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샵(2)
“상진 씨도 하나 챙기지 그래요?”
“제 힘으로는 아무리 좋은 망치여도, 좀비 머리를 부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흐음.”
어깨를 으쓱이며 사양하는 상진의 말에, 납득하고 두 번 권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사람이라면 여성의 힘으로도 망치가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대상이 좀비라면 아무래도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이야 두개골을 박살내며 뇌수를 흩뿌리게 만들 수 있지만, 여성의 힘으로는 놈들의 머리에 잠깐 충격을 주는 정도로 그칠지도 모른다.
확실하게 뇌손상을 입지 않는다면 좀비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결국 붙잡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터.
제대로 다루지 못할 무기라면 그냥 무거운 짐일 뿐이니, 아무리 괜찮은 장비여도 챙길 이유가 없었다.
‘망치만으로도 여기 들어온 목적은 달성했고. 뭐... 더 필요한 건 없겠지?’
혹시나 싶어 주변을 더 둘러보자니, 챙겨가도 좋을 법한 물품이 하나 더 눈에 띄었다.
“아, 장갑이다! 이건 저도 끼는 게 좋겠네요.”
“하나씩 골라보죠.”
졸졸 따라오던 상진이 옆에 끼어들어 손에 맞는 장갑을 고르는 사이.
현준 역시 제품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착용할 물품을 골라보았다.
‘손을 물릴 가능성도 있으니 두꺼운 방염장갑 같은 걸 끼면, 충분히 보호 장비로도 쓸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무기를 쥐고 움직이는 게 불편할 것이다.
손에 땀이 차서 그립이 미끄러질 수 도 있으니, 장갑 하나쯤은 끼고 있는 게 좋기는 할 텐데.
너무 두꺼운 것보단 적당히 활동에 지장이 없는 물건을 골라야했다.
‘아니 근데 무슨 놈의 장갑이 이리 비싼지.’
최소 몇 만원에서 고급지다 싶은 건 십만 원을 우습게 넘기는 가격.
아예 저가용 장갑들도 있긴 하지만, 그건 자신이 평소에 작업용으로 쓰는 빨간 반코팅장갑과 별 차이가 없는 품질이다.
‘이거 하나 가격이면 목장갑 수백켤레는 사겠네.’
물론 껴보니 따듯하고 질감도 좋은 게, 돈값은 하는 제품일 것 같긴 했다.
어차피 공짜니까 제일 비싼 제품군 중에서, 가장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는 놈으로 골라 착용했다.
“어? 저랑 커플장갑이네요.”
“네? 아아.”
곁에 있던 상진이 장갑 낀 손을 흔들어 보이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분명 브랜드는 다른 제품 같은데, 디자인과 색상이 비슷하다고 저런 소릴 하는 모양이다.
‘...그럼 딱히 짝이 맞는 것도 아니지 않나?’
장갑 모양이야 거기서 거기고, 같은 가죽제품이라 색도 고만고만하다.
물론 의문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상대가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아서 지적했다가, 시달리고 후회한 경험이 어디 한둘이던가.
외모부터 성격까지 상진이 전처와 비슷한 부분은 거의 없었지만, 데인 기억이 많다보니 여성을 대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나 행동에 주의하게 된다.
“에이, 반응이 너무 싱거우시네요.”
“하하... 슬슬 나가볼까요.”
뭐라 할 말이 없어 헛웃음을 흘리며 출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쨌거나 망치는 마음에 들고 장갑도 손에 잘 맞는 게, 성공적인 무료 쇼핑이었다.
부아아앙-
‘엇!?’
갑자기 저 멀리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현준과 상진은 놀란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차량의 배기음.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흔하게 들었던 소음이지만, 바뀐 세상에서는 꽤나 희귀하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차량 한 대가 매연을 마구 뿌리며 빠르게 달려오는 광경이 보였다.
운전미숙인건지 아니면 운전자의 상태에 문제가 있는 건지, 과하게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이 꽤나 위태롭게 보인다.
“혀, 현준 씨! 저거!”
“이런...”
상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차량 뒤편을 가리켰다.
생존자가 차량을 끌고 다니는 것 자체는,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다만 두 사람이 당황한 것은 차량의 뒤쪽으로, 족히 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좀비 떼가 쫓아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필 이때... 여기로 오지만 마라!’
좀비가 달리는 차량을 따라잡을 순 없다.
그러니 저 좀비 떼는 분명 이 근처에 뿌려져 서성이게 될 터.
하필 차량이 달리고 있는 방향이 여기 캠핑용품점 앞을 지나가는 도로라, 상황은 더더욱 심각하게 느껴졌다.
‘곤란하군. 좀비들이 얼마나 끈질긴지는 테스트 해본 적이 없지만, 시야에서 벗어나고 나면 더는 쫓아가지 않을 것 같은데.’
목표가 사라져도 그 방향으로 계속 추격을 한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
조용히 숨어 있다가 좀비 떼가 지나가고 난 뒤에 나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만약 목표가 시야에 벗어난 뒤엔 금방 추격의지를 잃는다면, 저 많은 좀비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이 건물 주변으로 빼곡하게 자리 잡게 될 터였다.
