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tic Ending. <오디션(Audition)>을 떠나보내며
2017년 6월 20일 화요일 밤 9시.
우진과 아리는 행사를 마치고 차량에 올라탔다.
“나영이 고생했어.”
“아니에요. 배고프실 텐데 도시락 드세요.”
“···와! 이거 비싼 거 아냐?”
“고맙다.”
아리는 간이 테이블을 펼쳐 도시락을 놓았다.
두 사람이 행사장에 들어갔을 때 나영이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구입한 스테이크 도시락이었다.
아리가 도시락을 펼치며 나영에게 물었다.
“너는?”
“저는 먼저 먹었어요.”
“설마 다른 거 산 거 아니지?”
“아니에요. 여기.”
나영은 두 사람의 것과 같은 빈 도시락을 들어 보였다.
우진이 말했다.
“잘했어. 뭐든 똑같은 거 3개씩 사.”
“네.”
“지난번처럼 우리는 장어 도시락 주고 너는 라면에 삼각김밥 먹으면, 그날부터 ‘서우진 PD님’이라고 부르라고 할 테니까.”
“풉!”
“운전하기 힘들면 얘기하고. 내가 할 테니까.”
“알았어요. ···와아. 조금만 더 들으면 100번 되겠네요.”
“얘가 잔소리가 좀 심해.”
나영은 차량 룸미러로 우진과 아리를 보며 생긋 웃었다.
“그리고 선배.”
“응.”
“회사에서 이 차 바꿔준다는데, 어떡할까요?”
“어?”
“다음 달에 밴 차량 하나 살 모양이에요. 그걸 우리가 쓰고, 이 차는 지원실 업무용 차량으로 쓰는 게 어떻겠냐고···.”
나영의 말에 우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영아.”
“네.”
“너는 어때?”
“네?”
“너는 어떤 차가 운전하기 편해?”
“저는 이 차가 나아요. 운전 관련된 건 전부 익숙해졌고, 차가 커 봤자 주차하기나 힘들지···.”
“그럼 그냥 이거 타자. 밴은 현수한테 주라고 해.”
“그래. 걔 다음 주부터 방송 스케줄 많을 거야. 밴 필요하겠네.”
아리가 거들자 나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또 물었다.
“현수 씨 차량은 벌써 바꿨다던데요?”
“아무튼 우리는 바꾸지 마.”
“안 불편하세요?”
“좋거든?”
“정말 편해. 의자랑 시트까지 싹 바꿔서 침대 같잖아.”
“정들었는데 바꾸지 말자. 너만 안 불편하면.”
“···.”
“너 운전하기 힘들면 바꿔. 아니면 내가 앞좌석 시트 바꿔 달라고 할까?”
“아니에요. 저도 이게 편해요.”
나영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순정남녀의 음악은 옛것을 떠오르게 만든다고들 한다.
그래서일까. 우진과 아리는 뭘 바꾸는 것을 그다지 탐탁해하지 않았다.
우진과 아리는 스테이크를 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너 시험 끝나니까 갑자기 한가하네?”
“주말에 바쁘잖아.”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뭐.”
“하루가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
“그렇긴 한데, 이러면 우리 금방 거지 돼.”
“네가 힘든 것보다는 낫지.”
문득 아리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액정에 ‘진사로(眞師路)’가 나타나자 아리가 기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진 작가 아저씨네?”
“받아. ···어휴!”
우진은 뜻 모를 한숨을 쉬었고, 아리는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저 아리예요.”
[우진이.]
“···네.”
아리는 입술을 비죽이며 우진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진 작가는 늘 아리에게 전화를 걸고 우진과 통화한다.
“예. 저 우진입니다.”
[지금 9시 20분이니까, 10시 3분이면 집에 도착하겠지?]
“저야 모르죠.”
[너희 집에서 커피 한 잔 하자. 아리도.]
“안 바쁘십니까? 이번 주에 시험 보시잖아요.”
[바빠 죽겠는데 할 말 있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영이한테 전해. 오늘 밤 운전은 방병근이한테 맡기라고.]
“예?”
[이따 보자.]
뚝
“아저씨가 뭐래?”
“우리 집에서 커피 한 잔 하재. 바빠 죽겠는데 할 말이 있으시다나···.”
