에 열려있는 창문 바깥으로 이어진 로프를 붙잡고, 창틀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상진의 모습까지.


‘나이스!’


자신이 벌어준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2층에서 가장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을 마련한 것이다.

보답 받은 믿음에 절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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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5 sh*****
    작성일
    22.11.17 20:26
    No. 1

    잘봅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11 eh******..
    작성일
    22.11.17 20:31
    No. 2

    잘보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6 Asyih309..
    작성일
    22.11.17 20:49
    No. 3

    시체로 계단은 이미 막혀 있을건데 계속 올라온다고요?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0..0
    작성일
    22.11.17 22:18
    No. 4

    우리나라 많은 좀비물을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하나같이 주인공들이나 주변인들 양손 검수 이거나 복싱 선수 인가 봅니다.
    물리면 좀비 된다면서 옷을 껴입지도 않고 반팔 반바지로 다니거나 평상시 옷으로 다님.

    그나마 일부 좀비물은 온몸에 노튼, 책, 플라스틱을 테이프로 돌돌 말아서 다님.
    그나마 책이나 노트 플라스틱은 양호해 왜 방패를 안들고다님?
    방패 만들기 그렇게 어려움?
    아무 집이나 들어가도 드라이버나 나사못은 있을건데?

    장농 문 한쪽만 부셔도 방패는 만들겠구만...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83 반석파랑새
    작성일
    22.11.17 23:54
    No. 5

    글 잘쓰시네요~~ ㅎㅎ 술술 읽힙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9 yeom
    작성일
    22.11.22 16:13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0 피빛절규
    작성일
    22.11.29 11:18
    No. 7

    주인공은 불운의 화신인가? 뭐만하면 안좋은 쪽으로 내용이 흐르는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sa******..
    작성일
    23.12.03 19:47
    No. 8

    노가다 하시던 분치고 너무 도구 사용을 안하시네요
    뭐 만들기 잘하실꺼 같은데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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