‘망할. 차라리 다 끌고 지나가버리던가.’
속으로 하는 생각을 듣기라도 했는지, 차량의 주행속도가 확 줄어들었다.
제한속도를 지키기 위함은 아닐 테고, 아마도 앞에 있는 코너 때문에 감속을 한 듯하다.
쓸데없이 과하게 속도를 줄이는 걸 보니, 차체가 요동치던 것도 그렇고 운전 실력에 약간 하자가 있어보였다.
어쩌면 면허도 없지만 비상시라 운전대를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콰앙-
“허어?”
코너를 빠져나오고 곧바로 속도를 높인 운전자가, 쫓아오는 좀비들을 살피느라 전방주시에 태만했는지.
바깥에 어슬렁거리던 좀비 하나를 차량이 그대로 치고 지나갔다.
문제는 가뜩이나 형편없는 솜씨를 지닌 운전자가, 깜짝 놀라며 핸들을 홱 꺾어버렸다는 것에 있었다.
끼이잇- 콰자작!
크게 흔들리던 차량은 경계석을 밟고 붕 떠오르더니, 이내 옆으로 뒤집히며 천장으로 바닥을 길게 긁었다.
그 충격에 잠금장치에 문제라도 생겼는지 찌그러진 문이 열리며, 탑승해있던 운전자가 바깥으로 튕겨져 나왔다.
보아하니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모양.
“커헉! 끄으으!”
파앙!
얄궂게도 운전자가 내던져지고 나서야 파열음이 들리며, 뒤늦게 에어백이 터져 운전석을 가득 채운다.
코미디 같은 광경이지만 그걸 보며 웃고 있을 순 없었다.
“...올라갑시다. 어서!”
“네, 네엣!”
상황을 지켜보던 현준이 굳은 얼굴로 소리치며 상진을 잡아끌었다.
사고가 난 지점이 하필이면 캠핑용품점 바로 앞이라, 곧 여기로 좀비 떼가 모여들 것이 자명했다.
지금 바깥으로 도망을 쳤다가는 저 수많은 좀비들과 추격전을 벌이게 될 테니, 차라리 건물 안에 숨는 편이 나으리라.
“끄으, 시, 시발...”
이마가 찢어져 피를 흘리는 남자가, 두 사람 쪽을 향해 손을 뻗으며 바닥을 기었다.
건물 안에 숨어있는 그들을 발견한 것은 아니고, 그저 살기 위해 반사적으로 취한 몸짓이었다.
눈앞에 건물이 있으니 그리로 피신하려는 행동.
‘도우려 해봤자 같이 휘말릴 뿐이야.’
여유가 된다면 도움을 주고 싶지만, 이미 좀비 떼가 차량을 보며 달려오는 중이다.
지금 저 사람을 부축해 건물 안으로 들어와 봤자, 같이 죽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어떤 도움이 될 리도 만무하고, 상처에서 흐른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어 은신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좀비들의 후각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핏자국만 따라와도 금방 발각되고 말겠지.’
그나마 건물이 2층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현준은 상진과 함께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
2층의 공간은 텐트의 전시가 주목적인지, 완전히 다 펼쳐진 텐트들이 나란히 쭉 나열되어 있었다.
“후우, 괜찮을까요?”
“...아마 살기는 힘들 겁니다. 도망칠 몸 상태도 아닌 듯 보였고-”
“네? 아뇨, 저희 말이에요.”
“아, 으음.”
아래에 있을 생존자를 걱정하는 건가 싶었는데,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사람을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난하거나, 자책감에 시달릴 기색은 아니다.
하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함께 다니며 지켜보니, 상진은 적어도 판단이 느린 사람은 아니었다.
여유가 된다면 타인을 도울 수도 있겠지만 가망이 없다 여기면 빠르게 포기하는 편이,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당연한 행동이다.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의 성향은 비슷한 듯해서 다행이다.
최소한 이상한 고집으로 의견충돌을 겪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적을 테니까.
“갑자기 테러를 당한 처지이긴 한데... 일단 숨어있어 봅시다. 2층까지 좀비가 올라오지만 않는다면 탈출할 기회가 생기긴 하겠지요.”
얼핏 보았던 생존자의 상태를 봐서는 2층까지 올라오지도 못할 것 같고, 좀비들도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다시 천천히 흩어지게 될 것이다.
의도치 않게 고립된 상황이 어이가 없긴 했지만,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그나마 건물 안에 있을 때라 다행일지도. 바깥의 논밭 길을 거닐다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좀비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돌려져 더 위험한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으니.’
조용히 숨을 죽이고 숨어있기를 잠시.
예정된 대로 좀비 떼가 몰려들었는지, 아래층에서 소란스러운 기척들이 느껴졌다.
그륵, 캬아악!
쿵. 터덩!
좀비들의 괴성과 시끄러운 발소리.
진열대를 밀치며 상품들이 떨어졌는지, 쇠붙이들이 부딪히는 요란한 소음들도 들려왔다.
거기에 누군가의 비명소리도.
“안 돼! 아아악!”
운전 실력이 영 형편없던 그 생존자의 단말마는, 2초 남짓한 짧은 시간을 끝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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