“하여튼 이상하다니까?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이상한 소리나 하고 가고.”
“그러게. 이분은 진사로가 아니라 완전히 ‘진상로’라니까.”
우진은 막돼먹은 말을 내뱉은 후 나영에게 말했다.
“나영아.”
“네.”
“진 작가님이 너보고, 오늘 밤 운전은 BBK한테 맡기라시더라.”
“아유! 그분은 진짜 모르는 게 없네요.”
“왜?”
“이따 오빠랑 영종도 가기로 했거든요. 펜션 잡아놨어요.”
“그래? 너 지금 많이 피곤해?”
“아니요.”
“난 병근이보다 네가 운전할 때가 더 편한데.”
“그러게. 영종도 뭐 얼마나 멀다고 그러시지···.”
우진과 아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설마 내가 말한 운전이 자동차 운전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
“됐다.”
“···?”
“알아먹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병신이지.”
우진의 집 식탁에 40세 남자와 아리가 마주앉았다.
이윽고 우진이 커피를 탁자에 놓고 아리의 옆에 앉았다.
“드세요.”
“고맙다. ···햐아! 맛있네.”
“···.”
“이거만 다 마시고 갈 테니까 너무 진상 취급하지 마라.”
“아닙니다.”
“어차피 너희들은 진상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어.”
“알고 있습니다.”
40세 남자, 즉 진 작가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우진과 아리는 그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우진아. 아리야.”
“예.”
“네.”
“나 앞으로 너희들 앞에 못 나타날 거야.”
“···!”
“예?”
아리의 눈이 떨렸고, 우진의 표정 역시 심각해졌다.
“그런 말씀은 없으셨잖아요.”
“그랬는데, 상황이 바뀌었어. 먹고 살려니까 어쩔 수 없겠더라고.”
“···.”
“솔직히 나도 너희처럼 멋있는 애들이랑 헤어지려니까 좀 씁쓸하다.”
“전속 계약 같은 거 하신 건가요?”
“응.”
“···.”
“어쩌겠냐. 너희한테 노래가 삶인 것처럼 나한테는 글이 삶인데.”
“그렇죠.”
“작가랍시고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약속을 끝까지 지켜 본 적이 없는 것 같네.”
“···.”
“미안하다.”
뜨거운 커피만 홀짝홀짝 넘어갔다.
진 작가는 자신의 잔이 비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리야. 악수할까?”
“네, 아저씨.”
진 작가는 아리와 악수한 후 우진을 안아주었다.
“우진아.”
“예.”
“그 동안 고마웠다.”
“아, 아닙니다···.”
“앞으로도 아리랑 행복하게 잘 지내고, 좋은 노래 많이 만들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진 작가는 뒷말을 길게 흐리며 우진을 놓아주었다.
세 사람 모두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갈게. 건강들 해라.”
“예.”
“네.”
“나오지 말고.”
덜컹.
우진과 아리는 한 사람이 사라진 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리가 침묵을 깼다.
“치잇. 저러고 언제 또 갑자기 나타나시겠지.”
“글쎄. 그럴 시간이 있을까?”
“왜?”
“과거랑 현재, 미래까지 넘나드는 분이잖아.”
“하아아.”
“난 앞으로도 너한테 더 잘할게.”
“고마워. 나도.”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꼭 닫힌 현관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갑작스레 인사드립니다.
뜻하지 않게 제의가 들어왔고, 생업이 목을 조이던 터라 덜컥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별의 인사입니다.
7월 하순, <오디션>이 레x코믹스에 유료 연재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무료 연재로 올라간 사이트에서 작품을 내리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이 작품을 찾았다가 글이 내려진 것을 보고 실망하실 독자 분들이 계실까 하였습니다.
공지를 올려도 독자 분들께서 확인하시기 어려운 시스템 때문에 부득이하게 짤막한 글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작품은 6월 27일부터 30일 사이에 내릴 예정입니다.
Round 1까지의 이야기와 이 연재분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연재분에서도 얘기했지만, 제가 끝까지 독자 분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깊이 송구합니다.
다음 작품으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늘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만나시길 소망합니다.
2017년 6월 21일
진사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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