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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쿤아재 의 서재방

이혼하고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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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라쿤아재
작품등록일 :
2022.10.26 14:32
최근연재일 :
2022.12.06 20:20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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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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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3
글자수 :
162,928

작성
22.11.05 15:20
조회
4,492
추천
138
글자
11쪽

생존자들(3)

DUMMY

번뜩.

곤히 잠들어 있던 현준의 눈에 떠졌다.


‘잠이 영 안 오는가 싶더니 그래도 자긴 했네. 얼마나 지난 거지?’


시계가 없어서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지만, 아직 어두운 것을 보니 동이 트기 전의 새벽인 모양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와 어깨를 돌렸다.

이불도 없이 차가운 벽에 기대 잤으니 몸이 개운할 리가 없는데, 신기하게도 부드럽게 잘만 돌아갔다.


‘확실히 그 5일간의 비정상적인 수면 이후로, 내 몸이 뭔가 달라지긴 했어.’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병원에 가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당장은 그냥 모르는 척 마음속에 묻어둬야 할 일이다.

가볍게 몸을 풀던 현준은 창밖의 어둠이 조금씩 물러나는 것을 보고 방을 나섰다.

예정대로 바깥에 나가 차량을 구해볼 시간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복도를 걷자니 이른 시간임에도 두어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는 게 보여, 습관처럼 평범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쯧. 세상이 망해 가는데 좋기는 뭔...”


반응은 영 별로였다.


‘하긴 나한텐 하룻밤 지난 일 같지만 저들은 오늘이 엿새째니. 계속 이 안에만 갇혀 지냈다면 스트레스가 상당하긴 하겠지.’


그렇다고 인사 하나 가지고 빈정거릴 건 뭔가 싶지만, 어차피 자신은 오늘 떠날 몸.

굳이 이러쿵저러쿵 따질 것 없이 적당히 눈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양 팀장님!”

“네, 실장님. 잘 주무셨습니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상진이 살가운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묘하게 말끔한 인상이네.’


어제 마주했을 때는 어두워가는 저녁이라 눈치 채지 못했었는데, 며칠 동안 한 건물에 갇혀있던 사람치고는 전혀 꾀죄죄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적어도 씻지 못해 지저분해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자신과 포옹했을 때도 은은하게 달달한 향이 났었다.

물론 자연스러운 체취가 아닌 향수를 뿌린 향인 것 같지만, 전혀 씻지 못했다면 냄새를 완전히 숨길 순 없었을 터.


‘물이 넉넉할 리는 없을 텐데?’


이런 세상에선 식량보다 구하기 어려운 자원이 바로 식수다.

생존에 필수적이면서 부피와 무게 때문에 대량보관도 어려운 품목.

전기가 들어올 때야 아무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게 물이었지만, 펌프가 가동되지 않는 지금은 흔하면서 동시에 귀한 양면성을 가진 물자였다.


“여기, 이걸로 몸을 닦으세요.”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상진이 물티슈를 건네주었기 때문.


‘아하, 이거라면 임시방편으로나마 일정 수준의 청결은 유지할 수 있겠네.’


물티슈를 받아 얼굴과 목을 비롯해 손이 닿는 부분들을 닦아냈다.

영 없어 보이는 모양새긴 하지만 지금은 품위 같은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도 당연하다는 듯 같은 행동을 하고 있기에 굳이 거절해서 튈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세안을 하고 나니, 어제 보았던 중년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이 그룹의 리더라고하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인지 대표 비슷한 발언권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인물.


‘생각해보니 나를 경계하고 있어서 그런지, 제대로 통성명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군.’


이름도 모르지만 어차피 계속 볼 사람들도 아니니 상관은 없긴 하다.


“거 현준 씨라고 했던가? 바로 떠날 겁니까?”

“그럴 겁니다. 이쪽 단지를 돌면서 탈 수 있는 차가 있는지 탐색해보고, 없으면 걸어서라도 가야겠죠.”

“큼! 그럼 몸조심하시고 무사히 가족과 만나길 빌겠습니다. 혹시 바깥에서 구조대를 만나면, 여기 사람들이 있다고 알려주시고.”

“그러죠. 아, 혹시 무기로 쓸 만한 거 아무거나 하나만 받을 수 있습니까?”

“무기? 그거야 뭐...”


근처의 좀비 대부분을 해치운 것 같긴 하지만 확신할 순 없는 일.

싸울 일이 생기면 손에 뭐라도 쥐고 있어야 유리하기에 무기를 요청하니, 중년남성은 알아서하라는 듯 손짓을 했다.

처음에 조우했던 남자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걸 보기도 했고, 공장을 끼고 있는 회사라 그밖에도 무기로 쓸 수 있는 물품을 구하기가 어렵진 않은 곳이다.


“이봐요. 물자를 달라곤 안 하겠다고 했잖아요? 무기는 뭐 물자 아닙니까?”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듣고 있던 젊은 남자 하나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냥 가세요. 저희도 다 필요한 물건들이니까.”

“어, 어? 기수 씨. 공구든 뭐든 하나쯤 줄 수 있지 야박하게 왜 그래?”

“아이고 부장님! 저희 편도 아닌 사람한테 왜 물자를 나눠줘요! 뭐가 언제 어떻게 필요해질지 알고!”

“허어.”


기수라는 이름의 남자가 개입하면서 분위기가 영 이상해진다.

식량도 아니고 적당한 도구 하나 정도는 나눠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반발하는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다.

문득 그가 이쪽을 힐끔 쳐다보는 눈빛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진한 적대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분명 어제도 그랬던 것 같긴 하네.’


상진이 달려와 그를 끌어안았을 때, 남자들 중 가장 불타는 눈빛으로 노려보던 게 저 사람이었다.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의 행동에 질투라도 하는 건지.

상진의 미모가 워낙 뛰어난 편이니 이런 상황에서도 남자들이 쉽게 꼬이는 건 이해가 가지만, 애도 아니고 뭐하는 건가 싶어 현준으로선 참 우스우면서도 곤란한 일이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기수 씨?”


움찔.

차가운 감정이 담긴 날카로운 목소리에, 자신을 노려보던 기수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바깥이 어떤지 지금 뻔히 알면서, 맨몸으로 내보내겠다고 하는 건가요?”

“아니, 상진 씨. 원래 있던 사람을 쫓아내는 것도 아니고, 빈손으로 온 사람이 빈손으로 나가는 게 뭐 잘못된 겁니까?”

“어제 이야기에서 못 들었어요? 양 팀장님 덕분에 이 주변 좀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저희 안전에 도움을 주신 분인데 무기 하나도 못 내드려요?”

“그거야 뭐 저흴 위해서 일부러 나섰던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론 고맙긴 한데 물자까지 나눠주기는...”


상진과 말다툼이 되는 모양새에 이게 아닌데 싶은 표정이었으나, 기수는 이제 와서 뜻을 굽히고 싶진 않은지 끝까지 반대를 주장했다.


“좋아요. 그럼 아예 주는 게 아니라 이 근방을 탐색할 때까지만 빌려주는 걸로 해요. 어차피 다른 건물에도 무기로 쓸 만한 물건이 없지 않을 테니. 그것까지도 반대하진 않겠죠?”

“...빌려주는 정도라면 뭐. 근데 회수는 어떻게 하고요? 저 사람이 돌아와서 반납하리란 보장도 없는데.”


기증이 아닌 대여라는 상진의 말에 한발 물러나는 기수.

하지만 끝까지 의심하는 말을 내뱉으며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건 걱정 마시죠. 저도 따라 나갈 거니까.”

“억? 그게 무슨!”

“사, 상진 씨? 상진 씨가 바깥을 왜 나가요?”


멀뚱히 논쟁을 지켜보던 다른 남자들이 상진의 발언에 폭탄이라도 터진 듯 반응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상진은 냉담한 표정으로 쏘아대듯이 말했다.


“물자부족이라면서요? 식량도 보름이면 끝난다고 안했나요? 바깥에 좀비들을 양 팀장님이 정리해주셨는데, 지금 아니면 주변을 돌아볼 가장 좋은 기회 아닌가요?”

“그건... 꼭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탐색이 필요하기는 한데, 남자들이 있는데 굳이 상진 씨가 나가실 것까진...”

“그래서 남자 누구? 누가 나갈 건데요?”


매서운 일침에 사람들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좀비들을 많이 처리했다지만 위험요소가 제로가 된 것은 아니다.

좋은 기회로는 보이지만 혹시 모를 위기에 빠져 감염될 가능성을 생각하면, 본인만큼은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여길 거점으로 더 오래 버티려면, 식량이든 기름이든 필요한 물자를 모아야 할 거 아니에요.”

“네, 뭐. 그렇긴 한데...”


이미 현준을 따라나서기로 결정했지만, 상진은 떠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굳이 이야기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 계속 머무르려는 것처럼, 현준을 따라 바깥을 탐색하려는 이유가 물자확보를 위함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집착해 붙잡아두려는 사람이 나올 것을 생각해 취한 조치였다.


“양 팀장님은 어차피 목표가 있어 중간에 빠지실 분이고, 탐색에 운반까지 저 혼자 할 순 없으니... 본진을 지키는 사람들도 필요하니까 한두 분 정도만 더 지원해주세요.”


둘만 나가겠다고 하면 떠나려는 의도가 들켜 막으려들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거점을 경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식으로 구실을 만들어두고, 한 명이나 두 명 정도만 더 따라오라는 식으로 말했다.

혹여 상진의 이탈을 방해하려 해도, 강제력을 행사하기 애매한 숫자.


“그, 그렇지. 여길 지키는 것도 중요하니까... 뒤는 걱정 말고 나가 보게. 이런 일은 젊은 사람들이 나서는 게 좋겠지.”

“아니 부장님? 이런 상황에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혹시 사고가 생기면 빠르게 뛰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텐데, 나 같은 아저씨한텐 무리지 않나.”

“에헤이! 인원을 뽑으려면 공평하게 해야죠.”

“빨리들 결정하세요. 뭐 꼭 따라오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니, 정 없으면 저 혼자라도 가죠.”

“어엇, 잠깐만요!”


당장이라도 나갈 것처럼 몸을 돌리는 상진의 태도에 휘둘린 남자들은, 결국 부랴부랴 인원을 차출해 탐색조를 꾸렸다.

무기를 나눠주는 것에 반발했던 장기수.

그리고 현준을 데려온 남자들 중 한 사람인 김도준.


“으... 갑자기 바깥탐색이라니.”

“괘, 괜찮을 겁니다. 좀비들 대부분은 어제 저분이 죄다 차로 깔아뭉개놨으니...”


떨떠름해하는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본 현준은, 이내 눈길을 거두고 빌린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손잡이가 한손에 다 들어오는, 손망치라고도 부르는 아담한 소형 망치.

원래 썼던 장도리보다 더 짧은 길이라, 써먹으려면 좀비와 아주 가까이 붙어야 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길쭉길쭉한 쇠파이프를 쓰면서, 빌려줘도 치사하게 이런 물건을 내주다니.


‘급한 대로 어쩔 수 없지. 바깥을 수색하면서 더 괜찮은 무기를 찾아보는 수밖에.’


준비를 마친 네 사람은 외부로 이어지는 계단을 밟았다.

현준이 가장 선두, 다음으로 상진.

겁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도준과 기수가 그 뒤를 따랐다.


곧 아침햇살을 받아 어둠이 물러간 바깥풍경 속에, 움직이는 네 사람의 그림자가 더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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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70 다위
    작성일
    22.11.26 00:23
    No. 1

    확실히 사람들이랑 조우하고 공식같은 민폐여캐나온후론
    아예 주변인물들이 정신상태가 극단적으로 빠그라져서 ㅋㅋㄱㅋㅋㄱ전개가 넘 웃기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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